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대통령의 대국민 성명
찰칵! 찰칵! 찰칵!
번쩍! 번쩍!
청와대 공보실 내부에는 많은 내외신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루며 여기저기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와 카메라에서 번쩍이는 불빛으로 눈이 부셨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그런 기자들의 모습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 하나 없었다.
웅성! 웅성!
카메라 기자들은 카메라는 찍는 일이 전부인냥 생각하는지 대통령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단상을 향해 카메라를 찍어 댔다.
다른 기자들은 자신과 친한 기자들을 찾아 오늘 일에 대해 캐묻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오늘 대통령이 발표할 내용을 알기 위해서 주변의 기자에게 물어보지만, 그들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있을 턱이 없었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마련된 자리인지라 어떤 정보는 없었다.
다만 짐작하기로는 요 근래 계속되는 북한의 무력 도발에 관한 항의문이나 정부의 입장을 발표하는 내용이 아닐까, 하는 짐작뿐이다.
“김 기자, 뭐 아는 것 없어?”
“나야 뭐…… 그러는 나 기자야 말로 뭐 들은 것 없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뭐가 있겠나? 오늘 새벽까지 인천에 있다가 왔는데.”
“인천? 인천에는 왜?”
“아, 왜. 있잖아.”
“뭐?”
“요즘 이태원에 외국인들의 모습이 뚝 끊어졌다잖아.”
“아!”
“내가 들은 정보인데…… 자네만 알고 있어.”
“뭔데?”
나 기자라고 불린 남자는 주변을 살피다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옆에서 이야기를 하던 김 기자에게 자신이 들은 정보를 알려 주었다.
그는 요 근래 이태원에서 외국인의 모습이 줄어들고 있다는 정보를 바탕으로 취재를 하고 있었다.
외국 관광객들의 감소에 대한 취재를 하다 우연히 듣게 된 정보는 너무도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번 북한의 도발이 우리가 무기 개발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은 북한의 뒤에 중국이 있다는 거야.”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이번 북한의 배후에 중국이 있다는 나 기자의 말에 김 기자는 눈이 커졌다.
너무 큰 충격 때문에 지금까지 작은 소리로 속삭이고 있었던 것도 잊어 먹고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 때문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지만 김 기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방금 들은 이야기는 그가 듣기에도 너무도 충격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님께서 들어오십니다.”
막 소란이 일어날 것만 같았던 기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단상을 향해 시선을 주목하였다.
심각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김 기자와 나 기자는 그제야 조금은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자칫 자신들로 인해 소란이 있을 뻔하였는데, 그나마 다행히 대통령의 등장에 소란이 중단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만약 이곳에서 자신들 때문에 소란이 발생했다가는 그 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기본적인 사항은 짐작할 수 있었는데, 우선적으로 자신들의 청와대 출입이 금지될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예전만 못하다고 하지만 청와대의 힘은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이다.
아무리 언론의 힘이 대단하다고 해도 자신들 두 사람이 청와대에서 소란을 일으켰다는 사실만으로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옹호해 줄 사람이나 집단은 하나도 찾을 수 없을 게 빤했다.
그리고 결국 청와대 출입이 금지된 자신들을 직장에서는 100% 해고를 할 것이다.
따로 청와대에서 언급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들을 대신할 청와대 취재 기자를 보내기 위해서 자진납세를 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조금 전 있었던 일이 조금만 크게 번졌어도 자신들의 미래는 막막해졌을 것이었다.
김 기자와 나 기자는 그렇게 조금 전 일을 액땜 했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윤재인 대통령이 어떤 발표를 할지 기대를 하며 단상을 쳐다보았다.
그러면서도 나 기자는 작은 목소리로 조금 전에 하다 만 이야기를 김 기자에게 들려주었다.
“미국이나 다른 동맹국들은 이미 이번 북한의 도발 뒤에 중국이 한반도 내에 전쟁을 기획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자국민을 빼돌리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한국으로 더 이상 여행 비자를 발급하지 않고 있다고 해.”
“뭐! 그럼 대통령이 지금 발표하려는 것도 설마…….”
나 기자의 이야기를 들은 김 기자는 오늘 대통령이 발표할 대국민 성명은 한반도 내 전쟁이 발발에 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김 기자뿐 아니라 외국인들의 방문이 뜸하다는 정보를 듣고 알아보던 나 기자도 같은 생각이었다.
“대통령님 들어오십니다. 장내에 계신 분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청와대 홍보관이 먼저 들어와 대통령이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하며 자리에 있는 내외신 기자들에게 대통령에 대한 예의를 언급하였다.
그런 홍보관의 말에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안으로 들어오는 윤재인 대통령을 맞았다.
공보관 안으로 들어서는 윤재인 대통령은 언제나 그렇듯 무척이나 말끔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단정하게 머릿기름을 바른 듯 가르마를 하고 은회색의 양복을 입은 채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자신감 넘치는 걸음으로 공보관 단상에 마련된 자리로 걸어갔다.
그런 윤재인 대통령의 모습 어디에도 전쟁의 불안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불안감은 커녕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를 자신감이 충만 되어 있었다.
“하하하! 날씨 참! 좋죠?”
윤재인 대통령은 단상에 자리하자마자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입을 열었다.
그런 대통령의 모습에 김 기자는 얼굴 가득 의문을 띄우며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나 기자를 쳐다보았다.
조금 전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전재로 한다면 지금 대통령의 모습은 전혀 정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어야 정상이기 때문이다.
곧 이 땅에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저렇게 미소를 지으며 농담을 할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에 전쟁이 발발한다는 정보에 정신 줄을 놓은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하지만 평소 윤재인 대통령의 대범함을 잘 알고 있는 그이기에 그런 생각은 금방 사라졌다.
‘그 정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김 기자는 조금 전 나 기자에게 들었던 정보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건 새벽까지 취재를 하고 왔던 나 기자 또한 자신이 취재를 한 것이 잘못된 정보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되었다.
나 기자와 김 기자가 이렇게 자신들만의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대통령은 가벼운 농담을 기자들에게 던지며 분위기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우리 홍보실장의 커피 타는 솜씨가 일류 바리스타 못지않게 좋은데, 맛들은 보셨습니까?”
“아니요. 어디 감히 청와대 홍보실장님께 일개 기자가 커피를 타 달라고 할 수가 있나요.”
대통령의 농담에 앞줄에 앉아 있던 한 기자가 그 농담을 받아 말을 하였다.
그런 기자의 말에 대통령은 자신의 옆자리에 있는 홍보실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홍보실장!”
“예, 부르셨습니까?”
느닷없는 대통령의 부름에 홍보실장이 대답을 하였다.
그런 홍보실장을 보며 대통령은 웃는 얼굴로 말을 하였다.
“내 이렇게 자네의 커피 타는 솜씨를 자랑했는데, 아직 자네의 기막힌 커피 맛을 보지 못한 분이 있다는데…… 어떤가, 마침 나도 커피 한잔이 생각나는데 말이야?”
은근한 말로 홍보실장에게 커피가 마시고 싶다는 대통령의 말에 홍보실장은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얼른 대답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대답을 하고 밖으로 나가는 홍보실장의 모습에 기자들의 표정이 요상하게 바뀌었다.
설마 청와대 홍보실장 정도나 되는 사람이 커피 심부름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는 것에 대하여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사전에 준비된 연출이라는 것은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연출을 하는 것은 이후 자신이 발표할 내용이 그만큼 충격적인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이후 발표될 내용을 듣고 충격을 받을 기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여유를 가지고 생각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연출이다.
홍보실장이 준비된 것들을 가지고 들어올 때까지 윤재인 대통령은 그저 가벼운 농담을 하며 기자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사실 이런 대통령의 모습은 기자들에게 너무도 낯설고 적응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윤재인 대통령의 모습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북한의 도발로 전 국민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때 대통령의 이런 여유 있는 모습은 너무도 신선했다.
국민들은 벌써 한 달이 넘도록 계속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이나 포격 등 군사 도발에 대한 뉴스를 들으며 전쟁에 대한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휴전선 인근에 배치된 군인들이 비상경계 태세에 들어갔으며, 북한군이 철책 가까이 전진 배치를 하였다는 뉴스가 전국에 퍼졌다.
이 때문에 이전까지 언제나 북한이 무언가 필요할 때마다 했던 연례행사 같은 일이라 치부하던 국민들의 마음속에도 불안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의 모습 그 어디에도 전쟁에 대한 어떤 불안감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대통령의 모습이 기자들에게는 너무도 이질적으로 보였다. 본격적으로 회견이 시작된 것도 아니기에 함부로 물어볼 수도 없어 잠시 지켜보기로 하였다.
잠시 뒤 밖으로 나갔던 홍보실장이 쟁반에 커피 한잔을 타서 안으로 들어와 대통령에게 잔을 넘겼다.
그리고 홍보실장의 뒤로 청와대 홍보실 직원들이 카트를 밀고 들어와 자리에 앉아 있는 기자들에게 일일이 커피를 돌렸다.
가끔 기자회견 전에 홍보실 직원들에게 이런 서비스를 받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들어와 있는 상태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기에 기자들은 쉽게 적응할 수가 없어 무척 당황스러웠다.
“자, 한번 마기고 이야기를 할까요?”
윤재인 대통령은 홍보실장이 가져다준 커피를 음미하며 그렇게 말을 하였다.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하자 기자들도 받아 놓은 커피를 한번 마셔 보았다.
확실히 시중에 파는 일반 커피 브랜드 보다 맛이 좋았다.
‘좋군.’
기자들이 커피를 마시며 그 맛을 음미하고 있을 때, 윤재인 대통령은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기자들을 돌아보았다.
그가 보고 있는 곳에는 금발의 외국인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잠시 그들에게서 다시 시선을 떼자 그들과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모여 있는 검은 머리의 동양인들이 보였다.
동양인인데, 언뜻 봐도 한국인과는 그 생김새가 조금은 다른 이들이었다.
외국인들은 아시아인들을 잘 구별을 하지 못한다. 아시아 특히 동북아시아―한국, 중국, 일본―인들의 구분을 잘 못하는데, 한국이나 중국인, 일본인들은 자국인과 다른 나라 사람을 금방 구분해 낼 수 있다.
윤재인 대통령이 보는 곳에 있던 사람들은 바로 중국에서 온 기자들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중국인 기자로 위장한 중국 ㎜S(국안부)요원들이었다.
세계의 정보조직들은 각국 취재기자 속에 자국의 첩보요원들을 위장 취업을 시켜 놓고 있었다.
특히나 청와대 같이 각국 정상들이 업무를 보는 곳을 취재할 수 있는 기자의 신분은 이들에게 공식적으로 그 나라 상급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창구가 되기 때문이다.
이미 이 자리에 각국의 정보요원들이 들어와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윤재인 대통령은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윤재인 대통령이 제재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적절히 이용한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아무튼 미국 CIA요원들로 의심되는 집단과 중국 ㎜S요원들로 의심되는 집단을 둘러본 윤재인 대통령은 다시 시선을 돌려 일본인 기자들을 쳐다보았다.
요즘 사사건건 한국의 일에 트집을 잡고 있는 일본정치인들을 생각하면 확, 국교 단절을 선언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나라를 그렇게 치기 어린 생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참고 있는 윤재인 대통령이다.
그렇기에 일본인 기자들을 보며 그 안에 또 얼마나 많은 일본 스파이들이 있을지 잠시 생각을 하니 골치가 지끈 거리는 것을 느꼈다.
생각이 깊어지자 두통이 몰려오자 윤재인 대통령은 내려놓은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마시며 여유를 찾았다.
어느 정도 공보관 내 분위기가 밝아지자 윤재인 대통령이 원고를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대통령의 모습에 기자들도 긴장을 하며 가지고 온 노트북에 손을 올렸다.
대통령이 하는 발표문을 그대로 받아 적기 위해서였다.
“오늘 제가 내외신 기자분들을 모신 것은 우리 국민들과 세계인들에게 발표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찰칵! 찰칵!
대통령이 준비가 되어 있던 원고를 정리할 때부터 준비를 하고 있던 카메라 기자들이 대통령이 발표를 시작하자 서둘러 찍기 시작하였다.
윤재인 대통령은 준비된 원고를 물이 계곡을 흐르듯 자연스럽고 듣기 편한 어조로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이런 윤재인 대통령의 원고가 중반을 달려가자 기자들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이번 북한은 중국 정부의 원조를 받아 한반도에 전쟁 준비를 하였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이런 북한의 정보를 사전에 포착하여…….”
대통령의 성명이 공보관 안을 울리며 방송 카메라를 통해 전국으로, 아니,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원래라면 청와대 홍보실장의 사전 검열이 된 다음 송출이 되어야 하지만, 이미 성명서 발표와 함께 생방송으로 전국에 내보내기로 하였기에 중간 검열 없이 그대로 송출이 되었다.
방송 카메라를 가져오지 못한 외신기자들은 자신들과 협력하는 한국 방송사의 뉴스를 받아 바로 실시간으로 자국으로 송출하였다.
그 때문에 현재 윤재인 대통령이 발표하는 성명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로 나가고 있었다.
“이에 우리 대한민국 군에서 특수부대를 파견해 전쟁을 힐책하던 북한 지도부를 일망타진하고, 또 혹시 모를 북한 핵시설을 확보하였습니다.”
성명서를 발표하던 중 목이 타는 듯 윤재인 대통령은 단상에 마련된 생수를 마시며 계속해서 성명을 발표하였다.
거듭되는 대통령의 충격적인 발표 내용에 기자들은 너무 놀라 할 말을 잊었다.
그리고 그건 대통령의 성명을 지켜보고 있던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대통령이 대국민 성명을 발표한다고 해서 불안해하는 국민들을 안심시키려는 발표려니 했다.
정부에서 어떤 대책을 새웠는지 지켜보려고 하였는데, 윤재인 대통령의 발표는 그런 국민들의 생각을 벗어난 엄청난 것이었다.
그저 대책이 아닌 북한을 점령했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이란 것이 단순히 생각한다고 해서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또 전쟁이란 것이 특수부대가 한들 그들이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것 역시 아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대한민국은 한민족의 터전인 한반도를 통일했음을 전 세계에 알립니다. 이 시간 이후, 그 어떤 이유로 대한민국을 도발하는 국가가 있다면 저희 대한민국은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에 따른 응징을 할 것을 다짐합니다.”
윤재인 대통령은 이 말을 하면서 단어 하나하나를 강조하듯 끊어 발표를 하였다.
그러면서 중국 기자들이 있는 방향을 주시하며 그렇게 다짐을 하였다.
그런 대통령의 모습에 기자들은 물론이고 방송을 보고 있던 대한민국 국민들은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방송을 보기 위해 모여 있던 사람들 중 누가 선창을 했는지 모르지만 이날 TV앞에서 ‘대한민국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한편 종로에 있는 주한미국 대사관.
주한미국 대사 제럴드 박은 대한민국 대통령인 윤재인이 대국민 성명을 발표한다는 소식에 CIA동북아시아 책임자인 더크와 주한민군사령관인 더글라스 사령관과 함께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더글라스 사령관.”
“예, 대사님.”
“한국 대통령이 무슨 발표를 할 것이라 생각합니까?”
제럴드 박은 TV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주한미군 사령관인 더글라스에게 한국 대통령이 어떤 발표를 할 것인지 물었다.
그런 제럴드 박의 질문에 더글라스 사령관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가 생각하는 것이나 대사인 제럴드 박이 짐작하고 있는 것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은 중국이 북한에 식량과 연료뿐 아니라 전투기와 전차 등 전쟁 물자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무슨 이유로 북한에 지원된 것인지도 사전에 파악이 끝났다.
중국이 북한을 뒤에서 조종을 하여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국내 사정상 동맹인 한국에 통보를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미국이 이렇게 결정한 것에는 미국 내의 정책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에게는 팽창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 대륙과 연결된 한국이 무척이나 중요했다.
그렇지만 계속되는 일본의 로비로 기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을 지원하기보다는 그냥 일본과 대만을 이용해 해상에서 더 이상 팽창하지 못하게 견제를 하고, 중국을 어느 정도 풀어 주며 시장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확실히 중국 시장은 미국으로서도 무척이나 매력이 있는 시장이었다.
16억이라는 인구는 그 자체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소비 집단.
그러니 일본의 이 같은 로비는 미국의 정치인들에게 무척이나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북한의 이상 동향과 중국이 음모를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으면서도 한국은 이번 결정에서 배제가 되었다.
“아마도 한국의 국정원도 이번 북한의 움직임을 이제야 단순 도발이 아닌 전쟁을 기도하는 움직이라는 것을 알았을 테니 그에 대한 내용이 아닐까 합니다.”
더글라스 사령관은 그저 교과서적인 말을 하였는데, 그런 더글라스 사령관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제럴드 박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윤재인 대통령이 이제야 북한이 전쟁을 힐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에 비웃었다.
‘큭큭! 날 무시하더니 꼴좋군!’
TV를 보며 윤재인 대통령을 비웃고 있는 대사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는 더글라스 사령관이나 CIA아시아 책임자인 더크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한 국가의 대표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제럴드 박의 모습을 이 두 사람은 속으로 욕을 하였다.
그저 운이 좋아 지역 편성에 의한 분배로 인해 한국을 생각해 출신 인사를 선출했는데, 이는 완벽하게 실패한 인선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런 제럴드 박이 자신의 출신보단 미국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정책을 실행한다는 것이지만 그도 그렇게 최상의 선택을 하는 것도 아니다.
조국의 대사 정도면 정국을 주도하며 자국에 유리하게 그 나라의 정부를 움직여야 하는데 그런 수완이 없었다.
콤플렉스와 자존심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이민자 출신이면서도 제럴드 박이 가지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무척이나 좋지 못했다.
이런 정보를 알게 된 더크나 더글라스 사령관은 제럴드 박이 한국에 대사로 온 것은 정말이지 자신들에게 피해가 되는 인선이라 생각하였다.
각자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을 때 TV에서 윤재인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성명을 발표하는 것이 들어왔다.
―오늘 제가 내외신 기자분들을 모신 것은 우리 국민들과 세계인들에게 발표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북한은 중국 정부의 원조를 받아 한반도에 전쟁 준비를 하였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이런 북한의 정보를 사전에 포착하였으며, 그 배후에 중국 정부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TV 속에서 한국의 대통령이 발표하는 내용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더크는 물론이고 제럴드 박이나, 더글라스 사령관은 깜짝 놀랐다.
자신들이 알려 주지 않았는데, 한국이 어떻게 그런 고급 정보를 알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걸 어떻게 알았지?”
“한국의 정보수집 능력이 저렇게 좋았나?”
“어떻게…… 음…….”
세 사람은 그렇게 한마디씩 할 정도로 한국의 정보 수집 능력에 깜짝 놀랐다.
그동안 이들이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보 수집 능력은 2류 수준도 못 되는 아주 저급한 정도였다.
그런데 자신들이 작정하고 숨기고 있던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대사관에 모인 이들이 대한민국 국정원의 정보 수집 능력에 대하여 의문을 품고 있을 때 또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 ◈ ◈
북경 모처.
탕!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중국 공산당 총서기인 주진평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탁자를 후려치며 소리쳤다.
그런 주진평의 모습에 주변에 있던 국무위원은 물론이고 불려 온 ㎜S부장 장위해도 고개를 숙였다.
주진평이 이렇게 화가 난 것은 한국의 대통령이 윤재인의 대국민 성명을 뒤늦게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어떻게 알았는지 북한의 뒤에 자신들이 있고, 북한이 그저 미사일 발사 시험으로 부족한 식량과 연료를 원조받기 위한 시위가 아닌, 중국의 지원을 받아 전쟁을 벌이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한국 대통령의 입으로 전 세계로 퍼지자 난리가 났다.
물론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윤재인 대통령의 발언에 부인을 하였고, 그러는 한편 엄중 경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자신들이 한 일을 어떻게 한국이 알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들이 꾸민 음모가 한국으로 들어가게 된 경로를 아무리 조사를 해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참으로 귀신이 곡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분명 비밀이 새어 나간 경로가 없는데, 상대는 그 내막을 알고 있으니 ㎜S부장인 장위해로서는 유구무언이었다.
괜히 이 자리에서 변명을 해 봐야 통하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기에 그저 처분만 기다릴 뿐이다.
그런 장위해의 모습에 더욱 화가 난 주진평은 비밀을 누설한 간세를 찾아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국안부장!”
“예!”
“우리의 대업이 어떻게 외부로 유출이 되었는지 책임을 지고 알아내시오. 그리고 만약 당 내부에 외세와 결탁한 세력이 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잡아들이시오.”
주진평은 장위해 국안부장에게 지시를 내리면서 자신의 주변에 있는 상무위원들을 차가운 눈빛으로 둘러보았다.
상무위원 중 일부는 자신과 같은 계파이지만 주진평의 눈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가 그렇게 보는 이유는 다름 아닌 자신의 동지라 믿었던 이의 행보가 수상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공산당 1당 독재 체제. 그런데 이런 와중 내부 계파에 따라 권력 구도가 달라지는데 중국의 정치는 태자당, 공청단 그리고 상하이방 파벌이 있다.
이 3계파가 공산당 상무위 자리를 두고 겨루고 있는데, 이 상무위 자리를 얼마나 많은 자리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정권을 잡는 것이다.
주진평이 있는 공청단―중국 공산주의 청년단―출신으로 현재 같은 공청단 출신 중 상무위원으로 있는 자들로는 국무원 총리인 리창준과 전인대 회장인 장거장 그리고 중앙 기율검사위원회 서기인 장지량이 있었다.
상무위원 7인 중 4명이 총서기인 주진평과 같은 파벌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정권은 무척이나 단단해 보였는데, 동지인 리창준과 장거장의 행보가 요즘 들어 의심스러워졌다.
국무원 총리인 리창준이 태자당인 국무원 부총리인 위청산과 자주 회동을 하는가 하면, 장거장은 상하이방의 류지산이나 왕귀와 얽혀 있었다.
특히 중국 경제권과 많은 연관이 있는 상하이방과 얽힌 장거장의 행보가 수상했기에 주진평으로서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이런 문제가 벌어지자 주진평은 때는 이때다 싶어 내부 단속을 하기로 작정을 하였다.
이미 한반도에 꾸몄던 작전은 실패하였다.
많은 예산을 들인 동북공정의 완성을 위해 북한에 식량이며 연료과 무기 등을 지원하였는데, 그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동안 중국이 동북공정을 위해들인 노력과 시간 그리고 예산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실패로 돌아갔으니 누군가는 분명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그 희생양은 주진평의 머릿속에 이미 정해져 있었다.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제외한 상무위원들을 보는 주진평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반짝이고 있었다.
◈ ◈ ◈
미국 백악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는 현재 존 슈왈츠 대통령 주제로 NSC(안보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오늘 NSC의 주제는 다름 아닌 한국발 대통령의 대국민 성명이었다.
“이봐, 말로국장! 자넨 조금 전 한국의 대통령이 한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나?”
슈왈츠 대통령은 CIA국장인 말론을 보며 물었다.
하지만 슈왈츠 대통령이 물어보려는 내용은 정말로 윤재인 대통령이 한 성명이 아니라 어떻게 한국이 동맹인 자신들에게 일언반구 없이 자체적으로 작전을 할 때까지 알지 못했는지 질책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대통령의 질책을 알아듣지 못할 말론도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말론 국장은 대통령의 질문에 일단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사과를 하였다.
“이번 한국의 움직임은 너무도 전격적으로 벌어진 일이라 우리 미국뿐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도 예측하지 못했던 사건입니다.”
말론 국장의 설명이 시작되자 대통령은 물론이고 아서 헤밀턴 NSA국장이나 리지 오스왈도 국방부장관 그리고 리노 레이놀즈 국무장관 또한 신음성을 흘렸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정보부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이들도 CIA국장인 말론의 말처럼 한국의 움직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특히 미 국방부 장관인 리지 오스왈도와 NSA국장인 아서 헤밀턴의 신음성은 그 누구보다 침중하였다.
그나마 미국 본토의 방위를 위한 정보 수집을 하는 NSA국장은 조금은 덜했다.
그에 비해 국방부 장관인 리지 오스왈도는 한국에 미군부대가 있으면서도 정보를 수집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책을 하였다.
그런 위원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존 슈왈츠 대통령의 표정도 그리 좋지는 못했다.
정말로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였다.
한국이 하는 일을 미국의 대통령 아니 세계의 대통령이라 자부하는 그가 느끼기에 이번 일은 정말이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이전 상원의원으로 있을 때만 해도 한국의 대통령은 물론이고 한국의 위정자들은 자신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였다.
일부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정책을 그대로 알려 주기도 하였다. 어떤 이는 자국의 군사비밀에 해당하는 군부대 배치와 무장 상태 등을 알려와 미국의 이익에 많은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들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모든 것을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 자신들과 연관이 있는 이들을 한직으로 좌천시키는가 하면, 플라즈마 실드 발생장치와 같은 것을 개발하면서 보고를 하지 않았다.
예전이라면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인데 한국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이런 정보를 알아내야 할 CIA나 국무부 산한 정보부서에서는 그 어떤 정보도 알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CIA의 특무부대는 한국 내에서 비밀 작전을 하다 사로잡히는 수모까지 겪었다.
참으로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작전을 펼쳐 전쟁을 억제했을 뿐 아니라 휴전 상태의 한반도를 통일하였단다.
아무리 한국이 군 작전권을 회수했다고 하지만 동맹인 미국에 일언반구 작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미국을 무시한 처사였다.
리노 레이놀즈 국무장관은 이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회가 나기 시작하였다.
‘감히 동양의 작은 나라 따위가 위대한 조국을 무시해?!’
지금 리노 레이놀즈 국무장관은 참으로 황당한 생각이지만 그는 지금 한국이 미국에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작전을 펼친 것에 분노하였다.
하지만 흥분을 한 그는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그가 흥분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분명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로써는 그도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감정적이 되어 버렸다.
“이번 한국이 한반도에서 우리 미국에 아무런 상의 없이 작전을 펼친 것은 명백한 협정 위반입니다. 이번 문제에 대하여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리노 레이놀즈 국무장관은 말론 국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국이 비밀 작전을 한 것에 대하여 항의와 함께 책임자 처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그런 레이놀즈 국무장관의 말에 반론을 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책임을 물어야 한다니?”
슈왈츠 대통령은 국무장관의 말에 그의 의중을 물었다.
그런 대통령의 질문에 레이놀즈 국무장관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한국 정부는 군사작전을 하면서 동맹국이 우리 미국에 아무런 통보도 없이 작전을 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한국에 주둔중인 주한미군을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이에 대하여 엄중히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음.”
레이놀즈 국무장관의 주장에 슈왈츠 대통령은 작게 신음을 흘렸다.
일견 그 말이 맞는 듯하지만 먼저 자신들이 사전에 북한의 정보를 취득하고 그것을 한국 정부에 알리지 않은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먼저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으면서 한국 정부가 위급 상황을 알고 군사작전에 들어간 것에 대하여 책임추궁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언어도단인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마치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일이었기에 슈왈츠 대통령은 레이놀즈 국무장관의 말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우리가 먼저 정보를 차단했는데, 그것에 대해선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는 생각해 봤나?”
슈왈츠 대통령은 리노 레이놀즈 국무장관의 말에 둘러 자신들 미국이 정보 차단을 한 것에 대해서 먼저 잘못한 것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하지만 이미 한 가지 생각으로 이성을 잃은 레이놀즈 국무장관의 귀에는 그런 대통령의 이야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은 다른 위원들의 지원 속에 한국에 항의와 책임 추궁을 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그게 여러분들의 의견입니까?”
존 슈왈츠 대통령은 최종적으로 위원들의 의견을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그러자 자리에 있던 NSC위원들은 한국에 책임을 묻는 리노 레이놀즈 국무장관의 의견을 지지 선언을 하였다.
그런 위원들의 모습에 다시 한 번 슈왈츠 대통령은 NSC위원들 안에 자신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생각을 상기하게 되었다.
◈ ◈ ◈
83살의 박노식은 파주 임진강이 보이는 장파리에 살고 있었다.
박노식의 원래 고향은 임진강 건너 황해도 장단면이었다.
정말로 임진강만 건너가면 고향 땅이었지만, 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고향을 가 보지 못했다.
그것은 민족의 비극인 6.25사변 때문이었다.
어린 나이에 형을 따라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나고 말았다.
그 때문에 박노식 할아버지는 고향에 가지 못하였다.
물론 남북 적십자의 도움으로 이산가족 찾기를 통해 북한에도 가 보고 북한에 남아 있는 친지도 만나 보았다.
하지만 박노식 할아버지가 정작 보고 싶은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도 가지 못하고 형을 따라 객지로 돈 벌러 가는 어린 아들을 눈물로 배웅하던 어머니를 끝내 만나지 못한 것이다.
오늘도 집 평상에 앉아 임진강을 쳐다보고 있었다.
죽기 전에 고향 땅을 한번이라도 밟아 봤으면 하는 것이 소망이지만 그것이 언제 이루어질지 몰라 눈앞이 막막하였다.
사실 박노식 할아버지는 어린 자신을 데리고 내려온 형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시절에는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알기에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형도 한 많은 세상을 떠난 지도 언 10년이 되어 간다.
죽기 전 병상에 누워 자신의 손을 잡고 했던 형의 유언이 아직도 귓가에 선했다.
“넌 꼭 고향에 가서 아버지 어머니 무덤에 내 대신 제주(祭酒) 한잔 꼭 올려 드려라. 알았지?”
임진강을 보며 당시 형의 유언을 생각하자 자신도 모르게 핑 눈물이 돌았다.
따르릉! 따르릉!
강물을 보며 고향 생각, 오래전 분단으로 헤어진 부모님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박노식 할아버지는 전화벨 소리를 바꾸지 않았다.
컬러링이니 해서 유행가를 전화벨 소리로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고전적인 전화벨 소리를 들을 때면 자신이 아직 살아 있음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벨 소리는 고전적이지만 전화기는 현대식 전화기였다.
영상을 통해 얼굴을 보면서 통화를 할 수 있는 화상 전화기 너머에 큰아들 정식의 얼굴이 보였다.
“또 뭔 일로 전화를 한 거여? 난 네가 뭐라 해도 집을 떠날 생각이 없다.”
요 근래 북한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 되면서 자식들이 위험하니 자신들이 사는 곳으로 올라오라고 성화가 심했다.
하지만 박노식 할아버지는 자신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그나마 고향인 장단면과 가까운 이곳 파주에서 떠나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 때문에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큰아들이 전화한 것으로 생각한 할아버지는 대뜸 집을 떠날 생각이 없음을 알렸다.
―아버지! 그것이 아니라 얼른 TV, TV! 켜 보세요.
“티비? 티비는 왜?”
박노식 할아버지는 갑자기 전화로 다짜고짜 TV를 켜라는 큰아들의 말에 의아해하였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다급하게 TV를 켜라는 아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버지 얼른이요. 지금 난리 났어요.
“난리? 설마 북한이 전쟁이라도…….”
― 그게 아니라 아무튼 얼른 TV 켜 보세요.
박노식 할아버지는 아들이 난리가 났다고 하자 덜컹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혹시나 전쟁이 난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는데, 큰아들은 그건 아니라고 하며 계속해서 TV를 켜라고만 하였다.
이에 이상한 생각이 든 박노식 할아버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거실에 있는 TV를 켰다.
그런데 TV가 켜지자 화면 가득 비둘기가 날아다니고 또 폭죽이 터지는 화면이 보이더니 뉴스 속보라는 문구가 커다랗게 화면을 덮고 있었는데, 그 글씨를 본 박노식 할아버지는 ‘억!’ 소리와 함께 자신도 모르게 만세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만세! 흑흑, 만세!”
―대통령님의 성명에 의하면 북한이 전쟁을 힐책하려던 정보를 알아내고 특수부대를 북한에 침투시켜 북한의 김장은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를 모두 잡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번…….
TV화면에는 계속해서 폭죽이 터지고 있었고 아나운서는 계속해서 청와대에서 소식이 전해지는 대로 정보를 알리겠다며 떠들어 대고 있었다.
박노식 할아버지는 더 이상 뉴스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염원하던 통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든 할아버지는 급히 어디론가 전화를 하였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향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려는 것이다.
물론 그들도 TV 보고 있다면 얼마 안 있으면 고향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지만 그래도 일단 연통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