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코리아-31화 (31/118)

4. 따라다니는 시선

“정신을 어디에 두고 있는 것이야!”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로 수술실은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꺼! 꺼!”

수술을 집도하던 의사나 간호사는 물론이고 촬영을 하고 있던 감독도 정신이 없었다.

“김 간! 응혈제 가져와! 뭐해!”

의사는 아직도 자신의 실수에 당황하고 있는 간호사에게 소리쳐 정신을 차리게 하며 수술 중 실수로 혈관을 다치게 하였을 때 사용하는 응혈제를 가져오라고 지시를 내렸다.

“네네.”

간호사가 응혈제를 가지러 수술실을 빠져나가고 수술실은 수빈의 다리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어떻게든 막기 위해 분주했다.

“선생님! 그것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까?”

수술 장면을 찍고 있던 감독은 문득 수술 도구 카트 위에 있는 치료제를 가리키며 물었다.

감독의 말에 의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의사는 감독의 말에 그제야 자신이 지금 어떤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는지 생각이 났다.

지금까지 의사는 자신이 광고를 찍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수빈의 수술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사고가 터지자 본능적으로 그동안 수술실에서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매뉴얼대로 행동을 했다.

그런데 감독의 말에 자신이 제약사에서 나온 신종 외상 치료제를 선전하기 위한 광고를 찍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수술에 들어가기 전, 아니, 광고를 찍기 전 제약사로부터 이 외상 치료제의 효능과 성분에 관해 들어 모두 숙지하고 있었다.

인체에 무해한 생약 성분으로 되어 있으며 기존 외상 치료제보다 효과가 탁월해 10배 이상 빠르게 상처를 치료한다고 하였다.

그 원리가 세포에 영양을 공급해 세포 분열을 활성화 시키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라 들었다.

이것까지 생각이 난 의사는 망설임 없이 조금 전까지 사용하던 라이프제약의 외상 치료제를 듬뿍 손에 찍어 조금 전 메스가 떨어져 찔린 상처에 도포하였다.

치료제가 상처에 도포가 되자 사청에서 새어 나오던 피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비록 피가 배어 나오던 상처이긴 하지만, 예리한 메스에 찔린 상처면서 그리 큰 상처는 아니어서 그런지 치료제가 상처 부위를 덮자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았다.

의사는 그 모습에 어차피 화상 부위도 수술을 끝낸 상태였기에 차분히 그곳에도 치료제를 도포하기 시작했다.

상처와 화상을 수술한 곳 모두 약을 바른 의사는 보조하던 간호사가 자리에 없기에 손수 카트에서 붕대를 가져와 상처에 오염 물질이 감염이 되지 않도록 정성 들여 감았다.

한순간의 실수로 큰일을 치를 뻔한 의사는 붕대 감기가 끝나자 온몸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털썩!

“괜찮으십니까?”

의자가 자리에 주저앉자 감독은 그 모습이 걱정이 된 것인지, 아니면 더 이상 촬영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걱정이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감독의 물음에 의사는 대답 대신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 ◈ ◈

한편 수술실 촬영 장면은 수술실에 들어가는 사람을 최소한으로 해야 하기에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환자를 뺀 인원은 감독과 카메라 감독뿐이었다.

그렇기에 수술실 밖에서 촬영 스텝은 물론이고, 수한, 그리고 파이브돌스 전원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파이브돌스가 대기를 하는 것은 광고 촬영이긴 하지만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에 오른 동생이 걱정된 예빈 때문이었다.

대기실에서 촬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도 될 일이지만, 동생이 걱정된 예빈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초조하게 수술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수술실 안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수술실 안에서 소란이 일자 예빈은 불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괜히 자신이 억지로 수빈을 위험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덜컹!

예빈이 불안해할 때, 수술실 안에서 간호사가 나왔다.

수술실에서 아직 수술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간호사가 나오자 예빈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무슨 일이에요?”

창백한 얼굴의 예빈은 불안한 목소리로 간호사에게 질문을 하였다.

하지만 간호사는 예빈의 질문에 답을 하기보단 자신을 붙잡는 예빈을 떼어 내며 자신의 갈 길만 갔다.

그 모습에 복도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 벌어진 거야!”

“사고가 난 건가?”

스텝들이 모여 떠드는 소리에 예빈의 표정은 더욱 나빠졌다.

“언니, 너무 걱정하지 마. 별일 아닐 거야.”

“그래, 예빈아 별일 아닐 거야.”

간호사가 현장을 떠나고 아직도 수술실 안에서는 어떤 말도 없기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수술실 앞을 지켰다.

그런데 잠시 뒤 수술실 불이 꺼졌다.

“언니, 수술이 끝났나 봐!”

루나는 불안에 떨고 있는 예빈을 달래고 있다가 수술실 입구에 켜져 있던 수술중이란 푯말에 불이 꺼진 것을 보며 말했다.

루나의 말에 모든 사람들이 수술실 문 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불이 꺼진 수술중이란 간판이 보였다.

“잠시만 비켜 주세요.”

조금 전 떠났던 간호사가 뭔가를 들고 수술실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간호사의 말에 수술실 앞에 있던 사람들이 자리를 비켜 주었다.

사람들이 길을 비켜 주자 간호사는 순식간에 빠른 걸음으로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간호사가 안으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동식 침대에 누운 수빈이 밖으로 나왔다.

동생이 수술실을 나오자 예빈은 얼른 동생의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수빈아! 괜찮아? 괜찮은 거야?”

“언니, 나 괜찮아.”

비록 안에서 사고가 있기는 했지만 마취가 되어 있었기에 정작 수빈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자신의 주변에 있던 의사나 간호사 그리고 수술 장면을 촬영하고 있던 감독이 수선을 피우는 모습을 수술대 위에 누워 지켜보았을 뿐이다.

당시에는 그 모습에 느낌은 없었지만, 잘못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기는 했다.

하지만 곧 수습이 되었기에 지금은 사고에 대하여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은 별다른 느낌이 없는데 너무 걱정을 하는 언니 때문에 수빈은 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언니를 보며 밝게 웃어 주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데. 이제 앞으로 경과만 지켜보면 된다고 했어.”

“그래 잘됐다, 잘됐어…….”

“언니 울지 마, 왜 울어.”

예빈은 침대에 누워 있는 동생을 보며 울었고, 그런 언니의 모습에 수빈은 붕대를 감은 손으로 예빈의 볼을 쓰다듬으며 언니를 달랬다.

“잠시만 비켜 주세요. 병실로 이동하겠습니다.”

간호사는 복도가 혼잡해 침대를 옮길 수가 없자 그렇게 말을 하였다.

침대를 붙자고 동생과 이야기를 하는 예빈 때문에 수빈이 누워 있는 침대가 병실로 이동을 못 하자 수정이 다가와 예빈을 붙잡았다.

“예빈아, 우선 수빈이 병실로 옮기고 우리도 수빈이 병실로 가서 남은 이야기 하자.”

수정은 침대를 붙잡고 있는 예빈을 달래며 수빈이 빠르게 병실로 이동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수빈이 누운 침대가 빠르게 복도를 지나 병실로 이동을 하였다.

그리고 그 뒤로 수술을 마친 의사가 지나가고 마지막으로 수술 장면을 촬영하던 감독과 카메라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수술실을 빠져나왔다.

“오늘 촬영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오후 2시에 촬영을 할 것이니 늦지 않게들 와!”

감독은 복도에 대기하던 스텝들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 카메라 감독과 함께 이야기를 하며 복도를 빠져나갔다.

한편 복도에 파이브돌스와 함께 있었던 수한은 조금 전 수술실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혹시나 그 일이 나중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싶은 마음에 감독을 따라나섰다.

“저, 감독님! 잠시 이야기 좀 하시지요.”

수한은 감독을 따라나서며 카메라 감독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감독에게 말을 걸었다.

◈ ◈ ◈

서울남부 구치소.

늦은 밤, 한 남자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하,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이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그 남자는 멍한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자신의 미래를 생각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풍족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입사했다.

직장 내에서도 줄을 잘 서 다른 동기들보다 빠르게 진급을 하였고, 직장인들의 꿈이라는 이사에 등재되고 상무, 그리고 급기야 전무의 자리까지 올랐다.

물론 그 자리까지 오르는 동안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과장, 부장까지야 노력으로 오를 수 있었지만, 평범한 직장인이 오를 수 있는 것은 부장까지가 한계.

그 때문에 자신은 더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고 입신양명을 위해서라면 모든 일을 하였다.

그래서 대기업 계열사인 일신제약에서 전무의 자리까지 올랐는데,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평소처럼 경쟁 업체를 음모를 꾸며 함정으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고 했던가.

자신이 꾸몄던 음모에 빠졌던 경쟁업체는 엉뚱한 놈이 끼어들어 가로챘다.

그 건만 해결되었다면 부사장의 자리도 어렵지 않았는데, 그놈 때문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아니, 수포로 돌아갈 뻔했던 일을 기지를 부려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자신의 불행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위기를 넘긴 것에서 멈춰야 했는데,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일을 망친 놈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조폭에게 의뢰를 하였다.

그렇지만 무슨 일인지 조폭은 자신의 의뢰를 위약금까지 물어 가며 포기를 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것이 기회란 것을 알지 못했다.

이미 흥분한 자신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조폭이 포기한 일을 양아치들을 이용해 세우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 일이 자신을 파멸로 이끌지는 그때는 몰랐다.

“제길, 그놈이 로열 패밀리였을 줄이야!”

너무도 억울했다.

설마 자신이 납치해 보복하려던 사람이 대한민국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힘을 지닌 로열 패밀리의 일원이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더욱이 여타 로열 패밀리와 다르게 개인적으로도 무척이나 싸움을 잘했다.

그대 자신이 한 대라도 때렸다면 지금 억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신은 양아치들을 동원하기 위해 돈도 쓰고 보복의 대상이었던 그놈에게 폭행도 당하고 또 잘나가던 직장도 잃고, 모아 두었던 재산도 피해 보상이란 명분으로 모두 날렸다.

더욱이 이제는 자신이 사주한 일 때문에 감옥에 가야만 했다.

예전 같았으면 자신의 배경으로 인해 집행유예로 풀려나거나 보석으로 풀려났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현재 자신의 처지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가진 재산은 그놈과 또 자신의 직장이던 일신제약에 피해 보상이란 명목으로 거덜이 났다.

그 때문에 부인은 이혼을 신청을 하였고, 자식들은 연을 끊었다.

“제길, 난 끝났어! 내 인생은 쫑 난 거야!”

쿵! 쿵! 쿵!

침대에 누워 멍하니 자신의 일을 생각하던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별안간 벽에 대고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야 이 X발놈아! 잠 좀 자자!”

그가 떠들고 벽에 머리를 박는 소리에 깼는지 또 다른 구치소 감방에 자고 있던 누군가가 소리쳤다.

한편 남자가 한탄을 하고 있을 때, 같은 방구석에 누워 있던 한 남자가 조용히 눈을 떴다.

불도 없어 어두웠지만 그 남자는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머리를 박던 김장근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감방 안에 몇 명의 죄수들이 있기는 했지만 다른 이들은 이미 잠이 깊게 들었는지 김장근의 소란에도 약간의 코까지 골고 있었다.

눈을 뜬 남자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자들이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멍하니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김장근의 뒤로 접근을 하였다.

그가 자신의 등 뒤로 접근을 하고 있었지만 김장근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벽에 이마를 붙이고 있을 뿐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벽에 기댄 김장근의 뒤통수를 노려보던 남자는 손을 뻗었다.

손을 뻗은 남자는 한 손으로 김장근의 입과 턱을 한꺼번에 잡고 다른 손으로는 교차해 반대쪽 머리를 감싸듯 잡았다.

“읍!”

한밤중에 누군가 자신의 뒤를 잡고 입을 틀어막자 김장근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입이 막았기 때문에 큰 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우두둑!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김장근의 몸이 쭉 늘어져 버렸다.

사내는 김장근의 머리를 잡고 반대로 순간 돌려 버렸다.

영화에 나오는 특공대나 암살자가 사람을 소리 없이 죽일 때 목을 비틀어 죽이듯 그렇게 목을 비틀어 단숨에 김장근의 목숨을 거둬들인 것이다.

사내는 늘어지는 김장근의 몸을 붙잡아 소리가 나지 않게 눕혀 끌었다.

그가 김장근의 시체를 끌고 간 곳은 감방의 철창이 있는 곳이었다.

철창 근처로 김장근의 시체를 끌고 온 그는 김장근이 입고 있던 죄수복 상의를 벗겼다.

그리 그것을 길게 찢었는데, 작은 소음이 있었지만 이미 깊게 잠이 든 다른 죄수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찢은 천으로 밧줄을 만든 사내는 그것으로 올가미를 만들어 철창에 걸었다.

그리고 비틀린 김장근의 목뼈를 맞추고 김장근의 몸을 들어 올가미를 목에 감았다.

지금 그가 하려는 것은 자신이 죽인 김장근을 자살로 꾸미려는 것이었다.

내일 아침에 김장근의 시체를 확인한 사람들은 그가 타살이 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잠든 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자신의 죄수복을 가지고 밧줄을 만들어 철창에 목을 매달아 자살한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물론 자세히 과학수사를 한다면 흔적이 남을 수도 있다.

그 또한 이미 손을 써 두었다.

이곳 구치소는 물론이고, 경찰, 검찰에까지 남자를 돕는 손길이 있었다.

그러니 조사가 들어가더라도 사내는 드러나지 않을 것이고, 김장근의 사인은 비관 자살로 결론이 날 것이다.

모든 일을 끝낸 사내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가 잠을 청했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 사람을 죽이고 그것도 타살이 아닌 자살로 꾸며 놓고 같은 공간에 잠을 청한다. 정말이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었지만, 경찰이 조사를 하여 타살이라 판명돼도 범인이 같은 방 죄수라고는 생각지 못할 것이다.

물론 초기에는 용의선상에 오를 수는 있지만 범인의 키나 체형을 보면 김장근을 죽이고 자살로 꾸밀 정도로 힘이 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금방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것이 분명했다.

범인은 이런 모든 것을 감안하고 감옥에 들어온 것이기도 했다.

이것만 봐도 범인이 단순한 범죄자가 아닌, 전문적인 킬러임을 알 수 있었다.

‘한 가지는 처리했고, 이제 하나 남았다.’

범인은 자리에 누우며 그렇게 생각을 하였다.

이 남자가 의뢰를 받은 일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김장근의 죽음이고, 남은 하나는 김장근을 감옥에 보낸 정수한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김장근과 다르게 정수한의 처리는 무척이나 신중하게 생각을 해야 할 일이다.

그 본인도 무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본인 모르게 경호원들이 지근거리에서 따라다녔다.

경호업계에서 최고인 천하가드 소속의 1급 경호원들이 붙어 있었다.

그렇지만 사내에게는 경호원이 있더라도 상관이 없었다.

의뢰인은 타깃이 어떻게 죽든 상관이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저 목표의 죽음이 의뢰인의 최종 목적이었기에 사내에게도 이번 의뢰는 무척이나 쉬운 의뢰였다.

◈ ◈ ◈

“네, 알겠습니다. 의뢰비의 절반을 계좌로 입금하겠습니다. 마무리도 잘해 주시리라 믿겠습니다.”

탁!

료코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차가운 눈빛으로 창밖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추스르고 지사장실에 노크를 하였다.

똑똑!

“지사장님, 료코입니다.”

노크를 하자 안에서 들어오라는 말이 들려왔다.

“들어와!”

딸칵!

“무슨 일이지?”

“한국에서 X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우선 상무님을 곤란하게 만든 일신의 그자를 먼저 처리했다고 합니다.”

하야시 지사장은 료코의 보고에 고개도 돌리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그런 하야시의 모습에도 료코는 표정 변화 없이 보고를 계속하였다.

“정수한은 현재 그를 보호하는 세력이 있어서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합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하지만 너무 늦어져서는 안 돼.”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자신의 지시에 이유를 달지 않고 언제나 헌신적인 료코의 모습에 하야시는 인도네시아지사로 좌천이 되어 온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해소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미 이곳으로 오면서 부인과는 이혼을 하였다.

그렇기에 현재 하야시 지사장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약간의 재산과 인도네시아지사장이란 직함뿐이었다.

사실 이혼을 요구한 것도 하야시가 아닌 그의 부인이었다.

뭐 어차피 정략에 의한 결혼이었기에 이혼을 한 것은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자식들까지 자신을 외면할지는 정말로 몰랐다.

그 때문에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곁에 남은 료코로 인해 금방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식어 가던 젊은 날 야망에 불타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야시는 들여다보던 서류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어 보고를 하던 료코를 보더니 조용히 손짓을 하였다.

하야시의 손짓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는 료코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더니 표정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료코는 지사장실 문을 잠그고 하야시 지사장의 곁으로 걸어가며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 ◈ ◈

“음, 누구지?”

수한은 요즘 누군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기다 누구인지 알아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면 어떻게 알았는지 기운을 숨기는 것이었다.

그로 보아 절대 평범한 사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법을 사용해서 추적을 할까도 궁리해 보았지만, 사람들이 많은 대도시에서 마법을 이용해 관찰자를 찾아낸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억지로 하려고 한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한들 찾는 데 들어가는 노력에 비해, 얻는 건 너무도 미비했다. 효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한에 있어 너무도 비이성적이고 비실용적인 행위였다.

그렇기에 자신을 주시하는 시선의 주인공이 언젠간 용무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앞에 나타날 것이라 판단하고 찾는 것을 그만두었다.

오늘도 퇴근을 하고 자신을 보자는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연구소를 나오는데, 역시나 그의 감(感)에 관찰자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수한은 금방 자신을 주시하는 시선에 관심을 끊고 목적지를 향해 출발을 하였다.

수한의 차가 떠나고 연구소에서 조금 떨어진 모텔의 한 객실의 창문이 닫혔다.

모텔의 창문을 닫은 남자는 모텔을 나섰다.

들어온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체크아웃을 하는 그를 이상하게 볼 수도 있었지만 모텔 측에서는 오히려 감사했다.

모텔의 입장에서 손님이 일찍 체크아웃을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손님을 들일 수 있다는 말이기에 그가 나가자마자 바로 청소를 하고 손님을 받았다.

◈ ◈ ◈

“혼자서 처리하기에는 그자를 따라다니는 경호원이 여간 신경이 쓰이는군.”

프로 해결사인 X는 두 가지 의뢰를 받았다.

돈만 주어진다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그이기에 한꺼번에 두 가지나 되는 의뢰를 흔쾌히 승낙했다.

그가 판단하기에 의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두 가지 의뢰 모두 타깃을 죽이면 되는 일이었다.

의뢰의 내용은 둘 모두 자살한 것처럼 꾸며서 타살의 흔적을 남기지 말라는 것이었지만, 여의치 않으면 그냥 죽여도 된다고 하였다.

의뢰에 옵션이 붙었기에 일을 끝내고 나면 추가 비용도 받을 수 있어, 그에게 있어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온 괜찮은 일이었다.

첫 의뢰를 처리하는 것은 너무도 쉬웠다.

이미 타깃이 어디 있는지도 알고 있었기에 적당한 명분을 만들어 타깃의 근처로 가면 되었다.

이미 내부에는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어 들어가는 것은 일도 아니다.

대기업 간부였다는 그자의 처리는 너무도 간단했다.

그자의 사인은 비관 자살로 결론이 났다.

이제 남은 것은 21살의 어린 청년이었다.

타깃을 처리하기 전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느끼기에 참으로 죽이기 아까운 청년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그것이고 자신은 가족을 위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돈이 없으면 사람을 사람 취급을 해 주지 않았다.

처음 대한민국에 왔을 때만 해도 자신은 가족과 함께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감시도 없고 어디를 가든 사상 교육이나 조사를 받을 필요도 없는 행동에 자유가 있는 나라였다.

그 때문에 자신과 가족은 꿈과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자유가 주어진 반면 그 책임도 혹독했다.

가족이 탈북을 하고 이곳에 정착을 하면서 받은 정착 자금을 사기 당했다.

그 뒤부터였다.

자신의 가족들이 힘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사기를 당하고 난 뒤부터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꿈에 그리던 따뜻한 나라가 아니란 것을 알았다.

돈이 없으니 북이나 남이나 똑같았다.

무엇을 하려고 해도 돈이 우선이었다.

아파서 병원에 가도 돈이 없으면 치료를 받을 수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억양이나 말투가 한국 사람들과 다르다 보니 바라보는 시선도 무척이나 냉담했다.

막노동도 나가 보았다. 하지만 하는 일에 비해 그리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다.

하지만 우연히 해결사란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 북에 있을 때, 알고 지내던 사람의 소개로 흥신소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들이 하는 일이 다른 사람의 의뢰를 받아 그 일을 처리하면 끝이었다.

별로 힘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하는 일에 비해 받는 돈은 참으로 많았다.

흥신소에 다니며 일을 배웠다.

북에서 하던 일에 비해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북한의 특수부대인 해상 저격여단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아무리 힘든 일이나 의뢰도 자신이 특수훈련을 받은 자신에게는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의뢰 중 가장 돈이 많이 되는 건 이번처럼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다.

자신처럼 탈북자 출신의 해결사가 한국에 생각 보다 많았고, 또 그 출신들도 자신과 같은 해상 저격여단 출신도 있고, 경보여단 출신도 있었다.

자신을 흥신소에 소개해 준 사람은 자신과 같은 해상 저격여단 출신이었다.

아무래도 이번 의뢰는 그와 함께해야 할 듯싶었다.

아무리 돈이 좋아도 내가 죽으면 모두 쓸모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를 자신의 방수로 불러 타깃을 경호하는 경호원을 타깃에게서 떼어 놓아야 의뢰를 마칠 수 있지 않겠는가?

“리 동무! 나 곽이오.”

자신을 도와줄 방수를 섭외하기 위해 그에게 전화를 건 곽철헌은 용건을 말했다.

“돈을 벌 수 있는 건수가 있는데 함 하지 않갔어?”

아직 그가 이 일을 할지 아니면 거절할지 모르기에 자세한 내용이나 금액은 말하지 않았다.

“알갔어! 그럼 1시간 뒤 모란각에서 보자우!”

곽철헌은 금천구에 있는 북한 음식 전문점인 모란각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모란각은 탈북자 중 한 명이 운영하는 음식점으로 정통 북한 음식을 만들어 팔기에 탈북자든지 6.25 때 피난 온 실향민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곽철헌이 동향 사람인 리철명을 만나기에 의심을 사지 않는 장소 중 한 곳이 바로 이곳 모란각이었다.

사실 곽철헌이나 리철명 같이 북한 특수부대를 나온 이들은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의 감시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북한을 탈출해 대한민국에 들어오면서 국가정보원에서 여러 가지 조사를 받고 또 적응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사회로 나오기 전 한 가지 다짐을 받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북한 특수부대원 출신들은 한곳에 모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만약 이들이 모여 사고를 치게 된다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한민국 경찰 특공대가 있고, 또 수도 방위사단이 있다고 하지만, 사고가 난 다음 수습을 하는 정도일 뿐이지 대비할 수 없기 때문에 국정원으로서는 이들의 행동에 제한을 둔 것이다.

곽철헌도 이런 국정원의 말에 수긍을 하고 최대한 피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것이다.

다른 탈북자가 어디 출신인지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 아닌가.

물론 말을 하지 않더라도 분위기만 봐도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지만 어찌 되었든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선 방수가 있어야 하기에 국정원의 감시를 피해 그를 만나야 했다.

◈ ◈ ◈

스르륵!

“어서 오세요.”

곽철헌이 음식점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에서 식당 직원이 맞이하였다.

“나 곽철헌인데, 혹시 나 찾는 손님 안 왔니?”

모란각의 단골인 철헌은 자신의 얼굴을 알고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그가 찾는 손님은 1시간 전 전화 통화를 한 리철명이 도착을 했는지 알아보기 위한 질문이었다.

“예, 조금 전 두 사람이 와서 매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직원은 곽철헌의 질문에 그를 찾아온 손님이 있는 곳을 안내하였다.

그런데 곽철헌은 직원의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자신이 통화를 한 사람은 리철명 한 명뿐인데, 두 명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의문이 들었다.

‘음, 리철명이 아닌가? 그럼 누구지?’

곽철헌은 지금 하는 일 때문에 신경이 무척 예민해져 있었다.

지금까지 조심을 했는데, 자신이 실수한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실수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 누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만나 봐야 어떻게 할 것인지 판단이 설 것 같았다.

혹시 국정원에서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나온 것일 수도 있기에 일단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입구에 매(梅)라는 푯말이 붙어 있는 방 입구에 섰다.

그리고 곽철헌은 입구에 서서 일단 심호흡을 하였다.

“후!”

심호흡을 하고나니 조금은 기분이 안정이 되었다.

똑! 똑! 스르륵!

곽철헌을 안내한 직원은 노크를 두 번 하고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고 곽철헌은 매실 안으로 들어갔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직원은 곽철헌을 안내하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직원이 자리를 떠나고 실내에는 세 명만이 남았다.

“어서 오시라오, 곽 동무.”

“좀 늦었습네다, 리 동무.”

곽철헌이 안으로 들어오자 먼저 도착했던 리철명이 인사를 하였다.

자신을 보며 인사를 하는 리철명을 보며 곽철헌도 마주 인사를 하였다.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누군기요?”

처음 보는 사람이 리철명의 옆에 앉아 있자 곽철헌이 물었다.

“아! 인사하기요. 이기 이분은 내 매형이라요.”

“김갑돌입네다.”

리철명의 소개에 김갑돌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였다.

곽철헌은 자신의 보며 인사를 하는 김갑돌을 유심히 관찰을 하였다.

그런데 김갑돌에게서 무언가 익숙한 기분을 느꼈다.

왠지 익숙한 느낌이 곽철헌의 기분을 울적하게 만들었다.

‘지금 이 사람에게서 무척이나 익숙한 느낌이 드는데, 이건 뭐네?’

너무도 익숙한 느낌에 곽철헌은 인사를 하는 김갑돌을 보았지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곽철헌의 모습에 김갑돌은 물론이고, 리철명 또한 초조하게 곽철헌의 얼굴을 주시했다.

사실 리철명이 자신의 매형인 김갑돌을 허락도 받지 않고 이 자리에 데려온 것은 얼마 전 사기를 당해 정착 자금을 모두 날려 버린 매형에게 일거리라도 알선하기 위해서였다.

대한민국에서 탈북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막노동판도 중국인이나 조선족은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지만 탈북자는 그렇지 못했다.

말로는 같은 동포라고 떠들면서도 막상 함께 있을 때는 색안경을 쓰고 쳐다볼 때가 많았다.

그 때문에 탈북자는 어느 곳에도 쉽게 융합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정착금이 떨어지면 생계가 막막했다.

그래서 탈북자들은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서로 도왔다.

탈북자라고 해서 모두 형편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기에 알음알음 소개를 하여 일거리를 나눴다.

이곳 모란각 주인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으로 될 수 있으면 이곳 직원도 탈북자 출신으로 쓰려고 하였고, 또 일손이 부족할 때면 일없는 탈북자를 도우미로 부르기도 했다.

그랬기에 탈북자들이 이곳 모란각을 만남의 광장으로 활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 자신을 초조하게 지켜보는 리철명과 김갑돌을 놔두고 생각에 잠겨 있던 곽철헌은 그에게 익숙한 느낌을 받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오래전 자신이 사기를 당해 돈을 모두 잃어버렸을 때 모습과 아주 비슷했다.

“곽철헌이오. 혹시 일 필요하기오?”

곽철헌은 거두절미하고 자신이 느낀 대로 물었다.

그런 곽철헌의 질문에 김갑돌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을 하였다.

“그렇습네다. 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소?”

곽철헌은 처음 리철명만 섭외해 타깃에게 붙어 있는 경호원을 떼 놓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곧 생각을 바꿔 리철명뿐 아니라 앞에 있는 김갑돌도 함께 하기로 했다.

“이게 합법적인 일은 아닌데, 그래도 하갔서?”

곽철헌은 혹시나 싶은 마음에 목소리를 줄여 은근하게 다시 한 번 제안을 하였다.

곽철헌이 보기에 김갑돌은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조금은 어리바리해 보였기에 혹시나 실수를 할 수도 있었기에 그의 마음가짐을 물어보는 것이었다.

“무엇이라도 시켜 주시라요. 내래 돈이 아주 급하오. 돈이만 벌 수 있다면 내 뭐든 하갔서.”

뭐가 그리 급한지 김갑돌은 결의에 찬 눈으로 그렇게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그런 김갑돌의 대답에 곽철헌은 지금 김갑돌에게 돈이 무척이나 절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쯤 되자 곽철헌은 리철명을 돌아보며 자신이 그를 만나기로 했던 용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이야기를 듣던 리철명과 김갑돌의 표정이 수시로 바뀌었지만 그렇다고 곽철헌의 제안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 ◈ ◈

자신을 따라다니던 시선이 요 근래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다.

조만간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음, 조만간 뭔 일인지 벌어질 것 같군!’

수한이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시선 중간중간 피부를 간질이는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살기란 것이 뭐 특별한 기운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지금 자신을 향한 살기는 살인을 경험한 존재의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드디어 결심이 선 것인가?”

그동안 자신을 따라다니며 관찰만 하던 존재가 결심을 했는지 살기를 자신을 향해 쏟아 내고 있었다.

수한은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살기가 느껴지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물론 그의 시선에 걸리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시선 너머에 지금 자신을 향해 살기를 쏟아 내는 존재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음을 의심치 않았다.

“조만간 누군지 알 수 있겠지.”

수한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신에게 쏟아지는 살기를 털어 내듯 슬쩍 어깨를 으쓱하고 자신의 차에 올랐다.

한편 수한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곽철헌은 수한의 행동에 움찔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도 자신이 있는 곳을 수한이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타깃과 자신의 거리는 사람의 육안으로는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거리였다.

사전에 조사 과정에서 타깃이 머리만 똑똑한 수재가 아니라 싸움도 잘하는 아니, 특별한 무술을 익힌 존재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수한을 관찰하기 위해 고배율의 망원경을 이용해 멀리서 관찰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번도 아니고 번번이 자신이 있는 곳을 들켰다.

물론 타깃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 것이 아니라 믿고 있지만, 고개를 돌렸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감각이 예민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저자가 이번 타깃이오?”

리철명이 생각에 잠겨 있는 곽철헌에게 말을 걸었다.

곽철헌은 리철명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자는 상당한 무술을 익히고 있다고 하디요. 거기다 뒷배가 튼튼해 경호원까지 두고 있으니, 나 혼자서 처리할 수 없어 리 동무와 김 동무의 도움이 절실함이요.”

“그럼 우리가 할 일이 자세히 뭐래요?”

리철명은 세부 사정을 들어야 했다.

그가 느끼기에 곽철헌이 조만간 일을 벌일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할 일을 자세히 알아야만 했다.

일에 따라서 자신이 받을 금액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리철명 동무와 김갑돌 동무는 저자에게 붙어 있는 경호원을 떼어 주시라요. 저자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디요.”

곽철헌은 비록 도움을 청하긴 했지만 타깃은 자신이 직접 처리하려고 했다.

자신뿐 아니라 리철명 또한 자신과 같은 조직에서 일하는 해결사였다.

그렇다보니 이런 일에 대한 보상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주공이 갑(甲)이고 조공이 을(乙)이다. 갑을 하면 많은 돈을 가져가고, 을을 하면 그만큼 적은 돈을 가져간다.

의뢰를 받은 것은 자신이니, 자신이 갑이 되어야 한다.

더욱이 이들뿐만 아니라 자신도 돈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남에게 양보를 할 수도 없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김갑돌은 무언가를 생각하는지 말이 없었다.

곽철헌이 준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자신이 할 일이 무언지 알기 위해 이곳까지 따라왔다.

그가 알려 준 일에 대하여 듣고 확인을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누군가를 죽이는 일에 방수로 일하게 되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대상은 조금 전에 확인을 하였다.

하지만 막상 대상을 확인한 김갑돌은 차마 이 일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물론 돈이 절실히 필요했다. 자신이 돈을 벌어 가지 않으면 몸이 약한 자신의 부인이 치료를 받지 못하니까.

아내는 북한을 탈출하고 또 한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너무도 고생을 한 나머지 병이 나고 말았다.

그런데 약값으로 사용해야 할 돈을 사기 당해 버렸다.

그래서 매제인 리철명이 일거리가 있다고 해서 따라나섰는데, 그 일거리가 자신의 은인이자, 가족의 은인을 죽이는 일이란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김갑돌은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가족을 위해선 나서야 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일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해 혼란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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