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코리아-50화 (50/118)

7. 신영민의 욕심

대한민국은 지금 롤러코스터 탄 것 같이 연일 계속되는 뉴스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갖가지 핫한 뉴스로 인해 국민들의 생활이 흔들릴 지경이다.

얼마 전에는 세계 최초로 플라즈마 실드라는 공상과학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나 소개되던 것이 현실에서 실용화가 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환호를 하였는데, 불과 한 달도 되지 못해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일신그룹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주식이 폭락을 하였다.

그 때문에 대한민국의 분위기가 또다시 1997년 연말에 있었던 경제위기가 다시 시작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떨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대기업이 태우그룹이 부도 처리되었고, 많은 대그룹들이 IMF체제에 맞게 부채비율을 줄이기 위해 정리해고를 단행하는 등 전반적으로 무척이나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그런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이번 일신그룹의 주식폭락 사태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의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그렇지만 IMF 때와 현 일신그룹의 사태는 그 맥락이 다르다.

단기 사채의 위험성을 모르고 고도성장에 취해 대책 없이 방만하게 기업을 운영해 초례한 IMF 때와는 다르게, 이번 일신그룹의 주식 폭락 사태는 그들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불법 로비와 미래 진단 실패 때문이다.

더욱이 불법 로비를 하던 사실이 뒤늦게 외부에 알려지면서 1,000억이나 되는 돈이 로비자금으로 정계로 흘러갔으며, 또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1조란 자금을 운용해 사들인 물품이 사업의 실패로 애물단지가 되고 만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고 기존 일신그룹의 부정적인 이미지와 합쳐지면서 주식폭락 사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국민들은 제2의 IMF사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는 나타냈다.

◈ ◈ ◈

“청장님, 제발 도와주십시오.”

신원민은 방위사업청 박세기 청장을 찾아와 무언가 부탁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또 뭘 가지고 그러는 것이오?”

박세기 청장은 자신을 보며 다급하게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는 신원민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신원민이 국회의원들에게 로비를 하여 자신이 추진하던 사업을 늦추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방위사업청은 국방부 내 하부 조직으로 몇 년의 계획을 수립하고 움직이는 조직이다.

그런데 가뜩이나 추진하던 다른 사업들이 각종 로비와 연관되어 국민의 세금을 낭비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던 차에 국방부가 야심차게 계획한 차세대 주력전차 개발과 도입 사업에서 고무적인 업적이 이루었다.

세계 최초로 플라즈마 실드라는 최첨단의 무기가 도입이 되었음은 물론이고, 모든 부품들이 국산이라는 것에 사람들의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 방위사업청이 가졌던 부정적인 이미지가 어느 정도 씻기는 듯했다.

그런데 그에 초를 치는 인물이 바로 눈앞에 있는 신원민이었으니 박세기 청장의 입장에서 그가 도와달라는 지금의 부탁은 참으로 뻔뻔하고 또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방위사업청 청장으로 있는 박세기는 개인적인 이런 화를 밖으로 내보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일신그룹이 현재 주춤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한민국 재계 서열 5위라는 것은 결코 도박으로 딴 것이 아니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다시 한 번 물었다.

“바쁘신 신원민 사장이 일개 방위사업청 청장에 불과한 날 찾아와 도와달라고 하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군요?”

너무도 담담히 물어 오는 박세기 청장의 말에 신원민은 흐르지도 않는 땀을 닦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음, 저……. 차세대 주력전차 심사에서 저희 일신 컨소시엄에서 만든 전차가 탈락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요. 천하에서 개발한 백호가 육군의 차세대 주력전차로 선정이 되었지요.”

박세기 청장은 신원민의 말에 담담히 대꾸를 하며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런 박세기 청장의 말에 잠시 말을 멈췄던 신원민은 다시 한 번 한숨을 쉬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천하에서 개발한 전차가 육군의 주력전차로 선정이 된 것에 이의는 없습니다. 저희가 개발한 전차가 육군의 욕구에 만족을 주지 못한 것 때문이니 어쩔 수 없지요. 그렇다면 저희가 개발한 전차를 외국에 팔 수 있게 허가를 내주시기 바랍니다.”

신원민은 자신의 이복동생인 신영민이 추진하고 있는 일을 자신이 먼저 나서서 추진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더 이상 그룹에서 자신의 입지가 낮아지는 것을 걱정한 신원민은 방위사업청 청장을 찾아 먼저 그 일을 허가를 받아 신영민이 앞으로 나서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박세기 청장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부정적인 내용이었다.

“신 사장,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오! 비록 일신에서 개발한 전차가 주력전차 선정 심사에서 탈락을 했다고 하지만, 함부로 외부에 노출시킬 수 있는 물건이 아니오. 아무리 일신에서 개발을 했다고 해도 국내 무기 체제를 잠재적 적국에 노출시킬 수도 있는 일인데…… 허락할 수 없습니다.”

신원민의 부탁에 말을 하던 박세기 청장은 너무도 엉뚱한 신원민의 부탁에 기가 막혀 하며 그렇게 대답을 하였다.

도저히 허가할 수 있는 문제의 질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박세기 청장의 허가할 수 없다는 말에 신원민은 실망하지 않고 다른 부탁을 하였다.

“청장님, 그렇다면 저희가 가지고 있는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반품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뭐요!”

사실 신원민이 부탁을 하고자 했던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자신들이 개발했다고 하지만 분명 방위사업청에서는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신원민이었다.

그러니 들어줄 수 없는 것을 먼저 말하고, 그다음에 들어줄 수 있는 제안을 한다면 충분히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계산 아래 방위사업청을 찾았다.

만약 처음의 자신의 말을 들어주면 그것대로 자신에게 좋은 일이었다.

그렇지만 사실 그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몇 년이 흐른 뒤 대한민국 육군에 신형전차가 전량 배치가 완료된다면 허가가 떨어질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불가능이었다.

그러니 자신들이 비싼 돈을 주고 천하에서 사들인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반품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1조 원이나 되는 엄청난 자금을 들여 사들였지만 현재 그것은 애물단지였다.

분해하여 그것의 원리를 연구하고 싶으나 그러지도 못했다.

아니, 시도를 해 보았지만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50억이나 주고 사들인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연구하기 위해 분해를 하였다.

하지만 분해를 하기 위해 공구를 가져가 작업을 하다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을 하였다.

처음 몇 번은 부주의에 의한 실수라 생각을 하였지만 그런 사고가 몇 번 더 발생을 하다 보니 그건 사고가 아니라 천하 컨소시엄에서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에 보안 장치를 한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드릴 머신으로 구멍을 뚫어 보려고도 해 보았고, 워터제트 절단기 위험하지만 플라즈마 절단기 등을 사용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충격에는 어느 정도 버티는 것 같았지만, 구멍을 뚫거나 전기 또는 열을 가하고 또 상자가 공기와 접촉을 하게 되면 폭발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거기에 일신에서 더 이상 시도를 하지 못한 이유는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가 폭발했을 때 그것의 폭발력이 웬만한 폭발물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분해해 연구하겠다는 생각은 접게 되었다.

그 뒤로 일신그룹에게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는 진정한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분명 엄청난 아이템이기는 하지만, 자신들이 개발한 것이 아니고 또 전략물자로 분류되어 다른 곳에 판매를 할 수가 없는, 몇 개 파괴되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190여 개가 남아 있기에 그것을 관리할 공간과 유지비용이 따로 들어가는…… 정말이지 신원민에게 그것만큼 애물단지가 없었다.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 그것 때문에 몇 년을 노력한 결과물이 수포로 돌아갔으며, 또 탄탄하던 그룹 후계자의 자리도 위태롭게 되었다.

신원민은 간절한 표정으로 박세기 청장을 보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천하 컨소시엄에 반품을 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부탁을 다시 하였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것으로 인해 현재 저희 일신그룹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대그룹인 일신그룹이 겨우 그것 때문에 흔들리겠습니까?”

그룹이 흔들린다는 신원민의 말에 박세기 청장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 말을 받았다.

그가 생각하기에 재계 서열 5위나 되는 일신그룹이 겨우 한차례의 사업 실패로 흔들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당연한 생각이었다. 다만 현재 일신그룹이 박세기 청장이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일신그룹은 겉보기보다 내실이 부족한 상태였다.

사세 확장을 위해 너무도 방만하게 그룹을 운용했기 때문이다.

그룹의 크기를 키우기 위해 멀쩡한 회사를 부도 위기로 만들어 그 회사를 사들이고, 또 그렇게 사들인 회사를 담보로 다른 회사를 노리는 등 정말이지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하였다.

마치 탐욕스러운 암 덩어리가 주변 정상 세포를 잠식해 가듯 그렇게 사업을 확장하다 보니 일신그룹의 부채 비율은 여느 그룹보다 200~300%정도 높았다.

그러다보니 재계 서열 5위라는 위상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사업 실패와 1조 원의 자금이 엉뚱하게 쓰여 여유자금이 없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지금의 위험을 초례하였다.

그러니 신원민은 회사 자금 1조 원을 투입해 구매하였지만 애물단지가 된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어떻게든 반품해 자금을 회수해야만 하였다.

“그건 천하 컨소시엄과 협의를 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까? 그걸 왜 저희에게 가져와 부탁을 하는 것입니까?”

박세기 청장은 무척이나 불쾌한 표정으로 물었다.

얼마 전 그렇게나 고압적인 태도로 천하 컨소시엄에서 개발한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구매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압력을 행사하더니, 이제 와 그것을 반품하겠다는 신원민의 태도에 화가 나 더 이상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전에 와서 뭐라고 했습니까? 이후 일은 신 사장이 알아서 하겠다고 했지 않습니까? 이제 와 이러는 저의가 뭡니까?”

한 번 화가 폭발하자 박세기 청장은 쉬지 않고 신원민에게 쌓였던 감정을 풀었다.

그렇지만 화를 내고 있는 박세기 청장의 말에 신원민은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현재 그는 어떻게 하던 애물단지로 전락한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반품해야만 했다.

몇 개 연구를 하겠다고 소모를 하였지만 아직도 190여 개나 남아 있다.

원금 1조 원 모두를 회수할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 회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현재 폭락하고 있는 주식을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신원민은 제발 박세기 청장이 이것을 도와주길 원했다.

“청장님, 비록 현재 일신이 흔들리고 있지만 곧 제자리를 찾을 것입니다. 더 위로 올라가셔야죠? 장관도 하고 국회의원도 하고 하셔야지요. 참! 아드님이 다니는 회사가…….”

협박과 부탁을 교묘하게 섞어 하는 신원민의 능수능란한 언변에 박세기 청장의 인상이 구겨졌다.

화는 나지만 일신그룹의 후계자인 신원민의 부탁을 더 이상 거부할 수도 없었다.

신원민의 말처럼 일신그룹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것을 무시하고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되지만, 그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어졌다.

◈ ◈ ◈

수한은 현운사의 산문을 넘으며 생각에 잠겼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들르면 자신을 맞이하는 포근한 미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포근한 미소를 볼 수가 없었다.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며 또 전륜성황의 화신이라며 떠받들던 의붓 할아버지 혜원이 더 이상 이곳에 없기 때문이다.

종교인으로서 업(業)보다 지킴이라는 민족수호 단체의 수장으로서의 생에 더 의미를 두고 살았던, 그래서 수한이 더욱 존경했던 의붓 할아버지인 혜원은 이 년 전 이맘때 입적하셨다.

원래는 유언에 따라 간단하게 입적 절차를 끝내려 하였지만, 승려로서도 많은 덕을 쌓은 덕인지 전국에서 그의 입적 소식을 듣고 구름처럼 승려들이 모여들었다.

그 때문에 잠시 설왕설래가 있었다.

하지만 상주로서 수한이 있고, 또 혜원의 양녀로 등록한 최성희가 있었기에 원만하게 진행이 되었다.

다만 승려들의 주장대로 혜원의 다비식을 치르게 되었다.

사실 혜원은 죽으면서 유언으로 다비식을 하지 말고 그냥 화장을 하라고만 하였다.

그런데 승려들이 모이면서 그냥 화장이 아닌 불교식 화장인 다비식을 하게 된 것이다.

그건 종교인으로서도 대스승의 위치에 있었던 혜원인지라 그의 밑에서 조금의 가르침을 받았던 승려들이 혜원이 다년간 수련한 불성(佛聖)을 후세에 전해야 한다는 주장에 수한이나 최성희도 승낙을 하였다.

사실 수한도 자신의 의붓 할아버지인 혜원이라면 충분히 부처라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도(道)를 알고 있는 고승이라 생각했다.

다비식을 치르고 나온 사리는 대웅전 본존불이 있던 자리에 자리하게 되었다.

목각에 금칠을 한 부처님의 상을 치우고 혜원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담은 사리함을 가져다 놓은 것이다.

오히려 그것이 이곳을 지키는 최성희나 혜원을 알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더욱 뜻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산문을 넘다 생각을 하던 수한은 얼른 대웅전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혜원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대웅전에 들어서기도 전에 자신이 온 것을 알고 맞아 주던 의붓 할아버지 혜원은 이젠 없지만, 대웅전 본존불이 있던 자리에 있는 사리함을 정면으로 보게 된 수한은 문득 죽은 혜원이 자신을 맞아 주는 것만 같아 마음이 푸근해졌다.

“할아버지, 저 왔습니다.”

사리함을 보며 그렇게 말을 한 수한은 조용히 절을 하였다.

수한이 절을 하고 잠시 혜원의 사리함을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얼마를 그렇게 혼자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때 대웅전 입구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비추었다.

“모두 모이셨다.”

언제 왔는지 대웅전 입구에 양모인 최성희가 수한에게 말을 하였다.

“예, 잠시 만요. 할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드리고요.”

최성희에게 말을 하고 다시 고개를 돌린 수한은 혜원의 사리가 담긴 사리함에 대고 말을 걸었다.

“회합에 모두 모여 있다네요. 다음에 한가하게 되면 다시 찾아와 다시 이야기 들려드릴게요.”

수한은 마치 살아 있는 혜원에게 이야기를 하듯 그렇게 말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수한의 모습에 뒤에 있던 최성희도 경건한 표정으로 혜원의 사리함에 고개를 숙였다.

혜원이 입적을 하고 현운사는 현재 혜원의 양녀인 최성희가 지키고 있었다.

양아들인 수한을 돕기 위해 미국에서 공부했던 것은 모두 접고 몸이 쇄한 혜원을 수발하던 최성희는 그가 입적을 하고 난 뒤에도 이곳 현운사를 떠나지 않고 가꾸고 있었다.

그녀가 그러는 이유는 이곳 현운사가 단순히 양부인 혜원이 머물던 사찰만이 아니라 그가 수장으로 있던 지킴이라는 조직의 회합 장소로 이용이 되던 곳이기 때문이다.

◈ ◈ ◈

대웅전을 나와 객방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수한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수한은 객방 문 밖에서 조용히 자신을 알렸다.

수한이 멈춰 선 객방은 바로 혜원이 살아생전 지킴이 회합을 가질 때면, 회원들이 모이던 회합 장소였다.

지리산 깊은 곳에 위치한 현운사이고 주변에 인가라고는 10㎞ 방경에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니 따로 은밀한 장소를 만들기보다는 이렇게 객방 한쪽에 넓은 방을 하나 만들어 회합 장소로 사용을 한 것이다.

“회주, 들어오시오.”

굵은 목소리가 방 안에서 들려왔다.

혜원이 입적을 하기 전 수한은 그의 유언에 따라 지킴이의 수장이 되었다.

원칙대로 한다면 어린 수한이 지킴이의 수장으로 앉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수장이 죽거나, 수장으로서 활동을 할 수 없게 되면, 그다음 서열의 회원이나 장로의 위치에 있는 인물들이 수결(手決)로 다음 수장을 뽑았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면서 그런 방식 보다는 전임 수장이 자신의 다음 대 수장이 될 인물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지킴이의 수장 선출 방식이 바뀐 이유에는 근대에 들어 정부의 탄압도 있었고 또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억압과 회원색출에 따른 위협 때문에 회합을 가질 여건이 되지 못했다.

한 마디로 민족정기를 말살하려는 일제의 눈을 피하기 위해 점조직으로 지킴이를 운영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회합을 통한 선출보단, 수장의 추천이나 그렇지 못할 땐 장로의 추천으로 수장을 뽑기에 이른 것이다.

그것이 현대에 들어와서도 오랜 기간 혜원이 수장의 역할을 잘 수행했을 뿐 아니라 지킴이 내부에서도 예전과 다르게 조직의 결속이 조금은 느슨해졌다.

일제강점기와 다르게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고 민주주의가 기본 이념으로 들어서면서 지킴이가 가지는 민족수호와 보존이라는 정신이 강조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언제 다시 일제강점기와 같은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예전에 했던 실수를 다시 하지 않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곳에서 수련을 하기보다는 세속(世俗), 즉, 사회 안으로 스며들어 그 안에서 위정자들을 감시하고 또 각자 소속된 곳에서 힘을 기르기로 한 것이다.

조선이 일본에 강점된 이유가 위정자들의 배신 때문이라 생각하는 지킴이들이었기에 그런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지킴이는 점조직으로 수장만이 모든 회원들의 정체를 알고 있으며, 장로도 동료 장로들과 자신이 맡은 계열 외에는 다른 회원을 알 수가 없었다.

수한은 혜원이 지목한 차기 수장이며, 지금 모인 장로들도 어려서부터 지켜봐 왔기에 비록 어린 나이지만 수장으로서 부족하지 않아 장로들은 아무런 이견 없이 지킴이 수장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회주, 무슨 일로 장로들을 모이게 한 것이오?”

라이프 제약의 사장으로 있는 조봉구가 물었다.

비록 수한이 주인으로 있는 라이프 제약이고 또 전문경영인으로 조봉구가 사장으로 앉아 있지만 현재는 그런 위치가 아닌 지킴이의 장로와 회주로서의 관계에 있기에 그렇게 물은 것이다.

“예, 제가 장로님들을 모두 모이시라고 한 것은 이제 저희 지킴이가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할 때가 온 것 같아 그렇습니다.”

수한은 조봉구 장로의 질문에 시기가 되었다는 말로 시작하였다.

“현재 대한민국은 무척 불안한 형국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수한이 대한민국이 무척 불안하다는 말에 다시 한 번 조봉구가 물었다.

그저 일개 제약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그로서는 자신의 조국이 불안하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마 전에 눈앞에 있는 수한이 아주 특별한 것을 개발해 막강한 무기를 손에 넣어 대한민국의 안보가 탄탄해질 것이라는 뉴스가 전국을 울렸다.

그런데 그것을 개발한 본인이 위기론을 펴니 놀라 물은 것이다.

“여러 어르신들도 들어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 집안에서 운영하는 기업에서 특별한 무기를 만들어 낸 것은 알고 계시겠지요?”

수한은 자신이 개발한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에 관해선 말하지 않고 천하 컨소시엄에서 개발하고 육군과 납품계약을 한 백호에 관한 말만 하였다.

그런 수한의 말에 실내에 있던 장로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주변 사 개 국은 물론이고 유럽의 군사강국들도 스파이들을 한국에 그것의 정보를 빼내기 위해 모여들고 있습니다.”

수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사람이 수한의 말을 보충하였다.

“스파이들뿐 아니라 회주를 납치하기 위해 무력대까지 들어와 있는 상태입니다.”

수한의 말을 덧붙인 사람은 바로 지킴이의 장로이면서 국정원 차장으로 있는 김석원이었다.

그는 국정원 내에서도 아주 은밀한 5국의 인물로 국정원장 직속으로 아직 편성이 되지 않은 테러 보복팀의 수장을 맡고 있는 인물이다.

이전에는 해외 파트인 1차장으로 있었지만 각국의 정보부에서 운영하는 배신한 요원의 처리나 주요인물의 납치를 하는 부서가 국정원 내에도 필요하다는 요구에 의해 국정원 내에 5국이 꾸려지면서 그 자리에 앉게 된 사람이다.

다년간 1차장으로 지내면서 국정원 내에 전설을 만들어 낸 인물이기도 했다.

비록 아직 그의 밑으로 요원이 완전히 편성된 것은 아니지만 국정원에서도 조속한 시일 내에 CIA처리팀이나 중국의 국가안전부소속 특수팀인 흑검과 같은 처리팀을 갖춰 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그의 비밀취급인가 권한은 1급이었다.

즉, 국정원장이 볼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든 모두 볼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런 그가 본 정보 중 천하 컨소시엄의 연구원들을 납치하기 위해 중국에서 흑검이 들어왔으며, CIA처리팀까지 국내에 이미 들어와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더욱이 흑검들의 행동이 너무도 과격하기에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국내 조직이 없어 CIA처리팀을 간접적으로 불러들인 경황이 그의 눈에 포착이 되었다.

아무리 국정원 내부 차장이지만 각 부서의 일을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또 국정원장의 지시를 모두 알 수 없어 뒤늦게 알게 된 정보다.

이런 정보를 지금 회합 자리에서 밝히자 장로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지금은 덜하지만 지킴이 회원들에게 외국의 무력을 가진 조직은 무척이나 민감한 사안이었다.

그건 일제강점기에 지킴이 회원들을 고문하던 일본 순사들과 지킴이 회원들을 잡기 위해 동원된 일본의 흑룡회 회원들 때문이다.

“회주, 김 국장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꽤 위험할 것 같은데, 괜찮겠나?”

조봉구는 수한을 보며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그리 걱정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천하가드에서 보디가드도 보내 줬고, 또 제 개인적으로도 경호원과 함께 다니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럼 다행이고, 그런데 정규 회합 날도 아닌데 굳이 오늘 긴급 회합을 제의한 이유가 뭔가?”

조봉구는 현재 모인 장로들 중에서 가장 수한과 가까이 있고, 자주 마주하니 다른 장로들 보다 말하기 편해 장로들을 대표해서 수한에게 오늘 긴급 회합을 제의한 이유를 물었다.

자신이 긴급 회합을 요청을 한 것에 장로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알게 된 수한은 차분히 자신이 긴급 회합을 요청한 이유를 설명하였다.

“현재 대한민국이 일신그룹의 일로 좀 혼란스러운데, 욕심 많은 그들이 이대로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아실지 모르겠지만, 일신그룹은 일본의 기업과 컨소시엄을 형성해 국방부에서 추진하던 육군의 차세대 주력전차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수한은 천하 컨소시엄에서 획득한 육군의 차세대 주력전차 개발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면서 천하 컨소시엄과 경쟁을 하던 일신그룹이 컨소시엄을 형성한 일본 기업에 대한 이야기를 이었다.

“비록 숨긴다고 숨겼지만, 그들이 끌어들인 대상이 미쓰비와 혼타였습니다.”

수한은 일신 컨소시엄에 속한 일본 기업이 표면적으로 들어난 기업이 아닌 우익으로 널리 알려진 미쓰비 중공업과 혼타 자동차 그룹이란 것을 장로들에게 들려주었다.

혼타와 미쓰비는 단순한 일본의 대기업이 아니다.

한민족에게 커다란 상처로 얼룩진, 아니, 피로 얼룩진 이름.

일제강점기에 많은 조선인들을 징용이라고 끌고가 중노동을 하게 하였으면서도 보상도 재대로 해 주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다. 그들은 뻔뻔하게도 한반도가 일제치하에서 해방이 된 뒤 미지급 임금도 수작을 부려 돌려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자처럼 행동하고 있다.

더욱이 혼타와 미쓰비는 일본의 극우단체인 적성회나 일본 애국당 등에 막대한 후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신그룹은 한국을 적대하는 단체에 후원을 하는 혼타와 미쓰비와 손을 잡고 자국의 차세대 주력전차를 개발하려고 하였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설마?”

김석원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 뭔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가 파악하기로 혼타와 미쓰비 중공업은 단순하게 알려진 정도의 극우단체에 후원을 하는 기업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때와 하나 다를 바 없는 그런 기업이었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한 극단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겉으로 알려지지 않았지 국정원에서 파악하기로는 일본 내 극우주의 기업들 중에서도 쌍두마차였다.

세계 각국의 중요 기술들을 합자라는 형태로 빼돌리고 있었다.

아마도 이번 컨소시엄에서도 분명 한국의 첨단 전차생산기술과 운용기술을 빼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실제로 상당부분 빼돌린 것은 물론이고 일신 중공업이 가지고 있던 기술을 얻기 위해 신영민과 은밀하게 협상을 하고 있었다.

“제가 파악하기로 미쓰비와 혼타는 이번 차세대 주력전차 개발을 하면서 상당한 양의 자료를 빼돌린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시간에도 저희가 개발한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의 자료를 빼내기 위해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수한은 자신이 리철명과 김갑돌에게 지시해 만든 보안대를 통해 일신 컨소시엄을 감시하게 했었다.

분명 그들이 어떤 형태로든 자신이 개발한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가지고 수작을 부릴 것을 알고 그것을 감시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역시나 하는 것으로 판명이 되었다.

보안대 인원 중 침투에 특화된 대원이 일신 컨소시엄에 침투를 해 알아본 결과 벌써 10기 이상이 모처로 빼돌려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분해하려다 폭발사고로 연구원들이 많이 다쳤다는 보고도 받았다.

그런데 웃긴 것이 이런 사고에도 불구하고 일신 쪽에서 소문을 막고, 이것을 외부로 반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아주 우연히 알게 된 것인데, 이번 차세대 주력전차 개발사업의 실패로 굳건했던 신원민 사장의 후계자 구도가 흔들리게 되었고, 그 때문에 후계자 자리에서 밀렸던 일신 제약의 신영민 사장이 이것을 기회로 여기며 다시 한 번 후계자 자리에 도전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비록 탄탄하던 후계자 자리가 흔들리고 있다고 하지만 신영민이 신원민을 단숨에 능가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런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주식이었다.

일신그룹의 주식은 일신그룹 회장인 신상욱 회장이 다수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었다.

사실 일신그룹의 주식 보유 현황을 보면 사주일가인 신상욱 회장이나 맏아들인 신원민 사장 등 가족이 가지고 있는 주식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다만 우호 지분이 상당하기에 어느 누구도 적대적 인수를 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때 가족 중 한 명이 반기를 들고 이번 사태로 인해 떨어진 주식을 대량 매입을 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신영민이 미쓰비와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우연히 알게 된 대원이 수한에게 알려온 것이다.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신영민 사장의 일탈을 말이다.

튼튼한 제방도 작은 구멍 하나로 무너진다.

현재 신영민 사장이 벌이고 있는 짓은 그의 아버지가 보기에 배신 행위와도 같은 일이지만 신영민은 일신그룹의 회장이 되기 위해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 않았다.

비록 아버지이기는 하지만 첩의 자식인 자신보다는 본부인에게서 본 신원민을 더욱 아끼고 있으며, 많은 차별을 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신원민과 차별을 받았으며, 또 언제나 자신의 말보단 신원민의 말에 더욱 신뢰를 하는 아버지를 신영민은 결코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신원민이 책임지던 일신 컨소시엄의 자료를 헐값에 미쓰비에 넘기는 것은 물론이고, 어렵게 확보한―지금은 애물단지가 된―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까지 빼돌리려는 것이다.

비록 신원민에 밀려 계열사 중 가장 작은 일신 제약을 맡고 있지만 그렇다고 머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신영민도 수한이 개발한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가 얼마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자신의 배다른 형인 신원민이 담당하던 사업의 자료를 빼돌려 자신의 이익을 보려던 신영민에게는 또 다른 흠이 될 플라즈미 실드 발생 장치는 자신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줄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수한도 이런 생각을 하는 신영민이 이다음에 어떻게 나올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것이 바로 수한이 지킴이 장로들과 긴급 회합을 가지려는 목적이었다.

장로들 중에 국정원 고위직이 있음을 잘 알고 있는 수한이다.

그러니 당연 그에게 알려 민족의 원수와 손을 잡고 민족정기를 훼손하려는 일신그룹에 철퇴를 가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래전 어린 자신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납치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납치한 아이들을 세뇌시켜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이용을 하는 일신그룹을 결코 이 땅에 남겨 둘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수한으로서는 이번이 일신그룹을 무너뜨릴 절호의 기회였다.

정당한 경쟁을 통해 일신그룹을 쓰러뜨리는 것도 좋지만 그들이 빈틈을 보일 때 그것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도 좋았다.

더욱이 탐욕으로 뭉친 이들이기에 일신그룹을 무너뜨리는 것에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일신제약의 신영민 사장을 주시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미쓰비 중공업의 인사와 자주 접촉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보에 의하면 신영민 사장은 일신 컨소시엄이 확보 중인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국외로 유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헉!”

수한의 말에 김석원 국장이 놀라 짧은 신음을 흘렸다.

국내에서도 몇몇 인사들만 알고 있는 전략물자인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다.

김석원도 그것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만 현대 과학 기술로는 불법 복제가 불가능한 물건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회주!”

다급한 마음에 수한을 부르는 김석원이었다.

그런 석원의 부름에 수한은 담담히 대답을 하였다.

“예, 말씀하십시오.”

수한의 대답에 김석원은 궁금한 점을 질문하였다.

“내가 알기로 그건 현대 기술로는 복제가 불가능하다고 하던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 것입니까? 더욱이 듣기로 일신 컨소시엄에서 그것을 복제하기 위해 분해를 하다 폭발사고가 몇 차례 있어 중단하였다고 하던데?”

자리에 있던 장로들은 김석원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것이라면 굳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문제 같았다.

“그렇긴 합니다. 다만 이번이 아주 좋은 기회 아닙니까? 민족정기를 훼손하는 일신그룹을 이번 기회에 정리를 하는 것이 앞으로 대한민국이 세계로 뻗어 나가는 데, 걸림돌을 치우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일본에 빌붙어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일신그룹의 신상욱 회장과 그 일가를 쳐 내야 대한민국이 이름에 걸맞게 크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수한은 자신의 생각을 여러 장로들이 있는 곳에서 피력하였다.

전생에서는 자신의 연구에 미쳐 자신이 몸담고 있던 나라가 기운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나라 안에 배신자들이 고위직에 앉아 제 배만 채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 또한 목숨을 잃었다.

그런 기억이 있기에 수한은 절대로 자신의 조국에 해악을 끼치고 자신들만 잘살겠다는 일신그룹을 그냥 두고 보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있는 존재 이유이지 않겠습니까?”

수한은 장로들에게 자신들의 모임인 지킴이들이 해야 할 소명에 대하여 말을 하며 이번 기회가 왔을 때 민족정기를 훼손하고 있는 일신그룹을 처리하자는 의견을 냈다.

확실히 수한의 말에 자리에 있는 장로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자리에 있는 장로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일신그룹과 그 계열사들이 벌이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민족에 해악이 되고 있는지 말이다.

집단 이기주의는 물론이고, 계층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행위를 당연시 여기게 만들 것이 바로 일신그룹과 그 계열사들이다.

또 그에 동조하는 거대 기업들이 대한민국을 통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랬기에 수한의 말에 수긍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수한은 의붓 할아버지인 혜원의 옆에서 지킴이라는 이 민족수호 단체가 얼마나 거대한지 보았다.

비록 강제력은 없지만, 소속원 개개인이 자신들의 일에 얼마나 자긍심을 가지고 맡은 바 일을 하는지 겪었다.

그리고 다양한 방면에 포진해 있으면서 비록 큰 힘은 아니지만 그들이 모였을 때의 파급력 또한 그 뛰어난 머리로 떠올려 보았다.

각각 개인으로는 그리 큰 힘이 아니지만 그것이 모였을 때, 그 힘은 국내 최고 기업인 성삼그룹 그 이상이리라.

◈ ◈ ◈

제2일신타워.

제2일신타워는 일신그룹이 자신들의 역량을 총동원해 완성시킨 대한민국 최대 높이의 건축물이다.

국내 최대 높이인 578m, 130층인 이 제2일신타워는 신상욱 회장의 오랜 꿈이었다.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는 초석이다.

고도 제한 때문에 오랜 기간 부지를 마련하고도 사업을 추진하지 못했지만, 결국 이루어 냈다.

오랜 기간 정치권에 로비를 한 결과 공군의 비행 경로를 바꾸게 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사실 이건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정치권과 야합을 하여 이루어진 결과였다.

어떻게 국가 방공에 저해하는 행동을 하면서도 그것이 기업의 경제 활동을 제한을 하는 것으로 매도할 수 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렇지만 일신그룹은 일부 잡음이 이는 것을 무마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언론을 이용하여 비판하는 여론을 묵살하였다.

아무튼 이렇게 어렵게 완공한 일신타워는 그 뒤로도 문제가 많았다.

공사구간 인근에 도시형 싱크홀이 발생하는가 하면, 완공한 지하 대형 수조관의 물이 새는 등 안전상 문제가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런 것 모두 묵살하였다.

그리고 그런 제2일신타워는 일신그룹의 자존심으로 우뚝 섰다.

제2일산타워 스카이라운지.

평소라면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것 때문에 관광객으로 북적였을 테지만 오늘은 무슨 일인지 손님이 별로 없었다.

더욱이 손님도 특이하게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몇 명만이 보일 뿐이었다.

“신 상, 그것은 가져왔나요?”

조금은 왜소해 보이는 남자가 약간은 어색한 말로 신영민에게 물었다.

그런 사내를 향해 신영민은 비굴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였다.

“경계가 심해 아직 물건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신영민의 말에 사내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는 금방 표정을 풀고 물었다.

“그럼 언제쯤 그것을 제가 받아 볼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아직 구하지 못했다는 말에 화를 내기보단 살짝 인상만 찌푸리고 만 사내의 모습에 신영민이 속으로 깜짝 놀랐다.

자신이 알고 있는 눈앞에 있는 남자는 자신이 하려는 일이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았을 때 무척이나 신경질적이게 반응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럴 때면 그 일과 연관된 이들에게 무척이나 잔인해진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미국에서 유학을 할 때 직접 겪어 보았기에 신영민은 눈앞의 남자를 두려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자신이 알던 것과 다른 반응이 나오자 신영민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자가 이럴 위인이 아닌데, 무슨 일이지? 설마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신영민은 미쓰비 중공업의 협상가로 온 미야모토 류스케의 얼굴을 살짝 쳐다보며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덩치는 자신보다 왜소하지만 그의 눈을 보면 마치 뱀이 먹이를 노리는 것 같이 차갑고 시려 꼼짝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직접 그의 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슬쩍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며 머리를 굴렸다.

처음 신영민은 자신의 배다른 형인 신원민이 담당하던 일신 컨소시엄의 자료를 넘기고 비자금을 조성하려 하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상대의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하지만 그룹 회장인 아버지에게 큰소리를 쳐 놓은 것이 있었기에 어떻게든 협상을 마무리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신영민은 미쓰비에서 자신이 넘기려던 자료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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