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고
달그락! 달그락!
일신제약 신영민 사장은 뭔가 고민이 있을 때면 습관처럼 이렇게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버릇이 있었다.
“김 비서!”
“예, 사장님.”
“그 일은 어떻게 되었나?”
신영민 사장은 자신의 비서를 돌아보며 어떤 일에 관해 물었다.
그런 신영민의 질문에 김 비서라 불린 남자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차분히 보고를 하였다.
“대동아제약 주식회사와 관련된 어떤 것도 저희와 연관이 없도록 처리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김장근 전 전무가 개인적으로 친분 때문에 도움을 준 것으로 처리했습니다.”
“다른 말 나오지 않게 잘했겠지?”
“물론입니다.”
알아서 잘하는 김 비서였기에 신영민은 그의 보고를 듣고 별다른 말없이 일을 마무리하였다.
“그런데 말이야…….”
하지만 일을 마무리 하기는 하였지만, 뭔가 그의 기분에 차지 않는 미지근한 뭔가가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예, 말씀하십시오.”
보고를 마치고 나가려다 신영민의 말에 다시 자리를 지키며 대답을 하였다.
그런 김 비서의 모습에 신영민은 인상을 찡그리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라이프제약 말이야! 대동아제약 주식회사에 주는 것보다 우리가 가지는 게 더 좋지 않았나?”
문득 김장근 전무가 했던 일을 생각하던 신영민은 아무리 협력사라고 하지만 그렇게까지 도움을 줄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까지 했다면 차라리 자신들이 집어삼키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란 욕심이 생겼다.
물론 대동아제약 주식회사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중간에 가로채는 게 도의적으로 무리한 수라는 것도 잘 알지만, 어차피 그런 작업을 했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을 일이다.
그렇다면 남 좋은 일을 할 필요 없이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그룹 차원에서 지원해 주라는 말을 하였지만, 이전 조은제약 정도라면 자들에게도 큰 이득을 가져올 수 있는 정도의 회사였다.
그리고 솔직히 신영민이 생각하기에 대동아제약 주식회사가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게 되면 협력 업체인 자신들의 이득이 줄어들 것이 분명한데, 그룹에서는 무엇 때문에 그런 판단을 하였는지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다.
“자네 판단은 어때?”
신영민은 자신의 생각에는 그룹에서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자신의 비서에게 의견을 물은 것이다.
신영민이 비록 재벌 3세로서 이른 나이에 일신제약 사장의 자리에 앉아 있지만 머리가 나쁜 것도, 그렇다고 야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아니, 차남이기에 더욱 그의 욕심이 컸다.
장남인 자신의 형은 장남이란 이유 하나 때문에 진즉부터 후계자로서 그룹의 지주회사 기획실장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언뜻 봐서는 사장인 그보다 못할 것 같지만 그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룹의 모든 일을 총괄하는 부서에서 그룹이 나아갈 바를 제시하는 총괄 책임자가 바로 자신의 형이었다.
그 자리는 말이 실장이지 일신그룹에서 그 자리는 다른 계열사 사장과 동급의 자리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신그룹의 오너가 되기 위해선 꼭 거쳐 가야 하는 자리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그 자리였다.
즉, 자신의 형은 태어나면서 후계자로 낙점을 받아 그 수순을 밟고 있는 중이다.
그런 것을 신영민은 참을 수 없었다.
같은 자식인데 먼저 태어났다는 것 때문에 자신이 차별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지금까지 죽도록 일을 하고, 형 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성과를 냈다고 자부했다.
많은 일신그룹의 계열사 중 가장 부진했던 일신제약을 대한민국에 있는 제약회사 중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매년 적자에 허덕이며 일신그룹에서 퇴출시키려 고려하던 기업이었지만, 자신이 사장의 자리에 앉으며 그것을 일신했다.
과감한 정리해고와 긴축 경영, 그리고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회사를 정상으로 올린 것뿐 아니라 현재는 매년 1000억 이상의 흑자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이번 일로 그동안 쌓아 올렸던 일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더욱이 이번 일은 자신의 잘못도 아니지 않는가.
전적으로 그룹에서 지시를 받은 김장근이 엉뚱한 일을 벌이다 밝혀진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더욱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젠장!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는군!”
“사장님 너무 그 일에 관해서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런데 김장근 전무의 일을 조사하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영민은 김 비서가 이야기를 하다 말고 목소리를 줄이며 조용히 말을 하자 눈을 크게 뜨며 관심을 보였다.
“그게 무엇인가?”
관심을 보이는 신영민의 반응에 김 비서는 자신이 알게 된 사실을 이야기 하였다.
“다름이 아니라, 조은제약의 일이 파토가 나자 김장근은 다른 제약회사 하나를 다시 작업을 했는데, 이번 김장근이 무리수를 두는 바람에 모든 정황이 밝혀지면서 대동아제약 주식회사의 입장도 난처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대동아제약 주식회사는 한국에 지사를 두는 것을 포기하고 한국에서의 일에 발을 뺐습니다.”
“그래? 그런데 그게 왜?”
신영민은 지금 김 비서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본의 대동아제약 주식회사가 한국에서의 사업에서 발을 뺀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그런 의문에 김 비서를 주시했다.
한편 김 비서는 아직도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신영민을 보며 자세히 설명을 하였다.
“조금 전 제가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김장근이 조은제약을 그 정수한이라 놈에게 뺏기고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또 다른 제약회사를 작업했다고 말입니다.”
“아!”
신영민은 김 비서가 자세히 설명을 하자 그제야 생각이 났는지 감탄성을 터뜨렸다.
“그럼 그 회사는 아직?”
“예, 대동아제약 주식회사가 발을 뺌으로써 김장근이 작업하던 제약회사는 현재 공중에 뜬 상태입니다.”
김 비서의 말을 모두 들은 신영민의 눈이 반짝였다.
잘못을 저질러 욕을 먹게 한 것은 1000번 죽여도 속이 풀리지 않을 일이지만, 그것만은 참 잘한 일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경영하는 회사의 규모를 키우려는 신영민의 입장에서 대동아제약 주식회사가 포기한 그 회사는 그에게 정말이지 먹음직한 만찬이었다.
“회사 내 유보금은?”
신영민은 바로 회사 내에 여유 자금을 물었다.
이번 기회에 회사 규모를 늘릴 생각인 것이다.
사실 자신이 맡고 있는 일신제약은 일신그룹을 노리는 그에게 너무도 작은 회사였다.
다른 계열사와 비교를 해도 엄청 차이가 나는 회사다.
지금은 건설 경기가 줄어 주춤하기는 하지만, 일신그룹의 기둥 역할을 하는 일신건설의 시가총액은 일신제약의 10배에 달하고, 일신자동차 같은 경우는 제약의 13배에 달한다.
다른 계열사 중 일신제약 다음으로 규모가 작은 곳도 시가총액이 신영민이 사장으로 있는 일신제약보다 4배가 넘는다.
그러니 일신그룹 회장을 꿈꾸는 신영민으로서는 자신이 사장으로 있는 일신제약의 규모를 키우는 것에 목매는지도 모른다.
“자금은 충분합니다.”
“좋아! 그럼 대동아제약 주식회사에서 포기한 그 회사 우리가 먹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김장근 전무와 문제가 있었던 라이프제약에서 신제품이 나온다고 합니다.”
“신제품?”
한껏 또 다른 제약사를 병합해 회사의 규모를 키우기에 열을 올리던 신영민은 김 비서의 말에 정색을 하였다.
제조업체의 신제품이란 것이 그렇듯 제약회사의 신제품은 쉽게 출시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김장근 전 전무의 장난질에 허덕이던 조은제약이 회사의 주인이 바뀌면서 몇 개월 만에 신제품이 나온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설마 우리 제품과 경쟁을 하는…….”
신영민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묻기는 했지만 불안한 마음에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신영민의 말이 어떤 뜻을 포함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라이프제약에서 출시되는 제품은 외상 치료제라고 알려졌는데, 기존의 것보다 탁월한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회사 내부에서 전해진 소문이지만 이 제품이 출시되면 기존의 외상 치료제는 끝이라 떠들고 있습니다.”
너무도 과도한 이야기를 하는 비서의 말에 더욱 표정이 굳어진 신영민이 한소리 했다.
“아무리 대단한 외상 치료제라도 해도 그 이야기는 너무 과도한 것 아닌가? 무슨 그들이 엘릭서라도 만들었다는 말이야!”
괜히 배가 아픈 것인지 자신의 비서에게 따지듯 말하였다.
확실히 말을 하고도 김 비서 또한 전해들은 이야기를 전부 믿지 않았기에 조금 더 뛰어난 치료제가 만들어졌다고만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이들은 기존의 상식으로만 판단을 하였기에 수한이 제조식을 넘겨준 외상 치료제의 효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때문에 일신제약은 라이프제약에서 출시하는 외상 치료제로 인해 많은 손해를 보게 되었다.
“물론 그렇진 않겠지만 1개월 뒤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출시를 한다고 합니다.”
“한 달 뒤가 출시야? 그런데 광고?”
신영민은 신제품의 광고를 찍는다는 것에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광고를 찍는다는 말은 제품 판매 주력을 약국으로 한다는 소리다.
제약사의 수입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약국에서의 소매 판매다.
병원으로 들어가는 약품은 많은 부분이 리베이트 비용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솔직히 병원 판매는 이윤을 내겠다는 것 보다는 환자들에게 가까운 곳에서 홍보를 한다는 느낌으로 한다.
그러니 아직 라이프제약의 신제품이 나오진 않았지만 광고를 찍는다는 말에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은 무척이나 좁은 시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생각 보다 많은 제약사들이 있었다.
그러니 무척이나 경쟁도 심하고, 또 그 속에서 상대를 거꾸러뜨리기 위한 방해도 무척이나 많았다.
그리고 상대를 거꾸러뜨리기 위한 음모를 가장 많이 꾸몄던 곳이 바로 일신제약이기도 했다.
대기업인 모기업의 힘을 이용해 갖은 음모로 상대 기업을 위기에 빠뜨려 지금의 위치에 올라온 일신제약이다.
그러니 경쟁 기업에서 신제품이 나온다는 말에 이렇게 신경을 쓰는 것이기도 하다.
“혹시 방해할 수 없나?”
괜히 방해를 하고 싶어진 신영민은 김 비서에게 방법을 물었다.
경쟁 회사의 신제품 발표를 너무도 늦게 알았기에 그로서는 최대한 출시를 늦추고 신제품의 효능과 성분 등을 빨리 알아내야만 했다.
그래야 그 제품에 대한 비방이나 유해성분 등을 부각시켜 소비자들이 기존 자사의 제품을 등지고 신제품을 찾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알아보겠습니다.”
김 비서는 신영민의 말에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알아보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사실 김 비서 또한 지금 사장인 신영민이 무슨 이유로 그런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 ◈
평소에도 아픔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신음 소리에 무척이나 소란스러운 병원이지만 오늘은 무슨 일인지 다른 이유로 병원이 소란스럽고 또 들떠 있었다.
천하그룹 산하의 병원인 천하병원은 평소에도 많은 연예인들이 찾으며, 환자들을 위한 진료로 소문이 났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분위기와 다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와 구경을 하고 있었다.
“정남아! 주변 통제 제대로 안 하냐!”
주변이 시끄러워지자 한 사람이 나서서 누군가를 불러 호통을 쳤다.
“죄송합니다.”
정남이라 불린 남자는 얼른 자신을 부른 남자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는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촬영을 해야 하니 모두 조용히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남의 그런 호소가 통했는지 조금 소란스럽던 촬영장은 조용해졌다.
오늘 라이프제약의 신제품 광고 촬영은 기존의 의약품 광고와는 조금 다른 컨셉을 가지고 촬영을 한다.
기존 의약품들이 그저 귀여운 아이나 강아지 등을 등장시키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표현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면, 라이프제약에서 잡은 컨셉은 실제 환자를 치료하는 장면을 광고에 직접 촬영을 하여 소비자들에게 내보낸다는 것이다.
물론 제품의 효능을 보이기 위한 촬영이기에 첫 촬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첫 촬영 이후 매일매일 몇 차례 더 촬영을 하여 그것을 연속으로 내보낼 예정이다.
◈ ◈ ◈
“언니, 나 괜찮을까?”
수빈은 뭐가 그리 불안한지 언니인 예빈을 보며 물었다.
자신의 몸에 난 상처 때문에 언제나 미안해하는 언니의 모습이 싫어 승낙을 하기는 하였지만, 사실 수빈은 자신의 화상으로 일그러진 몸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싫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실수 때문에 평생 미안해하며 살아가야 할 언니를 생각해 용기를 내 이곳에 왔다.
다행히 CF촬영이기 때문에 비싼 화상 치료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니 천만다행이다.
아니, 치료도 치료지만 적게나마 출연료까지 준다고 하니 수빈은 마음 한편으로 자신도 뭔가 할 수 있다는 마음도 들었다.
사실 그동안 팔과 허벅지에 있는 화상 때문에 외출을 할 때면 언제나 흉터를 가릴 수 있는 긴 옷들을 입었다.
예쁜 옷이 있더라도 수빈 자신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아무리 연예인인 언니를 닮아 미인 소리를 듣고 있어도 마음 한구석에는 자신의 상처를 못 보았기에 그런 소리를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의 생각 보다 자신이 그런 생각 때문에 외부 활동도 줄어들고, 결국 교우 관계, 대인 관계도 악화되어 친구도 별로 없었다.
그럴 때면 언니인 예빈이 무척이나 미안해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만큼은 고치지 못했다.
그런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
비록 언니가 가져다준 기회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로 탈바꿈 하듯 자신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너무 불안해하지 마.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야.”
“알았어, 언니.”
예빈이 불안해하는 동생을 달래고 있을 때 이들이 있는 대기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있었다.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덜컹!
예빈의 들어오라는 소리에 문이 열리고 여인들이 들어왔다.
“예빈아, 수빈아, 언니들 왔다.”
안으로 들어서던 여자들은 예빈과 수빈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며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언니들. 오랜만이에요.”
안으로 들어오는 여자들을 잘 알고 있는 듯 수빈은 그녀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수빈에게 몇 안 되는 지인들이었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CF촬영을 할 사람들이기도 했다.
“수빈아, 첫 촬영인데 안 떨려?”
루나는 조금은 상기되어 있는 수빈의 곁에 앉으며 물었다.
“조금 떨리긴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그런데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너무 걱정하지 마. 그냥 평소대로 하면 돼.”
수빈이 불안한 마음을 나타내자 루나는 조언을 해 주었다.
루나가 생각하기에 수빈은 참으로 많은 끼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팔과 다리에 있는 화상 때문에 자신감이 부족했다.
이것만 없다면 수빈은 언니인 예빈 보다 더 연예계에서 각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예전 예빈이 천하엔터에 캐스팅 되었을 때 수빈도 함께 제의를 받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수빈은 자신의 콤플렉스 때문에 그 제안을 거절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비록 의약품 광고이기는 하지만 CF촬영을 하게 된다면 많은 곳에서 그녀를 찾을 것이다.
“참! 언니, 수빈이 광고 찍고 나서 여기저기서 찾을지도 모르는데, 그럼 소속사는 어떻게 할 거야?”
루나는 예빈을 돌아보며 그렇게 물었다.
예빈도 자신의 동생이 자신 보다 더 끼가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상처로 인한 자신감이 부족하기에 자신과 함께 천하엔터에 캐스팅 되었으면서도 거절을 했다.
그런데 상처를 치료하고 나면 상황이 분명 달라질 것이란 예상을 하였다.
“그래, 수빈아. 이번 광고 촬영 끝나고 너도 우리 회사 들어와라.”
예빈은 동생에게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천하엔터에 들어올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아직도 자신의 상태에 대하여 조금은 비관적인 수빈이기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수빈이 예빈의 말에 망설이고 있을 때, 누군가 인사를 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조금 전 파이브돌스의 멤버들이 들어왔을 때와 다르게 수빈은 무척이나 긴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들려온 것은 그녀가 알고 있는 목소리도 아닐뿐더러 남자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맑고 호감이 가는 목소리이기는 하지만,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기에 수빈은 그 목소리에 긴장을 하였다.
“수한아, 어서 와!”
“어머, 우리 수한이 더욱 멋있어졌네!”
수한이 안으로 들어서자 루나와 레이나가 수한을 반겼다.
‘누구지?’
대기실로 들어서는 낯선 남자의 모습에 수빈은 언니의 등 뒤로 몸을 숨기며 살폈다.
언니 다음으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루나와 레이나 언니가 친근하게 반기는 것을 본 수빈은 수한이란 남자에 대하여 호기심이 생겼다.
‘생기긴 잘생겼네? 남자 주인공인가?’
잘생긴 외모에 수빈은 수한 대해 그렇게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수정 누나는 같이 안 오셨어요?”
수한은 오늘 광고 촬영을 하기로 한 천하병원 병동에 도착을 하자마자 라이프제약 홍보부장과 잠깐 이야기를 하고, 바로 누나를 보기 위해 대기실로 온 것이다.
어차피 자신이 이곳에서 할 일이란 것이 특별히 없기에 그저 광고 촬영이 자신의 구상대로 제대로 촬영이 되는가를 보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 홍보부장과 그리 오래 이야기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 오면 누나를 볼 것이란 예상과 다르게 수정은 이곳에 없었다.
“응, 크리스탈 언니는 최하나 실장님과 이야기가 있어서 좀 있다 올 거야.”
수한이 그의 누나인 수정을 찾자 루나는 수정의 행방을 말해 주었다.
“수정 누나에게 무슨 일 있어요?”
“일은 무슨. 휴가 기간에 광과촬영이니 휴가 기간 조정 때문에 그런 거지.”
루나는 수한이 무슨 일이 있는가 걱정을 하는 것 같아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해 수정이 최하나 실장과 이야기할 내용을 말해 주었다.
사실 이것은 파이브돌스 전체가 협의해 나온 이야기였기에 리더인 수정이 대표로 실장인 최하나와 담판을 지으러 간 것이다.
회사에서 따 온 광고도 아니고, 또 긴급하게 촬영을 하는 것이라 파이브돌스의 기존 출연료 보다 20% 정도 더 높은 금액을 라이프제약으로부터 받게 되었다.
이런 관계로 천하엔터로서는 앉아서 돈을 벌게 되었다.
그 때문에 파이브돌스 멤버들은 휴가 기간 중 촬영으로 손해 본 날짜를 보상받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지금 수정이 그것을 최하나와 의견을 나누고 있다.
“그런 거였어요?”
수한은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괜히 자신 때문에 혹시나 파이브돌스의 누나들이 휴가 기간에 고생을 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을 했었다.
사실 파이브돌스가 수한을 위해 휴가 기간에 일을 맡은 것이 맞았다.
그것도 휴식 중간에 광고 촬영을 하는 것이라 그녀들이 처음 휴가 기간에 계획했던 일들이 조금 틀어지게 되었다.
다만 리더인 수정이 고생했던 것과, 수정의 동생인 수한을 돕고 싶다는 생각에 조금 양보해 광고 촬영을 승낙한 것이다.
“참, 수한아. 여기 이쪽은 이수빈이라고 해. 예빈 언니 동생이야.”
루나는 수한의 손목을 잡아끌어 수빈을 소개해 주었다.
“안녕하세요, 정수한이라고 합니다.”
수한은 루나의 소개에 수빈을 보며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였다.
“네, 이수빈입니다.”
수한의 인사에 수빈도 수줍게 인사를 하였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 수한과 수빈을 보던 루나가 갑자기 수줍게 인사를 하는 수빈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말을 하였다.
“수빈이 너, 수한이 넘보지 마. 수한이는 내가 찜했어!”
“야! 난 그거 인정 못해!”
루나의 말에 레이나는 루나와 수한의 사이로 끼어들어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어떻게 된 게 너희는 틈만 나면 소란이냐?”
수정은 대기실로 들어서며 소란을 떨고 있는 레이나와 루나를 보며 소리쳤다.
“어머! 수정이 왔네!”
“언니, 두고 봐요.”
루나를 놀리며 도망치던 레이나는 수정이 대기실로 들어서자 얼른 자리에 멈춰 수정에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루나는 아직도 조금 전 일이 풀리지 않은 것인지 레이나를 보며 씩씩거렸다.
“메롱! 그러거나 말거나.”
그렇지만 루나의 말에 레이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인지 오히려 더욱 약을 올렸다.
“하여간 나이를 먹었으면 나이 값을 해야지, 뭐하는 것이야! 동생들 보기 부끄럽지 않냐?”
레이나와 루나의 모습에 수정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을 하였다.
한편 수한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있는 미나를 보며 물었다.
“미나 누나, 누나들 이렇게 놀아요?”
“아, 아냐. 제네 둘만 그래.”
“맞아! 수한아 오해하지 마, 우린 조용해.”
수한의 질문에 미나는 물론이고 동생의 옆에 있던 예빈 또한 자신들은 저렇지 않다는 듯 손사래를 하였다.
그런 모습이 새로웠는지 언니의 뒤에 숨어 지켜보던 수빈도 어느새 안정을 찾았는지 약간 볼이 상기된 채로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어? 이제 긴장이 좀 풀렸나 보네요?”
미소를 짓는 수빈의 얼굴을 본 수한은 그렇게 수빈에게 말을 걸었다.
“네, 네?! 네.”
“어머! 우리 수빈이 수한이에게 반한 거야? 이거 갈수록 경쟁률이 높아지는데?”
수빈이 수한의 질문에 당황하고 있을 때, 레이나는 이것이 기회라는 듯 이번에는 당황하고 있는 수빈을 놀렸다.
레이나의 짓궂은 놀림에 수빈은 잠시 당황하다 정색을 하며 말했다.
“뭐…… 저 정도면 내 옆에 세워도 창피할 일 없지 않겠어요?”
너무도 당당하게 말을 하는 수빈 때문에 이번엔 레이나가 얼음이 되고 말았다.
“호호호호.”
“하하하!”
“어머, 우리 수빈이 말도 잘하네!”
“내 언젠간 당할 줄 알았다.”
수빈의 말에 굳은 레이나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 한마디씩 할 때마다 레이나는 급기야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손을 짚으며 주저앉았다.
이른바 좌절 모드라는 것으로 조금은 과장된 모습이기는 하지만, 그 모습이 한편으론 무척이나 우습기도 했다.
◈ ◈ ◈
“검증된 약품이니 안심하시고, 그리고 수빈 양.”
“네!”
“긴장하지 마시고, 이번 장면은 그렇게 어려운 장면 아니니 그냥 의사 선생님께 진찰을 받으러 왔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알겠죠?”
“네, 알겠습니다.”
라이프제약의 외상 치료제의 CF촬영이 시작이 되었다.
촬영 컨셉은 연예인을 꿈꾸는 수빈이 화상으로 인해 꿈을 접어야 할 처지에 놓였을 때 수빈의 언니인 예빈이 치료를 받아 보자고 권유해 병원을 찾아 의사에게 상담을 받고 치료를 한다는 것이다.
치료를 받고 완쾌가 되어 다시 꿈을 찾아 열심히 노력을 한다는 것이 수빈이 찍는 광고의 컨셉이다.
CF를 처음 찍는 수빈의 비중이 파이브돌스보다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수한은 외상 치료제의 선전을 위해 환자에게 직접 투여하는 모습을 TV로 내보낼 생각이다.
지금까지 다른 제약사들은 신제품이 출시가 되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신인 연기자나 연예인을 활용해 마치 진짜인 것처럼 꾸며 광고를 하였다.
하지만 수한은 자신이 제조식을 완성한 이 외상 치료제에 자신감이 있었기에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치료하는 모습을 찍어 선전을 함으로써 인지도를 높이려는 것이다.
“자, 준비하시고 레디― 고!”
감독의 ‘고’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수빈의 옆에는 수빈의 보호자로 언니인 예빈이 자리하고 있었다.
“선생님, 제 동생의 꿈은 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 주는 연예인이 되는 것이 꿈이에요. 그런데…….”
예빈은 자신의 대본에 나와 있는 대로 대사를 하였는데, 가수인 그녀가 하는 연기는 무척이나 현실적이라 촬영을 하고 있는 감독은 물론이고 다른 스텝들까지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연기가 무척이나 안정적인데요?”
“조용히 해.”
AD인 정남은 예빈의 연기에 감탄을 하며 감독에게 귓속말을 하였다.
하지만 감독에게서 들려온 말은 아주 짧고 간결한 말이었다.
감독 또한 정남과 비슷한 생각을 하였다.
아이돌 가수인 예빈의 연기가 이렇게나 자연스러울지 그 또한 모르고 있었다.
사실 아이돌이라고 하면 연출자들은 모두 색안경을 쓰고 바라본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가수를 준비하던 아이돌이 연기하는 것에 못마땅한 시선을 주는 것은 모두 비슷했다.
그런데 예빈의 방금 전 대사는 무척이나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대상을 걱정하는 마음이 절실히 묻어났다.
그것이 가족이기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연기를 하는 것이지는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현 상태만으로는 출발이 아주 좋았다.
하지만 그런 예빈의 좋은 출발도 의사의 딱딱한 대사에 NG가 나고 말았다.
“NG!”
“죄송합니다.”
“선생님 카메라 의식하시지 마시고, 그냥 자연스럽게 평소 환자를 보시듯 하세요.”
병원에서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광고에 담기 위해 환자는 물론이고, 의사까지 연기자가 아닌 진짜 환자와 병원 의사를 섭외하였다.
그러다 보니 대사가 적은 수빈은 상관이 없었지만, 환자의 상태에 대하여 말을 해야 하는 의사가 문제였다.
전문 연기자가 아니기에 카메라를 의식하지 말라고 해도 자신도 모르게 한쪽에 있는 카메라를 의식하게 된 것이다.
“선생님, 환자의 상태에 집중해 주시고, 다시 갑니다. 레디― 고!”
감독은 NG가 나긴 했지만 어차피 그들이 전문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이럴 때일수록 살살 달래면서 끌고 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촬영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며칠간 더 촬영을 해야 하기에 처음부터 얼굴 붉히며 갈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이렇게 여유 있게 촬영에 임했다.
그런 감독의 생각이 통했는지 그 다음 부터는 NG가 나오지 않고 진행이 되었다.
“OK! 굿!”
“수고하셨습니다.”
상담실에서의 촬영이 끝났다.
비록 짧은 촬영이지만, 처음 한 번의 NG말고는 더 이상 NG가 나오지 않아 연기자들이나 촬영팀 모두 웃을 수 있었다.
“자! 다음 촬영 장소로 이동합니다.”
감독이 다음 촬영 장소로 이동하겠다는 선언을 하였다.
하지만 이동은 수한으로 인해 중단이 되었다.
“감독님, 시간이 벌써 점심을 드실 시간인데, 점심들 먹고 하지요?”
수한의 밥을 먹고 하자는 말에 감독이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촬영을 하느라 인지하지 못했지만 시간은 벌써 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허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럼 모두 점심을 먹고 다음 촬영을 하겠습니다.”
감독의 밥을 먹고 하겠다는 선언이 떨어지자 연기자는 물론이고 스텝들 모두 기뻐했다.
촬영이 아무리 재미있게 진행이 되어도 먹는 재미만 하겠는가.
촬영장에서 가장 기쁜 것은 뭐니뭐니 해도 먹는 재미만 한 것이 없다.
“식당 섭외해 놨으니 그곳으로 가시지요.”
수한은 미리 섭외해 놓은 식당으로 촬영에 참여한 사람은 물론이고 스텝들까지 이끌고 갔다.
◈ ◈ ◈
사고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발생이 된다.
오늘 있을 촬영이 별다른 잡음 없이 순조롭게 끝나 가려는 때, 긴장이 풀려서 그랬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고가 발생하였다.
“자! 오늘 마지막 장면 촬영입니다. 마지막까지 긴장 놓치지 말고 잘해 봅시다. 레디― 액션!”
지금까지와 다르게 조금은 오버를 하며 감독이 촬영 시작을 알렸다.
수빈은 수술대 위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의사는 수술 가운을 입고 메스를 들어 상처 부위를 살짝 절개를 하였다.
화상으로 뭉개진 피부를 도려내기 위한 수술이었다.
우선 팔에 난 화상 자국을 수술하였다.
수술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고, 카메라에 라이프제약의 로고와 제품명이 적힌 약병이 보였다.
수빈의 팔을 수술한 의사는 약병을 들어 뚜껑을 열고 연고 타입의 외상 치료제를 상처 부위에 도포를 하였다.
팔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수빈의 허벅지에 있는 화상이었다.
왼쪽 허벅지 앞과 안쪽으로 넓게 퍼져 있는 화상 자국 때문에 수빈은 그동안 수영복이나 짧은 핫팬츠를 입어 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짧은 바지를 입으면 징그러운 화상 자국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가족 외에 남에게 보이지 않았던 수빈의 콤플렉스인 화상이 카메라에 잡혔다.
미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예쁜 얼굴과 여자 연예인 중에서도 탑으로 꼽을 정도로 몸매가 좋은 수빈이지만, 팔과 다리의 화상 자국 때문에 그동안 자신의 아름다운 몸매를 꽁꽁 싸매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많은 사람들 앞에 노출이 되었다.
수빈은 비록 촬영이긴 하지만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팔의 상처는 그나마 나았다.
마지막 허벅지에 있는 상처의 치료만 남겨 두고 있을 때, 수빈은 숨이 가빠 왔다.
그도 그럴 것이 수술대 위에 누워 비록 상처 부위만 남기고 다른 부위는 가렸다고 하지만 부위가 부위다 보니 무척이나 예민해졌다.
“음…….”
부분 마취를 하여 감각이 없지만 왠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의 하체로 쏠리는 느낌이 들어 긴장을 하였다.
그런 수빈의 상태를 느꼈는지 의사는 잠시 수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긴장하지 않아도 됩니다.”
의사는 긴장하는 수빈을 돌아보며 그렇게 위로를 하였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의사는 무척이나 긴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팔과는 다르게 지금 수술을 해야 할 허벅지 주변에는 주요 혈관들이 모여 있었다.
자칫 잘못 칼을 대었다가는 혈관을 자를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무척이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물론 그동안 이런 수술을 많이 했기에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이번 수술도 성공적으로 끝날 것이다.
“자!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마시고 최선을 다합시다.”
의사는 수술을 보조하는 간호사들에게 주의를 주고 수술에 들어갔다.
하지만 사고는 예기치 않게 발생을 하였다.
“어머!”
허벅지의 상처를 도려내고 들고 있던 메스를 간호사에게 넘겨주었는데, 그것을 받던 간호사가 그만 메스를 놓쳐 버렸다.
손에서 벗어난 메스는 수빈의 허벅지에 떨어지며 그대로 꽂혀 버렸다.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어느 누구도 손을 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