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대통령과의 면담
백제 호텔, 한중 교전 협상장.
찰칵! 찰칵!
한국과 중국은 한 달 전, 두 나라의 국경인 압록강에서 벌어진 심양 군구 집단군과 대한민국 국군 2기갑사단 간의 교전에 대한 협상을 벌였다.
그리고 3일이나 되는 철야 협상 끝에 극적으로 합의가 타결되었기에 내외신 기자들을 불러들였다.
기자들은 양국 대표의 연락으로 급하게 백제 호텔을 찾아 한중 양국 협상 대표의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포토라인 밖에서는 계속해서 카메라 셔터가 눌러지며 플래시가 계속해서 번쩍였다.
아직 양국 대표 중 누구도 나오지 않았지만, 단상에 걸려 있는 양국 국기를 배경으로 계속해서 카메라 불빛이 번쩍이는 것이었다.
“잠시 뒤, 한중 교전 협상의 한국 측 대표이신 전 캄보디아 대사 겸 정명수 외교통상부 차관님과 중국 대표이신 주빈방 국무원 부총리께서 나오시겠습니다.”
기자회견을 준비한 외교통상부 직원이 나와 조금 뒤 양국 대표가 이번 협상 내용을 발표할 것을 알렸다.
그러자 조금 전과는 다르게 소란스럽던 실내가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것처럼 조용해졌다.
외교통상부 직원이 그렇게 말을 하고 물러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표장 한쪽 문이 열리며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 단상으로 올랐다.
문이 열리기 무섭게 조용하던 실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한 번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와 플래시의 번쩍거리는 불빛으로 가득하였다.
찰칵! 찰칵!
번쩍! 번쩍!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단상에 오른 정명수와 주진방은 차분하게 단상 앞에 마주 섰다.
그러고는 정명수가 먼저 단상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고 원고를 읽기 시작하였다.
이번 협상의 내용이 적혀 있는 원고였다.
정명수는 들고 있던 원고를 차분하고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안녕하십니까? 방금 소개 받은 외교통상부 차관 정명수입니다. 이런 일로 기자분들을 만나게 되어 무척이나 유감스러운 심정입니다.”
협상의 내용을 발표하기 전, 정명수는 기자들을 향해 가볍게 인사를 하며 서두를 꺼냈다.
“이번 한중 교전에 대한 협의는 총 네 가지 안건을 두고 협상하였고, 서로 수긍할 수 있는 범위 내에 합의를 보았음을 선언합니다. 이는 양국의 어느 한쪽이 손해를 보는 협상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입니다.”
차분하게 원고를 읽는 정명수는 웅변이라도 하듯 기자들을 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가 말하는 내용의 골자는 간단했다. 금번의 협상이 일방적인 결론이 아닌, 양국이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하였음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는 예전과는 많은 차이를 느끼게 해주는 말이었는데, 사실 예전의 한국은 중국이나 미국 등 강대국과 협정문을 발표할 때면 언제나 약자의 입장에서 협상을 벌이고 그에 대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아무리 성공적인 협상이라고 발표를 해도 국민들이 그 협상 내용을 들었을 때는 불공정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예를 들어 한미 FTA 협상을 들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동등한 입장에서 벌인 협상 같지만, 문구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공정한 협상이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곳곳에 자리한 독소 조항으로 인해 한국 경제에 크나큰 불이익이 뻔히 보이는데도 예전 정부는 세계화란 명목 아래 그것을 추진하려고 하였다.
한 번 발의되면 절대로 되돌릴 수 없다는 내용이 버젓이 있는데도 그런 문구를 무시하고, 한국은 미국에 어떤 반발도 하지 못하는, 사실상 나라 경제를 미국에 갖다 바치는 내용이었다.
아무튼 그런 어처구니없는 협상을 벌이고도 그동안 한국 정부는 으레 당연시 했다.
그것이 애국이라 자위하며, 자신들은 최선을 다했다는 정신승리를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런 정부의 정책을 따르는 것만이 애국이라 국민들을 호도하였다.
하지만 깨어 있는 국민들은 그런 불합리를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애국이라 생각해 그동안 참아왔던 것이 폭발하듯 분출되어 지금의 정부를 정상에 올렸다.
아무튼 현 정부는 국민들의 염원을 잘 받아들여 연임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한층 끌어 올리는 기자회견이 시작되고 있었다.
“중국과 협의한 내용은 총 네 가지였습니다. 첫째, 이번 교전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따지는 일입니다. 둘째, 재발 방지에 대한 협의입니다. 셋째, 한국이 한반도 통일을 하는 과정에서 획득한, 구 북한군이 개발했던 핵무기에 대한 보유 인정입니다. 넷째…….”
정명수 차관이 중국과 협의 내용을 발표하고 있을 때, 조용히 그 내용을 듣고 있던 기자석이 크게 소란스러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세 번째 안건의 내용이 너무나도 엄청난 이슈였기 때문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핵무기 보유에 관한 내용이었기에 실내가 소란스러워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마지막으로 넷째는 이번 교전으로 인해 한국이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금 책정입니다.”
마지막 협의문을 발표한 정명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장내를 둘러보았다.
그런 정명수의 모습을 카메라는 계속해서 불빛을 발사하며 담고 있었다.
장내 분위기가 자신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듯하자 정명수는 다시 입을 열어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첫째, 책임 소재를 밝히는 데 있어 중국 정부는 이번 한중 교전이 절대 중국 정부의 뜻이 아니었음을 한국 정부에 알려왔으며, 한국 정부는 중국 정부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중국 정부는 자신들의 뜻은 아니지만 권력자 중 일부가 자신들의 권력 강화를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이를 막지 못해 이런 비극이 일어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번 협상에 임해 이번 교전으로 불의의 희생을 당한 한국군과 관계자들에게 유감의 뜻을 발표하였습니다.”
원고를 읽어가던 정명수는 무언가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것이 있는 듯 발표를 하던 중 말끝이 살짝 흔들렸다.
“둘째, 재발 방지를 위해 중국 정부는 기존의 독립적이던 군벌들을 통합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전에는 중국 대륙을 일곱 개의 군구로 운영하였는데, 그러다 보니 금번 사건처럼 군구가 독립적으로 중앙의 정책과 다르게 움직이는 경우가 발생하였습니다. 중국 정부는 이를 교훈 삼아 전군을 통합해 통합군 체제로 전향할 것을 약속하였고, 이 과정에서 심양 군구가 위치했던 동북 3성은 국경을 경계하는 경비 인력을 제외한 병력을 군의 개혁과 맞물려 본토로 이전하기로 하였습니다.”
기자들은 첫 번째 협의문의 내용을 발표할 때만 해도 역시나 중국 정부가 살짝 책임을 피해간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두 번째 내용이 발표되면서 다시 한 번 소란이 일어났다.
그동안 중국은 독특한 군사 체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각 군구의 권한은 그 지역에선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군구라는 체계가 현대 전략에서 그리 좋은 시스템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러한 독립적인 군사 체계를 유지하고 있던 원인은 다름 아닌 중국의 탄생 배경에서 찾을 수 있었다.
중국은 근대에 들어서며 청나라가 서구 열강의 침입으로 내우외환의 위기를 겪으며 무너졌다.
내부적으로 부패하고 외부적으로는 열강들의 침탈에 결국 동양의 대제국이던 청나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 과정에서 대륙 곳곳에 자리하고 있던 군벌들이 현대 중국군의 모태가 되었는데, 당시 군벌은 나라의 군대가 아닌 개인의 군대였다.
최고 사령관의 사병이었던 그들이 중국이란 나라에 편입되었으니, 당연 개인의 이득을 위해 군대를 움직였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그런 경향이 사라지지 않은 채 유지가 되어왔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 그 병폐가 여실히 드러나 결과적으로 국가에 부담을 주게 되었다.
중국 정부는 이번 일을 기회로 효율적인 군사 체계를 완성하기 위해 일곱 개 군구로 나눠진 군대를 통폐합하기로 결정하였다.
미국을 제외하고는 어떤 나라와 교전을 해도 승리할 자신이 있다고 자랑하던 심양 군구의 집단군이 몇 수 아래라 생각했던 한국군, 그것도 일개 사단 병력에 막혔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기자들이 놀란 것은 군을 통폐합한다는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심양 군구가 담당하던 지역에서 국경 경계 병력을 빼고 모두 철수한다는 발표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아직 발표가 끝나지도 않았는데도 기자들은 손을 들어 중국 측 대표인 주진방에게 질문을 하였다.
하지만 기자들의 질문 세례는 곧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너무도 소란스러워 발표가 중단되자 외교통상부 직원들이 나서서 장내를 진정시켰기 때문이다.
잠시 소란이 일긴 하였지만 장내가 진정되자 정명수는 다시 목을 가다듬고 발표를 계속하였다.
“음, 음. 발표가 모두 끝난 뒤 질문할 시간을 드릴 것이니, 궁금한 점이 있으시더라도 우선은 진정들 해주십시오.”
정명수는 노련하게 한 템포 죽이며 기자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계속해서 협의 내용을 발표하였다.
“셋째, 한국이 보유한 구 북한군이 개발한 핵무기의 보유 사실을 인정한다. 넷째, 중국 정부는 이번 한중 교전의 책임이 전적으로 중국 정부가 군을 통제하지 못해 벌어진 것을 인정하고, 그 보상으로 500억 달러의 보상금을 한국 정부에 보상하며, 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북 3성(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을 5년 뒤 할양하는 것에 합의를 하였습니다.”
한국 측 대표인 정명수 차관의 발표가 끝나자 장내는 잠시 쥐 죽은 듯 침묵이 흘렀다.
너무도 충격적인 내용이 연이어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발표한 이번 사태의 책임 소재가 중국이란 발표나 재발 방지를 위해 군의 통폐합을 하고, 또 국경에 경비 병력만 남겨놓는다는 이야기와는 비교도 안 될 사안이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대한민국은 1992년에 한반도 내에서 핵무기 개발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었다.
물론 당시의 북한 또한 대한민국 정부와 함께 공동 선언을 하였지만, 북한은 2006년 선언을 번복하며 핵무기 개발에 착수하였다.
구 북한군이 보유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핵무기는 총 7~20기 정도였다.
불량한 경제 사정 속에서도 구 북한 정부는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핵개발만이 살길이라 생각해 핵무기 등 첨단 무기 개발에 힘썼다.
하지만 연이은 전쟁 도발에 보다 못한 대한민국 정부가 특수부대를 구 북한 정부가 있는 평양에 침투시켜 북한 지도부를 일망타진하였다.
그 과정에서 북한에 침투했던 특수부대는 가장 위협이 되는 핵무기를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렇게 확보한 핵무기는 그동안 비밀리에 관리가 되어왔는데, 이번에 중국과의 교전으로 인해 그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기회라 판단을 하고 이참에 확실하게 대한민국이 핵무기 보유국이란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중국과 협상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정부의 의도는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모든 일에는 시(時)와 장소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적당한 때, 그리고 실행할 장소가 있어야만 완성이 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시기를 중국과 벌이는 한중 교전 협상 장소로 정했다.
칼자루는 교전에서 승리한 대한민국 정부가 가지고 있기에 아무리 자존심 강한 중국 정부라 해도 이번만큼은 대한민국 정부의 의도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중국 정부도 어떻게든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사태만은 막아보려고 노력을 하였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이미 작정을 하고 완벽하게 계획을 수립한 한국 정부의 승리였다.
중국이 한국의 동맹인 미국에 정보를 흘렸지만, 그보다 한발 빠르게 움직인 한국은 미국이 협상에 껴들기 전에 먼저 중국과 협상을 마무리해 버린 것이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강대국 중 하나인 중국에 공식적으로 핵무기 보유 사실을 인정받았다.
그런 사실만 해도 놀랄 일인데, 중국이 이번에는 교전에 대한 책임으로 배상금을 지불하는 것 외에도 동북 3성을 할양한다는 발표에 기자들은 경악을 넘어 공황 상태에 빠지고 만 것이다. 비록 주민 소개 목적으로 5년 뒤부터 이행이 된다고는 했지만.
중국이 그동안 펼친 팽창 정책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오래전 북한을 병합하기 위해 중국이 했던 동북 공정이나 자치구가 독립을 하려고 할 때마다 무력으로 불만 세력을 제압하던 것을 널리 알려진 바였다. 한데 영토 일부를 포기한다는 중국 정부의 입장은 그동안의 정책에 큰 변화를 암시하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었다.
기자들은 너무도 놀라운 발표 내용에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충격이 회견장을 휩쓰는 사이, 정명수는 발표를 마치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중국 대표인 주진방이 앞으로 나서서 조금 전 한국 대표인 정명수가 발표한 것에 대해 중국의 합의한 내용을 발표하였다.
정명수가 한국의 입장에서 협의문을 발표하였다면, 이번 주진방의 발표 내용은 중국의 입장에서 한국이 양보한 내용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같은 협의 내용이지만 각국의 입장에서 입각한 발표문이기에 조금은 다른 내용도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협의 내용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 ◈ ◈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윤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집무실을 찾은 수한과 함께 전면에 놓인 TV 화면을 보고 있었다.
수한이 윤재인 대통령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 청와대를 찾았다가 뜻하지 않게 한중 교전에 대한 협상이 타결되어 그 발표를 함께 보게 된 것이었다.
한참 한중 교전 협상 발표를 지켜보던 수한은 발표가 끝나자 고개를 돌려 윤재인 대통령에게 시선을 주었다.
협상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TV를 통해 다시 듣게 되자 윤재인 대통령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뿌듯함을 느꼈다.
윤재인 대통령은 어려서부터 조국 대한민국을 생각할 때마다 답답함을 느꼈다.
무엇 때문에 약한 모습을 보이며 국제사회의 호구를 자처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정치에 입문하면서 진상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의 답답한 기분은 가시질 않았다.
한국이 위치한 지리적 요건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사방이 강대국에 둘러싸여 제 목소리를 못 내는 현실. 그런 현실 속에서 그는 또 다른 갈증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에게 힘이 생긴다면 그러한 관계를 타파하겠다는 포부를 가졌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이 대통령의 자리에 있을 때, 민족의 염원이던 통일을 이룩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이지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통일을 이룬 지 얼마 되지 않아 강대국 중국이 침공을 해온 것이다. 다행히 국경을 지키고 있던 국군에 의해 작은 피해만 입고 막아낼 수 있었다.
당시 중국 주석이 핫라인을 통해 협박을 했을 때만 해도 얼마나 살이 떨렸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무슨 정신으로 중국 주석인 주진평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윤재인은 자신이 생각해도 당시 자신이 반쯤 미쳐 있었다고 판단했다.
정말이지, 인간지사 새옹지마(人間之事 塞翁之馬)라 했던가. 북한의 전쟁 도발을 막기 위해 비밀리에 양성한 특수부대를 평양으로 침투시켰다.
사실 그 당시에는 작전의 성공 여부를 떠나 한반도 내에서의 전쟁을 막기 위한 더 이상의 방법이 없었다.
이미 중국의 원조를 받고 그 대가로 한반도 내에서의 전쟁을 힐책하던 북한 정부였기에 더 이상 대화가 통하는 시기를 넘긴 후였다.
그랬기에 특수부대를 북한 깊숙이 침투시켜 마지막 수를 시도한 것이었다.
하늘의 보살핌인지, 그 최후의 한 수가 성공하여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이룩하였다.
그런데 전쟁의 위기를 넘겼다 생각했던 시각, 또 다른 위기가 한반도에 닥쳐왔다.
강대국 중국의 최정예 병력인 심양 군구 집단군이 쳐들어온 것이다.
다행히도 그동안 준비했던 것이 헛되지 않았는지, 막강한 심양 군구의 집단군을 맞아 대승을 거두면서 막아냈다.
그 일을 통해 한국은 절대 약한 국가가 아니란 것을, 함부로 건드리면 큰코다칠 수도 있다는 것을 세계만방에 알렸다.
이 모든 과정이 정말이지 고사성어에 나오는 새옹지마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고 했던가. 언제나 고자세로 한국을 내려다보던 중국이 모든 것을 양보하며 협정을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밑바탕에는 눈앞에 있는 어린 친구의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몰아내기 위해 특수부대가 사용했던 장비들도 눈앞에 있는 젊은 박사가 만들어낸 것이며, 최대의 위기였던 중국 심양 군구의 최정예 병력이 국경을 넘었을 때 그것을 막아낸 장비도 앞에 앉아 자신을 보고 있는 박사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현재 이 젊은 박사가 한반도 내에서 펼치는 사업은 조국과 민족 번영에 크게 이바지 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 사람이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생각이고, 현재 윤재인 본인의 지위는 일개인이 아닌 한 국가의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은 개인일 수가 없다. 대통령은 개인이 아닌 국가의 수장으로서 조국의 미래를 위해 어떠한 일이라도 해야만 하는 존재였다.
윤재인 대통령은 마음과는 다르게 진지한 표정으로 앞에 앉아 있는 수한을 쳐다보았다.
수한은 바로 진지하게 표정이 변하는 대통령을 보며, 그 떠한 표정을 바로 하고 자신이 오늘 청와대를 찾아온 용건을 말했다.
“대통령님, 북한 지역 개발에 관해 제안할 것이 있어 이렇게 면담을 요청하였습니다.”
수한은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말하였다.
“그런 일이라면 재정경제부 장관하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
윤재인 대통령은 수한의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판단하기에 굳이 대통령인 자신을 찾아올 것이 아니라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말을 해도 될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자신을 찾아온 것인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래야겠지만, 제가 드릴 제안은 좀 단위가 커서 대통령님의 허가를 받는 것이 더 빨리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단위가 크기에 재정경제부 장관이 처리할 범위를 벗어났다고 하는지 윤재인 대통령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제안할 것이 얼마나 되는 규모이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인가?”
자신으로서는 수한이 하려는 사업의 규모를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어 그리 물었다.
“제가 북한 지역을 돌아보고 느낀 것이 있는데, 현재 북한 지역의 식량 문제가 무척이나 시급하다 느꼈습니다.”
“식량? 그런데 그것이 어떻다는 것인가?”
“비록 정부에서 북한 지역 주민들을 돕기 위해 지원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몇몇 기업과 자선단체에서 돕고 있지만 그건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수한은 현재 북한 지역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대통령에게 전했다.
윤재인은 대통령으로서 보고를 받기는 하였지만, 그렇게 자세한 내용을 알지는 못했다.
그저 밑에서 올라오는 보고만 받아 서류상으로만 북한 지역 현실을 듣다 보니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했다.
정부에서 북한 지역 주민에게 지원을 하고 있다고만 보고를 받았지, 주민들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보고를 받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수한에게서 북한 지역의 현실을 듣다 보니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식량 문제가 심각한 수준인 것인가?”
윤재인 대통령은 혹시나 싶어 다시 한 번 식량 문제에 관해 물어보았다.
“단기간은 어떻게 버틸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대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장기 대책이 필요하다라……. 국제시장에서 들여오는 방법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인가?”
대통령은 혹시나 싶은 생각에 국제 곡물 시장을 언급했다.
하지만 수한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너무도 비관적인 내용이었다.
“물론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그것도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렵다? 무엇 때문에 그런 판단을 한 것인가?”
수한의 말에 윤재인 대통령은 그 이유를 물었다.
“이번 한중 협상의 내용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중 협상?”
“예.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한 것에 대한 제재가 있을 것입니다.”
수한은 한국이 중국과의 협상에서 핵무기 보유를 인정받은 것에 대해 제재가 있을 것이라 대답을 하였다.
“누가 그런 제재를 한다는 말이오?”
“누구겠습니까? 말로는 동맹이라고 떠드는 미국이 주도가 되어 제재를 할 것입니다.”
“음…….”
수한은 한국의 핵무기 보유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미국이 주도하여 경제제재를 할 것이라 언급하였다.
그리고 미국뿐 아니라 일본 또한 그런 움직임에 동조하여 더욱 강력한 제재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 말을 하였다.
“우리나라는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입니다. 그런데 이 수출품의 핵심 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일본이 제재를 한다면 한국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쪽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도 있습니다.”
수한은 미국이 주축이 되어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를 한다면 일본은 앞장서서 한국에 대한 제재에 동참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일본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역설했다.
“경제도 경제지만, 현재 전 세계의 곡물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 대부분이 미국에 연고를 두고 있습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다국적기업을 표명하지만, 미국의 행보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경영을 하는 것으로 보면 미국과 아주 연관이 없다고 보기 힘듭니다.”
수한은 거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입을 다물었다.
이야기를 듣고 심각한 표정이 된 대통령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정 박사의 말은 우리가 핵을 보유한 것 때문에 미국이 제재를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미국의 영향을 받은 곡물 메이커들이 우리에게 식량을 팔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말인가?”
윤재인 대통령은 고심을 하다 수한이 들려준 이야기에서 핵심을 짚어내며 그렇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수한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을 바로 알아듣고 물어오는 대통령의 말에 바로 대답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체적으로 식량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식량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는 수한의 말을 들은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기에는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윤재인 대통령은 수한의 말에 물음을 던졌다.
“아닙니다. 현재 한반도 내의 식량 자급률은 극히 낮긴 하지만, 정부가 비축한 물량과 민간에서 사들이고 있는 것을 아낀다면 미국이 곡물 메이커를 동원해 제재를 한다고 해도 충분히 버틸 수 있습니다.”
수한은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전에 현재 상황을 대통령에게 객관적으로 들려주며 앞으로 자신이 실행할 사업에 대한 이야기도 늘어놓았다.
“딱 1년만 버티면 됩니다. 그 1년이 지나면 굳이 해외에서 비싼 돈을 주고 곡물을 수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물론 부족한 품목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것은 러시아를 통한다면 아무리 그들이 제재를 하려고 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수한은 현재 국제적으로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를 언급하며 한국이 경제제재를 받았을 때의 돌파구를 대통령에게 알려주었다.
윤재인 대통령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 수한이 러시아를 언급하자 머릿속에 밝은 섬광이 번뜩이는 것을 느꼈다.
‘그래, 미국이 그런 수를 쓴다고 해도 러시아를 끌어들인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야!’
자신의 말을 듣고 윤재인 대통령의 굳어졌던 표정이 풀어지는 모습에 수한은 계속해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였다.
“러시아도 솔직히 우리가 핵을 가지는 것에 꺼리는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조금 전에 말한 것이 힘들지 않겠나?”
대통령은 수한이 조금 전 러시아를 끌어들여 미국이 경제제재를 하는 것을 해결하자고 했던 것과 상반되는 말을 하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만약 그렇다면 러시아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의 도움 없이는 미국의 경제제재를 풀어낼 힘이 한국에는 없었다.
그렇다고 어렵게 확보한 핵을 포기하기에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의 위협이 만만치 않았다.
특히 이번에 충돌했던 중국이 가장 큰 문제였다.
만약 한국이 경제제재를 버티지 못하고 핵을 포기한다면, 중국은 분명 과거의 오욕을 씻기 위해서라도 한국을 침공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한국의 입장에선 생존을 위해서라도 핵을 포기할 수 없었다.
잠시 힘들더라도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해야만 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입장이었다.
그런 대한민국에게 러시아는 동아줄과 같은 존재인 셈이었다.
물론 그러한 사실을 러시아가 눈치 채기 전에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을 해야 할 것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수한은 그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카드를 알고 있었다.
“우리의 어려움을 숨기고 러시아가 먼저 달려들 수 있는 카드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윤재인 대통령은 해결 방법이 있다는 수한의 말에 얼른 물었다.
그만큼 대통령으로서 조국이 처한 사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수한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수용할 용의가 있었다.
“미국이 만약 핵무기 보유를 이유로 경제제재를 한다면, 우리는 러시아와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가지고 협상을 하면 됩니다.”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
윤재인 대통령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되물었다.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는 대한민국에서 전략물자로 분류되어 국외로 반출할 수 없는 품목이었다.
물론 동맹인 미국에 일부 물자를 수출하기는 했다.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자신들도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수입할 수 있게끔 구매 요청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한국과 미국 외에는 어느 나라에도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보유하지 못했다.
그런데 수한은 지금 전략물자인 그것을 언급하며 러시아를 끌어들이자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 외에 영국과 프랑스에도 일정 수량 수출할 수 있다고 언급한다면, 미국이 아무리 경제제재를 부르짖어도 그 시도는 실패할 것입니다.”
수한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대통령으로서는 그보다 확실한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에 이어 영국과 프랑스를 한국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미국의 의도는 수포로 만들 수 있었다.
아무리 미국이 강력한 외교력을 가지고 있다지만,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영국과 프랑스에게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가지지 못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는 문제였다.
만약 해당 국가에서 국익을 무시하고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려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 사람은 매국노로 낙인찍히고 말 것이다.
미국도 자국 군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특별 예산을 책정해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구매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한국도 필요에 의해 전략물자인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미국에만 수출하는 것을 승인하였다.
그러니 당연 한국이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판매하겠다 언급을 하며 달려들 나라는 부지기수로 많았다.
한국은 그중에서 자국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나라만 선별하면 되는 것이다.
수한이 생각한 나라는 바로 러시아,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이었다.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과 동맹인 나라이긴 하지만, 자국의 이익 앞에서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더욱이 한국이 핵무기를 가진다고 해서 그 나라들이 손해 날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이 핵무장을 한다고 해서 손해를 보는 나라는 겨우 미국 정도만이 조금 손해를 볼 뿐이지, 위에 언급한 나라들은 전혀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이미 UN 상임 이사국 중 미국 다음으로 강력한 중국이 한국의 핵 보유를 인정하였다.
그러니 러시아나 영국, 프랑스, 독일이 한국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것은 그저 눈 한 번 감으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자신들이 아니더라도 중국이 먼저 승인을 했다는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면죄부가 이미 발급된 상태이니, 미국이 아무리 떠들어도 이들 나라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을 것이다.
윤재인 대통령은 그 부분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그렇지. 우리나라에는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라는 조커가 있었지.’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떠올리자 모든 것이 쉽게 해결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더욱이 이번 한중 압록강 교전의 결과로 인해 세계 각국은 한국이 개발한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의 뛰어남을 두 눈으로 목격하였다.
비록 수출되는 제품은 2기갑사단이 사용한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규모 포격이 아닌 상태에서는 안전이 확보된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였다.
그리고 소나기 같은 포격 속에서도 파괴된 장갑차는 몇 대 되지 않았기에 적절한 전술을 펼친다면 포격 속에서도 어느 정도 안전을 보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 그건 그렇게 해결을 한다고 하고, 그럼 정 박사는 북한 지역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인가?”
윤재인 대통령은 핵 문제로 인해 잠시 이야기가 옆으로 새기는 하였지만, 수한이 처음 제안을 했던 주제로 돌아가 그가 무엇을 북한 지역에서 하고 싶어 하는지 물었다.
“예, 식량 자급을 위해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려 합니다. 그리고 식품 가공 공장도 큰 규모로 지을 생각입니다.”
수한은 아직 개발이 덜 된 북한 지역이 남쪽처럼 개발되기 전에 대규모 농지를 확보하고 그곳에서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다.
물론 북한 지역에서 농사를 지을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식량 자급률을 높이려는 목적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북한 주민들 때문이었다.
그들이 자립을 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적으로 정부가 나서서 주도하기에는 너무도 어렵고, 또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한정된 예산은 전적으로 남한의 국민들이 낸 세금이기에 혹시나 북한 지역 개발에 예산이 상당수 투입되는 것에 불만을 품는 사람들도 생길 것이다.
그리고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게 된다면 분명 어렵게 통일을 이루고도 남북이 또다시 분열될 수도 있었다.
이념적인 분열이 아닌 빈부 격차에 대한 분열로, 이는 크나큰 사회 문제로 작용하여 정부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수한은 그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북한 주민들도 어느 정도 경제적 자립이 필요하다 생각해 그들이 가장 접하기 쉬운 일인 1차 산업에 투자를 하려는 것이었다.
“평양평야와 안주평야를 제가 개발하고 싶습니다. 이 두 곳만 제대로 개발한다면 우리 민족이 소비하기에 충분한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족한 품목은 러시아나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다면, 굳이 대형 곡물 메이커에 휘둘리지 않고도 충분히 자립할 수 있습니다.”
수한은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대통령에게 말했다.
그런데 사실 윤재인 대통령은 수한이 이렇게 엄청난 땅을 요구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물론 식량 자립을 언급했을 때 대규모 땅이 필요하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나 엄청난 넓이의 땅을 요구할지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런 대로 이해가 갔다. 외국의 대형 농산물 메이커들의 횡포를 피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했다.
한참을 고민한 윤재인 대통령은 수한의 눈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사실 현대 사회에서 권력을 가지는 데 가장 힘이 되는 것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는 식량도 포함이 되었다.
국가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사업과 산업에 필요한 희토류 같은 지하자원도 중요하지만, 식량의 존재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품목이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식량의 가격을 조절하는 것은 국제기구가 아닌, 일부 기업이 좌지우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국도 1970년대 이들 농산물 메이커들의 농간에 큰 위기를 겪은 적이 있었다.
콩의 가격을 가지고 장난을 친 곡물 메이커들은 이때 상당한 돈을 벌었지만, 이들 때문에 가축 사료인 콩을 수입하지 못해 죽어간 가축들이 부지기수였으며, 그 때문에 가축 사육 농가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연쇄 작용으로 농가 부채가 높아지자 소비자들의 소비 욕구가 줄어들어 공산품의 판매가 줄어들었다. 또 공산품의 판매가 줄어들자 이번에는 서민 가계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경제란 것은 톱니바퀴처럼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잘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 곳에서 삐끗하는 바람에 톱니바퀴 같은 경제 체계가 원활히 돌아가지 못하고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그러한 현상은 비단 대한민국만의 일은 아니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이때 식량을 수입하지 못해 엄청난 수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그중에는 기나긴 굶주림 때문에 아사자(餓死者)가 발생하였다.
때문에 그러한 일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수한이 발 벗고 나선 것이었다.
대통령은 수한의 요구에 깊은 고심을 하였다. 개인에게 허가를 해주기에는 너무도 큰 혜택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들어주지 않을 수도 없었다. 조금 전에도 언급을 했듯 대한민국이 살아남기 위해선 구 북한으로부터 확보한 핵무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핵무기 보유를 확실하게 보장해 줄 수 있는 카드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수한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수한의 요구가 그다지 특혜라고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살아남기 위해선 어차피 들어줘야 할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핵무기 보유를 외국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문제뿐만이 아니라 수한의 말처럼 식량 주권을 갖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식량 주권을 잃고 국민을 기아로 몰고 간 아프리카 나라들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대한민국은 절대로 그러한 처지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식량 주권을 스스로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수한의 제안이 결코 나쁘지 않게 들렸다.
“알겠네. 내 주무 장관들과 논의를 하겠지만, 정 박사의 말을 수용해 최대한 정 박사의 요구를 들어주겠네.”
고심을 거듭한 윤재인 대통령은 수한의 말에 긍정적으로 대답을 하였다.
물론 아무리 대통령이라 하지만 독단적으로 판단을 하고 개인이나 기업에 땅을 불하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수한이 하려고 하는 일이 결코 개인의 사욕을 위한 제안이 아니란 생각이 들자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하였다.
“감사합니다.”
“아직 결정이 난 것은 아닐세.”
“굳이 제가 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니 잘 좀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지금의 제안을 정부에서 들어주면 좋고, 누군가 그 일을 한다면 굳이 자신이 아니라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수한이었다.
수한의 말에 대통령은 다시 한 번 감동을 느꼈다.
젊은 사람의 생각이 너무도 깊었다. 윤재인 대통령은 수한을 잠시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아니,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 이처럼 생각이 깊고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 것이며, 몸소 실천을 하는 이가 또 얼마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