6. 최후의 결전
따르릉.
아직 날도 밝지 않은 새벽.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조용한 총리 관저를 울렸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 등 인공위성들을 잃어버린 국가들과 공동 대응을 논의하느라 늦게 잠이 들었던 구로다 일본 총리는 새벽부터 울려 대는 전화 벨소리에 인상이 절로 구겨졌다.
“뭔가?”
구로다 총리는 아직 잠이 덜 깬 모습으로 비서에게 물었다.
“변고가 생겼습니다.”
“변고?”
구로다 총리는 순간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곧 사태를 깨달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지? 혹시 조센징들이 기습을 한 것인가?”
“아직 누가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전국적으로 테러가 발생하였습니다.”
방금 전, 각지에서 날아온 보고를 떠올린 비서는 조심스레 보고했다.
하지만 현재 일본에 대해 테러를 감행할 만한 나라가 또 어디 있겠는가.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비서 또한 범인에 대해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었다.
“제길, 이번에도 선수를 빼앗겼군. 관료 회의를 실시하겠다. 모두 호출하도록.”
“하이!”
지시를 수행하기 위해 밖으로 나선 미야자키는 조금 전 구로다 총리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선수를 빼앗겨? 설마 총리님께서도 한국에 테러를 하려고 했던 것인가?’
한국에 선전포고를 한 것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 애써 자위하며 넘어갔지만, 조금 전 총리의 본심을 알게 된 미야자키는 인상을 와락 구겼다.
솔직히 미야자키는 현 정부 인사들이 너무도 과격하고 우편향된 것에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나마 구로다가 새롭게 총리가 되면서 중심을 잡고 외교를 해나간다고 생각했다.
비록 가끔 급진적인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역대 총리 누구보다 합리적인 판단으로 외교를 하고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가식이었다는 판단이 서자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이 이미 사전에 준비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한 가지 의문이 들자 그동안 구로다 총리의 행보에 대해 의문점이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음, 무서운 일이다. 설마 이번 전쟁도…….’
급기야는 이번 전쟁에 대한 당위성마저도 의심이 들었다.
한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에 대한 당위성을 발표할 때, 조금 의심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일단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야자키는 애써 의문을 가슴속에 묻었다.
◈ ◈ ◈
총리 관저 내 회의실.
웅성웅성.
회의실에 모인 관료들은 하나같이 긴장된 표정으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무엇 때문에 자신들이 새벽부터 불려온 것인지 파악하지 못했기에 저마다 당황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바로 그때, 구로다 총리가 회의실로 들어서며 주위를 환기시켰다.
“모두 모였나?”
“어서 오십시오.”
“총리님, 어서 오십시오.”
구로다 총리가 등장하자 내각 관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반가이 맞이했다.
하지만 구로다 총리는 그런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관방장관인 고노야마 아키라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요?”
“예, 그것이…….”
아키라 관방장관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고 눈치를 살폈다.
그도 그럴 것이, 피해를 입은 지역들이 하나같이 심상치 않은 곳들이기 때문이었다.
일본 산업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4대공업지대는 물론이고, 그에 버금가는 세 곳 또한 폭발 사고가 발생하였다.
그 때문에 현재 일본 산업의 60% 이상이 파괴되었으며, 지역 주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이는 일본이 겪은 그 어느 사고보다 심각한 것으로, 2차 대전 당시 이상으로 피해 규모가 심각하였다.
“왜 말을 못 하는 것이오? 설마 아직도 피해 규모를 짐작 못한 것은 아니오?”
대답을 못하는 아키라 장관의 모습에 구로다 총리는 호통을 쳤다.
“그런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합니다.”
“참혹?”
구로다 총리는 아키라 장관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이 듣기로는 테러라 해도 인구 밀집지역이 아닌 공업지역이라고 했다.
그런데 참혹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자 구로다 총리는 뭔가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4대공업지대는 물론이고, 전국에 있는 주요 공업지역이나 공업 도시들이 모조리 참화를 당했습니다.”
“헉!”
아키라 장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구로다 총리는 물론이고, 회의장 안에 모인 일본 내각 각료 모두가 외마디 신음을 흘렸다.
그도 그럴 것이, 폭발 사고가 있다고만 들었지 설마 전국에 산재해 있는 공업지역 전체가 테러의 대상이었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말대로라면 이건 테러 정도가 아니라 침공을 받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었다.
일본에는 4대공업지역이라 불리는 기타큐슈, 게이한, 주쿄, 한신 공업지역이 있고, 또 그에 버금가는 도카이, 호쿠리쿠, 세토우치 공업지역이 있었다.
이들 주요 공업도시들은 일본 산업의 근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지역들이 모조리 파괴가 되었다니, 구로다 총리는 눈앞이 노래졌다.
이것은 악몽이었다. 구로다는 왕제 나루히토에 의해 새롭게 일본 총리의 자리에 앉을 때만 해도 앞으로는 하늘 위로 비상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비록 자신의 막후에 나루히토라는 존재가 있긴 하지만, 충분히 컨트롤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흑막인 나루히토의 뜻에 맞춰 일본을 잘 이끌어왔다고 자부했다.
현재 일본은 무척이나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점점 잦아지는 재해와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는 경제, 그리고 국가의 일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들까지. 이런 모든 요인들이 맞물려 일본은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 일본을 살리기 위해선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죽어가는 일본을 살릴 수 있을지 자신은, 아니, 일본을 움직이는 이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예전에도 그랬듯 전쟁만이 일본을 살릴 수 있는 길이었다.
전쟁을 통해 일본인들을 하나로 묶고, 정부를 불신하는 자들을 처단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한 땅. 일본이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했고, 자신은 그런 길을 열었다고 자신했다.
그래서 한국의 뒤통수를 치는 일도 마다 않고 감행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조금 전 보고를 받은 곳들은 일본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폐허로부터 일어난 일본이 경제대국이 되는 데 밑거름이 된 곳이었다.
또한 버블 경제가 무너진 뒤에도 어렵게 일본을 지탱해 온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한 일본의 심장이 모두 파괴되고 피해 규모를 짐작할 수도 없다는 관방장관의 보고에 구로다 총리는 할 말을 잃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일본의 앞날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일본의 미래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래 또한 암담할 뿐이었다.
“테러를 당할 동안 당신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것인가!”
너무도 허탈해서 그런 것인지, 구로다 총리는 회의장 안에 있는 각료들을 보며 고함을 질렀다.
일본 내의 주요 공업 도시들이 모두 파괴당하려면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건이 터지기 전에 자신은 그 어떤 보고도 받은 기억이 없었다.
“도조 히데키! 오토 사부로! 일이 이렇게 될 동안 네놈들은 대체 뭘 하고 있었느냔 말이다!”
구로다 총리는 모세혈관이 터져 붉게 물든 눈으로 국방장관인 도조 히데키와 국가 공안 위원장인 오토 사부로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사실 두 사람은 할 말이 없었다.
도조 히데키는 국방부 장관으로서 국토를 방위하지 못했고, 오토 사부로 또한 치안을 담당하는 입장으로서 테러범들의 그림자도 잡지 못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는 셈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숙인 두 사람의 모습에 구로다 총리는 화가 풀리기는커녕 더욱 분노를 느꼈다.
무력한 그들의 모습이 마치 자신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 ◈ ◈
쾅!
“지금 뭐라고 했나?”
중국 총서기인 주진평은 조금 전 장위해 국가 안전부 부장의 보고에 깜짝 놀랐다.
동부 연안에 위치한 주요 산업 시설들이 누군가의 테러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는 보고였다.
특히나 항공모함을 건조하던 상해 조선소에서 일어난 폭발로 인해 건조 중인 항공모함은 물론, 집결한 항공모함 세 척까지 침몰하였다는 말에는 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러시아가 재정적 이유로 건조를 중단한 항모 바랴그 함을 레저용으로 속여 들여오려다 주변국의 반발에 부딪쳤다. 하여 결국에는 유령 회사를 만들어 고철로 수입하였다. 그런 후에 개량해서 라오닝이라 명명하고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고는 또 다른 항공모함을 건조하기 시작해 2020년에는 총 일곱 척을, 2028년이 된 현재에는 총 아홉 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세 척이 더 건조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 국안부장의 보고에 의하면, 건조 중이던 항모 세 척과 한국과의 전쟁에 동원된 세 척이 폭발에 휘말려 모조리 바닷속으로 수장되었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주진평이 가장 분노한 것은 집결한 세 척의 항공모함에 있었다.
마지막 점검을 위해 상해 조선소에 결집한 세 척의 항공모함은 최신예 항공모함으로서, 이것들이 동원된다면 아무리 막강한 한국군이라도 중국 인민해방군을 더 이상 막을 수 없다고 자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세 척의 항공모함은 원자력 항모인 동시에 한 척당 80대의 전투기를 탑재하고 있는데, 이들 전투기들이 모두 스텔스 전투기인 젠―31이었다.
그런 세 척의 원자력 항공모함은 물론이고, 차기 원자력 항공모함이 되어야 할 재원까지 모두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는 말은 아무리 담대한 주진평이라도 무너질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주진평은 심지어 원자력 항공모함을 보유하기 위해 문제만 일으키는 자치구들을 모두 독립시켰다.
사실 자치구를 지배하는 것은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일이었다.
자치구 주민들은 중국 정부의 정책을 따르지도 않으며,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도 불사했다.
또 북경이나 상해 등의 주요 도시에서 자살 테러는 물론이고, 정부 인사들에 대한 테러도 감행하는 등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상황이 그러하기에 주진평은 이전 중국의 지도자들과 다르게 양적 팽창보단 실리를 취하기로 결정하고 자치구에 들어가는 예산을 줄여 단계별로 독립시킬 준비를 하였다.
그러면서 축적된 예산으로 비밀리에 원자력 항공모함을 건조하였다.
물론 외부에는 그저 이전 라오닝 함처럼 디젤 항공모함을 건조하는 것이라 발표하였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이미 원자력 함선을 건조할 기술은 가지고 있는데 굳이 전투력이 떨어지는 재래식 항모를 건조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재래식 항모나 원자력 항모나 그리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원자력 항모는 보급 없이 보다 오랜 동안 작전을 수행할 수 있으며, 또 많은 함재기를 실을 수 있었다.
그랬기에 초강대국 미국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는 중국으로서는 굳이 재래식 항모를 건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원자력 항모를 열두 척이나 보유한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 중국은 모든 역량을 동원해 세 척의 원자력 항모를 건조하였고, 추가로 세 척을 더 건조 중이었는데, 한순간에 이를 모두 잃었다.
게다가 남은 여섯 척의 항공모함 중 1번함인 라오닝 함을 비롯한 2번과 3번함은 사실상 퇴역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상해 조선소에서 건조하고 있던 세 척의 항공모함은 이들 1번에서부터 3번까지의 항공모함이 사용 연혁을 넘겼기에 대체하기 위해 건조하고 있던 차였다.
그러니 사실상 현재 중국 해군이 운용 가능한 항공모함은 세 척밖에 남지 않은 셈이었다.
나머지 세 척의 항공모함도 운용 능력이 원자력 항모 한 척을 겨우 넘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 한국과 전쟁을 치르는 데 있어 많은 전략의 수정이 필요했다.
◈ ◈ ◈
청와대 지하 벙커.
중국과 일본이 선전포고를 한 뒤, 청와대 지하 벙커에는 전쟁 사령부가 꾸려졌다.
중국을 상대할 때까지만 해도 약간의 여유가 있었는데, 일본까지 뒤이어 선전포고를 해오자 전쟁 사령부를 설치한 것이었다.
이곳에는 갖가지 첨단 장비들이 갖춰져 있어 외부와의 통신이 원활하며, 외부 지원 없이도 2년을 버틸 수 있는 물자가 보관되어 있었다.
원래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통령과 영부인, 그리고 국가 주요 장관들이 대피하는 벙커가 따로 있었다.
그곳은 핵전쟁이 발발하더라도 충분히 대비할 수 있을 만큼 안전하며, 1개 사단과 10개 직할 대대가 주변을 지켰다.
또한 그런 대규모 병력이 10년간 사용할 군수물자는 물론이고, 식료품까지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윤재인 대통령과 정부 관료, 그리고 군 장성들은 이번 전쟁에서 큰 위기는 없을 거라는 판단에 따라 예정된 벙커가 아닌, 청와대 지하에 있는 임시 벙커에 전쟁 사령부를 꾸렸다.
“허, 저게 가능하다니, 지킴이 PMC라는 곳은 과연 대단하군요.”
일본과 중국에서 벌어지는 비밀 작전의 진행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 중 한 명이 감탄성을 흘렸다.
아무리 중동에서 IS를 몰아냈다고는 하지만, 한 나라에 침투하여 작전을 펼치는 것과는 경우가 달랐다.
사실 중동의 나라들은 땅덩어리가 너무도 커 경계가 허술하였다.
하지만 일본이나 중국은 그런 나라들과는 전혀 달랐다.
군사력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대국들이다.
중국은 초강대국 미국을 목표로 군사력을 키운 나라고,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이란 이상한 해석을 내놓으며 군대를 보유할 수 있게 되자 대규모 투자로 7~8위에 놓여 있던 군사력을 5위권으로 향상시켰다.
물론 핵무기를 감안하지 않은 재래식 전력만을 두고 평가한 것이라 정확하게 평가를 내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재래식 전력만으로도 세계 군사력 5위라는 지위는 결코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세계 1위의 테러 조직이라고 해도 정규 국가의 군대와 전투력을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킴이 PMC는 단독으로 중국과 일본에 침투하여 그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애당초 계획한 것의 1/10만 성공을 한다고 해도 큰 성과라고 판단한 합동참모본부의 장성들이나 윤재인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지킴이 PMC의 엄청난 능력에 경악하였다.
동시에 그런 경악할 만한 전투력이 모두 대한민국을 위해 사용된다는 것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막말로 저런 전투력을 가진 지킴이 PMC가 중국이나 일본의 의뢰로 내부에서 테러를 자행했다면, 대한민국으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것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전대로 중국과 일본은 더 이상 보급이 어려워졌습니다.”
윤재인 대통령은 방금 전 본 화면을 상기하며 비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군 장성들의 표정 또한 사뭇 비장해졌다.
처음 작전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하였다.
계획대로 작전이 성공을 거둔다면 전황이 무척이나 유리하게 될 것이니, 굳이 위험을 자처하는 그들을 막을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다만, 그런 위험한 작전을 자신들이 나서서 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미안했다.
원래 군이란 조직이 그럴 때 필요한 것인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이 들었을 뿐이다.
그만큼 수한이 제안한 작전은 어렵고 위험했다.
“예. 그들은 완벽하게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우리 군이 중국과 일본의 군대를 막아내면 됩니다.”
정승환 대장은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하였다.
주변에 있는 장군들도 하나같이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 장군들의 모습에 고무된 윤재인 대통령의 표정도 한층 밝아져 있었다.
‘이길 수 있다! 아니, 이번 전쟁은 우리 대한민국이 무조건 승리를 한다!’
윤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많은 고민을 했다.
대한민국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하루에도 몇 번이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였다.
전투가 벌어졌다는 소식만 전해져도 자신이 너무 급하게 일을 추진해 이런 사단이 벌어진 것은 아닌지 후회되었다.
또 한반도를 통일하고 난 뒤, 미국의 요구대로 핵을 폐기하지 않은 것 때문에 미국이 대한민국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주장하던 국회의원들의 말을 들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수십 번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중국이나 일본이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사실 윤재인 대통령은 그나마 대한민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중국과 일본이 조심하는 것이라 믿었다.
만일 핵무기가 없었다면 초기에 대규모 병력이 막혔을 때 중국은 한반도에 핵미사일을 날렸을 것이다.
자존심 강한 중국인들은 그렇게 당하고 그냥 있을 족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1차 한중 교전 때 벌써 사용하고도 남았을 거란 판단에 윤재인은 전 재산을 걸 자신이 있었다.
“이제부턴 입장이 반대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저들은 더 이상 보급을 받을 수 없으니 최대한 빠른 시일에 전쟁을 끝내려 할 것입니다. 그러니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가 단숨에 저들의 숨통을 끊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어떤 빈틈도 보이지 않게 준비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수한 박사가 예상한 것처럼 중국과 일본은 이제 가용할 수 있는 전력 중 절반 정도를 동원하여 최후의 일전을 벌이려 할 것입니다.”
“예, 본인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중국이야 주변국들과의 문제로 인해 국경에 있는 병력을 모두 빼진 않을 테지만, 일본은 다릅니다. 그러니 일본을 특히 경계하세요.”
“예. 일본은 여느 국가와 같이 생각하면 안 되겠지요. 그런데 각하, 만일 중국과 일본이 동시에 쳐들어온다면 저희가 아무리 최신형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고 해도 물량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한창 최후의 결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정승환 대장은 말끝을 흐렸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윤재인 대통령은 조금은 걱정이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정승환 대장은 잠시 망설이다 곧 자신의 생각을 말하였다.
“청천(晴天) 작전에 사용한 그것을 한 번 더 사용했으면 합니다.”
한반도 상공에 떠 있던 인공위성들을 청소한, 일명 청천작전.
그는 그때의 비밀 무기를 다시 한 번 사용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게 이번 결전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더 이상 한반도를 감시하는 위성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윤재인 대통령은 플라즈마 발전소에 설치되어 있는 무기의 기능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고, 또 그것이 전투에 도움이 될 것인지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위력을 실감한 정승환 대장이나 다른 장성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렇습니다. 공중에 떠 있는 물체를 지워 버리는 기능 말고도 어떤 물체를 높은 곳으로 보낼 수도 있다고 합니다. 만약 GPS 폭탄을 대기권에 올렸다가 떨어뜨린다면 엄청난 효과를 볼 것입니다. 사실 군이 많이 발전을 했다고 하지만 중국과 일본 두 나라를 동시에 상대하기에는 전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재고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윤재인 대통령은 잠시 정승환 대장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확실히 그가 생각하기에도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이 좋다고만 볼 수는 없었다.
한 나라도 아니고, 동시에 두 나라를 상대하는 일이다.
일본이야 한국과 비슷한 전력을 가지고 있으니 충분히 막아낼 수 있지만, 거기에 중국이 추가된다면 경우가 달랐다.
반대로 일본을 배제하고 중국군만 상대한다면 이전 두 번의 대규모 교전에서 승리한 것처럼 첨단 무기로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일본이 끼어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사정이 그러다 보니 윤재인 대통령도 정승환 대장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 ◈ ◈
보이지 않는다.
상대의 패를 알고 도박을 하는 것과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것은 승패에 많은 영향을 준다.
굳이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이는 당연한 이치이다.
하물며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태에서 상대의 움직임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무척이나 답답한 일이다.
일본과 중국은 전쟁이 장기화되면 자신들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더 이상 군수물량을 생산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때문에 총력을 다해 최후의 결전을 벌여야만 할 상황에 처했다.
물류 통로를 막음으로써 한반도를 고립시켜 백기를 들게 하려던 계획을 철회하고 전면전을 통해 자웅을 결하려는 것이었다.
일본은 한반도 정벌이라는 기치 아래 대규모 출정을 준비하였다.
같은 시각, 중국군도 상해의 동해 함대 사령부와 천진의 북해 함대 사령부에서 출정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북해와 동해 함대가 출정할 때, 심양에 대기하던 육군과 공군이 동시에 한국의 국경을 공격할 계획이었다.
중국과 일본군은 이렇게 동맹을 맺고 대한민국을 공격하기 위해 대대적인 집결을 하였다.
더욱이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한반도의 정보를 어느 정도 넘겨받아 아직 한국이 자신들을 막을 만한 전력은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약간 안심을 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전국의 공업단지들이 테러를 당해 모두 폐허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구로다 총리는 낙담했다.
혹시 자신들이 판단한 것보다 한국이 가진 군사력이 월등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현재 한국이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다시금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었다.
얕잡아 보던 상대에게 뒤통수를 맞았을 때 혹시 상대가 내가 모르는 수를 숨겨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되고, 그 피해가 크다면 더욱 당황하게 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상대도 최후의 발악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땐 오히려 안심을 하는 심리였다.
구로다 총리도 잠시 당황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것이 한국이 가진 마지막 수단이란 것을 알고 안심했다.
게다가 이만큼이나 당하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어차피 한국이 죽어야 일본이 살고, 자신이 살 것이기에 구로다 총리는 한국에 대한 정보를 받자마자 군에 명령을 내렸다.
한반도 정벌을 명령한 것이다.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랬듯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표출하는 전략이었다.
일본 국민들은 전국의 공업단지가 테러를 당하고, 그것을 막지 못한 책임을 총리인 그에게 물으며 물러나라는 시위를 벌였다.
원만한 관계였던 한국에 굳이 전쟁을 선포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책임을 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구로다 총리는 테러를 자행한 한국을 정벌하고 나서 물러나겠다는 주장을 펴며 전쟁 반대를 외치는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어 한반도 침략을 도모하기 위한 전진기지나 다름없는 마이즈루 해군 기지와 구레 해군 기지에 해군력을 집결시켰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 가까운 항구 중 가장 규모가 큰 후쿠오카에 지상군을 대기시켰다.
한국 해군을 물리치면 곧바로 지상군을 투입하여 일본 제국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한반도를 점령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러한 생각으로 구로다 총리는 일본군에 총력전을 명령하고, 러시아의 극동 함대를 막을 4함대와 8함대, 그리고 혹시 모를 수도 방위를 위해 1함대와 지상군 일부를 남기고 전 병력을 이번 전투에 투입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 때문에 3함대 사령부가 있는 마이즈루와 2함대의 모항인 구레, 그리고 지상군이 집결하는 후쿠오카에 많은 군인들이 몰려들었다.
◈ ◈ ◈
파도가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를 보던 미나미 일등해장은 가슴이 답답했다.
비록 그가 일본 해군 3함대 사령관이라고는 하지만 이번 한국과의 전쟁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군인이기에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따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밑에 있는 함장들은 달랐다.
언제나 이런 기회를 기다려 왔다는 듯 그들은 구로다 총리가 선전포고를 하자마자 전장에 나갈 날만을 기다려 왔다.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는 역사의 기록만으로도 알 수 있지만, 그런 교훈도 잊고 그저 자신의 무공만을 탐할 뿐이었다.
하지만 미나미가 들은 정보에 의하면, 대한민국 해군은 절대 자신들의 하수가 아니었다.
더 이상 육군만 강력하던 한국군이 아닌 것이다.
더욱이 한국군은 어찌 되었든 전쟁을 경험한 군대이고, 자신들은 몸집은 비대해도 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한 군대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부하들, 아니, 전쟁을 원하는 모든 일본인들이 그런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이길 수 있을까?’
미나미 일등해장은 검푸른 마이츠루 앞바다를 보며 다시 한숨을 쉬었다.
빰빠밤! 빰빰!
저 멀리에서 군 장병들의 승전을 기원하는 군악대의 연주 소리가 울려왔다.
하지만 미나미 일등해장의 귀에는 그것이 승전을 기원하는 소리가 아닌, 마치 장송곡처럼 들리는 것만 같았다.
언젠가부터 한국군은 자신들이 알 수 없는 영역에 들어가 있었다.
낙후된 함선을 겨우 운영하던 한국 해군은 언젠가부터 최신형 함선을 건조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함선의 제원도 공개하지 않고 비밀에 붙이고 있었다.
보통 동맹과 합동 훈련을 할 때 효율을 위해 제원에 대해선 공개를 하는 것이 상식인데, 절대 그러지 않았다.
아니, 심지어 적대국에게도 자신들의 전력을 알려 전쟁의 불씨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기본 제원은 알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동안 한국 해군은 북한이란 적을 상대하기 위해 무기를 개발하고 함선을 개발해 왔다. 하지만 동맹인 미국이나 일본에게도 정확한 제원을 알리지 않았다.
다만, 크기로 배수량을 예상하고 탑재된 무기를 통해 짐작할 뿐이었다.
현재 한국 해군의 기함이 된 해모수함의 전투력은 미국의 최신예함인 줌왈트 급 순양함에 근접할 것이라 예상되었다.
미나미 일등해장이 그런 짐작을 할 수 있는 근거는 줌왈트에 탑재된 레일건과 유사한 무기가 한국의 해모수함에도 탑재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한국 해군이 운용을 하지 않을 때 가림막으로 가려놓기는 하였지만, 지난날 중동에서 쿠웨이트 해방 작전을 수행할 때 잠깐 해모수함의 함포 운영하는 사진을 어렵게 구할 수 있었다.
당시 합동작전을 하던 미군 중 한 명이 촬영한 것으로,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그 사진을 넘겨받으려고 무척이나 많은 비용을 지불하였다.
이러한 것만 보더라도 한국 해군은 결코 약한 군대가 아니었다.
어쩌면 한국 해군은 이미 일본 해군을 능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미나미 일등해장으로서는 이번 전쟁의 향방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마이즈루 해군 기지에선 마치 축제라도 벌이듯 폭죽을 터트리고 행진곡을 연주하며 군인들의 장정을 축하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미나미로서는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미나미 일등해장의 우려와 달리 마이즈루 해군 기지를 벗어난 일본 해군 함정들은 빠른 속도로 검푸른 바다를 거슬러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