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코리아-53화 (53/118)

2. 부나방

아침 일찍부터 울린 전화벨 소리에 신원민은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연이은 사업 실패로 그룹에서 자신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오랜만에 밤새 달렸다.

한참 잘나가는 톱스타를 불러 진한 밤을 보낸 것은 물론이고 분위기 때문에 절제하던 술도 마셨다. 거기다 애물단지와도 같던 플라즈마 실드 발생장치를 헐값이지만 털어 냈다.

그것으로 인해 똥물을 뒤집어쓰기는 했지만 어찌 되었든 가지고 있어 봐야 하나 득 될 것이 없었기에 속은 시원했다.

만약 협상이 잘되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자신의 속을 아니, 그룹의 발목을 잡았을 물건이다.

국가 전략물자로 묶인 품목이라 수시로 국가에서 점검을 할 것이다. 그것을 빌미로 상당 부분 업무에 부담을 받을 것이 분명했기에 엄청난 손해에도 과감하게 포기를 하였다.

물론 아버지와 이사회에 그 문제로 상당히 많은 지적을 받기는 했지만 정부의 통제를 받으며 사업을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을 피력하자 무난하게 넘어가게 되었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그동안에 받았던 스트레스를 풀 겸해서 밤새 광란의 파티를 하였다.

그렇게 달리고 늦게까지 잠을 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밤새 파티를 하는 동안 회사는 엉뚱한 일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수량이 부족하다니?”

파주에 있는 연구소 소장이 아침 일찍 전화를 해 왔다.

오늘 천하 컨소시엄에서 사들였던 플라즈마 실드 발생장치의 남은 수량을 천하 컨소시엄으로 이송해 주기로 한 날이다.

원칙대로라면 자신도 오늘 아침 일찍 파주 연구소에 있어야 했다.

우선 일신 컨소시엄의 최고 책임자는 연구소장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제 너무 마신 술 때문에 늦잠을 자는 바람에 파주에 가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전화기 너머로 청천병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연구소 창고 깊은 곳에 보관되어 있어야 할 플라즈마 실드 발생장치의 일부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다섯 개의 플라즈마 실드 발생장치가 부족하다는 말이었다.

“도대체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그것을 도난당한단 말입니까? 경비들은 그 시각에 무엇을 했다는 말입니까? 내 곧 그곳으로 갈 터이니 기다리시오.”

신원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직 술기운이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방금 전 전화의 내용 때문에 한 순간 숙취가 확 가시는 느낌이었다.

아니 뒷목으로 해서 싸한 냉기가 등 뒤로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 너무도 섬뜩하였다.

쏴! 쏴!

차가운 물줄기가 아직 숙취로 인한 몽롱함을 날려 버렸다.

샤워를 마친 신원민이 화장실을 나와 벗어 놓은 옷을 입기 위해 침실로 들어갔다.

침대에는 어젯밤 자신의 파트너였던 미녀가 알몸으로 너부러져 있었지만 지금 그의 눈에는 그것이 들어오지 않았다.

현재 그에게는 새하얀 미녀의 알몸도 시트 밖으로 살짝 고개를 내민 봉긋한 가슴도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쿵!

옷을 입자마자 어젯밤 파트너에게 메모도 한 장 없이 방을 빠져나왔다.

참으로 매너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현재 신원민의 정신으로는 그런 것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정말로 일신그룹 후계자 자리가 날아갈 판이었다.

아니 후계자 자리가 문제가 아니라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잘못하다가는 모든 잘못을 자신이 뒤집어쓰고 더러운 감옥에 수감될 수도 있었다.

◈ ◈ ◈

파주 일신 중공업 연구소.

일신 컨소시엄이 프로젝트 실패로 해체가 되면서 일신 컨소시엄의 차세대 주력전차를 연구하던 연구소는 그 이름을 바꿔 일신 중공업 연구소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 연구소는 정말로 난리가 났다.

차라리 전쟁이 났다면 다행일 정도로 이곳 연구소 직원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출근하니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실장! 아직도 파악이 되지 않은 것인가?”

김종연 소장은 연구소 경비실장을 불러 물었다.

하지만 경비실장이라고 해서 뾰족한 해결책이 없었다.

연구소에서 물건을 훔쳐 간 도둑은 프로 중의 프로였다.

그 어떤 작은 흔적도 현장에 남겨 놓은 것이 없었다.

아니, 흔적은 남아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물건을 훔치고 그곳에 자신의 사인을 남겨 놓은 것이다.

마치 소설에 나오는 괴도처럼 자신을 알리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을 놀리려는 것인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자신만의 흔적을 남긴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만 가지고 범인을 잡는 건 사실상 불가능이었다.

그 때문에 경비실장은 김종연 소장의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소장이 경비실장을 붙들고 닦달을 하고 있을 때 마침 신원민이 그곳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서울에서 이곳 파주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신원민은 일단 사건의 개요를 듣고 싶었다.

그래야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무 대책 없이 있다가 도난 물품이 전략물자인 플라즈마 실드 발생장치라는 것이 외부에 알려지기라도 했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었다.

신원민의 말에 김종연 소장은 침중한 표정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 ◈ ◈

아침 일찍 출근을 해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서던 김종연은 사무실 입구에 서성이는 경비실장을 보았다.

“경비실장이 여긴 무슨 일인가?”

“아! 오셨습니까?”

자신을 보며 인사를 하는 경비실장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김종연은 차분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현재 그룹 상황이 좋지 못한데, 자네는 그런 우거지상을 하고 있는 거야!”

상황 파악을 못하는 듯한 경비실장을 꾸짖으며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경비실장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그로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그것이…… 연구소 물품 창고에 도둑이 든 것 같습니다.”

“뭐요?”

김종연은 자신이 지금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물었다.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그의 예상을 벗어났다.

“A동 1―3구역을 돌던 경비에게서 아침 일찍…….”

경비실장은 아침 일찍 어제 경비를 서던 경비원의 전화를 받고 출근한 뒤 자신이 조사한 것들을 김종연 소장에게 보고를 하였다.

“그것이 어떤 물건인데, 그것을 도둑맞는단 말이야!”

김종연은 경비실장의 말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금 보고를 하는 경비실장은 도난당한 물건의 가치를 아직 인지하지 못하고 간단한 물품 정도로 생각해 보고를 하였다.

하지만 도난당한 그 물건은 겨우 연구소에서 쓰는 물품으로 단순 도둑맞은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국가 전략물자. 과학자인 김종연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물건이었다.

이번 도난 사건으로 인해 경찰이 아닌 국정원에서 조사관이 나올 것이다.

만약 자신들의 관리 소홀로 드러난다면 연구소장인 자신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젠장!”

김종연은 자신도 모르게 쌍욕이 절로 나왔다.

그동안 연구소장으로 직원들에게 고상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잊고 있었는데, 이번 일로 그동안 감춰 오던 모습이 살짝 튀어나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앞에 있는 경비실장이 너무도 당황해 방금 전 김종연 소장이 한 소리를 귀담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김종연은 경비실장을 앞세우고 현장으로 가 보았다.

이곳 일신 중공업 연구소는 신형 전차개발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보니 부지가 무척이나 넓었다.

전차를 개발하면서 각종 시험을 해야 하는 관계로 넓은 부지를 조성했기에 물품 창고도 여러 동이 있었다.

A동 입구에선 김종연은 1―3이란 표시가 된 창고 입구에 섰다.

전차패드가 출입구 손잡이에 부착되어 있었다.

창고는 보안을 위해 지정된 패스워드와 지문 인식 두 가지 방식으로 작동을 하도록 특별 제작된 문이었다.

패스워드를 알고 있다고 해도 인가된 지문의 주인이 아니면 문은 열리지 않고 바로 경비실에 신호가 가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젯밤 도난 사건이 벌어졌지만 보안장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이는 어젯밤 이곳에 침입한 침입자는 이중 보안장치를 해제하고 들어가 물건을 훔쳐 간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경비들도 밤에는 창고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연구소 직원이라고 해도 정해진 시간이 지난 후에는 소장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만 출입이 가능한데, 자신은 절대 어젯밤 누군가에게 허가를 해 준 기억이 없었다.

“음…….”

1―3구역에 도착한 김종연은 절로 신음성을 흘렸다.

범인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대답하게 1―3구역 입구에 자신이 다녀갔다는 사인을 남겼던 것이다.

마치 까마귀를 캐리커처 한 듯한 형상의 그림이 입구에 떡하니 그려져 있었다.

김종연은 그 까마귀 그림을 잠시 보다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지금 그 그림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보다 안에 있는 물건의 파악이 중요했다.

◈ ◈ ◈

“이렇습니다.”

김종연 소장은 아침에 있었던 일을 그대로 신원민에게 보고를 하였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신원민의 얼굴은 너무도 창백한 것이 마치 시체의 그것과도 같았다.

‘누가?’

지금 신원민의 머릿속은 무척이나 복잡했다.

가득이나 그룹 내에서 자신의 입지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겨우 수습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도난 사건까지 발생을 하였으니 아무리 이번 일을 마무리 짓는다 해도 자신의 입지는 예전과는 다르게 흘러갈 것이 분명했다.

‘혹시?’

신원민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이번 일이 자신의 이복동생인 신영민과 연관이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며칠 전에 잠깐 이것에 대하여 언급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애물단지인 플라즈마 실드 발생장치를 미쓰비 그룹에 넘기고 돈을 받자는 이야기였다.

다만 전략물자로 묶인 물품을 빼돌렸다가 들켰을 때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기에 포기를 했다.

이미 실험을 통해 천하 컨소시엄에서 이 물건을 자신들에게 판매할 때 안전장치를 철저히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신영민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자신이 먼저 천문학적인 자산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그것을 외부로 팔아 버렸을 것이다.

사실 팔려고만 한다면 플라즈마 실드 발생장치는 엄청난 이윤을 가져다주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 것도 모르고 당시 신영민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신과 아버지에게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었다.

갑자기 신원민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 실장님? 접니다, 신원민. 혹시 요즘 영민이가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신원민이 전화를 건 상대는 그룹 감사실의 최지원 실장이었다.

직급이야 겨우 감사실 실장이지만 그 권한은 그룹 사장단과 별반 다르지 않은 아버지의 최 측근이었다.

더욱이 감사실 실장이란 직책 때문에 계열사 사장들이라고 그를 함부로 대할 수도 없었다.

주머니 털어 먼지 하나 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특히 높은 직급에 있는 자들일수록 어디 구린 구석 하나 이상은 가지고 있었다.

아무튼 하는 일이 하는 일이다 보니 그는 뭔가 신영민이 요즘 하고 있는 일을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 ◈ ◈

신원민은 일단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일단 신고를 해야만 했다.

일은 이미 벌어진 상태이고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건을 숨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이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선 은폐해야 할 일이 있고, 또 사건을 공개해야 할 일도 있는 거다.

이번 도난 사건 같은 경우 섣부르게 은폐를 하다가는 큰일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은폐하기보단 자신의 실수를 받아들이고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여야만 했다.

일단 경찰에 사건을 신고하고 다음으로 그룹 회장인 자신의 아버지에게 연락을 하였다.

원칙대로라면 우선 경찰에 신고를 하기 전 먼저 그룹 회장인 아버지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신원민은 이번 일은 자신의 아버지라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 판단하고 모든 일은 자신의 선에서 차단을 하기로 하였다.

그래야 후계자 자리에서 밀려나더라도 한 가닥 줄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신고를 하자 금방 경찰이 출동을 하였다.

일신그룹 계열사의 연구소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는 신고를 하였으니 여느 사건처럼 늦장 출동을 했다가 어떤 치도곤을 받을지 모를 일이기에 바로 출동을 한 것이다.

그리고 경찰이 출동을 하고 한나절이 지나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일신 중공업 연구소에 나타났다.

차 위에 공무수행이라 표지만 있고 소속이 나타나 있지 않은 그런 차량이었지만, 그들이 정부기관에서 나왔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로 장난이 아니었다.

한편 그들이 온 것을 모르는 신원민은 연구소 한편에 마련된 자신의 집무실에서 쉬고 있었다.

연구소에 그의 집무실이 있는 이유는 이전 컨소시엄이 형성되었을 때 신원민도 이곳 연구소에 자주 들려 전차의 개발 과정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서울로 퇴근을 하지 않고 이곳 파주에서 머물러 업무를 보기도 했기에 그의 집무실이 있는 것이다.

김종연 소장의 연락을 받고 정신없이 오느라 그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흐르자 멈췄던 숙취가 올라왔기에 이곳 집무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쉬고 있던 그의 집무실에 일단의 사람들이 들어섰다.

“실례합니다.”

검은 양복의 사내들은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서며 그렇게 말을 하였다.

“안 됩니다.”

신원민의 비서와 연구소 직원들이 말려 보지만, 무엇 때문인지 말로만 ‘안 된다’ 할 뿐 적극적으로 저지는 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왼쪽 가슴에는 이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패찰을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과 함께 큰 글씨로 NIS, 즉, 국가정보원이라는 표시가 선명하게 써져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소란과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뜬 신원민은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서는 사람들을 보았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막 잠에서 깬 때문인지 집무실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가슴에 착용한 명찰을 보지 못했다.

그런 신원민을 향해 가장 선두로 들어선 남자가 가슴에 있던 명찰을 떼 신원민의 앞으로 내밀고 말하였다.

“국정원에서 나왔습니다.”

‘아!’

국정원에서 나왔다는 말에 신원민은 잠이 확 달아난 얼굴로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올 것이 왔다. 정신 차리자!’

신원민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잠시 양해를 구했다.

“제가 어제 잠을 잘 자지 못해서 그런데, 잠시 씻고 오겠습니다.”

양해를 구한 신원민은 집무실 한쪽에 마련된 간이 세면장에 들어가 세면을 하였다.

업무 편의를 위해 상무 이상 이사들의 방에는 이렇게 세면장이나 휴식을 위한 휴게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지금 신원민은 국정원 직원 앞에서 실수를 했다가는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찬물로 세면을 한 것이다.

세면을 하고 나온 신원민은 거듭 사과를 하고 국정원에서 나온 조사관에게 사건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을 하였다.

그리고 사건 현장까지 직접 안내를 하며 자신들의 보안 상태에 대해서도 설명하였다.

절대로 자신들이 부주의해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범인이 너무도 뛰어나다는 것을 부각시켰다.

그래야 나중에 책임을 지더라도 피해가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국정원에서 나온 요원들은 신원민의 설명을 들으면서 사건 현장을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현장까지 가는 길목에 있는 CCTV의 위치나 주변 경비초소의 위치 등도 살폈다.

이는 범인이 이곳까지 들어온 침투 경로를 파악하기 위한 행동들이었다.

◈ ◈ ◈

미야모토 류스케는 급하게 차를 몰았다.

언제나 느긋하게 여유를 가지며 냉철하게 일을 처리하던 그의 평소 성격을 봐서는 이렇게 급하게 차를 몰 이유가 없었다.

아니, 미쓰비 그룹 사 남이며 미쓰비 그룹의 주력 기업인 중공업의 이사 직책을 가지고 있는 그는 평소에도 운전기사를 대동하고 다녔다.

직접 운전하기보단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차에서 업무를 본다든가, 아니면 명상을 하였다.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운전기사도 대동하지 않고 직전 차를 운전해 어딘가 급히 달려가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혼자 차를 몰고 가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일신 제약의 신영민에게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극비에 속하는 그것을 입수했다는 연락이 오자마자 바로 약속 장소를 잡고 그곳으로 혼자 가는 것이다.

비밀이란 알고 있는 입이 적을수록 비밀이 오래간다는 것은 진리이다.

그러니 운전기사도 대동하지 않고 혼자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안전에 대하여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고무도(古武道)를 수련한 것뿐 아니라, 현대 특수부대들이 필수로 수련한다는 주짓수와 이스라엘 특수부대인 모사드의 크라브마가 또한 익혔다.

이렇게 각종 무술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는 소지가 불법인 권총까지 소지하고 있었기에 류스케는 혼자 움직일 생각을 한 것이다.

한참 차를 몰아 김포의 무인 모텔에 도착한 류스케는 망설이지 않고 예약된 호실로 올라갔다.

무인 시스템이라 사람을 만날 이유도 없어 불륜 커플들이 자주 찾는 곳이지만 은밀한 거래를 위해선 안성맞춤이었다.

웅! 띵!

엘리베이터가 자신이 원하는 층에 도착했다는 신호를 하자 류스케는 엘리베이터를 내려 약속 장소로 들어갔다.

◈ ◈ ◈

딸깍! 쿵!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혹시나 모를 일을 대비해 잠금장치까지 하고 안으로 들어와 방 안을 살펴보았다.

모텔의 구조는 무척이나 단순하였다.

입구에 화장실이 있고, 방과 화장실을 나눈 벽은 커다란 유리벽이 있어 만약 샤워를 한다면 방 안에서 화장실 안을 환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런 방의 모습은 별반 일본의 모텔과 다를 바는 없었지만, 평소 이런 곳을 이용할 일이 없는 류스케에게는 자못 흥미가 돋는 구조였다.

‘흥미롭군!’

잠시 화장실을 쳐다보다 지나친 류스케가 방 안으로 들어가는 작은 방이 나왔다.

침대가 보이고 침대 옆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보였는데, 의자에는 이미 주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미야모토 상 어서 오십시오.”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그를 보며 인사를 하였다.

“물건은?”

인사를 하는 신영민을 보며 류스케는 인사도 받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런 류스케의 모습에 신영민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테이블 위에 올려 둔 검은 가방에 손을 짚었다.

그 가방은 몇 시간 전 김상문이 파주 연구소 근처 모텔에서 누군가에게 넘겨받은 바로 그 가방이었다.

천하 컨소시엄에서 개발한 대한민국의 신형 전차의 방어 시스템인 플라즈마 실드 발생장치가 들어 있는 가방이었다.

“물건은 확실한 것인가?”

류스케의 질문에 신영민은 대답 대신 확실하다는 표현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자신의 용건을 말하였다.

“돈은?”

신영민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류스케는 자신의 양복상의 안주머니에서 스마트 폰을 꺼냈다.

“계좌!”

스마트 폰을 조작하던 류스케는 간단하게 돈을 받을 계좌를 물었다.

보통 이런 은밀한 거래에 추적이 불가능하게 현금을 사용하는 것이 맞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 거래를 현금으로 했다가는 사람이 들고 나를 만한 무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용하려는 것은 바로 해외 조세피난처에 마련된 비밀계좌였다.

정부의 추적도 받지 않는 그런 조세피난처의 비밀계좌는 거래 금액이 너무도 커 직접 운반할 수 없는 거래에 자주 이용되었다.

신영민은 류스케의 질문에 바로 케이먼 군도에 있는 페이퍼 컴퍼니의 계좌를 불러 주었다.

“시티은행 ZZAEQ21HKYUO9.”

알파벳과 숫자가 조합된 13자리의 계좌번호를 말하자 류스케는 바로 신영민이 불러 준 계좌에 약속된 금액을 이체하였다.

이번 거래 금액은 미화 3천만 달러였다.

플라즈마 실드 발생장치 한 대의 가격이 한화 50억 원이란 것을 감안하면 그리 큰 금액도 아니었다.

류스케가 신영민에게 요구한 플라즈마 실드 발생장치의 숫자는 세 개였다.

원래는 총 다섯 개를 요구하였지만 신영민이 숫자를 세 개로 줄인 것이다.

보안이 철저해 그 이상 빼 오기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는 신영민이 처음 자신의 생각보다 플라즈마 실드 발생장치의 가치가 엄청나다는 것을 깨닫고 꾸민 거짓이었다.

신영민은 처음부터 다섯 대의 플라즈마 실드 발생장치를 빼돌리려 하였다.

그렇지만 순순히 류스케가 요구하는 다섯 대 전부를 넘기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은 두 대를 중국이나 미국에 팔아넘길 생각을 하였다.

아무튼 신영민은 플라즈마 실드 발생장치를 대당 천만 달러, 한화 100억에 팔아넘긴 것이다.

시간만 주어졌더라면 더 비싼 가격에 넘길 수 있었겠지만 현재 그룹 회장이 되기 위해선 주식을 더욱 많이 확보를 해야만 했다.

그렇기 위해선 하루라도 빨리 자금을 마련해 주식을 모집해야만 했다.

그래서 3천만 달러에 플라즈마 실드 발생장치를 류스케에게 넘기기로 한 것이다.

류스케가 계좌이체를 하는 동안 김상문도 테이블에 노트북을 펴고 넘겨받을 계좌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제 물건을 넘기지?”

류스케는 계좌이체를 하고 신영민을 보며 물건을 넘기라는 말을 하였다.

신영민의 류스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비서인 김상문에게 돌렸다.

그런 신영민의 시선에 김상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좌에 돈이 들어왔다는 표시를 한 것이다.

물론 아직 계좌 이체가 완벽하게 끝난 것은 아니다.

아직 가상으로만 금액이 들어온 것이라 류스케가 결재를 승인해야만 완벽하게 돈이 들어오는 것이다.

만약 류스케가 지금이라도 거래 취소 버튼에 커서를 움직이고 엔터를 치면 거래를 중지된다.

“확실하군! 여기!”

플라즈마 실드 발생장치 세 대가 들어 있는 가방을 류스케 앞으로 밀었다.

물론 자신과 류스케와의 거리 딱 중간 지검까지만 밀어 놓았다.

신영민은 자신이 류스케를 속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가방을 반쯤 열어 류스케가 가방을 볼 수 있게 하면서 밀었다. 류스케는 가방 안에 자신이 원하는 물건이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원하는 물건이 눈앞에 보이자 무표정하던 류스케의 얼굴에 작은 표정이 보이다 사라졌다.

“좋아!”

류스케는 송금을 마치고 바로 앞에 있는 가방을 손에 들었다.

자신의 신분을 잘 알고 있는 신영민이 설마 자신에게 장난을 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하면 된다란 생각이 들었기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바로 가시게? 거래도 끝마쳤는데, 어디 가서 한잔 하고 가지 않겠어?”

미국 대학 동문인 류스케이기에 신영민은 그렇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류스케는 그렇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한국에서 전략물자로 묶인 물건이다. 그런 물건을 몰래 빼내는 일인데, 거래가 끝났으면 빨리 자리를 뜨는 것이 유리하다.

“술은 다음에 하지! 난 바로 귀국해야 해서 말이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신영민을 마치 하인처럼 대하던 류스케였지만 지금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서 그런지 지금은 신영민을 거래자로 대우를 해 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다음에 한국에 들어오게 되면 내가 좋은 곳에서 대접을 하지.”

“좋아! 그때 얼마나 좋은 곳인지 기대를 하지. 한국 기생집이 무척 좋다고 하던데…….”

류스케는 신영민이 좋은 곳에서 대접을 해 주겠다는 말을 하자 예전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여자는 일본여자가 최고라고 하면서도 조선기생에 대해선 두말하지 않고 엄지손가락을 내밀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류스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랬기에 신영민의 제안이 은근 기대가 되기도 했다.

할아버지 말이 아니더라도 그룹의 이사들 중 한국에 다녀온 이들은 하나 같이 한국 기생에 대하여 칭찬이 자자했다.

일본에도 한국인 기생이 있기는 하지만 류스케는 그런 한국인 접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함부로 굴린다고 생각하는 천하디천한 하류인생이라 생각했었는데, 신영민의 이야기를 들으니 또 다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튼 오늘은 날이 아니란 생각에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괜히 이곳에서 신영민과 이야기를 섞다 보면 본분을 잊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한편 신영민은 어떻게든 미쓰비 그룹 사 남인 류스케와 확실한 연을 맺기 위해 노력을 해 보지만 몸을 빼는 류스케를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정말 아쉽습니다. 다음에 확실히 대접을 하겠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좋은 거래가 있으면…….”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류스케는 신영민을 향해 인사를 하고 바로 방을 빠져나갔다.

류스케가 방을 나가고 방에 남은 신영민과 김상문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3천만 달러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하지만 김상문이 부족하다고 말을 한다면 아직 남은 두 대의 플라즈마 실드 발생장치를 팔아 자금을 마련하면 되는 일이었다.

비록 류스케에게 넘기 세 대보다는 부족한 두 대뿐이지만 가치는 그래서 더 올라가는 것이다.

두 대뿐이지만 이것 또한 류스케에게 판 것 못지않은 금액을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신영민에게는 있었다.

사실 류스케와의 거래에서는 주도권을 자신이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류스케에게 있었기에 플라즈마 실드 발생장치의 가격을 그 정도뿐이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중국이나 미국, 그도 아니면 러시아나 영국 등, 팔 곳은 많았다.

그들을 경쟁시킨다면 3천만 달러가 아니라 그 이상도 받을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예,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부족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김상문의 대답을 들은 신영민은 입가에 절로 미소가 어렸다.

사실 일신그룹의 주식 가치라면 3천만 달러가 아니라 그 배가 있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지만 현재 일신그룹의 주식가치가 평소와 다르게 엄청 다운되어 있다 보니 가능한 것이다.

“김상문 실장! 오늘 수고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것…….”

신영민은 양복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하나 꺼냈다.

“감사합니다.”

김상문은 신영민이 주는 봉투를 거절하지 않고 바로 받았다.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받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번 거래로 신영민이 받아 든 금액을 자신이 직접 확인하지 않았는가.

무려 미화 3천만 달러가 비밀계좌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 입을 씻는다면 함께 일을 하지 못한다.

오늘 일만 해도 그렇다. 물건을 은밀하게 받아 이곳까지 옮긴 사람이 자신이었다.

아니, 전문가를 섭외한 것도 자신이었다.

그러니 지금 받는 금일봉은 받을 자격이 있다고 김상문은 생각했다.

“이건 그냥 김 실장님이 수고한 것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보상은 내 이번 일 성공하면 약속한 것 이상으로 해 줄 테니 그냥 받아 두십시오.”

김상문이 자신과 이제는 공생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는지 이전과 다르게 신영민은 김상문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자신은 일신그룹의 총수가 되기 위해 이미 칼을 빼 들었다.

이런 상태에서 만약 김상문이 마음을 돌려 자신의 아버지나 형에게 밀고를 하면 이젠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었기에 김상문을 단단히 붙들기 위해 이렇게 뇌물 아닌 뇌물을 주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도 이만 자리를 나가기로 하지요.”

“예, 어디 가서 축배를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맞아! 큰 거래를 성공했으니 어디 가서 우리끼리라도 축배를 들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사장님!”

신영민과 김상문은 류스케와의 거래가 무사히 끝난 것에 고무되어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류스케는 갔지만 자신들끼리 자축하기로 하였다.

30대 중후반의 남자 두 명이 호텔을 나서는 모습이 자못 변태 같이 보일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신영민이 이곳 모텔을 거래 장소로 채택한 이유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때문이다.

더욱이 모텔은 손님들끼리도 최대한 마주하는 것을 적게 들어가는 입구와 나가는 출구를 따로 분리를 했다.

그래서 나가는 손님과 들어오는 손님이 마주할 일이 없었다.

두 사람은 뭐가 그리 좋은지 작은 소리로 소곤거리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자신들을 주시하는 시선이 있음을 아직까지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들의 은밀한 거래가 아무런 이상 없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에 고무되어 흥분해 주변에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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