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전쟁의 서막 2
수니파 과격 무장 테러 단체인 IS는 현재 중동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그들은 본거지인 시리아 북부는 물론이고, 다년간 미국을 비롯한 동맹군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면서도 밀리지 않았다.
그 덕분에 많은 이슬람 테러 조직의 지지가 이어지고, 이슬람 국가 일부에서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과 병력을 보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IS의 위세도 작년 가을을 기점으로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야심차게 준비한 쿠웨이트 침공 작전은 미국과 동맹군들을 모두 속이며 한때 성공을 거두는 듯 보였다.
하지만 쿠웨이트 침공은 예전 이라크의 후세인이 그러하였듯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일개 민간 군사 기업의 개입으로 막강했던 IS의 기갑 군단은 사막에 내린 빗물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비록 구형이기 하지만 개량에 개량을 거듭해 화력만큼은 어디 내놔도 밀리지 않을 전력이었는데, 쿠웨이트에서 처참하게 전멸을 맞이하였다.
그 뒤로 IS는 이라크 북부 거점들을 하나둘 잃고, 결국 이라크에서 철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뼈아픈 패배를 경험한 IS는 일련의 사태에 대한 원인을 분석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인이 지킴이 PMC 때문이란 것을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한때 쿠웨이트를 점령했다가 다시 빼앗긴 것이나, 이라크 북부 지역에서 힘을 잃고 시리아로 돌아온 모든 일에는 지킴이 PMC란 곳이 연관되어 있었다.
그래서 복수를 했다.
자신들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알리기 위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저 먼 동양의 작은 나라까지 날아가 테러를 자행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유럽의 다른 나라와 달랐다.
공포에 떨기보다는 오히려 복수를 천명했다.
사실 거기까지는 미국이나 유럽의 국가들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이후 나타난 사태는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통일을 이룬 지 얼마 안 되는 나라이면서도 남과 북, 양측에서 자원입대를 신청하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그들은 분노했으며, 용서를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IS보다 더 복수를 외쳤다.
그 모습을 지켜본 IS 지도부와 단원들은 알지 못할 두려움을 느꼈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도 복수를 다짐하고 언론에 떠들긴 했지만, 성과를 거둔 나라들은 없었다.
그들은 그저 미사일을 날리거나 폭격기를 이용한 폭격 정도만으로 복수를 했다고 떠들어 댔다.
그런데 한국은 달랐다.
언론에 대고 복수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여느 나라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대처가 달랐다.
대한민국 정부는 IS에 대한 복수를 자국 소속 PMC에 의뢰하였다.
처음에는 그것이 어처구니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군대도 아닌, 고작 PMC에 복수를 의뢰한다는 말에 한국인들을 비웃었다.
하지만 비웃음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복수를 천명한 지 1주일도 지나지 않아 IS의 주요 거점 중 하나인 하사카가 초토화되었다.
그저 건물이 부서진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 주둔하고 있던 IS의 간부와 단원들이 모조리 사살된 것이었다.
그리고 하사카를 중심으로 톨 타머와 터키 국경에 있는 IS의 병력들도 모두 죽었다.
말 그대로 IS와 관련된 이들은 개미 새끼 한 마리 남기지 않고 몰살을 당했다.
다만, 15세 미만의 어린아이와 미리 투항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다.
지킴이 PMC는 절대로 포로를 남기지 않았다.
항복을 한 IS 단원들은 뒤따라오는 동맹군에 넘기고 신속하게 이동하며 IS를 찾아 다녔다.
윤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IS와 끝장을 보겠다는 의지가 분명했다.
그들은 어떤 전투에서도 물러나지 않았다.
이쯤 되자 이교도와의 전쟁은 성전(聖戰)이라며 결코 물러서지 않던 무슬림 전사들도 지킴이 PMC와의 전투는 피하기 시작하였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다 보니 IS는 자신들의 본거지인 라카 주로 모여들었다.
소수로는 도저히 지킴이 PMC를 감당할 자신이 없기에 대규모 병력이 모여 있는 본거지로 집결하는 것이었다.
공식적으로는 시리아의 땅이지만, 오래전부터 이곳은 수니파 무장 단체인 IS에 점령된 상태였다.
또한 자체적으로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라 천명한 IS의 수도가 되었다.
물론 국제사회에서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어찌 되었든 이곳 라카는 현재 IS의 수도인 셈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전 세계에 테러를 자행한 IS에게 보복하기 위한 국가들의 폭격으로 많은 건물들이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폐허 속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가고, 또 많은 숫자의 IS 단원들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물론 라카에 살고 있다고 모두 IS 단원은 아니었다.
다만, 겉으로라도 IS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만약 그런 행동을 했다가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IS의 단원과의 결혼을 거부한 많은 이슬람 여성들이 무참히 살해당한 것은 이미 만천하에 알려진 사항이다.
더욱이 미성년자인 아이들에게도 과한 처벌을 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IS의 공포정치는 라카 시에 만연해 있었다.
그런 라카에 언제부터인가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마치 한계까지 팽창한 풍선이 곧 터질 것만 같은 긴장감.
그동안 라카를 지배하며 공포정치를 펼쳐 오던 IS의 지도부의 심정도 다를 바가 없었다.
◈ ◈ ◈
라카 시 중심부, 시청 청사 지하.
일단의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다른 형제들은 어떻게 되었나!”
IS의 수장인 압둘라는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하사카와 데이르에즈조르 주에서 넘어온 IS 지도자들이었다.
해당 지역에서 압둘라에 못지않은 위상을 가지고 다스리던 이들이 본거지를 뒤로하고 이곳 라카에 집결하였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얼마나 극심한 고초를 겪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행색이 무척이나 남루하였던 것이다.
몇몇은 머리에 부상을 당한 것을 대충 옷을 찢어 막았는지 상처 부위가 지저분했으며, 옷 또한 정상적이지 않았다.
다른 일부는 팔과 다리에 부상을 당했는지 거동이 몹시 불편한 모습이었다.
패잔병과도 같은 그들의 행색에 압둘라는 화가 나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그들에게서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살기 위해 급하게 본거지를 빠져나와 다른 피난민들과 함께 라카로 도망친 것이 그들이 한 전부였다.
한밤중 갑자기 총성과 포탄 터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주변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호위 병력과 함께 급히 빠져나왔지만, 그 와중에 많은 호위 병력들이 몰살당했다.
그렇게 간신히 살아남아 이곳까지 이른 참이라 아직도 경황이 없었다.
당연히 다른 간부들의 행방에 대해선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랬기에 압둘라의 물음에 답을 하는 이가 없을 수밖에.
사실 압둘라도 이들의 행색을 보며 당시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래도 물을 것은 물어봐야만 했다.
현재 이곳 라카에 모여들고 있는 IS의 전력과 점점 몰려오는 적의 전력을 비교해 보기 위해선 하나라도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사실 한때는 동생을 죽인 한국인들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광기를 부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인은 겪으면 겪을수록 두려워지는 존재였다.
어쩌면 자신들과 비슷한 성향을 띠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목적을 위해선 물불 가리지 않고 전진하는 맹목적인 성향.
한국인들도 그런 맹목적인 성향을 보이며 자신들을 압박해 오고 있었다.
마치 의도한 것처럼 자신들을 이곳 라카로 몰아넣으며.
압둘라는 정말로 적이 원해서 그렇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적에게 패배한 자신의 동지들이 본능적으로 이곳 라카로 집결하는 것인지 판단을 해야 했다.
만약 의도적으로 일을 꾸민 것이라면 적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무서운 존재일 것이고, 그러 동지들이 본능적으로 이곳이 안전하다 느껴 피신을 한 것이라면 자신은 동지들을 잘못 선택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그러한 것들을 판단하기 위해 압둘라는 지금 이곳에 있는 IS의 지도자들이나 다른 단원들의 의견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는 간부들이나 단원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공포에 찌든 패잔병만 있을 뿐이었다.
◈ ◈ ◈
타! 타! 타! 탕!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 갑옷 같은 복장을 갖춰 입은 일단의 존재들이 벽돌로 된 건물을 향해 총을 쏘아댔다.
건물 안에서도 일단의 인물들이 응사를 했다.
바로 지킴이 PMC가 IS의 본거지 중 하나인 하사카를 공격하는 모습이었다.
지킴이 PMC는 많은 숫자의 IS단원들이 이곳에 모여 있다는 정보를 듣고 기습을 하였다.
정부의 의뢰로 IS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지킴이 PMC는 이곳 하사카에 IS의 간부들이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래서 이들을 처리하기 위해 기습을 하였는데, 일단 거점 중 한곳이라 그런지 IS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물론 그 반격이란 것이 파워 슈트로 무장을 한 이들에게 위협이 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간간이 RPG나 메티스 대전차 미사일이 날아올 때면 간담이 서늘하기도 했다.
“야! 황의주! 내부 확인해!”
“알겠습네다!”
지킴이 PMC의 구대장 홍인규는 저격수인 황의주에게 지금 전방에서 반격을 하고 있는 건물 내부를 확인하란 명령을 내렸다.
사실 조금 전 다른 건물로 IS를 척결하러 들어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RPG 공격으로 하마터면 골로 갈 뻔했다.
그런 탓에 건물 내부에 혹시 무기를 숨겨놓은 적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방사성 원소를 이용한 스코프로 건물 내부를 확인 가능한 황의주는 홍인규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전방에 있는 건물 내부를 살폈다.
다행히 RPG나 대전차 무기 같은 위험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몇몇 인영만 보일 뿐이었다.
“위험한 것은 보이지 않습네다. 그저 작은 그림자들이 몇 보일 뿐입네다.”
“그래?”
홍인규는 황의주의 말에 얼른 머리를 굴렷다.
맡은 지역을 빠르게 정리하고 쉴 생각에 궁리를 하던 그는 곧 명령을 내렸다.
“준식이, 넌 내가 뛰면 엄호를 하라우. 내가 입구에 도착하면 그때 나를 따라 들어오라. 알간?”
“알갔시요.”
“그럼 나와 준식이만 건물 안으로 들어갈 것이니, 니들은 옆 건물을 정리하라우.”
“알갔습네다.”
홍인규는 총을 쏘며 건물 앞으로 뛰어갔다.
파워 슈트를 입고 있기에 적이 쏘는 총은 두렵지 않았다.
다만,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대전차 미사일이나 RPG는 막기 힘들기에 신속하게 움직였다.
타타타탕!
타타닥!
홍인규가 접근하자 건물 안에서는 더욱 요란하게 반격을 해 댔다.
하지만 목표를 보지도 않고 무작정 쏴대는 총에 맞을 홍인규가 아니었다.
물론 몇몇 눈먼 총알들이 홍인규 근처로 날아오기도 했지만, 몸에 맞지는 않았다.
뭐, 맞았다고 해서 생명에 위협을 받을 일도 없었지만 말이다.
건물 입구에 도착한 홍인규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다시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건물 안으로 들어선 홍인규는 쉽게 들고 있는 총을 쏘지 못했다.
상대가 너무도 어린 탓이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를 들어갔을 것 같은 어린아이.
그 어린아이가 두려운 눈으로 총을 들고 있던 것이다.
그동안 자신들을 공격하던 존재가 이렇게나 어린아이란 것을 확인한 홍인규는 빠르게 접근해 총을 뺏었다.
그러고는 어른들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간나 새끼! 어른들은 어디 갔네?”
홍인규에게 제압당한 아이는 두려운 눈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홍인규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구대장님, 지금 뭐하시는 것입네까?”
뒤이어 들어온 준식이 홍인규를 보며 물었다.
그런 준식의 질문에 홍인규는 고개만 돌려 말했다.
“지금 심문을 하고 있잖네.”
“아니, 우리 조선말로 하면 아가 알아 듣습네까? 자들 말로 해야 하지 않갔습네까?”
“아!”
홍인규는 조금 전 자신이 내뱉은 말이 북한 사투리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래서 얼른 파워 슈트의 언어 프로그램을 조작해 아이가 알아들을 수 도록 아랍어로 번역시켰다.
그러고는 다시 물어보았다.
왜 어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아이는 홍인규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을 하였다.
“저희만 남기고 모두 라카로 떠났습니다.”
홍인규는 아이의 말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이들만 남겨두고 IS의 수도인 라카로 떠났다는 말에 기가 막힌 것이다.
“1구대장 홍인규 부장입네다. 현재 이곳에는 아들만 있는 것 갔습네다. 다시 한 번 전달합네다. 아들만 있으니 최대한 중화기 사용을 금지해 주시라요.”
홍인규는 혹시나 과한 화력을 사용할 것이 걱정이 되어 빠르게 현장 상황을 전달했다.
홍인규의 무전이 전달되자 곳곳에서 최대한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건물 내부를 제압해 나갔다.
결과적으로 작전을 바꾼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자칫했다가는 테러범을 소탕하고도 어린아이들을 학살했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릴 뻔하였다.
아무리 특수훈련을 거친 정예 병사라 하여도 어린아이나 민간인을 죽이게 되면 정신적 외상을 겪게 된다.
지킴이 PMC들이라고 해서 그런 현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물론 예전 북한 정권이 존재할 때는 삶 자체가 투쟁이었기에 그에 개의치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통일이 되고 난 이후로 이들의 삶 또한 바뀌었다.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삶이 윤택해진 상황.
어느덧 이들도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IS의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 펼쳐졌던 작전은 어느새 종료되었다.
총성이 멎고 소년병들을 관리하던 IS 단원 몇 명과 IS 단원의 가족인지, 아니면 IS에 억류된 민간인인지 모를 이들을 발견하였다.
“부사장님, 저들을 어떻게 합니까?”
“뭘 어떻게 해? 미군들 오면 넘기고 우린 도망친 놈들을 따라간다.”
리철명 부사장은 부하 직원의 말에 단호하게 대답하였다.
리철명은 IS에 대한 적개심이 무척이나 강했다.
그들이 테러를 일으킨 개성시가 바로 리철명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 같은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자신의 고향이 아닌가.
그런 곳에서 테러가 발생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IS는 리철명에게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그리고 그건 다른 북한 출신의 지킴이 PMC 직원도 마찬가지였다.
◈ ◈ ◈
중국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압록강.
현재 이곳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초긴장 상태였다.
평소라면 그저 초소에 들어가 중국 쪽을 향해 경계만 하고 있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중국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한 터라 병사들은 반지하 벙커에서 실탄을 장전한 채로 중국 땅을 주시하고 있었다.
중국이 선전포고를 한 지도 벌써 일주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떤 도발도 없었기에 조금은 긴장이 풀어지고 있었다.
“김 일병, 난 좀 눈 좀 붙일 테니, 잘 보고 있다 깨워라.”
안기준은 자신과 함께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 김상식 일병에게 말하고는 벙커 한쪽에 쪼그려 앉아 졸기 시작했다.
일주일간 한껏 긴장을 하고 있다 보니 피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업 등을 하지 않아 육체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언제 전쟁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긴장감은 병사들을 금방 지치게 만들었다.
비단 안기준과 김상식뿐만 아니라 인근 벙커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피곤한 것은 안기준 상병만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근무를 서고 있는 김상식 일병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나 다를까.
김상식 곧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였다.
엎친 데 덮친 것이라고 해야 하나.
이들이 졸고 있을 때, 중국 쪽에서 압록강 쪽으로 내려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픽! 픽! 픽! 픽!
“으음! 뭐, 뭐야!”
순간, 벙커 안에서 요란한 소음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잠에서 깬 안기준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경계를 서야 할 김상식은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야! 김상식! 너, 뭐하고 있는 거야! 정신 안 차려?”
안기준은 졸고 있는 김상식을 향해 고함을 지르고는 얼른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벙커 안에서 소음을 낸 물체는 벙커 외부에 설치되어 있는 동작 감지 센서였다.
넓은 국경을 인간의 눈으로만 감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군은 국경에 무인 감지 센서를 설치하였는데, 전방 3㎞ 반경에 움직이는 물체를 감시하는 것이다.
너무 작은 물체는 알아서 걸러내지만, 멧돼지나 노루, 사슴과 같이 사람과 비슷한 몸집을 가진 물체가 움직일 때는 동작을 하게 설정이 되어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동물들 때문에 오작동을 일으켰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테지만, 지금은 전시체제였다.
센서가 작동을 했다면 응당 확인을 해야만 했다.
무인 감지 센서에 포착된 물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벙커 창으로 전방을 확인하던 안기준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악!”
“무, 무슨 일이십니까, 안기준 상병님?”
김상식은 선임이 밖을 살피다 비명을 지르자 깜짝 놀라 안기준을 불렀다.
“부대 비상 걸어! 어서!”
안기준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내뱉은 말과 달리 안기준은 자신이 직접 부대에 전화를 하였다.
“통신 보안! P―11 벙커 상병 안기준입니다. 전방 3㎞ 지점에 중국군으로 보이는 다수의 인원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안기준은 방금 전 자신이 망원경으로 확인한 사항을 빠르게 보고하였다.
애앵! 애앵! 애앵!
곧 압록강에 펼쳐진 진지에서 경계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전 지역에서 그와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 ◈ ◈
지킴이 PMC 본부, 지하 위성 통제실.
“앗! 중국군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위성을 통해 심양에 집결해 있는 중국군을 감시하고 있던 지킴이 PMC의 직원 한 명이 요란하게 외쳤다.
“과장님, 중국군이 국경으로 남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직원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뒤에 있는 상급자에게 보고를 하였다.
보고를 받은 상급자는 다시 그것을 문익병 사장에게 보고하였다.
지금 위성 통제실에는 지킴이 PMC 직원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대한민국 군복을 입은 군인들도 있었다.
그들 또한 조금 전 직원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상관에게 보고를 하기 시작하였다.
“충성! 지킴이 PMC 위성 통제실에 파견된 감우성 대위입니다. 조금 전 중국군이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군 사령부에서는 중국이 선전포고를 하고도 공격을 해오지 않자 한껏 긴장하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곧 한계에 부딪치고 말았다.
지금까지는 모든 정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관계가 소원해진 현재 중국군에 대한 정보를 받을 곳이 없어진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정보를 넘겨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현재 필요한 것은 중국군의 실시간 정보였다.
때문에 수한은 군의 처한 사정을 알고는 먼저 제안을 했다.
지킴이 PMC에서 위성을 운용할 수 있게 허가를 받는 대신 필요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협정을 맺은 것이다.
그래서 지킴이 PMC는 위성 통제실을 공식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고, 군은 지킴이 PMC가 보유한 위성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최초의 상황 보고가 이어지고 잠시 후.
타다다닥!
위성 통제실로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덜컹!
“중국군이 움직였다고?”
위성 통제실로 들어온 이는 문익병 사장과 수한이었다.
그리고 조금 뒤, 감우성 대위의 보고를 받은 평양 방위군 사령관 이찬성 대장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찬성 대장은 평양의 방위군 사령관이면서 동시에 북부군 사령관이기도 했다.
중국과 국경을 이루는 지역은 물론이고,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두만강 일대까지 북부 전체를 총괄하는 것이다.
막말로 그의 위에 있는 사람은 대통령과 통합군 사령관뿐이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지킴이 PMC 본사에 있는 것이다.
육군 본부에도 위성 통제실이 있긴 하지만, 이곳 지킴이 PMC의 위성 통제실보다 장비 면에서 훨씬 떨어졌다.
물론 그렇다 해도 현재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육군 본부에서도 현재 국경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현재 전 세계의 군인들은 디지털 무늬 전투복을 채택하고 있는 추세였다.
그 이유는 위성의 감시나 광학 장비의 감시를 피하는 데 탁월한 성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킴이 PMC의 위성은 디지털 무늬 전투복의 패턴도 파악해 포착할 수 있는 최신 감시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금 전 중국군이 국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위성 통제실에서는 중국군의 움직임을 포착하자마자 비상을 발령하였다.
군부대가 이동하는 것과 민간인들의 피난 동선이 겹치는 일이 없도록 조치한 것이다.
한편, 뒤늦게 위성 통제실로 들어선 이찬성 대장은 전방에 커다란 화면에 실시간으로 보여지는 중국군의 움직이는 모습에 새삼 감탄하였다.
‘허허, 부러운 일이군!’
지금 이 안에 있는 장비들만 해도 얼마나 많은 금액이 필요한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군이 야심차게 준비한 육본의 위성 통제실만 해도 국방 예산을 몇 년 동안 아끼고 아껴 겨우 만들었다.
더욱이 위성을 띄워 올리는 데는 또 따로 예산을 편성해 국회에 승인을 받는 복잡한 절차까지 거쳐 가며 힘들게 마련하였다.
그런데 민간에서는 그것보다 더 대단한 장비들을 가지고 있으니,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 허탈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소모적인 감정을 소비할 때가 아니었다.
선전포고를 하고 남하하는 중국군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였다.
“심양 공항에서 전투기가 이룩하였습니다.”
이찬성 대장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중국군을 감시하던 직원에게서 새로운 정보가 흘러나왔다.
조금 전에는 육상 병력의 이동이었다면, 이번에는 중국 공군 전투기가 발진을 했다는 것이었다.
“문익병 사장, 지금부터 내가 이곳을 통제해도 되겠나?”
이찬성 대장은 전시 상황하에 위성 통제 시설을 군에서 운용한다는 내용을 상기하며 문익병 사장에게 양해를 구했다.
여느 군 장성 같았으면 권위를 내세워 강압적으로 말을 했겠지만, 지킴이 PMC와 현 정부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이찬성 대장은 정중하게 요청을 하였다.
이찬성 대장의 말에 문익병 사장은 조심스럽게 옆에 있는 수한을 쳐다보았다.
수한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지금은 전시이기에 자신이 거부를 한다고 해서 될 상황이 아니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어떤 민간 물자라도 증발할 수 있는 권한이 군에게 주어진다.
그러니 웃는 얼굴로 협조를 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하십시오. 다만, 대장님께 한 가지만 요청하겠습니다.”
문익병 사장은 승낙을 하면서 한 가지 요청을 덧붙였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요청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예. 현재 저희 지킴이 PMC는 정부의 요청으로 중동에서 IS와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 있는 직원들을 지원하기 위해 위성 하나를 저희가 운용했으면 합니다. 현재 한반도에 세 대의 위성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니…….”
이찬성 대장은 이곳으로 오기 전에야 지킴이 PMC가 인공위성을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런데 이들이 운용하는 위성이 총 다섯 대라는 것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민간 기업이 위성을 다섯 대나 운용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데 지금 문익병 사장이 한 대의 위성 사용 요청을 해왔다.
세 대가 한반도를 감시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하며, 남는 위성으로 지킴이 PMC 직원들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문익병 사장의 요청은 이찬성 대장이 듣기에 충분한 타당성이 있었다.
어차피 정부의 의뢰로 외국에서 고생을 하고 있는 지킴이 PMC 직원들인 만큼 굳이 막을 필요가 없었다.
사실 문익병 사장의 말처럼 세 대의 위성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뭐, 부족하면 육본이 운용하는 위성까지 함께 통제를 하면 되는 문제이니, 지금은 문익병 사장의 요구를 들어줘도 문제될 게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문익병 사장은 이찬성 대장이 허가를 하자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2호실로 이동하여 위성을 운용한다.”
위성 통제권을 군인들에게 넘겨주던 지킴이 PMC 직원들은 문익병 사장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인수인계를 마치고 제2위성 통제실로 향했다.
사실 이곳은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장소였다.
정부와 위성 운영에 대한 허가를 받을 때 이미 준비했던 것으로, 비상시 군이 이곳을 운용하는 것을 전제로 협정을 맺었다.
그런데 지킴이 PMC에는 정부에 알린 위성뿐 아니라 공격 무기를 탑재한 위성이 세 대나 더 있었다.
만약 이곳에서 모든 위성을 통제하게 된다면 비상시 군이 운용하다 그것들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수한은 만약을 대비해 따로 제2위성 통제실을 마련해 두었다.
평상시에는 이곳에서 모든 위성들을 통제하다가 외부인이 들어왔을 때 다른 곳에서 위성을 통제하기 위해 마련해 둔 시설인 것이다.
당연히 그곳에서의 명령권이 더 우선적이었다.
군사위성의 조작은 물론이고, 이곳에서 통제하는 위성의 감시나 운영권 탈취까지 모두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아무튼 지킴이 PMC 위성 통제실 직원들은 문익병 사장의 지시에 따라 제2위성 통제실로 이동하였다.
직원들이 빠져나간 위성 통제실에서 문익병 사장과 수한은 평양 방위사령부 요원들이 위성 통제권을 인계 받아 운영하는 것을 잠시 지켜보다 제2위성 통제실로 이동을 하였다.
문익병 사장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이찬성 대장은 말없이 경례를 하였다.
국가를 위해 이러한 시설을 아무런 저항 없이 넘겨주는 문익병 사장에게 보내는 최고의 예였다.
◈ ◈ ◈
중국 심양 제1항공 사단의 활주로에는 지금 많은 숫자의 전투기들이 엔진을 점화하고 있었다.
다수의 젠―10과 젠―16이 출동 준비를 마치고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봐, 홍첸.”
“왜?”
“굳이 전쟁을 해야 되는 것일까?”
젠―16의 조종사인 류강은 자신의 동기인 홍첸에게 말을 걸었다.
당에서 한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3년 전에 패배를 되갚아주기 위해 지상군은 물론이고, 엘리트 집단인 공군까지 동원하는 것이 사실 류강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굳이 3년 전의 일로 전쟁을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 류강의 생각이었다.
더욱이 한국은 그가 알기로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였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중국이 핵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알기에 류강은 이번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상위 계급인 그가 반대한다고 해서 참전을 거부할 수도 없었다.
당이 명령을 하면 자신은 따라야 하는 입장이었다.
“아직도 그 소리야? 류강, 우린 위에서 명령을 내리면 그저 따르면 되는 거야. 그런 복잡한 것은 저 위에 있는 분들이나 생각하는 것이라고.”
홍첸은 헬멧의 먼지를 닦으며 류강의 말을 받아넘겼다.
홍첸도 사실 이번 전쟁이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그는 얼마 뒤면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몇 년을 쫓아다니며 꼬신 끝에 드디어 여자의 마음을 얻은 것이다.
더욱이 그녀의 아버지와 친척들은 고위직 당 간부.
결혼만 하면 자신의 출셋길은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전쟁이란 변수로 인해 결혼식은 무기한 연기가 되었다.
그 때문에 지금 홍첸의 심기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만약 말을 한 것이 친구인 류강이 아니었다면 주먹이 날아갔을 정도로 기분이 좋지 못한 홍첸이었다.
더욱이 같은 비행대에 속해 있던 당 간부의 자식은 혹시 모를 위험을 피하기 위해 이번 작전에는 참가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말이야 식중독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허울 좋은 핑계란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 모두 전투기에 올라라.
스피커에서 명령이 떨어지자 대기하고 있던 조종사들이 전투기에 올랐다.
전투기의 엔진은 이미 예열을 마친 상태라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든 활주로를 달려 상공으로 비상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우리의 목표는 지상군이 도하할 수 있게 국경 너머의 경비 초소와 장애물들을 파괴하는 것이다. 모두들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귀환하기 바란다. 1비행단부터 이륙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제1전투 비행단부터 하나하나 출격을 시작했다.
전투기들은 곧 편대를 이루며 기수를 한국과의 국경 지역으로 돌렸다.
심양 비행장에 있던 전투기들이 하나둘 떠오르며 전쟁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