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코리아-101화 (101/118)

1. 불타는 개성

짝짝짝짝!

국군의 날 행사 퍼레이드가 진행되면서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최정예 군인들과 최첨단의 신형 장비들의 위용은 그 모습을 지켜보는 대한민국 국민들과 단상에 자리한 정부 인사,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의 초청을 받은 내외국 귀빈들도 하나같이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다.

“대통령님, 이제 이동을 할 시간입니다.”

한참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와중, 길성준 비서실장이 윤재인 대통령의 뒤로 다가와서 귓속말을 하였다.

윤재인 대통령은 잠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그래, 이동을 하지.”

시간을 체크한 윤재인 대통령은 서둘러 이동 준비를 하였다.

이미 사전에 국방부에서 준비한 행사가 부대 사열만이 아니란 것을 들었기에 자리를 옮기려는 것이었다.

“여러분, 또 다른 행사가 준비되었다고 하니 그리로 가시지요.”

대통령의 제안에 주변에 있던 귀빈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퍼레이드를 통해 면면이 드러난 장비들도 충분히 놀라운데, 무엇인가 더 보여줄 것이 남았다는 태도에 호기심이 더욱 크게 든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기대감을 가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 와중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중국과 일본의 대사 및 직원들이었다.

현재 시각, 오전 10시 50분.

앞으로 40분 뒤면 핵폭탄이 터질 예정이다.

그래서 중국 측이나 일본인들은 핑계를 대고 서울로 돌아가려 하는데, 예상 밖의 변수가 발생했다.

행사가 끝날 때까지 이곳에서 퍼레이드를 구경할 것이라는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다.

한국의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핵폭발의 의미가 없었기에 이들의 당황은 당연했다.

“차세대 전투기의 개발이 완료되어 시범을 보인다고 하니, 모두 함께 가시지요.”

윤재인 대통령은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귀빈들을 안내했다.

각국 귀빈들 역시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가 시범을 보일 거라는 말에 반색을 했다.

스텔스 전투기는 현대전에서 가진바 역할이 지대했다.

한데 그런 무기를 직접 볼 수 있다는 말에 모두들 두 눈을 반짝였다.

사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스텔스 전투기를 보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그 시도는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계약을 맺은 미국의 록히드 사가 약속을 저버린 탓이 컸다.

이미 개발 사업을 접은 록히드 사는 F―35 라인을 부활시키기 위해 억지를 부렸다.

엄청난 개발비를 한국 정부에 요구한 것이다.

당연히 한국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였다.

어쨌든 그러한 록히드 사의 억지로 인해 대한민국 정부의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개발 사업은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실 록히드 사의 속셈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F―35 라인을 부활시키려는 것도 하나의 목적이지만, 그보다는 다른 술책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록히드 사 내부의 고위 인사 중 일부가 일본 정부의 로비를 받아 방해를 놓은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들은 한국의 기술력을 믿을 수 없으며, 한국과 공동으로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하려는 러시아가 미국의 가상 적국이라는 명목으로 제동을 걸고 나섰다.

미국의 비밀 기술이 넘어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그 모든 것은 허울 좋은 핑계에 불과했다.

미국, 아니, 록히드 사는 사실 한국이 원하는 기술을 이전해 줘도 하등 손해 볼 것이 없었다.

한국이 요구한 기술이 전투기 개발에 꼭 필요한 기술이기는 하지만, 록히드 사에서는 이미 그 상위 기술을 가지고 있는 상황.

그에 대한 기술이 외부로 흘러가더라도 하등 상관이 없는 것이다.

러시아 역시 이미 그와 유사하거나 어찌 보면 더욱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록히드 사가 핑계를 대며 기술 이전을 거부하여 공동 개발 계획은 무산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는 일본 정부의 술책이기도 하지만, 미국 나름대로의 계산이 깔려 있기도 했다.

기술 이전을 통해 한국이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해 내는 것보다 지금처럼 많은 대가를 치르며 구입하는 것이 훨씬 더 미국에 이득이기 때문이었다.

당연하게도 대한민국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자주 국방이란 기치 아래 스스로의 힘으로 국방을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어려운 길이 되더라도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아가기로 결심을 다잡았다.

그리고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결국 힘든 여정을 거치며 자체적으로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뒤떨어지는 기술로는 주변 강대국들이 보유한 것과 비슷한 성능의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하기가 요원하였다.

그런데 지금 윤재인 대통령이 자신만만하게 선언을 한 것이다.

대한민국이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하였다고.

로버트 미국 대사는 놀란 눈을 한 채 윤재인 대통령에게 물었다.

그는 록히드 사와 대한민국 정부 간의 계약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윤재인 대통령의 선언이 놀라울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저도 사실 얼마 전에야 보고를 받았습니다. 라이프 메디텍과 천하 항공이 손을 잡고 개발에 착수했던 X―4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윤재인 대통령은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로버트 대사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너희가 도와주지 않아도 우린 할 수 있다’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가시지요.”

윤재인 대통령은 경호원들이 길을 만들자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뒤로 각국 귀빈들과 퍼레이드 행사에 초청 받은 내국인들이 기대 반, 설렘 반의 표정으로 따랐다.

떨떠름한 표정의 중국인과 일본인들은 당황 속에서 느리게 그 뒤를 쫓았다.

◈ ◈ ◈

개성 평화리에 위치한 건물 지하.

각종 기기들이 즐비한 실내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개성 시내 곳곳을 비치고 있는 모니터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저마다 머리에 헤드셋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 화면 내부에 수상한 장면이 보일 때면 빠르게 체크하며 보고를 올렸다.

삐비빅! 삑삑!

다라락! 탁! 탁!

그들 가운데 자리한 국정원 2차장 김기춘은 긴장한 표정으로 전방에 있는 대형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이곳은 국가정보원의 임시 지휘소로 활용되는 중이었다.

국군의 날 행사를 치르고 있는 개성에서 테러가 있을 것이란 제보가 들어왔기에 국내 정보를 담당하는 2과에서 임시 지휘소를 꾸린 것이다.

물론 대통령과 국내외의 귀빈들이 모이는 만큼 경호에 만전을 기하고는 있지만, 작은 실수 하나라도 일어나서는 안 되었다.

만약 이러한 큰 행사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대한민국의 위상은 땅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아니, 비단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현재 대한민국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도 같은 상태에 놓여 있었다.

국토는 배 이상 늘었지만, 현재 안전하게 지킬 수단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군은 지금도 방위산업체에 많은 군수물자를 발주하고 있으며, 새롭게 최첨단 무기들을 개발하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하루라도 빨리 군사력을 충족시켜야 안정된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대한민국의 움직임을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는 이들이 있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모두가 대한민국을 둘러싼, 강대한 국력을 가진 나라들이었다.

전통적 우방을 자처하는 미국은 겉으로는 별다른 표현을 하지 않지만, 사실상 대한민국이 자력으로 성장을 하는 것에 간접적으로 훼방 놓았다.

그리고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 동북아시아에 긴장을 조장한다고 성토를 해 댔다.

러시아야 자국의 복잡한 문제 때문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3년 전부터 국경을 맞대고 있는 상태라 그들도 대한민국의 군사력이 강화되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는 않았다.

이렇듯 주변에 있는 나라들이 하나같이 대한민국이 발전하는 것을 반기지 않을뿐더러 심지어는 내정 간섭을 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었다.

특히 일본의 경우가 심각했다.

그들은 겉으로는 한국이 위기에 처할 때 군대를 파병해 주겠다 주장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시커먼 내심이 그대로 드러났다.

매년 발표하는 방위백서에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를 자국 영토로 기재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었다.

이는 엄연한 침략 행위이며, 양국 관계에 저해되는 행동임이 분명하다.

당연히 대한민국 정부가 항의를 해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뿐만 아니라 통보도 없이 대한민국의 영해를 침입하기도 하는 등 갈등을 부추겼다.

그런 사정은 중국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생산을 중단했던 전투기며 전차 등을 새롭게 생산해 내며 군사력 강화에 매진했다.

말로는 노후화된 군 장비를 교체를 하기 위해 그런 것이라고 하지만, 그 속셈은 너무나 빤했다.

북한이라는 완충지가 사라져 직접 국경을 맞대게 된 대한민국을 경계하려는 의도였다.

물론 그에 대해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신무기로 장비를 교체하는 대한민국 군대에 위협을 느끼는 것은 중국 입장에서 볼 때, 당연한 일이었으니.

하지만 지난 전쟁에서 지독한 패배를 당한 중국은 육군만으로는 대한민국을 당해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랬기에 그들은 공군과 해군력을 강화하여 그 대안으로 삼았다.

우선 2028년에 인도될 예정이던 베이징 급 항공모함, 난징호의 수주를 1년 단축해 올해 인도하였다.

비록 베이징 급이 65,000톤의 중형 항공모함인데다 함재기의 숫자가 고작 17대 정도를 수용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벌써 여섯 척이나 보유하게 되어 나름 막강한 해군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

미국에 이어 2번째로 많은 항공모함을 보유한 국가가 된 것이다.

아무튼 주변국들이 대한민국의 성장에 견제를 하고 있는 와중에 테러 제보가 들어왔으니 경각심을 갖는 게 당연했다.

국정원에 비상이 걸리는 것과 동시에 국내에서 활동하는 모든 요원들이 동원되었다.

그리고 각급 군부대에서도 언제든 명령이 떨어지면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도록 준비 태세를 갖추었다.

만약 국내외 귀빈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참사가 벌어지면 그 파급 효과는 결코 작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잘못하다가는 크나큰 문제가 발생하리란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기에 국정원은 총력을 기울여 감시 중이었다.

그렇게 김기춘이 모니터를 보고 있을 때, 단상을 비추는 화면에 귀빈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김기춘은 자신의 왼쪽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확인하였다.

“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된 것인가.”

10시 55분. 이제 귀빈들은 예정된 스케줄대로 모종의 장소로 이동하여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를 감상할 것이다.

비록 자신과 연관 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국정원 차장으로 있으면서 스텔스 전투기에 관해선 들은 바가 있었다.

무기 관련 선진국들만 보유하고 있는 스텔스 전투기 개발 기술을 관련 국가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개발을 완료했다는 것만으로도 김기춘은 자부심이 들었다.

마음 한편으로는 그것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고민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정리했다.

현재 그가 해야 할 일은 귀빈들의 신변 보호에 만전을 기하는 일이었다.

“1구역 보고하라.”

김기춘은 모니터를 보며 무전을 날렸다.

임시 지휘소에서 살피는 모니터만으로는 현장의 상황을 모두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현장에 나가 있는 요원들을 통해 최종 상황을 체크하는 것이다.

― 1구역 이상 없습니다.

“2구역 보고하라.”

― 2구역도 이상 없습니다.

각 지역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김기춘은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뭔가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현장에 있는 모든 요원들에게 알린다. 주변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피기 바란다. 수상한 징후가 보이면 바로 조치를 취하기 바란다. 이상.”

김기춘은 불안한 마음에 다시 한 번 현장에 있는 요원들에게 주의를 촉구했다.

자신이 느끼는 불안감이 그저 단순한 걱정으로만 끝나면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만에 하나 경계 소홀로 테러가 발생한다면 사태를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거듭된 김기춘의 지시에 요원들은 다시금 주변을 경계했다.

그러한 모습들은 모니터로 즉각 포착되었다.

◈ ◈ ◈

똑똑.

“들어와.”

노크 소리가 들리자 김석원은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충성!”

“그래, 무슨 일이야? 혹시 모두 잡았나?”

김석원은 지금 신경이 무척 날카로운 상태였다.

국군의 날 행사가 펼쳐지고 있는 개성에서 테러가 발생할 것이란 제보 때문이다.

그는 오늘 펼쳐지는 국군의 날 행사가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국정원 2과 요원들과 자신의 부하들까지 모두 개성 시내로 출동한 상황에서 초조하게 보고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너희들, 일 제대로 하고 있어!”

별다른 소득이 없다는 말에 김석원은 짜증을 내며 고함을 질렀다.

물론 국정원 요원들이나 자신의 부하가 무능하지 않다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돌아가는 상황이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문제는 존재하는데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탓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김석원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테러가 벌어질 것이라 제보한 사람을 만나러 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난 지금 제보를 보내준 사람을 만나러 갈 테니, 조금이라도 상황이 바뀌면 바로 연락해.”

“알겠습니다.”

김석원은 마음이 급해서인지 부하의 대답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서둘러 상황실 밖으로 나갔다.

복도를 지난 그는 구석진 곳에 위치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덜컹.

“아, 그냥 앉아 있어요.”

방 안에 있던 남자는 김석원이 들어서자 놀란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뭐가 그리 불안한지 얌전히 앉아 있지를 못했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모습만 봐도 그가 무척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리철만 씨, 궁금한 것이 있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너무 불안해하지 마시고 질문에만 답해주시면 됩니다.”

“네, 알갔시오. 내 물어보시는 것 죄다 말하갔소.”

“네. 그러면 다시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테러를 준비하는 이들이 정확하게 누구라고 하셨죠?”

김석원은 앞에 앉아 있는 리철만에게 다시 한 번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정보를 물었다.

그에 리철만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더듬더듬 답을 하였다.

“그러니까니… 장영철 대좌와 저희 1군단… 총원 58명 중 금강산에서 굶어 죽은 병사가 32명으로… 26명이 남았습네다. 그런 가운데 저와 함께 온 다섯 명은… 도저히 되놈들 말을 믿을 수 없어… 귀순을 한 것입네다. 그리고… 제가 넘겨 드린 그것이… 장영철 대좌가 되놈들에게 건네받은 핵 배낭입네다. 믿어주시라요.”

리철만은 혹시라도 자신의 말을 김석원이 믿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진심을 담아 간절하게 토로했다.

자신이 테러를 지시 받고 이곳 개성으로 오게 되었다는 내용과 그 증거로서 핵 배낭의 존재를 이야기했다.

김석원도 리철만이 가져온 물건이 핵 배낭이란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비록 전략 핵무기는 아니지만, 핵 배낭 하나라 해도 그 위력은 결코 무시하지 못했다.

만약 퍼레이드가 진행되고 있는 개성에서 폭발이 일어난다면 엄청난 비극이 초래될 것은 불을 보듯 빤하였다.

하지만 천만다행하게도 리철만이 먼저 제보를 하며 자수를 해와 그 조짐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구 북한군 잔당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중국이야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음모를 꾸민 것이지만, 구 북한군 잔당들의 지휘관은 그저 개인의 영달만을 위해 같은 민족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게 아닌가.

다행히도 아직 테러가 벌어지진 않았지만, 테러 기도를 꾀했다는 자체만으로도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

“아, 할 말 있으면 편하게 하십시오.”

무언가 눈치를 보며 망설이는 듯한 리만철의 모습에 김석원은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한결 편안해진 분위기에 리철만은 마음이 놓이는 듯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고조 제 가족들은 모두 무사한 것입네까? 언제쯤이나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것입네까?”

리철만이 자수를 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다름 아닌, 바로 그의 가족들 때문이었다.

사실 그는 통일 이전 전방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작스레 통일이 되면서 의도치 않게 장영철을 때라 금강산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당시 리철만의 계급은 상위로, 그 또한 북한 내에서 출신 성분이 그리 나쁘지 않은 터였다.

그렇지만 김장은 정권이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북한은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군인들에 대한 보급만큼은 최우선적으로 지급되었다.

하지만 김종일에 이어 3대째 세습이 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김장은은 국제적으로 고립된 형세를 뒤집기 위해 더욱 강력한 무기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만약 그 예산을 경제에 쏟았다면 파탄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수도 있을 노릇이겠지만, 아무튼 대륙간탄도탄(ICBM)이나 잠수함 탄도미사일(SLBM) 등을 개발하겠다며 엄청난 예산을 낭비하였다.

솔직히 북한 주민들에게 그런 것은 전혀 쓸모가 없는 것들이었다.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할 판국에 무기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결국 북한의 경제 붕괴는 그 여파가 군에까지 미쳤다.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군대마저도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리철만은 가족들을 최전방까지 데려올 수가 없었다.

그나마 평양에 있어야 굶지 않고 생활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일이 꼬이려는 것인지, 리철만은 장영철을 따라 다시 금강산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후로 리철만은 하루하루가 지옥과도 같이 느껴졌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작정 금강산으로 들어갔으니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비전이 없는 건 당연했다.

결국 동료와 부하들이 지독한 굶주림에 하나하나 쓰러져 갔고, 일부는 그런 동지들의 시신을 식량으로 삼기도 했다.

그야말로 한 편의 지옥도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런데 저 혼자 잘살겠다고 인민들 속에서 핵무기를 터뜨리겠다는 장영철 대좌의 말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군인으로서의 신념이나 정체성을 망각한 그의 모습에 리철만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그러고는 장영철의 계획을 국군에 제보하며 자수를 한 것이다.

군에서는 리철만과 함께 귀순한 군인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주었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그들에게 배불리 먹여주면서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해 준 것이다.

그와 동시에 금강산에 남은 구 북한군의 정세나 개성에서 테러를 하려는 이유 등에 대하여도 계속 조사를 해나갔다.

그 과정에서 리철만은 자신의 가족들이 평양에서 잘살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러자 한시라도 빨리 가족들을 만나고 싶어졌다.

그래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털어놓았다.

지금 리철만의 관심사는 평양에 있는 가족을 언제 만날 수 있느냐는 것뿐이었다.

“예. 테러범들이 모두 잡히면 그때 간단한 조회만 마치고 가족분들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저희가 리철만 씨를 바로 가족들과 만나게 해드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리철만 씨와 가족분들의 안전을 위해서입니다.”

김석원은 조급해하는 리철만을 다독이며 현재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테러를 모의한 장영철 일당이 아직 붙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리철만과 귀순 장병들은 결코 신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장영철 일당의 입장에서는 배신자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존재를 노출시켜서는 안 되었다.

“알갔습네다. 내래 조금 더 참고 기다리갔습네다.”

“네, 부탁드립니다. 조만간 장영철과 그 일당들이 붙잡히면 바로 가족분들과 만나게 해드리겠습니다.”

김석원은 리철만을 안심시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어볼 요량으로 리철만을 찾아왔지만, 소득은 별로 없었다.

새로운 정보라 할 만한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 ◈ ◈

한편, 장영철과 그의 부하들은 핵 배낭을 멘 대원을 남겨두고 각자 정해진 위치로 이동하였다.

그런 가운데 장영철의 눈빛이 조금은 이상했다.

뭔가 복잡한 고민거리가 있는지 그의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제길!’

장영철은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었다.

사실 그는 부하들에게 배낭의 정체에 대해 알리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측근에게만 일러 약속된 시간이 되기 전에 폭발 범위를 벗어나기로 한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지금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지금까지 자신을 따르던 부하들이 아닌가.

그런 이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 때문에 일말의 양심이 고개를 든 것이다.

하지만 그도 잠시.

자신이 먼저 살아야 하기에 그들을 외면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폭탄이 터지면 주변에 총을 쏴 혼란을 야기하도록 하기요.”

“저… 군관 동무, 굳이 인민들에게 총까지 쏴야 하갔습네까?”

너무나 냉혹한 지시에 부하 중 하나가 조심스레 의문을 재기했다.

한때 같은 체제하에 있던 인민들에게 총을 쏜다는 것에 꺼림칙한 기분이 든 것이다.

“저 간나들은 우리가 지켜야 할 인민이 아님메. 자본주의에 물든 반동들이지비!”

죄책감을 감추기 위해 장영철은 오히려 성을 내며 부하를 윽박지르듯 소리쳤다.

서슬 퍼런 그의 대꾸에 말을 꺼냈던 부하는 움찔했다.

“각자 위치로 가라우!”

“알갔시오.”

장영철의 차가운 호통에 부하들은 얼른 정해진 자리로 가 약속된 작전 시각을 기다렸다.

부하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본 장영철은 자신의 내심을 들킬까 싶어 얼른 측근들을 데리고 이동하였다.

언제부터인가 장영철과 그의 부하들을 주시하는 이들이 있었다.

너무도 추레한 모습에 의심을 품은 주민이 신고를 한 것이다.

남북 간의 통일이 이루어지고 난 후, 북한 지역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3년간의 군정을 거치면서 치안도 좋아지고, 치밀하게 계획된 경제정책으로 북한 지역 주민들도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러하였기에 김씨 일가가 통치할 때와 다르게 주민들은 얼굴도 뽀얗고 살도 통통하게 올라 보기 좋은 상태를 유지했다.

한데 장영철과 부하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금강산에 숨어 지낸 그들에게 기본적인 영양 공급이 가능할 리 없었으니.

그들의 지금 몰골은 예전 김씨 일가가 통치할 때의 북한 주민 모습과 흡사했다.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마냥 앙상한 몸.

그 때문에 처음에는 혹시나 부랑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신고가 접수되었다.

무엇보다 아이러니한 것은 신고를 한 이가 북한 주민이라는 점이었다.

오늘 행사를 구경하기 위해 개성을 찾은 사람들은 장영철과 그 부하들을 보고도 그저 노숙자려니 하였다.

하지만 개성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예전 구 북한 정권이 지배할 때만 해도 거동이 수상한 자들을 보면 무조건 신고를 해야 했다.

우스운 일이지만, 통일이 되고 3년이나 흐른 지금에도 그런 잠재의식이 남아 있어 신고를 한 것이었다.

일단의 시선은 장영철과 부하들이 갈라지자 저마다 행동에 나섰다.

각기 인원을 나눠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가는 장영철과 그 일행들을 추적하기 시작한 것이다.

“본부, 통일1로 A―2구역, 거동 수상자들을 발견하였습니다. 추적하겠습니다.”

국정원 2과 요원인 박용욱은 자신의 담당 구역을 살피다가 순찰 중인 순경에게서 중요한 제보를 받았다.

거동이 수상한 사람들이 돌아다닌다는 것.

그 순간, 박용욱은 직감했다.

자신이 찾던 게 바로 그들이라는 것을.

서둘러 출동한 그는 곧 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고는 허름한 행색 차림을 한 채 인파 속으로 파고드는 장영철 일행의 모습에 박용욱은 서둘러 그 뒤를 쫓았다.

개성시 버스 터미널.

핵 배낭이 터지기 전에 폭발 범위 밖으로 벗어나려는 장영철 일행을 불러 세우는 이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신분증을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다름 아닌 박용욱이었다.

그는 이미 상대방이 테러 용의자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은 채 평범한 검문인 양 태연스레 협조를 요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장영철과 그 일행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몇 년간 금강산에 숨어 지내느라 신분증이라 할 만한 것이 전혀 없었다.

그랬기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 자리에서 정체가 탄로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장영철 일당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사이, 박용욱은 조심스럽게 그들의 거동을 살폈다.

이미 심증이 굳어진 상태라 상대방이 어떤 돌발 행동을 벌이지는 않을지 경계하는 것이었다.

이미 개성 시내 전역에는 테러에 대한 경계령이 내려져 있는 상태였다.

민간인들의 동요를 우려해 겉으로 알리지는 않았지만, 이미 내부적으로는 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단순히 테러에 대비하는 것뿐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이참에 테러리스트들을 소탕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한편, 장영철은 심상치 않은 박용욱의 태도에 한껏 긴장감을 끌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표 나지 않게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어디를 살펴봐도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주변 곳곳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인물들이 있는 탓이었다.

사실 박용욱은 장영철 일당을 포착하고 이미 주변에 있는 국정원 요원들과 테러 진압 요원들을 모두 호출한 상태였다.

물론 이곳에 모인 국정원 요원과 테러 진압 요원들이 전부는 아니었다.

현재 장영철의 일당이 개성시 이곳저곳으로 흩어졌기에 다른 요원들은 지금 그들을 쫓고 있는 중이었다.

장영철은 이미 자신이 포위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순순히 두 손을 들었다.

“어떻게 안 기요?”

그러고는 체념한 듯이 물었다.

박용욱은 장영철이 얌전히 투항하자 그제야 굳었던 표정을 풀고 대답을 해주었다.

“이미 너희들의 계획은 모두 탄로났다.”

박용욱은 그에게 수갑을 채우며 차갑게 대꾸해 주었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이들을 호송차에 태웠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체포 과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 ◈ ◈

탕! 탕!

타타타탕!

“꺄악!”

“사람 살려요!”

“엄마야!”

국군의 날 퍼레이드가 한창인 개성 통일로의 한 지점.

갑작스럽게 발생한 총격전으로 인해 주변 일대는 아비규환이 되었다.

“잡아!”

탕! 탕!

“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 만세… 으악!”

160㎝의 작은 키에 낡은 황토색 작업복을 입은 남자는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대치를 하다 마지막 순간 자살을 하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 주변은 온통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여기저기 피를 쏟아내며 신음을 흘리는 사람들.

한쪽에는 구경거리라도 되는 양 휴대폰을 들이대며 영상을 찍어 댔다.

그나마 사태를 파악한 일부 시민들이 관공서에 신고를 하기도 했다.

삐뽀! 삐뽀!

다행스럽게도 개성시 일대에는 비상 대책반이 미리 마련되어 있었기에 총격이 발생하자마자 대처에 들어갔다.

급히 달려온 구급차가 부상자들을 실어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하였다.

그리고 경찰은 빠르게 일대에 폴리스 라인을 설치하여 주변을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몇몇 사상자가 발생하기는 했지만, 테러범이라 짐작되는 이들이 대량 살상을 저지르기 전에 진압할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폭탄이 터지기 전에 제압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만약 그들을 저지하지 못했다면 참으로 끔찍한 비극이 일어났을 것이 불 보듯 뻔하였다.

사정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빠르게 수습된 탓에 그리 심각함을 깨닫지 못했다.

그랬기에 그들의 관심은 금세 사라졌다.

알지 못하는 일에 신경을 쓰는 것보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군사 퍼레이드가 더 흥미롭기 때문이었다.

그런 가운데 조용히 현장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과 다르게 보이지 않기 위해 행색을 꾸몄지만, 딱 봐도 외국인이란 것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잠시 사건 현장을 주시하다 곧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였다.

한적한 여관 골목으로 들어간 사내들은 잠시 주변을 살피더니 금세 안으로 들어갔다.

◈ ◈ ◈

좁은 실내.

아랍 계통 인종으로 보이는 사내들이 테이블을 앞에 두고 서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갖가지 물건들이 널려 있었다.

그 물건의 모습은 사내들의 정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다이너마이트와 격발장치.

이들은 폭탄을 통해 의지를 전달하는 테러리스트인 것이다.

똑! 똑! 똑똑! 똑!

한창 다이너마이트에 격발장치와 연결하고 있던 사람들이 노크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중 누군가가 테이블에 놓인 권총을 들고 문 뒤로 가 섰다.

“누구요?”

총을 든 사내는 문을 겨누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곧 대답 소리가 들려왔다.

“핫산입니다.”

덜컹.

이들 일행 중 한 명인 핫산은 총소리가 들리자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밖을 둘러보러 나간 참이었다.

“그래, 무슨 일이야?”

핫산이 안으로 들어서자 방 가장 안쪽에 앉아 있던 남자가 물었다.

방 안에 있는 이들의 정체는 수니파의 극단 무장 단체인 이슬람 국가(IS)의 조직원들이었다.

이들은 지금 IS의 지도자인 압둘라의 지시를 받고 한국으로 침투한 상태였다.

한국 때문에 여러 번의 작전을 실패한 IS는 어떻게든 복수를 하기 위해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10월 1일에 대대적인 군사 행사를 치른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테러를 준비했다.

상징적인 날에 테러가 벌어진다면 한국의 위신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복수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준비를 하는 중에 갑자기 요란스런 총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난데없는 소란에 이들 역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자신들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누군가 테러를 감행한 듯 보인 탓이었다.

이들 IS의 자살특공대의 대장인 무하메드 알 카심은 서둘러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부하 중 한 명인 핫산을 밖으로 내보냈다.

만약 다른 이들이 먼저 선수를 친 것이라면 그 내용을 확인해야만 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소란 탓에 자신들이 계획한 작전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경찰이나 특수부대가 출동을 하게 된다면 오늘 테러는 물 건너간 셈이었다.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신세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탓에 무하메드는 핫산이 들려줄 이야기에 집중했다.

곧 핫산의 입에서 바깥 상황에 대한 내용이 흘러나왔다.

“조금 전 총소리는 구 북한군이 벌인 것이라 합니다. 그들도 저희처럼 오늘 테러를 모의했는데, 사전에 그것이 발각되어 모두 제압되었다고 합니다.”

무하메드는 핫산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는 한편 어이가 없었다.

설마 자신들 말고 또 다른 이들이 테러를 계획했다니.

그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하필이면 그들이 설쳐 대는 탓에 자신들은 목적을 이루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그럼 지금 바깥 상황은 어떤가?”

그렇지만 핫산에게서 들려온 말은 참으로 뜻밖이었다.

“경찰 특공대나 테러 진압 부대는 조금 전 총격전을 끝으로 철수했습니다. 지금은 경찰과 소방관들만이 남아서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무하메드에게는 그야말로 천우신조인 셈이었다.

국정원은 이번 테러에 대한 이슈를 덮기 위해 마무리를 서둘렀다.

괜히 주변을 돌아다니다 냄새를 맡은 기자나 시민들에게 포착되기 전에 자취를 지우려 한 것이다.

그로 인해 개성시 전역에 나가 있던 국정원 직원과 대테러 부대원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결정적인 실수였다.

테러에 대한 경험이 없기에 모든 임무가 마무리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설마 또 다른 테러가 준비되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하지만 그것이 무하메드에게는 회심의 기회가 되어주었다.

“그래? 그렇다면 어서 서둘러라! 저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복수를 완수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탁! 탁!

정황을 파악한 무하메드는 계획을 앞당기기로 마음먹었다.

그의 지시에 따라 테이블 위에서 폭탄을 조립하던 부하들의 손놀림도 바빠졌다.

사실 이들은 지도자인 압둘라에게 임무를 받을 때부터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경전(코란)에 기록된 지하드(성전)을 실천하는 무슬림.

적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草芥)와도 같이 여기는 무슬림의 전사.

그것이 바로 자신들이라 믿고 있는 것이다.

인원수에 맞게 제작을 마친 사내들은 각자 비장한 표정을 지으면 폭탄 조끼를 입었다.

그러고는 그 위로 겉옷을 걸쳤다.

펑퍼짐한 크기의 겉옷은 폭탄 조끼를 빈틈없이 가려주었다.

폭탄 조끼를 두른 IS의 테러범들은 곧 여관을 빠져나와 퍼레이드를 구경하는 인파 속으로 스며들었다.

◈ ◈ ◈

“뭐야? 너희들, 왜 다 들어오는 거야?”

김기춘은 국정원 임시 지휘소로 들어오는 부하들을 보며 물었다.

“3차장님께서 모두 들어오라던데요?”

마침 안으로 들어서던 요원 중 한 명이 2차장 김기춘의 질문에 대답을 하였다.

그에 김기춘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야! 이곳 지휘는 내가 맡고 있는데 누구 명령을 받고 들어와? 이거, 정신머리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너희, 빨리 제자리로 안 돌아가?”

국정원이 벌이는 일이 원체 비밀리에 진행되고, 또 팀별로 임무가 있어 서로 터치를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같은 차장이라고 해도 엄연히 급이 다른 법.

오늘 테러 대비에 있어 총괄 지휘를 하는 것은 국내 파트를 담당하는 자신의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3차장이 월권을 하였다.

“어서 안 뛰어가!”

머뭇거리는 부하들을 보며 고함을 친 김기춘은 굳은 표정으로 아직 들어오지 않은 3차장에게 무전을 날렸다.

“3차장, 지금 뭐하는 짓이야! 지금 시국이 어떤 상황인데 요원들을 들여보내는 거야!”

김기춘은 3차장인 장세용이 있을 것이라 예상되는 곳을 주시하며 소리쳤다.

바로 그 순간, 김기춘의 눈이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그와 동시에 국정원 임시 지휘소 전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쾅! 쾅! 쾅!

모니터에 비친 개성 시내 이곳저곳에서 시뻘건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잠시 후, 불길이 가라앉은 뒤로 보이는 주변 일대의 모습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와 함께 사람들의 육편(肉片)이 거리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불길을 피해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인해 거리는 아비규환(阿鼻叫喚)이었다.

툭!

김기춘은 너무도 놀라 손에 들고 있던 무전기를 떨어뜨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어떻게 된 일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분명 제보를 받고 완벽하게 준비를 마쳤다.

덕분에 끔찍한 참사가 터지기 전에 테러리스트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

분명 그렇게 되었는데…….

비록 장세용 3차장에게 따지려 했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아까 전 총격전을 끝으로 테러 시도는 모두 끝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폭탄 테러가 발생한 것이다.

때문에 김기춘은 지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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