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2차 한중 전쟁
위성을 통해 중국 인민해방군 항공대의 출격을 확인한 대한민국 공군은 빠르게 반응을 보였다.
그에 대응해 평양 비행장에서 전투기들이 발진시킨 것이다.
통일이 되기 전까지 대한민국 공군의 주 비행장은 성남이었다.
하지만 통일 이후 공군의 작전 반경이 더욱 넓어지면서 성남에 있는 비행장만으로는 원활하게 영공을 지킬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넓어진 영공을 지키기 위해 평양에도 전투 비행단을 주둔시켰다.
그리고 지금, 젠―14와 젠―16으로 편성된 중국 전투기들에 대항하기 위해 F―15K와 F/A―18E/F 전투기들이 평양에서 출동하였다.
전력상으로는 대한민국 공군이 약세였다.
중국은 땅덩어리만 큰 것이 아니라 군대 또한 엄청나게 많은 숫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연하게 공군 전력 또한 엄청난데, 스텔스 전투기인 젠―20과 젠―31이 2018년부터 양산되기 시작하면서 중국 공군은 구형 기종이 된 젠―7, 젠―8, 젠―10 등을 퇴역시키거나 외국으로 팔아버렸다.
이미 중국은 스텔스 전투기까지 개발하며 능력을 인정받은 강국이며, 전투기의 숫자에서도 결코 미국이나 러시아에 못지않은 숫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대한민국 공군은 구형이 되어버린 KF―16이나 F―15K, 그리고 다수의 F/A―18E/F를 보유하고 있다.
단순한 숫자를 비교해 봐도 중국은 1,800여 대의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450대의 전투기만을 보유하고 있었다.
원래는 600여 대 정도의 전투기를 보유할 예정이었지만, 중간에 몇 번의 사업이 엎어지면서 그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던 중 구형 기종을 유지 보수하는 것보단 신형 기종을 구입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이익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공군이 그렇게나 요구했던 스텔스 전투기를 자체 개발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개발이 완료되고 양산을 하려던 차에 전쟁이 발발하자 공군이나 정부 관계자들은 주변국과 균형을 맞추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후회한다고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공군 에이스들은 자신의 한 몸 불살라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전투기 조종간을 잡았다.
수적으로 열세인 대한민국 공군은 최대한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전투를 치르도록 작전을 세웠다.
그래야 지상군의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자체 전력만으로 전투를 벌였다가는 패전을 예약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현대전에서 공중 전력의 부재는 패전으로 가는 지름길이기에 대한민국은 신중하게 작전을 수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 ◈
슈슈슝!
압록강 북쪽.
중국의 전투기가 방공 식별 구역 안으로 들어오자 국경 지역에 설치되어 있던 지대공 미사일들이 일제히 불꽃을 흩뿌리며 솟아올랐다.
지대공 미사일은 마하 5의 속도로 빠르게 날아가 접근하던 전투기들을 떨어뜨렸다.
물론 모든 지대공 미사일이 전투기를 격추시킨 것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미사일 방어 체계에 속아 오폭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투기에는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한 방어 체계가 있는데, 미사일의 레이더 방식에 따라 두 종류로 나뉘었다.
열 추적 레이더를 가진 미사일에는 플레어처럼 높은 열을 내는 물체를 미끼로 유인하고, 적외선 레이더 방식의 미사일은 알루미늄 조각인 채프를 뿌려 레이더를 교란해 따돌린다.
“아직 적이 많이 남았다. 준비하도록!”
압록강 남쪽에 위치한 대한민국 육군은 지대공 미사일을 한차례 발사해 적을 솎아냈다.
하지만 아직도 적은 많이 남아 있었다.
장거리 미사일을 모두 소모한 육군은 이번에는 중거리 요격 미사일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공중 전력끼리 조우하기 전에 중국 전투기를 최대한 많이 격추시켜 놔야만 아군 전투기들이 한결 전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상군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때, 중국군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이곳 국경 지대에 주둔하던 대한민국 국군과 다르게 중국 인민해방군은 일본의 꼬임에 넘어가 급하게 침공을 하는 터라 따로 배치된 미사일 부대가 없었다.
때문에 중국군은 장갑차에 설치되어 있는 단거리 요격미사일이 가용 가능한 전력의 전부라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들을 요격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쾅! 쾅!
미사일 공격을 받은 중국 전투기들이 대한민국 지상군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였다.
지상군의 진격로를 확보하기 위해 출동한 중국 공군은 피격의 위협 속에서도 맡겨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공대지 미사일을 쏘아댔다.
미사일에 적중된 벙커가 커다란 화염에 휩싸였다.
하지만 화염이 걷히고 드러난 벙커의 모습은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아 보였다.
다른 표적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 군부대의 시설물들은 수한이 개발한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부착하고 있기에 미사일의 타격에도 안전할 수 있었다.
그러한 사실을 미처 몰랐던 중국 전투기 조종사들은 한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정확하게 목표를 타격하였는데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한순간의 방심이 그들에게는 목숨을 좌우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쾅! 쾅!
중국 전투기들은 또다시 발사된 대한민국 국군의 대공미사일에 의해 하나하나 그 몸을 불태웠다.
중국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것이라 예상되었던 첫 교전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반대로 흘러갔다.
오히려 중국이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것으로 개전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 ◈ ◈
쾅!
“저게 지금 우리 인민해방군의 모습이란 말인가!”
주진평은 위성으로부터 송출되고 있는 전투 영상을 보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함을 질렀다.
지금 커다란 화면 가득 펼쳐지는 장면은 중국 지도부가 보기에는 너무도 참혹한 모습이었다.
비록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중국이 자랑하는 젠―14와 젠―16이 저렇게 허무하게 격추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나는 것이었다.
비록 3년 전의 참패로 체면이 구겨지긴 했지만, 그래도 중국만이 세계 최강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주진평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군마저 허무하게 당하고 있는 모습에 이제는 분노를 넘어 허탈한 마음까지 들었다.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스텔스 전투기를 자체 개발함으로써 그 군사력을 만방에 떨치며 자존감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스텔스 전투기 개발에 성공한, 아니, 그런 것들을 떠나 국방 예산 자체가 자신들의 1/4 정도밖에 되지 않는 한국에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막혔다.
“누가 입이 있으면 말을 해보란 말이오!”
주진평이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 또한 일방적인 전쟁 양상에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은 탓이었다.
◈ ◈ ◈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연일 계속되는 회의로 NSC 위원들은 무척이나 지친 상태였다.
동북아시아에서 발생한 사태로 인해 그들은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중국과 한국 모두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들이라 결코 마음을 놓지 못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핵전쟁으로 확산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처음 중국이 선전포고를 했을 당시만 해도 자신들만 살짝 눈을 감고 방관을 하면 한국 홀로 중국을 상대할 수 없으니 어느 정도 치고받다 중재를 요청해 올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때 못 이기는 척 중재하며 이득을 취하려고 하였는데, 뒤늦게 한국도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 그 사실을 깨달은 곳은 펜타곤이었다.
펜타곤에서는 미국의 미래 정책을 위해 자신들이 수집해 놓은 중국과 한국의 정보들을 가지고 워 게임을 실시하였다.
그런데 워 게임을 돌리기 위해 슈퍼컴퓨터에 데이터를 입력하던 중 중요한 사실을 그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한국이 통일을 하면서 북한이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를 가지고 있으며, 3년 전에 그러한 사실을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북한이 개발해 보유하고 있던 것만 인정을 해준 것이었다.
물론 한국이 보유한 핵의 수량은 얼마 되지 않았다.
모두 합쳐 봐야 20메가톤이 되지 않는 정도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중국의 주요 도시를 폐허로 만들고도 남을 수량인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 보이와 팻 맨의 위력은 1만 5천 톤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것만으로도 20여 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물론이고, 도시를 철저히 파괴하였다.
그런데 20메가톤이면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을 150개 정도 보유하고 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한국이 보유한 핵무기의 숫자가 그 정도인 것은 아니었다.
겨우 50개 미만의 수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탄도 미사일과 운반체로 투하할 수 있는 핵폭탄, 즉 전략 핵무기는 16개가 전부였다.
나머지 30여 개는 핵 배낭과 같은 전술핵무기로, 300킬로톤 미만의 위력이 작은 것들이었다.
그렇다 해도 위력이 어마어마한 핵무기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이렇듯 뒤늦게 한국도 핵무기 보유 국가라는 것이 알려지고 슈퍼컴퓨터로 실시한 워 게임에서도 열세인 한국이 최후의 순간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왔으며, 한국에 핵 공격을 받은 중국도 결국 보복을 위해 핵무기를 발사하는 것으로 나왔다.
미국이 우려하던 것처럼 한국과 중국의 전쟁의 결과는 인류에게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핵 공격과 핵 보복으로 인한 결과는 지구에 핵겨울이 닥친 것이다.
전쟁 당사국인 중국과 한국만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재앙이 시작된 것이었다.
한국이 발사한 핵미사일로 인해 중국이 보유한 핵무기가 폭발하면서 북반구 전체가 방사능 먼지로 인해 대기가 오염되고, 태양을 가림으로써 북반구의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져 핵겨울이 온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설마 하는 심정이었지만, 몇 번을 반복해 봐도 결과는 처음과 마찬가지였다.
약간의 변화가 있기는 했지만, 마지막 결과는 핵전쟁으로 인한 양패구상으로 결론이 났다.
이는 미국에게도 좋지 못한 결과였다.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여 한국과의 전쟁을 묵인한 이유는 미국이 잘살기 위해서다.
그런데 도출된 결론은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 또한 그 영향으로 멸망에 가까운 어려운 시련을 겪게 된다는 것이었다.
국방부에서는 긴급하게 백악관으로 전문을 날렸다.
어떻게든 중국과 한국의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이미 시기상으로 너무도 늦었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 중국이 동맹인 한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을 때 눈을 감았다.
그렇기에 미국으로서는 이미 명분을 잃고 말았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중국과 한국이 전쟁을 하게 되더라도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막아야만 했다.
하지만 미국이 뭐라 한다고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
누구라도 최후의 위기에 몰리게 된다면 어떤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백악관은 뒤늦게 후회를 하며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몇 날을 고심해도 뚜렷하게 해법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 전 급보가 날아왔다.
중국의 군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회의를 중단하고 중국과 한국의 전쟁이 시작되는 현장을 지켜보기로 하였다.
위성에서 송출하는 영상은 중국과 한국의 국경을 이루는 압록강 일대를 보여주었다.
◈ ◈ ◈
쾅! 쾅!
투투투투! 투투투투!
사방에서 포탄이 터지고, 미사일이 포대에 명중하였다.
하지만 중국군의 공격은 한국군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못했다.
한국군 진지를 가루라도 내려는 듯 엄청난 포격을 하였지만 그 모든 게 의미 없는 일이었다.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쏟아부은 화력은 목표 인근에 다다르면 뭔가에 가로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중간에 폭발을 하였다.
플라즈마 실드에 막혀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군의 공격은 거칠 것 없이 통과되었다.
정밀하게 조준하여 한 발, 한 발 쏘아내는 한국군의 화력에 중국 인민해방군의 전투기와 전차들은 차례차례 파괴되어 갔다.
“진돗개! 여기는 독수리! 전장에 합류하겠다.”
대한민국 공군 전투 비행단 윤한민 대령은 지상군에 무전을 날리며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전장에 합류하였다.
대한민국 공군이 전장에 뛰어들자 가뜩이나 지대공 미사일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던 중국 전투기 조종사들은 패닉에 빠졌다.
대한민국 육군은 5년 전 천하 디펜스로부터 구입한 다목적 휴대 미사일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었다.
한때 휴대용 미사일의 불량으로 고초를 겪은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 문제를 일으켰던 당사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체 개발한 다목적 휴대 미사일을 군에 납품하였다.
군에 손해를 입힌 것 이상으로 무상 교체를 해줌으로써 잘못을 상계한 것이다.
물론 당시 천하 디펜스의 정수현 이사가 고의로 불량 무기를 납품한 것은 아니었기에 정상참작이 된 것이었다.
아무튼 8년 전에 개발되어 군에 보급된 이 미사일은 가격도 저렴하면서 성능은 동급 최강의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사거리가 5㎞로 짧은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른 여타 휴대용 미사일들에 비해 전술적으로 활용도가 더 높았다.
대한민국 육군은 밀려오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지상군과 전투기들을 상대로 이 다목적 미사일을 사용해 효과적으로 방어를 하였다.
그렇지만 아무리 뛰어난 무기가 있다고 해도 물량에는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육군이 힘들어할 즈음 공군이 합류를 하였다.
이로써 잠시 한숨을 돌린 육군은 소비한 미사일과 포탄을 보급하고 다시 전투에 합류를 하였다.
아직도 전투는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곧 압록강 상공에서는 대한민국 공군의 F―15K를 필두로 한 F/A―18E/F 전투기 편대와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 전투기 편대 간의 공중전이 펼쳐졌다.
전투 초반만 해도 중국 공군의 젠―14와 젠―16 편대의 숫자는 대한민국 공군의 전체 전투기 숫자와 비슷했지만, 현재는 육군의 미사일 부대와 휴대용 미사일을 이용한 공격에 많은 전투기들이 격추되면서 얼추 비슷한 숫자가 되었다.
비슷한 숫자의 전투기들이 전투를 벌이기 시작하자 하늘에서는 순식간에 불꽃의 향연이 펼쳐졌다.
그런데 그중 특이한 모습이 포착되었다.
중국 전투기에서 발사된 미사일 일부가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에 접근했다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절대 중국 쪽으로 넘어가지 말고 압록강 이남에서만 전투를 하라!”
윤한민 대령은 적기를 쫓아 중국 땅으로 향하는 아군 조종사들에게 일갈했다.
전과에 정신이 팔려 작전 명령을 망각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질타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윤한민 대령도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앞으로도 전공을 쌓을 많은 기회가 남아 있다.
그리고 살아 있어야 더욱 많은 전과를 올릴 수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업그레이드를 했다고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 공군이 운용하고 있는 전투기들은 개발된 지 20년이 넘는 기종들이었다.
그에 반해 중국의 지대공미사일이나 공대공미사일은 거의 대부분이 10년 내에 개발되거나 개량된 것들이다.
언제 어느 때 격추될지 모르는 전장에서 굳이 무리를 할 필요가 없다는 참모부의 생각에 윤한민 대령도 동감하는 바였다.
◈ ◈ ◈
“사령부, 여기는 비룡 1의 리첸 중교다.”
― 말하라, 리첸 중교.
사령부가 연결되자 리첸은 다급하게 전장 상황을 브리핑하였다.
“현재 아군이 한국군에 밀리고 있다. 후속 부대는 언제쯤 오는가.”
사실 리첸이 속한 편대는 공중전을 예상한 전력이 아니었다.
그저 지상군이 보다 쉽게 압록강을 도하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는 부대였다.
그 때문에 심양 기지에서 출격할 때부터 지상 타격 위주의 무장을 했다.
또 동일한 이유로 한국군이 쏘아대는 대공포나 지대공 미사일을 회피하기가 힘들었다.
지상 타격을 위한 폭탄을 다량 매달고 있다 보니 기동성에 제한을 받은 탓이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할까.
예상하던 바이지만, 한국 공군이 대응을 하기 위해 출동을 했다.
원래는 자신들이 1차로 한국군 지상군을 타격하고, 제2진이 합류해 한국 공군을 상대하기로 되어 있었다.
제2진과 합류하면 비록 공대공 무장이 부족해도 숫자에서 압도하기에 충분히 한국 공군 전투기들을 제압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한국 지상군의 공격을 피하다 보니 아직도 지상 타격 무기들을 충분히 소모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공군의 출동 시기가 예상보다 신속하여 미처 후속 부대랑 합류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습을 당했다.
그 때문에 리첸과 함께 출격한 많은 중국군 조종사들이 공중에서 산화하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현재 상태로는 자신들이 너무도 불리하였다.
더욱이 이상하게도 중국과 한국의 경계가 아닌, 한국의 영토 안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는 지상군이 아직 한국 국경을 넘지 못한 것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한국 공군은 지상군의 지원을 받으며 전투를 하고 있는 반면, 자신들은 오히려 뒤를 조심해야 할 처지였다.
그랬기에 리첸은 전장의 상황을 보고하고 지시를 받기 위해 무전을 한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우린 전멸할 것이다.”
다급한 마음에 리첸은 금기와도 같은 단어를 언급하였다.
하지만 사령부에서도 이렇다 할 지시를 내리지 못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전투 양상은 심양에 있는 사령부에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사령부에서 지시가 없자 리첸은 자신의 판단으로 전장을 이탈하기로 마음먹었다.
계속해서 시간을 끌어봐야 불리한 것은 자신들이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전장을 이탈하겠다.”
리첸 중교는 사령부와 교신을 마치고 공용 주파수로 아군 전투기들에게 급히 지시를 내렸다.
“모두 전장을 이탈해 기지로 귀환한다.”
지시를 내린 리첸 중교는 곧장 조종간을 돌려 심양 공항으로 기수를 돌렸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군 전투기들이 기수를 돌린다고 해서 대한민국 공군이 그저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기수를 돌리기 위해선 당연 빈틈이 보이기 마련이고, 대한민국 전투기 에이스들은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중국군 전투기들을 하나씩 격추하였다.
◈ ◈ ◈
커다란 화면 가득 스펙터클한 영상이 펼쳐졌다.
하지만 영상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초조와 긴장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화면에 보이는 장면은 사람들의 오락거리를 위한 영화의 장면이 아니라 100% 리얼이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존망이 걸린 한 장면인 것이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던 중국이 드디어 군사적 행동을 개시하였다.
그동안 병력을 집중하더니, 마침내 오늘 압록강을 향해 전진을 하였다.
그저 육군만 전진을 한 것이 아니었다.
단단히 벼른 듯 이번에는 공군도 함께 출동하였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중국이 선전포고를 한 직후부터 인민해방군의 이동을 예의주시했기에 대응도 무척이나 신속하였다.
예전 전적으로 미국에 정보를 의존했을 때하고는 확실히 달랐다.
그러나 아무리 준비를 했다고 하지만 상대는 중국이었다.
물론 3년 전 심양 군구의 병력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던 전적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게 중국이 약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저 고양이가 생쥐에게 코를 물린 정도에 불과하다.
중국은 공룡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대응을 해야 했다.
자칫 단 한 번이라도 실수를 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와!”
짝! 짝! 짝!
지금 화면을 통해 드러난 모습은 철저히 준비해 온 성과였다.
잔뜩 긴장한 채 화면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태극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진 전투기가 중국군 전투기를 격추시킬 때마다 환호와 박수로 응원했다.
중국군 전투기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에 접근할 때면 안타까움의 한탄을 토하기도 하였다.
수백 대의 전투기들이 뒤엉켜 공중전을 벌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신기한 것은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대한민국의 전투기 중 단 한 대도 격추된 것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공군의 선전에 그 사실을 눈치챈 이는 별로 없었다.
그저 중국군이 운용하는 미사일이 불량이거나 중국군 전투기 조종사들의 실력이 미숙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눈썰미가 뛰어나가나 공중전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화면을 통해 전해지는 전투 장면에 무언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과 같은 비현실적인 결과가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공군이 주력으로 사용 중인 전투기들이 뛰어난 전투기들인 것은 맞다.
하지만 중국이 개발한 젠―14나 젠―16 전투기 역시 그에 뒤지지 않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처럼 대접전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아군의 피해가 전무하다는 것은 단순히 조종사의 실력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문제였다.
전문가들은 아마도 한국군 전투기들이 뛰어난 전자전 장비를 가지고 있어 미사일의 레이더를 교란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러한 생각이 완전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예상대로 현재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들은 수한이 개발한 장치를 이용해 미사일들의 레이더를 교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미사일의 레이더에 직접적으로 전자파를 발사하여 교란시키는 방식이 아니었다.
미사일에 부착된 레이더에서 쏘아내는 파동을 반사하지 않고 그대로 흘려 버리는 것이다.
이는 스텔스 전투기들이 레이더를 회피하는 방법과 비슷했다.
기본적으로 스텔스 전투기는 레이더파의 반사각을 줄이기 위해 그에 맞춰 설계를 하고 거기에 레이더 파동을 흡수하는 특수한 페인트로 더욱 보강을 한다.
그렇게 해서 결과적으로는 아주 작은 물체로 인식하게 만들어 정상적인 식별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한이 개발한 장치는 그렇지 않았다.
K―3 백호 전차의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처럼 마찰계수를 제로로 만드는 그리스 마법을 이용한 장치인 것이다.
말 그대로 레이더파가 표면을 건드리면 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미끄러져 흘러가 버렸다.
그 때문에 파장이 반사되지 못해 레이더가 목표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세계 최강의 전투기인 F―22 랩터의 조준 회피 장치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인 F―22 랩터가 세계 최강의 전투기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장치 때문이다.
전투기들의 전투에서 미사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라 할 수 있었다.
조준을 마치고 발사 버튼만 누르면 먼 거리에서 미사일이 알아서 목표를 타격을 한다.
그런데 조준 회피 장치는 이러한 미사일의 공격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니 F―22 랩터가 최강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연히 F―22 랩터를 잡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근접 거리에서 기총 사격을 하는 도그 파이팅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현존하는 전투기 중에서 F―22 랩터보다 뛰어난 기동성을 지닌 전투기도 없을뿐더러 F―22 랩터는 뛰어난 운용 컴퓨터로 인해 비행이 불가능한 자세에서도 운항이 가능했다.
지금 중국 전투기와 교전을 벌이고 있는 대한민국 전투기들은 바로 그런 랩터의 성능 중 일부를 가진 셈이었다.
비록 일부라고는 하지만, 이는 비슷한 성능의 전투기들이 싸우는 지금과 같은 경우에 엄청난 교전 능력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적은 눈에 의지해 전투기에 달린 기관총을 쏘는데, 아군은 기관총은 물론이고 한 방에 격추시킬 수 있는 미사일까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으니, 얼마나 큰 차이인가.
사정이 그렇다 보니 한국 공군과 중국 전투기 간의 전투는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처음 교전이 시작될 때만 해도 조금 더 수가 많던 중국군 전투기들은 어느새 절반도 살아남지 못했다.
불리한 형세를 알아차린 일부 중국군 조종사들이 기수를 돌려 달아나는 경우가 발생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살아남은 중국군 전투기들이 일제히 기수를 돌려 북쪽으로 달아났다.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군 전투기들은 그 모습을 그냥 보고 있지 않았다.
달아나는 중국군 전투기들의 뒤로 남은 미사일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는 중국 전투기들은 손쉬운 먹잇감이 되어 하나둘 추락했다.
“와!”
“대한민국 만세!”
“만세!”
압록강 상공에서 벌어진 대한민국 공군과 중국 인민해방군 전투기 간의 첫 공중전은 이렇게 일방적으로 끝이 났다.
청와대 지하 벙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많은 이들이 기뻐하는 가운데, 한쪽 벽면 전체에 설치되어 있는 모니터 위로 다시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지상군의 전투였다.
방금 전 공중전만큼의 화려한 장면은 없지만, 오히려 긴장감은 더했다.
공중전과 달리 피와 살이 튀는 현실적인 장면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탓이다.
얼핏 봐도 상황은 무척 심각해 보였다.
미사일과 포격으로 인해 압록강을 따라 설치된 진지에서는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육군은 피해 상황이 어떤가?”
윤재인 대통령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김명한 국방부 장관에게 물었다.
하지만 김명한 국방부 장관도 아직 자세한 보고는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실시간으로 위성에서 현장 상황을 보내오는 터라 그에 대한 보고가 오히려 늦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아직 전투가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피해 상황은 보고된 것이 없습니다.”
김명한 장관은 결국 원론적인 대답을 꺼냈다.
하지만 말과 달리 그의 태도는 차분하면서도 당당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사실 방금 전 끝난 공군의 전투가 일방적인 승리로 끝난 것 때문에 김명한 장관은 한껏 고무된 터였다.
엇비슷한 전력이라 평가되던 전투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을 뿐 아니라 피해가 전무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자신감이 넘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찌 보면 건방져 보일 수도 있는 모습이지만, 김명한 국방부 장관의 태도를 문제 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실 그들 또한 비슷한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라도 자국이 일방적인 대승을 거둔다면 김명한 장관처럼 자부심을 가질 것이 분명했다.
“음, 그럼 전투가 끝나면 피해 상황을 내게 알려주세요.”
윤재인 대통령은 그런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완곡한 표현으로 말을 하였다.
김명한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의 지시에 아직 전투가 끝난 것이 아님을 깨닫고 자세를 바로 하며 대답을 하였다.
“알겠습니다.”
“휴, 그나저나 다행입니다.”
윤재인 대통령은 진이 쏙 빠진 듯 쓰러지듯 소파에 앉으며 말을 하였다.
“예, 각하. 천만다행입니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중국은 이번 패배를 교훈 삼아 2차에는 더 많은 준비를 하여 공격을 해올 것입니다.”
“맞는 말이에요. 우리는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중국은 아직 그들의 역량을 전부 동원한 것이 아니니 결코 방심을 해선 아니 될 것입니다.”
비록 첫 교전에서 대승을 거두었지만 윤재인 대통령이나 정부 관계자들은 중국이 이번 패배로 큰 타격을 받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이번 전투에 동원된 것은 중국군의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김명한 장관.”
“예, 각하.”
“보급에 문제가 되지 않게 철저히 준비를 하세요. 각 군수산업체에는 24시간 풀가동하여 물자를 생산하라고 연락을 하시고요.”
대통령은 주변을 돌아보며 보급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역설했다.
사실 전쟁이란 것은 군대가 강하다고 승리를 확실할 수는 없었다.
물론 승리를 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보급 또한 중요했다.
총탄과 폭탄 등 전쟁에 필요한 물자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소모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을 계속해서 수행하기 위해선 소모되는 물자만큼이나 보급이 병행되어야 한다.
만약 소모한 물자만큼 원활하게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더 이상 전투를 수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 ◈ ◈
전투가 끝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총탄이 날아다니고, 포탄이 터지며, 미사일이 날아들며 지옥을 방불케 하던 소란이 멎은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적은 국경을 넘지 못했다.
안기준은 전투가 끝나자 벙커에서 나와 주변을 살펴보았다.
“아!”
그의 눈에 비친 주변 풍경은 어제저녁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여기저기 포탄이 떨어졌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교통호 곳곳은 파괴되어 볼썽사나웠고, 여기저기 움푹움푹 땅이 파인 곳도 있었다.
벙커를 나와 주변을 살피는 것은 비단 안기준만이 아니었다.
인근 벙커에서 나온 최상준 상병의 모습도 보였으며, 저 멀리에선 자신의 분대장인 정철원 병장의 모습도 보였다.
자신이 속한 소대 선임들의 무사한 모습이 보이자 조금 전까지 가슴을 조이던 불안감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듯했다.
전투가 끝났지만, 전체적인 상황이 어떤지는 알 수가 없었다.
적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무전을 날린 뒤, 숙지한 전투 매뉴얼대로 정신없이 움직였다.
무인 경비 로봇을 작동시킨 뒤로는 벙커에 거치되어 있던 기관총을 잡고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적진에 쏟아 부었다.
안기준은 문득 벙커 앞에 설치된 무인 경비 로봇을 살펴보았다.
무엇 때문에 그것을 살펴볼 생각이 났는지는 안기준 본인도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살펴볼 생각이 들어 쳐다본 것뿐이다.
무인 경비 로봇은 안기준이 이곳 국경 지역에 배치되어 근무를 선 지 두 달이 되어가는 시점에 설치되었다.
예전에 사용하던 것과는 다른 타입의 로봇이었다.
물론 만화영화에 나오는, 팔다리가 달려 있고 인간처럼 생긴 로봇은 아니었다.
마치 러시아의 3M―87 키쉬탄과 비슷한 모양을 한 그것은 조금 전 전투에서 엄청난 활약을 하였다.
그런데 안기준이 무인 경비 로봇을 주시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전투 중 벙커 주변으로 간간이 큰 폭발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안기준은 푸른빛의 막을 보았다.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증이 생겼지만, 전투 중이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기관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에 열중하느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전투가 끝나고 나니 문득 그 생각이 났다.
자신이 들었던 폭발음은 엄청난 것이었다.
폭발로 인해 벙커가 크게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피해는 없었다.
처음 진동을 느낄 때만 해도 이제 죽었구나 싶었다.
하지만 별다른 피해가 없다 보니 벙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폭탄이 떨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전투이 끝난 뒤 벙커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펴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폭탄은 벙커를 노리고 제대로 떨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후임인 김상식은 아무런 피해도 없이 무사했다.
의아한 마음에 주변을 살피던 중 이상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된 일인지 벙커에는 전혀 피해가 없고, 그저 벙커들을 이어주는 교통호 일부만 파괴되어 있는 것이다.
그 많은 포탄과 미사일이 떨어졌는데 아군 벙커가 한 군데도 파괴되지 않았다는 것은 뭔가 말이 되지 않는, 부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저거… 뭔가 있는 것 같은데?’
그리고 문득 그 원인이 작년에 설치된 저 무인 경비 로봇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기준 상병님! 소대장님이 찾으십니다!”
벙커 안에 있던 김상식이 자신을 부르자 안기준은 얼른 벙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충성! 상병 안기준입니다!”
안기준은 얼른 무전기를 넘겨받고는 말했다.
“예. P―11 벙커는 이상 없습니다. 교통호가 일부 파괴된 것 빼고는 아무 피해도 없습니다.”
안기준은 소대장이 물어보는 것에 대하여 또박또박 보고를 하였다.
안기준이 보고를 마칠 무렵엔 다른 벙커에서도 피해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분주하게 무전을 날리고 있었다.
모든 정황 파악이 끝난 뒤, 사령부는 발칵 뒤집혔다.
대한민국 국군이 피해라고는 벙커 주변의 교통호가 파괴된 것 외에는 전무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일방적인 전투라 해도 피해가 전무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한데 이러한 결과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국경을 지키기 위해 킬러 로봇이라 불리는 무인 경비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였다.
인력 부족을 커버하기 위해 도입한 이 무인 경비 시스템은 통일 이전 휴전선을 지키는 데 확실한 효과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보다 업그레이드하여 중국과 러시아와의 국경 일대에 쭉 깔았다.
물론 많은 예산이 들어간 것은 두말할 것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군 현대화를 진행하면서 엉뚱하게 흘러나가는 예산을 줄이니 빠듯하게나마 국경 지대에 무인 경비 시스템을 보강할 수 있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국방부는 천하 디펜스에 의뢰하여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무인 경비 로봇에 추가로 설치하였다.
그리고 이번 전투에서 그 효과가 제대로 발휘된 것이었다.
무인 경비 로봇은 위협적인 공격이 날아오는 것을 포착한 순간, 내장된 플라즈마 실드를 발동하여 본체를 지켰다.
사실 벙커는 무인 경비 로봇의 플라즈마 실드 범위 안에 있었기에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군에서 무인 경비 로봇을 벙커에서 조금만 더 떨어트려 설치했다면 막대한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적은 비용으로 벙커도 함께 보호하게끔 벙커 주변에 무인 경비 로봇을 설치하자는 누군가의 건의로 인해 지금의 결과가 만들어졌다.
그야말로 신의 한 수와도 같은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