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코리아-76화 (76/118)

1. 중국과의 협상

남산 백제 호텔 그랜드 룸.

정명수는 협상 테이블에 앉아 중국 측 협상 대표가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로서 벌써 3일째 계속되는 협상에 중국 대표나 자신들이나 무척이나 지쳐 있었다.

하지만 협상을 하는 데 있어 절대로 대충 끝낸 생각은 없었다.

귀중한 국가의 동량들이 억울하게 희생되었는데 몸이 피곤하다고 하여 쉽게 저들의 주장대로 따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악착같이 중국 대표부를 압박해 보다 많은 보상을 뜯어낼 생각이었다.

그런 다짐을 하며 정명수는 시선을 돌려 실내에 걸려 있는 태극기에 시선을 주었다.

이 백제 호텔 협상장에는 한국과 중국, 양국의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 캄보디아 대사였던 정명수는 한국으로 귀국을 하였다.

원래대로라면 순환 근무의 일환으로 다른 국가의 대사로 발령이 되어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국내로 불러들여 중국과의 휴전 협상을 진행하는 대표가 되었다.

한 달 전, 국경을 맞대고 있던 압록강 다리 위해서 벌어진 교전 이후로 한국과 중국은 이후 이렇다 할 교류가 없었다.

그저 서로를 경계하며 추후 상황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한국은 북한 지역을 통합하면서 금강산으로 쫓겨 들어간 구 북한군들을 모두 소탕하지 못한 상황. 그로 인해 아직 치안이 불안정하여 협상을 할 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중국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독단으로 군을 움직인 심양 군구 사령관과 그를 움직이게 만든 리창준의 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중인 것이다.

특히 권력자였던 리창준의 죽음과 관련해 많은 이들이 자살이니 타살이니 하는 음모론이 나오면서 국가 주석인 주진평을 곤혹스럽게 만들어 이를 처리하느라 협상을 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음모론도 문제지만 주진평이 가장 신경을 쓴 것은 바로 심양 군구의 처리 문제였다.

비록 2개 집단군이 반 토막이 났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중국 3대군구는 3대군구였다.

비록 기갑 전력이 예전과 다르게 많이 부족해졌지만, 북경이나 제남 군구를 제외하면 다른 군구에 그리 밀리지 않았다.

아니, 난주나 성도 군구에 비해선 더 우위에 있었다. 그러니 최대한 소란 없이 심양 군구 사령관인 심보령을 축출해야만 하였다.

다행히 명분이 있었기에 전투 패전의 책임을 물어 직위 해제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중앙의 명령 없이 군대를 이동시켜 타국과 교전을 한 책임은 막중했다.

결국 그는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 받았다.

물론 사형을 언도 받은 심양 군구 지휘관은 심보령뿐만이 아니었다.

리창준과 그 일파, 그리고 태자당에 연줄을 맺고 있던 많은 군 지휘관들이 이번 재판에서 작게는 직위 해제 내지는 사형을 언도 받았다.

이는 이후 중국의 국정 운영에 관한 중대한 사안이었지만, 주석인 주진평은 심양 군구가 한반도 침공에 실패를 하면서 국가 운영 방향을 크게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골치 아픈 지역은 과감하게 쳐내기로 한 것이다.

알려진 것보다 더 우수한 한국의 전력 때문에라도 동북 3성에 주둔한 심양 군구의 전력을 이전보다 더 끌어 올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현재 중국의 경제 사정이 그리 좋지 못했다.

특히나 심양 군구의 원래 목적은 한반도를 경계하는 것이라기보단 러시아 극동군을 견제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하지만 현재 군사 강국으로 떠오른 한국도 견제해야 한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면서 중국 지도부는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예전에는 우방이라 할 수 있는 북한의 존재 덕분에 신경을 쓰지 않고 러시아 쪽 국경에 전력을 올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그렇다고 심양 군구의 전력을 더욱 키우기에는 경제 사정도 경제 사정이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아니, 사실 그 문제가 더욱 심각했는데, 그것은 바로 중국의 군사 체계에 따른 문제였다.

중국은 군대가 통일이 된 것이 아니라 군벌별로 운용이 되고 있었다.

전국을 일곱 개의 구역으로 나눠 각 군벌이 그 지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것을 군구(軍區)라 하고, 군구 안에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육, 해, 공군이 있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군구란 것이 일반 국가의 군대라 보면 틀리지 않았다.

아무튼 그런 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만약 이전보다 전력이 더욱 상승한다면 심양 군구를 장악하는 사람이 중국의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는 셈이었다.

그러니 중국의 권력자 중 어느 누구도 그런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

그것은 국가 주석 주진평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력이 상승한 심양 군구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둔다면 큰 힘이 되겠지만, 만약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때는 최고 권력자의 권좌에서 내려와야만 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몰랐다.

그런 판단으로 인해 중국 권력자들은 어느 누구도 심양 군구가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주진평이 주장하는 작은 중국 정책에 찬성을 하였다.

주진평이 주장하는 작은 중국이란 기존의 중국에서 동북 3성과 내몽고 자치구, 신강 위구르 자치구, 그리고 서장 자치구를 분리시킨다는 정책이었다.

말썽이 일어나는 자치구를 중국으로부터 배제하여 원래 중국 대륙만 운영하는 정책으로, 이런 정책을 구상하게 된 주원인은 바로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테러를 자행하는 이들 때문이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이들을 강경하게 탄압하였지만, 날로 흉포해지는 테러에 두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더욱 강경하게 진압을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국제사회에서 왕따를 당할 수 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깡패같이 막 나가는 중국이라지만, 지구상에는 그런 중국보다 더 깡패 같고 막무가내인 국가가 한 곳 있기 때문이었다.

세계 최강 미국. 미국은 자국의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일단 전쟁부터 벌이고 보는 나라였다.

그러다 보니 중국이 아무리 세계 2위의 군사력을 가진 나라라고 하지만, 미국과는 그 차이가 하늘과 땅 만큼이나 컸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주진평은 중국을 운영하는 측면에서 두 가지 정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또 하나는 그와 반대로 큰 중국 정책이었다.

작은 중국 정책과 반대로 자치구는 물론이고, 그 범위 안에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가 들어가 있는 정책이었다.

리창준은 주진평의 정책 중에서 큰 중국 쪽을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최후가 멀지 않았다는 생각에 한반도를 자신이 정복한다면 살아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심양 군구를 움직인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 후, 한국이 북한이 개발한 핵무기를 모두 확보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주진평과 중국 지도부는 문제를 일으킨 리창준과 심양 군구 사령관인 심보령을 발 빠르게 숙청하였다.

큰 중국 정책을 사실상 폐기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웃긴 사실은 원래 주진평의 작은 중국 정책에 동북 3성은 들어가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압록강 교전의 패배로 이 지역이 새로운 화약고로 점쳐지면서 주진평은 과감하게 이곳을 포기하였다.

동북 3성을 가져가기에는 전략적 가치가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현재 경제 사정이 어려운 러시아와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쏟아부어야 할 예산은 감히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그 지역에 자원이 풍부해 들어가는 예산을 감당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물이 부족해 농사도 짓기 어렵고, 또 자원도 없어 별 쓸모가 없는 땅이기에 미련 없이 포기를 한 것이다.

일부 지도자 중에는 앞으로 벌어질 한국과의 협상에서 그 쓸모없는 지역을 한국에 넘기는 방안을 생각하기도 하였다.

한국은 이상할 만큼 그 쓸모없는 땅에 집착을 하고 있었다.

물론 한국인이 무엇 때문에 그 땅에 관심을 보이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선조가 그곳에 국가를 이루고 살았다는 것.

그러한 역사적 사실 때문에 한국인들은 동북 3성에 집착을 하고 있었다.

물론 중국도 예전에는 그 땅에 집착을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부끄러운 사실을 숨기고 말도 되지 않는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선 그 지역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한국인들이 주장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 강국이었던 고구려를 한반도가 아닌 중국의 지방 제후국이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조사를 하려던 것을 온갖 이유로 막아왔는데, 더 이상 막을 수가 없었다.

예전 한국이 힘을 없을 때에는 윽박질러 무마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했다.

한국에 핵이 없다면 어쩌면 동북 3성을 포기하지 않아도 됐을지 모르지만, 한국은 이미 핵을 보유한 국가였다.

결국 중국은 과감하게 이 지역을 포기하였다.

그러면서 외부로 퍼져 있던 전력을 작아진 중국에 집중하여 전력을 상승시키고, 또 국가 역량을 집중해 보다 강대한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결심으로 작은 중국 정책을 펴기로 한 것이다.

그런 복잡한 사안들을 처리하다 보니 중국도 이제야 1달 전 벌어졌던 교전에 대한 협상의 장을 열게 된 것이었다.

◈ ◈ ◈

“뭐가 과하다는 말씀입니까? 교전의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당연히 그 책임에 대한 대가도 중국의 몫이지요.”

정명수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차분하게 중국 측 대표를 보며 또박또박 말을 하였다.

정명수의 주장에 중국 측 협상 대표인 주진방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대답을 하였다.

중국 국무원 부총리인 위청산이 리창준과 함께 비리 혐의로 숙청이 되고 새롭게 국무원 부총리의 자리에 오른 주진방은 한국 협상 대표로 나온 정명수로 인해 무척이나 골치가 아팠다.

최대한 손해를 줄이기 위해 어떻게든 전쟁배상금을 낮게 책정을 하고 나왔는데, 그게 들어먹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 대표가 가지고 나온 안건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배상금은 배상금이고, 그동안 중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중국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처리된 한국인에 대한 보상도 함께 들고 나온 때문이다.

이는 내정 간섭이라 비쳐질 수도 있겠지만, 그 내막을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예전 중국은 자국 내에서 벌인 외국인 범죄자들을 일단 처벌한 뒤, 해당 나라에 사후 통보만 하였다.

재판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자국인이 정당한 변호를 받았는지 등의 것을 일체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저 이런 처벌을 했다는, 말 그대로 통보만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국민이 외국에서 범죄를 저질러 재판을 받게 되면 온갖 참견을 하며 자국인에 대한 보호조치를 강구하였다.

그 때문에 비인륜적인 죄를 짓고도 외국인 교도소에 갇혀 있는 중국인 범죄자들이 상당수 한국에 있었다.

아무튼 원래대로라면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 자리가 아니지만, 현재 주도권은 한국이 쥐고 있기에 주진방도 진땀을 빼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안건을 내놓지 않고 곤란한 사안만 계속해서 내놓는 눈앞의 한국 대표였다.

정말이지 그를 죽일 수만 있다면 천참만륙(千斬萬戮)했을 테지만, 그건 주진방의 마음만으로 끝났다.

원활한 협상을 위해선 어떻게든 한국 대표의 마음을 달래야만 하는 입장이 현재 주진방의 위치였다.

만약 협상이 결렬되면 일이 어떻게 번질지 몰랐다.

한국이 교전 책임을 물어 압록강을 넘어온다면 막을 수 있는 전력이 없었다.

그만큼 한국의 육상 전력이 막강하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기갑전력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막말로 핵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국도 핵을 보유하고 있다. 즉, 중국이 핵을 사용한다면 한국도 핵을 사용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이나 중국이나 모두 끝장이었다. 아무리 중국이 넓은 나라라지만 한국이 보유했을 것이라 판단되는 핵무기가 모두 중국 땅에 떨어진다면 중국은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는 곳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재로서는 한국의 육상 전력을 막을 수 있는 전력을 보유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리고 그런 전력을 보유하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진방이나 중국 지도부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의 주장을 모두 수용할 수도 없었다.

최대한 한국이 요구하는 것을 줄여야만 하였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협상이 지지부진하게 진행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정명수는 어제 밤 대통령과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들에게서 최대한 많은 것을 받아오시기 바랍니다. 돈이 되었든 다른 무엇이 되었든 말입니다.”

다른 무엇이라고 말할 때, 정명수는 대통령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도 모르게 깨달을 수 있었다.

‘대통령은 이 기회에 중국이 앉아 있는 만주를 되찾고 싶어 하는구나!’

정명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주진방은 주진방대로 고심 중이었다.

협상장에는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대통령이 고토(故土)에 대한 욕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 정명수는 중국 측 대표와 협상을 벌이기 전에 많은 고심을 하였다.

그런데 그때, 아들에게 뜻하지 않은 정보를 들었다.

중국이 내부 문제로 인해 이번 협상을 빠르게 진행하기를 원하고, 또 중국 정부 내에서 향후 국가 운영을 무척이나 타이트하게 수립하였다는 것이다.

그 의미는 그저 국가 예산을 줄인다는 소리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수입에 비해 지출이 많은 부분을 과감하게 포기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중국이 그동안 행하던 팽창 정책을 포기하고 내실을 다지는 작업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런 정보는 아직 국정원도 취득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알고 있는지, 아들의 능력이 놀라울 뿐이었다.

그러면서 아들이 속해 있다는 지킴이란 단체에 대해서도 새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현대 사회에서 정보의 중요성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외교관인 정명수로서는 누구보다 더 체감하는 사항이다.

정보 하나를 알고 있음으로써 가래로 막을 것을 호미로 막을 수 있으며, 반대로 하나 얻을 수 있는 것을 둘이나 셋 얻을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정보의 힘이었다.

즉,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예라 할 수 있었다.

수한도 중국에서 활동 중인 지킴이 회원으로부터 그러한 정보를 듣기는 하였지만, 자세한 내용을 알고 그런 조언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러한 정보가 있으니 협상에서 중국에 많은 것을 얻어내라고 말을 한 것뿐이다.

외교관인 정명수가 그러한 아들의 의도를 깨닫지 못한 것도 아니기에 그런 정보를 적당히 활용해 중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양보 받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다른 사람은 생각지 못한 것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만약 그 의도가 성공한다면 대한민국은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사실 조금 전에 요구한 범죄자에 관한 내용은 ‘그것’만 확답 받을 수 있다면 사실 있으나 마나 한 조항이었다.

그런데도 정명수가 일부러 그런 조항을 넣어 협상을 까다롭게 진행하는 것은 뒤에 나올 안건을 보다 쉽게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 문제는 이번 협상과 연관이 없는 것 같으니, 나중에 따로 다시 거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중국 협상 대표인 주진방은 계속해서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제안을 하였다.

정명수는 자신과 협상을 하며 중국 협상 대표가 무척이나 초조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은 지금 겨울로 들어가기 직전의 완연한 가을 날씨였다.

아무리 협상장의 실내 온도가 높다 해도 저렇게 땀을 흘릴 정도가 아니란 소리였다.

아니, 가장 더운 한여름이라 해도 이곳 백제 호텔과 같은 일류 호텔의 실내가 땀을 흘릴 정도로 더울 일이 없었다.

즉, 지금 중국 협상 대표는 무언가에 쫓기는 듯 당황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런 생각에 정명수는 조금 더 그를 압박하기로 하였다.

“어제도 그렇고, 중국은 협상을 할 의지가 있는 것입니까?”

“허!”

정명수의 단호한 어조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주진방은 짧은 신음성을 흘렸다.

통역이 들려주는 그 말에 기가 막혔다. 비록 중국이 한국과의 교전에서 큰 손해를 보기는 했지만, 언제 한국에 이런 대우를 받아보았던가. 아니, 한국이 감히 중국을 상대로 이렇게 큰소리를 칠 경우가 있었냐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주진방은 그런 황당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지금 한국 대표의 말씀이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란 것을 알고서 하는 말입니까?”

주진방은 자신의 기분을 그대로 표현하며 경고를 하였다.

물론 한국 측 통역이 주진방의 말을 순화해 통역하였으나 외교관으로서 다수의 외국어를 구사하는 정명수는 중국어에도 상당한 실력이 있었다.

집안 자체가 대한민국에서 상위에 속하는 기업가 집안이다 보니 어려서부터 외국어를 상당 부분 습득한 것이다.

그런 교육은 공무원이 되면서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사실 이 자리에 통역이 없더라도 정명수에게 불편할 일은 없었다.

다만,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일부러 통역을 동석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상대의 언어를 모른다고 방심한 이들이 빈틈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자신은 중국어를 모르는 것처럼 통역을 통해 중국 대표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니 주진방이 방금 전 내뱉은 이야기가 통역이 들려준 말보다 더 강경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약세를 보일 수는 없었다. 이미 상대의 패를 다 알고 있는데 굳이 상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니, 이럴 때일수록 더욱 강경하게 자신도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상대에게 인식시켜야만 했다.

그래야 협상에서 더욱 유리한 고지에 올라 상대에게 많은 것을 양보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탕!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이군요. 지금 중국 대표께서는 우리 대한민국과 협상을 하려고 자리하고 있습니까? 말씀해 보십시오. 평화를 수호하는 우리 대한민국에 아무런 통보 없이 국경을 넘어 기습한 것은 누굽니까? 그 때문에 국경을 경비하던 어린 초병은 시신을 찾을 수도 없을 정도로 난자되어 유품만이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이것이 중국이 말하는 평화입니까? 만약 대표가 그런 주장을 한다면 전 제 재량으로 이번 협상을 결렬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협상 결렬의 책임은 중국 측에 있다고 대통령께 보고를 할 것입니다. 아마 그렇게 된다면…… 뒷일은 대표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정명수는 주진방의 말에 탁자를 내려치며 짐짓 화가 났다는 듯 열변을 토했다.

사실 협상 중에 이렇게 흥분하는 모습을 상대에게 보이는 것은 초보나 저지르는 실수이다.

흥분했다는 것은 상대보다 논리적으로 약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 말이 맞는 것은 또 아니었다. 정석이 있는 반면, 편법도 있는 것처럼 지금은 한국이 화를 내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모든 명분에서 우위에 서 있는데 굳이 약한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

그러니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중국 대표에게 한국은 이번 협상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뉘앙스를 흘릴 필요가 있었다.

정명수가 이런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이 이전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군사대국 중국과 일전을 벌여도 크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군사력이 막강해졌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전 북한과 휴전선을 맞대고 있을 때만 해도 그런 생각은 할 수 없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전과 달라진 것은 그리 없었다. 단지 북한이 보유했던 핵무기를 확보했다는 것만 다를 뿐이었다.

핵의 존재가 커다란 부담이었기에 중국도 한국과 협상을 하는 것이지 않은가.

만약 한국이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계승하겠다며 구 북한군이 개발했던 핵무기를 폐기했다면 중국은 아마도 한국이 협상을 하자고 해도 이에 응하지 않고 오히려 교전으로 파괴된 심양 군구의 기갑 전력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이북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군사력을 더 모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인 윤재인은 전임 대통령이 선언했던 선언문을 무턱대고 계승하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선언을 무시하며 북한이 개발했던 핵무기를 불문에 붙이며 유지 보수를 명령하였다.

아니, 사실 거기에는 중국의 역할이 컸다고 볼 수 있었다. 중국 심양 군구가 기습을 하듯 밀고 내려오지만 않았다면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심양 군구의 전력이 선전포고도 없이 국경 지대를 넘고, 또 기습 공격을 함으로써 윤재인은 자국의 안보를 위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것이었다.

비록 중국 주석인 주진평의 협박에 엉뚱하게 맞대응하다 한 말이지만, 어찌 되었든 대통령의 말이라 그 말은 무게를 가지며 정책이 되었다.

아무튼 일이 그렇게 흘러가 대한민국은 중국을 상대로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게 되었다. 물론 그 문제로 인해 국제사회가 무척이나 시끄러운 상황이지만,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대통령의 핵무기 보유 선언을 크게 환영하였다.

한반도를 둘러싼 나라들 중 세 나라(중국, 러시아, 미국)가 이미 핵무기 보유국이다.

비록 미국의 동맹이라 핵우산을 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전적으로 그것만을 믿을 수는 없었다.

만약 관계가 틀어져 중국이 최후 수단으로 한반도에 핵무기 공격을 한다면, 미국이 그에 대한 보복 조치로 중국에 핵 공격을 해줄 것이라 믿을 수는 없었다.

그것을 믿는다면 그건 너무도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미국은 자신들이 중국에 보복 공격을 했을 때의 손익을 따질 것이고, 만약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된다면 과감하게 외면할 것이다.

아니, 그럴 것이 확실했다. 왜냐하면 미국에 이득을 줘야 할 한국이 핵무기 공격으로 폐허가 된다면 더 이상 미국에 효용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국제 관계란 것은 그렇게 냉정한 것이다. 동맹으로서 가치가 있어야 동맹 관계가 유지가 되는 것이다.

그런 판단하에 윤재인 대통령은 주변국의 압박을 무시하고 북한군이 보유했던 핵무기를 확보하여 그것들을 비밀 장소에 보관하였다.

그리고 지금, 중국과 협상을 하면서 대한민국이 핵무기를 보유한 사실을 인정받으려는 것이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이 인정해 준다면 가장 좋겠지만, 아무리 동맹이라 하지만 미국은 대한민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 이유는 한국이 핵무기 보유국이 되었을 때, 그런 상황이 자국에 이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막대한 돈을 들여 구입하던 미국산 무기의 구매 또한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눈치만 보여도 주한미군 철수나 무기 수출 금지 등의 카드를 들이밀며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주적(主敵)인 북한이 무너져 한반도가 통일이 되었다.

그 사실만 놓고 본다면 미국 입장에서 결코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

날로 팽창하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또 미국의 영원한 라이벌인 러시아와도 국경을 맞대야 했다.

즉, 지켜야 할 국경이 이전보다 훨씬 늘어나는 것이다. 그 말인즉, 이전보다 늘어난 국경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무기를 필요로 한다는 소리였다.

한국군에 필요한 무기들이 많아진다는 소리는 미국이 팔아먹을 무기가 늘어난다는 소리와 같은 말이었다.

그러니 한국이 한반도를 통일했다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또 달랐다.

만약 핵무장을 인정하게 된다면 한국이 많은 장비를 구입할 필요가 없어진다.

감히 핵보유국에 어느 나라가 도발을 하겠는가.

중국이나 러시아가 핵보유국이라 하지만 상대도 자신들을 공격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데 같이 망하자고 작정을 하지 않았다면 굳이 문제를 일으킬 이유가 없어진다.

그런 관계로 미국은 절대 대한민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한국이 보유 선언을 해도 갖은 수단을 써서 방해를 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렵게 획득한 핵무기를 윤재인 대통령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강대국에 휘둘리는 것은 더 이상 사양이기 때문이다. 정명수는 대통령을 만났을 때, 분명 그와 같은 언급을 받았다.

그렇기에 지금 중국 협상 대표를 상대로 한국이 가진 카드를 슬쩍 내보이는 중이었다.

‘너희만 핵을 보유한 것이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우릴 함부로 보지 말라!’라고 말이다.

주진방은 그런 정명수의 은유적인 말에 조금 전보다 더 당황하며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그 또한 한국에 협상을 하러 오기 전, 주석인 주진평에게 한국이 핵을 보유했을지 모른다는 언질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진평은 어떻게든 한국에서 핵을 빼내기 위해 은밀하게 미국에 정보를 흘렸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백악관은 그 뒤로 아무런 성명을 발표하지도 않고, 또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분명 예전 같았으면 한국이 핵무장을 하는 것에 입에 거품을 물고 성토를 했을 것인데 아무런 반응이 없자 주진평은 당황해 이번 협상을 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

사실 주진평의 작은 중국 정책이 빠르게 진행이 되는 것은 그런 미국의 태도가 한몫 작용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협상은 조항 하나하나 한국이 유리한 입장에서 진행이 되어갔다.

중국 대표로 나선 주진방은 어떻게든 자국의 손해를 줄여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노련한 정명수의 언변에 번번이 물을 먹었다.

◈ ◈ ◈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중국과 협상은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나?”

윤재인 대통령이 비서실장인 길성준에게 물었다.

“예, 조금 전 3차 협상을 마쳤다고 합니다.”

비서실장의 보고에 대통령은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래, 어떻게 하기로 했다고 하나?”

조금은 조급한 마음이 엿보이는 윤재인 대통령의 질문에 길성중 비서실장은 차분히 대답을 하였다.

“협상은 우리에게 유리하게 진행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세한 내용은 바로 들어와 보고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중국과의 협상 내용은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극비를 요구하였다.

그렇기에 전화를 통해 보고를 할 수도 없었다. 괜히 보안에 취약한 유선을 통해 협상 내용을 보고했다가 도청이라도 당해 정보가 빠져나간다면 한국으로서는 큰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들어와 보고를 한다고 했지? 하, 초조하군.”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정명수 대사라면 이미 협상력만큼은 외교부의 어느 누구보다 뛰어나니 큰 성과를 가져오실 것입니다.”

길성준은 대통령이 초조해하자 정명수의 능력을 거론하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안을 하였다.

솔직히 비서실장인 길성준도 확답을 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불안해하는 대통령을 어떻게든 진정시켜야 하기에 그리 말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소 뒷걸음질에 쥐 잡는다 했던가. 대통령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 말이지만, 길성준 비서실장의 예상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

외교부 내에 정명수만큼 협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비록 파벌 싸움 때문에 캄보디아 같은 낙후된 곳의 대사로 발령이 난 것이지, 능력이 떨어져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정명수가 대사로 있던 캄보디아는 사실 남한보다는 북한과 더 가까운 나라였다.

그렇지만 정명수가 한국 대사로 가면서 외교 관계가 많이 개선되었다.

그리고 북한을 흡수 통일하면서 한국 대사관의 위상은 더욱 올라갔다.

이전 북한 대사관이 존재할 때도 그와 동등한 위치까지 올려놓은 정명수였다.

그런데 북한이 한국에 흡수되면서 대한민국은 확실한 강대국의 위치에 올랐다.

더욱이 통일 직후, 중국과의 교전에서 일방적인 승리를 하면서 더욱 강한 인상을 동남아 국가들에 심어주었다.

그동안 한국을 무시하던 많은 나라들이 다시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아무튼 협상 능력이 뛰어난 정명수로 인해 캄보디아에서만큼은 확실한 대우를 받게 된 것이다.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청와대 비서관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비서실장인 길성중의 귀에 조용히 귓속말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정명수 대사가 도착했다고 합니다.”

길성준 실장은 대통령에게 방금 전 비서가 전해 주고 간 말을 전했다.

“그래, 어서 들어오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길성준은 밖으로 나가 정명수를 데리고 들어왔다.

대통령 집무실 안으로 들어오던 정명수는 윤재인 대통령을 보며 인사를 하였다.

그런 정명수를 보며 윤재인은 얼른 손짓을 하며 자리에 앉기를 종용했다.

그러면서 길성준 비서실장에게 NSC 소집을 지시하였다.

“길 실장, NSC를 소집하기 바라네.”

“알겠습니다.”

대통령이 NSC를 소집하라는 말에 길성준은 얼른 대답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윤재인 대통령이 NSC를 소집한 이유는 중국과 협상한 내용을 자신 혼자 알고 있는 것보다는 NSC위원들과 함께 듣는 것이 좋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처럼 혼자 생각하기보다 국가 안보 회의(NSC) 위원들과 함께 논의를 하는 것이 훨씬 좋은 방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NSC 위원들이 대통령 집무실로 모였다.

“부르셨습니까?”

“어서들 와요.”

NSC 위원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저마다 모습을 드러냈다.

집무실 안으로 들어서는 NSC 위원들의 얼굴에는 다크 서클이 얼굴의 반쯤 내려와 있었다.

초췌한 NSC 위원들의 모습에 정명환은 깜짝 놀랐다.

그 또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직급 또한 자신보다 한 등급 이상 높고, 들어온 이들 중 그가 잘 알고 있는 사람도 한 명 껴 있었다.

비록 자신과 견해는 다르지만, 상관인 이박명 외교통상부 장관을 본 정명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인사를 하였다.

한편 NSC 소집으로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서던 이박명 장관은 뜻밖의 인물을 보게 되자 깜짝 놀랐다.

“아니, 정명수 차관이 여긴 어쩐 일인가?”

“대통령께 보고할 것이 있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정명수의 대답에 이박명 장관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상관인 자신에게 말하기도 전에 대통령에게 보고를 한다는 말에 살짝 기분이 나빠진 탓이었다.

물론 그 역시 현재 정명수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명색이 상관이 자신에게 정명수가 먼저 보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중국과의 협상 내용은 발표하기 전까지 극비로 다뤄야만 했다.

비밀이란 알고 있는 사람이 적을수록 외부로 흘러나갈 위험이 낮다.

그 때문에 대통령은 중국과의 협상에 대한 전권을 정명수에게 위임하였다.

어느 누구에게 보고하지 말고 대통령인 자신에게만 직접 보고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그래서 정명수도 직접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청와대에 들어왔다.

“모두 자리에들 앉으시오.”

윤재인 대통령은 소집한 NSC 위원들이 모두 도착하자 자리를 권했다.

대통령의 말에 아직 서성이던 위원들은 각자 근처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대통령 집무실에는 NSC 위원들의 숫자에 맞게 의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각하, 그런데 정명수 차관은 어쩐 일로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까?”

이박명 장관은 정명수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윤재인 대통령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자격이 없는 이가 NSC에 참석한 것을 언급한 것이다.

NSC 회의 중에 나온 이야기는 간단한 농담이라도 외부에 유출되면 안 되는 사안이기에 원칙적으로는 NSC 위원이 아닌 정명수가 자리하고 있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그런 이박명 장관의 말에 동조를 하듯 다른 NSC 위원들도 비슷한 눈빛으로 해명을 바라는 듯 정명수를 보았다.

하지만 뒤이어 들린 대통령의 말에 정명수에게 못마땅한 시선을 던지던 위원들의 표정이 당황으로 바뀌었다.

“오늘 NSC를 소집한 것은 다름 아닌 정명수 차관이 가져온 내용 때문이오.”

“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정명수 차관이 무슨 문제를 가져온 것인지 모르는 위원들은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정명수를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그런 위원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윤재인 대통령이었다.

“위원들도 압록강 교전 문제로 중국과 협상을 벌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대통령의 말에 NSC 위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중요한 문제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자신들은 협상 대표가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NSC 위원이면서 이런 국가적 중요한 사안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당황하였다.

“이번 중국과의 협상 대표로 정명수 차관이 임명되어 전권을 가지고 협상을 하였는데, 오늘 드디어 대략적인 타결을 했다고 합니다.”

윤재인 대통령은 NSC를 소집하고 위원들이 모이기 전에 간단하게 정명수 차관에게 보고를 받았다.

3일간 계속되던 협상의 결과에 대하여 간략하게나마 들은 것이다.

정명수는 조금 전까지 중국 협상 대표인 주진방과의 협상에서 중국이 양보할 수 있는 것과 한국이 취득한 것에 대하여 들려주었다.

그에 대해서 지금 윤재인 대통령이 NSC 위원들에게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그럼 중국과 최종 합의를 이룬 것입니까?”

이야기를 듣던 국무총리인 고준이 대통령에게 질문을 하였다.

고준 총리의 질문에 윤재인 대통령의 시선이 정명수에게 돌려졌다.

그런 대통령의 모습에 다른 NSC 위원들의 시선도 정명수에게로 몰렸다.

자신에게 집무실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자 정명수는 작게 헛기침을 하고 대답을 하였다.

“흠,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중국과의 협상 안건은 모두 네 가지입니다. 첫째…….”

정명수는 자신이 대통령의 명령으로 중국 대표와 협상을 벌인 내용을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 나갔였다.

협상의 주요 내용은 총 네 가지였는데, 그 첫 번째는 이번 압록강에서의 교전에 대한 모든 책임이 중국에 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재발 방지에 대한 대책에 대한 합의였다.

세 번째는 현재 대한민국이 보유한, 구 북한군이 개발한 핵무기들의 보유를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은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의 강대국들로 인해 그동안 많은 손해를 보았다.

아무리 재래식 무기를 많이 개발해도 핵무기 한 방이면 모든 것이 끝이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대한민국은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비록 자체 개발한 것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핵무기를 다수 보유하게 되었으니 이를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사실 그것을 위해 정명수는 중국 협상 대표인 주진방에게 이번 문제와 관계도 없는 중국 내 한국인 범죄자들의 처우에 관해 언급을 했다. 그 문제는 어떻게 보면 내정 간섭으로 비화될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현재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은 한국이었기에 그런 문제를 꺼낼 수 있었다.

아무튼 주진방을 밀어붙인 끝에 중국으로부터 한국이 구 북한군이 보유했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한다는 확답을 얻었다. 다만, 북한군이 개발했던 핵은 인정하지만, 한국이 이후에 개발하는 것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도 들었다.

물론 핵 개발은 대한민국으로서는 생각지도 않는 문제였다. 한국은 현재 흡수한 북한 지역을 개발하기에도 예산이 빠듯했다. 그런데 핵무기 개발을 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다.

그리고 한국 입장에선 앞으로 있을 미국과의 핵무기 협상 때 중국이 한 말을 적절히 이용해 미국으로부터도 핵무기 보유에 대한 긍정적 답을 유추할 수 있게 되어 좋은 카드를 갖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교전에 대한 배상금 문제였다.

사실 세 번째 문제가 이번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였는데, 중국 측 협상 대표를 압박하면서 지루한 협상 끝에 원하는 대답을 들었다.

하지만 정명수는 끝까지 틈을 놓치지 않고 마지막 배상금 문제에서도 실력을 여실히 드러냈다.

배상금으로 500억 달러를 받기로 한 것이다.

전쟁 배상금이라 말하기에는 조금 작은 금액이라 할 수도 있었지만, 중국 측에서 동북 3성을 한국에 할양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자 신중하게 생각해 배상 금액을 그렇게 잡은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원래 동북 3성이 한국의 고토였다며 강짜를 부리기도 하며 배상금을 최대한 줄이려는 주진방을 어르고 달래며 협상을 이끌었다.

물론 중국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양보한 것은 아니었다. 명분을 중요시 여기는 중국 정부는 어떻게 해서든 이번 압록강 교전을 중국과 한국의 국지전이 아닌, 심양 군구 사령관이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라 말하고 싶었다. 그래야 주석인 주진평이 주장하는 작은 중국 정책을 펼치는 데 당위성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도 중국은 이렇듯 명분을 얻는 것에 목을 매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중국에 많은 것을 양보 받았다.

정명수가 중국 측 대표와 협상을 벌이던 상황을 재현하며 그 결과물에 대해 들려줄 때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대통령과 NSC 위원들은 감탄에 마지않았다.

결과물만 놓고 보면 한 번의 교전으로 대한민국은 엄청난 이득을 얻었다.

비록 군인 몇 명과 장갑차 몇 대가 파괴되기는 했지만, 그 결과로 대한민국은 중국으로부터 정식으로 한반도 통일을 했다는 것을 확답 받고, 또 고토 일부를 할양 받았다.

물론 동북 3성 전체를 받았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그 부분에서 정명수가 거부를 하였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역량을 초과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통일한 북한 지역을 개발하는 것만으로도 예산이 빠듯한 상태인데, 거기에 북한 지역과 별반 다르지 않는 동북 3성을 얻게 된다면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정명수는 할양 받는 지역도 지역 주민 소개란 명목으로 중국에 유예기간을 두고 5년 뒤에 할양 받기로 합의를 하였다.

사실 이때 협상장에서는 참으로 웃지 못 할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중국 측에서는 어떻게든 더 많은 땅을 할양하려 하였고, 한국은 최대한 줄이려고 하였다.

한쪽은 더 주려고 힘쓰고, 또 다른 쪽은 덜 받겠다면 거부를 했던 것이다.

여느 협상과는 정반대의 모습이 연출이 되었던 것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정명수의 이야기를 듣던 대통령과 NSC 위원들은 어처구니가 없어 허탈한 표정으로 정명수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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