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일신그룹의 반격
천하그룹은 국방부가 주관하는 차세대 주력전차 개발 사업에 산하의 천하 디펜스를 포함한 컨소시엄이 개발한 전차가 정식으로 선정이 되면서 그룹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무려 10조 원에 달하는 사업에다, 주체가 천하 디펜스가 주축이 된 컨소시엄이다 보니 그룹 전체 계열사가 그 영향을 받아 주식이 오른 것이다.
더욱이 천하 컨소시엄이 개발한 전차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에 해당하는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생산하는 업체로서 천하그룹 산하에 만들어진다는 소문이 돌면서 천하그룹의 주식은 연일 상종가를 치고 있었다.
국방부에서 육군이 빠른 시일에 K―3백호라는 정식 제식 명을 받은 천하 컨소시엄의 전차를 인도받기를 원했다.
M48계열의 전차가 너무도 노후 되어 더 이상 정비해 사용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M48계열 전차는 이미 사용 수명을 넘겼다.
아니, 그 이후에 개발된 M60전차 역시 미국이나 수입한 나라들까지 모두 퇴역을 하였다.
그런데 한국만이 M60도 아니고 보다 먼저 개발된 M48계열의 전차를 정비해 사용했다.
더군다나 한국이 운용 중인 M48전차는 105㎜포를 가진 전차였다.
보다 성능이 뛰어난 K―1전차나 K―1A1전차도 현대전에 맞지 않는 105㎜전차다.
그 말은 현대전에 맞지 않는 전차를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소리다.
비록 K―2흑표가 주요 화력을 담당을 하였다고 하지만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원래 흑표는 이런 M48계열 전차나 K―1계열 전차의 부족한 화력을 대신할 목적으로 현대전에 맞게 개발하였지만, 여러 가지 비리와 요구 성능 미달 등 잡음이 많아 계획한 수량을 모두 생산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 대책으로 나온 것이 이번 차세대 주력전차 개발이었고, 천하 컨소시엄에서 개발한 전차가 정식으로 K―3백호라 명명됨과 함께, 노후 된 M48계열 전차를 대체할 목적이다.
그런데 웃긴 것은 월래 K―3가 개발된 목적은 말 그대로 K―2흑표를 뺀 모든 전차를 대체하기 위한 것인데, 정작 개발하고 보니 성능이 너무도 뛰어나 전체 생산 대수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인데, K―1계열 중 부족한 화력을 높이기 위해 120㎜포를 장착한 K―1A2전차와, K―2흑표를 제외한, 즉, 120㎜주포를 장착하지 않은 모든 전차를 퇴역하기로 결정했었는데, 그 계획이 수정되었다.
우선 M48계열의 전차만 퇴역하기로 한 것이다.
계획이 수정된 이유에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전차를 교체하기에는 예산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하기는 그 말도 맞았다. 새로운 전차가 개발되기까지 국방부나 군관계자들은 적어도 8―10년을 예상했다.
그들이 그렇게 예상한 이유는 K―2흑표가 그 정도 시간을 두고 개발이 된 것은 물론이고, 미국이나 독일 등도 그 정도 시간을 들여 신형 전차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예산도 그렇게 계획을 하고 책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신형 전차가 일찍 개발이 완료가 되었다.
더욱이 육군이 요구한 성능을 훨씬 상회하면서 말이다.
개발 시기가 1/3 정도로 줄어들어 개발비 역시 감소하였지만, 그와 반대로 아직 전차를 주문하기 위한 예산은 아직 책정조차 되지 않은 상태다.
즉, 계획만 있을 뿐, 예산을 모으고 집행하기까지 아직 준비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개발이 완료된 전차를 전력화 하지 않을 수도 없기에 남은 개발비를 전용하기로 결정을 하였다.
그렇게 전용해 육군이 인도 받을 수 있는 전차의 수량은 200대 정도에 이르렀다.
물론 그 정도로 기존 M48계열 전차 모두를 교체할 수는 없었지만, 휴전선 인근 주요 작전 지역에 배치할 정도는 되었다.
국회에서 신형전차 도입에 대한 예산이 결정될 동안 그 정도로 만족해야만 했다.
너무도 뛰어난 전차가 생각보다 일찍 개발이 되다 보니 나온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이 문제가 천하그룹의 주식 상승에 악제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더욱더 상승 곡선에 불을 지폈다.
그도 그럴 것이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는 엄청난 물건이었다.
생산 비용은 알 수는 없지만 그 가격만도 40억이나 되는 물건이다 보니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는 것은 당연했다.
더군다나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 자체가 작은 찬합 정도의 크기 정도로 작은 공간이 있다면 어디에나 설치가 가능하다고 알려졌다.
그 말은 이번에 생산되는 신형 주력전차에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전차에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군 관계자들에게도 그렇게 알려졌다.
비록 40억 원이라는 비싼 가격이기는 하지만 전차 한 대 가격을 생각하면 그렇게 비싸다고 할 수도 없었다.
만약 전쟁이 발발했을 때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는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M48계열의 전차가 퇴역을 하더라도 플라즈마 발생 장치를 K―1계열 전차에 장착을 한다면 충분히 부족한 화력을 보조할 수 있다.
K―3가 주적으로 생각하는 전차가 T―95전차다.
그런데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들어서면서 러시아의 신형전차인 T―95를 데드카피를 하였다고 하지만 많은 수량을 생산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의 눈을 의식해서다.
비록 데드카피를 해 T―95를 생산했다고 해서 드러내 놓고 사용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예전 Su―27을 데드카피하여 생산한 J―11처럼 운용할 수는 없었다.
J―11은 구소련이 중국에 Su―27을 판매를 하고 반제품 라이센스를 주어 면허 생산을 허락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술이 있는 상태에서 기존의 Su―27과 혼용해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T―95는 그것과 달랐다.
러시아는 중국에 T―95를 판매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이 T―95를 운용한다면 어떻겠는가.
중국이 러시아 몰래 그들의 주력전차에 대한 정보를 빼돌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비록 중국이 러시아처럼 공산국가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두 나라가 친한 것도 아니다.
현대에 같은 이념을 가진 국가라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할 정도로 사이가 나빠지는 것이다.
실 예로 중국과 구소련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몇 차례의 국지전을 하였다.
그 영향으로 구소련이 중국에 무기를 수출하지 않자 중국이 구소련의 무기들을 데드카피를 하였지만 말이다.
아무튼 막무가내인 중국도 많은 숫자의 T―95를 보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육군은 중국이 T―95의 최대 보유 대수를 1,000대 정도로 예상을 하였다.
그래서 육군도 K―3의 보유 대수를 1,000대 정도를 요구한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히 막강한 중국의 전차부대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을 하였다.
중국의 육상 전력이 그 정도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전력이야 한국도 얼마 전 교체된 대전차 무기들이나 공격 헬리콥터로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국방부가 차근차근 준비한 것들이 요즘에 와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더욱이 국방부는 이번 K―3개발에 고무되어 새롭게 계획한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외부에 알리지 않고 천하 컨소시엄에만 의뢰를 하였다.
그것은 예전에 시행하려다 기술 부족으로 실패한 사업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재래식 무기의 계량 사업이다.
사실 대한민국 군이 보유한 무기들 중 성공적이라 발표한 무기들 중 절반정도는 요구 성능에 미치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육군이 북한의 대공 침투를 막기 위해 개발한 대공전차 비룡이다.
방위산업 비리의 대표적인 물건들 중 하나로 꼽히는 비룡은 대공전차에 가장 중요한 레이더의 부실로 해가 떨어진 저녁에는 무용지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협곡이 많은 한국의 지형과는 맞지 않아 낮에도 운용이 쉽지 않다.
이뿐만 아니라 해군의 상륙함도 설계 부실로 인해 근접방어무기체계(CIWS)인 골키퍼를 발사하면 상륙함 갑판을 공격하게 되어 이 또한 문제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리고 대함미사일인 해성과 어뢰인 백상어와 청상어 역시 알려진 것보다 성능이 많이 떨어지는 무기였다.
그래서 국방부에서는 이러한 무기들의 개량을 천하 컨소시엄에 의뢰를 한 것이다.
비록 많은 예산이 들겠지만 엄청난 예산을 들여 생산한 무기들을 썩힐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래서 비밀리에 이를 의뢰하였다.
만약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게 된다면 국방부는 물론이고 현 정부는 많은 비난에 휩싸일 것이 분명했다.
비록 현 정부의 잘못으로 그리된 것은 아니지만, 이전 정부를 승계한 것이 현 정부이니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이러한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이전 비리를 저지른 정부에 비난의 화살을 떠넘긴다면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해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잘못을 저질렀어도 정부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비난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비난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책임소제를 따져 비리를 저지른 당사자를 법에 따라 심판하면 되는 일이다.
그것만이 정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인 것이다.
◈ ◈ ◈
“정 회장님,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는 전략물자로 지정이 되어 외부로 수출을 할 수 없습니다.”
한 남성이 정대한 회장을 보며 그렇게 말을 하였다.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수용하겠습니다.”
천하그룹 정대한 회장은 방위산업청 청장과 면담을 하고 있었다.
그가 방위산업청장을 만나 면담을 하는 이유는 국방부에서 내려온 공문 때문이었다.
공문의 내용은 첫 장은 그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신형전차를 빠른 시일에 인도를 해 달라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초기 인도 분이 무려 200대나 되었다.
내부에서 120억으로 책정이 된 K―3백호를 200대나 주문을 한 것이다.
사실 천하그룹 내에서도 처음 K―3백호를 개발하고 또 선정이 되었을 때 무척이나 기뻐하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일각에서 정부 예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직 준비도 되지 않은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부의 잘못이 아닌 자신들이 너무도 이른 시간에 신형전차를 개발했기 때문에 나온 문제란 것을 알았을 때는 정말 할 말을 잊었다.
신형전차 개발이 빨리 끝나 개발비가 적게 들어간 것이 천하그룹으로서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지금 일신그룹 꼴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현재 일신그룹은 천하그룹을 꺾기 위해 뛰어들었던 차세대 주력전차 개발에서 천하그룹에 밀렸다.
그 때문에 그들이 신형전차 개발에 투입한 개발비는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
일신그룹의 피해는 단순 개발비를 건지지 못한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러한 소식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일신그룹의 관련 기업들의 기업 가치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연일 상종가를 치는 천하그룹에 비해 폭락한 주식 때문에 일신그룹의 기업 가치는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아무튼 기분 좋게 공문을 읽던 정대한 회장은 그 뒷장에 차후 전차 생산에 차질을 빚을 내용을 읽고 이렇게 방위산업청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정대한 회장도 K―3백호의 핵심 장치 중 하나인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그 때문에 그것이 외부로 유출이 되었을 때 얼마나 위험할지 잘 알기에 방위산업청에서 전략물자로 지정을 하고 외부 유출을 막은 이유를 인정했다.
그렇지만 K―3백호의 1차 인도가 끝나고 2차 생산분 인도 시기가 너무도 멀었다.
전차의 판매가는 단순 생산 비용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 가격 안에는 전차의 개발비도 포함이 되어 어느 정도 수량이 판매가 되어야 손익 분기점을 넘어야 흑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천하그룹에서 이번 차세대 주력전차 개발에 투입한 예산을 넘어 흑자가 되기 위해선 600대를 육군에 인도를 한 뒤부터였다.
그것도 정상적으로 인도가 완료되었을 때에 한해서다.
아무리 재무 구조가 탄탄한 천하그룹이라고 하지만 자금의 흐름이 막히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번 사업에서 탈락한 일신그룹이 순순히 자신들의 패배를 받아들이고 앉아 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천하그룹이 대기업이기는 하지만 일신그룹에 비하면 조족지혈.
5위권 안의 그룹과 30위권의 그룹의 차이는 천지차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다.
막말로 일신그룹이 천하그룹의 자금 사정을 악화시킬 방법은 많았다.
비록 지금 경쟁에서 밀린 것 때문에 흔들리고 있다고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마불사(大馬不死) 일신그룹이 천하그룹과 경쟁한 이번 차세대 주력전차 개발로 흔들리지만 곧 정상화 될 것이다.
더욱이 일신그룹은 사업이 실패했을 때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일본 기업들과 손을 잡았지 않은가. 정대한 회장도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
일신그룹이 어떤 기업들과 손을 잡고 컨소시엄을 형성했는지 말이다.
겉으로야 일본의 중견 기업과 손을 잡은 것처럼 발표를 했지만 그것은 늑대가 양의 탈을 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경제에 관한 정보전에 한해서는 국내 재벌 순위 1위의 성삼그룹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천하그룹이다.
그런 정대한에게 일신이 손잡은 일본 기업의 정체는 금방 알려지게 되었다.
이미 일신그룹이 친일본 성향의 기업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이번 컨소시엄을 형성한 면면을 살피던 정대한은 일신그룹이 단순하게 친일 성향의 기업 정도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한순간도 일신그룹에 틈을 보이면 물리게 될 것이 분명했다.
기업이라는 것이 경쟁 상대의 약점을 물어뜯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극우주의 일본 기업과 손잡은 일신에 뒤를 보인다는 것은 웬일인지 위험하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천하 컨소시엄의 일이 별다른 불협화음이 들리지 않게 일을 처리해야만 한다.
그래야 현재 상승세를 타고 예전의 성세를 되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신그룹의 공작으로 천하그룹은 제계 순위가 10계단이나 떨어졌다.
그런데 차세대 주력전차로 천하 컨소시엄의 전차가 선정이 되면서 약진을 하고 있었다.
“저희는 장관님의 약속만 믿고 신형전차를 개발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이렇게 약속을 어기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예산이 안 되는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정대한 회장의 말에 청장도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사실 산업청장의 말이 틀린 말도 아니다.
예산이 없는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렇다고 다른 사업에 계획되어 있는 예산을 돌려 천하 컨소시엄에 넘길 수도 없는 문제 아닌가.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어떻게 말입니까?”
정대한 회장은 방위산업청으로부터 공문이 날아온 뒤 급하게 전체 간부회의를 하였다.
아직 신형전차 도입에 대한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공문이 날아온 것에 대한 대책회의를 하기 위해서다.
◈ ◈ ◈
웅성! 웅성!
“이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맞습니다. 아니, 무슨 예산도 확보하지 않고 기업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인지…….”
회의장에 모인 사람들은 무언가 화가 난 듯 떠들고 있었다.
“모두 조용!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대책을 내놔!”
정대한 회장은 떠들기만 하고 대책에 대한 안건을 하나도 발표하지 않는 이사들을 보며 그렇게 호통을 쳤다.
하지만 자리에 있는 이사들이라고 뚜렷하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물건을 구매해야 할 당사자가 아직 물건 값을 준비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거기에 대고 자신들이 어떻게 대책을 세운다는 말인가?
잠시 회의장 안이 조용해졌다. 괜히 나섰다가 독박을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시간만 잡아먹고 있다가는 더 큰 불호령이 떨어질 것을 잘 알기에 이사들은 현재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앞을 보나 뒤를 보나 꽉 막혀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저…….”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정수현 이사?”
정대한은 현재 천하 디펜스의 이사를 맡고 있는 자신의 손자를 보며 물었다.
“예, 정부에서 받아들일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말인가?”
정수현은 자신의 할아버지이자 그룹 회장인 정대한의 물음에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저희 그룹이 납부할 세금의 일부를 현금이 아닌 현물로 납부하는 것입니다.”
“뭐라고?”
정대한은 자신의 손자의 말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세금을 현찰이 아닌 현물로 낸다는 말이 선뜻 그의 머릿속을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잠시 그 말을 곱씹으며 생각을 해 보았다.
천하그룹이 나라에 납부해야 할 세금이 상당했다.
일 년에 찬하그룹의 총 세금 납부 규모는 5조 5천억 원 정도.
자신들이 납부할 세금 전체를 현물로 처리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 그중 일부만 가능해도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었다.
“음…….”
정수현 이사의 말을 들은 이사들도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정부가 자신들의 제안을 받아들여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다.
다만 정부에 직접 제안을 하기보단 이번 사업의 주체인 국방부를 통해 제안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제안을 정부에서 받아들일까?”
“저희가 직접 정부에 제안을 하기보다는 국방부를 통해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육군에도 저희의 생각을 슬쩍 흘린다면 그들이 더 저희의 입장을 좋게 설명할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살짝 말을 했는데, 할아버지와 주변에 있는 이사들도 반응을 보이자 정수현은 머릿속에 생각한 모든 것을 끄집어내 설명을 하였다.
그런 정수현 이사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눈이 커졌다.
진짜 사람이 달라 보였다. 정수현 이사가 똑똑하기는 하지만 좀 가벼운 사람이었다.
주변의 아첨하는 사람들의 말에 휩쓸리던 이였는데, 어느 순간 사람이 달라졌다.
연이은 프로젝트의 실패로 전전긍긍하던 이가 몇 번의 기회로, 이제는 낙하산이 아닌 정말로 직책에 맞는 그런 위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정대한 회장은 자신의 손자가 언제 저리 컸는지 무척이나 대견했다.
“그래, 정수현 이상의 안건처럼 처리하는 것이 이 시점에서 가장 좋을 것 같군!”
“그렇습니다.”
정대한 회장의 말에 다른 이사들이나 사장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뚜렷한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그런 시도를 해 보는 것도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자신들의 제안을 들어주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일단 자신들의 사업 계획대로 프로젝트를 추진하다 벌어진 일이니 국방부에서도 자신들을 도와줄 것이라 생각하였다.
◈ ◈ ◈
와장창!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온 신원민의 얼굴은 붉다 못해 검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사장님! 진정하십시오.”
보다 못한 비서가 흥분한 신원민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섰다.
그렇지만 그런 비서의 노력에도 잔득 흥분한 신원민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역부족이었다.
“진정?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퍽! 퍽! 퍽!
비서의 진정하라는 말에 고함을 지르고는 들고 있던 골프채로 사무실 집기들을 부셨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무리 흥분한 상태더라도 들고 있던 골프채로 자신을 말리는 비서에게 휘두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실 지금 신원민이 흥분한 것은 요즘 돌아가는 그룹의 사정 때문이었다.
이미 진즉 후계 구도를 구축하고 자신의 경쟁 상대도 아니라 생각했던 신영민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었다.
자신이 차세대 주력전차 개발 사업에 실패를 하자 이때다 싶었는지 신영민이 수작을 부렸다.
더욱이 쥐새끼 같은 신영민이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아버지이자 일신그룹 회장인 신상욱이 자신의 일 일부를 신영민에게 넘기게 했다는 것이다.
한참 집기를 부시고 나니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이것들 좀 치워.”
진정이 되자 어수선하게 늘어진 집기들을 보며 치우라는 지시를 하였다.
“알겠습니다.”
신원민의 비서는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바로 사무실을 나갔다 들어왔다.
그가 밖에 나갔던 이유는 신원민의 지시대로 사무실을 청소할 인원을 부르기 위해서다.
곧 그의 뒤로 비서실 직원 두 명이 들어와 부셔진 집기들을 치우고 또 다른 인원이 들어와 새로운 집기들을 배치하였다.
사무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하게 정리가 되었다.
사무실을 정리한 직원들이 나가고 남은 비서실장은 신원민을 돌아보았다.
또 다른 지시를 기다리는 것이다.
언제나 조용히 신원민이 원하는 것을 착착 챙겨 주는 그였지만, 지금은 가만히 신원민이 뭔가 지시를 할 때까지 조용히 있었다.
오랫동안 신원민을 보필하다 보니 흥분을 가라앉히고 있는 지금이 가장 그가 예민할 때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괜히 이때 잘못 끼어들어 그가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것을 방했다가는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지금 그가 비서실장의 자리에 앉기 전 선임은 그런 신원민의 성격을 알지 못하고 과잉 충성을 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전임자의 잘못은 그저 신원민이 뭔가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방해했다는 것뿐이다.
사실 그것도 전임자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시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 그것을 보고하려고 하는 때 그의 생각을 방해한 것이다.
그때도 신원민 사장이 싫어하는 신영민 일신제약 사장과의 문제로 얽혀, 신상욱 회장에게 꾸지람을 들은 뒤였다.
그랬기에 비서실장은 자신의 전임자가 저지른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조심을 했다.
그리고 그런 비서실장의 생각은 참으로 현명한 선택이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던 신원민은 이번 일이 벌어지게 된 원인을 분석하고 있었다.
‘감히 본사에 발도 붙이지 못했던 그놈이 어떻게 해서 회장실에 앉아 있던 것이지?’
조금 전 본사 회장실에 들어갔던 때가 생각난 신원민은 눈빛이 무척이나 차가워졌다.
만약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아마 신원민은 지금 살인을 벌일 수 있을 것처럼 눈빛에 살기가 충만하였다.
“넌 이번 컨소시엄에서 그만 손을 떼 거라!”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비록 저희가 개발한 것이 선택이 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다른 나라에 넘긴다면 충분히 이번에 손해를 본 것들을 만회할 수 있습니다.”
“그걸 방위산업청에서 그냥 두고 볼 것 같아?”
“넌 조용히 있어! 어디서 주제도 모르고 끼어드는 거야!”
“왜? 내가 못할 말했나? 나도 엄연히 대 일신그룹의 계열사 사장이라고. 그 정도는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아니야?”
“영민이 말도 맞는 말이다. 그룹 사장단 일원 중 한 명인 영민이 가 못할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또 틀린 말도 아니다. 아니, 정부에서 허락을 하더라도 그들이 응하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에 판매를 할 수도 없다.”
“아버지! 그건 염려하지 않아도 돼요. 미쓰비 중공업 쪽에 제 인맥이 있어서 잘만 이야기 하면 가능할 거예요.”
“너에게 그런 인맥이 있었냐?”
“네, 미국에 유학을 할 때 동기 중 한 명이 바로 미쓰비 가문의 사남입니다. 현재 미쓰비 중공업 후계자 선정 문제로 좀 힘들어 하는데, 저희가 조금 힘을 실어 준다면 저희 요구를 들어줄 겁니다. 이번 선정 탈락으로 그들도 상당한 손해를 봤으니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돌파구를 찾고 있을 것입니다.”
“허허, 마냥 어리게만 봤는데, 그런 인맥도 가지고 있었구나! 그래, 네가 그 문제를 맡아 봐라!”
“감사합니다, 아버지!”
“여긴 회사다. 아버지라고 하지 말고 회장님이라고 불러.”
“예, 죄송합니다. 회장님.”
“그래, 그래, 그 문제는 영민이가 맡고 신원민 사장은 그 문제는 여기 일신제약 신 사장에게 맡기고 다른 일봐!”
신원민은 한 시간 전 본사 회장실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아버지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짓던 자신의 배다른 동생인 신영민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까 전처럼 흥분하지는 않았다.
한차례 화를 풀었기 때문인지 지금은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무리 우리가 개발한 전차가 탈락을 해도 방위산업청에서 쉽게 전차의 설계도를 외부에 유출하는 것을 허락할 리가 없다.’
신원민이 생각하기에 분명 방위산업청에서는 절대로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잘못되어 중국이나 북한에 자신들이 개발한 전차의 설계도가 넘어가게 된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기껏 전차 부문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차이를 순식간에 좁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신원민은 자신들이 개발한 전차가 절대로 천하 컨소시엄에서 개발한 전차보다 그리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라는 생각지도 못한 오버 테크놀로지 때문에 탈락한 것이지, 그것만 없었다면 자신들이 개발한 전차가 대한민국 주력전차로 선정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말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었다.
사실 일신 컨소시엄에서 개발한 전차와 천하 컨소시엄에서 개발한 전차를 비교했을 때,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제외한 채 비교해 보면 그렇게 많은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주포의 화력에서는 천하 컨소시엄이 개발한 백호가 조금 더 우수하지만 차체 방어력만 놓고 본다면 일신 컨소시엄에서 개발한 대호가 더 단단하였다.
물론 그것은 전면장갑에 한해서이지만 말이다.
일신 컨소시엄에서 개발한 전차 대호는 장갑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신소재를 개발하기는 하였지만 그 무게가 기존의 세라믹장갑보다 더 무거워졌다.
더욱이 T―95의 무지막지한 화력을 막기 위해선 더욱 두터운 장갑을 채택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T―95의 화력을 막기 위해 두터운 장갑을 채택했는데, 그렇게 되면 전차의 중량이 너무도 무거워졌다.
너무 무거워진 전차의 중량으로 인해 혼타에서 개발한 2,200마력짜리 엔진도 육군이 요구한 기동성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일신 컨소시엄의 연구원(미쓰비 중공업)들은 전차의 중량을 줄이기 위해 측면 장갑과 후면 장갑의 방어력을 과감하게 포기를 하였다.
괜히 장갑 방어력과 기동성,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이도저도 안 되기 때문에 전차전에서 가장 노출도가 많은 전면 장갑만 방어력을 기준에 맞추고, 측면과 후면은 비교적 노출이 적으니 전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장갑의 두께를 줄여 전차의 전체 중량을 줄이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 선택은 최선의 선택이었다.
신형 세라믹 장갑을 전면에 집중을 하고 측면과 후면을 포기한 결과 상당한 무게를 줄일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대호는 강력한 엔진으로 상당한 기동성을 가지게 되었다.
신원민은 처음 대호가 완성이 되었을 때 자신했다.
자신들이 만든 대호가 이번 차세대 주력전차에 채택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지만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라는 말도 되지 않는 것 하나로 탈락했다.
대호에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설치만 한다면 천하 컨소시엄이 개발한 백호가 차세대 주력전차로 채택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 일신 컨소시엄이 개발한 대호가 선정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얻기 위해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 여자나 후리고 다니는 놈이 자신의 계획을 망쳐 버린 것이다.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만 손에 넣는다면 그룹의 힘을 동원해 로비를 한다면 이번 주력전차 선정의 결과를 뒤집을 수도 있었다.
이렇게까지 생각을 하니 가라앉았던 화가 다시금 올라오는 것 같았다.
물론 신영민의 말도 어느 정도 맞았다.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탈락한 기종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을 하였다.
정상적으로는 대호를 개발하기 위해 들어간 개발비를 되찾을 길이 없었다.
신형전차를 비록 기종 선정에서 탈락을 했다고 설계도를 외부로 유출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나라는 없었다.
더욱이 컨소시엄을 형성한 미쓰비나 혼타에서 쉽게 허락할 리도 없었다.
물론 개발비로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 것을 회수하기 위해서 허락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도 대호의 설계도가 중국이나 북한에 들어가는 것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현재 날로 팽창하고 있는 중국과 센카쿠 열도를 두고 영토분쟁 중이니 말이다.
그런 중국에 대호의 설계도가 들어간다면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 주는 겪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신원민은 갑자기 뭔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신원민은 그동안 천하 컨소시엄에서 개발한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얻은 뒤 그룹의 힘을 동원해 자신들의 전차에 탑재를 한 뒤 판세를 뒤집으려고만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이 그것을 자신들도 사용할 수 있게 로비를 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어차피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는 전차의 성능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장치이니 이것을 거론해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를 자신들도 사용하게 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결과를 뒤집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방면에 분포되어 있는 자신들의 동조 세력에 로비를 한다면 충분할 것도 같았다.
이런 생각이 들자 이복동생인 신영민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김 실장!”
“예?”
“황준표 의원에게 연락해서 오늘 좀 만나자고 약속 잡아!”
“알겠습니다.”
비서실장은 신원민의 지시에 어떤 반문도 없이 바로 대답을 하였다.
그런데 신원민이 말한 황준표 의원은 여당의 실세로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이었다.
다만 여당 의원이면서도 현 대통령인 윤재인과는 관계가 좋지 못했다.
그건 황준표 의원이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친기업인 정책을 우선으로 하는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미명 아래 과도하게 대그룹에 유리한 정책들을 채택하는 데 앞장선 인물이다.
그러다보니 대기업의 CEO들에게 황준표는 든든한 동지이지만, 여러 가지 정책으로 대기업이 사업 확장에 제동을 거는 윤재인 대통령은 꺼려지는 정치인이었다.
◈ ◈ ◈
웅성! 웅성!
청담동의 한 카페는 지금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겪고 있었다.
유명 연예기획사가 몰려 있는 거리라 이곳에 많은 카페들이 들어서 있었다.
분위기도 좋고 또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보기 위한 팬들이 자주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청담동의 명물로 카페거리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이 카페만은 평소 손님이 별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카페거리에 위치해 있기는 하지만, 카페가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외각에 자리하고 있어 연예인도 잘 찾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그나마 카페에서 판매하는 음료나 메뉴들이 다른 가게에 비해 저렴했기에 돈이 부족한 학생 팬들이 가끔 찾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러던 카페에 대박이 터졌다.
장사도 되지 않아 한 사람이 카페 이층을 두 시간 전세를 내겠다고 했을 때 흔쾌히 수락을 하였다.
이달 가게세가 걱정이었는데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에 승낙을 했는데, 그게 참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그저 비싼 월세 얼마를 벌 목적이었는데, 전세를 낸 손님의 정체가 바로 대한민국 최고의 유명인사인 파이브돌스였던 것이다.
처음 가게에 전세를 낸 사람은 파이브돌스가 아니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 사람과 함께 온 손님이 바로 파이브돌스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파이브돌스가 카페에 나타났다는 소문이 났는지 지금 일층 매장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가게 문밖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빈자리가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정도였다.
유명 연예인이 나타났다고 예전처럼 팬들이 막무가내로 민폐를 끼치는 경우는 이젠 거의 찾아볼 수 없었기에 가게 주인은 홀과 창문으로 보이는 가게 밖의 풍경에 흡족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미스터 양, 어떻게 됐어? 준비 아직 안 끝났어?”
이곳 카페 사장인 진영은 파티시에인 양준영에게 소리쳤다.
진영이 양준영에게 소리친 이유는 바로 그가 준비하고 있는 케이크와 쿠키들이 바로 이층에 있는 파이브돌스과 그 일행이 주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티시에인 양준영에게 말을 하면서 그의 머릿속으로는 파이브돌스가 가고 난 뒤 오늘의 호황을 어떻게 더 누릴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으로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런 진영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동안 청담동 카페거리에 입점을 하면서 돈을 벌 것만 같았던 그에게 벌이는 생각보다 못해 그동안 많은 돈을 까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심차게 이곳 청담동 카페거리에 가게를 오픈하고 또 제대로 배운 파티시에를 고용하면서 뒤늦게 입점을 하는 것이라 조금 과하게 투자를 했다.
그런데 자리 때문인지 생각보다 운영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취급하는 음료나 파티시에의 내놓는 케이크나 쿠키들이 못하지 않았다.
아니, 이 근방에 자리한 동종 업종의 가게들보다 더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메뉴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위치가 문제였다.
위치가 위치이다 보니 고급메뉴와 저렴한 가격에도 매상은 월세를 내기에도 빠듯했으니 진영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던 차에 파이브돌스처럼 유명인사가 자신의 가게를 찾고 또 장시간 머물고 있으니 어떻게든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을 하였다.
진영이 아무리 다그쳐도 파티시에인 양준영은 마치 장인이 작품을 만들듯 이층에서 주문한 케이크에 장식을 하나 하나 올렸다.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완성이 되니 너무 재촉하지 마세요. 저도 바빠요.”
양준영은 케이크에 마지막 장식을 올리며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다 되었으니 가지고 가세요.”
“너! 일단 이거 가져다주고 두고 보자!”
진영은 양준영의 뻔뻔한 말에 화가 나는 듯 두고 보자는 말을 하고 얼른 그가 완성한 케이크를 들고 이층으로 향했다.
그런데 양준영의 자부심 섞인 말마따나 그가 완성한 케이크는 하나의 예술이었다.
케이크 위에 올려진 데코레이션 하나, 하나가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자리에 자리하고 있어 보기에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진영이 케이크를 들고 홀을 지나 이층으로 향할 때 홀에 있던 손님들도 파이브돌스가 어떤 주문을 했는지 돌아보고는 탄성을 질렀다.
“와!”
그런 손님들의 탄성에 케이크를 만든 준영은 물론이고 이층으로 향하는 진영 또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작품과 자신의 가게에서 제공하는 케이크에 대한 손님들의 반응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리고 그건 이층에 있던 파이브돌스의 반응에 최고조에 올랐다.
“와! 이게 우리가 주문한 초코무스 케이크이야?”
파이브돌스의 막내 루나가 눈을 반짝이며 진영이 들고 온 케이크를 보고는 그렇게 소리쳤다.
“그러게 그냥 먹기 아까워 보인다.”
루나에 이어 다른 멤버들도 먹기 아깝다고 떠들고 있을 때 그런 멤버들의 생각에 초를 치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 오늘 컴백했다. 너무 많이 먹으면 티 난다. 적당이들 먹어!”
“알았어요.”
“알았어, 누가 리더 아니랄까 봐, 여기서 그러기냐?!”
“그래, 누나. 솔직히 누나들 너무 말랐어. 좀 먹고 살 좀 찌워야 더 보기 좋아.”
“옳소!”
“그래, 수한이 말이 맞아! 우린 너무 말랐어! 아프리카 난민처럼…… 흑흑흑!”
수정이 고열량의 초코무스 케이크에 정신을 못 차리는 멤버들에게 경고를 하자 여기저기서 저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수한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다른 멤버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었다.
“오! 수한이를 국회로!”
급기야 자신들의 말에 동조해 주는 수한을 국회로 보내자는 말까지 나왔다.
“하하하하.”
“호호호호.”
루나의 장난스러운 말에 수한은 급기야 큰 소리로 호탕하게 웃었고 루나의 과장된 표현에 다른 멤버들도 웃었다.
◈ ◈ ◈
“의원님, 여깁니다.”
신원민은 약속 장소로 잡은 청향의 실내로 들어오는 황준표 의원을 입구에서부터 맞으며 그를 안내하였다.
여당의 원내총무를 맡고 있는 황준표 의원이기는 하지만 예전 같으면 이렇게까지 예우를 하지는 않았다.
일신그룹의 후계자란 자리는 그만큼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현재 그의 위치가 흔들리고 또 자신이 부탁해야 하는 자리다 보니 신원민이 먼저 고개를 숙인 것이다.
“어이쿠, 신원민 사장님께서 여기까지 나와 절 맞아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신원민을 보며 황준표 의원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마주 인사를 하였다.
결코 싫은 내색이 아니었다.
신년 초만 해도 황준표는 일신그룹 회장 사택에 인사를 갔었다.
일신그룹이 일본 계열이고 또 일신그룹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는 황준표다.
그 또한 일신그룹에서 후원하는 장학생이었기도 했다.
황준표처럼 일신그룹의 후원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도 상당했다. 또 국회뿐 아니라 법조계에도 상당수의 일신 장학회 출신 인사들이 대거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보니 이들은 동질성을 느끼며 알게 모르게 서로 상부상조를 하며 서로를 끌어 주고 있었다.
특히 국회의원인 황준표와 같은 이들은 자신들의 든든한 자금줄이자 백그라운드인 일신그룹이 있음으로써 당내 입지가 탄탄해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새해가 되면 부모 산소보다 먼저 찾는 곳이 일신그룹 회장의 사가(史家)였다.
그러니 차기 일신그룹 회장으로 이미 낙점된 신원민을 여당의 원내총무라고 쉽게 볼 수는 없는 위치다.
평소 자신보다 어린 나이에 일신그룹의 후계자란 이유로 거들먹거리던 신원민이 자신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황준표는 감회가 새로웠다.
“예서 이럴 것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이들이 만나는 장소인 청향은 고급 음식점으로 본채와 두 채의 별채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신원민은 여당 원내총무인 황준표와 은밀한 대화를 하기 위해 본채와 떨어진 별채를 예약하였다.
별채는 다섯 개의 룸을 가진 본채와 다르게 은밀한 만남을 원하는 신원민과 같은 손님을 위해 단 하나의 룸만 있었다.
더욱이 별채는 본채와 그리고 또 다른 별채와도 거리가 떨어져 독립적으로 자리하고 있어 은밀한 만남을 원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었다.
다만 본채와 다르게 별채는 이러한 특성 때문에 예약을 하기 위해선 상당한 비용을 요구하였다.
그렇지만 재벌인 일신그룹의 후계자인 신원민에게 그 정도는 그리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었다.
어차피 업무 추진비로 처리하면 되는 일이기에 부담 가질 필요도 없었다.
아무튼 별채로 이동한 신원민과 황준표는 청향에서 나오는 고급스런 한정식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그런데 공사가 다망하신 신원민 사장님이 어쩐 일로 절 보자고 하신 겁니까?”
비록 자신보다 십여 살이나 어린 신원민이지만 함부로 대할 수 없기에 황준표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 황준표 의원의 말에 신원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였다.
“황 의원님도 현재 제 처지를 알고 있으실 겁니다.”
“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도와달라니요. 제가 일신그룹의 후계자인 신 사장님을 도울 일이 있을까요?”
무턱대고 도와달라는 신원민의 말에 황준표는 조금 당황하며 대답을 했다.
요즘 신원민 사장의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그가 도와줄 일이 있을지는 알 수가 없었다.
비록 자신이 여당의 원내총무라고 하지만 현재 일신그룹이 처한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없었다.
예전처럼 무턱대고 기업이 어렵다고 국가예산을 함부로 지원해 줄 수가 없었다.
만약 그렇게 했다가는 같은 여당 의원을 지탄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런 황준표 의원의 대답에 신원민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오늘 이 자리를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천하 컨소시엄과 저희 일신이 육군의 차세대 주력전차 개발 경쟁을 하다 밀린 것은 의원님도 잘 아실 겁니다.”
“예, 천하에서 엄청난 것을 만들어 냈더군요.”
황준표는 신원민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대답을 하였다.
신원민은 그런 황준표 의원의 말에 살짝 인상을 구기다 다시 말을 하였다.
“천하에서 만든 전차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는 장치 하나가 대단한 것이지요.”
신원민은 애써 자신들이 만든 대호와 천하에서 개발한 백호를 비교하는 황준표 의원의 말을 정정해 주며 말을 이었다.
“그것만 저희가 개발한 대호에도 부착할 수만 있다면 천하의 그것보다 더 뛰어난 전차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공정한 경쟁을 위해 전차의 성능이 아닌 부속 장치로 인한 선정은 공정하게 심사를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원민의 이야기를 들은 황준표 의원의 눈이 반짝였다.
지금 신원민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어떤 소리인지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만약 이것을 도와주신다면 그에 합당한 보답을 하겠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복동생인 신영민 때문에 일신그룹 후계자란 자리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에 신원민은 그렇게 황준표를 보며 제안을 하였다.
그리고 신원민의 제안을 들은 황준표의 눈빛이 더욱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