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코리아-98화 (98/118)

6. 대선(大選)

대한민국 연예계에 비상이 걸렸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톱스타 때문이었다.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그저 평소처럼 드라마 촬영을 하다 사라진 남자 배우가 주변에 알리지도 않고 잠적을 한 것이다.

그런데 실종된 남자 배우가 그동안 보여온 행실을 따지자면 너무도 많은 여자들에게 원한을 사 그의 실종을 두고 여러 가지 설이 흘러나왔다.

지저분한 사생활로 인해 버려진 여자가 원한을 품고 납치해 감금하고 있다는 설에서부터, 버려진 여자 중 누군가가 권력자의 애인이 되어 복수를 했다는 설 등이었다.

웃긴 점은 모든 추론이 박현빈이 그동안 보인 잘못된 행실이 원인이 되어 이번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용과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또 다른 소문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박현빈이 실종되기 전날, 드라마 촬영장에서 벌어진 일을 근거로 생산된 소문이었다.

요점은 박현빈이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는 루나의 애인과 촬영장에서 사소한 말다툼을 했다는 것.

그런데 루나의 애인이라 알려진 소문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천하 그룹 정대한 총회장의 손자이며 정명국 회장의 조카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직 외교부 차관인 정명수의 아들이기도 했다.

이런 정황을 근거로 천하 그룹에서 박현빈을 납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일반인들은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재벌이나 상류층들의 행태와 연관 지어 정말로 천하 그룹에서 무례를 범한 박현빈을 납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다.

그리고 그런 소문을 더욱 부채질하는 일이 벌어졌다.

박현빈이 실종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바뀐 것이다.

그것도 루나가 소속되어 있는 천하 엔터 소속의 남자 탤런트로.

그야말로 전격적인 교체였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드라마 스폰서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후원을 중단하였는데, 그 빈자리로 라이프 메디텍이 새롭게 들어와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다.

만약 새로운 스폰서가 나오지 않았다면 드라마는 그대로 엎어질 상황이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기존 스폰서가 후원 중단을 선언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라이프 메디텍이 새로운 후원사로 등장한 것이다.

나중에 알려진 것이지만, 라이프 메디텍의 실질적인 주인이 바로 루나의 약혼자인 정수한이란 것이 알려지면서 또 한 번 이슈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정황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천하 그룹 납치설이 정말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의심을 하게 된 것이다.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천하 그룹은 엄연히 불법을 저지른 것이니 당연 엄중 처벌을 받아야 할 일이었다.

때문에 검찰에서는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수사를 하려고 하였지만, 착수 직전에 중단이 되었다.

수사가 중단된 이유는 실종되었던 박현빈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 사람들을 놀라게 한 일이 벌어졌는데, 그건 바로 그가 돌아오자마자 기자 회견을 열어 연예계 은퇴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저질렀던 잘못과 케이스트에서 자신이 불법적으로 누려온 잘못들에 관해 소상하게 털어놓았다.

자신이 동창인 김다운의 소개로 케이스트에 들어갔고, 또 스폰서를 제안 받아 몇 번의 관계를 가졌다는 내용이었다.

여자 연예인들의 스폰서와의 만남에 대해서 가끔 이슈로 나오기는 했지만, 남자 연예인도 그렇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실 여자 연예인뿐만 아니라 신인이나 그리 알려지지 않은 남자 연예인도 은밀하게 이런 제안을 받는다고 알려지긴 했지만, 공공연하게 밝혀지진 않았다.

그런데 박현빈의 고백으로 그것이 사실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검찰은 박현빈의 실종에 대하여 수사를 하려던 것을 그만두고 새로이 밝혀진 남자 연예인과 스폰서 간의 불법적인 관계를 수사하기에 이르렀으며, 더 나아가 연예계 전반에 걸친 성상납과 그 연결 고리를 수사하는 것으로 범위를 넓혀 나갔다.

잊혀질 때쯤이면 터져 나오는 성상납 이야기로 인해 조금은 식상할 만도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일일 드라마의 흥행 보증수표라 일컬어지는 톱스타 중 한 명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였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 ◈ ◈

쿵광! 쿵쾅!

[기호 1번, 김승만! 기호 1번 김승만이 준비된 대통령입니다!]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현 정권에게서 국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되찾아야 합니다. 민주주의 수호자, 기호 2번, 이대중! 이대중을 뽑아주십시오!]

무더운 여름의 열기가 한창 그 기세를 뻗치고 있을 때, 또 다른 곳에서는 여름의 더위를 능가하는 열풍이 불었다.

대한민국 21대 대통령인 윤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이제 내년이면 새로운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된다.

그런 이유로 대한민국은 벌써부터 22대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운동이 한창이었다.

여당인 한국당은 당내 경선을 통해 홍준표가 구속되면서 새롭게 원내총무가 된 4선의 중진 의원인 김승만을 대선 후보로 내세웠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김승만은 여당인 한국당 내에서 세력을 갖춘 의원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작년 말에 불어 닥친 국회의원 비리 수사에 많은 의원들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범법 사실이 밝혀져 국회의원 자격을 박탈당했다.

때문에 정계에 커다란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이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한 대통령의 의지에 검찰이 총력을 기울여 수사를 한 끝에 벌어진 일이다.

결국 많은 의원들이 의원직을 상실해 때 아닌 보궐선거가 벌어졌다.

사실 보궐선거라 하면 국고를 낭비하는 일로 생각되겠지만, 이번의 경우엔 손실이 발생한 비용을 불법을 저지른 전직 국회의원들의 재산을 추징함으로써 상계하였다.

그렇게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여당인 한국당이나 제1야당인 민족당 후보는 한 명도 당선되지 못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당과 민족당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상실로 치러지는 선거였기에 국민들의 입장에선 그 나물에 그 밥인 한국당과 민족당 후보를 찍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보궐선거에서 새롭게 뽑힌 국회의원들은 제2야당인 민족수호당이나 선진민주당 소속이 주를 이뤘다.

그로 인해 국회 내 의석수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제2야당이었던 민족수호당의 의석수가 한국당과 민족당을 능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섭 단체 구성을 갖추지 못했던 신진민주당은 이번 보궐선거를 통해 의석수가 스물하나로 늘어나 국회법 제33조에 의거해 교섭 단체가 되었다.

거대 야당이 된 민족수호당을 경계하기 위해 여당인 한국당과 제2야당이 된 민족당은 의석수에서 밀리기 때문에 이들은 선진민주당을 끌어안아야만 했다.

아무튼 대한민국은 보궐선거를 끝내기 무섭게 또다시 대선(大選)을 치르게 되었다.

그런데 여당은 영입 1순위로 거론되던 정명수 외교부 차관이 아닌, 당내 원내총무인 김승만을 대선 후보로 내세웠다.

대선 후보라 거론되던 중진 의원들이 대거 자격을 상실해 감옥에 수감되고, 또 영입하려던 정명수 외교부 차관이 제1야당인 민족수호당에 입당하여 그곳의 대선 후보로 나왔기 때문이다.

민족당 또한 비슷한 이유로 당내 경선을 통해 이대중 의원을 대선 후보로 내세웠다.

하지만 현재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국당의 김승만 후보나 민족당의 이대중 후보의 지지율은 22%와 21.8%로 채 45%도 되지 않는 데 비해 민족수호당의 대선 후보로 나온 정명수의 경우 50.1%라는 엄청난 지지율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다.

한국당의 김승만 후보나 민족당의 이대중 후보가 조금은 허황된 공약(公約) 아닌 공약(空約)을 하는 반면, 정명수는 현재 대한민국의 역량이 어떤지, 그리고 어떻게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인지 계획을 설명하며 국민들에게 약속을 하였다.

그저 말만 앞세운 것이 아닌, 실현 가능한 일을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추진하겠다고 하니, 정명수 후보의 지지율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 ◈

“이대로 되겠습니까?”

어두운 밀실 안, 흐릿한 조명 아래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언가 고심하는 문제에 관한 대책을 세우기 위해 모인 것 같은데, 현재 회의 내용은 지지부진하였다.

사실 이들이 논의하는 문제는 대책이란 게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야만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과 경쟁하는 당의 대선 후보의 공약 중 하나가 다름 아닌 국회의원들이 가지고 있는 특권을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1대에서 21대까지 대통령 선거를 치르며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겠다는 공약이 나온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당선되면 꼭 이것만은 지키겠다고 강조를 했던 후보들도 막상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면 말을 바꾸었다.

누군가 왜 공약을 지키지 않느냐고 따지면 변명만을 늘어놓았다.

눈앞에 더 중요한 일이 있는데, 국회에서 문제를 삼으면 국론이 분열된다는 둥의 그야말로 말도 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말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국민과 약속을 한 공약(公約)은 그저 허공에 떠드는 약속인 공약(空約)일 뿐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어요. 방법이!”

“이런 방법은 어떻겠습니까?”

답이 없는 문제를 가지고 논의를 하다 보니 회의는 진전이 없었고, 그 때문에 모인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이 뭔가 생각이 났는지 말을 하였다.

그의 말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어떤 것 말입니까?”

누군가 대표로 물어오자 말을 꺼낸 사람이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말하기 시작하였다.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정명수 후보가 캄보디아 대사일 당시에 대사관의 운영비 일부를 유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것을 확대시켜 만약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독단으로 국고를 유용할 수 있다는 의심과 혹시나 천하 그룹을 지원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음…….”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 말을 잠시 음미하듯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 말 사실입니까?”

그러던 중 한 명이 방금 주장을 한 사람의 말이 사실인지 물었다.

“예, 사실입니다. 당시 일을 제보해 준 외교부 직원은 저희 쪽 사람입니다. 그가 말하길, 그 당시 개인적으로 누군가를 만나 자금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이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현재 대선 후보 가운데 지지율이 가장 높은 민족수호당의 정명수 후보를 끝장낼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

공공 자금인 대사관 운영 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당연히 그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칠 것이 분명했다.

아니, 어쩌면 대선 후보에서 물러나라는 시위가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두 눈을 반짝이면서 이후의 일을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최대한 이 사실을 공론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이 사실을 TV 토론에서 다루는 것이 좋겠습니다.”

회의 결과, 정명수 후보의 캄보디아 대사 재직 당시에 공금 유용 사실을 대선 후보 간의 TV 토론회에서 공론화하기로 정하였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제 생각에도 그것이 가장 극적일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그때를 D―day로 합시다.”

짝짝짝짝!

남을 해코지하려는 모의를 하며 좋다고 박수를 치고 족속들.

이들은 그 뒤로도 음모를 꾸미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계속하였다.

◈ ◈ ◈

“그런데 이거, 이대로 괜찮겠느냐?”

정명수는 아들의 권유로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얼떨떨한 상태였다.

집안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함으로써 인연을 끊고 관계로 발을 들였다.

재벌 집안인 천하 그룹 3남의 자리를 벗어나 자신의 능력으로 외무 고시를 패스하고 외교관으로서 관계에 입문한 것이다.

그리고 능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를 하며 대사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다만, 어디나 그렇듯 그가 속한 파벌이 권력 투쟁에서 밀려 한직으로 밀리게 되었다.

권력의 중심에 가까운 일본이나 미국 대사 자리는 정명수와는 너무도 인연이 멀었다.

그런 주요한 나라의 대사 자리는 유력 파벌에서 밀어주는 이들의 차지가 되었다.

물론 정명수에게 그런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갓난아기 때 납치된 아들을 찾기 위해 인연을 끊고 지냈던 집안과 소통을 하게 되면서 자신의 배경이 알려지게 되었다.

재벌과 정관계는 때려야 땔 수 없는 불가분(不可分)의 관계였다.

그것이 좋은 결과가 될 수도 있지만, 정명수에게는 악재로 작용을 하였다.

당시 외교부에도 여러 파벌이 있었지만, 그중에는 그의 집안인 천하 그룹과 원수처럼 지내는 그룹이 있었다.

그리고 그 그룹의 후원을 받는 인사들이 당시 외교부나 다른 정부 부서의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사정이 그러다 보니 정명수는 그 뒤로 계속 한직만 떠돌게 되었다.

원칙적으로 대사(大使)의 직책은 지역 순환 근무였다.

무슨 말인고 하면, 대륙별로 구역을 나누어 임기를 마치면 다른 대륙으로 보직을 변경해 발령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명수는 그렇게 되지 않고 계속해서 한직인 동남아 지역에서만 순환을 하였다.

이것은 분명 잘못된 처사였지만, 당시 권력자들은 모두 한통속이었기에 아무리 정명수가 항명을 하여도 누구 하나 듣지 않았다.

대사라는 직책이 결코 낮은 것은 아니지만, 권력을 차지한 이들에게는 그들만의 리그가 있었다.

아무튼 이미 정계에 몸을 담은 정명수에게도 욕심은 있었기에 그런 불합리 속에서도 참고 인내하며 대사의 직책에 남아 있었다.

물론 대사의 자리에 있으면 오래전 실종된 아들을 찾을 확률이 높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참았지만, 어찌 되었든 또 다른 욕심은 정계 진출이었다.

관계에서 차관이나 장관이 안 된다면 국회의원으로 자리를 바꿔 또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착실히 스펙을 쌓았다.

그런데 수한은 18년이 지나고 거물이 되어 제 발로 가족의 품에 돌아왔다.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며 큰일을 이룩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아들이 느닷없이 자신에게 정치를 하라고 운을 떼더니, 한창 세를 불리고 있는 민족수호당에 입당하여 대선 후보로 등록을 하라는 것이었다.

처음 대선 후보, 대통령 선거의 후보로 나가라는 아들의 말에 정명수는 당황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들의 일을 돕기 위해서라면 그 이상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부탁대로 민족수호당에 입당하고, 또 경선을 통해 민족수호당의 대선 후보로 등록을 하였다.

사실 민족수호당의 대선 후보 경선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민족수호당의 의원들은 하나같이 아들인 수한의 말에 따랐다.

메주를 팥으로 쑨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그들은 수한을 신봉하였다.

민족수호당과 수한에게 자신이 모르는 어떤 관계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이때쯤 하게 되었다.

일단 어찌 되었든 아들의 권유로 대선 후보에 입후보를 하였으니 최선을 다해 선거에 임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준비해야 할 일들에 대해 공부를 하고 빈틈없이 준비를 해 나갔다.

하지만 그래도 불안하였다.

다른 경쟁자들은 정치판에서 수십 년을 구른 능구렁이들이었다.

자신에게서 어떤 허점을 발견해 공격해 올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늘 불안했다.

아무리 자신이 청렴하게 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인간이기에 빈틈은 있을 것이다.

자신이 놓친 어떤 것을 가지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것이 분명했다.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마세요. 저들이 어떤 준비를 하더라도 그에 대비하고 있으니, 아버지는 계획대로 연설을 하시면 돼요.”

수한은 불안해하는 정명수를 안심시켰다.

정명수가 대선 후보로 등록하며 내건 첫 번째 공약은 임기의 1년 안에 통제되고 있는 북한 지역에 대한 개방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둘째는 안정된 안보 외교였다.

올해 말 중국과의 동북 3성에 대한 영토 문제가 해결된다.

2025년에 벌어진 국지전의 결과, 중국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동북 3성을 대한민국에 할양하기로 조약을 맺었다.

이는 전쟁 보상금 개념으로 지급되는 것이라 어떤 국제적 이의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통일 이후 아직까지 북한 땅도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아 남한 지역 국민이 자유롭게 통행을 하지 못하는 시점인데, 거의 한반도 크기의 면적에 달하는 동북 3성을 다시 얻게 되면 국토방위 측면에서 공백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2025년에 발생했던 압록강 전투와 같은 상황이 또다시 재연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보다도 국경이 세 배 이상 늘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관계가 그런대로 괜찮은 러시아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 번 교전을 치른 중국 국경은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

워낙 중화사상(中華思想)에 찌든 중국인들이기에 2025년에 발생한 전투에서 그들이 받은 충격은 대단하였다.

그들은 세계 2위의 군사강국으로서 자신들의 상대는 초강대국 미국만이 있을 뿐이라 주장해 왔다.

하지만 중국 내 최강의 전력이라 자부하던 심양 군구의 전력(戰力)이 몇 수 아래라 여기던 한국군에 처참하게 패배하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아무튼 그 일로 인해 심양 군구의 터전이던 동북 3성을 한국에 할양하게 되었으니, 중국인들로서는 그냥 두고 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넓어진 국경을 단속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 국방부에서는 급히 예산을 편성해 당초 퇴역시키려던 구북한군들을 직업군인으로 수용하는 중이었다.

이런 국방부의 행보에 발맞춰 정명수는 강력한 안보 외교를 주장하고 이를 실천하겠다 공약을 걸었다.

그리고 셋째로 주장한 것이 바로 대한민국 역사에 대하여 공개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하여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겠다는 것이었다.

이 세 번째 공약은 조금 허황되게 느껴지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사실 이것은 수한이 주장해 넣은 공약이었다.

민족 수호 단체인 지킴이의 수장이면서 민족의 뿌리에 관한 자료를 그 누구보다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수한이었다.

이는 의붓 할아버지인 혜원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혜원 또한 선대의 지킴이 회주들에게서 이어받아 수한에게 전한 것이다.

그리고 수한이 이런 공약을 넣게 한 것은 사실 전적으로 일본을 겨냥한 것이었다.

일본은 매년 국방백서를 발표하면서 독도를 자신의 영토라 주장하고 있다.

8월 15일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그날이 일제 식민 통치에서 벗어난 광복절이지만, 일본인에게는 전쟁을 중단한 종전 기념일이다.

일본인들은 2차대전 당시 패전을 했으면서도 마치 승전국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날을 기념하며 퍼레이드까지 하는 등 대대적으로 선전을 했다.

그리고 그날, 일본의 정치인들은 당시 전범들을 기리는 야스쿠니에 모여 참배를 하였다.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독일과는 참으로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이다.

독일 또한 2차대전의 전범국이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기본적으로 총리부터가 당시 피해를 입은 나라를 찾아가 자신들의 선조가 잘못한 것을 고개를 조아리고 사과하는 것이 당연한 절차인 양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때의 참상이 재발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일본은 독일과 다르게 자신들의 잘못을 숨기는 데에 그치지 않고 후손들에게 잘못된 역사의식마저 주입하고 있었다.

2차대전 당시 일본이 저지른 군 위안부 강제 동원이나 식민지 국가 국민들을 강제로 노역시킨 것, 그리고 마루타(まるた: 통나무)라 명명한 생체 실험까지.

일본은 그러한 전쟁범죄를 아직까지 부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수한은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그냥 놔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끝까지 진실을 파헤쳐 대한민국 국민들은 물론이고, 일본인, 그리고 나아가 전 세계에 2차대전 당시 일본 정부의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고발할 계획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세 번째 공약으로 민족정기 회복을 위한 내용을 넣은 것이다.

마지막 공약은 한반도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를 철거하는 것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 공약은 사실 두 번째, 세 번째 공약보다도 더 많은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내용이었다.

원자력발전은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 경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문제였다.

실제로 원자력 발전으로 공급되는 전력량을 생각하면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그런데 수한은 정명수에게 공약으로 내세우게 하였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정계는 물론이고, 재계와도 척을 질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수한과 민족수호당은 이러한 공약을 걸고 정명수를 전면에 내세웠다.

지금도 정명수는 공약에 대한 문제로 아들인 수한과 의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것들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말이다.

하지만 수한에게는 공약들을 현실적인 결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가 가진 능력을 풀어놓는다면 불가능이란 없었다.

하지만 수한은 자신이 모든 걸 처리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신이 능력을 발휘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면 모두가 처음에는 놀라워하고 또 환호를 하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괴물이라 여기거나 공공의 적으로 돌릴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상상하는 이상의 능력을 가진 존재를 보게 되면 대동소이한 반응을 보인다.

경외와 동경, 그리고 질투.

처음에는 놀라운 모습에 경외와 동경을 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갖지 못한 능력에 대한 질투가 되고, 질투가 커져 혐오가 된다.

처음 가졌던 경외와 동경이란 감정은 사라지고, 두려움과 불안으로 발전하다 최종적으로는 그런 존재를 배제하기 위한 음모를 꾸며 죽이거나 제 스스로 죽는 것이다.

즉, 더불어 공생을 하지 못하고 어느 순간 파멸로 향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수한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조절을 하는 것이고, 사람들의 이해 범위 안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 ◈ ◈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는 NSC(국가안보회의)가 한창이었다.

“현재 중동 상황은 어떤가?”

존 슈왈츠 대통령은 아서 헤밀턴 NSA 국장을 보며 물었다.

아서 헤밀턴은 조용히 서류를 살피고는 대답을 하였다.

“현재 중동은 점차 안정기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래?”

작년 말, 미국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되어 온 이슬람 과격 무장단체인 IS와의 지지부진한 대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그 배경에는 커다란 실패가 있었다.

엄청난 전비를 들였지만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IS의 지능적인 기만전술에 넘어가 자칫 우방인 쿠웨이트를 잃을 뻔한 것이다.

다행히 쿠웨이트는 만약을 대비해 민간 군사 기업(PMC)에 의뢰를 했었다.

만약이란 가정하에 보험을 들어놓은 덕분에 IS의 침공에서 쿠웨이트 왕실은 무사할 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IS의 침공군을 쿠웨이트 땅에서 몰아내기까지 했다.

아니, 완벽하게 격퇴를 할 수 있었다.

쿠웨이트를 침공하고 한때 왕궁을 장악한 IS의 기갑 군단은 미국, 영국, 프랑스, 그리고 한국군과 쿠웨이트 왕실에서 의뢰를 맡긴 PMC 연합의 공격에 전멸을 피하지 못했다.

3천 대가 넘는 전차와 1,500대에 이르는 IS의 기갑 군단의 기계화부대는 대부분 파괴되거나 연합군에 노획이 되었다.

때문에 IS는 일시적으로 상당한 전력 공백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미국은 그에 그치지 않고 당시의 상황을 반격의 기회라 여겼다.

IS와의 전투로 소비되는 전비(戰費) 일부를 차용하여 쿠웨이트 왕실이 의뢰를 맡긴 PMC에 의뢰를 넣은 것이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 대규모 전력을 투사해야 하는 지역에 자국 군대가 아닌 PMC에 의뢰를 한 것에 대해 많은 나라들이 관심을 두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결과가 무척이나 좋았다.

자신들이 직접 성과를 낸 것이 아니기에 비록 자존심이 조금 상하기는 했지만, 일단 의회나 국민들의 반응이 좋기에 존 슈왈츠 대통령이나 행정부 수반들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조금 전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IS가 지배하고 있던 이라크 북부 싱카까지 진출을 하였다고 합니다.”

싱카는 이라크 북부에 위치해 있으며, 시리아와의 국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작은 도시였다.

“그럼 어느 정도나 되어야 그놈들을 이라크에서 완전히 몰아낼 수 있겠나?”

존 슈왈츠 대통령은 지긋지긋한 IS를 이라크에서 언제쯤이나 돼야 몰아낼 수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슬람 무장 단체, 즉 이슬람 테러 조직을 근절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슬람교 내에는 수니파와 시아파라는 계파가 있으며, 이슬람 국가들은 두 교리 중 하나를 국교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정은 이슬람 무장 테러 조직 또한 마찬가지였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 미국 뉴욕의 세계 무역 센터 테러를 자행한 알카에다가 시아파의 대표적인 무장 테러 조직이라면 IS는 바로 수니파의 대표적인 무장 테러 조직이다.

그리고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든 알카에다보다 IS의 전력이나 자금이 더 많다고 알려졌다.

그러한 이유로 IS는 자신들의 조직 이름을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라 지은 것이기도 했고.

그들은 오사마 빈 라덴이 이슬람 조직을 만들었다면, 자신들은 국가를 만들었다고 자랑할 정도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자신들의 교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납치해 참수(斬首)하는 등 공포를 확산시키면서 떠드는 소리이기에 아무도 그들의 이슬람 국가 건설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무튼, 큰 악명을 떨치는 IS와 오랜 기간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은 세계 최강이란 수식어에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미국의 경제도 수렁으로 빠지고 있는 중이었다.

전쟁 특수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미국의 방위산업체들이 전쟁으로 흑자를 보고 있을 때 다른 기업들은 전쟁 때문에 적자를 보았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때문에 일각에선 전쟁 반대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다른 나라와의 전쟁보다 자국의 경제를 먼저 살리라는 소리였다.

미국 정부로서는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게 된 셈이었다.

그런데 적은 비용으로 효과적인 방법을 찾게 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민간 군사 기업(PMC)을 활용하는 방안이었다.

문제는 IS를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PMC를 구하는 것이었는데, 쿠웨이트 해방 작전을 통해 강력한 전력(戰力)을 가진 PMC를 찾게 되어 의뢰를 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의 바람대로 그 의뢰는 성공적이라는 보고가 들어오는 중이었다.

이라크 내 IS의 최대 집결지인 모술을 점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리아와의 국경 인근 도시인 싱카까지 진격했다는 말에 존 슈왈츠 대통령의 마음은 무척이나 고무되었다.

“이달 말일이 되기 전에 IS를 이라크에서 몰아낼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좋아, 아주 좋아. IS만 이라크에서 몰아내면 한동안 상원에서도 더 이상 뭐라 하지 않겠지?”

존 슈왈츠 대통령은 말을 하면서 한 손으로 머리를 쥐었다.

요즘 상원에서 들어오는 압박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현재 존 슈왈츠 대통령이 속해 있는 공화당 내에서도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IS와 전쟁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민주당 의원들은 존 슈왈츠 대통령이 국내 경기도 어려운데 다른 나라에 너무 신경을 쓴다고 비난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이라크에서 기쁜 소식이 들려오니 한숨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한창 회의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는데, 갑자기 찬물을 뿌리는 말을 하는 이가 있었다.

그는 바로 미국의 해외 첩보를 책임지는 CIA의 수장인 말론 국장이었다.

말론 국장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다.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듯해 죄송하지만, 보고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겠습니다.”

“뭔가?”

좋은 분위기를 망치는 듯한 말론 국장의 말에 존 슈왈츠 대통령은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조금 전 아서 국장이 언급한 지킴이 PMC가 속해 있는 나라와 관련된 정보입니다.”

말론 국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다.

“현재 한국은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는 후보의 성향이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합니다.”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후보라고? 그게 누군가?”

“예. 그는 바로 민족수호당이란 정당이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내세운 정명수란 인물로, 그는 1996년에 한국의 외무부에 발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캄보디아 대사를 역임했으며, 올해 1월에 대사 자리에서 물러나 민족수호당에 입당, 경선을 통해 대통령 후보가 되었습니다.”

말론 국장은 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로 나선 정명수에 대한 약력을 대통령과 NSC 위원들에게 알렸다.

“아무리 그를 밀고 있는 당이 거대 야당이라고는 하지만, 지지율이 엄청나군.”

“그렇습니다.”

존 슈왈츠는 말론 국장의 보고를 듣다가 아무리 정명수가 소속된 민족수호당이 거대 야당이라 하지만 여당이나 제2야당의 후보들의 지지율을 압도적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보통 정치란 것은 오랜 활동으로 국민들에게 익숙해야만 지지율이란 것이 올라가는 법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정치권에 별로 이름을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부상했다는 것이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막말로 미국처럼 지역을 기반으로 여론을 형성해 이름값을 알리는 것도 아닌 정치 형태를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대통령 후보가 순식간에 여당과 야당의 정치인들을 밀어내고 압도적인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 이상했다.

존 슈왈츠 대통령이나 다른 NSC 위원들이 의문을 가지는 모습에 말론 국장은 첨언을 하였다.

“CIA에서 파악한 바로는, 민족수호당이란 단체가 4년 전에 갑자기 생긴 정당이기는 하지만 소속된 의원들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이들입니다. 2, 30대의 지지를 받고, 또 4, 50대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 의원들이 다수 포함되었으며, 결정적으로 민족수호당을 지지하는 기업들이 상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기업들 중에는 M이 실질적 주인으로 있는 기업과 그의 집안인 한국 재계 서열 3위인 천하 그룹이 있습니다. 그리고 천하 그룹의 총회장이 바로 이번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Mr. 정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갑자기 부상한 이유가 그의 집안에서 밀어주기 때문이라는 말인가?”

“예. 저희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음…….”

존 슈왈츠 대통령은 한국의 다음 대통령으로 당선이 유력시되는 사람이 민족주의자라는 말에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다.

동맹국 대통령이 민족주의자라는 것이 자국에 이득이 될지, 아니면 손해가 될지 판단을 하는 것이었다.

◈ ◈ ◈

대선 후보 TV 토론회.

대통령 선거 후보는 선거법에 의거해 3회의 토론회를 할 수 있다.

이때 각 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는 40분의 시간 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활용해 자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중점적으로 다룰 정책이나 국정 운영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 그 방향을 국민들 앞에 알리는 것이다.

그런데 토론회인 이유는 그저 자신의 정책을 알리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정당에서 나온 대선 후보의 정책을 듣고 그 허점을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지지율을 상승시킨다거나, 아니면 상대의 공격으로 자신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정책의 빈틈을 메우며 보완을 하는 것이다.

오늘은 그 첫 번째 TV 대선 후보 토론회가 벌어지는 날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한 모든 대선 후보가 다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정 지지율 이상으로 당선이 예상되는 후보만이 이번 TV 토론회에 초대되었다.

“전국에 계시는 7,500만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제22대 대통령 선거 후보 세 분을 모시고 토론회를 진행하게 될 사회자 유연석입니다. 지금부터 대선 후보들의 정책을 두고 토론회를 시작하겠습니다.”

토론회의 사회를 맡은 유연석은 KBC의 간판 아나운서로, 논리적이고 중립적으로 토론회를 진행하는 태도 때문에 국민들의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유로 대선 후보들의 정책 토론회에서도 공평하게 진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을 해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그를 이번 토론회의 사회자로 섭외하였다.

토론회를 시작하기 전, 자리 배정은 카메라에서 가장 오른쪽에 여당의 대선 후보인 김승만이 자리했고, 가운데는 현재 대선 후보 중 가장 지지율이 높은 민족수호당의 대선 후보인 정명수 전 외교부 차관이, 그리고 왼쪽에는 민족당의 대선 후보인 이대중 후보가 자리하였다.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는 한국당 후보이신 김승만 후보, 가운데 민족수호당 후보인 정명수 후보, 그리고 왼쪽에 자리하신 민족당의 대선 후보이신 이대중 후보가 자리하십니다. 그럼…….”

사회자인 유연석은 일단 토론에 앞서 토론회에 참석한 각 정당 후보의 이름을 알렸다.

정당 후보의 이름을 알리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오른쪽에 있는 한국당 후보인 김승만 후보의 정책을 시작으로 토론회가 시작되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정책 방향을 설명하면 뒤이어 각 정당의 후보들이 그 사람의 정책을 두고 설전을 벌였다.

여러 가지 핵심 정책을 두고 토론이 돌다가 국정 예산에 대한 토론을 하기 시작하자 한국당 후보인 김승만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때가 왔다. 후후.’

김승만이 음흉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유연석이 정명수를 지명하며 토론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민족수호당의 정명수 후보 먼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2027년 대한민국 정부 예산이 468조입니다. 그중… 정명수 후보께서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027년 정부의 예산 총액이 밝혀지고 각 부처에서 상정한 예산이 유연석의 설명으로 TV를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그리고 그에 대하여 유연석은 정명수에게 정부 예산을 어떻게 집행할 것인지 물었다.

유연석의 질문에 정명수는 준비한 원고를 한 번 보고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른쪽에 앉아 있는 김승만 후보가 정명수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제가 제보를 들었는데, 정명수 후보가 2020년 캄보디아 대사로 있을 당시 대사관의 예산 일부를 유용했다고 하던데, 그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김승만은 대선 후보들의 TV 토론회가 있기 전부터 준비했던 비밀 무기를 정부 예산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정명수를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던졌다.

정부 예산에 관한 이야기와는 별개의 문제지만, 지금 김승만이 오래전 캄보디아 대사 재임 시절에 대사관 예산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일을 거론함으로써 정명수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고 대선 후보로서 부도덕함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그 말씀이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을 뽑는 자리에 나온다는 것은 자격이 되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그동안 토론을 하면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민족당의 이대중이 얼른 김승만의 말을 받아 정명수를 공격했다.

그런데 정작 두 사람에게 공격을 받은 정명수의 표정은 별로 변화가 없었다.

“제가 대사로 있을 당시 대사관 운영비를 유용한 것은 맞습니다.”

“뭐요? 지금 그걸 사실이라고 인정한 것입니까?”

“저, 저… 저렇게 뻔뻔스러울 수가! 어떻게 대선 후보라는 사람이 그런 범법 행위를 저지르고도 뻔뻔스럽게 후보로 나올 수가 있습니까?”

너무도 당당하게 대답하는 정명수의 태도에 김승만과 이대중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성토하였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방송을 통해 여과 없이 국민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런 탓에 여기저기서 정명수의 도덕성에 관해 떠드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대선 후보 TV 토론회를 직접 참관하기 위해 방청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웅성웅성.

“잠시 조용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정명수 후보의 답변 시간이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니 잠시 조용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인 유연석은 정명수의 답변으로 장내가 소란스러워지자 얼른 주변을 정리해 나갔다.

그리고 아직 답변 시간이 끝나지 않은 정명수 후보에게 시선을 던지며 질문을 하였다.

“방금 7년 전 캄보디아 대사로 있을 당시 대사관 운영 예산을 개인적으로 유용했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논란이 생길 것이 분명한 말을 하고도 침착한 태도를 보이는 정명수의 모습에 유연석은 뭔가 내막이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랬기에 장내를 조용히 시키며 정명수가 대사관 운영 예산을 유용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그런 유연석의 질문에 정명수는 미소를 지으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캄보디아 대사로 있던 2020년 당시, 대한민국은 아직 통일이 되지 않아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는 시기였습니다. 3대가 세습하여 다스리던 북한의 경제는 날로 피폐해져만 갔고, 그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살기 위해 북한을 탈출하던 시기입니다.”

정명수는 사전에 준비된 시나리오를 기억하며 보다 그럴듯하게 당시의 일을 포장해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없는 사실을 꾸며낸 것이 아닌, 있는 내용을 사람들이 생각하는 구미에 맞게 포장을 하는 것이었다.

일례로 같은 음식이라 해도 어떻게 담아내느냐에 따라 그 음식의 값이 달라지는 법이다.

지금 정명수도 사전에 준비한 것처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연출을 하였다.

“정부에 상신을 하였지만, 탈북자 지원금이 도착하기 전까지 억류 중이던 탈북자의 신변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대사관 예산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명수는 당시 탈북자를 구출하기 위해 정부에서 보내주는 탈북자 지원 자금을 기다리기보단 우선 대사관에서 사용 가능한 예산을 미리 집행을 하였다는 말을 하였다.

“와!”

짝짝짝짝!

정명수의 답변이 끝나기 무섭게 방청석에서 환호와 함께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방청석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정명수를 곤경에 빠뜨렸다고 좋아하던 김승만이나 이대중의 얼굴이 구겨졌다.

한편, 두 사람의 표정이 구겨진 것과는 반대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정명수가 대사관 예산을 유용했다고 욕을 하던 사람들은 그 이유가 탈북자들을 돕기 위해서였음을 알게 되어 그의 지지율은 더욱 올라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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