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코리아-39화 (39/118)

4. 망종의 최후

승민은 아버지의 불호령 때문에 친구들과 유럽으로 스키 여행을 가는 약속도 펑크를 내고 돌아왔다.

방학 동안만이라도 병원에서 일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명령이 있어 억지로 병원에 나갔다.

하지만 일은 승민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풍족하게 살아 온 승민이 일을 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더욱이 미국에 간 유학조차 학창 시절 사고를 많이 쳐 사실 도피성 유학이나 마찬가지였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센다고 했던가.

한국에서 사고를 치고 미국에 간 승민의 방탕한 생활은 미국에서 오히려 꽃을 피웠다.

한국에서는 그나마 무서운 아버지 때문에 눈치를 보기라도 했지만 미국은 아니었다.

아무도 그를 통제하지 않고 방치를 한 것이다.

유학 생활을 하면서 비슷한 끼리끼리 모여 매일같이 파티를 즐겼다.

그중에는 마약 파티도 있었는데, 처음 마약을 접할 때는 거부감이 있어 하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비슷한 환경의 친구들과 매일 방탕한 생활을 하던 승민은 아무리 엄한 아버지라고 하지만, 1년여 만에 본 것이라 이제는 그리 두렵지도 않았다.

다만 자신의 돈줄이기에 아버지의 말을 따를 뿐이다.

그런데 어제는 자신의 실수로 계약 하나가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물론 승민은 그것을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지 않았다.

규모도 작은 제약회사와 하는 계약이었다.

한국에 제약회사가 좀 많은가. 그곳 아니라도 제약회사는 많았다.

다른 회사와 계약을 하면 될 걸 가지고, 아버지는 그에게 쓴 잔소리를 했다. 그 이후 승민은 병원을 박차고 나와 술집에서 진탕 술을 마셨다.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취해 집에 들어왔지만 아무도 그를 반겨 주는 이가 없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약속이 있어서인지 늦은 시간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승민의 어머니 또한 뭐가 그리 바쁜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참으로 비정상적인 가족이지만, 승민에게는 이게 어쩌면 더 편했다.

늦은 아침을 먹고 집을 나왔다.

병원에 출근을 할까, 라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벌써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어차피 늦게 출근을 해 봐야 욕만 더 먹을 것 같아 승민은 병원에 출근을 하기보단 그동안 질기지 못했던 것을 즐기기로 하였다.

미국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입을 옷이 별로 없었다.

아버지가 붙여 둔 경호원을 대동하고 쇼핑을 하기로 했다.

◈ ◈ ◈

낮에 쇼핑도 즐기고 이미 병원에 출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승민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어차피 자신이 병원에 가서 할 일이란 별 거 없었다.

자신이 공부를 잘해서 의과대를 들어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영학을 배우는 것도 아니기에 병원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자질구레한 일뿐이었다.

다만 원장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다른 직원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뿐이지, 직원들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직원들은 승민이 한국에서 사고를 친 내용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고에는 병원 간호사도 껴 있어 소문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래저래 병원에도 마음이 없기에 간만에 쇼핑으로 기분이 좋아진 승민은 차를 몰아 어제 갔던 클럽으로 향했다.

어제 갔던 클럽은 확실히 물이 달랐다.

연예기획사들이 근처에 있어서 그런지 쭉쭉빵빵 하면서도 골빈 것들이 무척 많았다.

어제도 클럽에서 여자를 꾀어 모텔에서 섹스를 하였다.

한국 여자들이 보수적이라고 알려졌지만, 그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외국에서 유학을 한다고 하면 껌벅 넘어갔고, 거기에 다니는 대학 학생증을 보여 주면 백이면 백, 다 넘어왔다.

어제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미국 유학 도중 겨울방학이라 아버지가 원장으로 있는 병원에 아버지를 돕기 위해 귀국했다는 말을 하자 넘어온 여자와 잠자리를 한 것이다.

뭐 잠자리 테크닉은 별로였지만, 추운 겨울밤 침대를 달구는 용도로는 그만이었다.

오늘도 밤을 달궈 줄 여자를 구하기 위해 클럽을 찾았다.

하지만 너무 이른 시간에 클럽을 찾았는지 아직 괜찮은 여자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룸에서 혼자 자작을 하였다.

몇 번 웨이터들이 승민이 찔러 준 돈값을 하려고 여자를 데리고 들어오긴 했지만 모두 어제만 못해 퇴짜를 놓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웨이터들도 승민의 방을 찾지 않았다.

혼자 그렇게 자작을 하던 승민은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특실인 그의 방에는 편의를 위해 실내에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는 하룻저녁 몇 백만 원의 돈을 쓰는 특실 손님을 위한 편의 시설인 것이다.

하지만 승민은 올라오는 취기도 해소할 겸 그리고 홀에 직접 나가 여자를 꾀기 위해 움직였다.

화장실을 들려 볼일을 보고 나온 승민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눈에 스테이지 가운데 춤을 추고 있는 여자들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어느 정도 취기가 가시자 왜 사람들이 스테이지를 집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니, 파이브돌스가 여길 찾았단 말이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 최고 아이돌인 파이브돌스가 클럽에 와서 춤을 추고 있으니 그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참 파이브돌스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는데, 그녀들과 함께 춤을 추던 여자가 스테이지를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파이브돌스만은 못해도 그녀도 꽤나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파이브돌스멤버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그녀도 연예인인가 본데…….’

승민은 자신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보니 별로 유명한 연예인은 아닌 것 같아 작업을 걸기로 결심하였다.

비록 파이브돌스와 알고 있다고 하지만 별로 알려지지 않은 연예인이라면 자신의 배경으로 충분히 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잠시 이야기 좀 하죠!”

스테이지를 내려오는 여자의 곁에 다가가 손목을 덥석 잡으며 말을 하였다.

“누, 누구세요?”

소스라지는 여자를 보며 승민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하였다.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이층에 룸에서 이야기 좀 할까요?”

하지만 승민이 아무리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여도 수빈은 낯선 남자의 막무가내에 불안에 떨었다.

“저 일행 있어요. 놔주세요.”

“이야기 좀 하자니까요.”

수빈이 거부할수록 승민은 수빈이 내숭을 떤다고 생각을 하며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 ◈ ◈

수빈은 점점 겁이 났다.

자신을 억지로 끄는 남자의 눈이 점점 붉어지며 광기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화를 냈다.

“아, 시팔! 이런 데 왔으면 다 그런 것이지 뭘 그리 빼고 그래?! 우리 집 돈 많아! 너도 연예인인 것 같은데, 내가 띄어 줄게!”

“전 그런 것 관심 없어요. 그러니 보내 줘요.”

수빈은 남자의 막무가내에 더욱 불안해하며 보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자꾸 이러시면 그쪽도 좋지 못해요. 그러니 절 보내 주세요.”

자신이 소속된 천하 엔터가 가진 힘을 알기에 수빈은 불안한 중에도 승민에게 경고의 말을 하며 거듭 자신을 방에서 내보내 달라고 요구하였다.

하지만 수빈의 말을 들은 승민은 수빈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승민은 이른 저녁부터 클럽에 와서 술을 마셨기에 이미 취기가 오를 만큼 올라 있었다.

그러던 것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밖으로 나가 찬바람을 조금 맞아 정신이 들었다.

술기운이 찬바람에 잠시 가셨을 때 수빈을 보고 꽂힌 승민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수빈으로 인해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그래서 억지를 쓰며 그녀를 우격다짐으로 끌고 이층 룸으로 데려왔다.

아니, 끌고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승민은 이성이 조금 남아 있었는데, 방금 전 협박 비슷한 수빈의 말에 그만 정신이 나가 버렸다.

“뭐? 그래, 내가 안 보내 주면 어쩔 건데! 개시팔! 내가 좋게, 좋게 이야기 하니 지 주제 파악도 못하고 뭐가 어쩌고 어째?!”

이성을 잃은 승민은 급기야 수빈을 향해 손찌검을 하기 위해 팔을 높이 들었다.

벌컥!

“뭐야! 누가 들어오라고 했어!”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승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리쳤다.

입구를 막고 있는 경호원 중 한 명이 방으로 들어온 것으로 착각을 한 승민은 그렇게 고함을 질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방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승민이 예상하는 경호원이 아니었다.

휙! 퍽!

“악!”

특실 방문을 열고 들어온 수한은 수빈을 벽에 밀어붙이고 한 손을 높이 들어 때리려 하는 남자의 모습에, 달려들어 옆구리를 차 버렸다.

“뭐야!”

“이 새끼, 지금 뭐하는 짓이야?!”

겁에 질린 수빈의 앞을 막아선 수한은 자신의 공격에 쓰러진 남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 수한의 말에 자신이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은 승민이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밖에 뭐하고 있어!”

자신을 노려보는 수한의 시선이 심상치 않자 승민은 문밖에 대고 소리쳤다.

문밖에는 아버지가 붙인 경호원들이 있었기에 그것을 믿고 소리친 것이다.

원래 밖에 있는 경호원들은 승민이 사고를 지치 못하게 감시하기 위해 붙여 놓은 사람이었다.

물론 승민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경호원들의 눈치를 볼 만큼 승민이 무난한 성격도 아니었다.

감시하는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자신이 하려는 일은 막무가내로 밀고 나갔다.

어차피 경호원들은 비록 감시라고 하지만 자신이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당한다면 그것을 막아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승민은 감시자 겸 경호원을 적절히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취했다.

이십대 나이에 경호원을 두 명이나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하는 젊은 여성들을 꾀기 딱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승민이다.

이런 잔머리는 비상하게 돌아가던 승민이 오늘 임자를 제대로 만났다.

아무리 불러도 경호원이 오지 않자 승민은 점점 불안해졌다.

“너 이 자식, 어떻게 들어온 거야! 밖에 경호원들 있었을 텐데!”

승민은 도저히 지금 상황을 믿을 수 없어 밖에 경호원이 있었던 것을 상기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런 승민의 질문에 대답을 해 줄 생각이 없는 수한은 차가운 눈으로 승민을 쳐다보았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너 이 자식, 내가 가만둘 줄 알아! 너 같은 놈은 감방에서 콩밥 좀 먹어 봐야 정신을 차리지!”

확실히 법대로 한다면 승민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승민이 먼저 억지로 수빈을 감금하다시피 하였기에 이를 구하기 위해 나선 수한은 정상참작이 된다.

물론 수한이 지금 협박하고 있는 승민보다 힘이 없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한민국의 법은 가진 자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할 정도로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피해자 보다 잘살고, 또 변호사만 잘 쓰면 무죄로 풀려나기도 하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미성년자를 협박해 끌고 가 성폭행을 하였어도, 적극적인 거부 의사를 표하지 않았다고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것이 대한민국이다.

그러니 지금 승민이 수한을 상대로 하는 협박이 아주 막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협박을 하고 있는 승민은 수한의 배경을 알지 못했다.

더욱이 자신이 강제로 끌고 온 수빈이 어느 회사 소속의 연예인이지 몰랐다는 것도 큰 실수였다.

자신이 잘 모르는 연예인이라고 배경만 믿고 막대했던 것이 어떻게 치명적이게 작용할지 지금에는 몰랐다.

한편 클럽의 보안을 책임지는 신영필은 클럽의 결산을 보기 위해 사무실로 들어서려다 이상한 것을 목격했다.

특실 앞 복도에 양복을 입은 사내 두 명이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처음에는 술이 취해 그런 것인 줄 알고 넘어가려 하였는데,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이나 귀에 꽂고 있는 것이 눈에 거슬렸다.

그리고 잠시 뒤 뭔가 생각이 났는지 빠르게 뛰어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경호원들을 지나 특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뭔가 큰일이 난 것을 알고 특실 안으로 뛰어든 것이 무색하게 특실 안에는 한 명의 여자를 두고 두 명의 남자가 대치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 자신이 예상하던 것과 다른 그림이라 조금 안심이 되었지만 곧 다른 생각이 들었다.

경호원을 대동할 정도의 잚은 사내라면 결코 가벼운 신분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어 누구일까 자세히 살폈다.

물론 그건 신영필의 착각이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담당하는 업소에서 그것도 특실 손님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앞으로 클럽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문제였기에 그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전 이곳의 관리 상무입니다. 무슨 일들이십니까?”

신영필은 자신의 신분을 알리며 정중하게 물었다.

한편 자신이 잡은 특실에 뛰어들어 자신을 공격한 수한을 노려보던 승민은 또 다른 남자가 들어서자 경계를 하였다.

그러다 들어선 이가 이곳 클럽의 관계자란 것을 듣고 눈이 반짝였다.

그가 알기로 이곳은 이 일대를 지배하고 있는 조직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신태양파라면 경찰과 검찰에도 줄이 있는 전국구 조직이었다.

물론 승민도 이러한 이야기를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듣게 되었다.

아무튼 클럽 관계자가 나타나자 승민의 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는 갑작스런 기습과 차갑게 노려보는 수한의 눈빛에 위축이 되었는데, 나타난 이가 조폭이라면 자신을 도와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자신은 업소의 VIP손님이기 때문이다.

“여기 영업을 어떻게 하는 겁니까? 저기 저놈이 내가 전세 낸 룸에 무단으로 침입하게 하다니.”

자신이 수빈을 억지로 끌고 온 것은 말도 하지 않고 수한이 방으로 들어온 것만 부각해 떠들었다.

승민의 말을 들은 영필은 업소 측에서 보면 이런 일은 철저히 막아야 할 문제였기에 일단 승민의 말을 듣고 수한을 노려보았다.

“손님, 잠시 저와 함께 나가서 이야기 좀 하셔야 하겠습니다.”

신영필은 지금 상황을 너무도 담담히 지켜보고 있는 수한을 보며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기는 하였지만, 일던 자신의 본분을 잃지 않고 말을 하였다.

그런 신영필의 말에 수한은 의기양양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승민을 무심히 쳐다보다 자신의 뒤에 있는 수빈의 손을 잡고 방을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런 수한의 모습에 승민이 제동을 걸었다.

“그 여자는 놓고 가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수빈을 마치 자신의 물건인 듯 수한에게 말을 하였다.

그런 승민의 말을 들은 수한의 표정이 점점 차갑게 굳어졌다.

오늘 루나의 생일이기에 될 수 있으면 사고를 치지 않으려 하였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가 자신의 신경을 건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했다.

대마도사의 경지를 넘어 이제는 위자드급의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 수한이다.

그런 수한에게 지금 승민이 하고 있는 행동들은 너무도 가소로워 상대할 가지도 없는 것이었다.

그저 한번 웃고 넘어갈 일이었는데,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현재 수한은 평소 냉철한 대마도사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표정이 굳어 가는 수한의 얼굴을 보던 신영필은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누구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인데…….’

자꾸만 왜지 모를 불안감이 신영필의 심장을 뛰게 하였다.

무언가 큰 것을 자신이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주체할 수가 없었다.

‘뭐지?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뭐지?’

신영필이 이렇게 뜸을 들이고 있을 때 승민은 그런 신영필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하는 겁니까? 내가 누군지 알아요?!”

승민은 큰소리를 치기는 했지만 이곳이 신태양파가 운영하는 곳이란 것을 알고 있기에 신영필에게 감히 반말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질을 죽여 그냥 넘어가지도 않았다.

일이 잘못되면 정관계에 발이 넓은 자신의 아버지가 해결해 줄 것이란 믿음이 있기에 큰소리를 치는 것이다.

승민의 큰소리에 신영필은 짜증이 일어났다.

하지만 VIP손님을 상대로 언성을 높일 수는 없는 일.

이러지도 못하고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복도 끝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형님!”

자신을 부르며 다급히 달려오는 부하의 정강이를 구두 발로 걷어차고는 소리쳤다.

“이 새끼가! 정신 똑바로 안 차릴래?!”

“죄송합니다. 그만 급해서 실수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자신의 실수에 대하여 반성을 하는 부하의 말에 신영필은 표정을 풀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아직 특실의 일이 처리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일이 벌어지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게 VIP손님이 지금 일행이 사라졌다고 난리도 아닙니다.”

“뭐? 이 자식들 관리 어떻게 하는 거야! VIP의 일행이 사라지다니 그게 말이 돼?”

영필은 부하의 말에 기가 막혔다.

VIP손님이 이곳 말고도 또 다른 곳에서 클레임을 건 것이다.

일반 손님도 아니고 이곳에서 VIP라 불린다는 것은 하루 매상 오백에서 천만 원 정도를 쓰는 사람을 말한다.

“이번에는 또 누군데?”

이제는 클레임을 건 VIP의 정체가 궁금해진 신영필이 보고를 하는 부하에게 물었다.

그런데 들려온 말은 신영필을 기겁하게 만들었다.

“그게 파이브돌스입니다.”

“파이브돌스? 아이돌 그룹, 파이브돌스?”

“예, 그 파이브돌스 맞습니다.”

“그들이 우리 클럽을 왔다고?”

“네, 오늘 파이브돌스 멤버 한 명이 생일이라 파티를 하기 위해 찾았답니다. 그래서 오늘 그 소문 때문에 영업이 평소보다 20%나 올랐습니다.”

부하의 보고에 영필도 클럽에 들어오기 전 언뜻 들은 기억이 났다.

유명 아이돌그룹이 생일파티를 하기 위해 자신이 관리하는 업소에 놀러 왔다는 보고를 받은 것이 생각난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자신들의 일행이 사라졌다고 클레임을 걸었다.

더욱이 이야기를 들어 보니 없어진 일행을 찾기 위해 나선 또 다른 일행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말하고 있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신영필이 이렇게 부하의 보고에 어처구니없어 하고 있을 때, 표정이 바뀌는 이가 있었다.

‘시팔!’

승민은 자신이 억지로 끌고 온 여자가 파이브돌스와 함께 있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여자가 스테이지를 내려올 때 파이브돌스 멤버와 이야기하는 것도 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찾을 정도로 자신이 데려온 여자가 그들에게 중요한 사람일 줄은 몰랐다.

승민은 그만 이곳을 나가고 싶어졌다.

상황이 또 바뀌어 있었다.

수한이 룸 안에서 수빈이 처한 상황을 막고 있을 때 승민의 경호원 중 한 명이 연락을 한 것인지 깐깐하게 생긴 변호사가 클럽에 나타난 것이다.

여기까지였으면 그나마 양자 간에 합의를 통해 일이 원만하게 해결될 수도 있었겠지만, 변호사가 나타나자 기가 산 승민이 난리를 피웠다.

“니들 다 죽었어! 이 깡패 새끼들!”

승민은 처음 소란을 발견하고 나섰던 영필과 영필의 뒤에 있는 그의 부하들, 그리고 경호원을 쓰러뜨리고 자신의 일을 방해한 수한까지 뭉뚱그려 싸잡아 깡패라고 소리치며 소란을 떨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수한은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지금 누가 누굴 협박을 하는 것인지 지금 기가 막혔다.

“계속 그렇게 나온다는 거지? 당신이 여기 책임자라고 했지요?”

수한은 신영필을 돌아보며 물었다.

조금 전 자신이 이곳 상무라는 말을 하였기에 그에게 고개를 돌려 말을 하였다.

“예, 무슨 할 말씀이라도…….”

신영필은 난장을 피우고 있는 특실 손님의 변호사가 오기 직전, 수한을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을 해냈다.

처음 룸 안에서 수한의 얼굴을 보았을 때 찜찜했던 이유를 깨닫고 자신이 실수를 하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그런데 한 발 물러서 당사자들이 어떻게 일을 원만히 풀기만을 기다리던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천둥벌거숭이가 기어코 사고를 치고 말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수한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얼른 대답을 하였다.

“여기 CCTV시설은 다 되어 있죠?”

업소에 의무적으로 설치되게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에 대하여 수한이 언급을 하자 얼른 대답을 하였다.

“그렇습니다. 뭐 필요하신 것이라도?”

“예, 그럼 1시간 전부터 지금까지 녹화된 것을 주십시오. 참! 전부는 필요 없고, 홀에 설치되어 있는 것과, 여기 복도를 촬영한 것만 주시면 됩니다. 뭐 여기 특실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것 같으니.”

수한은 신영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클럽에 설치되어 있는 CCTV에 녹화된 테이프를 달라고 하였다.

물론 오늘 하루 녹화한 것 모두를 요구하기보단 필요한 부분만 요구하였다.

한편 이런 수한의 모습을 지켜보던 변호사의 눈이 빛났다.

수한의 하는 모습을 지켜본 그는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나오신 분이십니까?”

조금 전까지 클럽에 나타나 고압적인 모습을 보이던 변호사는 수한이 클럽 상무라는 신영필에게 CCTV 녹화를 요구하자 얼른 껴들었다.

“왜? 조금 전까지는 그렇게 당당하더니 내가 테이프를 요구하니 뭔가 꿀리는 것이라도 있나 보지?”

이미 상대가 막 나가는 모습을 본 뒤라 수한도 연장자라 하여 그를 대우해 줄 생각이 없었다.

사건 정황을 듣지도 않고 자신의 배경만 믿고 날뛰는 것을 수한은 두고 볼 수 없었다.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법대로 한번 해 보자고.”

“허허, 이거 어린 친구가 못하는 말이 없군!”

말문이 막힌 승민의 변호사는 수한이 반말로 자신을 대하자 나이를 들먹이며 수한에게 훈계를 하였다.

참으로 볼썽사나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논리적으로 상대에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사과를 하거나 수긍을 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인데, 그는 자신의 잘못은 생각지 않고 수한의 나이나 들먹이며 나무란 것이다.

한편 수빈을 찾으러 간 수한이 한참이 되도록 오질 않자 웨이터를 통해 수빈과 수한의 행방을 찾던 파이브돌스도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이층 특실로 몰려왔다.

“이렇게 나가면 좋을 것 없을 건데 말입니다.”

소란이 일던 곳으로 걸어가던 수정은 클럽 이층의 특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들었지만 설마 그게 자신의 동생을 향해 하는 협박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그거…… 내게 겁먹으라고 하는 말이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가던 수정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평소 모르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수한은 저런 식으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동생으로 짐작되는 사내의 목소리는 그런 수정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말을 하고 있었다.

‘수한이의 목소리 같은데 누구에게 하는 말이지?’

수정은 도대체 누가 자신의 동생을 화나게 한 것인지 궁금해 빠르게 걸었다.

그리고 그건 수정뿐 아니라 흩어져 수한과 수빈을 찾던 다른 파이브돌스 멤버들도 클럽 특실에서 싸움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이상한 예감에 이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루나는 클럽 밖, 차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들을 부르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루나가 부른 경호원은 소속사인 천하 엔터와 협업을 하는 천하 가드의 경호원이 아닌, 수한이 자신의 누나를 보호하기 위해 직접 파견한 전직 북한 특수부대원들이었다.

김갑돌과 리철명이 모집하고, 라이프 제약에서 생산된 특수 약물을 공급받아 전성기 때의 실력 이상으로 능력이 향상된 이들이다.

수한은 누나가 파이브돌스와 함께 생활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경호 인원도 많이 배치를 시켰는데, 사실 자신에게 배정된 세 명과 부모님을 경호하는 여섯 명을 뺀 열세 명 모두, 수정과 파이브돌스 멤버들을 경호하게 배치하였다.

수정이 특실 앞 복도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가니 그곳에 수한과 사십대 중년의 남자가 대치를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연이어 수한의 뒤에 웅크리며 불안감에 떨고 있는 수빈의 모습이 보였고, 또 반대편에 야비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십대의 남자가 보였다.

그런데 수정이 실내 상황을 살펴보니 딱 견적이 나왔다.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수빈이를 이곳으로 끌고 왔고, 어떻게 알았는지 자신의 동생이 찾아오자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다.

딱 봐도 술에 찌들어 있는 사내가 막무가내로 수빈을 잡았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다 수한에게 제지되자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주변에 있는 남자들은 덩치를 보면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다만 수정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웨이터들과 깡패로 보이는 남자들이 뭔가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통 영화에 보며 저기 야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의 편에 서서 자신의 동생과 수빈을 위협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뭔가 안절부절 못하는 것 같았다.

잠시 무엇 때문에 깡패들이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생각을 하다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생각났다.

‘참!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조용히 아무런 말없이 사내들 사이를 헤치고 들어간 수정은 수한의 옆으로 걸어갔다.

“수한아, 여기서 뭐하고 있어?”

수한은 자신의 곁에 다가와 말을 거는 누나를 보았다.

이미 그녀가 조금 전부터 이곳에 도착을 해 실내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 신영필에게 한 말이 있어, 그것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자신이 CCTV의 녹화를 기다리는 것에 제동을 걸기 위해 협박하는 상대방의 변호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하느라 아는 체를 못했을 뿐이다.

“아, 별거 아냐. 여기 이 사람은 거기 돌아이의 변호사라는데, 날 무슨 깡패로 몰아붙이며 협박하고 있어서 잠시 두고 보는 중이야.”

“뭐?!”

수한의 너무도 담담한 말에 수정이 그 말을 듣고 화를 내었다.

한편 승민의 변호사는 너무도 담담한 수한의 모습에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욱이 조금 전 자신의 신분을 밝혔음에도 이곳 상무라는 사람은 자신들에게 협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뒤로 물러서 오히려 눈앞에 있는 젊은 사내의 지시에 협조하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변호사 안기준은 지금 상황이 자신의 생각대로 진행이 되지 않자 짜증이 났다.

아니, 불안해졌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보통 변호사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 대체로 상대측에서 기가 죽어 숙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업소 관리자는 자신의 신분을 듣자마자 협조를 하였다.

자신의 의뢰인이 잘못을 했더라도 알아서 중재를 하든지, 아니면 오히려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증언을 해 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와 반대로 자신의 신분과 의뢰인의 배경에 대하여 알렸음에도 기죽는 것은 고사하고 너무도 담담한 표정이었다.

승민의 신분과 배경을 알고 기죽거나 아니면 오히려 잘되었다는 듯 돈을 뜯어내기 위해 호기를 부렸다면 안기준 역시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 일반적인 반응과는 다르게 너무도 담담히 자신들을 보고 있었다.

“누나, 너무 화내지 마. 귀엽잖아? 같잖은 배경을 가지고 자신들이 뭐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 꼴을 보노라니 재미있는 코미디를 보는 것 같아서 좋네.”

수한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무심한 표정으로 말을 하는 수한의 모습에 수정은 덜컹 겁이 났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동생의 그런 모습은 수정에게 너무도 낯설었다.

그리고 그런 수한의 표정은 정면으로 보고 있는 안기준에게는 알 수 없는 공포로 다가왔다.

‘뭐, 뭐지?’

알 수 없는 전율이 목덜미와 등을 흩고 지나갔다.

지금까지 안기준이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그런 감정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알 수 없는 감정에 불안해하는 안기준의 기분을 무저갱으로 떨어뜨리는 말이 그의 귀에 들려왔다.

“고모, 나 수정인데. 여기 강남에 있는 클럽이거든? 여기로 김 변호사님 좀 보내 줘!”

수정은 수한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게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수한의 뒤에 떨고 있던 수빈이 수정의 얼굴을 확인하고 조금 전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었다.

지금가지 있었던 일들을 들은 수정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고양이 상의 미녀인 수정은 화가 났을 때 나타나는 그녀만의 특징이 있었는데, 바로 눈꼬리 끝이 위로 올라간다.

이럴 때면 마치 앙칼진 고양이가 날을 세우며 쳐다보는 듯해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매력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그들은 파멸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그렇게 파멸한 남자들이 상당했다.

처음 파이브돌스가 연예계에 데뷔를 했을 때 멋모르고 그녀들을 어떻게 해 보려고 수작을 부리다 수정의 보복으로 파멸한 사람들이 꽤 되었다.

방송 관계자는 물론이고 이들을 스폰을 해 보겠다고 껄떡이던 노땅들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어디의 누군지 모를 잡것들이 자신의 친동생과 또 자신을 친언니처럼 따르는 수빈을 해코지 하려고 했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그냥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정은 자신의 할아버지나 큰아버지에게 연락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일단 자신의 소속사 사장인 고모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일단 수빈도 천하 엔터의 소속된 연예인이니 그녀에 대한 것도 논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수정은 수빈의 일도 생각해야 하기에 소속사인 천하 엔터 사장인 고모에게 전화를 하였다.

“얼마나 대단한 배경이 있어서 그렇게 큰소리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디 끝까지 가 보자!”

차갑게 빛나는 눈으로 수한을 협박하던 안기준을 보며 그렇게 소리쳤다.

사건은 참으로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처음 발정 난 수컷 한 마리의 욕정이 미친 짓이, 이제는 기업 간 파워게임이 되어 가고 있었다.

물론 문제를 일으켰던 유승민의 집안이 기업은 아니라고 하지만, 종합병원 원장인 그의 아버지를 생각하면 기업이나 마찬가지였다.

예전 의원은 인술(仁術)을 베풀기에 존경을 하고, 의원 또는 의사선생님이라 존경을 받았지만, 현재 병원은 그렇지 못했다.

돈이 있는 사람만 환자이고, 돈 없는 이들은 그들에게는 환자가 아닌 골치 덩이일 뿐이었다.

그런 것을 보면 요즘 종합병원도 기업이나 마찬가지로 이윤을 추구하는 곳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시간이 지나 천하 엔터의 고문 변호사가 클럽에 도착을 하였다.

이때부터 승민의 변호사와 수한과 수빈을 변호하기 위해 온 변호사 간의 설전이 벌어졌다.

물론 일방적으로 공격을 하는 것은 천하 엔터에서 나온 고문 변호사였다.

클럽에 도착을 하고 수한과 수빈에게 사건의 전반적인 내용을 전해 들은 변호사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한깟 여유 있는 모습으로 승민의 변호사인 안기준을 상대하였다.

“조금 전 제 의뢰인을 협박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아니, 제가 언제 협박을 했다는 것입니까? 그저 원만하게 합의를 보기 위해…….”

“원만한 합의를 당신은 그렇게 보시나 보죠?”

“저, 그게…….”

차분히 말을 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느긋하지 않게 안기준이 한 실수에 대하여 물고 늘어지는 고상현이다.

미국 하버드 로스쿨을 수료하고 워싱턴의 잘나가는 로펌에서 변호사를 하다 천하그룹 로펌에 스카우트 되어 한국에 들어온 고상현은 천하그룹 산하 로펌에 있으면서 그룹 이미지와 관련한 소송을 전담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천하 엔터와 자주 일을 하여 이렇게 소속사 연예인들이 연루된 사건을 보게 되었다.

이제는 직급이 있어 고상현 본인이 나오기보다는 다른 밑에 있는 변호사들이 왔을 일이지만, 전화를 건 사람이 천하그룹 회장인 정대한의 손녀이자 천하 엔터 정영화 사장의 조카다.

한마디로 그룹 직계가 연루된 사건이다.

일단 어떤 일에 연루된 것인지 알 수 없어 고상현이 직접 현장에 왔다.

그리고 사건 전반을 들어 보니 이쪽에서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연예인이 연루된 일이기에 외부에 어떻게 비춰지느냐에 따라 피해자이면서도 이미지가 추락할 수 있기에 생각을 깊게 해야만 하였다.

한편 뒤늦게 사건의 전말을 듣게 된 안기준의 표정은 썩은 돼지 간을 보는 듯 시커멓게 변했다.

‘하! 이 새끼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야?! 이렇게 사고를 쳐 놓고 나보고 어떻게 해결을 하라는 것인지…….’

안기준이 생각하기에 참으로 암담했다.

사고를 치려면 사람을 봐 가면서 쳐야지, 천하그룹과 연관이 된 사람을 상대로 사고를 쳤으니 안기준은 정말로 죽을 맛이다.

그냥 천하그룹 관계자만 되어도 어려울 판에 직계 가족을 건들었다.

그러면서도 저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기가 막혔다.

자신이 고문으로 있는 대일 병원이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다.

그렇지만 부유층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급 의료 서비스를 표방하며 정관계에 많은 인맥을 가지고 있는 꽤 영향력이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었다. 하나 재계 순위 30위 안에 들어가는 재벌가와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막말로 한 해 운영하는 자산의 규모 자체가 틀렸다.

저 망나니 같은 유승민은 그런 그룹의 직계를 건들고도 저렇듯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잠시 실례합니다.”

도저히 자신은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유승민의 아버지인 유인천 원장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 변호사의 모습을 보았는지 유승민의 표정이 심하게 구겨졌다.

안기준이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낯빛이 창백해졌다.

그제야 유승민도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보통 자신의 배경을 들으면 모든 것이 해결이 되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변호사가 나서면 만사형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언제나 든든했던 안기준 변호사도 꼬리를 내리고 밖으로 나가는 모습에 승민은 당황한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 유인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리 무섭고 그래도 자신이 사고를 쳤을 때 가장 기대는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였다.

어릴 때 어떤 사고를 쳐도 해결을 해 주었던 아버지니 이번에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하였다.

뚜뚜뚜뚜…….

수화기 너머로 통화 중 신호만 계속해서 들려왔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것인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덜컹!

밖으로 나갔던 안기준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고상현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모든 잘못은 저희에게 있음을 잘 알겠습니다. 피해보상을 할 테니 사건을 여기에서 마무리해 주십시오.”

처음 이곳에 나타났을 때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안기준이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미 이번 일로 소송이 걸리면 100% 지는 싸움이다.

그렇다고 상대가 연예인이 껴 있어 물러설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천하 엔터는 자사 소속 연예인이 부당한 피해를 입는 것에 거품을 물고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때문에 방송가에서 한때 천하 엔터 소속 연예인 기피 현상이 일기도 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대한민국 연예인들은 자신의 소속사와 계약 기간이 끝나면 천하 엔터에 전속 계약을 하러 오는 이들이 많았다.

천하 엔터로서는 많은 계약금을 주지 않고도 많은 특급 연예인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특급 연예인들을 많이 보유하게 되자 천하 엔터에 대한 방송국의 제재도 흐지부지 되었다.

이렇듯 자사 소속 연예인을 위해서라면 소송도 불사하는 천하 엔터라, 안기준은 유인천에게 연락을 하여 이곳 사정을 설명했다.

그럼으로써 유승민이 저지른 일을 자신이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음을 피력했다.

그리고 유인천 원장도 상대가 천하 엔터에, 천하그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아들을 포기하였다.

웬만해야 자신의 인맥을 통해서 뒤집기라도 하지, 천하그룹이 연루된 일은 아무리 자신의 인맥이라도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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