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코리아-107화 (107/118)

7. 결혼식

미국 워싱턴, 백악관.

중국과 한국의 교전을 지켜본 존 슈왈츠 대통령과 미국 국가 안보 위원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에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동맹인 대한민국의 군대가 최근 엄청나게 발전했다는 것은 그들 또한 첩보를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중국을 상대로 저렇게 압도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줄은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물론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개발한 것이나, 지킴이 PMC들이 착용한 파워 슈트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방금 전, 위성 화면으로 본 전투 결과는 그런 예상을 한참이나 뛰어넘은 결과였다.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와 업그레이드 된 미사일 전력이 있어서 중군 지상군의 침공을 막아낸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공중전의 결과는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비록 중국이 최신예 전투기인 젠―20이나 젠―31 스텔스 전투기를 출격시킨 것이 아니라지만, 그래도 양국 모두 비슷한 성능을 가진 상태였다.

한데 이토록 일방적인 결과가 도출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무슨 어린아이와 어른 간의 싸움도 아니고, 그야말로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결과라 할 수 있었다.

사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각종 무기들을 들여와 그에 대해 철저히 연구했다.

이는 불법 복제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기술들이 들어갔으며, 그렇게 생산된 무기들이 미국에 위협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물론 자국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습득하기도 하고, 또 그에 대한 대비를 위해 해결책을 찾기도 했다.

당연히 중국산 무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이 연구하는 무기 중에는 중국 전투기들이 사용하는 공대공 미사일도 있었다.

그 대부분은 러시아제 공대공 미사일을 카피한 것이거나 프랑스제 미사일 기술을 접목시켜 개발한 것들이었다.

물론 성능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정도이지, 위협이 될 만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조금 전의 전투 결과를 보면 미국이 개발한 공대공 미사일도 한국군에게는 무용지물이란 결론이 나왔다.

사실 미국과 중국의 공대공 미사일 성능 차이는 그리 많이 나지 않았다.

약간, 정말 아주 약간의 우위를 미국이 가지고 있는 것뿐이다.

그런데 중국의 공대공 미사일은 한국군 전투기를 전혀 맞추지 못했다.

한국군이 사용 중인 전투기들은 모두 미국이 개발한 것들이다.

F―15K나 KF―16, F/A―18E/F 전투기들의 전자전 능력을 잘 알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목격한 셈이었다.

해당 전투기들이 저 정도의 성능을 보일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존 슈왈츠 대통령이나 NSC 위원들은 방금 전 교전의 결과를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보았나? 난 우리가 한국을 너무도 모르고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존 슈왈츠 대통령은 한참을 침묵을 하다 어렵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입을 여는 NSC 위원은 아무도 없었다.

“말론 국장, 저것에 관해 들어온 정보가 있나?”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자 존 슈왈츠 대통령은 말론 CIA 국장을 지목하며 물었다.

세계 각지의 정보를 취합하는 그라면 혹시나 뭔가 알고 있는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말론 국장은 잠시 생각을 하다 대답을 하였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얼마 전 동북아시아 지부에서 올라온 정보 중 이와 관련된 것이 있던 것 같습니다.”

“그게 뭔가?”

“예. 확실하지는 않지만, 한국이 전투기에 새로운 장치를 달았다고 합니다.”

“새로운 장치? 그게 뭔가?”

존 슈왈츠 대통령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재차 물었다.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그를 실망시켰다.

“그건 저희도 확인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확인을 하지 못하다니?”

“5년 전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벌인 협상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희는 더 이상 한국이 무기를 구입하고 업그레이드하는 것에 대한 제제를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말론 국장은 정보를 얻지 못한 것이 결코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역설했다.

예전 한국이 무기 구매를 할 때면 미국은 여러 가지 제약 사항을 계약서에 명시했다.

한국이 무기들을 분해해 기술 습득을 할 것을 저어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은 무기를 업그레이드를 하려면 미국의 허락을 구해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업그레이드를 해도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떤 업그레이드를 했으며 그것이 어떤 성능을 보였는지를 세세하게 미국에 알려야만 했다.

한마디로 업그레이드한 기술을 미국에 제공해야만 했다.

그 결과, 미국으로서는 개발비 한 푼 들이지 않고 기존 제품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술을 획득할 수 있었다.

5년 전, 미국은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한국에 함상 전투기인 F/A―18E/F 슈퍼 호넷 전투기와 전쟁 예비 물자로 보관 중인 항공모함 CV―63 키티호크를 판매하였다.

그런데 이때, 한국 정부는 구매 협상을 하면서 개조에 관한 협상도 하였다.

당시 미국은 F/A―18E/F 슈퍼 호넷과 CV―63 키티호크 항공모함에 대한 개조만 염두에 두고 협상을 체결하였다.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라는 엄청난 물건을 구입한다는 생각에 계약 당시 문구를 정확하게 살피지 못한 것이다.

그로 인해 차후 한국은 미국에서 들여오는 모든 장비에 대한 개조 및 업그레이드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이고, 이를 굳이 미국에 알리지 않아도 되었다.

이는 당시 국무장관인 리노 레이놀즈 장관이 코너에 몰리면서 급하게 협상을 체결하면서 벌어진 실수였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미국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한국이 가진 기술력으로는 업그레이드를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여긴 것이다.

한데 지금 와서 결과를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음…….”

“아무래도 한국이 전투기에 장착했다는 게 플라즈마 배리어를 생성하는 장치가 아닌가 사료됩니다.”

말론 국장의 말이 끝나자 실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경악했다.

현재 플라즈마 배리어는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기술이었다.

사실 미국은 F―22 랩터를 개발함으로써 그동안 러시아와의 전투기 개발 경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해군력이나 지상군 또한 압도하면서 단일 국가로서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국가는 사실상 사라진 셈이었다.

그래서 러시아는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스텔스 전투기 개발에 뛰어들었다.

물론 형상 스텔스 기술의 정점에 서 있는 미국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기에 러시아는 과학자들을 동원해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을 개발하려 했다.

반사 면적을 줄임으로써 레이더를 피하는 형상 스텔스 기술과 다르게 플라즈마 스텔스라는 것은 러시아가 미국과 우주 개발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현상을 스텔스 기술에 응용을 하려고 나온 용어였다.

우주선이 대기권에 돌입하는 과정에서 높은 마찰열로 인해 지상의 관제센터와 잠시 통신이 되지 않는 구간이 있는데, 그 이유는 우주선 주변에서 발생하는 마찰열이 통신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그 현상을 유심히 관찰하여 스텔스 전투기 개발에 응용하며 많은 예산을 투입하였다.

하지만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지만, 계획과는 다르게 플라즈마 스텔스 장치를 가동하면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전투기가 그 정도 에너지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플라즈마 스텔스 기술은 반쪽짜리 기술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조금 전 한국군 전투기들을 향해 날아가는 미사일이나 중국군 전투기 조종사들의 반응을 보면 어느 정도 그 원인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

플라즈마 스텔스 장치나 그와 비슷한 것을 개발한 것이 분명한 것이다.

존 슈왈츠 대통령과 NSC 위원들은 한국이 개발한 장치가 무척이나 욕심났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어떻게 해도 미국이 저 기술을 가져올 수는 없었다.

일본이 약속한 것을 믿고 힘을 실어준다고 해도 어쩐지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지금까지 한국이 보여준 결과만 봐도 명백했다.

중국을 상대하는 일이 한국으로서는 할 만해 보였기 때문이다.

일본이 중국의 편에 서서 참전을 한다고 해도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었다.

한국이 또 어떤 것을 숨기고 있을지 모르는 탓이었다.

그야말로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안개 속 같은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미국으로서도 동북아 삼국의 전쟁에 끼어들기가 애매했다.

만약 한국이 또 다른 비장의 수를 숨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중국과 일본은 이번 전쟁으로 인해 큰 손해를 볼 것이 분명했다.

“국장.”

존 슈왈츠 대통령은 한참 고민을 하다 말론 국장을 불렀다.

“예, 프레지던트.”

“국장이 보기에는 이번 전쟁이 어떻게 흘러가리라 생각하시오?”

존 슈왈츠 대통령으로서는 한계에 봉착한 기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전쟁의 양상이 예전 자신들이 상정한 것과는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개전 초기에 한국군이 어느 정도 선전할 것이란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만큼 한국이 보유한 군사력이나 장비는 결코 녹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량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한국이 중국을 감당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한국에게는 남은 악재가 더 있었다.

무한정 밀어붙이는 중국뿐 아니라 일본 역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중이었다.

한국이 그런 사실을 파악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 되었든 지금껏 파악한 정보로는 한국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다르게 한국이 중국을 상대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전쟁 당사국인 중국이나 한국 정부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존 슈왈츠 대통령은 너무도 많은 변수 때문에 쉽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일본을 편들며 이득을 볼 것인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한국을 편들 것인지.

도대체가 결정을 내리기 힘들었다.

그래서 보다 많은 판단 근거를 얻기 위해 말론 국장에게 물어본 것이다.

미국에는 많은 정보 부서들이 있다.

하지만 대외 첩보에 관해서 CIA를 능가할 정보 부서는 아직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니 지금 존 슈왈츠 대통령이 한국에 대하여 자문을 구할 사람은 CIA 국장인 말론 국장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 ◈ ◈

장내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지만, 다들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전 본 영상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너무도 충격적이라 입 밖으로 낸다면 미쳐 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최고라 믿었던 것들이 부정당했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키워낸 전력이 한 시간도 되지 않아 허무하게 산화되었다.

비록 최신예 전투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명색이 주력 전투기들이었다.

사실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는 너무도 엄청난 생산 비용에 비해 성능이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스텔스 기능만 빼고 보면 다른 여느 전투기들에 비해 별반 뛰어난 점이 없는 것이다.

물론 그런 기술 하나로 전투기 간의 승패가 갈리기도 하지만, 절대적인 척도는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동급 내지는 자신들이 개발한 전투기가 더 우수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대륙 귀퉁이에 붙어 있는 소국(小國)이라 생각했다.

자신들이 작은 기침만 내도 움찔하던 나라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세를 올리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3년 전, 잠깐 방심을 하여 한 방 먹기는 했지만, 언제라도 충분히 제압이 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오히려 그때보다 더 일방적으로 당했다.

3년 전에는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라는, 그저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장비를 실현시키면서 인민해방군의 지상군을 격퇴시켰다.

당시 한국군이 운용한 전차들은 모두 최신예 전차로,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던 4세대 전차였다.

그에 반해 인민해방군의 전차는 3세대 전차에 속했다.

솔직히 종합 능력에서도 다른 나라의 3세대 전차들에 비해 많이 밀리는 전차였다.

사정이 그러다 보니 나름 결과에 수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아니, 객관적인 전력 분석을 통해 결과를 산출하는 워 게임에서도 자신들이 승리를 한다고 나왔다.

육상 전력뿐만 아니라 공중 전력까지 동원되었기에 미국이라 해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다.

당연히 압도적인 전력으로 한국군을 괴멸시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결과는 오히려 그 반대로 나타났다.

지상군은 물론이고, 공중 전력까지 한국군에 일방적으로 밀렸다.

200기가 넘는 전투기들이 출격하여 겨우 30여 기만이 돌아왔다.

아니, 도망쳐 왔다고 해야 옳으리라.

전투 중 한국의 전투기들은 미사일을 피하려 하지도 않았다.

미사일들이 알아서 피해갔다.

아무리 자국 무기들이 신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지만, 저렇게 모든 미사일이 불량이 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전투기에는 뭔가 자신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다는 소리였다.

주진평이나 다른 상무위원은 물론이고, 이 자리에 있는 인민해방군 장성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한국 전투기들에는 자신들이 모르는 비밀이 분명 있을 것이고, 그것이 자국 전투기가 발사한 미사일들을 교란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들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던 이유는 한국군이 보유한 전투기들의 제원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한국군이 보유한 장비들에 대한 제원 대부분을 알고 있는 중국 지도부였다.

그렇기에 조금 전 벌어진 교전 결과를 인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음이야 어떻든 눈앞에 펼쳐진 결과는 현실이었다.

일방적인 학살.

너무도 충격적인 결과에 장내의 사람들은 오직 침묵으로만 일관했다.

조금 전 자신이 본 영상을 조용히 되새김하던 주진평은 고개를 돌려 리정안 국안부장을 보며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정말 한국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던 것이 맞나?”

주진평은 한국의 전력이 자신들이 파악한 것과 너무도 다른 것에 화도 내지 않으며 담담하게 물었다.

리정안 국안부장의 표정은 마치 백지가 무색할 정도로 창백해졌다.

총서기인 주진평이 가장 화가 났을 때 보이는 억양.

겉으로 보기엔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지만, 리정안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리정안은 총서기 주진평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를.

폭풍전야라고 했던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주진평은 오히려 화가 나지 않은 사람처럼 너무도 담담해 보였다.

하지만 이후의 파장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어마어마할 것이다.

권력의 정점에 선 주진평은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결코 평탄한 길을 걸어오지 않았다.

많은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그 과정에 주진평 본인을 노리는 위협도 있었지만, 가족이나 친인을 대상으로 벌이는 테러나 공작도 많았다.

자신보다 새끼가 공격당했을 때 더욱 사나워지는 것이 짐승이 가진 본성이다.

그렇기에 사냥꾼에게는 불문율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새끼를 가진 짐승은 사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미를 잃으면 새끼가 생존할 수 없다는 것도 한 이유지만, 무엇보다 새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미는 무척이나 흉포해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평범한 초식동물도 그럴진대, 육식동물은 어떠하겠으며, 또 중화인민공화국 최고 권력자인 주진평은 어떠하겠는가.

사실 주진평의 분노를 산 자들의 말로를 리정안은 너무도 잘 알았다.

자신이 바로 주진평의 분노를 처리하곤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리정안이 처리한 사람 중에는 주진평 못지않은 권력자도 있었고, MSS의 특수부대인 흑검에 준하는 무력을 가진 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주진평의 분노를 비껴가지 못하고 모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사망신고도 없이 그냥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외부에 밝혀지면 큰 혼란이 야기될 것이 분명하기에 서류상으로는 남아 있을 뿐, 그 존재가 사라진 이들은 상당하였다.

또 그와 반대로 목숨은 부지했지만 살아온 흔적이 모조리 지워진 이들도 많았다.

어떤 것이 더 낫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주진평이 지금처럼 담담하게 말을 할 때면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리정안이었다.

자연 대답도 최대한 공손하고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정보를 담당하는 국안부장으로서 적국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점 반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비단 저희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한국이 너무도 정보를 철저하게 숨기고 있었기에 파악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도 한국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리정안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변명을 하였다.

“그게 무슨 소린가?”

하지만 주진평은 리정안의 변명에 더욱 차가워진 표정으로 물었다.

리정안은 자신을 구명할 기회가 찾아왔다 판단을 하며 미국에서 빼돌린 정보를 주진평에게 들려주었다.

“예. 이는 결코 제가 변명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번 전투가 있기 전에 저희 MSS에서는 한국의 동맹인 미국을 살폈습니다. 흑화가 미국 펜타곤의 슈퍼컴퓨터에 침투하여 한국의 전력을 알아내기 위한 작업이었는데, 그 와중에 우리 중화인민공화국과 한국과의 전쟁을 시뮬레이션한 내용을 발견해 빼냈습니다.”

“그래?”

주진평은 흑화가 미국 국방부를 해킹했다는 말에 관심을 보였다.

리정안은 자신의 말에 관심을 보이는 주진평의 모습에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총서기인 주진평의 관심이 자신의 생명줄을 보장해 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100% 보장인 것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조금 전의 위급한 상황에서는 벗어났다고 느낄 수 있었다.

“예. 잠시 이것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흑화가 펜타곤에 침투해 빼낸 저희와 한국의 워 게임 결과입니다.”

리정안은 얼른 노트북을 조작하여 전면에 있는 화면에 자료를 띄웠다.

곧 화면 위로 무수한 글자와 숫자들이 빠르게 나열되더니 각종 그래프가 움직였다.

아시아 지도가 나타나고 중국과 한국이 보였다.

중국은 빨간색으로, 그리고 한국을 파란색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워 게임이 시작되자 붉은색과 파란색은 잠시 국경선에서 오르락내리락하더니, 점점 붉은색이 한반도를 물들여 갔다.

화면을 보던 많은 사람들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주진평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점점 붉게 물들던 지도가 한순간 검게 물들어 버렸다.

그리고 화면에 나온 단어는 무승부라는 붉은 글씨였다.

“저게 어떻게 된 것이지?”

주진평은 뜻밖의 결과에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리정안은 지금이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임을 깨닫고 열성을 다해 분석 내용을 설명했다.

“워 게임에서 저런 결과가 나온 것은 재래식 전력에서는 우리 중국이 이기지만, 최후의 순간에 한국이 핵무기를 사용하여 공멸하는 결과가 나온 것이라 판단됩니다.”

“핵무기?”

누군가 자신도 모르게 핵무기란 단어를 중얼거렸는데, 워낙 조용하던 상황인지라 그의 목소리가 회의실 안을 울렸다.

“우리는 한국이 핵무기 보유국임을 잊어선 안 됩니다. 그들이 핵무기를 보유한 사실을 가장 먼저 인정한 나라가 바로 저희이니까요.”

리정안은 마치 한국이 핵보유국임을 선언이라도 하듯 단호한 억양으로 대답하였다.

주진평도 그제야 조금 전 워 게임의 결과가 무엇 때문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한국이 불리해지자 핵무기를 사용했으며, 중국 또한 보복성 핵무기를 발사했으리라.

그리고 그 결과가 모두 멸망하여 무승부가 되었다는 것이다.

너무도 허무한 결말에 중국의 권력자들이 충격에 빠져 있을 때, 화면 위로는 계속해서 워 게임의 결과들이 도출됐다.

어떤 때는 한국이 중국을 위협하며 세력을 확대하다가도 결국에는 중국에 밀려 핵무기를 발사하고 공멸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왔다.

상황은 여러 가지 변화가 있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어떻게 흘러가더라도 최후에는 핵무기로 인한 공멸만이 존재했다.

너무도 허무한 결론에 주진평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본 자료대로라면 자신들이 상정한 예상대로 전쟁이 흘러가더라도 결국 공멸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당했다.

물론 다시 전력을 동원해 명예회복을 꾀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정해진 결론에서 벗어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그러한 사실은 중국 지도부에게는 무척이나 심각하게 다가왔다.

한국에 대해 너무도 모르고 있었다는 후회와 함께 무엇을 더 감추고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들었다.

◈ ◈ ◈

10월 1일, 대한민국은 큰 충격에 빠졌다.

지금까지 정부에서 대한민국도 테러 위험 국가라 떠들기는 하였지만, 국민 대부분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구 어디를 돌아다녀 봐도 대한민국만큼 치안이 잘 잡힌 나라가 없었다.

물론 9.11 테러를 저지른 알카에다나 2010년여부터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IS의 테러 사례가 언급되면서 잠시 불안에 떨기는 하였지만, 그때뿐이었다.

정작 한국 국내에서 테러의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은 탓이었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은 테러에 대한 불감증에 걸린 것마냥 그저 남의 나라 일처럼 생각하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부가 대대적으로 홍보를 한 행사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IS가 자신들의 소행임을 밝히면서 한국인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대한민국도 더 이상 테러에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3년 전, 중국과의 교전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어차피 북한 지역에서 일어난 국지전이라 현실적으로 와 닿지가 않았다.

한데 IS의 테러에 이어 중국이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표명했다.

사람들은 모이면 언제나 테러나 중국의 선전포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한민국은 3년 전에 극적인 통일을 이루었다.

물론 통일을 하는 과정이 순탄하고 평화롭지는 않았다.

북한의 도발로 인해 당시 상황은 전쟁 직전까지 치달았다.

하지만 군의 즉각적인 대응과 정부의 비밀 작전으로 통일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랬기에 국민들은 언제 그런 위협이 있었냐는 듯 평화로운 일상을 유지했다.

통일 이후에도 큰 문제는 없었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진통이 있을 것이라 내다본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는 모두가 빗나갔다.

철저하게 대응 방침을 세워둔 정부의 진두지휘로 별탈 없이 화합이 이루어졌다.

마침내 남북이 온전히 하나가 되는 날이 다가왔다.

그날을 기리기 위해 대대적으로 행사를 진행했는데…….

그 순간,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테러의 충격이 다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번에는 중국이 선전포고를 하였다.

화(禍)는 혼자 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IS의 테러에 이은 중국의 선전포고는 한순간 대한민국을 공황상태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맡은바 일을 충실히 하는 이들이 있었다.

국가 공무원들이 그렇고, 또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그러하였다.

군인들은 중국의 선전포고에 맞서 경계에 더욱 만전을 기했다.

공무원들은 정부의 정책에 발맞춰 불안에 떠는 국민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위기일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한민족의 힘이 발휘된 것이다.

외적의 침입에 의병을 일으켰던 선조들처럼 예비역 장정들은 솔선수범하여 병무청에 재입영 신청을 하였다.

나이가 좀 더 많은 민방위 대원들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나서서 질서를 유지시켰다.

물론 대한민국 국민들 전체가 자발적으로 정부에 협력한 것은 아니었다.

어디나 자신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이기주의자는 있었다.

특히 국가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일부 정치인이나 재벌들은 중국의 선전포고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을 떠났다.

갖가지 핑계를 대며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은 추하기 그지없었다.

아무튼 사회 분위기는 10월 1일의 테러와 연이은 중국의 선전포고로 좋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국민들은 묵묵히 제 할 일을 해 나갔다.

3년 전, 북한의 전쟁 위협 속에서도 대한민국은 난관을 이겨냈다.

또 중국 심양 군구 병력들이 촉발시킨 제1차 한중교전 때도 대한민국 국군은 거뜬히 막아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어떻게든 역경을 이겨낼 것이다.

그런 믿음이 있기에 중국의 선전포고를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이들도 많았다.

수한과 루나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수한이야 그동안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고, 그에 대한 자신감도 충분했기에 사실 걱정을 할 게 없었다.

다목적 미사일이나 탄도미사일, 요격 시스템, 대한민국 육군의 주력 전차인 K―3 백호와 해군의 해모수급 순양함, 그리고 최근에 개발 완료한 공군의 스텔스 전투기인 K―4 유령까지.

그중 K―4 유령은 X―4가 공군에 채택되면서 정식으로 제식 명칭을 받았다.

K―4 유령은 적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스텔스 전투기이면서 또 육안으로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스텔스 전투기가 되었다.

말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이라는 뜻에서 이름을 가져온 것이다.

이렇게 세계 어느 나라의 무기와 비교해도 한 수, 아니, 몇 수 위의 성능을 가지고 있는 군 장비들을 개발하였으니 당연히 수한으로서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더욱이 수한에게는 아직 감추어둔 한 수가 있었다.

그것은 정말로 대한민국이 최후의 순간까지 몰렸을 때를 대비한 것이기에 아직 외부로 선보이지 않고 감춰둔 것일 뿐이다.

수한이 감춘 것은 탄도 미사일 요격 시스템과는 별개의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역할을 할 것이다.

아무튼 자신이 그동안 준비해 온 것이 있으니 수한은 걱정이 없었다.

◈ ◈ ◈

서울 강남.

“자기야, 뭐 하러 여기서 보자고 했어? 내가 자기한테 가면 되는데.”

루나는 자리에 앉으며 귀엽게 앙탈을 부렸다.

오늘은 수한과 함께 결혼 예복을 입어보기로 한 날이었다.

두 사람의 예복은 조미영 여사가 해주기로 했다.

유명 패션 디자이너이기도 한 조미영은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아들이 결혼식 때 입을 예복과 루나의 웨딩드레스를 맞춰주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 두 사람은 조미영이 운영하는 샵으로 가기 위해 만난 참이었다.

“누가 오면 어때. 시간이 많이 남는 사람이 오면 되는 것이지.”

수한은 루나의 말에 별것 아니라는 듯 이야기했다.

무심한 듯하면서도 작은 것까지 배려해 주는 수한의 행동에 루나는 자신이 역시나 사람을 잘 봤다고 생각을 했다.

사실 루나는 결혼을 하게 되면 지금껏 해오던 일을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했다.

루나가 그런 생각을 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재벌가로 시집을 가게 되면 거의 모든 여자 연예인들이 활동을 중단했다.

재벌가에서 보기에 아무리 연예인이 인기가 많다 해도 딴따라라는 인식이 박혀 있는 탓이었다.

즉,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한이나 정명수는 그렇지 않았다.

두 사람은 루나의 연예계 활동에 대하여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그녀의 일을 인정하고, 더욱 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후원까지 해주었다.

그래서 루나는 수한이나 정명수에게 너무도 감사했다.

특히나 정명수는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이 될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루나의 연예계 활동을 적극 지지해 주었다.

물론 루나의 연예계 활동에 대해 마냥 좋은 이야기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연예 활동을 하다 보면 외국으로 나가는 일도 당연히 존재했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은 IS로부터 테러 위협을 계속해서 받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며느리가 외국에 나가 있다면 당연히 테러 조직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수한으로 인해 말끔히 해결되었다.

수한은 루나의 해외 활동 시 라이프 메디텍 보안대를 경호원으로 보낼 것이라 선언함으로써 모두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들과 함께 생활을 한 지도 어언 8년이 되어간다.

그랬기에 이미 수한의 가족들은 라이프 메디텍 보안대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덩달아 루나와 같은 그룹인 수정의 활동도 어물쩍 넘어가게 되었다.

“그나저나 연습하느라 배고프지 않아?”

얼마 뒤, 복귀가 예정되어 있기에 파이브 돌스는 현재 회사에서 마련해 준 연습실에서 불철주야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사실 IS의 테러 위협과 중국 과의 전쟁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는 잠정적으로 중단된 상태였다.

언제 다시 그런 규제가 풀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기에 일단 컴백을 위해 준비를 하는 것이다.

“잉, 나 배고파. 맛있는 것 좀 사줘.”

루나는 수한의 곁으로 다가가 앉더니 어리광을 부렸다.

수한은 평소와 다른 루나의 모습에 잠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루나 또한 부끄러운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본인이 하고도 너무 어색했다.

사실 이 닭살 돋는 행동의 이유는 수빈의 조언 때문이었다.

한때 수한을 두고 경쟁을 하던 사이지만, 지금은 둘도 없는 단짝이 된 수빈.

물론 현재는 수빈도 애인이 있기에 루나는 그녀를 만나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사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한 남자를 두고 경쟁한 사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서로에게 각각의 사랑이 있기에 그런 어색한 관계가 해소할 수 있었다.

아무튼 수빈에게서 조언을 얻은 루나는 용기를 냈다.

비록 자신이 연상이기는 하지만 가끔 어리광도 부리고 해야 수한이 더 좋아할 것이란 수빈의 말을 믿은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실행을 했다.

문제는 수한이 보이는 반응이 좋다는 것인지, 아니면 당황하는 것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왜? 이상해? 이러면 남자들이 좋아한다고 하던데… 힝.”

수한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루나는 다시 한 번 도전하였다.

평범한 말을 하는 듯하다 말끝에 귀엽게 콧소리를 냈다.

한편, 수한은 생각지도 못한 루나의 깜찍한 모습에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법적으로야 루나가 3살 연상이지만, 살아온 삶을 따져 보면 자신이 훨씬 나이가 많았다.

전생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는 수한이기에 사실 처음 루나를 볼 때는 귀여운 손녀를 보는 것만 같았다.

누나를 만나는 자리에 함께 나온 루나의 첫 인상은 그렇게 귀여운 손녀와도 같았다.

그리고 자신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하던 모습이 귀엽게 느껴져 자신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애정으로 발전을 하였다.

처음 시작이야 어떻든 간에 루나는 이제 수한에게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어떤 모습을 보이든 수한에게 루나는 귀여운 연인인 것이다.

그런데 마치 고양이가 교태를 부리듯 은근하게 유혹하는 모습에 수한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잠시 당황하던 것도 잠시, 수한은 공공장소란 것도 잊고 루나를 껴안았다.

“꺅! 읍!”

수한의 느닷없는 행동에 놀란 루나는 얼떨결에 비명을 질렀지만, 곧 수한의 입술이 덮쳐와 금세 조용해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행동은 카페 안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어머!”

“어? 저 사람 루나 아냐?”

“세상에, 루나가 카페에서 남자랑…….”

“특종이다!”

사람들의 갖가지 말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 루나의 귀에는 그 어떤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결혼을 얼마 앞두지 않은 루나가 수한과 키스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수한이 적극적으로 키스를 리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거의 대부분은 자신이 리드하는 편이었다.

그랬기에 지금 진짜 가뭄에 콩 나는 듯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입술을 덮친 수한이 뒤이어 혀를 밀어 넣었다.

이를 두드리는 감미로운 터치에 루나의 입이 절로 벌어지자 수한의 혀가 거침없이 파고들어 왔다.

마치 뱀이 나무를 타고 오르듯 수한과 자신의 혀가 엉키는 느낌에 루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댕! 댕!

루나는 성당의 종소리가 머릿속을 울리는 듯한 기분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마치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듯 몸이 붕 떠오르는 것도 같고, 또 어떻게 보면 폭풍 속에서 한없이 날리는 낙엽이 된 것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정신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수한의 달콤한 키스 세례에 루나도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카페란 사실도 잊었다.

그저 더 깊이 받아들이기 위해 두 손으로 수한의 목을 끌어안았다.

휘힉!

그런 루나의 적극적인 반응에 카페 안은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카페에 있던 사람들은 두 사람의 행동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그저 부럽다는 시선으로 두 사람이 키스를 끝낼 때까지 조용히 지켜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수한과 루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며 입을 뗐다.

그제야 두 사람은 현재 자신들이 있던 장소가 공공장소란 것을 떠올렸다.

“어머!”

루나는 얼른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수한은 얼굴이 붉어지긴 했지만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폈다.

짝짝짝짝!

수한이 카페 안을 둘러보자 여기저기서 웃으며 박수를 보냈다.

수한의 모습에서 뭔가 알 수 없는 박력이 느껴져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었다.

“아무리 결혼할 사이라지만, 너무 질투가 나려고 합니다!”

카페에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수한에게 놀리듯이 소리쳤다.

“맞아요!”

그러자 곧 여기저기서 맞장구치듯 놀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수한은 루나와 자신을 축하해 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보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제가 곧 새신부가 될 여인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여러분께 본의 아니게 피해를 줬군요. 죄송한 마음에 제가 한턱 쏘겠습니다.”

수한은 호기롭게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 한쪽에 설치된 벨을 울렸다.

일명 골든 벨이라 불리는 행위.

카페 안에 있는 손님들에게 대신 계산을 해주겠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수한의 행동을 잠시 말없이 지켜보던 사람들은 다시 한 번 환호성을 질렀다.

“오우! 성격도 화끈하시네!”

“우리 여신님을 뺏어간다고 해서 미워했는데… 흑흑, 두 분 잘 어울리네요.”

카페 안에 있던 남자 손님들 중에 루나의 팬이 있었는지 여신이란 말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하하하!”

루나를 알아본 사람들이 결혼을 축복해 주는 덕담을 건네자 수한은 미소로 화답했다.

카페에서 본의 아니게 루나에게 키스를 한 것이나 넉살 좋게 골든 벨을 울리며 기분을 낸 것 등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한 수한이지만, 결코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결혼을 앞둔 수한과 루나에게는 이 모든 일들이 새로운 경험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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