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코리아-97화 (97/118)

5. 약혼 발표와 해프닝

일산, 드라마 촬영장.

박현빈은 평소 눈여겨보고 있던 신인 배우가 다른 때는 자신이 접근하면 잔뜩 경계를 하다가 오늘은 뭐가 그리 기쁜지 자신의 장난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 기분이 좋았다.

사실 박현빈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5년 동안 연기 활동을 하였지만, 별다른 인기를 얻지를 못했다.

하지만 소속사를 케이스트로 옮기면서 드디어 빛을 보게 되었다.

물론 드라마 왕국이라 불리는 케이스트로 옮기는 것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이전 소속사와 계약 기간이 3개월 정도 남아 있었지만, 과감하게 계약금도 받지 않고 옮겼다.

지금이 아니면 미래는 없을 거라는 판단에 따라서였다.

물론 약간의 잡음이 일기는 했지만, 전 소속사는 케이스트에 비해 영세한 기획사였기에 위약금을 주고 적당히 무마하였다.

전작에서 벌어들인 출연료의 대부분을 위약금으로 전 소속사에 지불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음 작품부터 케이스트의 로비로 인해 회당 출연료가 두 배 이상 뛰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회사의 지원을 받으며 단역에서 조연으로, 그리고 주연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물론 첫 주연 작품부터 인기를 끈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연기력을 인정받아 다음 작품에는 더 많은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급기야 3개월 전 종영된,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드라마는 시청률 28.6%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인기가 늘어나자 박현빈은 오랜 무명이었던 설움을 보상 받기라도 하듯 여배우들과의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

동경의 눈빛을 보내는 신인 여배우를 침실로 끌어들이는가 하면, 케이스트에 소개를 해주겠다는 감언이설로 여배우를 꼬시기도 하였다.

물론 그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역시나 케이스트는 최고의 기획사였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바로 해결을 해주었던 것이다.

물론 회사로부터 경고를 받기는 했지만, 주연 배우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박현빈에게 그런 경고는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막말로 현재 일일 드라마의 흥행 보증수표라 불리고 있으니, 그런 사소한 문제 정도는 회사에서 주의를 주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기에 이번에도 한때 좋아하던 그룹의 멤버가 드라마에 출연을 한다고 해서 잔뜩 기대를 하였다.

그런데 함께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 깜짝 놀랐다.

아이돌 가수 출신인데도 연기력이 무척이나 탄탄해 모르는 사람이 보면 배우 출신이라 생각할 정도로 연기를 잘했다.

아이돌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미모가 뛰어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29살이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동안이기도 해서 드라마 촬영을 하는 내내 관심이 갔다.

그래서 다른 때와 다르게 조심스럽게 접근을 하였다.

단순히 데리고 노는 것이 아닌, 정말로 이 정도면 결혼 상대로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진지하게 생각하고 접근을 한 것이다.

그런데 조금 전 남자 친구가 촬영장에 구경을 왔다.

왠지 자신의 것을 누군가가 가로챈 것만 같은 기분에 면박을 주고 촬영장을 박차고 나와 버렸다.

더욱이 감독에게까지 신경질을 부리고 나왔으니, 아마도 촬영장 분위기는 말이 아닐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박현빈은 그런 것은 별로 개의치 쓰지 않았다.

감독이 잘나가는 주연 배우인 자신에게 신경질을 부릴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연 배우의 기분을 망치고, 또 촬영장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든 루나에게 모든 비난의 화살이 돌아갈 것이 분명했다.

촬영장 분위기가 나빠진 것 때문에 의기소침해진 그녀를 내일 가서 달래준다면, 자신에게 고마움을 느낄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건 박현빈 혼자만의 착각이지만.

박현빈은 현재 촬영장이 어떤 분위기인지 알지 못했다.

주연 배우인 자신이 그렇게 신경질을 내고 빠져나간 것 때문에 한때 분위기가 험악해지긴 했지만, 비난의 대상이 루나가 아닌 자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인기를 얻고 난 후부터 거들먹거리며 언제나 지각이나 개인 스케줄을 핑계로 조기에 현장을 나가 버리는 행동 때문에 방송가에서 그에 대해 얼마나 나쁜 소문이 돌고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촬영장을 일찍 빠져나온 박현빈은 그렇게 자신이 좋은 쪽으로 상황을 해석하며 자주 들르는 바에 가 술잔을 기울였다.

밝게 미소를 지으며 촬영하던 루나의 모습을 떠올리자 몸이 달아올랐다.

촬영 도중 보았던 루나의 미소가 마치 자신을 향해 있는 것만 같아 그녀와 하루라도 빨리 동침을 하고 싶은 망상에 빠져들었다.

‘그래, 루나야. 나도 널 사랑해.’

박현빈의 망상은 그야말로 막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저 멀리 떨어진 조명등 불빛 속에서 루나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유혹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당연하게도 지금 박현빈이 보고 있는 곳에는 텅 빈 테이블만이 있을 뿐이었다.

“혼자 뭘 그리 생각을 하는 거야?”

박현빈이 망상에 잠겨 있을 때, 그의 옆으로 다가와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다.

“어, 왔어?”

“그래, 왔다. 그런데 뭘 그리 생각을 하기에 내가 왔는지도 모르고 멍해 있던 거야?”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박현빈의 고등학교 동창이며 케이스트의 과장으로 있는 김다운이었다.

박현빈이 소속사를 케이스트로 옮기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또 지금의 인기를 얻는 데 도움을 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박현빈이 사고를 쳤을 때 뒤에서 무마하는 역할을 맡아주었다.

뭐, 그렇다고 김다운이 박현빈의 뒤치다꺼리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케이스트에서 김다운이 하는 일은 소속 연예인들의 뒤치다꺼리뿐 아니라 은밀한 제의를 하는 것이었다.

연예인이란 스폰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작품 활동만으로는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 작품 활동을 하려고 해도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물론 개인적으로 재산이 많으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재정적으로 지원을 해줄 스폰서가 꼭 필요했다.

박현빈이 5년 간의 무명 배우 시절을 보내다 인기를 얻을 수 있던 비밀도 사실 스폰서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 바로 옆자리에 있는 김다운이 소개를 시켜줬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김다운은 사회적 지위 때문에 호스트바를 드나들지 못하는 상류층을 대상으로 접대를 제공하는 일을 주로 했다.

박현빈도 김다운의 알선으로 상류층 사모님을 소개 받았다.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는 망설임도 있었다.

하지만 오랜 무명 배우 생활을 하다 보니 그런 망설임도 어느 순간 희석되었다.

드라마 촬영장에서 무명 배우는 소품만도 못한 처지였다.

만약 촬영 도중 소품을 망가뜨리기라도 하면 조연출에게 두고두고 욕을 먹었다.

그럴 때면 과연 이렇게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계속 배우 생활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런 굴욕을 맛본 뒤 그냥 포기하기에는 너무도 억울했다.

그러던 차에 동창이던 김다운이 건넨 은밀한 제안은 박현빈의 인생을 백팔십도 바꿔놓았다.

처음 김다운의 소개로 스폰서를 만나고 난 뒤, 자괴감에 빠져 토악질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이 어렵지, 그 뒤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겨우 하루 저녁 상대해 주고 몇 백만 원의 수표와 고급 양복이 생겼고, 또 어떤 때는 맡고 싶은 드라마의 배역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때부터 박현빈의 옆에는 언제나 김다운이 붙어 있었다.

아니, 김다운의 옆에 박현빈이 붙어 있었다.

두 사람은 성격이나 모든 부분에서 아삼육이 잘 맞았다.

“너, 내가 파이브 돌스 멤버인 루나와 촬영 같이하는 거 알고 있지?”

“알지. 근데 왜? 무슨 일 있냐?”

김다운은 박현빈이 갑자기 루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내심 긴장이 되었다.

그는 박현빈이 파이브 돌스의 광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파이브 돌스의 멤버인 루나가 현재 박현빈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한다는 것도.

그러다 보니 루나의 이름을 거론하는 박현빈의 말속에 담긴 뉘앙스에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마치 아무런 안전 장비 없이 낭떠러지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게 아니면 맨몸으로 사자 우리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무척이나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걔가 오늘 촬영장에 자기 애인이라고 젊은 놈 하나를 데려왔더라고.”

“응, 그래서?”

김다운은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가는 기분에 입술을 적시고는 물었다.

그러자 박현빈은 마치 칭찬을 바라는 아이처럼 자랑스럽게 오늘 자신이 촬영장에서 했던 일을 떠벌렸다.

“그래서 면박을 주고, 또 김 PD에게 화가 난 것처럼 꾸미고 촬영장을 나와 버렸지. 큭큭큭.”

“음, 괜찮겠냐?”

박현빈의 말을 들은 김다운은 왠지 걱정이 되었다.

“뭐가 걱정이야. 어차피 김 PD도 내 성격 알고 있는데. 그 사람도 내가 무엇 때문에 화를 내는지 알고 있을 거야. 아마 내일쯤이면 촬영장 분위기 삭막할 것이고, 그럼 문제를 일으켰던 루나는 김 PD에게 면박을 당한 것 때문에 의기소침해 있겠지.”

박현빈은 다시 한 번 망상에 사로잡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행동이지만, 김다운은 이번에는 뭔가 다른 느낌이 확 들었다.

더욱이 방금 전 박현빈이 말한 루나는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그동안 박현빈이 만나고 헤어지던 여배우들과는 전적으로 달랐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비록 조연으로 출영을 하고 있지만, 그녀의 본업은 아이돌 가수였다.

아이돌 가수로서 쌓은 그녀의 인기는 박현빈이라 해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케이스트가 비록 대한민국 내에서 상당히 영향력 있는 기획사이기는 하지만, 루나의 소속사인 천하 엔터와 비교하면 재벌과 중소기업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천하 엔터의 모회사는 대한민국 재계 서열 3위인 천하 그룹인 것이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서열 1위인 삼정 그룹에 못지않으며, 현 정부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그룹이라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김다운은 혼자 망상에 빠져 있는 박현빈을 보며 괜히 불안해졌다.

‘이거, 벌집을 건드린 것 아닌가 모르겠네. 하… 이 새끼, 이거 그동안 오냐오냐해 줬더니 천지 분간을 못하고 사고를 치네. 안 되겠다. 이건 사장님께 보고를 해야지.’

김다운은 도저히 자신의 선에선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 ◈ ◈

쾅!

“이게 뭐야! 너희들, 배우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소속되어 있는 케이스트.

이곳 소속 배우들을 쓰지 않고는 대한민국에서 드라마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거대한 기획사이다.

그리고 지금, 케이스트의 사장 집무실에서 고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내가, 이 배형준이 방송국 국장도 아니고, 연예부 부장에게 이따위 소리를 들어야 해!”

케이스트의 사장 배형준은 조금 전 걸려온 전화를 받고 불같이 화를 냈다.

그는 한때 세계적인 스타로 인기를 모으기도 했지만, 현재는 케이스트라는 연예 기획사의 사장으로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평소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보통 방송국 국장이나 사장 등의 지위를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조금 전, 평소라면 자신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사람에게 경고라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제차 물어본 말에 다시금 확인을 받았을 때는 그야말로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무턱대고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어찌 되었든 전화를 건 사람은 연예 기획사인 자신들에게 있어 갑의 입장인 방송국 부장이었으니.

그래서 화가 끓어올랐지만 일단 그가 무엇 때문에 자신에게 경고를 하는 것인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가 들려준 말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케이스트의 소속 배우 하나가 엄청난 상대에게 실수를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제 버릇 못 고치고 출연 여배우에게 껄떡거려 자칫 잘못하다가는 방송국 이미지가 나빠질 수도 있다는 말까지 들었다.

배형준은 평소와 달리 강경하게 말하는 연예부 부장의 태도에 과연 그 엄청난 곳이 어딘지 물어보았다.

그 결과, 엄청난 곳의 정체가 바로 천하 엔터이고, 또 천하 그룹이란다.

아무리 케이스트가 대형 기획사이고, 또 배형준의 집안이 대단하다 해도 천하 그룹과 척을 지고는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힘들었다.

특히 배형준은 천하 그룹과 천하 엔터의 힘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다.

오래전부터 배형준의 집안은 방송 연예과 관련된 사업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뒷세계와도 연관이 되기도 했다.

그쪽 세계에 절반쯤 발을 담그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천하 엔터가 어떻게 생기게 되었으며, 천하 엔터가 자리를 잡기 위해 어떤 일들을 했는지 말이다.

한때 연예계는 조직 폭력배들의 자금 세탁 창구로 이용되던 때가 있었다.

범죄 조직에서 벌어들인 불법 자금을 연예계를 통해 합법적인 자금으로 바꾸기 위해 우후죽순처럼 기획사를 세우고 운영을 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연예계 지망생들이 제 죽을 줄 모르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기획사의 문을 두드렸다.

이어진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애당초 불법을 저지르기 위해 차려진 기획사인데다 운영하는 이들의 본색이 범법자이다 보니 그들은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폐인이 되기가 일쑤였다.

천하 엔터의 힘이 외부에 알려진 것 또한 그런 불법 기획사와 연관이 있었다.

일부 불법 기획사가 천하 엔터 소속 연예인을 빼앗아오기 위해 강제로 납치하면서 가진바 역량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들은 계약 기간이 남아 있던 연예인의 대리인이라며 인상이 험악한 자들을 천하 엔터로 보내 행패를 부리게 했다.

만약 평범한 기획사였다면 눈뜨고 소속 연예인을 빼앗겼을 테지만, 천하 엔터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천하 엔터는 천하 그룹 산하 계열사였으며, 천하 그룹에는 백호 가드라는 경호업체가 붙어 있었다.

전 직원이 전통 무술을 수련한 수련자이며, 특전사나 해병대, 특수 수색대를 나온 특수부대원들이었다.

결과적으로 당시 천하 엔터의 소속 연예인을 납치해 협박을 하던 범죄 조직들은 일망타진되어 경찰에 넘겨졌다.

그 과정에서 천하 엔터와 천하 그룹의 힘이 일부나마 외부에 알려졌는데, 그때 배형준의 집안도 천하 그룹의 힘을 알게 되었다.

아무튼 그런 위험한 곳, 케이스트가 감당이 되지 않는 곳과 문제를 만든 박현빈에 대해 배형준은 분노했다.

뿐만 아니라 그런 놈을 제대로 관리 못한 관리자들에게도 화가 났다.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 거야! 아직까지 문제가 크게 번진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 망나니 놈이 또 어떤 짓을 벌일지 모르는 일인데!”

화를 주체하지 못한 배형준은 눈앞에 불려온 상무를 보며 소리쳤다.

“그 자식, 잡아와!”

배형준은 급기야 사고를 친 박현빈을 소환하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잡아오겠습니다.”

아무리 인기가 많다고 해도 회사에 손해를 끼치려 한다면 강력한 제재가 필요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으로 난데없이 불려온 상무도 사실 박현빈의 방자한 태도가 언젠가는 큰 문제를 일으키리라 짐작하긴 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빠른 시일에 대형 사고를 칠 줄은 그로서도 차마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 ◈ ◈

“여, 여기가 어딥니까?”

어젯밤, 김다운과 함께 술을 마신 박현빈은 오랜만에 연락해 온 스폰서와 밤을 보냈다.

그런데 깨어나 보니 스폰서와 밤을 보낸 호텔이 아니라 엉뚱한 곳이었다.

칙칙하고 지저분한 지하실.

화려한 침대는 어디로 간 것인지, 더러운 먼지와 비릿한 오줌 냄새만이 역하게 풍겨왔다.

“이름!”

박현빈이 깨어나기 무섭게 어두운 그늘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낯선 환경에 두려움을 느낀 박현빈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었다.

“누굽니까? 여긴 어디예요?”

박현빈이 두려움에 떨며 물었지만, 들려온 말은 그를 더욱 두렵게 하였다.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을 한다. 이름!”

“헉!”

너무나 냉정한 말소리에 박현빈은 겁을 먹었다.

“살고 싶으면 대답 잘해야 한다.”

“예, 예, 알겠습니다.”

그러다 목숨 운운하는 말에 박현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의 심기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어떤 결과가 돌아올지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좋아, 다시 한 번 묻지. 이름.”

“예, 박현빈입니다.”

“직업.”

“탤런트입니다.”

박현빈은 남자의 질문에 고분고분 대답을 하였다.

“흠…….”

한데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묵직한 신음을 흘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런 남자의 모습에 박현빈은 온몸이 긴장되었다.

그의 태도에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연기 활동을 해오다 보니 상대의 반응을 통해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는 느낌으로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현재 자신이 무척이나 위험한 상황이란 것을 남자에게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정신 차리자!’

박현빈은 어째서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이 커다란 위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떨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 위기를 극복해야 했다.

‘범죄 전문가가 그랬어. 자극하지 말고 최대한 협조적으로 행동을 해 상대를 안심시켜야 빈틈이 생긴다고.’

박현빈은 언젠가 범죄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전문가가 말한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범죄자의 말이나 행동에 동조를 하라는 것.

무턱대고 반항을 하다가는 범죄자를 자극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돌발 상황이 발생해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는 경고가 박현빈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박현빈은 자신을 납치한 것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최대한 협조적으로 대답하였다.

그런데도 상대가 저렇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결코 좋은 반응이 아니란 것도 기억해 냈다.

“살려주세요. 원하는 것은 모두 들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절 풀어주세요.”

결국 위급한 상황이 닥치자 박현빈은 그때 전문가가 들려주었던 주의 사항을 잊고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하기 시작하였다.

남자의 침묵이 길어지면서 침착성을 잃은 결과였다.

살려 달라는 박현빈의 애원에 사내의 눈빛이 점점 차가워지기 시작하였다.

“김영민, 박현빈 아직도 안 왔어?”

“예, 매니저하고 통화를 했는데 연락이 안 된다고 합니다.”

“아, 씨팔! 못해먹겠네! 이거,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이렇게 촬영 스케줄에 지각을 할 거면 뭐하러 출연을 하겠다고 한 거야!”

프로듀서인 김형석은 촬영 시간이 다 됐는데도 촬영장에 나오지 않은 박현빈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뻗쳤다.

정해진 시간에 나타나지 않아 촬영 스케줄을 엉망으로 꼬아버리는 것이 벌써 몇 번째인지,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팠다.

그렇다고 주연 배우에게 뭐라 할 수도 없어 그의 매니저에게 항의를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매니저에게 싫은 소리를 하면 바로 그다음 날 상부에서 압력이 들어왔다.

케이스트 소속 연예인들이 출연 거부를 하겠다는 둥 강짜를 놓는 것이었다.

배우와 탤런트들의 왕국이라 불리는 케이스트에서 소속 연예인들을 출연시키지 않겠다고 하면 방송국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케이스트에 속한 톱스타들은 많고, 시청률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방송국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김형석은 매번 박현빈이 속을 썩여도 어쩔 수 없이 참고 촬영을 이끌어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벌써 촬영이 예정보다 보름이나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드라마가 종영될 때까지 이런 식으로 문제가 발생한다면 중간에 방송 펑크가 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김형석 PD는 방영 중인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교체라는, 사상 초유의 패를 들고 케이스트에 최후통첩을 하기로 결심했다.

박현빈이 소속된 케이스트가 아무리 많은 톱스타를 보유하여 갑질을 하려 한다지만, 엄밀히 따지면 방송국이 갑이고 기획사는 을일 수밖에 없다.

지금껏 시청률을 미끼로 갑을 관계의 역전 현상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기획사의 횡포에 방송국에서 단체로 제제하려 마음먹으면 못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김형석 PD는 일단 자신의 상급자인 드라마 국장을 찾아가 현 사태를 정확하게 보고한 다음, 대책을 세우기로 하였다.

“김영민, 남주가 없어서 더 이상 촬영할 수 없겠다. 그러니 오늘은 그만 촬영 접도록 해.”

김형석 PD는 조연출에게 지시를 하고 촬영장을 벗어났다.

김영민 AD는 스텝들에게 촬영 종료를 알리고, 대기실에 있던 연기자들에게 들러 오늘 촬영을 접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면서 촬영 중단 이유가 박현빈의 불참 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고지하였다.

◈ ◈ ◈

김형석 PD가 박현빈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케이스트에서도 비상이 걸렸다.

쾅!

“한 상무, 그 자식 잡아오라고 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연락이 없는 거야!”

어제부터 계속되는 문제로 인해 배형준은 그야말로 눈이 돌아가 버렸다.

그런 탓에 오늘 또 사장실로 불려와 불쌍하게 서 있는 한재석 상무를 보며 소리쳤다.

어제 사고를 쳤을 때, 박현빈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그를 잡아오라고 지시를 했다.

그런데 오늘 또다시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그동안 케이스트에 소속된 톱스타들을 배경 삼아 배짱을 부렸는데, 이젠 그런 것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방송국의 태도가 명확했다.

조금 전 방송국에서 연락을 준 사람은 마치 최후통첩을 하듯 용건만 간단하게 말하고 통화를 끝내 버렸다.

배형준은 한때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잘나가는 톱스타였으며, 외국에 한류(韓流) 열풍을 일으킨 원조 스타이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는 대한민국 가장 많은 톱스타들을 보유한 케이스트의 사장이기도 했다.

그런 자신에게 마치 최후통첩을 하듯 통보해 온 것이다.

박현빈이 그동안 방송국에 끼친 손해와 드라마 촬영 지연에 따른 피해를 보상하지 않는다면 케이스트 소속 연예인 전부를 방송에 출연시키지 않겠다고.

뿐만 아니라 박현빈의 불성실한 태도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겠다는 재발 방지 약속을 하지 않는다면 현재 출연 중인 드라마의 배역을 교체하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박현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소속사 케이스트에 그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 클라이맥스였다.

지금껏 한 번도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는 배형준으로서는 끓어오르는 화를 도저히 참을 길이 없었다.

사실 방송국의 태도는 당연한 것이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한 잘못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박현빈의 탓이었으니.

또 그런 박현빈을 관리하지 못한 케이스트의 잘못이었다.

그러니 어디 가서 하소연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아니, 이번 일이 괜히 다른 방송사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케이스트에 미칠 피해는 그야말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그렇기에 당장 소문을 잠재워야 할 처지였다.

“박현빈이 담당하는 놈, 어디 있어?”

배형준은 이번 문제를 야기한 박현빈에게 연락이 되지 않자 결국 그를 담당하는 매니저를 찾았다.

“지금 오고 있는 중입니다.”

한재석 상무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대답을 하였다.

지금 배형준의 화를 모두 뒤집어쓰고 있는 한재석은 지금 좌불안석(坐不安席)의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문제를 일으킨 박현빈은 현재 그가 관리하는 파트에 소속되어 있는 탤런트였다.

전부터 자잘한 문제를 일으키고는 했지만, 그때는 케이스트의 이름으로 문제를 무마시킬 수 있었다.

박현빈이 유명세를 타며 벌어들이는 돈이 많기 때문에 케이스트에서도 크게 문제를 삼지는 않은 것이다.

방송에 출연해 벌어들이는 것 외에도 은밀한 제안을 수용하여 뒤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상당하였다.

그렇기에 그동안 박현빈이 문제를 일으켜도 어떤 제제를 내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가 너무 지나쳤다.

자신이 문제를 만들어도 소속사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촬영에 지각하는 것은 다반사였고, 컨디션이 나쁘다는 이유로 촬영 현장을 무단이탈하는 둥 다수의 문제를 야기했다.

아무리 배경이 대단하다 해도 방송국에서 참는 데도 한계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박현빈은 물거품과도 같은 인기에 취해 그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만 것이다.

“부르셨습니까?”

이윽고 박현빈의 담당 매니저인 신영훈은 사장실로 들어왔다.

하지만 배형준은 신영훈의 인사를 받지도 않은 채 박현빈의 행방부터 물었다.

“박현빈이 지금 어디 있냐?”

“그것이… 어제저녁부터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신영훈은 배형준이 박현빈의 행방을 묻자 얼굴을 굳히며 박현빈이 어제 저녁까지 연락이 되다 오늘은 아직까지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대답을 하였다.

“어제저녁 스폰서와 만난다고 한 뒤, 오늘 촬영 스케줄 때문에 집에 찾아갔더니 없어서 휴대폰으로 연락을 하였는데, 전화기가 꺼져 있습니다.”

배형준은 신영훈의 이야기를 듣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배형준은 소속 연예인들의 난잡한 스폰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다만, 현재 회사에 이득이 되기에 막지 않을 뿐이었다.

“전화기도 꺼놓고… 이 새끼, 지금 지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아나, 미치겠네.”

배형준은 생각할수록 골치가 썩는 듯 머리를 감싸 쥐고는 한 손으로 손짓을 하였다.

한재석 상무와 박현빈의 매니저인 신영훈에게 밖으로 나가보라는 신호였다.

“나가보겠습니다.”

그러자 마치 구원의 동아줄이라도 본 것마냥 한재석이 얼른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런 한재석을 따라 신영훈도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는 두 사람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듯 배형준은 자꾸만 쑤셔오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비서를 호출했다.

“두통약 좀 가져와.”

― 알겠습니다.

비서가 두통약을 가져오기를 기다리며 배형준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박현빈 사태를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아무리 막 나가는 박현빈이라고 해도 스케줄이 있는데 전화기도 꺼놓은 상태로 잠수를 탔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설마?”

배형준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제 드라마 촬영장에서 박현빈이 천하 엔터의 루나와 트러블이 있었다고 하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루나의 애인이라는 남자와 문제가 생겼는데, 그 남자의 신분이 천하 그룹 정대한 총회장의 손자인 동시에 현 정명국 회장의 조카라고 하였다.

배형준은 박현빈과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이 혹시나 천하 그룹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 ◈ ◈

“허이구, 잘한다.”

“엄마, 미안.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기는 뭐가 어쩔 수 없다는 말이냐, 이것아. 어떻게 딸내미 약혼 소식을 뉴스를 통해 알 수가 있어!”

루나는 촬영이 중단됐다는 소식에 일찍 돌아왔다가 숙소 앞에 서 있던 엄마를 만나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갔는데, 자신의 얼굴을 보자마자 따지고 드는 엄마의 성화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엄마,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응?”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했다가는 어떤 소란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일단 엄마를 달래며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 이제 집에 들어왔으니 말해봐.”

루나의 엄마는 거실 소파에 가서 앉으며 얼른 말해보라는 듯이 닦달했다.

루나는 얼른 엄마의 곁으로 다가가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그렇게 된 거야. 그래서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언론에 발표를 먼저 한 거고.”

한참 동안 사정을 설명한 뒤, 루나는 언론에 약혼 발표를 하게 된 배경까지를 이야기했다.

“그래도 이것아, 그런 발표를 하기 전에 먼저 전화를 줄 수도 있는 거잖아. 그래, 안 그래?”

루나의 엄마는 그래도 서운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지 계속해서 따지고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잘못했다고 하잖아. 엄마, 잘못했어. 하지만 나도 사실 정신이 없었다, 뭐.”

루나는 잘못했다고 빌면서도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을 하였다.

“뭐가 정신이 없어?”

또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러는 것인지 변명을 늘어놓으려는 루나의 말에 엄마가 물었다.

그러자 갑자기 얼굴을 붉히는 루나였다.

“뭔데 갑자기 얼굴이 그렇게… 어서 말을 해봐, 요것아.”

갑자기 부끄럼을 타는 딸의 모습에 루나의 모친은 황당한 표정이 되어 이유를 물었다.

결국 마지못해 루나가 대답을 하였다.

“그게…….”

루나는 잠시 말을 끊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엄마도 내가 수한이랑 사귄다는 것은 알고 있지?”

“그렇지.”

루나의 엄마는 나이가 찬 딸이 도통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자 닦달을 한 적이 있었다.

나이 먹은 여자가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있으면 주변에서 이상하게 쳐다본다며 어서 빨리 연애를 하든 결혼을 하든 남자를 잡으라고 성화를 부린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하도 몰아붙이니 딸이 오래전부터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말을 했었다.

“이번에 그 사람이 먼저 내게 청혼을 해왔어.”

“그래… 아니, 뭐라고?”

“그게… 아까 이야기했잖아. 촬영장에 찾아왔다가 나 때문에 선배에게 면박을 당했고, 또 나 힘들어질까 봐 드라마 출연자들이랑 스텝들까지 모두 회식을 시켜주고, 또 공개된 장소에서 청혼까지 한 거야. 헤헤, 그리고 그때 많은 사람들이 뒤늦게 나를 알아보고 인터넷에 그 소식을 알린 것이고.”

루나는 방송으로 먼저 약혼 사실을 알리게 된 배경을 다시 한 번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 듯 바보 같은 웃음을 흘렸다.

비록 순서는 잘못되었지만, 어제저녁에 갑자기 청혼을 받고 의도치 않게 그 소식이 알려진 셈이니 루나의 모친은 그냥 넘어가기로 하였다.

“그럼 늦긴 했지만서도… 정 서방 얼굴이라도 함 보자.”

루나의 엄마는 딸의 약혼 상대가 누구인지 인터넷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 재계 서열 3위인 천하 그룹 총회장의 손자인데다 아버지는 외교부 차관으로 있으며, 머리도 똑똑해 박사 학위를 몇 개나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나이도 자신의 딸보다 세 살이나 적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속으로 이미 딸의 신랑감이라 인정하였다.

능력으로나 그 집안 배경을 봐도 자신의 딸이 한참이나 모자란 감이 있는데, 상대가 먼저 청혼을 했다고 하니 너무도 기뻤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여자는 뭐니 뭐니 해도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행복하게 잘산다고 믿었다.

전에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남자보다 자신의 딸이 더 적극적이라 걱정을 했는데, 다시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자 쪽에서도 딸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안심이 되었다.

말로는 얼굴을 보자고 하였지만, 사실 인터넷에 떠도는 수한의 사진을 보았기에 얼굴은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다.

겉으로 드러난 하자가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하고 싶었다.

사실 그렇지 않겠는가.

재벌 3세에다가 박사 학위도 여러 개나 가지고 있으며 잘생기기까지 하였다.

그런 완벽한 남자가 비록 톱스타라고는 하지만 자신보다 세 살이나 많은 누나와 결혼을 결심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자신의 딸이라지만 상대가 너무도 완벽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인터넷 어디에도 딸의 결혼 상대가 여느 재벌 2세나 3세들처럼 사고를 일으켰다는 정보는 없었다.

오히려 불우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사재를 털어 재단을 만들고, 그 외에도 훌륭한 일을 많이 하고 있다는 정보만이 가득했다.

물론 그중에 조금 신경이 쓰이는 내용도 있기는 했다.

어려서 납치를 당했고, 또 그에게는 친부모 외에 양어머니가 한명 더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 명도 힘든데 두 명의 시어머니를 모시게 된 자신의 딸이 걱정되는 것은 당연했다.

사실 그런 이유로 찾아와 딸의 결혼 상대를 만나려는 것이기도 했다.

“알았어. 지금 당장은 좀 어렵고, 내가 연락을 해보고 알려줄게. 그러니 오늘은 그냥 돌아가.”

“뭐, 알았다. 대신 꼭 얼굴 보여줘야 한다. 만약 근시일 내에 찾아오지 않으면, 나 이 결혼 반대다.”

루나의 엄마는 그렇게 협박을 남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연하게도 루나의 얼굴에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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