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코리아-109화 (109/118)

1. 미국의 선언

일본 도쿄.

중국 국무원 부총리인 위청산은 지금 표정을 굳힌 채 앞에 앉아 있는 일본의 관방장관인 고노야마 아키라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고노야마 아키라는 그와 반대로 편안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일본은 왜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것이오?”

침묵이 이어지던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위청산이었다.

총서기 주진평의 명령을 받고 일본에 따지러 온 그였기에 그의 말투는 결코 좋지 못했다.

하지만 아키라는 위청산의 날카로운 말투와는 대조되게 평온한 말투로 답했다.

“우리가 무슨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뭐요?”

아키라의 말에 위청산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당신들이 그렇게 나온다면 우린 더 이상 이번 전쟁을 수행할 생각이 없소. 그리고 이번 전쟁이 벌어지게 된 배경에 대해 한국에 알릴 것이오.”

위청산은 뻔뻔스럽게 나오는 아키라의 태도에 자존심이 크게 상한 나머지 전쟁 중단과 폭로라는 과격한 방식을 꺼내 들었다.

그제야 아키라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너무나 위청산을 막바지로 내몰았다는 뒤늦은 후회가 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생각을 정리한 아키라는 중국의 의도를 한 번 떠보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그 말을 한국이 믿어주겠습니까? 그리고 대국이라 부르짖는 중국이 또다시 소국인 한국에 항복을 한다면 중국 인민들이 어떻게 생각을 할까요?”

“음…….”

아키라의 돌직구에 위청산은 한순간 할 말을 잃었다.

확실히 현재 중국 지도부는 진퇴양난의 처지였다.

전쟁을 계속해서 수행하는 것도 문제가 있고, 그렇다고 한국에 항복을 하는 것도 대국 중국의 입장에선 안 될 소리였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좋은 그림은 한국이 중국에 항복을 하는 것이지만, 이미 그건 물 건너간 상황이었다.

첫 교전에서 대승을 거둔 한국이 굳이 중국에 항복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좋은 그림은 원래 약속한 대로 일본이 한국에 선전포고를 하며 기습 공격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으로서는 앞뒤로 공격을 받아 전선(戰線)이 늘어나며 병력이 갈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한국이 대단하다고 해도 중국과 일본이 협공을 하는데 그것을 막아낼 여력은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그 방법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현재 일본의 행보를 보면 믿음이 가지 않았다.

뭔가 노림수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원래 전쟁을 부추긴 것은 일본이 먼저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뒤로 한 발짝 물러난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위청산은 자신들이 일본의 꼬임에 넘어가 성급하게 전쟁을 벌인 것에 대하여 후회가 되었다.

지금도 눈앞에 있는 일본의 관방장관이란 자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분명 일본도 이번 전쟁을 기획하면서 자신들과 한국이 치고받을 때 뭔가 이득을 보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도 일본의 생각을 읽고 당에 보고를 하여 전쟁 준비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움직이는 일본의 태도에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일본이 노리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일본은 현재 국가 위기급의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한 땅을 찾고 있었다.

그러한 의도를 파악한 중국은 땅을 차지하는 대신 한국이 가진 기술을 손에 넣으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일본이 약속과 다르게 자신들이 전투까지 벌였는데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자, 위청산으로서는 이들이 노리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자신에게 던져진 돌직구에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막말로 지금의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노야마 아키라의 말대로 한국에 항복을 하고 권좌에서 물러나면 되겠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정말로 자신은 물론이고, 현 중국 지도부 어느 누구도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한 번도 아니고, 이번의 경우까지 한국에 일방적으로 당한 채 항복을 하게 된다면, 어쩌면 중국 내에서 쿠데타가 발생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뿐만 아니라 이미 동북 3성을 주기로 해놓고 그 와중에 선전포고를 했으니, 이후로는 더 많은 것을 한국에 지불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니 중국 지도부로서는 정말이지 진퇴양난이었다.

전쟁을 계속 수행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단독으로 한국을 점령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더욱이 미국에서 빼낸 정보에 의하면, 이대로 전쟁을 진행해 나간다면 한국이나 자신들이나 양패구상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되면 일본 또한 무사할 수가 없었다.

한반도에 핵전쟁이 벌어졌는데 그와 가까운 일본에 아무런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워게임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일본뿐만 아니라 지구의 북반구 전체가 핵겨울을 맞아 생명체의 90% 이상이 멸절(滅絶)한다고 나와 있었다.

그렇다고 남은 10% 정도가 정상적인 것도 아니었다.

기아와 혹한에 시달리고, 또 방사능 피폭의 결과로 기형(畸形)적인 변화가 일어나 고통을 받는다고 나왔다.

위청산은 문득 미국의 워게임 결과가 떠오르자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뻔뻔한 일본을 끌어들일 묘안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을 위해 미국에 로비를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일본 정부는 미국이 이번 전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갑작스런 위청산의 질문에 아키라는 잠시 당황했다.

무엇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인지 파악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중국을 자극해 보다 많은 이득을 취하려던 아키라는 위청산의 협박 아닌 협박에 한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그의 말처럼 중국이 미친 척하고 한국에 항복을 하고, 일련의 모든 사태가 일본의 계획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 일본은 국제적으로 고립이 되고 말 것이다.

동맹국인 한국에 혼란을 일으키고, 또 그 와중에 이득을 취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국제사회에 알려진다면 일본은 믿을 수 없는 국가로 낙인이 찍히고 예전 2차 대전 당시의 치부까지 들춰지게 될 것이 분명했다.

일본은 과거의 망령을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우기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패전의 폐허 속에서 한국전쟁의 특수를 맞아 극적으로 경제를 재건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넓혀갔다.

그런 후, 비대해진 영향력으로 자신들이 과거에 잘못한 것들을 덮어갔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일본이 협잡을 꾸몄다는 사실이 국제사회에 까발려진다면, 이전에 덮었던 치부까지 덤으로 수면 위로 떠올라 규명을 하려고 들 것이다.

이미 한 번 한국 때문에 덮어두었던 진실이 표면 위로 드러나면서 동해와 독도가 한국의 주장이 맞다는 국제 분쟁 위원회의 판결을 받았다.

사정이 그러한데 다른 나라도 아닌 중국이 전쟁의 배후에 일본이 있다고 주장을 하면, 일본으로서는 그저 당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일본은 그런 목적으로 중국을 전쟁에 끌어들였고, 그 증거를 중국이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지금 아키라가 이해하지 못하는 점은 중국의 입장에도 그러한 짓은 자충수라는 점이었다.

즉, 너 죽고 나 죽자는 수였기에 지금 아키라는 위청산의 말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중이었다.

현재 상황으로는 중국이 숙이고 들어와야 하는데, 오히려 자신들을 윽박지르는 그 내면에 어떤 카드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아키라는 정말로 위청산의 주장대로 자신들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자충수나 다름없는 전격적인 항복을 할 것인지, 그의 눈을 쳐다보며 본심을 읽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위청산 또한 지금의 지위에 오르기 위해 오랜 기간 동안 많은 권모술수(權謀術數) 속에서 살아남은 위인이었다.

아키라가 그의 생각을 읽어내려 해도 그것을 감추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정치를 하면서 속마음을 감추고 적의 진의를 파악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스킬이었다.

그러한 스킬을 가졌기에 지금의 지위에 오를 수 있던 것이기도 했다.

자신의 생각을 숨길 수 없는 정치인은 금방 도태되고 만다.

자신의 내면을 숨기고 상대의 진의를 살펴 상대를 설득하거나, 상대의 또 다른 적에게 약점을 넘겨 이득을 취함으로써 상대를 누르고 더 위로 올라가는 것, 그것이 바로 정치인 것이다.

정치란 협력과 타협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권모술수를 부려 적을 쓰러뜨리기도 하고, 또 때로는 상대의 수에 넘어가 줘야 할 때도 있다.

이런 모든 수를 가지고 있어야 위로 올라갈 수 있으며, 그런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자가 바로 위청산이었다.

물론 아직 그의 위로는 올라갈 자리가 더 있지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는 너무도 막강해 위청산으로서는 그를 넘어설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런 위청산이기에 아키라의 잔머리는 통하지 않았다.

결국 아키라는 막무가내로 나오는 위청산의 태도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이득을 보려고 협상장에 나왔는데, 오히려 상대의 수에 말려 먼저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우리 일본 정부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어 늦어지는 것입니다. 진정하십시오.”

아키라는 마치 간신처럼 표정을 바꾸고는 위청산을 달래며 아직까지 한국에 선전포고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변명을 늘어놓았다.

“곧 총리께서 선전포고에 대한 담화를 하실 것입니다.”

위청산은 곧 일본 총리가 담화를 발표하기로 했다는 아키라의 말에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

사실 위청산도 인민해방군이 어처구니없게 한국군에 패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중국 정부 또한 일본이 차일피일 선전포고를 미루는 것에 대해 별다른 항의를 하지 않았었다.

그 이유는 바로 인민해방군만으로도 충분히 한국을 점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일본과 한반도를 나눠 가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단독으로 전쟁을 벌인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자신들만으로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던 전쟁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너무도 막대한 피해를 입고 나서야 알게 된 현실은 중국의 지도부로 하여금 그동안 신경 쓰지 않던 일본 정부를 찾게 만들었다.

먼저 말을 꺼내고도 여전히 침묵을 고수하고 있는 일본을 전쟁에 끌어들여, 자신들이 피해를 복구하고 정비할 시간을 벌기 위한 방패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 ◈ ◈

일본이 한국에 선전포고를 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퍼지자 미국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자신들이 어떻게 개입해야 할 것인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일본이 대뜸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백악관이 일본 정부의 움직임을 아예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일본은 자연재해와 방사능 오염으로부터 안전한 땅을 오래전부터 원해왔다.

그런 조건에 가장 충족되고, 또 한때 지배하기도 했던 한반도는 일본의 입장에서 볼 때, 참으로 군침이 도는 땅이었다.

그 때문에 일본은 오래전부터 한국 땅에 갖가지 작업을 벌였다.

그러한 정황을 잘 알고 있는 미국 정부에게 일본은 미국이 눈독 들이고 있던 기술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눈감아줄 것을 원했다.

그리고 미국 또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넘겨준다는 말에 찬성을 하였다.

물론 반대 의견도 많았지만, 근소한 차이로 전쟁을 눈감아주고 이득을 취하자는 쪽이 우세하였다.

어차피 자신들은 피를 흘리지 않고 열매를 따 먹을 수 있으니, 한국이 어떻게 되든 미국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더욱이 자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있는 한국을 한 번쯤 혼내주려던 참이었기에 마침 적당한 때라고 생각했다.

전쟁이 일본의 계획대로 흘러가도 좋은 일이고, 그렇지 않고 한국이 위기를 극복해도 상관이 없었다.

그때쯤이면 한국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을 것이고, 중국과 일본의 위협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미국의 손을 잡아야 할 테니, 그때 가서 미국이 원하는 것을 한국이 스스로 바치게 하면 더욱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이라고 했던가.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 하지만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늘의 뜻이라는 말처럼 중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 협력을 하였지만, 결과는 뜻밖으로 나타났다.

자신들의 군대를 과대평가한 중국은 초전부터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일본은 양패구상을 기대하며 몰래 군대를 준비하였지만 중국에게 자신들의 계획만 까발려졌다.

그리고 미국은 동맹이 위기에 처한 상황임에도 자국의 이득만을 생각해 관여하지 않은 것 때문에 국제적으로 위신이 깎였다.

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해 싸운다는 미군의 자부심은 정치인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무너졌다.

그러한 사실 때문에 백악관은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IS와의 전쟁에서 우위를 보인 덕분에 잠시 지지율이 상승하는 듯했지만, 이번 동북아시아의 전쟁으로 인해 행정부의 부도덕성이 부각되면서 지지율은 빠르게 곤두박질쳤다.

이 일로 인해 존 슈왈츠 대통령의 지지율은 30%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급락하였다.

더욱이 재임 기간도 끝나가고 있는 마당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탄핵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게 뭔가! 괜히 시일을 조율한다고 머뭇거리다 시기마저 놓치지 않았나!”

존 슈왈츠 대통령은 일본발 핵폭탄 같은 소식에 불같이 화를 내며 보좌관들을 돌아보았다.

방금 전, 일본 총리가 한국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한 것이 존 슈왈츠 대통령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원래 오늘 존 슈왈츠 대통령은 중국과 한국의 전쟁에 대하여 논평을 하고, 양국이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며 두 국가에 핵무기 사용을 자제할 것을 촉구할 생각이었다.

물론 말로만 그런다고 중국이나 한국이 따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존 슈왈츠 대통령은 발표와 함께 강력한 무력을 한국과 중국에 내보일 계획이었다.

세계 제2의 패권국가인 중국이나 한창 성장하고 있는 한국은 예전처럼 말로만 해선 듣지 않을 것이기에, 하와이에 있는 태평양 함대를 북상시켜 오키나와 인근으로 배치할 생각이었다

한데 조금 전 일본 총리의 전쟁선포로 말미암아 존 슈왈츠 대통령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만약 미국이 슈왈츠 대통령의 계획대로 태평양 함대를 오키나와로 파견한다면, 이는 미국이 일본의 편을 들어준다는 의미를 넘어 한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겠다는 의사 표현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정말로 한국이 미국까지 전쟁에 참전하여 공격한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사용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었다.

어차피 죽을 것, 다 같이 죽자며 핵무기를 사용할지도 몰랐다.

물론 한국이 보유한 핵무기의 양을 살펴보면 자신들과 중국, 일본, 3국을 모두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막말로 미국과 중국에만 사용해도 다 같이 망하는 것이다.

공격을 받은 자신들이나 중국이 절대로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기에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이 발사한 ICBM(대륙간탄도탄)에 의해 땅 자체가 지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 여파로 일본은 물론이고, 지구의 북반구 전체가 방사능과 낙진으로 불모의 땅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는 펜타곤의 슈퍼컴퓨터가 워게임을 통해 알려온 결과였다.

그런 지구 최후의 날을 막기 위해 각 부서 간 의견을 조율하고 발표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일본이 그런 자신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프레지던트! 기왕 일이 이렇게 된 것,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동북아시아의 전쟁에서 핵무기 사용을 금지한다고 표명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런다고 저들이 우리의 말을 듣겠나?”

“그건 그렇지만, 이대로 있을 수만도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미국만의 말이라면 듣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국제사회 전체가 핵무기 사용을 금지하고 만약 핵무기를 사용하는 국가가 있다면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그 나라를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고 위협을 한다면 듣지 않겠습니까?”

아서 헤밀턴 NSA 국장은 단호한 의지로 주장을 하였다.

어차피 지금은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미 지지율은 급속히 떨어지고 있는 상태이기에,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명예 퇴임한 닉슨처럼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불명예 퇴진을 하는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

이미 레임덕 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와 비슷한 움직임이 미 전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니 존 슈왈츠 행정부는 도박에 가까운 수라도 진행을 해야만 했다.

“알았어. 그럼 기자회견을 준비하도록.”

존 슈왈츠 대통령도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위기감을 느낀 존 슈왈츠 대통령은 아서 헤밀턴 NSA 국장의 말처럼 강압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동북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불똥이 미국으로 튀지 않게 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하였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준비를 하는 존 슈왈츠나 그를 보좌하는 이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 ◈ ◈

결혼식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수한과 루나는 신혼여행을 떠났다.

비록 나라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일생일대에 단 한 번뿐인 큰 행사를 끝내고 그 마무리인 신혼여행을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물론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수한은 절대로 전쟁 중인 조국을 뒤로하고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원래는 신혼여행을 가지 않으려고 했다.

조국이 전쟁 중인데 자신들만 행복하게 신혼여행을 가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며 루나와도 합의를 보았다.

전쟁이 끝나고 조용해지면 그때 다시 둘만의 여행을 가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주변 어른들의 조언에 따라 그냥 신혼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여자에게 있어 일생일대의 단 한 번, 최고의 순간을 망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수한이 전장에 나가는 군인도 아니고 민간인에 불과한데, 굳이 전쟁 때문에 신혼여행을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어른들의 말씀이셨다.

어른들의 말씀을 듣고 보니 나름 이해가 갔다.

자신이 그동안 준비한 것을 잘 활용하기만 해도 중국군을 막아내는 것쯤은 별문제가 없었다.

막말로 미국과 전쟁을 벌인다 하여도 막아내는 것만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만큼 준비를 해두었다.

수한은 어른들의 말씀도 있고, 자신의 준비도 부족하지 않다고 판단해 신혼여행을 가기로 결정을 하였다.

그런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너무도 기뻐하는 루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도 내심 많이 실망을 했던 것 같았다.

자신의 결정에 수긍을 하며 따라줬던 그녀가 다시 신혼여행을 가기로 했다는 말에 그렇게 기뻐할 줄은 수한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만약 신혼여행을 뒤로 미뤘다면 그녀가 얼마나 실망을 했을지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루나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고 신뢰하는지 깨닫게 된 수한은 그녀가 더욱 사랑스러웠다.

이미 조국을 위해 자신은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제공했다.

타국의 침범에 위협 받지 않도록, 또 의붓 할아버지인 혜원의 소망이라 국가에 보탬이 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품에 들어온 루나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신혼 여행지는 남태평양에 있는 피지로 정하였다.

한국은 늦가을로 접어들고 있지만, 남태평양은 봄에서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시기라서 여행을 하기에는 무척이나 좋았다.

더욱이 피지는 빗물을 받아서 그대로 먹을 정도로 자연환경이 깨끗한 지역이기도 해서 볼거리가 많았다.

오랫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이나, 또 연예인으로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 온 루나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장소를 찾다가 남태평양의 천국인 피지를 선택한 것이었다.

현재 피지로 가기 위해 두 사람이 탄 비행기는 천하항공에서 민수용으로 제작된 소형 제트기로, 최대 탑승 인원은 48명이고, 현재 이 비행기는 정원이 꽉 찬 상태였다.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할아버지가 내준 천하 그룹의 업무용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인데도 탑승객이 다 찬 이유는 수한의 신혼여행에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비행기 안쪽에서 새 신부인 루나와 함께 떠들고 있는 파이브 돌스 멤버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이들을 경호할 라이프 메디텍 보안대와 파이브 돌스의 경호인 천하가드의 경호원들까지 해서 48명의 인원이 모두 탑승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렇게 많은 인원들이 수한과 루나의 신혼여행지인 피지로 동행을 했다.

서로 웃고 떠드는 그때, 곁으로 다가온 김갑돌이 수한에게 귓속말을 하였다.

“박사님, 뉴스를 보셔야겠습니다.”

생명의 은인이라 여겨 수한의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김갑돌은 어떻게든 그를 수행하기 위해 말투도 고칠 정도로 열과 성을 다했다.

“무슨 일 있나요?”

“예. 일본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뭐요?”

수한은 이 좋은 날의 기분을 망치는 흉한 소식에 머리가 아파왔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자신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쁜 날에 일본이 전쟁 선언을 한 것이다.

물론 수한에게만 즐거운 날이지, 대한민국이 기쁜 날은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든 중국과의 교전에서 승리하고 교착상태로 접어드는 듯해 곧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일본이 선전포고를 표명하자 많은 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지금 신혼여행을 떠나는 비행기 안의 승객들 모두 그와 다를 바 없는 기분이었다.

[방금 전, 오후 8시에 일본의 아키야마 구로다 총리가 총리 관저 앞에서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구로다 총리는 일본의 영토인 독도를 대한민국이 불법 점유하고 있다며, 이를 되찾기 위해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하였습니다. 이미 4년 전, UN 산하 국제 중재 위원회에서 독도는 대한민국의 고유 영토라고 판결을 내린 바가 있습니다. 100여 년 전, 일본 국토부가 편찬한 지도에 엄연히 조선(대한제국)의 땅이라고 명시된 내용이 드러나면서 그 문제는 일단락되었는데,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연 억지를 부리면서까지 선전포고를 하는 일본의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꺄악!]

일본 현지에서 뉴스를 전하던 여기자는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방송 카메라를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일본인 일부가 그녀의 방송 진행에 불만을 품고 물건을 집어 던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물건에 맞아 다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위험한 상황이기는 하였다.

아무리 불만이 있다 해도 방송 진행 중 폭력을 행사하는 일본인의 모습에 수한은 분노를 터트렸다.

아무리 선전포고가 이뤄졌다지만 민간인에 대한 공격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더욱 수한을 화나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일본 경찰들이 폭력이 벌어지는 장내를 통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른 외국인이나 취재진들에 대해서는 피해가 가지 않게 보호를 하면서도, 유독 한국 국적의 취재진이나 사람들에 대해선 방치하거나 보호를 하는 시늉만 취했다.

그러한 모습에 수한은 너무도 화가 나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지금 태평양 상공에 있지만 않았어도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었을 텐데.

수한은 뉴스 속보를 지켜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무언가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비행기 조종석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웬만해선 조종사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나서지 않으려 하였지만, 외부로 지시할 일이 있어 찾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종석에 외부로의 통화가 가능한 무전기가 있기 때문이다.

“수고하십니다. 잠시 무전기를 써도 되겠습니까?”

비록 오너의 손자이기는 하지만, 수한은 예의를 갖춰 조종사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런 수한의 요청에 조종사 중 한 명이 얼른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리로 앉으십시오.”

수한이 자신에 비해 나이가 적다고는 하지만, 고용주의 손자인 동시에 그 본인이 대단한 회사의 주인이기도 했다.

천재 과학자로 유명한 것은 별도로 치더라도.

그렇기에 부조종사는 크게 개의치 않고 수한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수한은 감사 인사를 한 후에 무전기를 켜고 지킴이 PMC 사장실로 연결을 하였다.

위성을 통해 지킴이 PMC 본사로 통신을 연결한 수한은 문익병 사장과 대화를 나눴다.

그러고는 신혼여행을 떠나오기 전에 준비해 둔 것을 실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사실 수한은 중국과 일본이 오래전부터 손을 잡고 한반도 침략을 도모하려 한다는 첩보를 듣고 그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

물론 대한민국 국군도 중국과 일본을 막을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이 있었다.

그렇지만 두 나라의 공격을 아무런 피해 없이 막아낼 수는 없는 노릇.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해도 중국과 일본의 군사력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수한은 대한민국 국군과는 별도로 지킴이 PMC의 일부를 준비시켜 두었다.

만약 일본이 한국과 중국의 전쟁에 끼어든다면, 군이 나서기 전에 지킴이 PMC를 일본에 침투시켜 시간을 번다는 계획이었다.

지킴이 PMC의 능력은 몇몇 특수부대를 제외하면 최고 수준의 기량을 갖추고 있었다.

그 몇몇 특수부대라는 곳 역시 그저 명칭만 특수부대인 곳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바로 대한민국에서 세계적인 위상을 떨치는 특수부대와 지킴이 PMC의 모태라 할 수 있는 라이프 메디텍 보안대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라이프 메디텍 보안대야 지킴이 PMC의 모태가 된 곳이니 두말할 필요가 없고, 다른 한 곳은 대한민국 대통령 직속 특수부대인 SA였다.

SA는 이제는 정원을 80명까지 늘려 특수부대로서 체계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전투원 40명과 지원 40명, 그렇게 80명의 정원을 채운 SA는 전 세계에서 라이프 메디텍 보안대를 제외하면 가장 우수한 부대였다.

지킴이 PMC라 해도 같은 숫자로 대결을 벌이면 쉽게 상대할 수 없을 정도의 정예들만 모여 있는 것이다.

다만, 지킴이 PMC는 개인의 능력도 탁월하지만, 일단 숫자에서 여느 특수부대보다 훨씬 많았다.

그러니 전체 병력을 동원한 SA와 지킴이 PMC가 모의 전투를 벌인다면 당연히 지킴이 PMC가 우세할 것이다.

그것은 라이프 메디텍 보안대라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무조건 지킴이 PMC를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다만, 라이프 메디텍 보안대는 수한이 개발한 것들 중 최고의 제품으로 무장을 하고 있기에 만약 넓은 지역에서 제한 없이 게릴라전을 치른다면 아무리 특수전에 뛰어난 지킴이 PMC라도 라이프 메디텍 보안대를 잡을 수는 없었다.

즉, 소수 최정예와 다수 차상위의 전투가 되는 것이다.

전투 범위를 좁히고 제약을 가하면 지킴이 PMC가 유리하고, 그렇지 않고 제약을 없애면 라이프 메디텍 보안대가 무조건 유리했다.

아무튼 지킴이 PMC 직원 1만 명이 아무도 생각지 못한 곳에서 지금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이미 그들은 중동에서 최악의 적을 상대로 실전을 치르며 임무를 완벽하게 해냈다.

대한민국 정부의 의뢰로 중동에 파견되어 개성시 테러의 원흉인 IS 지도부를 섬멸하기 위한 임무에 투입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IS의 병력을 차근차근 줄여가며 눈에 띄는 IS 지도부를 모두 사살하였다.

충격과 공포, 그리고 토끼몰이를 통한 작전으로 IS는 철저하게 무너져 내렸다.

이제 중동에 남은 IS의 세력은 지킴이 PMC가 나서지 않아도 더 이상 세력을 뻗치지 못할 정도로 몰락했다.

이미 상당수의 간부들이 사살되고 조직원들이 죽거나 동맹국에 포로로 잡혀갔기에 그들이 명맥을 잇기는 힘들었다.

그런 이유로 지금 지킴이 PMC는 잠시 작전을 중단하고 정비를 마친 후, 대기를 하고 있었다.

한국이 중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지금, 조국을 위해 언제 전장에 투입될지 모르기에 심신을 고르는 중이었다.

수한은 그런 지킴이 PMC를 지금 일본에 투입시키도록 문익병 사장에게 지시하였다.

TV로 본 일본의 행태는 더 이상 용서를 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섰다.

자신이 아기일 때 가족들과 떨어져 오랜 기간 이산가족으로 살 수밖에 없던 원인이 바로 일본이란 것을 잘 알고 있는 수한이었다.

수한에게 일본이란 나라는 전생에 자신이 말년을 의탁하던 로메로 왕국을 침략한 샤만 제국보다, 그리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왕국을 배신한 근위기사들보다 더 증오하는 존재였다.

아니, 가족이라는 의미를 깨닫게 해준 현생의 가족들과 강제로 떨어지게 만들어 고통을 준 원인이 일본 막후의 지배자라는 진상을 알게 된 뒤로 일본은 수한에게 원수나 다름이 없었다.

문익병 사장에게 지킴이 PMC의 투입을 지시한 수한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빛났다.

◈ ◈ ◈

미국 백악관.

찰칵! 찰칵!

단상이 놓인 앞마당에는 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마이크를 들이밀며 취재에 한창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쩐 일인지 그런 소란을 통제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여느 때와 다른 백악관의 분위기를 느낀 기자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 알아서 곧 조용해졌다.

장내가 어느 정도 진정되는 것 같아 보이자 백악관 대변인이 나서서 존 슈왈츠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를 알렸다.

“곧 존 슈왈츠 대통령님께서 나오십니다. 장내에 계신 기자분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님을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대변인이 자리를 비키자 조금 뒤, 백악관 안에서 존 슈왈츠 대통령이 단상 앞으로 나왔다.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미소로 여유와 위엄을 풍기던 존 슈왈츠 대통령이지만, 오늘은 그와 달랐다.

무척이나 수척하고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것이다.

뭔가 심적 고충이 심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안색이 좋지 못했다.

사실 일부러 그렇게 보이기 위해 조금 더 꾸미기는 했지만, 슈왈츠 대통령은 요 며칠 닥친 문제로 고심을 하느라 실제로 많이 야위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존 슈왈츠 대통령은 애써 침착한 듯 표정을 유지하며 평소처럼 기자들을 보며 간단하게 인사를 건넸다.

“예. 안녕하셨습니까, 미스터 프레지던트.”

평소처럼 인사를 건네는 슈왈츠 대통령의 모습에 기자들도 한결 마음을 놓고 편하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슈왈츠 대통령은 다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담화문을 읽어 내려갔다.

“언제나 좋은 일만 있었으면 참으로 좋겠지만, 오늘은 아주 심각한 문제로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슈왈츠 대통령은 잠시 말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무언가 마음의 고뇌가 느껴지는 존 슈왈츠 대통령의 모습에 기자들도 덩달아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꿀꺽!

너무도 긴장이 되었는지 누군가의 마른침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

기자들은 오로지 담화문을 발표하는 대통령에게만 시선을 집중하였다.

“현재 인류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 위기라는 것은…….”

존 슈왈츠 대통령은 심각한 표정으로 인류의 위기를 언급하며 조목조목 설명해 나갔다.

“현재 전 세계 곳곳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로 갈등이 발생하고, 이해관계의 해당 단체나 국가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국가가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

인류 파멸에 대해 강하게 어필하는 존 슈왈츠 대통령의 말에 기자들은 바짝 긴장했다.

사실 대통령이 말하는 나라가 어디인지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몇몇 나라가 머릿속에 떠오르며 기자들은 존 슈왈츠 대통령의 이어질 이야기에 주목했다.

과연 기자들의 예상대로 존 슈왈츠 대통령은 거침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현재 동북아시아의 중국과 한국이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일본 정부 또한 참전의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야말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로 상생을 해야 할 나라들끼리 그런다는 것이…….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중국과 한국, 두 나라는 핵무기 보유국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핵무기라는 것은 결코 사용되어선 안 될 인류 최악의 발명품입니다. 물론 인류 발전에 없어서는 안 될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훌륭한 자원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만, 그것이 악용되면 인류에게 어떤 일이 닥치게 될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존 슈왈츠 대통령은 연신 마른 입술을 적시며 자신이 얼마나 긴장을 하고 있는지를 무의식중에 드러냈다.

물론 그 스스로는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잠시 마음을 다잡은 존 슈왈츠 대통령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중국은 두말할 것 없고, 한국 역시 2025년 통일 과정에서 북한이 보유했던 핵무기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단 한국 정부가 개발한 것이 아니란 점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보유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였습니다.”

발표를 이어 나가면서도 존 슈왈츠 대통령은 긴장을 풀기 위해 잠시 말을 멈춘다거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는 등 여러 가지 모습을 보였다.

“잠시 이것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펜타곤에서는 핵무기를 보유한 한국과 중국이 전쟁을 벌이면 어떤 결과가 도출될 것인지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돌려 실험을 하였습니다.”

존 슈왈츠 대통령은 옆에 설치되어 있던 빔 프로젝트로 기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잠시 후, 빔 프로젝트를 통해 드러나는 내용에 기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국과 중국,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인 결과가 너무도 충격적이기 때문이었다.

기자들이 충격에 휩싸이는 모습을 지켜본 존 슈왈츠 대통령은 이제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다.’

결정적인 때를 기다리던 존 슈왈츠 대통령은 기자들이 경악하고 있을 때, NSC(국가안보회의)에서 결론 내린 사항을 공개했다.

“여러분 모두 지금 보셨겠지만, 만일 핵무기가 사용된다면 인류의 삶의 터전은 적도 밑 남반구로 한정되어 좁아질 것입니다. 그에 저는 중국과 한국, 두 나라 정상에게 고합니다. 이해가 맞지 않아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절대로 인류를 파멸로 이끌 핵무기만은 사용하지 말아주길 간절히 요구합니다. 만약 제 말을 듣지 않고 경거망동하는 나라가 있다면 우리 미국은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핵무기를 사용할 기미만 포착돼도 미국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 나라를 그냥 두지 않을 것입니다.”

콰쾅!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기자들의 귓가에는 그런 효과음이 들리는 듯했다.

그만큼 존 슈왈츠 대통령의 카리스마 넘치는 강력한 주장이 기자들의 뇌리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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