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코리아-99화 (99/118)

7. 모의(謀議)

9월 17일, 대통령 선거 당일.

민족수호당 당사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정명수는 당일 오전 일찍 인근에 위치한 선거구에 들러 투표를 하고 바로 당사로 출근을 하였다.

이날 방송국은 앞 다투어 선거 결과를 예측하며 보도를 하고 있었는데, 정명수와 그를 지지하는 많은 민족수호당 의원들, 그리고 당원들은 당사에 모여 커다란 TV 모니터를 보며 초조하게 투표 결과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전체 유권자 4,988만 명 중 93%의 투표율을 보이고 있었다.

투표를 한 유권자 중 46,388,400명이 투표에 참여를 했으며, 방송국에서는 당선 가능 득표수를 총 투표수 중 45%인 20,874,780표 정도로 예측하였다.

여타의 여론 조사 기관에서도 예상 득표수를 2천만 표 정도로 예상했기에 차이는 별로 없었다.

그리고 현재 득표 1등을 달리고 있는 것은 민족수호당의 정명수 후보였다.

리포터가 투표가 시작되는 새벽부터 투표장 입구에서 예측 조사를 하였던 것처럼 45%가 개표된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정명수 후보는 11,009,855표로 전체 투표수 중 24%가 조금 못 되는 득표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2위는 한국당의 김승만 후보로 그의 득표수는 6,958,260표였으며, 3위인 민족당의 이대중 후보는 그보다 30만 표 정도 뒤지는 6,639,988표였다.

뭐, 그 뒤로 나온 후보들은 당선과는 거리가 먼 득표수를 보이며 이들 3인 중 한 명이 제22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이 유력했다.

하지만 투표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은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것처럼 정명수 후보를 보며 일찍부터 당선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결과가 여당의 표밭이라 불리는 경남과 경북, 그리고 민족당의 표밭이라 불리던 전라도 지역의 개표가 70% 정도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러다 보니 민족수호당의 의원들이나 당원들의 축하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물론 아직 서울과 경기, 그리고 북한 지역의 결과가 모두 집계된 것은 아니지만, 투표 전 사전 조사를 했을 당시 서울과 경기, 그리고 북한 지역에서 민족수호당의 정명수 후보가 한국당의 김승만 후보나 민족당의 이대중 후보를 압도적으로 눌렀기에 사실상 결과를 보는 것이 민망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예측대로 계속해서 올라오는 개표 상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명수 후보와 다른 후보들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역별로 선거 득표수를 나타내는 그래프를 보면 참으로 특이한 것이 드러났는데, 그것은 바로 북한 지역의 선거 결과였다.

동그란 원 안, 득표수에 따라 정당의 색으로 표시를 한 그래프에 북한의 거의 모든 지역이 민족수호당의 색인 녹색으로 물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일부 지역도 마찬가지로 여당인 한국당이나 제2야당이 된 민족당의 붉은색이나 파란색은 별로 없고, 거의 대부분이 민족수호당의 색깔인 녹색이었다.

그리고 아직 개표가 끝나지 않아 덜 채워진 원의 빈틈은 빠르게 녹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비록 북한 지역의 유권자가 남쪽에 비해 절반 정도인 1,700만 명 정도이기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북한 유권자가 정명수 후보를 선택하였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하는 바였다.

2025년, 갑작스럽게 한반도가 통일되고 민주주의가 북한 지역에 퍼지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3년이 되었다.

그런데 정부 여당의 후보보다, 그리고 오랜 기간 제1야당으로 집권했던 민족당의 후보보다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민족수호당의 후보를 선택했다는 것은 그만큼 민족수호당이 북한 지역 주민들에게 가깝게 다가갔다는 의미였다.

사실 한국당이나 민족당은 말로는 화합을 외치지만, 한 번도 진실되게 북한 지역 주민들에 대하여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아무리 치안을 위해 군이 관리하는 지역이라고는 하지만, 선거철에만 잠시 들러 유세만 하고 돌아간 그들과 대통령 선거가 있기 전부터 북한 지역을 돌아다니며 형편이 어려운 주민들을 찾아 도움의 손길을 건넨 민족수호당 중 북한 주민들이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는 뻔한 일이었다.

아무튼 제22대 대통령 선거 결과는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예측대로 압도적인 득표수 차이로 민족수호당의 정명수 후보가 대한민국의 제22대 대통령 당선자로 이름을 올렸다.

제22대 대통령 당선자가 된 정명수의 총 득표수는 29,986,998표였다.

전체 투표수 중 64%가 넘는 득표율을 보였으며, 한국당이나 민족당, 그리고 무소속으로 나온 후보들의 총 득표수를 아득히 넘어가는 차이를 보인 것이다.

◈ ◈ ◈

와장창!

“바가야로(ばかやろう)!”

일본의 한 저택에서 노년의 남자가 보고 있던 TV를 향해 거칠게 욕을 하며 탁자 위에 놓인 컵을 들어 던졌다.

쾅!

파직!

TV 모니터는 남자가 던지 컵과 부딪혀 폭발을 하고 말았다.

“코우테이(こうてい, 皇弟)!”

갑작스런 소란에 밖에 있던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그 남자를 불렀다.

방금 전 화가 나 TV 모니터에 화풀이를 한 남자의 정체는 바로 현 일본의 왕 요시히토의 동생인 나루히토였다.

나루히토는 일본이 떠오르는 태양처럼 비상을 하기 위해선 가까이 있는 한국, 한반도가 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한반도에 뛰어난 인물이 나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해 오랜 동안 공작을 해왔다.

5년 전에 해체된 일신 그룹 또한 그런 곳 중 하나였다.

일신 그룹은 나루히토의 염원이 담긴 후원으로 성장을 하였고, 또 영재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대한민국의 어린 영재들을 찾아 세뇌를 시켜 일본을 위해 재능을 사용하는 일꾼으로 만들었다.

그런 나루히토의 계획은 오랜 동안 순조롭게 진행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어느 순간부터 운영이 삐끗하더니 수십 년을 기울여 키웠던 후원 기업이 한순간에 해체되었다.

그 과정에서 막후에 있던 일본의 존재가 어느 정도 드러나게 되었으며, 그동안 한반도에서 벌였던 공작들이 하나둘 수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5년 전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재차 공작을 했지만, 시기가 좋지 못해 실패를 하였다.

그래서 절치부심(切齒腐心)하여 다시 한 번 공작을 하였지만, 이번에도 보기 좋게 실패를 하고 말았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쓸데없이 한국에 자금을 가져다 바친 꼴이 되어버렸다.

일본을 막후에서 지배하는 세력과 나루히토는 통일이 된 한국이 발전하는 모습을 저어하여 자신들의 말을 잘 따르는 위인을 한국의 수장으로 앉히려고 공작을 꾸몄다.

그 과정에서 많은 비자금이 한국에 투입되었다.

비자금은 그들이 후원하는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게 하기 위해 투입된 것이라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으면 회수가 불가능했다.

나루히토가 속한 조직이 한국의 대선에 쏟아부은 자금의 규모는 총 1조 엔이나 되었다.

1조 엔은 한국의 원화가치로 환산하면 3조 원이나 되었으며, 그만한 자금이 허공에 붕 떠버렸으니 나루히토가 이렇게 흥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아무리 일본이 경제대국이고, 또 그런 일본을 막후에서 지배하는 조직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상당히 무리가 가는 돈이었다.

“구로다를 불러라!”

나루히토는 방으로 들어온 사내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자신의 할 말만 하였다.

그가 말한 구로다란 바로 현 일본의 총리인 아키야마 구로다였다.

영원할 것 같던 거대 여당인 자민당이 해체되고, 그 자리를 신일본선진당이 차지하였다.

자민당이 해체된 것은 사실 2024년에 벌어진 스캔들 때문이었다.

동맹국인 한국에 스파이를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그곳에서 대규모 테러 행위를 자행한 것이 일본 수상의 명령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일본은 국제적으로 배척을 받게 되었다.

그 때문에 오랜 경기침체에서 겨우 벗어나던 일본의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때문에 가뜩이나 지지율이 낮아지고 있던 총리는 자신의 실책을 통감하며 자리를 사퇴하였다.

하지만 일본의 국민이나 세계인들은 그런 일본 총리의 반응에 냉담했다.

문제만 생기면 자신이 책임을 모두 떠안고 물러나겠다고 떠드는 일본의 정치인의 태도는 도저히 신뢰(信賴)가 가지 않는다며 믿지를 않았다.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려는 수작이라며 국회와 자민당 당사 앞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그 때문에 자민당은 국회와 국민 모두에게 압력을 받게 되었고, 또 당 내에서도 신진파와 노장파 간의 갈등이 대두되면서 결국 해체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거대 여당인 자민당이 해체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의 정치는 바뀌지 않았다.

그저 지배 세력의 당 이름만 바뀌었을 뿐인 것이다.

아무튼 현 일본의 총리는 자민당이 물러난 자리를 차지한 신일본선진당의 대표인 아키야마 구로다였다.

그런데 신일본선진당의 총수이며 현 일본 총리인 아키야마 구로다의 진정한 정체는 바로 일본의 막후 지배자인 흑룡회의 간부였다.

예전 자민당의 총수 아베 미노루가 그랬듯 그 또한 같은 조직의 간부인 것이다.

◈ ◈ ◈

드르륵, 척.

“부르셨습니까, 총수님.”

방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온 반백의 남자가 일본 전통 의상을 입은 채 다다미방에 앉아 있는 나루히토의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였다.

“일이 실패했더군.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을 향해 극공의 예를 갖추며 인사를 하는 총리를 보면서도 나루히토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억양으로 물었다.

그런 나루히토의 물음에 구로다 총리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대답을 하였다.

“이렇게 된 이상 반도를 불바다로 만들 것입니다.”

구로다는 과격한 표현을 사용해 가며 대답을 하였다.

“호, 그게 가능하겠나?”

나루히토는 구로다의 말을 듣고 눈에 이채를 띠며 물었다.

인간이 소통하는 수단은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다.

대화가 있고, 또 폭력을 동반한 수단이 있다.

그리고 그런 수단 중 가장 최악의 방법은 누가 뭐라 해도 전쟁이었다.

어떤 사람은 전쟁을 가리켜 늙은것들이 젊은이들의 목숨을 가지고 벌이는 유희라고 했다.

자신의 생명이 위협 받지 않으니 거침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일본의 총리인 아키야마 구로다는 지금 자국인 일본도 아니고, 동맹인 대한민국에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현대 시대에 접어들며 국가 간의 전쟁이란 상황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 어렵지만도 않은 것이, 이득을 위해선 자국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 상관하지 않는 위인 또한 참으로 많았다.

그리고 그런 위인들이 많은 나라를 구로다는 잘 알고 있었다.

입으로는 애국이니 민족을 위한다고 떠들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개인의 이득을 위해 나라와 민족을 배신하는 위인들.

그런 인물들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그들은 정녕 모를 것이다.

농장에서 가축을 사육하듯 먹이를 주며 그들을 키웠고, 농장 주인이 식탁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가축을 잡듯 구로다는 일본을 살찌우게 하기 위해 그동안 세뇌시켜 온 이들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예. 욕심 많은 돼지들을 먹이로 유인하고, 그동안 먹이를 주며 키우던 가축들을 이용하면 식탁은 무척이나 풍성해질 것입니다.”

“돼지들을 먹이로 유인하고 가축들을 이용한다? 하하하하!”

나루히토는 구로다 총리의 말을 듣고 뭐가 그리 기꺼운지 조금 전 화를 내던 모습과는 다르게 화통하게 웃었다.

그런 나루히토의 면전에서 부복(俯伏)하고 있는 구로다의 눈빛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 ◈ ◈

미국 워싱턴 DC 북서쪽 포토맥 강, 글렌 에코.

유유히 흐르는 포토맥 강을 따라 길게 뻗은 도로 위로 검정색 세단이 서 있었다.

차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가끔 차를 세워두고 강가로 내려가 피크닉을 즐기는 이들도 있기에 전혀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말에 피크닉을 나와 여유를 즐기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포토맥 강변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간편한 복장으로 낚시를 즐기는 백인의 곁에 검정색 양복을 입은 작은 키의 동양인이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별로 이상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기도 하지만, 그들 주변으로 검정색 양복에 인이어를 귀에 낀 채 주변을 살피는 경호원들이 있어 절대 피크닉이나 휴가를 즐기는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장관님, 저희의 제안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난 더 이상 장관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미국의 전 국무장관이었던 리노 레이놀즈는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떠들고 있는 일본인의 의도를 알 수가 없어 계속해서 부정의 답변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일본인은 무섭도록 집요하게 자신에게 제안을 던져 댔다.

마치 악마의 유혹처럼 무척이나 달콤한 것이, 정말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사실 지금 리노 레이놀즈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가 국무장관의 자리에서 물러날 때 현 대통령과 척을 지고 물러났기에 현재 그는 정치판에서 끈 떨어진 연과 같은 신세였다.

정치적 동반자였던 존 슈왈츠 대통령을 몰아내고 차기 대권을 노렸기에 공화당이나 민주당에서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친구를 배신한 사람이란 낙인이 찍힌 것이다.

그런 탓에 어지간해서는 정계 복귀가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 이 눈앞의 일본인이 자신을 정계로 복귀시켜 줄 뿐 아니라 접었던 꿈을 이루게 해주겠다며 제안을 하고 있었다.

물론 존 슈왈츠의 재임 기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정치생명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 자신에게 정계 복귀는 물론이고, 대통령의 자리까지 안겨주겠다는 말을 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데 처음 품었던 생각과 다르게 계속되는 이 일본인의 말을 듣다 보니 전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지가 않았다.

이미 미 의회에 이들이 후원하고 있는 의원들이 상당했으며, 정치판에서 절대적인 진리라는 자본의 논리를 들이미는 데 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자리에서 물러나고 보니 리노 레이놀즈의 눈에 자신보다 먼저 장관의 자리를 그만둔 리지 오스왈도 전 국방장관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자신을 막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맡고 있던 국무부에도 정보국(INR)이 존재하는 것처럼 국방부에도 정보를 취급하는 국방정보국(DIA)이 있었다.

그리고 국무부의 정보조사국이 외국의 전반적인 정보를 취급한다고 한다면, 국방부의 국방정보국은 전적으로 군사력과 관련된 정보만을 취득하였다.

전반적인 정보력은 국무부 산하 INR의 정보력이 더 우수하지만, 군사력 부문에서만은 국방부 DIA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뒤늦게 리지 오스왈도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자신을 반대했는지 알게 된 리노 레이놀즈는 지금 자신을 유혹하고 있는 일본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금 이 일본인은 미국의 또 다른 동맹인 한국을 오래전 그랬던 것처럼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고 싶어 했다.

사실 그가 국무장관의 자리에 있을 때는 그러거나 말거나 미국의 입장에선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었기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언젠가부터 미국의 말에 반항하는 듯한 한국의 행동에 제제를 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일본의 편을 들어줬을 뿐이다.

물론 그 대가로 많은 것을 일본으로부터 받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최근 국무장관의 자리에서 물러나 뒤늦게 시야를 넓히다 보니 자신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리 국무장관의 자리에서 물러났고, 또 현 대통령인 존 슈왈츠와 관계가 좋지 못하다고는 해도 그동안 쌓은 인맥이 있기에 여러 가지 정보들이 들려왔다.

그런데 자신과 친분이 두터웠던 중동 파견군 사령관 데이비드 매카시 대장에게서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한국의 PMC의 활약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아니, 그저 대단한 정도가 아니라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일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자 일선에서 물러나 무력하게 지내던 삶에서 활력을 찾게 된 듯했다.

매카시 대장이 말한 곳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던 중 리노 레이놀즈는 한때 CIA의 말론 국장과 함께 꾸몄던 일이 생각이 났다.

그와 동시에 그동안 잊고 있던 이름이 떠오르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CIA의 관리 코드에 M이라 분류가 된 천재 과학자이자 발명가인 정수한 박사를 기억해 낸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리노 레이놀즈는 자꾸만 낚시를 방해하는 일본인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난 모든 일선에서 물러난 사람이오. 정 그런 일에 필요한 사람을 찾는다면 이 사람을 찾아가 보시오. 이건 내가 일본에게 받은 호의에 대한 보답이오.”

한참 고민을 하던 리노 레이놀즈는 옆자리에 있는 일본인의 제안을 끝내 거절하였다.

그렇지만 자신이 장관으로 있을 당시 받은 것이 있기에 작은 호의를 베풀어 누군가를 소개해 주었다.

자신과 같은 급진파 위원 중 한 명을 그에게 소개해 준 것이다.

그러면서 자리를 뜨려는 일본인의 뒤에 대고 한마디를 던졌다.

“네 마지막 호의라고 생각하고 들으시오. 겉으로 드러난 것만 가지고 판단을 하지 말기를…….”

리노 레이놀즈는 그렇게 알 수 없는 말을 하고는 다시 시선을 포토맥 강에 담겨 있는 낚싯대로 향했다.

한편, 리노 레이놀즈를 끌어들이려던 일이 생각처럼 풀리지 않자 그가 소개해 준 사람을 찾아가기 위해 움직이던 오야 타나마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강변에 정차해 있는 자신의 차에 올랐다.

그렇게 오야 타나마루가 미국에서 자신들의 계획에 지지해 줄 정치인들을 만나고 있을 때, 중국에서도 또 다른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 ◈ ◈

상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랜드 마크인 동방명주탑이다.

높다란 기둥을 중심으로 구슬을 꿰어놓은 듯한 독특한 외형을 가지고 있는데, 이 동방명주탑은 미디어 그룹인 동방명주의 방송 수신탑으로 1994년 준공되었다.

건설 당시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은 건물이자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높은 건물로 기록이 되었다.

그리고 이 동방명주탑에서 내려다보이는 상해의 전경은 참으로 아름다워 전망대에 있는 식당이 아주 유명하다.

동방명주탑의 최고층 스카이라운지는 관광 명소로 알려졌기에 하루에도 몇 천 명이나 되는 관광객으로 혼잡한 곳인데, 오늘만큼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그 이유는 일본의 사업가가 오늘 하루 이곳 전체를 대여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동방명주탑의 스카이라운지는 한산했다.

평소 많은 인파가 북적이며 소란스러운 소음이 제거된 동방명주의 스카이라운지는 무척이나 조용하고 아늑하였다.

그리고 지금 동방명주 스카이라운지 한쪽, 상해의 야경이 보이는 창가 자리에 일단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덩치 큰 사내와 조금은 왜소한 남자.

상반된 체격을 가진 두 사람 주위에는 검은 양복을 갖춰 입은 경호원들이 자리해 있었다.

“일본에서 특사가 오다니, 참으로 뜻밖의 일이오.”

중국 국무원 부총리인 위청산은 오늘 자신을 만나자고 청한 일본 외무성 차관을 보며 조금은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사실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중국어로 다오위다오(釣魚島), 일본 말로 센카쿠 열도라 불리는 지역의 영토 분쟁 때문에 두 나라는 사실 적대 관계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비밀리에 이렇게 회담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일본이 뭔가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하, 나라를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저희같이 국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언제 어느 때든 국가가 필요하다면 손을 잡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일본인은 자신을 비꼬는 위청산의 공격적인 말투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능글맞게 말을 받았다.

결코 쉽게 대할 수 없는 언변의 소유자였다.

그러니 적대국이나 다름없는 중국까지 특사로 온 것일 테지만.

“우리 쓸데없이 각을 세우기보다는 양국에 이득이 되는 건설적인 대화를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일본 외무성 차관인 사사키 곤도는 안경을 고쳐 쓰고 눈을 반짝이며 본론을 꺼냈다.

그런 여유로운 태도에 위청산도 새삼 태도를 달리했다.

‘만만치 않은 자로군.’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일부러 무례하게 행동을 한 것인데, 상대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흘러 넘겼다.

“좋소. 그래, 우리와 하고 싶은 말이 뭐요?”

위청산은 사사키가 만만찮은 상대라 느끼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보통 외교 협상에서 먼저 본심을 내보이는 것은 상대에게 주도권을 내줄 수도 있는 일이라 대개는 삼가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중국의 외교관들은 보편적으로 그런 절차를 무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판단에서 나오는 태도였다.

사실 중국을 상대로 외교 협상을 하는 나라들은 대체로 한발 물러나며 양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통하는 힘의 논리에 따른 결과라고 할 수도 있었다.

엄청난 인구와 경제성장을 통해 강대국의 지위에 올라선 중국을 무시할 수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도 위청산이 보여주는 태도도 그리 낯선 것은 아니었다.

그는 중국인 특유의 거만함을 드러내며 자신을 불러낸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에 처음으로 사사키가 당황하였다.

설마 비밀 협상을 하기 위해 나온 자리에서까지 이렇게 직설적으로 물어올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이미 사전에 대략적인 정보를 건네주었는데도 외교적 수사 없이 직설적으로 물어보니 대답하기가 참으로 난감했다.

“음…….”

잠시 신음성을 흘린 사사키는 즉답을 피하며 다시 한 번 미끼를 던졌다.

“중국은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한국을 어떻게 본다라… 그게 무슨 말이오?”

다시 한 번 질문으로 대응하는 위청산.

좀체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는 위청산의 태도에 사사키는 잠시 뜸을 들이다 본론을 꺼냈다.

“이미 느끼고 계시겠지만, 한국은 중국이나 우리 일본에게 있어 발등에 떨어진 불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입니다.”

“발등의 불?”

“예, 솔직히 전 한국이 두렵습니다.”

사사키의 난데없는 말에 위청산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갑자기 한국이 두렵다니?”

이유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위청산의 질문에 사사키는 차분하게 대답을 하였다.

“부총리도 한국인들의 저력에 대해선 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음…….”

“고대 한반도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 그들이 뭉쳤을 때의 힘은 대륙조차도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위청산이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든 말든 사사키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고구려가 그랬고, 발해가 그랬으며, 고려가 그랬습니다. 조선에 와서야 그들의 세가 기울었지만 말입니다.”

말을 하던 사사키는 슬쩍 위청산의 표정을 살폈다.

자신의 말이 어느 정도 먹히는지 보려는 것이다.

“그건 다 지난 과거의 일이지 않소?”

사사키의 말에 심기가 불편해진 위청산은 애써 감정을 죽이며 일축했다.

“과거요? 하, 그럼 3년 전 일은 무엇입니까?”

“뭐요!”

그러다 3년 전 일을 언급하는 사사키의 말에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3년 전 일이란 것은 중국에게 있어 그야말로 치욕스런 사건이었다.

국무원 총리와 심양 군구 사령관이 작심을 하고 압록강을 건너 침략 행위를 하려다 패한 전투.

그 일로 인해 그 끝을 모르고 치솟던 중국의 자존심이 크게 꺾이고 말았다.

막강한 위세를 과시하던 군사력이 몇 수 아래라 평가하던 한국만도 못하다는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국제사회의 조롱은 물론, 중국 내부에서도 큰 충격의 여파가 휩쓸고 지나갔다.

국무원 총리는 자살하였고, 심양 군구 사령관이던 심보령은 사형이 언도되어 바로 집행을 했다.

심양 군구 예하의 장군들도 숙청의 칼바람을 피하지는 못했다.

아무튼 그 일은 중국 공산당에게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뼈아픈 사건이었다.

그런데 지금 사사키가 그러한 치부를 들춘 것이다.

“제 말에 기분이 상했다면 사과를 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그것이 아닙니다. 그때의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 한국인들은 합심을 하게 되면 무척이나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사사키는 위험이라는 말을 특히 강조하였다.

그의 교묘한 화술에 위청산도 나름 타당한 결론이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중국의 군사력 중에서도 최정예들로 구성되어 있던 심양 군구였다.

그런데 그들이 압록강조차 건너지 못하고 패퇴한 것이다.

최신형은 아니지만 중국 기갑 전력의 주력인 99식 전차가 상대에게 피해도 주지 못하고 괴멸당했다는 것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당시 한국군이 보유한 전차가 4세대(일부에선 5세대라 분류) 전차라지만, 99식 전차도 중국의 최고 기술로 만들어낸 전차였다.

물론 지금은 러시아에서 구입한 20식 전차를 주력으로 삼고 있지만, 그래도 불안함은 여전했다.

화력에서는 밀리지 않아도 한국의 전차와 큰 차이점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플라즈마 실드라 불리는 막강한 방어막이 바로 그것이었다.

때문에 중국군 내부에서는 최신형인 20식이라 해도 한국의 신형 전차는 상대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위청산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 역시도 한국과의 마찰을 빚는 것을 피하고 있었다.

막말로 일본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기에 한국과의 마찰이 생기더라도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겠지만 중국은 그렇지 못했다.

막강한 한국의 육군 전력을 직접적으로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없는 것이, 한국에도 핵무기가 존재했다.

통일 과정에서 북한이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를 수용하며 국제사회의 승인까지 받게 된 것이다.

그런 탓에 비록 숫자는 적지만 한국이 보유한 핵무기의 1/3만 사용해도 중국 전역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의 땅이 되고 말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예전처럼 한국을 함부로 다룰 수가 없게 된 이유였다.

그런데 지금 일본은 무엇 때문인지 계속해서 한국을 언급하며 무언가를 종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과연 그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위청산은 조용히 눈앞에 있는 일본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비록 한국이 한반도를 통일했다고는 하지만, 이제 겨우 3년입니다. 아직 북한 지역에는 통일을 반대하는 이들이 남아 있고, 중국과 우리 일본이 손을 잡는다며 충분히 한국을 거꾸러뜨릴 수 있습니다. 내부를 흔들고 외부에선 우리가… 그렇게만 된다면 아무리 한국이라도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사키는 말을 마치고는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위청산은 사사키의 말을 들으며 뭔가가 자신의 머리를 치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말대로 한국 내부에서 불만 세력이 궐기하여 내정을 불안하게 만들고 중국과 일본이 외부에서 흔든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곧 고개를 흔들었다.

그 이유는 바로 한국과 동맹 관계인 미국의 존재에 생각이 미친 탓이었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라 자칭하면서 낄 데 안 낄 데를 구분하지 않았다.

자국의 이득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곳이라면 국제 평화라는 말을 앞세워 군사력을 투사하였다.

그런 탓에 위청산은 방금 전 사사키의 말에 잠시 흔들렸던 생각을 접었다.

“만약 당신의 말대로 이루어진다고 칩시다. 그럼 미국이 가만있을 것이라 생각하시오?”

너무도 당연한 위청산의 의문 제기에 사사키는 호탕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미국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와 행동을 같이하지는 않겠지만, 그들의 원하는 것을 준다면 일련의 사태를 눈감아주겠다고 약조를 하였습니다.”

사사키는 아직 결정이 나지도 않은 일을 마치 결론이 난 것처럼 포장해 말을 하였다.

위청산은 일본이 미국과 이미 협상을 끝낸다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그, 그게 사실이오? 일본은 미국과 벌써 그런 협상을 끝낸 것이오?”

위청산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사키의 말에 다시 한 번 확인을 요구했다.

사사키는 당황한 모습으로 재차 물어오는 위청산의 질문에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대답을 하였다.

“물론입니다. 아무리 우리 일본이 한국에 위기의식을 느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미국과 동맹인 한국을 도모하는 데 미국의 허가도 없이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지는 않습니다.”

너무도 단호한 사사키의 말에 위청산은 그만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좋소, 그럼 우리와 함께 한국을 점령한다면 그 후 어떻게 한국을 분할할 것이오?”

위청산은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사사키의 말이 정말 사실인지 확인해 봐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눈앞의 보물을 놓칠 수 없다는 듯 일본이 계획한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말을 하였다.

사사키의 말대로라면 한국을 점령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예상도 못한 채 전쟁이 끝난 뒤 한국을 어떻게 분할할 것인지 등을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 ◈ ◈

우웅!

“사신―1, 이번에는 초음속 비행입니다. 초음속 상태에서 기체 반응을 시험하겠습니다.”

차세대 주력 전투기 X―4의 최종 시험비행.

이번 시험은 공군의 담당자도 참석하고 있는 탓에 한 치의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라이프 메디텍 파주 연구소의 비행 파트 연구원들이나 천하 항공의 엔지니어들은 전혀 긴장감을 느끼지 않았다.

사실 이번 시험은 그들에게 별 의미가 없었다.

공군 관계자가 점검을 하기 위해 요청한 탓에 시험비행을 할 뿐, 원래 계획된 최종 시험은 이미 예전에 끝나 있었다.

물론 공군 관계자가 이번 시험을 요청한 것에는 나름 중요한 이유가 존재했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불안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군에서는 국군의 날을 맞이하여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계획하였다.

이번 기회를 이용해 그동안 약세라 평가 받던 공군에도 최신 무기가 있음을 외부에 알리고자 일부러 점검 차원에서 X―4의 시험을 요구한 것이다.

X―4은 시험 기종으로 아직 다섯 대만 생산되었지만, 시작 단계부터 슈퍼컴퓨터의 시뮬레이션을 거쳐 가장 간단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설계를 하였기에 짧은 개발 기간임에도 조기에 성과를 보일 수 있었다.

더욱이 X―4에는 비밀 무기가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투명화였다.

레이더에만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눈으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비행체는 이미 개발되어 있는 상태라 그 기술을 전투기에 인용하는 것은 그리 힘든 일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X―4의 시험을 지켜보는 공군 관계자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다.

사실 대한민국은 차세대 주력 전투기를 스텔스 전투기로 못 박고 있었기에 참으로 난관이 많았다.

주변국들이 스텔스 전투기를 보유하거나 생산을 하고 있을 때, 대한민국은 스텔스 전투기 보유에 실패를 하였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구매를 하려고 하였지만, 이번에는 예산이 문제였다.

미국의 F―35는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점에 계속해서 발견되면서 설계 변경이 거듭 이루어졌다.

그에 따라 F―35의 개발비가 갈수록 늘어나게 된 것이다.

급기야 F―22의 보조를 위해 개발된 F―35의 가격이 F―22의 생산비에 육박할 정도로 늘어나는 웃지 못할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차라리 조금 더 돈을 보태 F―22를 구매하는 것이 더 나을 정도였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다 보니 미국도 F―35의 개발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물론 F―35의 개발사인 록히드 마틴 사에서는 로비를 통해 계속해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했다.

하지만 너무도 막대한 개발비 때문에 결국 그들도 프로젝트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육해공 통합 전투기로 개발하려던 계획을 철회하고, 각 군이 필요한 전투기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다.

아무튼 그런 사정 때문에 대한민국의 스텔스 전투기 도입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때문에 2027년이 되도록 대한민국 공군은 스텔스 전투기를 한 대도 보유하지 못했다.

주변 4개국이 스텔스 전투기로 무장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이는 큰 위험 요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이 스텔스 전투기를 자체적으로 개발한 것이다.

아니, 자체 개발한 스텔스 전투기는 그저 스텔스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이 보유하고 있는 최첨단 무기로 무장하여 그야말로 일기당천(一騎當千)이요, 만부부적(萬夫不適)이었다.

공군 관계자는 X―4의 위용을 보면서 심장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대단하군요.”

“당연한 일이죠. 지금부터는 화력 시험을 시연할 테니 이번에는 더미(Dummy)를 준비해 주세요.”

수한은 감격스러워하는 공군 관계자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X―4의 화력 시험을 주문하였다.

수한의 지시에 엔지니어들은 미리 준비해 둔 비행 타깃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비행 타깃은 무인 비행체로, 3x3m의 몸체를 가진 델타형 드론이었다.

이 또한 천하 항공에서 준비 중인 무기로, 미국의 F/A―47이나 펜텀 레이, 영국의 타라니스에서 연구하는 무인 전투기에 대응하기 위해 시험 중인 기체였다.

다만, 아직 초기 단계라 크기는 절반 정도에 그쳤지만.

아무튼, 무인 드론 역시 X―4의 화력 시험을 위해 준비가 모두 끝났다.

이제 X―4의 역사적인 데뷔만이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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