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코리아-94화 (94/118)

2. 첩보전

향원(鄕園)은 강남에 있는 유명한 요리집이다.

이곳이 유명해진 데에는 뛰어난 음식 맛도 있지만, 그와는 다른 특별한 점이 존재했다.

전통 한옥을 개조한 향원은 각 건물마다 독립된 구조로 되어 있어 비밀스런 만남을 갖거나 이야기를 나누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지금 이곳 향원의 가장 깊은 별채에서는 일단의 사람들이 모여 친목을 다지고 있었다.

“하하하! 이거, 이번에 손 원내총무의 도움이 컸습니다.”

황준표 원내총무는 야당의 원내총무인 손익규 의원을 보며 그렇게 공치사를 하였다.

무섭게 급부상하고 있는 천하 그룹을 흔들기 위해 두 사람은 손을 잡았다.

그런 후, 천하 그룹을 바로 건드리지는 않고 나름 머리를 굴렸다.

천하 그룹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어떻게 보면 많은 관련이 있는 라이프 메디텍과 지킴이 PMC를 흔든 것이다.

두 기업은 정대한 회장의 손자인 정수한이 실질적인 주인으로 있는 회사였다.

명목상으로 대표이사와 사장이 따로 있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주식을 수한이 소유하고 있었다.

수한이 가지고 있는 회사를 흔들어 경영의 어려움이 있을 때, 정대한 회장이 두 회사를 도와주는 것을 빌미 삼아 세금 포탈 명목으로 회사를 분리한 것뿐이라며 고소를 할 예정인 것이다.

물론 그것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두 사람에게는 하등 상관없었다.

황준표 의원의 주목적은 바로 자신을 한때 힘들게 했던 천하 그룹에 복수를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정치자금도 지원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해코지했다고 여기는 천하 그룹에 엿을 먹이려는 것이다.

자신이 잘못한 것은 생각도 않고 천하 그룹을 해코지하려다 도리어 당한 것을 복수하겠다고 덤비는 황준표였다.

손익규 또한 비록 정적인 황준표지만 같은 정치인으로서 마치 자신이 당한 것마냥 천하 그룹 흔들기에 동참했다.

그 또한 황준표와 똑같은 동류.

국가의 이익이나 국민의 이득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위인이긴 마찬가지였다.

편향적 사고에 빠져 오로지 자신의 말만이 진리라 생각하는, 그런 한심한 족속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야당 내에서도 손익규를 반대하는 의원들이 상당하였다.

다만, 그가 원내총무를 맡을 수 있던 것은 그만큼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탓이었다.

자신의 세가 분리할 때는 정적인 여당과 손을 잡고 국정을 농단(壟斷)하는 등 정말로 황준표와는 짝짜꿍이 잘 맞는 파트너였다.

그렇기에 대립하는 중에도 서로 손을 잡고 천하 그룹을 흔드는 데 동참을 한 것이다.

“뭐, 그런 걸 가지고……. 사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천하 그룹이 조금 크더니 요즘 뵈는 것이 없는지 많이 건방져지긴 했지요.”

“맞습니다. 우리 국회의원들이 나라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는데 그런 노고를 위로할 줄도 모르고 지들이 잘나서 기업이 성장하는 줄 안다니까요.”

손익규 야당 원내총무가 운을 떼자 옆에 있던 야당 의원 한 명이 그의 말에 동조를 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야말로 그들만의 세계 속에 빠져 달콤한 꿈에 취한 모습이었다.

◈ ◈ ◈

어두운 조명 아래 전자 기기들이 즐비한 방.

일단의 사람들이 머리에 헤드셋을 쓰고 한창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명이 쓰고 있던 헤드셋을 거칠게 벗어 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헐, 이런 빌어먹을 놈들! 국회의원이라는 놈들이 한데 모여 작당모의를 하고 있군.”

“야야, 진정해라. 저것들 저러는 것이 어디 하루 이틀 이일이냐.”

옆자리에 있던 또 다른 남자가 화를 내는 사내를 달래며 말을 꺼냈다.

하지만 사내는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지 붉어진 얼굴로 씩씩거리며 쉽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이들의 정체는 바로 국가정보원 요원으로, 국내 정보 수집 및 용공 세력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물론 한반도가 통일을 이룩하면서 용공 조직 색출보단 국내 정보 수집 및 분석을 위주로 활동하는 중이었지만.

지금도 이들은 불법임이 확실한 국회의원 감청을 하고 있는데, 사실 이런 일은 오래전부터 있던 일이다.

권력을 잡은 집단은 국내에 어떤 기류가 흐르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상류층이나 국회의원들을 항시 감시하며 감청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수집된 정보들은 알게 모르게 정치에 활용되어 왔다.

한데 지금 여야 의원들이 모여 담합을 하고 있는 방을 감청하고 있는 국정원 요원들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정말로 세월이 지나도 정치인들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음지에서 목숨을 내놓고 국가를 위해 더러운 일을 마다하지 않고 수행을 하고 있는데, 국민의 대표라는 자들은 유권자들의 기대와 다르게 저들의 호의호식을 위해 협잡을 자행하고 있었다.

덜컹!

탈칵!

그 순간, 국정원 직원들이 감청하고 있던 곳의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섰다.

“뭐 나온 것 있나?”

“팀장님, 오셨습니까?”

안으로 들어온 남자가 묻자 조금 전까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던 사내가 불만을 쏟아냈다.

“팀장님,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합니까? 저 자식들이 하는 이야기를 더 듣고 있다가는 정말이지 돌아버릴 것 같습니다.”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는지 그 남자는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흥분한 부하의 모습에 최상준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언제까지 이런 일을 계속해야 할지 회의감이 들었다.

처음 그가 국정원에 지원을 했을 때는 정말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처음 2과로 발령이 나면서 그가 한 것은 국회의원들의 비리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그렇기 위해선 밤낮 없이 뒤를 추적하며 그들이 누구를 만나는지, 누구와 무슨 대화를 하는지 알아야 했다.

마치 흥신소 직원이 바람난 남녀의 불륜 현장을 찾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 때문에 회의감도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 일이 분명 국가와 민족에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해 참고 지금까지 일해왔다.

그리고 지금처럼 울분에 차 분노하는 부하도 많이 경험하였다.

대다수 이런 직원들은 퇴직을 하거나 자신처럼 기계적이 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혐오하던 그들에게 동화되어 승진을 하기도 했다.

물론 그런 이들의 말로(末路)는 결코 좋지만은 않지만 말이다.

아무튼 울분을 참지 못하는 부하를 보며 최상준은 씁쓸하게 고소(苦笑)를 지었다.

“언젠가 저것들을 쓸어버릴…….”

우웅! 우웅!

최상준이 말을 하던 중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업무 중에는 휴대폰을 소지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지만, 어디 조직이 원칙대로만 흘러가는가.

급한 연락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는 국정원 직원들이었다.

작전 중에 누가 전화를 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액정을 쳐다보던 최상준의 눈이 커졌다.

전화를 건 사람은 자신의 직속상관인 2차장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전화 좀 받고 이야기하자.”

요즘 들어 흔들리는 부하의 모습에서 심도 깊은 대화가 필요함을 느꼈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최상준은 방을 빠져나가며 다급히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받았습니다.”

최상준은 밖으로 나와 바로 옆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향원 지하에 마련되어 있는 은밀한 공간이었다.

사실 향원은 국정원 2과에서 마련한 비밀 지부 중 하나였다.

국정원 2과는 국내에 향원과 같은 전통 요리집 몇 곳과 퓨전, 외식 음식점을 여러 곳 운영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든 것이 국내 정보를 취득하기 위한 장소로 운영되었다.

물론 그곳에서 벌어들이는 수입 또한 상당하여 국가에서 나오는 활동 자금 외적으로 들어가는 비밀 작전의 자금으로도 운용되고, 또 비밀 작전 중 부상을 당하거나 죽은 직원의 유족에게 위로금 등으로 사용되었다.

아무튼 빈방으로 들어간 최상준은 상관인 김기춘 2차장과 통화를 하였다.

“예, 예.”

― 그럼 최 팀장은 지금까지 모은 자료들을 당과 의원별로 정리하여 본사로 들어오게.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정리한다고 해도 상당한 분량인데, 모두 들고 갑니까?”

최상준은 그동안 향원에서 수집한 자료가 너무도 많아 어떻게 할지를 물었다.

아직 자료의 범위에 대해 듣지 못했기에 확인 차원에서 물어본 것이다.

― 그래. 빠짐없이 모든 자료를 가지고 들어와. 이건 그곳뿐 아니라 다른 지부도 마찬가지야. 그러니 하나도 빼놓지 말고 가져와야 해. VIP(대통령)의 명령이야.

“헉,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 모두 가져가겠습니다.”

최상준은 VIP의 명령이란 말에 깜짝 놀랐다.

조금 전 2차장이 말한 VIP란 정보국에서 대통령을 가리키는 은어였다.

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해선 대통령의 신변이 외부로 노출되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인데, 그러기 위해 대통령이란 단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비록 국정원 2과가 대통령 경호와는 상관이 없는 조직이긴 하지만, 비슷한 계통이기에 대통령을 가리키는 은어를 공동으로 사용하고는 했다.

사실 윤재인 대통령은 혹시라도 정치 탄압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까 봐 국정원이 내사한 국회의원이나 상류층의 비리 자료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재선 집권 말기에 그것을 찾는다는 말에 최상준은 뭔가 큰 사건이 터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국정원 팀장 정도 되는 직위에 오르기 위해선 최소 10년 이상은 근무를 해야만 한다.

그것도 라인을 잘 잡아야 그런 것이고, 보통은 15년 내지 20년은 되어야 팀장이 될 수가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어느 정도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물론 그러기 전에 잘못된 정보에 속아 이슬처럼 사라지기도 하고 또 정치적 상황에 희생되기도 하지만…….

어찌 되었든 최상준의 육감에 앞으로 정치판에 사정 바람이 불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통화를 마친 최상준은 다시 도청이 이뤄지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종수, 넌 지금부터 여당과 야당, 그리고 의원별로 수집한 자료를 정리해 내게 가져와.”

“아니, 팀장님. 그게 자료가 얼마나 많은데 그걸 혼자 정리를 한단 말입니까?”

종수라 불린, 조금 전 감청을 하다 분을 참지 못하던 국정원 직원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런 종수의 불만은 이어진 말에 여지없이 꺾이고 말았다.

“2차장님의 지시다.”

그 말에 김종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힘없이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언제까지 하면 되는 것입니까?”

김종수는 어쩔 수 없이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간은 좀 여유가 있을 거라 스스로를 달랬다.

사실 최상준도 언제까지 보고를 하라는 지시를 미처 듣지 못했다.

하지만 최종 보고자가 대통령이 아닌가.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2차장에게 자료를 가져다주어야만 했다.

결국 그는 김종수에게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지시를 내렸다.

“오늘 퇴근 전까지 가져와!”

그래야 자신도 대충이나마 검토를 하고 내일 아침에 보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 아니, 그 많은 것을 어떻게 퇴근 전까지 정리를 해요?”

김종수는 기도 안 찬다는 태도로 부질없는 항변을 하였다.

당연히 최상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럼 정리한 자료를 넘기기 전까지는 퇴근할 생각도 하지 마.”

김종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상관인 최상준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최상준이 시간을 늘려주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신 또한 김종수와 같은 입장이기 때문이었다.

그저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보고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김종수를 조일 뿐이었다.

◈ ◈ ◈

스윽! 척! 스윽!

윤재인 대통령은 집무실 책상에 앉아 조금 전 김세진 국정원장이 가져온 자료를 검토해 나갔다.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내용을 살피던 윤재인 대통령의 이마에는 어느새 푸른 핏줄이 핏대를 세우며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서류 속 내용은 참으로 기가 막혔다.

울산에서 급히 올라온 윤재인 대통령은 국정원장인 김세진에게 그동안 수집한 국회의원들의 행적에 대한 보고서를 올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좋은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가리지 않고 해당 년도와 일월, 그리고 시간까지 소상하게 적혀 있는 자료는 무척이나 두꺼웠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마치 전화번호부 책을 보는 듯하였다.

그런 것이 한 권이 아니라 책상 밑에서부터 상당한 높이로 쌓여 있었다.

그 모든 것을 확인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윤재인 대통령은 일단 이번에 문제가 된 여당 원내총무인 황준표와 야당의 원내총무 손익규, 그리고 당시 함께 자리하고 있던 여야 의원 네 명까지 총 여섯 명의 자료를 먼저 살피기로 했다.

한참 동안 책상 위에 놓인 자료를 읽어 나가던 윤재인 대통령은 결국 한숨을 쉬며 들고 있던 자료를 내려놓았다.

“이게, 이게…….”

뭔가 말을 하려던 윤재인 대통령은 기가 막혀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황당해하는 대통령의 모습에 김세진 국정원장이 한쪽에 마련된 주전자에서 물을 따라 건넸다.

“음, 고맙네.”

“아닙니다.”

너무 기가 막힌 나머지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던 윤재인 대통령은 냉수를 마시자 그제야 숨이 트인 듯했다.

탁!

“이런 인사들이 무슨 국민의 대표라고… 모두 잡아들이게!”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왔는지 윤재인 대통령은 이성적인 목소리로 단호하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내가 일일이 확인하진 못했지만, 여기 있는 자료에도 여야 국회의원들의 비리가 가득할 테지? 자네는 검찰과 협조하여 비리에 연루된 의원들을 모두 다 잡아들이기 바라네.”

그야말로 청천벽력과 같은 명령이 윤재인 대통령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이제 겨우 1년 반 조금 못 되게 임기가 남은 대통령으로서는 하기 힘든 명령이 나온 것이다.

보통 임기가 짧게 남은 대통령은 퇴임 후의 보신(保身)을 위해 정치권으로부터 책잡히는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지금 윤재인 대통령이 보여주는 행동은 그런 보편적인 행동과는 전혀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책잡히는 정도가 아니라 여야를 가리지 않고 척(隻)을 지려고 작정한 듯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김세진 국정원장은 너무도 우려스런 마음에 물었다.

하지만 윤재인 대통령의 태도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내 지금까지 거짓과 협잡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대통령으로서 국가와 민족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정책을 행해왔다고 자부하네. 자네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겠지만, 그것은 국민들만이 평가할 수 있는 일이네, 저런 모리배들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이지.”

윤재인 대통령은 지금껏 해온 일들을 떠올리며,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와 함께 말을 내뱉고 나니, 약간의 주저함이 있던 마음이 안개가 걷힌 듯 개운해졌다.

편안한 표정을 짓는 윤재인 대통령의 모습에 김세진 국정원장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윤재인 대통령은 이미 스스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다짐한 것이다.

자신을 국정원장 자리에 앉힌 윤재인 대통령.

김세진 국정원장은 자신이 오래전 존경하던 그대로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윤재인 대통령의 꿋꿋함에 자신도 모르게 감동을 하고 말았다.

“알겠습니다.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윤재인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한 김세진 국정원장은 비장하게 대답을 하며 집무실을 나섰다.

자신 역시 역사 앞에 당당히 나설 결심이 되었다는 듯이.

흡족한 마음으로 김세진 국정원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윤재인 대통령은 홀로 남은 집무실에서 조금 전 내려놓은 자료를 다시 한 번 살피기 시작하였다.

◈ ◈ ◈

“종로 호텔로 가게.”

황준표 여당 원내총무는 향원에서 모임을 가진 뒤, 종로 호텔로 향했다.

“예.”

부웅!

운전기사가 조용히 차를 몰아 목적지인 종로 호텔로 향하자 그는 눈을 감고 조금 전 손익규와 은밀히 주고받았던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내 알아보니 라이프 메디텍과 지킴이 PMC라는 두 회사도 꽤 알짜배기 기업이라고 하던데 말이야. 황 의원, 이 기회에 그것도…….”

“그렇긴 한데, 두 회사는 쉽게 건들기 힘들어서 말이지.”

“그게 무슨 소리인가. 우리가 손을 잡았는데 힘든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음, 그것이 말이야…….”

“아, 답답하게 뜸들이지 말고 속 시원하게 말해보게. 야당의 원내총무인 나와 여당의 원내총무인 자네가 손을 잡았는데 설사 대통령이라도 우릴 막을 수 있겠나? 이제 겨우 임기가 1년 조금 더 남아 있는데, 퇴임 후를 생각한다면 우리가 하려는 일을 막진 않을 것이네.”

손익규는 단정을 내리듯 말하며 황준표 원내대표를 부추겼다.

그런 손익규의 말에 황준표도 껄끄러워하던 표정을 풀고 대답을 하였다.

“확실히 그렇긴 하지. 사실 라이프 메디텍과 지킴이 PMC는 대통령이 신경 쓰고 있는 회사가 맞네.”

“그게 사실인가? 그렇다면 전에 있었던 특혜…….”

“그건 이미 넘어간 문제 아닌가. 그건 더 이상 들추지 말고 우선 내 말을 더 들어보게.”

황준표는 일단 손익규 원내대표의 말을 막고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만약 여기서 손익규의 주도대로 분위기가 흘러간다면 얼마나 많은 이권을 그에게 넘겨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기에 황준표는 일단 모든 이야기를 끝내고 난 후에 이권을 나눌 생각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풀어놓았다.

“라이프 메디텍과 지킴이 PMC는 각각 사장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실질적인 주인은 자네도 알고 있는 천하 그룹 정대한 회장의 손자인 정수한이네. 이미 그가 가진 특허로만 어마어마한 로열티를 벌어들이고 있으며, 특히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에 관해서는 미국도 탐을 내고 있는 중이지.”

황준표는 말을 하다 말고 잠시 손익규의 표정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예상대로 어마어마한 로열티란 말과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란 말에 손익규의 눈이 탐욕으로 불타올랐다.

손익규의 표정을 살피느라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황준표의 표정도 탐욕에 물든 손익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통령은 그런 정수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하고 있는 중이네.”

황준표는 그래도 같은 당이라고 윤재인 대통령이 수한에게 양보하는 것을 잘 포장해 말을 하였다.

하지만 윤재인 대통령이 좋아 그런 것은 아니었다.

대선 후보 중 한 명인 그가 같은 당 출신인 대통령을 헐뜯는다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나 마찬가지였기에 그렇게 말을 한 것뿐이다.

아무튼 황준표는 이런저런 사족(蛇足)을 붙여 말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간추린다면 지킴이 PMC와 라이프 메디텍은 대통령이 뒤를 봐주고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미 욕심에 눈이 먼 손익규의 귀에는 그것이 들어오지 않았다.

“대통령이 사적으로 어느 한 기업을 편들어 키워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야. 그리고 그런 기술은 한국처럼 작은 나라가 가지기에는 너무도 위험한 기술이라고 생각하네.”

“그럼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당연히 혈맹인 미국처럼 강력한 나라가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안심이 되지 않겠나?”

손익규는 말도 되지 않는 억지 논리를 펴며 자신의 소유도 아닌 것을 두고 누가 가져야 하네 마네 따지고 있었다.

정말 개념 없는 판단이지만, 정작 말을 하는 손익규는 스스로의 말에 취해 정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그런 엄청난 기술은 한국처럼 약한 나라가 가지고 있어봐야 전쟁의 불씨가 될 뿐이야. 내가 그 기술을 넘긴다고 하면 미국은 내게 무척이나 고마워할 거야. 뭐, 그럼 비싼 값에 기술을 팔아 그놈도 좋아할 테고, 덕분에 많은 세금도 들어오니 나라로서도 좋은 것 아니겠어? 이게 바로 일석삼조지.’

‘그래, 내 생각대로 움직이는구나. 이 욕심 많은 늙으니 같으니라고.’

손익규가 혼자만의 망상에 빠져 있을 때, 회심을 미소를 짓는 황준표였다.

◈ ◈ ◈

황준표는 호텔로 들어서자마자 약속 장소인 룸으로 향했다.

709호실 앞에 선 황준표는 노크를 하기 전 옷매무새를 다시금 정리하였다.

“흠.”

탁탁.

자신의 상태를 재차 확인한 그는 곧 노크를 하였다.

똑똑.

“だれ(누구냐)?”

방 안에 있는 사람은 한국인이 아닌 듯 일본말이 들려왔다.

“난 한국당 의원인 황준표요.”

“아, 황 상.”

황준표가 자신의 신불을 밝히자 금세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나와 반가이 맞이했다.

“오소 오십시오. 반갑스무니다.”

그는 어눌한 한국말을 구사하며 황준표를 반겼다.

“반갑습니다, 이토 상.”

황준표 역시 마주 인사를 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으로 들어선 황준표는 방 안에 이토 곤스케뿐만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당황한 듯 보이는 황준표의 모습에 이토 곤스케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였다.

“인사드리시오. 사이고 다카모리 실짱이므니다. 촌리 가카께서 시님하는 부니시무이다.”

이토 곤스케의 한국말이 좀 어눌하기는 하지만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황준표는 이토 곤스케가 소개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일본의 총리인 오카야마 신이치의 측근일 것이다.

현재 일본에서 오카야마 신이치 총리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역대 어느 총리보다 지지 기반이 탄탄한 그는 일본에서 일왕 다음으로 인기가 있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일본인들이 연예인보다 더 좋아하는 인물이 바로 오카야마 신이치 총리일 정도로 그의 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그런 일본 총리의 측근이란 말에 황준표의 눈이 반짝였다.

“그런데 어쩐 일로 날 부른 것이오?”

황준표는 일단 자신의 내심을 숨기며 이토 곤스케에게 물었다.

하지만 노련한 사이고 다카모리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황준표가 십여 년간 정치인으로 활동을 해왔다지만, 사이고 다카모리 역시 십여 년을 정보 조직에서 닳고 닳은 인물.

정치인인 황준표가 숨기는 것의 달인이라면, 사이고 다카모리는 반대로 뭔가를 찾아내는 데 있어 달인이라 불릴 만했다.

황준표의 표정에서 욕심을 읽은 사이고 다카모리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은 채 조용히 이토 곤스케와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황 의원도 3년 전, 일신 그룹의 일을 알고 계시지요?”

느닷없이 일신 그룹을 언급하는 이토 곤스케의 말에 황준표는 순간 당황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일신 그룹이라면 그와도 적잖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일신 그룹의 일만 아니었다면 자신이 정치를 그만두고 칩거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일신 그룹의 로비를 받아 그들의 청탁을 들어준 일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그 때문에 한동안 일선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들의 도움을 받아 화려하게 정계로 복귀를 하기는 했지만, 그때 당시의 일만 생각하면 여전히 치가 떨리는 황준표였다.

그런 황준표이니만큼 일신 그룹이 언급되자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그 일로 한동안 정계를 은퇴하기도 했는데,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정치판에서 굴러먹은 사람답게 금방 표정을 바꾸며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하였다.

물론 그가 잠시나마 흥분하였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이는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알고 계시다니 말하기가 더 편하겠군요. 사실 일신 그룹은 저희 일본의 자금이 투입된 기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일본의 입장은 생각지도 않고 조각내 팔아버리다니,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토 곤스케는 당시 일신 그룹이 채권단의 결정에 따라 분할 매각이 된 점을 떠올리며 불법이라 성토를 하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가 내뱉는 말은 전혀 근거도 없는 억지에 지나지 않았다.

이토의 말대로 일신 그룹의 시작은 일본의 자금이 들어간 것이 맞다.

일신 그룹의 1대 회장인 신원호 회장이 일본의 자금을 한국에 들여와 기업을 일궜지만, 그룹이 분할 매각된 것은 전적으로 불량 경영 탓이었다.

그 말인즉, 정상적인 거래 행위를 통해 그룹 해체의 수순을 밟아 나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토 곤스케는 그것이 마치 불법적으로 벌어진 일이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아, 그건 이토 상께서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일은 적법한 절차로 이루어진 것이니 거론하지 마십시오.”

비록 정계 복귀라는 욕심에 눈이 멀어 이들과 손을 잡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황준표라는 인간이 아주 경우가 없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황준표는 이토 곤스케의 말을 일축하며 선을 그었다.

자신의 말이 부정당했음에도 이토나 사이고 다카모리는 별 반응이 없었다.

“뭐, 한국의 입장에선 그렇게 말을 할 수는 있겠지만, 방금 전 제 말은 어디까지나 우리 정부의 입장에서 일본의 자본이 들어간 회사가 허무하게 처리된 일에 대해 유감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뿐이니 너무 신경 쓰지는 마십시오.”

어느 순간부터 이토 곤스케의 한국말이 자연스러워졌는데, 흥분한 황준표는 그런 변화를 미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 듣자니 황 의원님께서 CIA의 동아시아 지부장을 만나셨다고요?”

이토 곤스케가 한창 일신 그룹의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CIA에 대해 언급을 하자 황준표는 당황했다.

그로 인해 당황한 기색을 여실히 드러내고 말았다.

“음, 그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뒤늦게 표정을 수습하려 했지만 너무 늦었다는 것을 깨달은 황준표는 정면으로 대응하기로 마음먹고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런 황준표의 질문에 이토 곤스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했다.

“우리의 정보력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우리 일본의 정보력은 미국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만약 제가 그 내용을 한국 정부에 넘긴다면 어떻게 될지 잘 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소를 지으며 맞이하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차가운 눈빛으로 황준표를 노려보는 이토 곤스케였다.

“으음…….”

황준표는 이토의 경고에 뒷목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만약 그의 말대로 자신이 미국 첩보 기관인 CIA의 동아시아 지부장을 만났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정치생명은 물론이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간첩 혐의로 평생 감옥에 들어가 있어야 할지 몰랐다.

대한민국은 통일을 이룬 뒤로 간첩 행위나 이적 행위에 관해선 추호도 용서가 없을 정도로 법의 처벌이 강화되었다.

북한이란 주적(主敵)이 사라졌으니 가벼워져야 정상일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이루고, 오랜 세월 동안 분단되었던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 간첩과 이적(利敵)에 관한 국민적 정서는 더욱 굳건해졌다.

그런 시류 속에서 만약 자신이 타국의 첩보 기관인 CIA 지부장을 만났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여당의 원내총무라 해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비록 동맹이라고는 하지만 미국과 관련된 상류층의 비리나 이적 행위는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있어왔다.

기밀을 요하는 군사작전에서부터 군 장비 도입 사업 등 굵직굵직한 국방 강화 사업은 물론이고, 미군 기지 이전 협상에 대한 정보 유출 등 발각된 간첩 사건만 해도 꽤 되었다.

하지만 그와 관련해 처벌된 사람은 없는 것이 현실.

그러다 보니 국민들의 정서 속에 미국과 관련된 비리와 간첩, 이적 행위에 대한 불신은 여간 깊은 것이 아니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어렵게 회생한 자신의 정치생명이 끝장나는 것은 물론이고, 집안까지 풍비박산이 날지도 몰랐다.

대한민국은 인터넷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발달하였다.

좋은 문명의 이기임은 분명하지만, 인터넷 활용 문화의 수준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다.

좋은 소식이 널리 퍼지는 부분도 있지만, 나쁜 일이나 안 좋은 사건 등이 더 빠르게 확산되고 옳은 의견 등이 묻혀 버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만약 비리나 치부가 인터넷상에 올라온다면 그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모두 신상이 털려 생활하기 어려워질 것이란 생각이 들자 황준표의 낯빛이 무섭게 창백해졌다.

자신이 권력을 쥐고 있을 때야 그런 것이 두렵지 않겠지만, 간첩 행위는 이야기가 달랐다.

그에 대해서는 대통령이라도 탄핵을 받아 마땅한 일이기에 황준표는 이토 곤스케의 협박에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미 자신의 행적이 이들에게 알려진 상황에서 고개를 쳐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이다.

누가 갑(甲)이고, 누가 을(乙)인지는 확실해졌는데, 갑에게 고개를 들고 대항을 해봐야 깨지는 것은 을뿐이다.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되겠소?”

황준표는 항복 선언을 하듯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물었다.

오래전에 뿌려둔 미끼를 물고, 또 약점까지 자신들에게 들킨 마당이니 이토나 사이고는 자신들의 꼭두각시가 된 황준표를 비릿한 미소와 함께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황준표는 그제야 자신의 욕심이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몰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내가 한 치 앞도 보지 못하고 내 죽을 자리를 찾아들었구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는 말이 있다.

그것을 황준표는 너무 늦게 깨닫게 되었으며, 앞으로 남은 자신의 미래가 결코 편안하지 않을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 ◈ ◈

한편, 황준표 원내총무가 회동을 마치고 다시 시내로 향하는 것을 확인한 최상준은 급히 본사(국정원 2과)에 연락을 하여 황준표를 추적하였다.

늦은 시각임에도 귀가하지 않고 시내로 향하는 것을 보니 뭔가 큰일이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 것이다.

놓칠 수 없는 기회라 판단한 최상준은 급히 보고를 올리고는 독단으로 황준표를 추적하였다.

그리고 종로 호텔에서 황준표가 만난 이들의 정체나 나누는 내용을 듣고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3년 전, 간첩 행위를 일삼다 파탄 난 일신 그룹이 언급되고, 그 와중에 일신 그룹이 일본의 비자금으로 건립된 기업이었음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어진 내용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었다.

황준표 의원이 몰래 CIA의 동아시아 지부장을 만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최상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그런데 저 일본인들의 정체가 뭐지?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는 것이지?’

황준표와 일본인들의 대화를 감청하던 최상준은 자신들도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정보를 알고 있는 일본인들의 정체가 문득 궁금해졌다.

“창용아.”

“예.”

최상준은 옆에 있던 부하에게 지시를 내렸다.

“네가 나가서 저기 일본인들의 이름 좀 알아내 와라.”

“알겠습니다.”

최상준은 저 일본인들의 정체가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자신의 육감이 말하고 있음을 느꼈다.

물론 호텔 숙박계에 본명을 적지는 않았을 테지만, 출입국 관리소에 있는 여권 사진을 통해 그들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그리고 얼마 뒤, 이창용이 알아온 이름을 통해 NIS(국가정보원)의 데이터 뱅크에서 그들의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사이고 다카모리, 나이 47살, 성별 남, 일본 국가안보국 국장. 뭐! 이런 거물이 지금 한국에 들어왔다는 말이야? 야, 뭐하고 있어! 어서 차장님 연락하지 않고!”

최상준은 황준표와 만나고 있는 일본인 중 한 명의 정체가 일본 국가안보국의 국장이라는 사실에 놀라 소리쳤다.

이창용은 난데없는 최상준의 질타에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고는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직속상관인 김기춘 제2차장에게 무전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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