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코리아-103화 (103/118)

3. 선전포고

일본 사가현의 중심부에 위치한 비와 호수는 일본 최대의 담수호이다.

비와 호수에는 어패류가 풍부하여 어획량이 많고, 또 진주조개 양식이 성행하기도 했다.

더욱이 호수 연안 일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많은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런 이유로 사적과 명승지는 물론이고, 문화재가 많이 분포되어 있기도 했다.

비와호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고궁(古宮)의 한곳.

많은 사람들이 마치 고대 왕실을 재연하는 듯한 모습으로 회의를 하고 있었다.

“구로다, 일은 어떻게 되었나?”

이곳 고궁의 주인이자 일왕 요시히토의 동생인 나루히토가 총리인 구로다를 보며 물었다.

“하이! 비록 생각보다 효과가 적지만, 일꾼들이 일을 잘하고 있어 현재 조선은 국론이 분열되고 있습니다.”

“좋아.”

나루히토는 뭐가 그리 좋은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곧 냉정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반도(半島)를 점령하고, 나아가 대동아 공영을 이룩해야만 한다. 알겠나!”

오래전 실패한, 대동아공영이란 군국주의(軍國主義) 사고를 가지고 있는 나루히토는 서슴없이 망언을 내뱉었다.

그렇지만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나루히토의 망언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나루히토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탓이었다.

80여 년 전 일본 제국이 패망하면서도 사라지지 않은 군국주의의 그림자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음지에서 일본을 지배하며 성장해 왔다.

패망 직후,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일부 희생자들을 놔두고 음지로 숨어들었다.

그렇지만 음지에 숨었다고 하여 활동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일본 왕실의 지원을 받은 그들은 음지에서 독버섯과도 같은 뿌리를 내리며 그 독성을 일본 각지에 퍼뜨렸다.

그리고 그것이 차츰 성장하여 지금의 일본을 만들었다.

한반도에서 발발한 6.25 사변 당시, 연합군의 보급기지 역할을 맡으면서 일본은 경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후 그들은 축적된 부를 통해 은밀하게 일본을 무장시켜 나갔다.

2차 대전에서 패전을 겪으면서 일본은 군대를 가질 수 없다는 평화헌법을 제정하였다.

당장 연합군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비굴한 태도를 드러내며 삶을 모색한 것이다.

이후 그들은 자위대(自衛隊)란 것을 만들어 자국 방어에만 활용하겠다고 전 세계에 약속을 했다.

하지만 그런 약속은 사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행위에 불과했다.

웬만한 국가의 해군력을 상회하는 전력을 보유한 해상 자위대나 최신 전투기 수백 대로 무장한 항공 자위대는 주변국으로부터 끊임없이 의심의 시선을 받았다.

그러다 결국 때가 되자 일본은 본색을 드러냈다.

자위적 선제공격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이상한 논리를 내세우며 사실상 군대나 다름없는 조직이 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정책 변화를 유심히 지켜보다 결국 정식으로 군대화를 꾀했다.

이제 정식으로 군대를 가지게 된 일본은 더 이상 예전의 조심스러운 나라가 아니었다.

자신들이 가진 군사력을 잘 알고 있는 일본 정치인들은 다시 한 번 오래전 제국 시대의 영광을 되찾으려 했다.

그들은 팽창하는 중국과도 영토 분쟁을 벌였고, 동맹인 한국과도 끊임없이 문제를 야기시켰다.

매년 방위백서와 어용 단체를 이용해 수시로 쇼를 벌여 댔다.

대한민국의 명백한 영토인 독도를 두고 자국의 땅이라 우기는 것이었다.

그를 통해 일본은 항상 전쟁의 빌미를 만들려고 애를 썼다.

“준비는 착실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쓰비에서는 연일 전투기와 전차가 생산되고 있으며, 50만 황군이 대기를 하고 있습니다.”

“좋아. 그런데 중국의 반응은 어떤가? 계획대로 그들이 먼저 조선에 선전포고를 할 것 같나?”

나루히토는 구로다 총리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만족스러워하며 중국의 동향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구로다 총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비굴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 ◈ ◈

중국, 북경.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중국 총서기인 주진평은 새로 국안부장이 된 리정안을 돌아보며 호통을 쳤다.

사실 리정안은 국안부 흑검과 함께 비밀 조직으로 분류된 흑화의 수장 자리에 있던 자였다.

흑검이 적대국 요인 암살과 정보 교란이 목적이라면, 흑화는 정보전에 특화된 부서였다.

100만이 넘는 해커 집단.

그것이 바로 국안부 흑화의 정체였다.

100만이나 되는 해커들을 이용해 각국의 정보를 수집하거나 또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침투시켜 전산망을 마비시키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다.

흑검이나 흑화의 수장은 동급의 지위를 갖고 있었다.

흑검이 육체를 고도로 훈련시킨 암살자라면, 흑화는 두뇌를 쓰는 집단이기에 장위해가 실각하고 난 후, 리정안이 새로운 국안부의 수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아무튼 국안부가 나서서 테러를 모의하였는데, 보기 좋게 실패를 하고 말았다.

물론 엉뚱한 곳에서 테러를 성공시키는 바람에 결과적으로는 계획한 목적을 이루기는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우연히 그리된 것일 뿐이었다.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는 작금의 상황이 주진평으로서는 못마땅했다.

그런 이유로 애초 계획처럼 선뜻 한국에 선전포고를 하기가 꺼려지는 것이었다.

“북한군 중에서 배신자가 나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한국은 핵 테러로 인해 큰 혼란을 겪고 있을 테지만…….”

리정안은 변명을 해보려 주섬주섬 말을 꺼냈지만, 주진평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주석 동지, 그래도 우리의 목적대로 한국이 혼란에 빠졌으니, 이번 기회에 복수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리정안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얼른 말을 꺼내는 이가 있었다.

서기처의 1서기인 류지산.

그는 어차피 노리던 바가 이루어졌으니 예정대로 한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복수를 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렇습니다. 정보부로부터 들어온 보고를 살펴보니 그들에게 시간을 주면 기회가 없습니다. 한국이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맞아요. 일본도 분명 한국의 스텔스 전투기를 노릴 것이 분명합니다. 일본이 손을 대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것들을 차지해야 합니다.”

전인대 상무위원인 장거장 또한 류지산의 말에 동조하며 나섰다.

그러자 중앙 기율 검사위원 서기인 장지량도 한국을 점령하여 기술들을 독점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부추겼다.

상무위원들의 말에 주진평도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언제 때를 잡아 한국에 선전포고를 하는 것을 심사숙고하였다.

하지만 계속해서 가슴 한쪽에서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의 정체를 알지 못해 결국 주진평은 짜증을 풀 듯 선언했다.

“좋아. 그럼 일본에 연락해서 우리가 행동에 들어가면 그들도 한국에 선전포고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약속 받으시오.”

주진평은 일본의 특사와 만나 이번 일을 계획한 위청산 국무원 부총리를 돌아보며 말을 하였다.

위청산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알겠습니다. 맡겨주십시오.”

“지금 당장 전군에 비상을 거시오. 서부와 남부 집단군은 주변 국가들이 오판하지 못하게 경계를 하시오. 그리고 북방군은 병력의 1/3을 이번 전쟁에 투입하시오. 중앙군과 동부 집단군은 선전포고와 함께 전격적으로 한국의 압록강을 건너시오.”

주진평은 상무위원 전체의 의견을 좇기로 결정을 내렸다.

여기서 자신이 한발 물러섰다가는 정적들에게 공격을 빌미를 줄 수도 있고, 어차피 대세를 따랐다는 변명도 가능한 탓이었다.

그로 인해 한결 마음의 짐을 덜어낸 주진평은 단호하게 지시를 내렸다.

중국 5개 방위군 중 서부와 남부의 집단군에게는 독립한 신강과 신장, 그리고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을 경계하도록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중국 정부와 사이가 좋지 못했다.

오랜 영토 분쟁이 벌여오거나 독립을 하기 위해 내전 아닌 내전이 이어진 탓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이 새로운 동북아의 강자인 한국과 전쟁을 벌일 때 혹시나 배후를 공격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경계를 단단히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러시아와의 국경을 담당하고 있는 북방군은 일부만 차출하기로 했다.

비록 러시아와는 아무런 분쟁이 없지만 국경을 비워둔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사실 동부와 중앙군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 생각은 하지만, 3년 전 최정예 심양 군구 병력도 압록강을 넘으려다 실패를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만전을 기하기 위해 이전의 네 배에 이르는 전력을 한꺼번에 투입하려는 것이었다.

압도적인 물량으로 공격을 가한다면 아무리 강력한 방어력을 가진 한국군이라 해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참, 남해 쪽에서도 2개 함대를 전쟁이 시작되면 합류시키기 바라오.”

주진평이 남부군을 지휘하는 위청산에게 지시를 내리자 그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다 얼른 표정을 풀고 대답을 하였다.

“알겠습니다. 저도 2개 함대를 지원하는 것이니, 전쟁이 끝난 뒤 그만큼의 대가를 분배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여기겠습니다.”

권력은 총부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명언처럼 중국인들은 무력을 숭상하였다.

무력을 지원하니 대가를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그랬기에 주진평이나 다른 상무위원도 위청산의 요구를 당연하게 생각하였다.

“알겠소.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주석인 주진평의 확답에 위청산의 머릿속으로는 전쟁 후의 논공행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는 이번 전쟁은 승리가 확실하다고 단정 지었다.

세계 2위인 중국과 7위의 일본이 손을 잡았으니, 아무리 급부상한 한국이라 해도 결코 막아낼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중국은 테러로 인해 한국이 혼란에 빠지자 계획대로 일전을 벌일 준비에 매진했다.

◈ ◈ ◈

대한민국 국회.

“도대체 정부에선 뭘 하고 있었기에 자국 내에서 테러가 발생하였는데 막지 못한 것입니까?”

민족당 김인수 의원이 탁자를 내려치고는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지금 국회에는 개성에서 발생한 테러에 대한 청문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정국 안정이 무엇보다 시급한 시기에 상황이 수습되기도 전에 국회에서는 바쁜 사람들을 불러다 청문회를 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불려 나온 정부 관계자나 국정원 간부들은 함부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니,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의 성향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 자리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청문회가 아님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족속들의 그저 인기몰이를 위한 자리.

그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소환된 이들은 괜한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입을 다문 것이다.

“왜 말이 없습니까? 지금 본 의원의 말이 우스워요?”

계속하여 호통이 이어지지만, 불려 나온 이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민족수호당의 박만복 의원입니다. 증인, 사전에 테러에 대한 제보를 받았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예, 받았습니다.”

민족수호당의 의원이 질문을 하자 그제야 대답이 나왔다.

이전에는 그저 테러를 왜 못 막았냐, 너희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거냐, 라는 식의 문제 해결과는 하등 상관없는 질문들뿐이었기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민족수호당의 박만복 의원은 사건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에 대한 사건 개요를 물어온 것이다.

“제가 듣기론 테러를 모의하던 이들 중 일부가 자수하여 제보를 해왔다고 하던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정말로 여러 의원님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직무 유기를 한 것입니까?”

박만복 의원은 차분한 태도로 사건을 정확히 짚으며 질문을 하였다.

증인으로 나온 국정원 직원은 제대로 해명할 기회를 얻었다는 듯 객관적이고 논리정연하게 진술을 하였다.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 국가정보원은 사전에 구 북한군 군관과 그를 따르는 병력이 개성시에서 테러를 모의한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테러 용의자들을 모두 사살하거나 검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발생한 테러는 저희도 미처 파악하지 못한 IS의 소행이라 밝혀졌습니다.”

“그러니까 증인의 말은 제보를 받은 사안에 대해 사살 또는 검거로 막아냈지만, 또 다른 테러분자들은 파악하지 못했다는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그럼 국정원에서는 이번에 발생한 테러에 대해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습니까?”

그에 국정원 직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였다.

“테러를 자행한 IS에 보복을 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뭐요!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IS에 보복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에 국회 여기저기서 거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국정원 직원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답을 하였다.

“그럼 당하고 가만히 있어야만 한다는 말씀입니까? 지금까지 우리 대한민국은 외국에서 자국민이 테러를 당하든 부당한 대우를 당하든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테러 조직이나 범죄 단체들은 우리 국민들을 범죄나 테러의 대상으로 삼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절대로 그런 일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판단 아래 국정원에서는 이후로 어떠한 도발도 그냥 넘기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국정원 직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한 번 국회는 소란스러워졌다.

자신들이 원하는 반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은 소환된 증인들을 몰아치며 국민들에게 강한 이미지를 심어줄 생각만 갖고 있었다.

아무리 정부의 고위직 공무원이라도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을 하게 되면 죄를 지은 양 약한 모습을 보여 왔기에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단상에 선 국정원 직원은 전혀 그러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한 태도로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표명하는 것이었다.

예상과 다른 반응에 당황한 국회의원들은 마치 겁먹은 개가 요란하게 짖는 것처럼 아우성을 쳤다.

그렇게 국회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 ◈ ◈

대한민국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서는 연일 NSC(국가안보회의)가 열렸다.

“그러니까, 원장 말은 이번 개성에서 테러를 일으킨 IS보다 중국과 일본을 더 경계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윤재인 대통령은 테러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던 중 김세진 국정원장이 제안한 의제에 대해 다시금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김세진 국정원장이 무턱대고 중국과 일본을 언급한 것은 아닐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그에 김세진 국정원장은 가지고 온 USB를 컴퓨터에 꽂았다.

곧 집무실 한쪽에 설치되어 있는 모니터에 한 동영상이 재생되었다.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환호하는 모습으로 보아 아마도 국군의 날 행사의 한 장면 같았다.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

김세진 국정원장은 NSC 위원과 대통령에게 자세히 봐줄 것을 주문하였다.

사실 그가 그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니터를 통해 비쳐지는 장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 난 일본에서 온 사이고 다카모리라고 합니다.

― 반갑소.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안전부(MSS)의 리정안이라 하오.

윤재인 대통령은 동영상을 보고 있다 깜짝 놀랐다.

서로를 소개하는 장면에서 중국 측 인사의 직책이 그냥 흘려듣기엔 너무도 중대했다.

사실 동영상에 나온 두 사람의 얼굴은 윤재인 대통령도 본 기억이 있었다.

다나카 일본 대사나 주방원 중국 대사 옆자리에 붙어 있던 자들인 것이다.

한데 당시 그들은 사이고 다카모리나 리정안이란 이름이 아니었다.

윤재인 대통령은 놀라는 한편, 일본인의 정체와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김세진 국정원장이 사이고 다카모리의 정체를 알려주었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일본 정보부인 NNSA의 수장입니다.”

“음…….”

그 말에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이 저마다 신음을 흘렸다.

타국의 정부부 수뇌들이 자국 내에서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에 긴장을 한 것이다.

사람들이 당황하는 동안에도 화면 속의 두 사람은 계속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 반갑습니다. 그런데 언제 일을 시작할 것이오?

― 음, 앞으로 한 시간 뒤에 일을 시작할 것이오.

― 참, 이번 일에 핵 배낭을 사용할 예정이니, 확실하게 폭발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 좋을 것이오.

― 뭐요? 설마 이 일에 핵을 사용한다는 말이오?

탁!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자 김세진 국정원장은 동영상을 정지시켰다.

“음…….”

“지금 보신 것처럼 중국과 일본은 서로 손을 잡고 사전에 테러를 계획하였습니다. 도중에 일부 구 북한군 인사가 자수를 하며 테러에 대한 제보를 해주었기에 저희 국정원에서는 미리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김세진 국정원장은 다시 컴퓨터를 조작하여 또 다른 영상을 화면에 띄웠다.

곧 추레한 행색의 사내가 화면에 비쳐졌다.

그는 국정원 요원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진술하고 있었다.

― 장영철 대좌는 테러만 성공하면 가족들을 함께 중국에서 떵떵거리게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네다. 하지만 되놈들 말을 어케 믿씁네까? 더군다나 이렇게 핵 배낭을 우리 땅에 터뜨리라고 하는데 말입네다. 이기 터지면 다 뒈지는디, 어케 그 말을 믿갔습네까? 아니 그렇습네까?

남자의 말에 윤재인 대통령은 심한 분노를 느꼈다.

타국에 핵폭탄을 이용한 테러를 계획했다는 사실에 참을 수가 없었다.

“내 이놈들을…….”

아무리 이성을 찾으려고 애를 썼지만,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길이 없었다.

그사이 김세진 국정원장은 동영상을 정지시킨 후,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이런 이유로 테러가 발생하기 전에 해당 테러리스트들을 모두 잡아들이고 끝까지 반항하는 이들은 사살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말끝을 흐리는 국정원장의 모습에 대통령과 NSC 위원들은 그에게 시선을 집중하였다.

김세진 국정원장은 이야기하기가 난처한지 잠시 눈치를 보았다.

결국 윤재인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대답을 요구했다.

“하지만 뭐요? 또 무슨 일이 있는 것이오?”

대통령의 질문에 김세진 국정원장은 부끄럽다는 듯이 힘겹게 대답을 하였다.

“국정원 3차장이… 현장 요원들을 임시 지휘소로 불러들인 그때, IS의 테러범들이 자폭 테러를 저지른 것입니다.”

“뭐요? 아니, 그 사람은 대체 뭣 때문에 요원들을 철수시킨 것이오?”

김세진 국정원장의 이야기 도중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진 윤재인 대통령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어보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은 역시나였다.

“조사 결과, 국정원 3차장은 오랜전 일본 정보부에 회유된 자로 밝혀졌습니다. 아울러 국정원은 물론이고, 국회와 검찰, 경찰 등 기관 곳곳에 일본을 위해 일하는 자들이 존재함을 알아냈습니다.”

“뭐요? 그게 사실입니까?”

윤재인 대통령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개성에서 테러가 발생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오히려 지금 더 충격이 큰 듯했다.

김세진 국정원장은 허탈해하는 윤재인 대통령을 잠시 쳐다보다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 이유로 지금은 중국과 일본의 움직임을 더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음, 국정원장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지금 본 내용만으로도 저들이 이후에 뭔가를 힐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희는 그에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김세진 국정원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성길 안보수석이 거들 듯 입을 열었다.

“사정이 그렇다고 해도 이번 테러를 자행한 IS를 그냥 둘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그렇게 했다가는…….”

하지만 그에 대한 동의의 의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외교통상부 장관의 의견에 윤재인 대통령은 표정이 굳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대로 가만있으면 대한민국은 국제적 호구가 될 것이 분명했다.

물론 앞으로 닥칠 것이 분명한 중국과 일본의 위협에 대해서는 손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입장에선 엎친 데 덮친 격인 것이다.

“저, 각하…….”

“뭡니까? 더 할 말이 있습니까?”

고민을 하던 윤재인 대통령은 무언가 묘책이 있느냐는 심정으로 김세진 국정원장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김세진 국정원장은 국정원에서 대책회의를 하다 나온 안건을 대통령에게 건의하였다.

“일단 테러를 저지른 IS에 대한 보복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이참에 지킴이 PMC에 의뢰를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현재 저희 군은 중국과 일본의 도발에 대비해야 하니 전력을 뺄 수 없지만, 지킴이 PMC라면 이미 중동에 대규모로 나가 있으니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국정원장의 난데없는 제안에 NSC 위원들은 모두 난색을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IS라는 거대한 테러 조직을 상대로 민간 군사 기업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 듯 탓이다.

하지만 윤재인 대통령은 굳어진 표정을 풀며 묘안이라는 듯 말했다.

“그런 수가 있었군. 그래, 맞아요. 그들이라면 충분히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윤재인 대통령은 오래전 수한과 약속했던 것을 떠올렸다.

“국가와 민족이 저희를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믿음직한 수한의 얼굴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윤재인 대통령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좋아요, 국정원장. 지킴이 PMC에 이번 테러를 자행한 IS에 대한 보복을 의뢰하세요.”

“알겠습니다.”

대통령의 재가가 떨어지자 김세진 국정원장은 힘 있게 대답을 하였다.

IS에 관한 문제가 해결되자 이후 논의는 중국과 일본의 야욕에 대한 대책 논의로 이어졌다.

◈ ◈ ◈

청와대 춘추관.

찰칵! 찰칵!

번쩍! 번쩍!

많은 내외신 기자들이 대통령의 특별 국민 담화가 있다는 말에 청와대 공보실로 모여들었다.

담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기자들은 이번 대통령 담화가 지난 10월 1일 개성에서 발생한 IS의 자살 폭탄 테러에 대한 내용일 것이란 예상을 했다.

현재 대한민국은 미국이나 다른 동맹들과 함께 IS와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물론 다른 동맹국들처럼 적극적으로 임하지는 않았지만,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IS 척결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런 이유로 IS도 한국에 테러를 저질렀을 것이란 게 중론이었다.

기자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 공보관이 들어와 대통령의 입장을 알렸다.

“대통령님께서 입장하십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님을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드르륵!

공보관의 말에 기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윤재인 대통령이 들어오는 것을 맞았다.

찰칵! 찰칵!

대통령이 입장을 하자 카메라 기자들은 일제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 순간, 공보실 안이 환해졌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자신을 환영해 주는 기자들에게 간단하게 인사를 건넨 윤재인 대통령은 바로 단상에 들어섰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선 것은 지난 10월 1일, 개성시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에 대한 우리 대한민국 정부의 방침을 발표하기 위해서입니다.”

찰칵! 찰칵!

기자들의 예상대로 윤재인 대통령은 서두부터 테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개성에서 테러가 발생한 즉시, IS에서는 자신들이 자살 폭탄 테러를 저질렀다고 선언했다.

그랬기에 전 세계인들은 대한민국의 다음 행보를 주목하였다.

그리고 바로 오늘, 윤재인 대통령의 성명이 발표되는 것이다.

과연 어떤 내용이 성명에 담겨 있을지 기자들은 한껏 긴장한 표정으로 윤재인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명색이 신흥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3년 전, 세계 2위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중국의 최정예 부대인 심양 군구 기갑 군단을 상대로 압록강에서 압도적인 승전을 거두었으며, 몇 달 전에는 쿠웨이트를 침공한 IS의 기갑 군단을 몰아내는 데도 한몫을 하였다.

특히 쿠웨이트를 침공한 IS 기갑 군단을 몰아낼 당시, 한국군과 한국 국적의 PMC가 큰 활약을 했다는 것을 이 자리에 있는 기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당시 쿠웨이트 왕실은 왕궁을 되찾은 후, 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공식적으로 한국 정부에 감사를 전했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의 위상이 한껏 오른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이번 IS의 테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많은 사람들이 숨죽여 지켜보던 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의 윤재인 대통령이 결단을 내린 듯 성명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불특정 다수의 민간인을 향한 테러는 어떤 이유를 붙이더라도 용납될 수 없는 범죄 행위입니다.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이번 개성시에서 테러를 힐책한 IS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IS 수뇌부가 모두 제거될 때까지 추적해 섬멸할 것을 천명합니다.”

웅성웅성!

청와대 공보관 안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방금 전 윤재인 대통령이 한 말은 IS와 끝까지 전쟁을 싸워 나가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으니.

그러니 이 자리에 있는 내외신 기자들로서는 소란을 떨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도 1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쟁을 하면서도 IS를 끝장내지 못했다.

그런데 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IS와 전면전을 벌이겠다고 천명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기자들이 다들 놀라는 가운데 윤재인 대통령은 담담하게 담화문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담화 내용이 끝나자 기자들은 저마다 손을 들며 질문을 쏟아냈다.

“질문 있습니다.”

“대통령님! 그게 가능하시다고 보십니까?”

“CMM 방송입니다. 초강대국 미국도 아직 그들의 수뇌부를 척결하지 못했는데, 윤재인 대통령께서는 한국이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너무도 놀라운 선언이라 기자들은 하나라도 더 정보를 얻기 위해 애를 썼다.

과연 대한민국이 IS와 어떻게 싸워 나갈지에 대한 의문이 주를 이루었다.

공보실 안이 기자들의 취재 열기로 혼잡해지자 윤재인 대통령은 조용히 입을 열어 진정시켰다.

“차례대로 질문을 하시기 바랍니다. 모두 답변을 해줄 테니 순서를 지켜주세요.”

윤재인 대통령은 평소와 달리 담화문을 모두 발표하고도 아직 단상에 남아 있었다.

보통 공보관이 대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했는데, 오늘은 직접 그 역할을 하려는 듯했다.

“저요!”

윤재인 대통령이 말이 끝나자마자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던 기자가 얼른 손을 들었다.

특종 기회라 생각하는 듯, 불타는 눈빛을 쏘아 보내는 기자의 모습에 대통령이 그를 지명하였다.

기자는 자신의 소속을 밝히고는 이내 궁금해하는 점을 질문하였다.

“KBC 방송의 김대기 기자입니다. 대통령님, 과격 무장 테러 단체인 IS와 전면전을 하겠다고 선언하셨는데, 의회 승인은 받은 것입니까?”

첫 지명을 받은 김대기는 대통령의 담화 내용이 전쟁을 담고 있었기에 국회의 승인을 받았는지 물었다.

윤재인 대통령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였다.

“아직 승인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이번 테러에 대해 분노하며 그에 대한 조치를 지켜보고 있지 않습니까?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이 국회 본연의 임무인 만큼 본인의 결정을 따라주리라 믿습니다.”

사실 윤재인 대통령은 현재 국회 내부에서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돌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정부를 헐뜯고 발목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군상들.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라 해도 국민이 원하는 대의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기자들 앞에서 일부러 국민의 뜻임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럼…….”

김대기 기자가 다시 질문을 던지려 하자 공보관이 얼른 막아섰다.

“많은 분들이 자리한 관계로 한 분당 질문 한 가지씩만 받겠습니다. 그럼 다른 분.”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기자들이 질문을 먼저 하기 위해 손을 들고 소리쳤다.

“네, 거기 금발의 미녀 기자분.”

윤재인 대통령은 이번에는 외신 기자를 지목했다.

이번 국민 담화에 대해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BBS의 데보라 기자입니다. 전쟁에는 많은 예산이 필요합니다. 한국 정부는 그에 대한 예산이 편성되어 있습니까?”

영국에서 온 BBS의 여기자는 다른 각도로 접근하며 대한민국의 전쟁 수행 능력을 질문했다.

인간이 소비하는 것들은 모두 예산이 반영이 된다.

그리고 그건 전쟁도 마찬가지다.

아니, 전쟁이란 것은 한 나라의 흥망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에 더욱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데보라 기자는 경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대한민국이 과연 IS와 전면전을 치를 수 있을 정도로 예산을 확보했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이 날로 성장을 해 나가는 중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산적한 문제들이 분명 존재했다.

서민 경제라든지 부동산 대책이나 가계 대출 등 시급히 처리해야 할 현안도 한둘이 아닌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전쟁을 위한 예비비를 마련할 수 있는지는 큰 문제였다.

하지만 미리 예상한 질문이라는 듯이 윤재인 대통령은 막힘없이 답변을 해주었다.

“정부는 군과 협의하여 IS와 전쟁에 전투 부대를 파병하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PMC(민간 군사 기업)을 적극 활용할 것입니다.”

“네? PMC 말입니까? 음, 대통령께서는 그것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보십니까?”

데보라는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한 명당 질문 하나라는 원칙을 공보관이 언급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윤재인 대통령의 답변에 자연스레 말이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런 데보라 기자의 모습에 윤재인 대통령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마저 대답을 해주었다.

“우리 대한민국에는 지킴이 PMC란 업체 있습니다. 몇몇 분들은 아마도 그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사우디 왕자 구출 작전을 성공시켰을 뿐만 아니라 동맹군과 함께 쿠웨이트 해방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지킴이 PMC는 백악관의 의뢰를 받아 이라크에서 IS의 세력을 몰아낼 때도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PMC라면 믿고 의뢰를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윤재인 대통령은 지킴이 PMC에 대하여 장황하게 설명을 하며 데보라를 향해 물었다.

그에 데보라는 물론이고, 외신 기자들은 다들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역시 지킴이 PMC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킴이 PMC의 구성원은 모두 구 북한 특수부대 출신이며, 한국에서 개발한 최첨단 무기들로 무장을 하고 있어 세계 최고의 PMC 중에서도 수위를 다툰다는 소문이었다.

더욱이 이 자리에 있는 몇몇 기자들은 지킴이 PMC와 동행하며 이라크 해방 전선에서 취재를 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방금 전 윤재인 대통령이 지킴이 PMC를 언급하자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윤재인 대통령의 결정이 정규군을 파견하는 것보다 훨씬 더 확실한 전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외신 기자들이 윤재인 대통령의 대답에 공감하는 것과 달리 내국 기자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로서는 민간 군사 기업(PMC)가 이번 일에 나선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지킴이 PMC는 국내보단 외국에서의 활동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내국 기자들에게는 그리 알려진 것이 없는 탓이었다.

또한 지킴이 PMC가 처음 설립될 때 맺은 정부와의 약속 때문에 그렇기도 했다.

대한민국이 통일을 이룬 후, 수많은 구 북한 특수부대원들의 처리가 난제로 떠올랐다.

제대로 관리하기도 어려운 형편에 그냥 민간에 풀어놓는 것은 자칫 치안의 불안을 야기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계속 복무를 시키기에는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만든 해결 방안이 바로 민간 군사 기업의 설립이었다.

한데 문제는 대한민국 내에 민간 군사 기업이 활동할 만한 여건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 말인즉, 민간 군사 기업이 설립되어도 국내가 아닌 국외에서 활동을 해야만 하였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지킴이 PMC가 설립되고, 그 첫 의뢰자는 대한민국 정부가 되었다.

중동에 전투 부대를 파견해야 하는 사안에 지킴이 PMC와 계약을 맺은 것이다.

병력 파병이라는 정부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동시에 구 북한군 특수부대 인원에 대한 고민도 덜어낼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였다.

그렇게 중동에 파견된 지킴이 PMC는 첫 의뢰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IS에 납치된 사우디 왕자를 구출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이름을 드높였다.

그다음부터는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순항이 이어졌다.

물론 대한민국 정부 입장에서는 그에 대한 내용을 모두 공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세간에 알려진 바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런 내막을 모르는 국내 기자들로서는 윤재인 대통령의 답변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는 것이고.

결국 국내 기자들의 우려는 고스란히 방송국과 신문사로 전달되어 많은 논란거리를 만들어냈다.

◈ ◈ ◈

“음, 피곤하군.”

대국민 담화를 마친 윤재인 대통령은 집무실의 의자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최대한 흥분하지 않고 담담하게 보이려 노력하였지만,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아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사실 담화문 자체도 중대한 사안을 담고 있어 집중해야 하는데, 감정을 다스리는 데도 신경을 쓰다 보니 더욱 피곤한 것이었다.

솔직히 정규 부대가 아닌 민간 군사 기업(PMC)에 의뢰를 하는 문제 때문에 국회와도 한바탕한 상황.

그런 후에 기자들을 상대하다 보니 절로 녹초가 될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행동은 이미 의심의 수준을 넘어 무척이나 위험한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색을 일절 보이지 말아야 하니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칠 지경이었다.

그렇게 힘든 여정을 마치고 집무실로 돌아왔지만, 하늘은 아직 윤재인 대통령에게 휴식을 허락하지 않는 듯했다.

덜컹!

“각하! 각하! 큰일 났습니다!”

안보 보좌관인 김성길이 놀란 얼굴로 뛰어들며 소리를 쳤다.

뒤이어 비서실장인 길성준과 외교통상부 장관인 이박명도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대통령 집무실로 뛰어왔다.

김성길 안보 보좌관은 길성준 비서실장과 이박명 외교통상부 장관이 다 모이자 청천벽력 같은 말을 쏟아냈다.

“각하, 중국에서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뭐요? 중국이 선전포고를 했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음, 길성준 비서실장, 바로 전군에 데프콘 1을 발령하고 국방부 장관을 불러들이세요. 다만, 저들이 먼저 공격을 하기 전까진 대응하지 말고 대기하라 하세요. 절대 먼저 저들을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중국에 비해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은 그리 높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선전포고를 했다지만 한국이 먼저 공격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상황이 바뀔지 몰랐다.

현재 전 세계는 IS의 테러에 피해를 입은 대한민국을 위로하고 있지만, 중국과 전쟁이 벌어지게 되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은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까지 한국을 노리고 있는 상태.

이미 중국이 선전포고를 하였으니, 조만간 일본도 그에 가세할 것이 빤했다.

중국과 일본, 두 거대 국가가 힘을 합쳤으니, 대한민국을 지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게 바로 국제사회의 냉정한 현실인 것이다.

테러 피해에 대해서는 동정의 시선을 던지지만, 강대국과의 전쟁에는 그저 거리를 두고 지켜볼 뿐이다.

그나마 윤재인 대통령은 중국과 일본이 힐책하고 있는 음모를 사전에 파악했기에 충격을 줄일 수 있었다.

만약 전혀 모르고 있던 중에 선전포고 소식을 들었다면 패닉을 일으켰겠지만, 이미 그에 대해 나름의 대비를 하고 있던 터라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대한민국에는 아직 시간이 부족하였다.

그동안 꾸준히 발전을 해 나가며 국력을 키웠지만,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강대국을 막아내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중국이나 일본 중 한 국가만 상대하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두 나라를 상대한다면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중국과 일본을 동시에 막아낼 수 있는 나라는 초강대국 미국뿐이었다.

그러니 지금 윤재인 대통령으로서는 판단을 내리는 데 있어 최대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첩보에 의하면, 동맹인 미국 또한 자신들을 돕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들은 비밀 협정을 맺어 일본이 한반도를 차지하게 되면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의 기술과 요격 미사일 기술을 넘겨받기로 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상태였다.

그 정보가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은 확실하게 고립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신세였다.

그런 까닭에 윤재인 대통령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며 명령을 내린 것이다.

“알겠습니다.”

길성준 비서실장은 윤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얼른 국방부로 향했다.

◈ ◈ ◈

웅성웅성!

점심시간.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공원에 앉아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계절은 10월 중순으로 들어서는 터라 가로수들은 노랗게 옷을 갈아입는 중이었다.

여성들의 옷차림도 약간은 길어져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그렇게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는 한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온 다급한 외침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전쟁이다! 중국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다!”

“뭐라고? 전쟁?”

“어떡해!”

여기저기서 걱정이 담긴 한탄 소리가 흘러나왔다.

직원들의 당황 섞인 호들갑에 수한은 식사를 멈추고 건물 밖으로 나와 전화를 걸었다.

당연하게도 전화 상대는 지킴이 PMC의 문익병 사장이었다.

“문 사장님, 전쟁이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민간 군사 기업은 전쟁이라는 행위를 통해 먹고살기에 그런 쪽의 정보에 밝았다.

그러니 중국의 선전포고에 대한 정보도 갖고 있을 거란 판단에 문익병 사장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원래였다면 수한 역시 그에 대한 정보를 바로바로 확인했겠지만, 곧 다가올 결혼 때문에 미처 신경을 못 쓴 것이다.

사실 중국이라면 한국과의 관계가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

비록 3년 전에 전투를 치르기는 했지만, 이후 외교적으로 잘 마무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데 대체 무엇 때문에 그들이 갑자기 전쟁선포를 했는지 수한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자세한 이야기는 제가 그곳에 가서 듣기로 하지요.”

수한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다는 예감에 지킴이 PMC 본사로 향했다.

― 우리 중화 인민 공화국은 2025년 한국의 기습 공격에 나라를 빼앗긴 동지이자 상호 수호 협정을 맺은 북한의 지도부의 요청을 받아 북방군 중 심양 군구의 일부 병력을 파견하였다. 하지만 한국은 이런 우리 중화 인민 공화국의 인민해방군에 공격을 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당시…(중략)…… 이에 우리는 무뢰한 한국을 적국이라 규정하고 전쟁을 선포한다. 만약 우리의 적인 한국을 지원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상대할 것이다. 부디 오판을 내려 한국과 함께 패망의 길을 걷지 말기를 당부한다.

“음, 이놈들이 작정을 한 것 같군.”

지킴이 PMC로 가는 차 안에서 수한은 사태의 심각성을 새삼 느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중국 측 대변인의 논조는 전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던 것이다.

바야흐로 전쟁의 계절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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