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코리아-78화 (78/118)

3. 지킴이 PMC

삑! 삑!

“줄 똑바로 맞추라!”

끝없이 펼쳐진 넓은 평야.

이미 가을걷이가 끝난 뒤였지만, 사람들은 밭에 나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중장비를 운전하는 것은 여자들이고, 삽과 곡괭이를 들고 맨몸으로 일을 하는 것은 남자들이었다.

하지만 이곳이 북한 지역이라면 이해가 가는 모습이었다.

아무튼 통일이 된 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북한 지역 주민들은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아직 체제가 바뀐 것에 잘 적응을 하지 못해서 그런지, 어떠한 일을 할 때도 능동적으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지시를 해줘야만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차차 나아지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수동적인 북한 주민들 때문에 북한 지역 발전에 투자를 한 기업들의 애로 사항이 많았다.

북한 주민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 때, 그러한 모습을 한쪽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박사님, 그런데 가능하겠습니까?”

재정경제부에서 나온 사무관은 수한의 옆에 서서 들녘에서 일을 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수한은 식량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곡물 회사를 설립하고, 정부에 농사를 지을 토지를 불하 신청을 하였다.

일반적이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지만, 한반도를 통일한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두 손 들어 환영할 일이었다. 낙후된 북한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한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의 참여는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북한 지역 발전에 투자한 기업들은 모두 자신들이 이윤이 되는 곳에만 투자를 하고 있었다.

1차 산업인 농사에 관한 투자를 하는 기업은 어디도 없던 것이다.

수한은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기업들의 투자로는 어려운 형편의 북한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돌아가기 어렵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부족한 식량도 해결하면서 대한민국의 식량 자급률도 높이고, 또 일이 없는 북한 주민들에게 일감을 줘 북한 지역의 경제가 돌아가게 하려는 생각에 이런 사업을 시작한 것이었다.

사실 수한도 필요해서 대통령을 찾아가 제안을 하였지만, 이렇게 전격적으로 허가가 떨어질 줄은 수한 본인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원래 이런 일은 부처 간에 협의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걸리고, 또 국회에서도 특혜 시비를 가리느라 올해 안에는 허가가 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수한이 제안을 하고 간 지 1주일도 되지 않아 정부에서 허가가 떨어졌다.

북한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이유를 들어 찬성한 재정경제부와 식량 자급률 확보라는 점을 내세운 농림수산부의 적극적인 지지로 수한이 요청한 토지를 무난하게 불하받게 된 것이다.

다만, 수한이 제대로 사업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사무관을 파견하였다.

그래서 이렇게 수한이 토지 정지 작업을 하는 것을 함께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예. 이 속도로 정지 작업을 한다면 내년 즈음에는 정상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수한의 이야기를 들은 사무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눈앞에서 하고 있는 정지 작업을 하지 않더라도 이 땅에 농사를 지을 수는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쓸데없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정지 작업을 하는 걸 수도 있었다.

사무관은 멀쩡한 땅에 정지 작업을 한답시고 막대한 돈을 허비하는 것 같아 과연 효율이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굳이 저런 작업이 필요한 것입니까?”

사무관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그리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아 그리 물었다.

하지만 수한은 농지를 기계식 농법으로 이용할 계획이기에 자신이 불하받은 북한 지역의 농지들을 정비하는 것이었다.

북한에서도 잘 정비되어 있는 평양평야와 안주평야지만, 수한이 계획한 것에 비하면 효율이 떨어졌다.

그렇기에 효율을 높이기 위해 정비가 필요해 농번기가 되기 전에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현재 일거리가 없는 것이 북한 주민들의 현실이라 작업에 필요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무척이나 쉬웠다.

비록 경제 사정이 어렵기는 하지만 북한 주민들에게도 필요한 것이 있었다.

그런 것들을 구입하기 위해선 돈이 있어야 하는데, 통일이 되면서 기존의 북한 화폐는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일부 북한 주민들의 불만 제기가 있었지만, 어차피 돈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기존의 기득권층들이었기에 정부는 형평성을 이유로 그들의 불만을 무시하였다.

정부의 냉정한 대처에 작은 소란이 일기는 하였지만, 다른 주민들도 그들의 주장에 전혀 동조하지 않았기에 그들의 불만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이 났다.

아무튼 북한 주민들도 먹고살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 했고, 북한 지역에 진출한 기업은 아직 얼마 되지 않았기에 현재 북한 지역에서는 돈이 나올 곳이 별로 없었다.

그러한 때에 수한이 대단위 농장을 건설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주민들이 수한의 회사로 찾아왔다.

남쪽보다 낮은 인건비지만 예전 북한 정부가 있을 때와 비교하면 배는 넘어가는 일당이었기에 북한 주민들은 수한의 농장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더욱이 아침과 점심은 물론이고, 중간에 아침참과 3시 즈음에 나오는 오후 참은 사람들이 농장으로 모이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농장 조성은 탄력을 받아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 때문에 주민들은 너무 빨리 일거리가 끝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하기도 하였지만, 어찌 되었든 현재 진행되는 일은 수한이 계획한 대로 진행되어 갔다.

“제 계획은 지금까지 해오던 주먹구구식 농사가 아닙니다. 다국적 곡물 메이커들처럼 대단위 농법을 지향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예전과 같은 농지로는 애로 사항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단위 농법에 맞게 토지를 정비하는 것입니다.”

수한의 설명을 들은 사무관은 그제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건 그렇다고 하고, 그럼 이곳에는 어떤 작물을 심을 생각입니까? 지금 보니 농지도 있고, 또 밭도 있고…….”

정부에서 나온 사무관이 살펴보기에 지금 정비를 하는 곳에는 밭도 있긴 하지만, 벼를 재배할 수 있는 논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비록 평양평야에 대동강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 넓은 평야에 논농사를 짓기 위해 물을 대기에는 수량이 부족해 보였기에 물은 것이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뉴 라이프 연구소에서 오래전부터 연구를 해 추위와 병충해는 물론이고, 기존에 벼농사보다 적은 수량에서도 잘 자라는 벼 종자를 발견하였습니다.”

수한은 사무관의 우려에 자신이 그동안 이번 일을 위해 준비한 것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는데, 수한이 들고 나온 것은 바로 신품종 벼였다.

기존 벼보다 추위에도 강한 품종.

사실 북한 지역의 농지는 헐벗어 가뭄이 극심했다.

비록 평야 옆으로 강이 흐른다고는 해도 대동강의 수량은 많지 않았는데, 물이 적은 갈수기였기에 현재 대동강의 수심은 그리 깊지 않았다.

수한도 그런 북한의 기후와 토질을 잘 알고 있기에 농사를 짓기 위해선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남쪽보다 기후도 좋지 못하고, 또 농사에 필요한 물도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곳에 맞는 신품종을 개발해 가져온 것이다.

뉴 라이프 연구소에서는 많은 것들이 개발되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농업에 관한 것도 있었다.

식량도 무기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니 수한이 대주주로 있는 뉴 라이프 그룹 산하 연구소에는 각종 종자를 연구하는 파트가 있었다.

농작물이라고 무턱대고 재배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종자에도 특허가 있어 종자를 이용해 농사를 지으려면 특허료를 내야만 한다.

다국적 곡물 메이커들은 세계 각국에서 재배하고 있는 농작물에 대한 특허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수한은 특허가 있는 농작물을 재배하여 다국적 곡물 메이커들의 배를 불려줄 생각이 없었다.

막말로 식량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북한 지역에 대규모 농장을 만든 것인데, 그들 곡물 메이커가 특허를 가지고 있는 농작물을 재배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예속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수한은 그래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연구소에서 종자를 개량하여 새로운 작물을 개발하였고, 모두 특허를 받았다.

그리고 이제 북한 지역에 조성하는 농지들은 용도에 맞는 작물들을 심어 재배를 할 것이다.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과 보리나 감자, 옥수수 등 각종 작물을 나눠서 심을 예정인데, 당장의 목표는 조금 늦기는 했지만 가을보리를 심는 것이었다.

비록 아직 정지 작업을 하느라 모든 밭에 보리를 뿌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상당량 수확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수한과 사무관 일행이 작업을 지켜보고 있을 때, 저 멀리서 트럭 한 대가 다가와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작업장에 들어선 트럭에서 뭔가 내리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것은 바로 오후 참으로 나온 부식이었다.

부식은 라면이었는데, 라면의 얼큰한 국물은 북한 주민들도 무척이나 좋아하였다.

수한과 사무관들은 오후 참을 먹는 일꾼들을 보다 자리를 떠났다.

북한에 대규모 농장을 조성하는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한 정부 사무관은 돌아가 그대로 보고를 할 것이다.

◈ ◈ ◈

덜컹!

평양평야에 조성되고 있는 농지를 둘러보고 온 수한은 바로 퇴근을 하지 않고 평양시 외각에 있는 또 다른 사업장에 들렀다.

이곳은 구 북한군 출신들을 모집해 운용 중인 PMC였다.

정부는 통일이 되고 북한군 특수부대에 대한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20만이 넘어가는 엄청난 숫자의 북한 특수부대원들은 사실 대한민국 정부 입장에서는 계륵(鷄肋)과도 같은 존재였다.

보유하고 있으면 강력한 힘이 될 수 있겠지만, 정부를 고심하게 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그들을 전적으로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들 특수부대원들뿐 아니라 일반적인 구 북한 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장장 70여 년을 총부리를 대고 대립을 했을 뿐 아니라 얼마 전에는 전쟁 직전까지 직면했었다.

다행히 극적으로 통일이 되면서 무력 충돌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현재 남아 있는 구 북한 군인들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어 전역을 시키는 중이다.

그러니 구 북한 특수부대원은 어떻겠는가. 막말로 구 북한군 특수부대원의 훈련 동영상은 인터넷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정말이지 인간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훈련을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맨몸으로 유리 조각 위를 뒹굴고,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몽둥이로 단련을 받는가 하면 10m 거리에서 던지는 단검을 피하는 훈련이라든가, 아무런 장비도 갖추지 않고 절벽을 오르는 등 하나같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훈련들이었다.

도중에 목숨을 잃기도 하지만 구 북한군 특수부대는 그러한 훈련을 무사히 넘긴 이들만이 모인 최정예 부대였다.

그러니 그들의 악명은 전 세계에서도 높았다. 예전의 북한 정부는 그러한 특수부대원을 이슬람 테러 단체의 훈련 교관으로 파견해 외화를 벌기도 하였다.

아무튼 계륵과 같은 북한군 출신 특수부대원들에 대한 처우를 생각하니 정부로서도 골치가 아팠다.

그런데 수한이 PMC를 만들어 치안이 불안정한 북한 지역에서 사업을 하는 데 활용을 한다고 하니 정부로서는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이었다.

정부의 고심을 민간에서 알아서 살펴주니, 정말이지 정부로서는 수한의 행보가 너무너무 기꺼웠다.

그렇다고 수한이 전적으로 퍼주기만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 필요해서 그런 제안을 정부에 했던 것뿐이다.

불안한 북한 지역 치안 상태를 생각하면 이곳에서 일을 할 직원들의 안전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더욱이 북한 지역에는 자신의 말만 듣고 어려운 주민들을 돕기 위해 들어온 한빛 재단과 라이프 재단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더더군다나 라이프 제단은 자신이 설립하였지만, 이사장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양모인 최성희였다.

수한에게 그녀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와 함께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는 천륜으로 묶인 가족이고, 최성희는 아기인 자신을 지금까지 키워준 생명의 은인이자 인륜으로 묶인 가족이다.

수한은 인식하고 있지 않지만, 본인이 가족이라 생각하는 범위는 그렇게 좁았다.

천하 그룹 회장인 정대한 회장이나 큰아버지 정명국이나 둘째 백부 정명환 등 친척들은 수한이 생각하는 가족의 범위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형제 정도로 인식을 하고 있을 뿐, 자신이 보호해야 할 존재로는 인식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인식의 범위는 무척이나 중요한 것으로, 사실 친척들은 수한에게 인식되는 순위에서 그의 누나인 정수정이 속한 파이브 돌스 멤버들보다 못했다.

그것은 수한이 처음 라이프 메디텍 보안대를 구성했을 때, 가족의 안전을 위해 경호원으로 그들을 파견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친부모와 양모인 최성희를 위해 보안대를 경호원으로 파견하였고, 또 누나 정수정이 속한 파이브 돌스에도 그들을 파견하였다.

하지만 할아버지인 정대한이나 큰아버지, 그리고 둘째 백부의 가족을 위해선 전혀 경호원을 파견하지 않았다.

그것만 봐도 수한 자신이 보호해야 하는 인식의 범위 밖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수한에게 가족보단 멀고 남보다는 가까운, 그런 존재가 할아버지와 친척들이었다.

물론 친척들이 위험에 처한다면 당연 나서서 지켜주겠지만, 아직까지 그들이 위험에 처할 만한 상황이 닥칠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기에 아직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아무튼 수한은 아직 치안이 불안정한 곳에 사람들을 불러들였으니 그들의 안전도 보장을 해줘야만 했다.

지킴이 수장으로서의 사명감이 아니라, 자신이 벌인 일에 그들을 참여시켰으니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이다.

형편이 열악한 지역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수한은 자신이 가진 것을 아끼지 않고 활용하였다.

돈이란 것은 있다가도 없고, 또 없다가도 생기는 신외지물(身外之物)이란 사실을 양할아버지 혜원으로부터 들었기에 그대로 실천을 하는 것이다.

수한은 라이프 메디텍과 천하 컨소시엄에서 수석 연구원으로 일을 하며 벌어들인 돈과 가지고 있는 각종 특허의 사용료를 모두 이번 북한 지역에 투입하였다.

빠른 시일 내에 북한 지역이 남쪽에 버금갈 정도로 활성화가 되어야 외부의 부침을 당하지 않고 홀로 설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북한 지역에 설립한 PMC는 사전에 정부의 허가를 받았기에 수한은 자신이 불하 받은 지역의 경비를 그들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인근에 군부대가 있기는 하지만 군인들도 사실 이곳에서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는 처지였다.

막말로 통일은 되었지만 아직 일부 군 장성들은 구 북한군들을 믿지 못하고 그들에게 총기류를 일절 내주지 않았다.

그런 처사가 나중에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수한이 생각하기에 그런 대우가 절대 좋은 결과를 만들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랬기에 자신의 품에 있는 이들이라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무리를 해가며 PMC를 꾸린 것이었다.

수한이 PMC를 꾸리기 위해 정부에 많은 것을 양보했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정대한 회장도 어떻게 해서 PMC에 관해 일절 허가를 하지 않던 정부가 수한에게 허가를 내줬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웃지 못할 일이 이면에 있었다. 정부는 그냥 앉아서 엄청난 예산을 줄이면서 서류 한 장에 도장만 찍고 많은 이득을 본 것이다.

골치 아픈 구 북한 특수부대 출신들을 전역시키는 문제부터 수한의 회사에 취직한 그들이 사고를 치면 사후 책임을 진다는 약정서를 쓰기까지 하였다.

그로써 정부는 몇 배 늘어난 국방비를 절약할 수 있었으며, 사회에 풀어놓으면 사회 불안 요소로 자리할지 모르는 구 북한 군인들을 상당수 줄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탑재한 신형 전차(백호)를 100대나 무상으로 받기로 하였다.

아니, 계약되어 있는 백호 중 100대 분량의 값을 수한이 대신 치르기로 한 것이다.

덕분에 압록강 교전 승리의 주역인 백호를 추가로 100대 더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앞으로 5년 뒤, 중국으로부터 동북 3성을 할양 받기로 한 정부의 입장에선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동북 3성을 할양 받게 된다면 국경선은 지금보다 더 엄청나게 길어질 예정인데, 현재 군의 장비로는 모든 국경을 지켜내지 못할 터였다.

현재 군은 그 문제로 따로 태스크포스 팀이 구성되어 연구를 하는 중이었다.

급작스런 통일로 현재 군은 해야 할 일이 무척이나 많은 상태였다.

그런데 한중 교전 합의로 5년 뒤에는 그렇게 열망하던 고토를 회복할 수 있기까지 했다.

때문에 할 일이 많은 군 당국으로서는 그 성과가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그나마 수한으로부터 PMC 허가를 조건으로 군에서 원하여 마지않는 최신형 무기(백호)를 100대나 지원해 주니 참고 넘어간 것이었다.

아무튼 수한은 지금 자신이 어렵게 허가를 받아 설립한 PMC 지킴이에서 서류를 확인하고 있었다.

수한은 자신이 설립한 PMC의 상호를 지킴이라 지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단체인 지킴이의 설립 목적과 PMC의 목적이 같았기 때문이다.

수한이 가족과 자신을 따르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설립한 회사가 바로 지킴이였다.

더욱이 비밀 단체이기에 지킴이는 수면 위로 나올 수 없으니, 자신이 설립한 PMC가 그 이름을 사용한다고 해서 누가 터치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름이 같다 보니 수한은 더욱 그 이름에 애착이 갔다.

어려서부터 혜원으로부터 지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한 수한이었다.

지킴이의 연원부터 시작해 지킴이가 이 땅에 등장하게 된 배경, 그리고 그들이 아무런 이득도 없는 지킴이 회원으로서 의무를 수행했던 이야기 등을 들으며 수한은 마음속에 다짐한 것이 있었다.

똑! 똑! 똑!

수한이 서류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사무실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덜컹!

수한이 말을 하기 무섭게 사무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오셨다는 이야기 듣고 왔습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라이프 메디텍의 보안대 부장 리철명이었다.

아니, 이곳 지킴이 PMC의 부사장으로 이직을 하였으니 리철명 부사장이었다.

수한은 지킴이 PMC를 차리면서 자신을 대신해 믿을 만한 사람을 책임자로 앉혀야 했다.

어차피 자신은 라이프 메디텍의 신제품 연구나 천하 컨소시엄의 수석 연구원으로서 새로운 무기들을 연구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면 이곳의 일에 많은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특히나 앞으로 주변국과 대한민국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욱 연구에 매진을 해야만 했다.

정말이지,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무척이나 피곤한 상태였다.

그 때문에 때로는 모든 것을 잊고 어디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마법만 연구하고 싶은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수한의 본질은 마법사이기 때문이다.

전생에도 그렇고, 현생에도 그렇지만 수한의 근본은 마법사였다. 마법을 근간으로 현생의 과학을 접목해 9클래스의 경지에 들었다.

물론 전생의 마지막 순간에 9클래스로 들어가는 약간의 깨달음을 얻고 환생을 했기에 그런 것이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수한 본인은 자신을 마법사라 정의하고 있었다.

그러니 때때로 모든 것을 잊고 마법만 연구를 해 창조 마법이라는 10클래스를 넘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수한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그가 전생에서 죽음에 이르면서 했던 마법사의 맹세 때문이다.

마법사의 맹세란 것은 그 존재를 걸고 하는 맹세로, 단순히 말로만 떠드는 것이 아닌 영혼에 새기는 행위다.

그러니 맹세를 부정한다는 것은 본인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고, 마법사인 수한이 맹세를 어긴다는 마법사로서의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였다.

그렇기 때문에 수한은 자신의 맹세를 죽는 순간까지 지켜야만 한다.

원칙대로라면 전생에 제로미스(수한)가 죽으면서 맹세는 종료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맹세가 종료되지 않고 리셋이 되어버렸다.

그 이유는 환생을 하는 과정에서 특이하게도 수한이 제로미스로서의 기억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제로미스가 죽으면서 워프 게이트의 이상 작용으로 인해 태아인 수한의 몸에 영혼 전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그것 또한 수한이 9클래스 마스터가 되면서 유추한 추론일 뿐이지만.

“어서 와요. 그런데 무슨 일로 찾아온 것이지요?”

수한은 생각을 접고 자신을 찾아와 인사를 하는 리철명을 보며 물었다.

리철명은 잠시 수한의 뒤에 자리하고 있는 김갑돌을 돌아보다 대답을 하였다.

“아, 예.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단 그동안 회사에 발생한 일들을 보고하기 위해섭니다.”

리철명이 김갑돌을 돌아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자신이 새로운 회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김갑돌과 잠시 소원해진 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처남매부지간이고, 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은 직장에 같은 직급으로 있던 동료이기도 했다.

그런데 처음 수한이 북한 지역에 민간 군사 기업(PMC)를 만든다고 했을 때, 둘 중 한 명은 그곳으로 가야 하기에 둘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아직 어린 자식이 있는 김갑돌보단 자식이 모두 장성한 자신이 이북으로 오는 것이 나을 것이라 판단해 자원을 했다.

하지만 은인인 수한의 곁에 남아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에 수한의 뒤에 있던 김갑돌을 돌아본 것이었다.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래요.”

리철명은 수한을 쳐다보며 그동안 지킴이 PMC에 있었던 일을 보고하였다.

“현재 저희 지킴이는 박사님의 지시대로 구 북한군 출신이면 일단 가리지 않고 받고 있습니다.”

수한은 리철명의 보고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특수부대 출신 북한 군인들만 받을 계획이었지만, 일부 북한군 중에서 전역을 하는 이들이 발생하였다.

갑작스런 체제 변화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불안한 마음에 전역을 한 것이다.

또 전에 떠돌았던, 한국군이 들어오면 군인들을 모두 죽인다는 유언비어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군에서 전역한 구 북한 군인들이 사회문제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막말로 그들이 전역을 한다고 해서 뚜렷하게 살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비록 잘 먹지를 못해 체격 등이 대한민국 평균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다년간 군 생활을 하던 이들이다.

한데 만약 그들이 사회에 불만을 느끼고 집단행동을 한다면 일반적인 데모 수준을 뛰어넘는,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일반 대학생이 시위를 해도 화염병이나 투석이 나오는데, 군 출신들이 대거 집단행동을 한다면 얼마나 큰 소요가 일겠는가.

이는 상황이 닥치지 않더라도 뻔히 알 수 있는 일이다.

그 때문에 수한은 특수부대 출신이 아니더라도 구 북한군 출신자가 신청을 하면 받으라는 조치를 내려두었다.

물론 그렇게 받아들인 군 출신자들을 모두 취업시킨 것은 아니었다.

자체적으로 훈련과 시험을 통해 기준을 통과한 이들만 정규직으로 취업을 하였다.

물론 시험에 탈락하더라도 일반 회사 경비로 취직을 시키기는 했지만, 일단 월급에서부터 차이가 있기에 회사에 지원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정직원이 되기 위해 이를 악물고 훈련에 임했다.

“특수부대 출신 중 시험에 통과한 이들은 1,200명이고, 일반 군부대 출신 중에서도 20명이 1차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리철명은 우선 1차 시험을 통과한 이들에 대해여 언급했다.

1차 시험이란 것은 가장 기본이 되는 체력 테스트로, 지원자들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리철명은 자신들이 오래전 SA부대와 함께했던 유격 훈련을 지원자들의 체력 테스트에 활용하였다.

그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탈락을 하였다.

겨우 1차 테스트인데도 특수부대 출신들이 대거 탈락하자 리철명은 그동안 북한의 사정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북한에서 특수부대라 하면 가장 많은 지원을 받는 부대였다.

아무리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어도 선군 정치를 펼치는 북한 지도자는 군에 대한 지원을 끊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특수부대에는 더 많은 지원을 했다.

그런데 그런 특수부대원들이 남쪽 군인들이 하는 훈련을 통과하지 못하고 탈락하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란 것이다.

리철명 본인도 특수부대 출신이고, 또 자신의 부하들도 특수부대 출신이었다.

한데 탈락한 자들 중에는 그가 있던 부대 출신도 있어 리철명을 더욱 놀라게 하였다.

북한 특수부대 중에서 최고라는 양강도 출신은 아니지만, 그래도 당당히 상위에 속하는 부대였다.

그리고 사실 지원자들 중에서 특수부대원 출신이라고 말한 이들 대부분이 피죽도 못 먹었는지 처음에는 특수부대 출신이란 사실 자체를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튼 리철명은 1차 테스트 통과한 사람들을 보고하였다.

“그럼 탈락자들은 따로 분류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예, 그렇습네다. 그들은 지시대로 따로 분류해 일반 경비원으로 교육을 시키고 있습네다.”

특수부대 출신 중 테스트에 통과한 이들은 PMC로서 교육과 훈련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훈련 과정을 수료한다면 지킴이의 정식 직원으로 취직되어 라이프 메디텍 보안대처럼 특수 장비를 지급 받아 지정된 곳에서 근무를 할 것이다.

그러다 필요하다면 특수 임무를 받아 투입이 될 것이다.

그 특수 임무란 북한 지역 사업장에서 소요를 일으키는 이들을 제압한다거나 테러를 하려는 이들, 또는 테러리스트를 잡아들이는 일을 의미했다.

아무튼 아직 초기라 많은 이들이 지원하고 있지는 않지만 수한의 계획은 최소 5만 명까지 수용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전력을 꾸리게 된다면 해외로도 사업 영역을 넓힐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물론 그건 나중의 일이지만, 수한은 지킴이 PMC 내에 육, 해, 공, 삼군은 물론이고, 특수 임무를 맡는 부서도 만들 생각이었다.

수한이 이렇게 크게 PMC를 만들려는 데는 북한 지역의 특수성을 활용해 자신이 개발한 무기를 직접 테스트를 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현재 수한이 수석 연구원으로 있는 천하 컨소시엄은 조만간 해체가 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원래 천하 컨소시엄의 목적은 신형 전차(백호)의 개발을 목적으로 천하 디펜스를 비롯한 여러 회사가 공동으로 출자해 만든 임시 회사였다.

그러던 것이 신형 전차가 완성되고 정식 명칭인 K―3 백호라는 이름을 획득하였다.

원래라면 백호가 완성되고 컨소시엄은 종료가 되어야 했지만, 수한이 컨소시엄에 참여하면서 개발한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둘러싸고 조금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원 개발자는 수한이지만 컨소시엄의 수석 연구원으로 참여하던 도중에 개발했기에 컨소시엄에 참여한 일부 회사에서 욕심을 냈던 것이다.

그 문제로 소송이 몇 번 오가긴 했지만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는 전적으로 수한 개인이 개발한 것이라 결론이 났으며, 그 문제로 신뢰가 흔들린 탓에 정부가 주문한 백호의 수주만 끝내면 더 이상의 생산은 중단하게 되었다.

수한은 그 때문에 이후로 컨소시엄에는 절대로 참여하지 않을 방침을 세웠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고 밤이 길면 꿈도 길다고 했던가.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거두니 욕심을 부리는 이들을 보며 수한은 인간의 욕심의 끝은 없다는 것을 느끼며 계획을 세운 것이다.

수한이 식량 자급률을 위해 넓은 땅을 정부로부터 불하 받은 것이나 대규모 PMC를 설립한 저변에는 그런 요소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신무기 개발이나 신 종자 연구에는 많은 자본이 들기는 하지만, 수한에게 있어 자본쯤이야 차고도 넘쳤다.

라이프 메디텍에서 생산하는 인공 장기나 신체, 그리고 각종 의약품들은 지금도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수한은 자신이 똑똑하다고 해서 모든 것을 혼자 하려고 하지 않았다.

본인이 잘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잘하는 것을 구분할 줄 알기에 라이프 메디텍이 그랬듯 각 회사에는 전문 경영인을 두고 자신은 연구 개발만 담당하였다.

이곳 지킴이 PMC도 그런 취지에서 전문 경영인을 두고 운영할 예정이었다.

아직까지는 회사를 설립한 지 얼마 안 되어 자리를 잡아가는 시점이고, 또 하는 일도 단순히 북한 지역에 진출한 자신의 회사와 자신이 끌어들인 자선 단체들에 대한 안전을 책임질 뿐이었다.

나중에 자체적으로 무기가 개발되고 해외에 진출할 정도로 규모가 커진다면 그때는 전문 경영인을 두고 회사를 운영할 것이지만, 아직까지는 전문 경영인이 필요한 시기는 아니었기에 본인이 직접 관리를 하는 중이었다.

“경비로 빠지는 인원들은 안전 교육을 실시하고 바로 내가 알려준 곳으로 파견을 보내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수한은 보고를 마친 리철명에게 지시를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득 이곳에 와서 지원한 사람들이 어떤 훈련을 받고, 또 어떻게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점검을 하기 위해 들른 것이니, 이왕 온 것 보고만 받고 가기보단 직접 눈으로 필요한 것이나 불편한 것은 없는지 알아보기로 하였다.

◈ ◈ ◈

사무실에서 나온 수한은 회사에 지원한 이들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처음 찾아간 곳은 역시나 식당이었다. 직원들이 먹는 음식의 상태가 어떠한지부터 점검을 하였다.

달그락, 달그락.

그런데 식당을 점검하다 수한의 눈을 찌푸리게 하는 모습이 보였다.

식당 구석에 냄비에 잔반(殘飯)이 남아 있는 채로 있던 것이다.

원래 규정은 식사가 끝나면 모든 잔반은 바로 처리하게끔 규정이 되어 있었다.

북한 지역은 아직 의료 서비스가 열악한 곳이라 혹시 식중독의 우려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더욱 위생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 이렇게 잔반이 남아 있다는 것은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소리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전 분명 위생에 신경을 쓰라고 했는데, 그것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니.”

표정을 굳힌 수한의 말에 리철명도 얼굴 표정도 덩달아 굳어졌다.

그런데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식당 아주머니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냄비에 음식물을 남긴 사람이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지킴이 PMC에서는 직원들에게 아침, 점심, 저녁까지 세 끼 식사를 지원했다. 직원 대부분이 남쪽에서 파견 나왔거나 구 북한 특수부대 출신들이다 보니 원활한 통제를 위해 숙소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그러니 이들의 숙식을 제공하기 위해 도우미가 필요하였다.

숙소를 정리하는 것이야 본인들에게 시키면 되는 문제이지만, 식사만큼은 다른 사람들이 해야만 했다.

고된 훈련을 받는 그들에게 식사까지 직접 해먹으라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식사만큼은 따로 전문 인력을 구해 제공하고 있었다.

물론 수한이 서울에 가 일을 보느라 점검을 하지 못한 부분도 존재했다.

한데 그러다 보니 식당에 취직한 이들 중 일부가 그날 남은 잔반을 가지고 배를 굶고 있는 가족에게 가져가 먹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킴이 PMC에서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음식들은 하나같이 영양에 신경을 쓰면서도 맛도 뛰어나 일류 요리사의 요리에 버금갔다. 그래서 직원들은 물론이고, 식당에서 일하면서 사람들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에게도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은 직원 일부가 잔반이라도 챙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잔반이라고 모두 비위생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러 음식들을 봉지 하나에 넣다 보니 남은 음식이 아닌, 말 그대로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것을 잘못 먹었다가는 당장 탈이 나지 않더라도 자칫 잘못하다간 식중독에 걸릴 위험이 있었다.

특히 식당 안에 잔반이 남아 있다면 분명 쥐나 파리 등이 꼬일 것이다.

그런 사소한 것 하나 때문에 회사 내에 전염병이 돌 수도 있는 것이기에 수한이 이처럼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이었다.

“죄송합네다.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 먹이고 싶은 마음에…… 정말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네다.”

뒤에 있던 아주머니 한 명이 나서서 고개를 숙이며 잘못을 빌었다.

혹시나 젊은 사장이 화가 나 이곳 책임자 동무를 경질하고 가면 나중에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먼저 자수를 한 것이다.

막말로 젊은 사장이야 가고 나면 끝이지만, 남은 이들은 어떤 고초를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한편, 리철명에게 지시 불이행에 대한 시정을 요청하고 있는데, 갑자기 겁에 질린 얼굴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에 수한은 당황하였다. 그래서 잠시 아주머니를 지켜보았다.

여인은 전형적인 북한 주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랜 굶주림 탓인지 영양상태가 그리 좋지 못해 푸석해 보이는 행색과 외부 활동을 많이 하였는지 검게 그을린 피부에는 잔주름이 많이 나 있었다.

그나마 요즘 삶이 조금 폈는지 여느 북한 주민들에 비해서는 상태가 좋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해 보여 측은한 마음이 절로 들게 만들었다.

‘음, 내가 너무 몰아붙였나 보군.’

잘못된 행정을 시정하게 만든다는 것이 그만 일하는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한 듯 보였다.

생각해 보니 자신이 직원들에게 잘해줘야 한다고만 생각을 하였지, 직원 가족에 대한 배려가 조금 미흡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현재 북한 지역에 들어와 있는 기업 중 직원들의 복지에 신경을 쓰는 곳은 많지 않았다.

수한도 나름 신경을 쓴다고는 했지만 그건 모두 의료 부분에 해당될 뿐, 먹고사는 부분에 관해 월급 이외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북한 지역의 어머니들도 다른 어느 나라의 어머니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자신이 맛있는 것을 먹기보다 가족에게 먹이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것이 어머니란 존재가 아니겠는가. 수한은 잘못을 자수하며 두려움에 떠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며 반성을 하였다.

‘여기도 다르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아.’

수한은 자신이 알고 있던 바와 직접 겪는 북한 주민의 삶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이곳 역시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자 반성을 하게 되었다.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세요.”

수한은 잘못을 빌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식당을 나왔다.

많은 생각을 하며 식당을 나온 수한은 이번에는 직원들이 훈련을 하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에는 각종 운동기구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으며, 체육관 한쪽에는 매트가 깔린 넓은 공간이 있었다.

아마도 무술 대련을 하는 곳이라 여겨졌다.

체육관 안에는 몇몇 직원들이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체격은 그래도 일반 북한 주민보다 10㎝ 정도 더 커 보였는데, 아마도 특수부대 출신들이다 보니 일반 주민들보단 잘 먹어서 그런 듯 보였다.

물론 그럼에도 남쪽 주민들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체육관 시설을 마저 둘러본 수한이 직원들의 숙소로 발길을 옮겼다.

직원들 숙소는 4인 1실로 되어 있었으며, 2층 침대 두 개와 벽 한쪽에는 책상 네 개가 있었다.

그 옆에는 옷장이 있고, 실내에 화장실과 세면장까지 갖춰져 있었다.

언뜻 봐선 대학교 기숙사를 보는 듯하였다.

수한은 숙소를 둘러보며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간부들이 숙소를 점검한다고는 하지만 일과가 끝난 후 편하게 여가 시간을 갖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식당을 빼고는 대체로 자신의 지시가 잘 지켜지고 있었기에 점검을 마치고 돌아오는 수한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리철명 부사장님.”

“예, 박사님.”

수한은 리철명을 불러 조금 전 식당에서의 일을 지시하였다.

“어찌 되었든 다음부터는 잔반이 외부로 반출되지 않게 하시고, 차라리 남는 음식은 잘 포장을 해 필요한 분들에게 나눠 주십시오. 저런 식으로 지저분하게 모아 가져가게 되면 필히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아니, 차라리 저녁은 저희가 제공하는 것으로 하세요.”

수한은 식당에서의 일을 지시하다 말고 뭔가 궁리를 하다 아예 식당 직원들의 가족을 회사로 불러 저녁을 대접하라고 하였다.

수한의 지시에 리철명은 또다시 놀란 얼굴을 하고 말았다.

사실 그로서는 지금까지 수한과 함께 일을 해오면서 놀라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생각지 못한 지시를 받게 되자 수한에 대한 경외감이 더욱 깊어졌다.

따지고 보면 그가 처음 수한을 만나게 된 계기는 참으로 기구하였다.

수한을 죽여 달라는 의뢰를 받고 찾아갔으나 매형의 제지로 그 일을 포기하였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수한의 밑에서 일하게 되었고, 지금에 와서는 엄청난 지위도 얻게 되었다.

곁에서 지켜본 수한은 나이는 어리지만 생각이 깊은 사람이고, 또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호인(好人)만은 아니었다. 단호할 때는 마치 무생물을 보는 듯 냉정했다.

그리고 생명의 무게를 무겁게 느끼기는 하지만, 필요하다면 간단하게 목숨을 취하기도 하였다.

자신의 적이라 생각되는 이들에게는 정말이지 지옥의 나찰과도 같았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자신의 품에 들어온 사람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아끼지 않는 모습에 다시 한 번 감동을 느끼는 리철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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