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코리아-36화 (36/118)

1. 차세대 주력전차의 기준

천하 디펜스의 회의장은 바늘 하나 떨어져도 울릴 정도로 조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천하 디펜스의 회장이 주재하는 회의도 아닌, 무려 천하그룹 회장인 정대한이 상석에 앉아 회의를 주도하고 있어서였다.

괜한 소란을 일으켰다가는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도 무엇을 먹었는지 천하 디펜스의 회장이자 자신의 둘째 아들인 정명환과 비교를 해도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두 사람을 보게 된다면 닮은 얼굴 때문에 형제라고 생각할 정도로 정대한 회장의 외모는 나이에 비해 젊었다.

“이건 국방부 공문이고, 이것은 육군이 요구한 차세대 전차의 스펙입니다.”

천하 디펜스의 이사인 정수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한 파일을 회의에 참석한 인원에게 넘겼다.

차세대 주력 전차 XK―3 성능 요구서.

화력 : 교전거리 2㎞에서 1,200㎜ 두께의 장갑을 파괴할

수 있어야 한다.

방어력 : 1㎞에서 120㎜포의 포탄에 관통되지 않아야 한다.

RPG나 대전차 미사일을 방어할 수 있는

소프트 킬(Soft Kill) 및 하드 킬(Hard kill) 시

스템을 갖춰야 한다.

기동성 : 최고 속도 70㎞ 이상, 야지 50㎞이상, 0~40㎞

를 4초 내에 도달할 수 있을 것.

파일을 열어 본 임원들은 내용을 확인하고 너무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다른 것은 다 넘긴다고 해도 방어력 부분에 나온 육군의 요구사항에 어이가 없었다.

미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군사강대국이 상정한 전차전 교리를 보면 현대의 전차전의 교전 거리는 1.5~2㎞로 본다.

그리고 이 교전 거리에서 적 전차의 주포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장갑을 요구하고 있었는데, 지금 대한민국 육군에서는 이런 강대국의 군에서 요구하는 요구치보다 월등한 장갑 방어력을 요구한 것이다.

막말로 화력 부문에서 요구한 2㎞에서 1,200㎜관통력을 가진 전차포의 공격을 1㎞에서 막으라는 말이었다.

압연강판 1,200㎜라는 말은 장갑의 두께가 1.2m라는 말이었다.

물론 이건 현대 전차에 쓰이는 장갑이 아닌, 2차 대전 당시 사용하던 압연강판 기준의 두께이기 때문에 현대전에 사용되는 세라믹 복합장갑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육군이 요구한 방어력은 한 마디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현존하는 최고의 전차로 알려진 미국의 M1A3나 독일의 레오파드2A7 그리고 러시아의 T―95의 공격을 1㎞에서 직격을 당하더라도 막을 수 있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회장님! 이건 말도 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육군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1㎞에서 120밀리 포를 막으라는 것입니까?”

파일을 확인한 임원들이 모두 불가능하다며 성토를 하였다.

임원들의 말이 있기 전 파일을 살펴본 정대한 회장도 같은 생각이었다.

천하 디펜스에서 그동안 축적한 노하우가 있다고 하지만, 육군에서 요구한 전차 성능을 내기 위해선 도저히 불가능하였다.

그동안 쌓은 기술이 있기에 일부 성능은 구현이 가능하겠지만, 2㎞에서 1,200㎜ 장갑을 관통하는 것과 1㎞에서 120㎜포에 직격을 맞고 버텨야 한다는 말도 되지 않는 성능 요구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아니, 화력 부문은 어떻게 독일의 메탈사와 협업을 하여 가져올 수 있겠으나, 1㎞에서 120㎜포의 직격을 맞고도 견딜 수 있는 장갑을 구현하는 것은 그 어떤 전차 개발업체도 구현하지 못한 기술이다.

그러니 천하 디펜스의 임직원이나 정대한 회장이나 다 인상을 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군에서 이런 요구를 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군이 주적으로 규정한 북한 때문인데, 북한은 2016년 많은 수의 신형전차를 동맹인 러시아로부터 수입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기존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노후화 된 전차는 개량을 하여 화력만큼은 대한민국이 보유한 전차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화력을 가지게 만들었다.

물론 그 정도라면 기존에 보유한 K―1전차나 그 개량형인 K―1A1 전차 그리고 주력 전차인 K―2흑표 전차로 충분히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나 러시아가 2015년 후반에 선보인 T―95전차로 인해 그러한 자신감은 사라졌다.

러시아가 자신들의 주력 전차를 경제 상황이 안 좋은 북한에 팔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모르는 것이다.

러시아의 주력 전차인 T―95는 그 성능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그동안 러시아를 주축으로 하는 공산주의 국가들의 전차보다 월등하다고 자부하던 서방 세계에 경종을 울렸다.

구현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140㎜주포를 장착하였고, 또 서방 세계의 전차들보다 방어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던 장갑의 성능을 동등하게 끌어 올렸다.

그러면서도 서방 세계에서 완벽하게 보완하지 못한 능동 방어 체계(Active Protection System)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적외선 탐지와 레이저 탐지는 물론, RPG나 대전차 미사일에 대한 방어까지 완벽하게 막아 낼 수 있는 시스템을 T―95는 갖췄다.

만약 이런 전차가 북한에 공여 된다면 대한민국은 육군 전력에서 북한을 압도한다고 말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이유로 육군에서는 주력 전차로 생산하던 불완전한 K―2의 생산을 중단하고, 보다 우수한 전차 개발에 나선 것이다.

육군에서 요구한 전차 방어력은 전적으로 러시아의 주력 전차인 T―95가 북한에 넘어갔을 때를 상정한 것이었다. T―95에 대한 방어력을 감안한 요구였다.

그러니 이런 육군의 요구가 무리하다고만 할 수도 없었다.

한편 회의실 한쪽에 자리 잡고 정수현이 넘긴 파일을 살피던 수한의 눈이 반짝였다.

사실 수한도 육군에서 요구한 전차 성능 요구서를 확인하고 놀랐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론 조금 안심이 되기도 했다.

육군이 무엇 때문에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한이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미국도 이런 문제로 대학 연구소에서 연구가 활발했다.

누가 뭐라 해도 현 세계 최강 대국은 미국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최강이라 떠들던 M1A3보다 월등한 성능의 전차가 경쟁국인 러시아에서 생산이 되었으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는가.

더욱이 먼저 실전 배치를 한 T―95보다 일 년이나 뒤늦게 실전 배치된 M1A3이 화력 측면에서 약간 부족했다.

더욱이 두 전차의 생산 단가도 러시아의 T―95가 적었다.

아니, 적은 정도가 아니라 절반 정도로 T―95가 저렴했다.

M1A3의 생산 단가가 700만 달러에 비해 러시아의 T―95는 400만 달러가 조금 안 되었다.

아무리 러시아의 경제 사정이 좋지 못하다고 하지만 충분한 숫자의 T―95를 실전 배치할 수 있었다.

물론 기존 T―90의 생산 단가에 비해 엄청나게 생산 비용이 들어가 많은 숫자를 생산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미국을 압도하기에는 충분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은 무너진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극비리에 4세대 전차를 개발하고 있었다.

러시아처럼 140㎜는 아니지만 140㎜ 화학포를 능가하는 레일건을 전차에 장착할 야심찬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만약 미국의 계획이 성공을 거둔다면 더 이상의 경쟁은 무의미해진다.

전차의 발달은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창으로 대변되는 주포의 구경과, 방패에 해당하는 전차 장갑의 개발의 싸움이었다.

주포의 성능이 떨어지는 공산 진영에서는 화력을 높이기 위해 주포의 구경을 늘렸다.

미국이나 독일을 주축으로 하는 서방에서 90㎜포를 개발하면 러시아를 필두로 한 동구권에서는 구경을 키운 100㎜포를 개발하였다.

그러면 다시 서방측에서 105㎜를, 그러면 115㎜를, 이런 식으로 화포의 화력을 키우는 경쟁을 하였다.

그런데 화학포의 정점이라는 130㎜포를 능가하는 140㎜주포를 러시아에서 개발을 하자 이를 능가하기 위해선 레일건이나 레이저 포 정도만이 가능하다는 서방의 과학자들의 주장에 따라 미국은 오래전부터 연구하게 되었다.

물론 미국이 레일건 연구나 레이저 포의 연구를 하는 것이 러시아와의 전차 개발 경쟁에서 뒤져서 그런 것은 아니다.

시대가 바뀌며 전쟁학자들 사이에서 전차 무용론이 대두되었기 때문에 전차를 연구하기보단 단번에 모든 걸 파괴할 수 있는 효율적인 미래 무기를 연구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미국의 계속되는 무역적자에 이른 국방 예산의 감축과도 연관이 있었다.

아무튼 수한은 미국이나 서방측이 어떻게 자국을 보호할 무기들을 개발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에 천하 디펜스의 임원들이 무리한 요구라 폄하하고 있는 요구서를 보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잠시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수한은 임원들이 육군의 요구에 불가능하다 떠들고 있을 때 그렇게 나서서 입을 열었다.

협력업체의 대표로 나온 수한이 발언을 하자 모두 수한에게 시선이 모였다.

“지금 우리는 육군이 요구한 이 차세대 전차에 대한 요구서대로 연구를 해야 합니다.”

수한의 말에 지금 수한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수한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떠들고 있기에 임원들은 젊은, 아니, 어린 수한이 아무것도 모르고 나선다 생각하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까?”

비록 수한의 나이는 어리지만 이곳에 협력업체의 대표로 참석을 한 것이기에 말을 하는 임원도 함부로 수한에게 말을 낮출 수 없었다.

“육군에서 이런 요구를 한 것은 러시아의 주력 전차인 T―95를 북한이 도입했을 것을 상정하고, 그에 대응하기 위한 차세대 전차의 방어력을 추산한 듯싶습니다.”

수한은 육군이 무엇 때문에 이런 터무니없는 방어력을 요구했는지 말하였다.

그런 수한의 답변에 이 자리에 있는 몇몇 임원들은 생각에 잠겼다.

이들도 천하 디펜스의 임원으로 각국의 무기들에 대한 정보는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있었다.

정대한 총회장이 천하 디펜스만의 힘이 아닌 천하그룹 차원에서 역량을 기울여 차세대 전차를 개발하겠다는 발표를 했을 때, 발 빠르게 정보를 모았다.

전 세계에 생산되고 실전에 배치된 각국의 주력 전차들의 성능을 알아보고. 또 그것을 보기 쉽게 파일로 정리하여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준비를 해야 가장 뛰어난 전차를 개발할 수 있는 밑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곳에서 예상이 빗나갔다.

설마 현대 전차전의 상식을 무시하는 성능을 원할 줄은 몰랐다.

그동안 방어력 요구 조건은 전부 교전 거리에서의 충분한 방어력을 갖는 것이었다.

그런데 육군에서는 아마도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승조원들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에 임원들과 정대한 회장까지 고민을 하는 중이다.

“사실 이런 육군의 요구가 무리한 것은 저도 알고는 있지만, 우리가 이미 국방부에서 발표한 차세대 주력 전차 개발에 뛰어들기로 했으니 육군의 요구를 수용해야 합니다.”

수한은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이런 수한의 말에 정대한 회장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회의장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수한은 수한대로 육군이 요구한 성능을 기반으로 전차를 구상해 보았다.

솔직히 K―2흑표 전차에서 실패한 능동 방어 체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이 완성되었다.

다만 흑표의 기본 설계가 잘못되어 구현된 능동 방어 체계와 설계에 들어간 다른 방비와 충돌을 하는 바람에 개량하지 못하였다.

이런 이유에서도 육군은 기존 K―2전차를 계속해서 생산하기보단 보다 완벽한 전차를 요구한 것이다.

더욱이 현대전의 양상은 예전 전쟁과는 다르게 펼쳐진다.

예전에는 대규모 병력끼리 힘 싸움을 하였다면, 현대전은 그렇지 않고 소수의 정예병들이 도시에 침투를 하여 전쟁을 치르는 소규모 시가전이 주축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전장에 동원되는 전투 장비들의 성능 요구도 그에 맞게 변했다.

그래서 미국은 차세대 전차의 크기와 무게는 줄어들고, 기존 120㎜의 전차포 역시 더 이상 화력을 늘리기 위해 구경을 키우는 경쟁을 하기보다는 시가전에 맞게 화력을 줄이는 대신 연속 발사가 가능한 속사포 내지는 발칸포로 바뀔 것이라 예상을 하였다.

하지만 이런 과학자들의 주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러시아에서 T―95라는 괴물을 만들어 내자 미국이나 독일 등 서방 국가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말았다.

과학자들의 예상은 소수의 정예병이 벌이는 시가전을 상정하고 전차의 존재 이유를 기존 육군 화력의 전면에서 전쟁을 주도하기보다는 시가전에서 약해진 아군의 화력 지원 정도로 보았다.

그러다 보니 과도한 화력은 시가전에 불필요하게 되었다.

보다 빠르게 발사하여 아군 보병을 지원하는 그런 전력, 높은 곳에서 저격을 하는 저격수에게서 아군을 지키기 위해 고각 사격을 할 수 있는 그런 발칸포를 탑재한 전차를 상정하고 연구를 하였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러시아는 기존 서방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막강한 화력과 방어력을 가진 주력 전차들을 단번에 파괴할 수 있는 전차를 개발해 실전 배치를 하였다.

더욱이 기존 러시아 전차와 다르게 화력만 강하고 방어력은 빈약한 전차가 아니었다.

방어력도 획기적으로 개량하여 교전 거리인 2㎞에서는 절대로 단번에 파괴가 불가능했다.

가장 장갑이 두터운 전면장갑뿐 아니라 비교적 얇은 측면 장갑까지도 기존 120㎜전차포로는 파괴가 불가능했다.

그러니 러시아와 인접한 독일이나 프랑스 등 국가는 물론이고, 이들과 동맹을 맺고 있는 미국도 발등에 불이 떨어져 T―95에 대응할 전차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직도 T―95를 능가하는 전차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UN에서 사용 금지한 무기인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하면 기존의 전차포로도 교전 거리에서 T―95의 장갑을 관통할 수 있다는 보고가 있기에 조금 여유를 가지고 새로운 전차포를 개발 중이기는 하다.

수한은 예전 미국에 있을 때 이미 이런 연구를 홀로 했다.

미국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논문을 쓸 때 이론은 완성해 두었다.

그러니 그것을 바탕으로 연구를 하다 보면 육군이 요구하는 화력의 전차포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며, 방어 장갑 또한 개발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였다.

어차피 전차포와 전차 장갑은 창과 방패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연구개발 되고 있기 때문에 시간만 주어진다면 충분히 이것 또한 구현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 ◈ ◈

영종도 인천 국제공항 탑승객 출구에 일본어로 환영한다는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사내들이 있었다.

“유 이사, 몇 시 비행기라 했지?”

일신 중공업 사장이자 그룹 전략 기획 실장인 신원민은 자신을 수행해 함께 나온 일신 중공업 영업 이사인 유인태를 보며 물었다.

오늘 신원민 사장이 인천 국제공항에 나와 있는 것은 일본에서 오는 혼타와 미쓰비 중공업의 대표들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대한민국 국방부에서 발표한 차세대 주력 전차 개발에 참여하기 위한 컨소시엄을 형성하였기에 오는 것이다.

일신그룹에서는 컨소시엄을 형성할 때 국내 여론의 질타를 막기 위해 혼타와 미쓰비란 이름을 전혀 쓰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이는 두 일본 기업이 너무도 잘 알려진 일본의 우익그룹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때에도 조선인들을 강제로 징집하여 노동력을 착취한 전력이 있는 기업들이라 더욱 이번 국방부에서 발표한 차세대 주력 전차 개발에 이들 일본 기업이 참여하게 된다면 일신그룹은 사업을 참여도 하기 전 여론에 밀려 사업을 중단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신상욱 회장은 두 기업에 양해를 구하고 완전 다른 이름으로 컨소시엄을 만들었다.

그리고 최대한 비밀을 지키기 위해 일신그룹에서는 사업을 총괄할 존재로 차기 회장에 가장 유력한 신원민 사장이 직접 혼타와 미쓰비에서 올 인사들을 데리고 가기 위해 인천 국제공항까지 나왔다.

“저기 나옵니다.”

신원민 사장의 질문에 출구에서 나오는 이들을 살피던 유인태 이사는 혼타와 미쓰비 중공업에서 올 대표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대답을 하였다.

이미 컨소시엄을 구성하기 위해 일본에서 한차례 협상을 하면서 얼굴을 익혔기에 유인태 이사는 출구에서 나오는 이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ようこそ(환영합니다)!”

일본어가 유창한 유인태 이사는 능숙한 일본말로 다가오는 혼타와 미쓰비의 대표들을 맞이하였다.

“いらっしゃい(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유인태의 인사에 일본어로 답하는 혼타에서 온 일본인과 다르게 미쓰비 중공업에서 온 마쓰모토 켄은 조금 어눌하기는 하나, 능숙한 한국어로 인사를 하였다.

그런 켄의 모습에 혼타에서 파견 나온 오다 이치로도 얼른 표정을 바꿔 한국어로 인사를 하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다 이치로의 한국어는 오히려 먼저 인사를 했던 마쓰모토 켄 보다 더 유창하여 일본인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오다 이치로의 한국어 인사에 마쓰모토 켄의 표정이 굳었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에 유인태 이사의 뒤에 있던 신원민 사장의 눈이 반짝였다.

비록 함께 오기는 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썩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세 회사의 대표들이 인천 국제공항 로비에 있기는 했으나, 각자 자신들이 속한 기업의 이익을 위해 온 것이라 그런지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일단 가시지요.”

혼타와 미쓰비 중공업어세 나온 이들이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을 깨달은 신원민은 유인태 이사에게 맡기려던 것을 철회하고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원래 일본어에 약한 신원민 사장이다 보니 이번 혼타와 미쓰비 중공업의 파견 인원을 맡는 일에 일본어가 유창한 유인태 이사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리고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그들을 전담하게 하려고 했는데, 두 회사에서 나온 이들이 한국어가 유창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직접 나섰다.

신원민 사장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공항을 빠져나와 준비된 차에 올라섰다.

이들이 탄 차는 공항을 빠져나와 이들이 묵을 백제 호텔로 향했다.

◈ ◈ ◈

일본에서 온 혼타와 미쓰비 중공업이 일신그룹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고 하지만, 아직 사업의 초반 단계라 굳이 한국에 장기 체류를 위해 숙소를 마련할 필요가 없어 호텔에 숙소를 잡았다.

백제 호텔이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호텔이라고 하지만, 어차피 이곳 역시 일신그룹 계열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방을 마련해 주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좋군요?”

당분간 자신들의 숙소가 될 방을 둘러본 오다 이치로 이사를 비롯한 혼타에서 파견 나온 일본인들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미쓰비 중공업에서 나온 이들 또한 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6성급 호텔은 전 세계에서도 그리 흔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비록 최고급인 펜트하우스는 아니나, 그래도 그 아랫 단계인 럭셔리룸을, 그것도 이들을 위해 한 개 층을 모두 이들에게 배정을 한 것에 일본인들은 만족감을 느꼈다.

그만큼 자신들이 한국에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혼타나 미쓰비 중공업의 이사급들이면 6성급 호텔에 묵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룻밤 숙박비 1,500만 원이 부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아무튼 공항에서 바로 호텔로 온 이들은 일단 간단하게 짐을 풀고 이른 저녁을 먹었다.

미리 준비된 것인지 식당에 당도하자마자 음식이 나왔다.

어떻게 보면 상대의 의중도 묻지 않고 음식을 주문한 것에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들어오는 음식을 접한 일본인들은 어느 누구도 불만을 토하지 않았다.

일본인들을 대접하기 위해 신원민 사장이 준비한 것은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참치 회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냉동 참치가 아닌 생 참치였다.

“혼마구로!”

음식 트레이 위에 놓인 커다란 생선을 보며 큰 소리로 감탄사를 흘렸다.

일본에서는 참치를 마구로 또는 혼마구로라 불렀는데, 지금 다가오는 참치의 크기는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참치가 아닌, 2m에 이르는 아주 커다란 놈이었다.

언뜻 봐도 시가로 1억이 넘어가는 엄청난 놈이었다.

참치가 최대 3m까지 자란다고 하지만, 지금 보이는 2m 짜리도 엄청난 것이다.

일신그룹에서도 천하그룹과 마찬가지로 이번 국방부에서 발표한 차세대 주력 전차 개발 사업에 총력을 기울였다.

일신그룹의 신상욱 회장은 눈에 가시와도 같은 천하그룹을 무너뜨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쓰러질듯 쓰러지지 않는 천하그룹을 보며 다각적으로 분석을 하였다.

솔직히 재계 순위를 봐도 10위권 안에 있는 일신그룹과 30위권에 있는 천하그룹이 대립을 하면 백이면 백 일신그룹이 우위를 점한다.

그렇게 10여 년을 싸웠으면 천하그룹은 30권이 아니라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거나 아니면 그룹이 해체가 되었어야 하지만, 천하그룹은 그렇지 않았다.

비록 20위권에서 30위권으로 순위가 밀려나긴 하였으나, 어차피 20위권 그룹이나 30위권 그룹의 차이는 별로 없었다.

시가총액에서 그리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신상욱 회장은 천하그룹이 자신들의 공격을 받고도 유지할 수 있는 원인을 분석한 결과, 유지되는 이유를 천하 디펜스라고 꼽게 되었다.

옛말에 무기 장사는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이상 망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래서 그런지 대한민국 방위 산업 부문에서 최고의 자리를 잡고 있는 천하그룹이다 보니 아무리 일신그룹이 다른 부문에서 눌러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신상욱 회장은 어떻게든 천하그룹에 타격을 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였다.

그 결과가 작년에 터졌던 불량 휴대용 미사일 사건이었다.

천하 디펜스의 정수현 이사가 주도한 이 휴대용 미사일 파문은 사실 신상욱 회장이 꾸민 음모였다.

일신그룹은 전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제삼자를 이용해 정수현 이사를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

로비스트를 이용해 허영심 많은 정수현을 함정에 빠뜨려 불량 무기를 구매하게 만들었다.

겉보기에는 멀쩡했지만 알맹이는 아니었다.

겉만 비슷하지 생산된 시기도 오래된 구형의 무기였다.

이미 수명이 끝난 무기였기에 당시 정수현 이사는 싼 가격에 무기를 수입하여 군에 납품을 하였다.

이 대문에 정수현은 국방부에 표창을 받기도 했지만 이게 모두 신상욱 회장의 음모였다는 것은 몰랐다.

그 때문에 작년 청문회를 통해 정수현이 도입한 무기들이 불량이고, 그중 작동되는 것들도 구형 무기라 북한의 기갑군단을 막을 수 없다고 알려지면서 무기를 수입한 정수현은 물론, 그가 몸담고 있는 천하 디펜스 그리고 모기업인 천하그룹까지 전 국민에 욕을 먹었다.

이렇게 천하그룹의 아성에 흠집을 내는 데 성공을 하였지만 발 빠른 천하그룹의 대처로 금방 무마가 되었다.

천하그룹은 수한이 건네준 설계도를 바탕으로 최신 무기를 저렴한 가격으로 군에 납품을 하였다.

정수현이 납품했던 외국에서 들여온 휴대용 미사일이 불량인 것을 감안해 정말로 저렴한 가격에 판매를 한 것이다.

이로써 천하그룹은 실수를 만회하게 되었고, 전 세계에서 휴대용 미사일을 개발한 다섯 번째 국가로 위상을 높였다.

더욱이 천하디펜스에서 생산해 납품한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은 현존하는 대전차 미사일 중 가장 강력한 것이라는 것이 실험 결과로 나왔기에 군에서는 더욱 좋아하였다.

일신그룹은 자신들과 척을 지고 있는 천하그룹을 누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아 천하그룹을 예의 주시하였다. 그런데 다시 한 번 기회가 왔다.

국방부에서 발표한 차세대 주력 전차 개발 사업에 천하그룹이 그룹의 사활을 걸고 총력을 기울인다는 정보를 습득하자마자 궁리를 하였다.

어떻게 하면 천하그룹을 쓰러뜨리거나 아니면 회복 불능의 상태로 만들 수 있을지 말이다.

물론 그러면서도 실패를 하여도 피해가 적어야만 했다.

방위 사업이라도 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많은 자금을 들여 무기를 개발했는데, 정작 군에서 도입을 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것이 되는 거다.

일반적인 상품처럼 다른 곳에 판매를 할 수도 없는 것이 바로 무기다.

더욱이 자신들은 천하그룹에 비해 무기 개발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했다.

그러니 실패했을 때의 그룹이 받아야 할 데미지를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컨소시엄이 중요했다.

그래서 자신보다 기술력도 좋고, 자금력도 좋은 혼타와 미쓰비 중공업을 이번 사업에 끌어들였다.

두 회사를 끌어들임으로써 일신그룹은 천하그룹과 경쟁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거기에 자신들의 로비 실력을 갖춘다면 경쟁은 하나 마나였다.

그러니 초청한 혼타와 미쓰비 중공업에서 온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일신에서는 무려 2억이나 주고 괴물급 참치를 구입해 대접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런 일신그룹의 예상대로 거대한 참치가 들어오자 일본인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호텔 주방장이 직접 거대한 참치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부위 별로 나오는 참치 회를 즐기는 일본인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어렸다.

◈ ◈ ◈

“식사는 즐거우셨습니까?”

이미 식당에서 일본인들의 표정을 다 봤으면서도 신원민 사장은 숙소로 올라와 물었다.

“신 사장님, 오늘 저녁 정말로 좋았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마구로는 처음입니다.”

마쓰모토와 오다 이치로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엄지를 치켜들며 칭찬했다.

그런 두 사람의 반응에 신원민도 미소를 지었다.

만족스런 식사 후라 그런지 다들 표정이 좋았다.

신원민 사장은 분위기가 좋은 것을 보고 본격적으로 회의를 주도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이 일찍 저녁을 먹은 것은 천하그룹에서 그랬듯 이들도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뛰어든 차세대 주력 전차 개발에 대한 육군의 성능 요구서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회의가 시작되자 조금 전 좋았던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차가워졌다.

“아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가장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미쓰비 중공업의 마쓰모토 이사였다.

그가 먼저 말을 한 것은 바로 미쓰비 중공업에서 담당해야 할 부분이 바로 전차 장갑과 전차포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1㎞에서 1,200㎜이상의 방어력을 내려면 얼마나 두꺼운 장갑을 둘러야 할지 감당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방어 능력을 키우기 위해 장갑의 두께를 늘리면 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다른 요구 사항을 맞출 수가 없었다.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장갑의 두께를 두껍게 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전차의 중량을 늘린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되면 전차의 기동성이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전차에는 이상적인 톤당 마력이란 것이 있다.

이 톤당 마력이란 것은 기동성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최고의 방어력을 가질 수 있는 무게를 말하는 것으로, 현존하는 최고의 전차로 잘 알려진 독일의 레오파드2A7의 톤당 마력이 24.1마력이다.

또 독일의 레오파드2A7과 함께 최고의 전차로 거론되는 미국의 M1A3도 톤당 마력은 24.5 정도였다.

이렇듯 최고의 전차를 생산하는 선진국의 경우 대부분 이렇게 톤당 마력을 24~25로 맞춘다.

그래야 전차의 최대 장점인 화력과 기동성 그리고 장갑 방어력을 동시에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러시아의 전차들은 톤당 마력이 이보다 높다.

하지만 이건 러시아 전차들이 독일이나 미국의 전차보다 중량이 적게 나가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러시아 전차들은 중량이 적게 나가 톤당 마력이 27~28까지 나오는데, 대신 장갑 방어력이 약해 타격을 받았을 때 승조원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육군도 독일이나 미국처럼 화력과 기동성 그리고 장갑 방어력까지 갖춘 그런 전차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최신 전차인 T―95의 화력에서 승조원들이 안전할 수 있는 엄청난 방어력을 요구하였다.

이러니 지금 미쓰비 중공업의 마쓰모토 이사가 흥분을 하는 중이다.

물론 마쓰모토 이사가 먼저 나섰기에 혼타의 오다 이치로 이사도 묵묵히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지, 아마 마쓰모토 이사가 나서지 않았다면 아마 그가 나섰을 것이다.

그만큼 대한민국 육군이 요구한 성능은 터무니없었다.

“물론 저희도 육군이 너무 과도한 성능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신원민 사장은 아직 육군이 요구한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지만, 흥분한 마쓰모토 이사의 모습에서 육군이 무리한 요구를 했다고 생각하며 그리 대답을 하였다.

“그렇지만 육군의 요구를 마냥 잘못되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군이 이렇게 요구한 것이 혹시 북한에 들어갔을지 모르는 러시아의 T―95 때문이라고 합니다.”

화를 내는 마쓰모토 이사나 말은 하지 않지만 얼굴을 붉히고 있는 일본인들의 모습에서 신원민은 생각지도 않은 애국심이 발생하였는지 육군이 했던 말을 변명처럼 이들에게 하고 있었다.

사실 이 문제는 군 내부에서도 말이 많았던 사항이었다.

기동성 요구 사항을 충족하려면 전차의 중량을 늘리면 안 된다.

그렇다고 기동성을 위해 중량을 가볍게 해서는 T―95의 화력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2㎞에서 1,150㎜의 관통력을 보이는 T―95의 전차포에게 승조원을 보호하기 위해선, 보다 강력한 장갑 방어력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무리하게 성능 요구서에 그러한 점을 집어넣은 것이다.

사실 2㎞에서 장갑 방어력 1,200㎜를 구현하는 것도 현재 가지고 있는 기술로 간신히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절반의 거리에서 조건을 충족하라는 말은 적어도 장갑 방어력이 1,300㎜ 이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무게가 엄청 무거워질 것은 당연했다.

혼타의 오다 이치로 이사는 그것을 감안해 자신들이 개발해야 할 전차의 엔진에 대하여 생각을 해 보았다.

‘음, 장갑 방어력을 생각하면 전차의 무게는 70톤 후반에서 80톤 정도 될 것이다. 그러면 톤당 마력을 24에 맞춘다고 계산하면…….’

자신들이 담당한 부분인 전차 엔진에 대하여 생각을 하던 오다 이치로는 고개를 흔들었다.

‘불가능해!’

대한민국 군이 요구한 전차의 모든 조건을 감안하고 엔진을 개발한다면 최소 1,900마력 이상 되어야 했다.

이는 말 그대로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더욱이 전투 중량을 생각하면 최소 2,000마력은 되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아무리 자신이 근무하는 혼타가 강력한 엔진을 개발할 능력이 있다고 하지만 2,000마력 이상의 전차 엔진을 개발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일신, 혼타, 미쓰비 컨소시엄도 이렇게 천하그룹에서 했던 고민들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대한민국 육군이 요구하는 차세대 주력 전차의 성능은 쉽게 구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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