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루나의 키스
ADD의 화포 시험장에서의 방어력 시험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차체에 부착한 실드 마법 발생 장치는 아주 훌륭하게 작동을 하였다.
비록 전차 포탄 세 발에 깨지기는 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한 번에 전차 포탄 세 발을 맞지 않으면 승무원들이 안전하다는 것이니 실드 마법 발생 장치는 엄청난 것이다.
더욱이 실험은 전투 수칙에 나온 교전거리인 2㎞가 아니라 그 절반인 1㎞에서의 피격 실험이지 않은가.
만약 정상적인 전투 교전 거리에서의 시험이라면 세 발이 아니라 더 많은 포탄을 견딜 수 있다는 말이었다.
수한은 실드 마법이 자신의 예상보다 더 뛰어난 성능을 보이자 준비한 다른 것들도 실험을 하였다.
하지만 리버스 그레비티 마법은 수한의 예상한 정도의 효과만 보였을 뿐이다.
사실 실드 마법이 예상보다 더 좋은 결과를 보였기에 역중력 마법도 혹시 실드 마법처럼 예상보다 더 좋은 결과를 보이지 않을까, 기대를 하였지만, 어찌 된 것인지 역중력 마법은 그렇지 않았다.
똑같은 등급의 옥에, 같은 개수를 사용해 마법진을 만들었음에도 결과는 다르게 나왔다.
그것을 보며 지구에서의 실드 마법과 역중력 마법은 뭔가 다르게 작용을 한 것이라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역중력 마법을 적용해 장갑을 더 두텁게 무장을 한 차체도 그리 나쁜 결과를 보였던 것만은 아니다.
그것도 육군의 장갑 방어력 요구에 충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
즉, 둘 다 최초 목적은 충족한 것이다.
다만 실드 마법을 적용한 쪽이 더 결과가 좋았을 뿐.
다만 시험을 마치고 수한이 장치의 남은 마나 잔량을 확인한 결과, 실드 마법을 적용한 장치의 마나 잔류 량이 역중력 마법을 실행한 장치보다 마나의 소모가 세 배나 많았다.
수학적으로 보면 실드 마법을 사용한 장치가 세 발을 막고, 세 배의 마나를 소비한 것이니 같은 것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효용성 면에서 실드 마법 쪽이 더 효용성이 뛰어났다.
그 이유는 실드 마법은 교전 시에만 사용하고 평상시에는 꺼 둘 수 있다.
그 말은 옥에 들어 있는 마나를 소비하지 않고 보전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역중력 마법이 적용된 장치는 그렇지 않다.
역중력 마법으로 가벼워진 만큼 장갑을 더 보강을 하였기에 차체의 무게가 늘어나게 되었다.
그것을 운영하기 위해선 평상시에도 계속해서 차체에 역중력 마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역중력 마법을 적용한 장치를 차체에 적용하게 된다면 옥에 담긴 마나를 계속해서 소비를 한다는 말이고, 그 말은 장치의 수명이 실드 마법을 적용한 장치보다 짧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경제적인 관점에서 역중력 마법을 적용한 장치보다는 실드마법을 적용한 장치가 더 뛰어난 것이란 말이 성립된다.
그렇지만 수한은 애써 만든 역중력 마법 발생 장치를 이대로 사장시키기에는 너무도 아까웠다.
수한이 이렇게 자신이 만들어 낸 마법 발생 장치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인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또 다른 곳에서는 수한이 만든 실드 마법 발생 장치를 생산하기 위해 고심을 하고 있었다.
◈ ◈ ◈
“정수현 이사! 정 박사가 요구한 것은 어떻게 되었나?”
천하 디펜스 내 회의장에는 회장인 정명환을 비롯한 임원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룹 최대 프로젝트인 XK―3개발이 가시화 되면서 연일 회의를 하고 있었다.
더욱이 이들은 자신들이 개발하고 있는 전차가 대한민국의 차세대 주력 전차로 선정이 될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미리 XK―3란 명칭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지금 회의를 하는 주제는 바로 수한이 이 주 전 선보인 실드 마법 발생 장치를 생산하기 위한 설비를 갖추는 문제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처음 국방부에서 차세대 주력 전차 개발 발표를 하고 사업에 뛰어든 천하 디펜스가 2년여 만에 설계를 완성하고 프로토 타입을 만들어 낸 것은 참으로 엄청난 업적이었다.
사실 전차 개발이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현 대한민국 육군의 주력 전차인 K―2흑표만 해도 1995년 7월부터 기초연구가 시작되었고, 2003년에 정식으로 개발에 착수하였다.
흑표가 8년이 걸렸는데, 천하 디펜스에서는 국방부에서 연구에 들어간 2년여 만에 연구가 끝나 프로토 타입을 조립하고 있으니 이게 얼마나 빠른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사실상 거의 완성형에 가깝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프로토 타입은 그저 운용 시험을 거쳐 육군이 보다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성능을 조절하는 것에서 끝날 것이 분명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지만 아무튼 천하 디펜스에서는 프로젝트 책임 연구원인 수한이 미흡했던 방어력을 획기적인 발명품으로 개발을 하자, 수한과 계약을 통해 천하 디펜스에서 그것을 생산할 수 있는 독점권을 사들였다.
수한은 실드 마법 발생 장치를 절대 특허 신청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그것은 특허를 낸다고 해서 영원히 그 기술을 보호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특허를 내려면 마법 발생 장치의 작동 원리를 어느 정도 공개를 해야만 하는데, 지구에는 마법이란 것이 없었다.
그러니 그것을 과학적으로 설명을 할 수가 없다.
아니, 설명을 한다고 해도 수한의 설명을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정답이다.
이런 이유로 수한은 마법 발생 장치를 누가 복제를 한다고 해도 놔둘 것이다.
어차피 자신이 마법을 활성화 해 주지 않으면 작동이 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런 마음을 먹은 것이기도 하다.
아무튼 수한은 둘째 큰아버지이며 천하 디펜스의 회장인 정명환이 자신이 만든 실드 마법 발생 장치에 대한 독점생산에 대한 말을 꺼내자 흔쾌히 허락을 하였다.
물론 그에 따른 소득 배분은 천하 디펜스와 그 간에 반반으로 하였다.
기업과 개인의 거래에서 그건 너무나 부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수한이 일일이 활성화 해 주지 않으면 마법 발생 장치는 그저 옥을 쇠로 된 상자에 넣은 물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처음 이런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혈육은 혈육이고 계약은 계약인 것이다.
수한은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척이나 많았다.
어차피 그에게 가족이란 몇 번 보지 못한 친척들이 아니라 자신을 이 세상에 환생하게 해 준 부모님, 그리고 그의 누나와, 납치된 자신을 데리고 탈출해 키워 준 의붓어머니 최성희와, 할아버지가 되어 준 혜원이다.
물론 친할아버지인 정대한이나 큰아버지들, 친척들에게 아주 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한 자신이 하려는 꿈을 뒤로 미루면서까지 그들에게 유리하게 계약을 할 정도로 정이 깊은 것도 아니다.
어린 시절 의붓 할아버지인 혜원으로부터 한민족을 지켜 온 지킴이들의 삶에 대하여 들으면서 수한은 환생 전 로메로 왕궁 지하에서 죽기 전 다짐을 상기하였다.
그때부터였다. 한민족을 지켜 온 지킴이들의 정신을 계승하고 그 꿈을 꼭 이루고 말겠다고 다짐한 것은.
그렇기 위해선 많은 돈이 들어간다.
어린 수한이었지만 정신력만은 이미 의붓 할아버지인 혜원보다도 월등했다.
자신의 마법과 이 세상의 과학이란 것을 접목하면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의붓 할아버지인 혜원이 죽기 전 그 꿈을 이뤄 주고 싶었지만, 세상은 수한의 생각처럼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비록 마법이 없는 세상이지만 마법 못지않은 과학이 대신하고 있었다.
수한은 그래서 과학이란 것을 알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그렇지만 이 과학이란 것도 공부를 하면 할수록 어렵고 또 깊이가 있었다.
자신이 전생에 마법의 많은 분야 중 생명에 관한 마법을 파고들었듯 과학도 여러 분야가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나라를 지키는 무기에 관한 공부를 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순간 벽에 부딪혔다.
아무리 대마도사의 경지와 위자드 급의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너무도 생소한 과학은 그만큼 어려웠다.
처음부터 익혀야 할 것이 너무도 많았다.
차라리 전생의 기억이 없었다면 익히기 더 쉬웠을지도 모르겠지만, 수한은 불행인지 아니면 다행인지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생의 사고관이 수한이 이곳의 학문을 익히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모든 것을 전생의 사고를 기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마법사적인 끝없는 끈기로 극복을 하고 그 분야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과정에서 수한은 많은 특허를 취득하였다.
아무튼 이런 관계로 천하 디펜스는 수한의 실드 마법 발생 장치를 생산하기 위해 공장 부지를 마련하고 시설을 갖추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사실 천하 디펜스가 개발한 전차의 핵심은 다른 것이 아닌 이 실드 마법 발생 장치이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으로 화력은 구현할 수 있는데, 육군이 요구한 방어력은 이 실드마법 발생 장치가 아니면 답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명환 회장이 생각하기에 이 장치의 쓰임은 무궁무진했다.
전투기나 군함은 물론, 주요 시설에 이것을 가져다 두면 적의 공격에 안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크기가 전차와 차이가 있어 적용을 하기 위해선 조금 더 연구를 해 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부지는 정대한 총회장님 명의로 되어 있는 과천의 땅 15만 평을 매입하여 공사가 들어갔으며, 공장 외벽이 만들어지면 주문한 설비가 들어갈 것입니다.”
정명환 회장은 자신의 아들이자 회사 이사인 정수현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다 또 다른 것을 물었다.
“그럼 언제쯤이나 제품이 나올 것 갔나?”
“예, 현재 진행되는 공정률을 보면 설비 완료까지 이 주가 소모되고, 또 재료 구입과 정 박사가 말한 상질의 옥을 확보하는 것까지 계산을 하면 한 달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정수현은 천하 디펜스 회장인 자신의 아버지의 질문에 테블릿을 두드리며 무언가를 계산하는 듯하다 답을 하였다.
그런 아들의 모습에 정명환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한 달 뒤면 그것이 나온단 말이지?”
“아닙니다, 정정 하겠습니다. 한 달 뒤에야 제품 생산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그것과 그것이 무슨 차이지?”
정명환 회장은 한 달 뒤 제품 생산에 들어가는 것과 생산이 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본 플라즈마 발생 장치의 크기는 그리 크지도 않았다.
가로 세로 30㎝정도 작은 상자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뿐만 아니라 내부 구조도 무척이나 단순해 언뜻 보기에는 단순히 어떤 문양에 옥을 배치한 것이었다.
현대 기술로 그 정도는 몇 시간 안 되어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게 정수한 박사의 이야기로는 그렇게 제품을 만들어도 자신이 모종의 조치를 하지 않으면 장치가 정상 작동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정수현은 수한이 만든 장치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알 수가 없었기에 그저 수한이 들려준 이야기를 자신의 아버지에게 보고할 뿐이다.
“흠…….”
아들의 대답을 들은 정명환은 낮게 신음을 흘렸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으로 자신의 턱을 살짝 문질렀다.
그것은 정명환 회장이 뭔가 생각을 정리할 때 하는 버릇이었다.
한참을 말없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던 그는 뭔가 생각난 것이 있는지 눈이 동그래졌다.
‘아! 그래서 특허를 신청하지 않겠다고 했던 것이구나!’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정리하다 이 주 전 계약을 할 때 자신의 조카인 수한이 무엇 때문에 특허를 신청하지 않겠다고 했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작동 원리를 자신만 알고 있다면 굳이 특허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불법 복제를 한다고 해도 장치가 작동을 하지 않는데 그만한 보안이 어디 있겠는가.
정명환 회장도 특허가 자신의 지적 재산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특허가 있다고 해서 모두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현대 사회도 야생의 밀림처럼 약육강식의 법칙이 적용이 되는 사회이다.
힘 있는 자는 어떤 짓을 하던 제재를 받지 않는다.
손해를 보고 피해를 보는 대상은 언제나 상대적으로 약자들이었다.
성삼 전자와 파인애플사의 휴대폰 특허 소송만 해도 그렇다.
똑같은 특허 침해이지만, 한국에서야 성삼의 위상이 절대적이지, 전 세계적으로 보면 그렇지도 않다.
더욱이 한국 기업인 성삼 전자와 다르게 파인애플사는 강대국 미국의 기업이다.
특허권 소송에서 성삼 전자가 승소한 것도 있고, 또 파인애플사가 승소한 것도 있다.
하지만 그 판결의 결과는 참으로 대조적이었다.
두 판결에 특허 침해 보상금 차이는 참으로 천문학적인 차이가 있었다.
파인애플사가 성삼 전자의 특허를 침해한 건에 대해선 한국 돈으로 몇 억 원 되지 않는 보상금을 판결한 반면, 성삼 전자가 침해한 특허에 관해선 엄청난 금액을 판결했던 것이다.
겨우 디자인이 조금 유사하다는 이유로 그런 판결을 내린 법원의 판결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더욱이 이 특허라는 것도 그렇다.
똑같이 복제만 하지 않고 설계를 살짝 비틀어 사용하면 특허 소송에서 빗겨 갈 수 있었다.
물론 이것도 힘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이나, 미국이라면 충분히 억지를 부릴 수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조카가 개발한 이 플라즈마 실드 발생 장치는 본인이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그저 잘 만들어진 장식품일 뿐이라는 소리에 정명환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야 깨닫게 된 정명환은 자신의 조카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알게 되었다.
“그럼 회의는 이만 이것으로 마치기로 하고…… 참! 연구소와 연구원들의 경호는 어떻게 하기로 했나?”
정명환은 얼마 전 그룹 총회장인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내려온 지시가 생각나 물었다.
“예, 그것은 천하 가드의 이종찬 사장님께 협조를 구했습니다. 현재 천하 가드는 천하 엔터와 개인 경호 의뢰로 파견 나간 경호원들을 뺀 모든 인력을 저희 연구소와 연구원들의 경호에 투입하기로 계약을 하였습니다.”
천하 디펜스 사장이자 정명환 회장의 사촌인 정명구가 대답을 하였다.
정명구 사장의 대답을 들은 정명환은 뭔가 찜찜한 기분에 인상을 찡그렸다.
대한민국 최고의 경호 회사인 천하가드에 의뢰를 하였다고 하였는데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뭔가 큰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그런 예감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음…… 정 사장, 내 예감이 좋지 않아. 그러니 천하 가드 이 사장에게 연락해 조금 더 신경을 써 달라고 해. 난 아버님께 찾아가 가문의 무력대를 파견해 달라고 부탁할 테니.”
굳은 표정으로 사촌인 정명구에게 지시를 내린 정명환은 너무도 불길한 예감에 이대로 천하 가드에만 연구원들의 안전을 맡겨 둘 수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위험한 분야에서 일을 해서 그런가. 정명환의 예감은 참으로 잘 맞았다.
예감이 좋지 않을 때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사고가 발생하였다.
그리고 정명환은 이런 자신의 육감을 믿고 조심을 하였기에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래전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을지도 몰랐다.
군수 업체를 운영하다 보면 각종 사건사고가 많았는데, 그중에서 납품 비리가 참으로 성행했다.
경쟁 업체의 테러나 커미션을 요구하는 부패한 군인들의 위협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겪었다.
이럴 때마다 정명환은 어떤 느낌을 받았다.
차갑고 음습한 기운이 그의 코끝과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던 것이다.
아무튼 불길한 예감에 정명환은 연구원들의 경호에 각별히 신경을 쓰라는 말을 하고 회의장을 나갔다.
◈ ◈ ◈
루나는 방송 스케줄로 방송국에 왔다.
오늘은 다른 때와 다르게 멤버들과 함께 방송국에 온 것이 아니라 개인 스케줄로 혼자 방송국에 온 것이다.
벌써 루나가 방송에 데뷔한 지 7년차에 들었다.
그러다 보니 그녀도 그룹 활동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방송에 출연하는 횟수도 늘었다.
그룹으로는 이미 대한민국 정상에 선 지도 몇 해다.
정상에 선 그녀는 아이돌그룹 멤버로서 개인적으로도 자신의 능력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래서 솔로 앨범도 내고 또 뮤지컬에 도전을 하며, 또 쇼 프로그램 MC와 드라마에도 출연하는 등 다방면에 끼를 뽐내고 있었다.
그런 루나의 노력이 통했는지 그녀가 출연한 뮤지컬이나 방송에서 호평을 받았다.
물론 초기에는 언제나 그렇듯 악평도 많았지만 그것에 좌절하지 않고 충고라 생각하며 더욱 노력을 하였다.
그러다 보니 그녀의 노력을 알아본 사람들이 하나둘 그녀에게 관심을 가져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프로그램 메인 MC로 발탁이 되었다.
그동안 루나는 MC로 발탁된 전적이 몇 번 있었지만, 모두 보조 MC 내지는 고정 게스트 정도에 머물렀었는데, 오늘은 메인 MC가 되어 쇼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다.
루나는 자신이 메인 MC가 된 것을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멤버들이야 함께 살다 보니 회사에서 전화가 왔을 때 함께 들어 알고 있다.
멤버들이 아닌 다른 사람 중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자랑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루나는 자신의 대기실에 들어와 고민을 하다 전화기를 들었다.
“지금 뭐해?”
전화를 건 상대에게 질문을 하였다.
“나 오늘 기쁜 일 있는데, 축하 좀 해 줘!”
전화를 받은 상대가 기분이 나쁘지 않음을 감지한 루나는 자신이 메인 MC가 된 것을 자랑하기 시작하였다.
참으로 뻔뻔한 말이었지만 루나는 태연하게 상대에게 그것을 요구하였다.
“두 시간이면 끝나니, 나 저녁 사 줘!”
급기야 그녀는 상대방에게 다짜고짜 저녁을 사 달라 말까지 하였다.
“약속한 거다.”
통화 상대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26살이나 된 처녀가 마치 소녀처럼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그런 루나의 모습을 마침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여인이 보게 되었다.
“루나 언니! 메인 MC된 거 축하해!”
루나의 대기실로 들어온 사람은 수빈이었다.
방송국에 일이 있어 나왔던 수빈이 스케줄을 마치고 돌아가지 않고, 절친인 루나가 오늘 쇼 프로의 메인 MC로 발탁이 되었다는 소식에 축하하려고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대기실로 들어오며 축하 인사를 하다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누구와 통화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화기에 대고 애교를 부리고 끼를 발산하는 루나의 모습에 눈이 커졌다.
“언니, 누구랑 통화를 하기에 전화기에 대고 끼를 부리는 거야?”
“하하, 하하……!”
루나는 자신의 숨기고픈 모습을 절친이자 라이벌인 수빈에게 들키자 아무 말도 못하고 어색하게 웃고만 있었다.
그런 루나의 모습에 뭔가 눈치를 챈 수빈은 눈을 반짝이며 루나를 흘겨보았다.
“방금 통화한 사람 수한이지? 그렇지?”
“어우, 기지배! 귀신이라니까!”
루나는 앙증맞은 목소리로 자신을 흘기고 있는 수빈을 보며 코끝을 찡긋했다.
그 모습에 수빈은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서 불어! 몇 시에 만나기로 했어?”
“와! 너 신 내렸냐?”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서 말해! 말하지 않으면 나 오늘 계속 언니 따라다닐 거야!”
수빈은 자신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 엉뚱한 소리만 하고 있는 루나를 보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하였다.
“어휴…… 그래, 말한다, 말해! 오늘 끝나고 저녁 먹기로 했다. 됐냐?!”
“그럼 그 자리 나도 갈 거야!”
루나의 대답을 들은 수빈은 볼 것도 없다는 듯 자신도 그 자리에 함께 하겠다는 말을 하였다.
그런 수빈의 모습에 루나는 체념을 하였다.
자신도 수한을 사랑하지만 수빈도 자신 못지않게 수한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빈뿐만 아니라 그녀의 친언니이자 자신과 같은 그룹에 있는 예빈도 수한을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예빈은 예전과 다르게 이제는 체념을 한 것인지 그런 모습이 많이 사라지긴 했으나 아직 모르는 것이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고 언제 또다시 그때로 돌아올지 말이다.
◈ ◈ ◈
“수고하셨습니다.”
짝짝짝짝!
화려한 무대의 조명이 꺼지고 쇼가 끝났다.
루나는 처음으로 메인 MC를 본 것치고는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쇼를 진행을 하였다.
그 때문인지 담당 PD도 오늘 녹화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하였다.
사실 처음 걱정도 있었다.
루나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이돌 가수라고는 하지만 쇼 진행을 위해 단독 메인 MC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그동안 그녀가 보조 MC를 여러 번 경험했다고 해도 메인 MC라는 무게는 비교 불가능한 자리다.
쇼를 기획하고 준비를 하는 것이 PD와 방송스텝이라면 쇼를 이끌어 가는 존재는 바로 MC다.
즉, 아무리 잘 기획하고 준비를 해도 쇼를 이끌어 가는 MC가 제대로 진행을 하지 못하면 그 쇼를 망하는 것이다.
특히나 대한민국에서 여자 MC는 지금까지 보조적인 존재였지 오늘 루나처럼 메인 MC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것도 사실 루나가 대한민국 최고 대표하는 아이돌 가수이기에 이런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물론 소속사인 천하 엔터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하였고, 또 루나도 그녀 나름대로 그동안 방송에서 활약을 하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지금과 같은 기회를 얻은 것이다.
“루나 씨, 처음인데 잘하던데?!”
담당 PD는 스텝들에게 인사를 하며 무대에서 내려오는 루나를 보며 칭찬을 하였다.
“루나 씨가 보조 없이 우리 쇼 MC를 보는 것에 걱정이 많았었는데, 오늘 정말 수고했어요.”
사실 루나만 메인 MC로 발탁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 혼자 MC를 본다는 것을 걱정한 방송국 윗선에서 유명 남자 배우를 함께 메인으로 내세우려 하였다.
하지만 그 남자 배우에게 문제가 발생해 급하게 새로운 대타를 세우려 하였지만, 시간이 없어 대타를 구하지 못하고 녹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방송국이 갑의 위치에 있다고 하지만 방송에 출연하는 출연자들의 스케줄이란 것도 있고, 또 방송국 나름 스케줄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루나 혼자 단독 MC 체제로 녹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담당 PD는 쇼가 진행이 되는 두 시간 동안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무대 옆에서 안 보이는 곳에서 지켜보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다르게 루나는 너무도 능숙하게 쇼를 진행하였다.
마치 다년간 숙련된 전문 MC들 마냥 화려한 언변과 적절한 농담을 섞어 가며 출연자들을 띄워 주었다.
그 때문인지 오늘 출연한 출연자들 모두 만족한 표정을 보였다.
“오늘 루나 씨가 MC를 맡은 기념으로 회식을 하려고 하는데 참석할 거지?”
PD는 오늘 회식이 있으니 참석할 것이냐 물었다.
비록 의향을 물어보는 말이지만 그의 말뜻은 루나가 주인공이니 꼭 참석을 하라는 말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바로 그렇게 하겠다고 말을 하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이미 선약이 있었다.
꼭 축하를 받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와 약속을 하였기에 오늘은 PD의 말을 들어줄 수 없었다.
“이런 어쩌죠. 저도 PD님과 스텝들과 오늘을 축하하고 싶지만 선약이 있어서요. 저에게 아주 중요한 약속이라 깰 수가 없어요. 회식 다음 주로 미루면 안 되나요?”
루나는 수한과 약속을 하였기에 PD의 말이 썩 달갑지 않았다.
사실 루나는 너무 기뻐 수한에게 자랑을 하며 또 축하를 받고 싶은 욕심에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은 것이다.
그랬는데 생각지도 않게 촬영이 끝나고 PD가 회식을 하자는 말에 당황하였다.
루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
일단 자신의 실수가 어느 정도 작용을 해 프로그램 담당 PD와 방송 스텝들과 교분을 나눌 기회를 무산시켰기 때문이다.
방송을 하다 보면 이렇게 원치 않아도 방송 관계자들과 술자리를 할 때도 있다.
이럴 때 상대방이 기분이 상하지 않게 거절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루나가 아무리 대스타라 해도 방송국 직원들과 척을 지면 손해를 보는 것은 방송국 직원들 보다 그녀의 쪽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루나가 오늘 약속 때문에 회식에 참여할 수 없다고 말을 하자 PD의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을 환영하기 위해 회식자리를 마련하였는데 거절을 하니 기분이 좋을 일이 없었다.
그런 PD의 표정을 읽은 루나는 얼른 말을 이었다.
“PD님 죄송해요. 오늘은 그냥 PD님과 스텝 분들 수고하셨으니 회식하시고, 다음에 제가 자리를 마련할게요, 네?”
루나는 만화 영화에 나오던 고양이 눈을 하며 PD를 보며 사정을 하였다.
그런 루나의 모습에 PD도 더 이상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뭐 다음에 루나 씨가 우리 팀 회식을 한 번 더 시켜 준다는데 거절할 수가 있나? 오늘만 날은 아니니, 사정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지. 그럼 우리끼리 회식을 하지. 오늘 수고했어요, 피곤할 테니 그만 들어가 봐요.”
기분 나빠하던 PD의 억양이 부드럽게 바뀌자 그제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네,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죄송해요.”
“아니야! 중요한 선약이 있다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다만 루나 씨가 준비한다는 자리 기대할게요.”
PD도 거듭되는 루나의 사과에 마음이 풀렸는지 마지막에는 농담을 하며 자리를 떠나갔다.
“휴!”
이번 쇼의 담당 PD가 자리를 떠나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 ◈
루나는 PD와 헤어져 대기실로 돌아왔다.
대기실에는 녹화 전 축하하러 왔던 수빈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끝난 거야?”
“응, 조금만 기다려 화장만 지우고 가자!”
“알았어.”
루나는 지금까지 자신을 기다린 수빈에게 양해를 구하고 대기실 화장대 앞에 앉아 메이크업을 지우기 시작했다.
방송용 메이크업은 일반 화장과 다르게 방송 화면에 잘 나오기 위해 아주 진하게 화장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밖에서 보게 되면 무척이나 이상하게 보일 때가 많았다.
조금 뒤 만나기로 약속한 수한에게 언제나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루나였다.
비록 자신이 수한보다 세 살이나 많았지만 그런 것은 개의치 않았다.
나이 세 살 많은 것이 죄도 아니고 부끄러울 것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루나는 자신이 수한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혹시나 수한이 자신보다 어린 여자를 좋아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남자란 어린 여자를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루나는 수한을 만나는 때면 언제나 화장을 지우고 가벼운 BB크림 정도만 하고 나갔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어려 보이기 때문이다.
화장을 다 지우고 간단하게 BB크림만 바른 루나는 수빈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 끝났어! 그만 가자 수한이 기다리겠다.”
“그래.”
루나의 말에 수빈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언뜻 보기에 화장을 지운 루나와 수빈의 모습이 비슷하게 보였다.
얼굴형이나 이목구비가 분명 다른데도 풍기는 분위기가 무척이나 닮았다.
사실 이건 두 사람 다 아직 인식하지 못한 것이지만, 수한이 언젠가 그녀들이 있을 때 이상형에 대하여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적극적인 공세를 하는 그녀들에게 너무도 덤덤한 수한에게 좋아하는 이상형이 어떤지 물었다.
그리고 그때 수한이 자신의 이상형에 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이상형이란 것이 어처구니없게도 자신의 친모인 조미영과 양모인 최성희를 적절히 섞은 모습이었다.
어차피 수한에게 여성은 그리 친근한 존재가 아니었다.
전생이나 현생 모두 합쳐도 그와 말을 섞은 여성의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그러니 수한에게 가장 인상에 남는 여인이라고는 현생에 피붙이인 어머니와 누나인 수정 그리고 양어머니인 최성희뿐이다.
그리고 조금 더 확대해서 누나가 속한 그룹 멤버들과 수빈이다.
그들 외에 특별히 수한이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 보니 루나가 이상형을 물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두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 특징을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친모와 양모 두 사람과 있을 때면 한없이 풀어지는 수한 본인이다 보니 본능적으로 이상형을 어머니들에 맞추었다.
그런 수한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수한을 좋아하는 수빈이나 루나 등은 과도한 화장을 지양하고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연출을 하였다.
그러다 보니 루나와 수빈은 생김새는 다르지만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며 방송국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는 두 사람을 태우러 온 매니저와 경호원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오빠! 숙소로 가지 말고 청솔가든으로 가 줘!”
루나는 자신을 데리러 온 매니저에게 숙소가 아닌 청솔가든으로 가 주길 주문하였다.
“청솔가든?”
“응, 청솔가든.”
그런 루나의 주문에 매니저는 무엇 때문에 가냐는 뉘앙스로 물었지만, 루나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그저 간단한 말로 응수했다.
“휴, 방송국 회식도 거부하고 누굴 만나려고 그러냐?”
조금 전 방송관계자에게 루나가 방송국 회식을 거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좋게 이야기 되어 불이익은 없을 것이라 들었기에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어 한소리 하려고 하였다.
파이브돌스가 최고이고 잘나간다고 해도 방송국을 상대로는 천하 엔터라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모기업이 대기업이고 천하 엔터에 소속된 연예인들이 최고라고 하지만 구설수에 올라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너 그러다 스캔들 터지면 어쩌려고 그런 데서 만나?”
“스캔들? 그럼 나야 좋지! 큭큭!”
자신을 걱정하는 매니저의 말에 루나는 그의 말대로 스캔들이 터졌으면 좋겠다는 듯 말을 하며 웃어 댔다.
그런 루나의 반응에 매니저는 물론 옆자리에 있던 수빈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너 스캔들 낼 생각이라면 꿈 깨!”
지금 루나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잘 알고 있는 수빈으로서는 그녀가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알고 있다.
“아무튼 조심해! 요즘 분위기 좋지 않으니.”
매니저는 루나의 말을 그저 농담으로 넘기며 주의를 주었다.
아닌 게 아니라 방송가 분위기가 썩 좋지 못했다.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만 같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증권가 소문에 연예계 비리와 성상납과 같은, 쉬쉬하고 민감한 문제에 대한 공공연한 소문이 퍼지고 있는 시점이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파이브돌스 멤버인 루나가 스캔들이라도 터지면 그 기폭제가 되어 일이 일파만파 커질지도 몰랐다.
만약 루나의 일로 방송가에 된서리가 몰아친다면 루나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매니저는 루나와 수빈에게 주의를 주며 운전을 하였다.
◈ ◈ ◈
연예인들이 타고 다니는 스타크래프트 벤이 음식점 앞에 멈추어 섰다.
“약속한 거다!”
차에서 내리는 루나와 수빈의 뒤로 매니저가 소리쳤다.
그런 매니저의 말에 루나는 코끝을 찡그리며 대답을 하였다.
“오빠! 알았다고, 몇 번을 말하는 거야!”
“어휴, 수빈아! 네가 루나 좀 잘 단속 좀 해!”
“알겠습니다.”
“그래, 부탁한다. 그럼 내일 아침에 보자!”
매니저는 루나가 말한 청솔가든에 두 사람을 내려 주고 신신당부를 하며 그렇게 떠나갔다.
자신들을 태우고 온 차가 멀어지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나와 수빈은 약속 장소인 청솔가든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가든 입구에 서니 직원이 두 사람을 맞았다.
“정수한이란 이름으로 예약이 되어 있을 텐데…….”
루나는 예약자 이름을 말했다.
그러자 직원은 예약자 명부를 확인하였다.
이곳 청솔가든은 일반인 손님은 받지 않고, 모두 사전 예약을 해 손님을 받는 업소로 한식과 양식을 접목한 퓨전 요리가 특징이었다.
그래서 젊은 연인들도 찾기도 하지만 나이 지긋한 어른들도 찾아오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찾는 손님들에 비해 자리의 수는 한정이 되어 있어서 이렇게 사전 예약제로 전환을 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혼잡스러워져 격이 떨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튼 예약자 이름을 확인한 직원은 두 사람을 예약된 룸으로 이들을 안내하였다.
청솔가든을 또 다른 특징은 홀에서 식사를 할 수도 있고, 이렇게 따로 다른 사람들과 격리된 룸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룸을 예약을 할 때는 그만큼 비용이 더 추가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홀 보다는 룸을 선호하였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격리되어 자신들만의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정감과 또 아늑함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룸은 여느 식당과 다르게 방음도 잘되어 있어 안에서의 말소리가 밖으로 새 나가지 않아 더욱 좋았다.
물론 이곳에서 일을 하는 종업원들도 교육을 잘 받아 손님들의 비밀을 잘 지켜 주었다.
그래서 청솔가든을 찾는 손님들 중에선 연예인들의 비중이 참으로 높았다.
사실 오늘 저녁 약속을 잡으며 루나가 자신의 이름으로 예약을 하려고 하였지만, 그렇지 않고 수한의 이름으로 한 것은 전적으로 수한이 그녀의 이름값을 알기에 그런 것이다.
똑똑!
“기다리시던 분들이 오셨습니다.”
안내를 하던 직원은 예약된 방에 도착을 하자 노크를 하며 문을 열었다.
룸의 문이 열리고 직원이 비켜서자 루나와 수빈이 룸 안으로 들어섰다.
루나와 수빈이 룸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도 따라 들어왔다.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직원이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보자 수한이 나서서 대답을 하였다.
“오늘 요리사 추천 요리로 삼 인분 부탁합니다. 참! 술은 도수가 낮은 샴페인 부탁합니다.”
오늘 자리가 루나의 첫 메인 MC가 된 것을 축하하는 자리다 보니 수한은 식사 요리를 주문과 함께 샴페인도 주문을 하였다.
축하하는 자리에 샴페인이 빠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수한아 고마워!”
비록 자신이 억지로 전화를 걸어 축하해 달라고 말은 하였지만, 정말로 수한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요즘 수한이 얼마나 바쁜지 루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룹에서 10조가 넘는 엄청난 돈이 걸려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수한이 그 프로젝트에 아주 핵심적인 존재란 것을 수정으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는 수한에게 너무도 감사했다.
몇 달 전 자신의 생일 파티에도 와 주기도 하고, 그날 있던 감정 교류를 루나는 잊을 수가 없었다.
사실 그날 루나는 수한을 자신의 남자라 인식을 하였다.
그전에는 그저 이상형의 남자로 장난 반, 진심 반의 그런 감정이었는데, 그날 이후 루나에게 남자로 여겨지는 존재는 수한뿐이었다.
그렇기에 오늘 자신에게 일어난 기쁜 일에 가장 축하를 받고 싶었던 사람도 수한이었다.
예전이라면 같이 고생을 한 멤버들이 우선이었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조금 미안하나, 자신이 MC로 발탁이 되었다고 전해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은 가족도 아니고 또 가족보다 이제는 더 가까운 사이가 된 멤버들도 아니었다.
가끔 얼굴을 비추고 그러면서도 배려를 잊지 않는 수한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그에게 축하를 받고 싶다는 생각에 방송국 대기실에서 무턱대고 전화를 건 것이다.
지금도 자신을 배려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으로 룸을 예약하고 또 샴페인까지 정말로 생각할수록 수한에게 빠져드는 자신을 느끼는 루나였다.
그런 루나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수빈도 수한의 자상한 모습에 눈이 반짝였다.
직원이 나가고 룸 안은 루나의 메인 MC 발탁에 대한 축하와 수한이 맡은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것에 대한 축하로 화기애애해졌다.
물론 수한은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에 관해 자세한 이야기보다는 그저 성공적이란 말과, 얼마 뒤 자신의 일이 마무리 될 것이란 이야기만 했을 뿐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굳이 두 사람이 알아서 좋을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뜻 듣기로 군대 이야기와 축구 그리고 공학 이야기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다고 들었기에 간단하게 말을 끝낸 것도 있다.
사실 수한도 루나의 생일날 있었던 그 감정의 교류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언젠가 자신도 결혼을 할 것이기에 루나와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수빈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을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수한도 들어 보았기에 수한은 루나와 수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주로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수한은 대체적으로 들어주고 있었다.
때때로 두 사람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며 호응을 해 줄 때 두 사람의 반응은 아주 열렬했다.
그렇지만 큰 잔치도 끝이 있는 법이다.
화기애애한 이 자리도 그만 끝내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낸 세 사람은 즐거운 표정으로 청솔가든을 나왔다.
매니저도 보냈기에 두 사람을 숙소로 데려다 주는 것은 수한이 이들을 숙소로 데려다 주기로 하였다.
◈ ◈ ◈
두 사람의 숙소가 있는 청담동에 있는 아파트에 내려 주었다.
“오늘 고마웠어!”
“아니야, 누나 MC된 것 다시 한 번 축하하고, 앞으로도 쭉 발전을 하여 그 부문에서도 최고가 되길 바랄게.”
“그래, 고마워!”
“그럼 난 이만 가 볼게 어서 들어가.”
“응.”
“수한아 오늘 저녁 잘 먹었어. 다음에는 내가 맛있는 저녁 사 줄게!”
수빈은 수한에게 오늘 저녁을 얻어먹은 것에 그렇게 인사를 하였다.
“피곤하겠다. 우리 그만 들어갈 테니 너도 어서 들어가.”
루나는 수한에게 들어가라는 말을 하였다.
말을 마친 루나는 수한이 차에 오르자 손짓을 하여 차문을 열도록 하였다.
그리고 기습적으로 수한의 볼에 입을 맞추고, 아파트 입구로 뛰어갔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 수한은 멍해졌다.
그건 먼저 걸어가던 수빈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인사만 하고 오겠다던 루나가 무슨 짓을 하나 입구에서 들어가지 않고 지켜보다 그녀가 수한을 상대로 기습 키스를 하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언니! 반칙이야!”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루나의 뒤에 대고 수빈은 그렇게 소리치며 따라갔다.
솔직히 수빈도 수한에게 루나처럼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참고 있었는데, 루나가 먼저 선수를 치자 분했다.
한편 루나의 기습 키스를 받은 수한은 비록 입술이 아닌 뺨이었지만, 어머니와 누나가 아닌 이성에게 처음으로 키스를 받은 것이었다.
더욱이 그들에게도 아기일 때 외에는 그런 스킨십을 받지 않았다.
하긴 18년 만에 다 장성해 돌아왔으니 스킨십을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들었다.
아무튼 생각지도 못한 루나의 기습 키스였지만 나쁘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리는 수한이었다.
조용히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며 조금 전 루나의 입술이 자신의 볼에 닿던 느낌을 음미하며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랬을까? 다른 때 같으면 느꼈을 것이지만 수한은 누군가 자신의 뒤를 미행하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레이트 코리아』 제6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