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미래로의 한걸음
산과 들은 남쪽에서 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에 얼은 몸을 녹이며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싱그러운 햇살에 산새도 요란하게 지저귀고, 겨우내 앙상했던 나뭇가지에는 새싹이 눈을 뜨고 있다.
사람들의 옷차림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두꺼운 점퍼를 벗어 버리고 조금은 가볍고 화사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여성의 옷만 봐도 봄이 왔음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거리에 다니는 여성들의 옷도 겨울보다는 더욱 과감해진 감이 보였다.
하지만 그런 세태와는 반대로 더욱 몸을 여미는 이들이 있었다.
화사한 봄과는 반대로 더욱 추운 냉기가 불어 닥친 것 마냥 옷깃을 여미며 다른 사람과 다르게 여유가 없었다.
조은제약. 한방 의약품을 제조 생산하는 제약회사로, 그 역사는 무척이나 오래된 제약사다.
가족 같은 분위기로 많은 기업들이 도산했던 IMF 당시에도 꿋꿋이 이겨 냈다.
그렇지만 한순간 투자의 실패로 부도위기에 처했다.
현재 조은제약이 처한 상황은 IMF 때와는 다르게 이들만의 힘으로 이겨 낼 수가 없었다.
경쟁 제약사들의 음모와 병원의 무리한 커미션 요구, 그리고 무리한 로열티를 요구하는 다국적 기업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조은제약은 부도 직전까지 몰리게 되었다.
물론 조은제약이 한방 생약을 생산하는 부분이 있어 그나마 지금까지 명목을 유지하고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즉 다른 영세 제약사들처럼 무너졌을 것이다.
하지만 한방 생약 부분에 특허를 몇 가지고 있어 이것으로 인해 지금까지 대출을 받아 명맥을 유지했지만 그것도 이젠 한계에 도달했다.
은행의 대출상한은 막혔고, 사체는 끌어 쓸 만큼 끌어 쓴 상태다.
이런 분위기에 직원들은 회사에 출근을 했지만 일손이 손에 잡히지 않아 방황을 하고 있었다.
“김 대리! 사장님은 아직인가?”
“예, 오늘 사장님께서는 약속이 있으셔서 지방에 내려갔다 오후에나 출근하신다 하셨습니다.”
김성한 대리는 출근을 하며 사무실로 들어서는 조봉봉 전무의 질문에 대답을 하였다.
조봉봉 전무는 조봉구 사장의 동생으로 조은제약은 사실상 가족기업이나 마찬가지 기업이다.
어려운 때를 함께 이겨 냈지만 회사가 어려워지며 갈등을 빚고 있었다.
조봉구 사장의 동생인 조봉봉 전무는 어려워진 회사를 굳이 손에 움켜쥐고 있기보단 현재 헐값이지만 회사를 사려고 하는 다른 제약사에 팔아 버리고 적은 돈이나마 챙기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의 의료 전문 기업인 대동제약 주식회사에서 은밀히 그에게 찾아와 회사를 자신들에게 넘기라는 제안을 해 온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자신의 형인 조봉구에게 하였지만 조봉구는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이어 온 가업이라는 말로 대동제약 주식회사의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조봉봉은 자신의 형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제안을 거절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일제식민 시절 독립군을 돕다 갖은 고초를 겪었다.
당시 약방을 하며 벌어들인 돈으로 독립군에게 독립 자금을 대고 있었는데, 그만 그것이 일본 순사에게 발각이 된 것이다.
그 때문에 형무소에 끌려가 고문도 당하고 또 감옥살이도 했었다.
이런 사실을 어려서부터 듣고 커 온 관계로 일본에 관해선 일단 색안경을 쓰고 볼 지경이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조봉봉 전무가 생각하기에 사장인 자신의 형은 시류를 읽을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미 가족이 꾸려 온 제약회사는 주식회사로 전환을 하면서 이미 자신들 가족만의 기업이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여건이 변해 자신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하나 없는데 언제까지 다 무너져 가는 회사를 끌어안고 있을 것인지 답답했다.
비록 일본 기업이기는 하지만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조봉봉은 자신의 형이 출근하면 오늘만은 꼭 따져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사장이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는 말에 굳어지는 조봉봉 전무의 표정에 김성한 대리나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현재 회사 분위기가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지라 괜히 눈 밖에 나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쫓겨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모두 열심이군!”
시간이 흘러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에 출근한 조봉구 사장은 사무실에 들어오면서 직원들을 보며 인사를 건네며 들어섰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가셨던 일은 잘되셨습니까?”
입구와 정면에 있던 송승완 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사장인 조봉구가 어떤 일로 지방까지 내려갔는지는 모르지만 어제 퇴근을 할 때 뭔가 편한 얼굴로 나가는 것을 보았기에 그리 묻는 것이다.
자금 압박에 시달리던 때와 다르게 전화를 받고 오늘 약속 때문에 오후에 출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송승완 과장은 혹시나 만나러 가는 사람에게 돈을 융통해 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아, 그 때문에 그러니 간부들 좀 회의실로 불러오도록 해!”
조봉구는 자신에게 질문을 하는 송 과장에게 지시했다.
“알겠습니다.”
송승완 과장은 조봉구의 말에 얼른 자리를 떠나 과장급 이상의 간부들을 찾아 조봉구의 말을 전달했다.
◈ ◈ ◈
웅성웅성.
사장인 조봉구가 할 이야기가 있다는 소리에 간부들은 모두 회의실에 모였다.
“전무님! 무슨 이야기 들은 것 있습니까?”
송승완 과장은 조봉봉 전무의 곁으로 다가가 혹시 무슨 이야기 들은 것이 있는지 질문을 했다.
하지만 질문을 받은 조봉봉 또한 자신의 형에게 들은 것이 없으니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다.
“아니, 나도 모르겠네!”
“네…….”
많은 사람들이 조봉봉 전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그 또한 아는 것이 없다는 말에 시선을 돌려 빈 의자를 쳐다보았다.
빈 의자의 주인은 바로 사장인 조봉구의 자리로 조봉구는 간부들을 회의실로 모이라 지시를 하였지만 아직 회의장에 나타나지는 않았다.
덜컹! 탕!
회의실 문이 열리고 곧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웅성거림으로 소란스럽던 회의실은 한순간 소음이 줄고 조용해졌다.
사장인 조봉구가 회의실에 들어선 것을 회의실에 있던 간부들이 보았기 때문이다.
드드득!
조봉구가 들어서자 자리에 앉아 있던 간부들이 모두 자리에 일어나자 그들이 앉았던 의자가 끌리며 소음이 있었다.
“모두 앉아. 내 할 이야기가 있으니 앉아서 편하게 듣도록 해.”
조봉구는 자신이 나타나자 자리에서 일어나는 간부들을 보며 그렇게 말을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자 간부들도 자리에 착석하는 것을 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흠, 모두 내가 갑자기 회의실로 불러 놀랐을 거야.”
“아닙니다.”
“아니긴. 일단 고심 끝에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기로 했다는 말을 먼저 하기로 하지.”
조봉구 사장이 마치 선언이라도 하듯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기로 했다는 말에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형님!”
유일하게 조봉구 사장의 말에 반응을 보인 사람은 바로 그의 동생이자 회사 전무인 조봉봉 전무였다.
“그런데 우리 회사를 사려는 사람의 조건은 현재 이사들이 가진 주식을 전량 그에게 넘긴다는 조건이네!”
조봉구 사장의 말은 이 자리에 있는 과장급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지만 조봉봉이나 다른 이사들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내용이었다.
사실 조은제약의 주식 가치는 휴지조각보다 조금 더 비싼 정도다.
액면가 50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니 그 1/5도 간신이 넘기는 110원이다.
이미 거래정지가 된 상태이고 상태 계선이 되지 않는다면 조만간 주식시장에서 퇴출이 될 예정이다.
하지만 조은제약에게 회생의 구멍이 보이지 않기에 현재 이 자리에 있는 이사들은 조봉봉 전무가 전에 했던 이야기처럼 일본기업에 회사를 넘기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던 찰나였다.
그런데 일본기업에 절대 회사를 팔지 않겠다고 했던 조봉구 사장이 느닷없이 회사를 넘긴다고 하지 놀란 얼굴이었다.
그러다 자신들이 보유한 주식을 모두 넘겨야 한다는 말에 잠시 고민을 했다.
회사가 회생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으니 좋은 일이지만 주식을 넘기고 자신의 거취가 걱정이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주식을 넘기고 회사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을 때의 자신에게 떨어질 이득과 손해를 계산해 보기 바빴다.
한동안 아무도 조봉구 사장의 말에 말을 꺼내는 이가 없었다.
“그러게 진즉 제 말대로 회사를 그들에게 넘겼으면 되는 것을 무엇 때문에 이렇게 질질 끈 것입니까?”
조봉봉은 자신의 형의 말에 삐딱하니 말을 하였다.
그런 동생의 모습에 조봉구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오해들 하는 것 같은데 우리 회사를 사려는 사람은 그때 그 일본인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입니다.”
조봉구 사장은 자신의 동생이나 간부들이 오해를 하는 것 같아 그들의 생각을 정정해 주었다.
사실 이 중에 회사가 어려워지자 일본기업에 회사를 넘기고 퇴직금이라도 챙기자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중 자신의 동생인 조봉봉 전무도 포함되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는지라 조봉구 사장은 조금 전과 다르게 표정을 굳히며 이번 자신이 만나고 온 회사를 인수하려는 사람이 전에 자신들의 회사를 사겠다고 제안한 일본인들이 아님을 알렸다.
“사장님 그런데 이번에 저희 회사를 사겠다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리고 직원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주식과는 상관이 없는 송승완 과장은 회사가 누구에게 넘어가도 상관이 없었다.
다만 자신처럼 회사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직원들의 처우가 걱정이 되어 그것을 물었다.
그런 송 과장의 질문에 조봉구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해 주었다.
“직원들은 모두 승계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이사들 중에서도 결격사유가 없다면 그들도 유임하겠다고 했습니다. 다만 이사들이 가지고 있는 주식을 전부 사들이는 것이 조건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회사를 인수하는 것은 백지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조봉구 사장의 말에 굳어 있던 이사들의 표정이 밝게 펴지기 시작했다.
굳이 값도 나가지 않는 애물단지 같은 주식을 모두 팔아도 자신의 자리를 연명할 수 있다는 말에 이사들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한없이 좋은 조건이잖아!’
이사들은 정말로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건 조건이 자신들에게 무척이나 좋은 조건이라 생각했다.
회사 주식을 보유하지 않고도 자신의 자리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사실 회사에서 가장 불안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말단 직원이 아니라 바로 이사들이었다.
이들은 노조에도 가입이 되지 않는 존재들로 사장이 언제든 자를 수 있었다.
다만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면 함부로 자를 수 없다.
만약 주주총회가 벌어지고 경영권이 불안했을 때 편을 들어줄 이들이 이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조은제약은 모든 것을 떠나 주식 자체도 이미 쓰레기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졌다.
괜히 오래 가지고 있어 봐야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럴 바에는 주식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을 때 손해를 보더라도 파는 것이 좋은 일이다.
그런데 주식을 사 줄 뿐 아니라 결격 사유만 없다면 다른 직원들처럼 고용승계를 하겠다는 말에 모두 조봉구의 말에 찬성을 하였다.
한편 조금 이야기가 이상해지자 조봉봉 전무는 쉽게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모두 그렇게 알고들 있어!”
간부들에게 자신이 전달할 말을 모두 전한 조봉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런 조봉구의 모습에 조봉봉 전무는 잠시 멍하니 자신의 형이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형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사장과 전무가 빠진 회의실에 남은 간부들은 조금 전 조봉구 사장이 하고 간 말을 가지고 떠들기 시작했다.
‘잘됐다.’
간부들 머릿속에는 조금 전 사장이 하고 간 이야기를 되새김하다 모두 잘 되었다고 생각을 하였다.
직장인들에게 다니던 회사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때 가장 걱정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자리가 무사할 것인가이다.
그런데 고용승계가 된다는 말에 안심을 한 것이다.
새롭게 다른 직장을 알아볼 필요 없이 계속해서 직장에 다닐 수 있다는 것은 가계에 영양이 미치지 않는다는 소리니 말이다.
한편 자신의 형을 따라간 조봉봉은 형에게 따져 물었다.
“형님!”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느냐?”
“조금 전 그거 무슨 소립니까? 그들 말고 또 저희 회사를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난 것입니까?”
조봉봉은 정말이지 궁금했다.
자신의 형이 그저 불안해 떨고 있는 직원들을 다독이기 위해 거짓을 말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물어보는 것이다.
자신도 처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일군 기업을 일본인들에게 넘기는 것이 꼭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살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더욱이 아직 자신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자식들이 있는데 개인적인 기분만으로 일을 그르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자신을 쳐다보며 물어 오는 동생의 모습에 그가 어떤 심정으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조봉구 사장은 자신의 동생에게 오늘 오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모두 들려주었다.
형이 하는 이야기를 모두 들은 조봉봉 전무는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의 형이 지킴이란 단체에 가입되어 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고는 있었다.
구체적으로 그들이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할아버지나 아버지도 지킴이란 단체에 가입되어 활동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라 조봉봉 전무도 자신의 형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그 단체에 가입된 것에 이의는 없었다.
그런데 오늘 그곳 회장의 부름에 지리산까지 내려갔다가 그곳 회장의 손자가 회사를 인수하고 싶다는 제안을 해 왔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도대체 얼마나 돈이 많기에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말을 한 것인지 깜짝 놀란 것이다.
더욱이 인수를 한다는 사람이 이제 겨우 20살의 청년이란 말에 더욱 놀랐다.
그런데 놀랄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청년은 자신들의 자리를 보존해 주는 것뿐 아니라 회사가 회생할 수 있는 자금과 신약에 관한 제조법을 알려 준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인가? 겨우 20살 약관의 청년이 부도 직전의 회사를 인수하는 것뿐 아니라 회사가 살아나게 신약 제조법을 알려 준다니 참으로 경악할 일이다.
“그게 사실입니까?”
“그래, 너도 아버지 따라 몇 번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조봉구는 자신의 동생에게 오늘 만난 사람이 누구고 또 회사를 인수하려는 사람이 누구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런 조봉구의 설명을 들은 조봉봉은 설마 자신이 다니는 회사를 인수하려는 사람이 자신도 알고 있던 청년이라고는 짐작조차 못했다.
그 때문인지 조봉봉의 눈은 급기야 약간 풀리며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런 동생의 모습에 조봉구도 자신이 현운사에서 성한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한동안 저런 상태였음을 알고 있기에 현재 자신의 동생인 조봉봉 전무의 모습에 그저 그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지켜볼 뿐이었다.
◈ ◈ ◈
서울의 명물 남산타워 그 옆에 자리한 대한민국 최고의 호텔인 백제호텔 그곳은 최고라는 명성에 걸맞게 국내외 최고 명사들만 출입을 하는 곳이다.
객실 수만도 153개이고 특급 손님을 위한 펜트하우스와 스위트룸은 세계 어느 유수의 호텔에 비교해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곳이다.
일반 객실의 이용료도 하루 투숙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120만 원으로 웬만한 일류 호텔 스위트룸에 비견되는 가격이다.
그런데 일반 객실도 아니고 하루 숙박비만 3천만 원에 이르는 펜트하우스에 일단의 손님이 묵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벌써 펜트하우스에 투숙을 한 지 벌써 보름이 되었다.
“긴 상, 분명 그들의 돈줄을 다 막은 것이 확실합니까?”
“그렇습니다, 하야시 상무님.”
김장근은 일본 대동제약 주식회사에서 온 하야시 곤스케 상무를 접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대동제약 주식회사와 김장근이 근무하는 일신제약은 협업을 하는 관계이지만, 그건 겉으로 드러난 관계일 뿐, 사실 일신제약은 대동제약 주식회사에서 의약품을 사다 판매를 하는 정도의 회사이다.
즉 한국에서야 일신제약이 모회사인 일신그룹의 영향으로 제약회사 중에서는 상당히 큰 규모의 회사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속빈 강정이나 마찬가지일 뿐이다.
그렇다 보니 전무인 김장근이 협력업체의 상무를 대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막말로 능력이 없으니 알아서 기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도 김장근은 하야시 상무가 지시한 일을 보고하고 있었다.
말이 접대지 대동제약 주식회사의 일은 그의 직장인 일신제약의 일보다 우선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라, 하야시 상무가 출근도 하기 전에 그가 묵고 있는 호텔에 들려 그간의 일을 보고하는 것이다.
“흠, 그러면 지금쯤이면 그들의 자금줄이 꽉 막혔겠군요?”
“그렇습니다. 조은제약이 회생할 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미 저희가 손을 써 놔서 은행권은 물론이고, 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구할 수 없습니다.”
김장근의 말에 하야시는 안경을 살짝 고처 쓰며 미소를 지었다.
“비록 우리가 한국에 직접 제약회사를 운영하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일신제약과 협업을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하야시는 본사의 명령으로 한국에 제약회사를 건설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이는 일본이 발표한 약사법 때문이었다.
새해 들어 발표된 약사법에는 안정성이 확실하게 증명된 약이 아닌 이상 인체실험이 금지되게 개정이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게 옳은 소리 같지만 사실 신약을 개발하면서 그 약이 인체에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알 수는 없는 게 문제였다.
아무리 동물실험에서 안정성이 입증이 되었다고 하지만 인체에 어떤 부작용이 나올지 알 수 없다는 소리다.
그런데 인체에 안전하다는 증명이 없으면 허가를 하지 않겠다는 말은 일본 내에서 의약품 실험을 하지 말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보면 법이 후퇴한 듯 보이지만, 이 내면에는 검은 의도가 숨어 있었다.
겉으로는 인간의 존엄성을 헤치는 실험을 막겠다는 것처럼 보이지만 외국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에 관해선 어떤 내용도 담겨 있지 않았다.
즉, 약사법이 느슨한 국가에 가서 인체실험을 하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어찌 되었든 법이 그렇게 개정이 되었으니 대동제약 주식회사도 정부의 뜻에 따라 신약을 개발하려면 외국에서 실험을 해야만 했다.
그렇기 위해서 장소를 물색하다 기반이 있는 한국을 낙점했다.
물론 다른 나라도 대상이 될 수 있었지만 거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이 그 대상으로 딱이었다.
인권에 대하여 말로만 떠들지 법적으로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 좋았다.
더욱이 적은 비용으로 유수의 기술자들을 확보할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한국의 의약 인력은 일본에 못지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자금력이 약한 한국의 제약사들은 자본이 풍부한 다국적 기업에 밀려 신약을 개발하지 못하고 그들의 대리점이 되었다.
아무튼 하야시는 본사의 명령으로 한국에 대동제약 주식회사의 한국지사를 설립하려다 난관에 부딪쳤다.
그것은 생각보다 한국의 제약사들의 텃세가 심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병원들도 자신의 회사에서 개발한 기기들을 수입하면서도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는 것에 난색을 표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생각해 낸 묘안이 바로 한국의 제약사 중 한 곳을 인수한다는 방법.
물론 자신들이 인수한다는 것을 모르게 해야만 했는데, 이때 도움을 준 것이 바로 일신제약이었다.
일신제약은 자신들과 협업을 하는 대동제약 주식회사에서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려는 것을 알고 처음에는 난색을 보였지만, 대동제약 주식회사에서 당근을 제시하자 그들을 돕기로 하였다.
그리고 지사를 설립하기보단 한국의 제약회사를 인수하라는 아이디어도 그들이 제공을 했다.
그러면서 일신제약은 보다 적극적으로 대동제약 주식회사를 도왔다.
그것은 바로 평소 눈에 가시처럼 생각하던 조은제약을 음모를 꾸며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
대동제약 주식회사의 입장에서도 조은제약은 참으로 먹음직스러웠다.
자신들이 생각하던 설비도 거의 대부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규모도 딱 그들이 생각하던 크기였다.
크기가 작았다면 부지를 더 구입을 하고 또 신약을 개발하는 설비를 들여와야 하겠지만 일신제약의 음모로 최근 설비를 새로 들여와 규모를 늘린 조은제약은 하야시가 생각하기에도 적당한 먹잇감이었다.
그 때문에 조은제약이 자금난에 허덕일 때 하야시는 통역과 함께 조은제약을 찾아가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했던 것이다.
운을 떼 놓았으니 조만간 소식이 올 것이란 생각에 탁자 위에 놓인 샴페인을 들어 한 모금 하였다.
“그럼 조만간 소식이 오겠군.”
“그렇습니다, 상무님.”
전무이면서도 협력 업체 상무에게 아부를 하는 김장근의 표정에는 간도 쓸개도 빼놓은 간신의 표정이 역력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들에게는 불리할 것이니 조만간 연락이 올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김장은 사실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굳이 이런 제안을 할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냥 부도가 나면 나중에 은행과 타협을 하여 인수하면 더 적은 비용으로 회사를 인수할 수 있었는데, 굳이 찾아가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한 이유가 궁금해진 것이다.
그런 김장근의 질문에 하야시는 경멸적인 눈빛을 하며 잠시 김장근을 쳐다보다 얼른 신색을 바꾸며 미소를 지으며 질문에 답했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조은제약의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요. 물론 우리 대동제약 주식회사에도 인력이 충분하지만, 한국의 의약품 제조 인력의 기술력이 우리 일본인들 못지않게 뛰어나니, 적은 비용으로 그런 고급 인력을 충당할 수 있으면 좋은 일 아니겠소? 일본과 한국은 동맹인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부도가 나는 회사 직원들까지 승계를 하면 우리가 한국기업을 인수한다고 해도 명분이 서지 않겠습니까?”
하야시 상무의 설명을 들은 김장근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은제약을 부도 위기로 몰아넣은 것이 자신들이면서 마치 고양이 쥐 생각해 주는 것처럼 말을 하는 하야시의 말에 김장근은 아첨을 하기 바빴다.
마치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순사에게 꼬리치는 조선인 출신 순사와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김장근의 선대에 정말로 일본 순사의 밑에서 일했던 악질 조선인 출신 순사가 있었다.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에게 연신 아첨을 하는 김장근을 내려다보며 하야시는 눈을 반짝였다.
◈ ◈ ◈
수한은 회사에 월차를 내고 조은제약으로 향했다.
이미 조은제약 사장인 조봉구와 조은제약을 인수하기로 이면 계약을 하였기에 오늘은 대주주이자 고문으로 취임을 하기에 월차를 쓰고 이렇게 조은제약을 찾았다.
탁!
“어서 오십시오.”
“아저씨! 왜 이러세요, 편하게 하세요.”
조봉구는 수한이 차에서 내리자 깍듯한 존대를 하며 수한을 맞았는데, 그런 조봉구 사장의 모습에 당황한 수한이 편하게 대해 달라는 말을 하였다.
“대주주인데 그럴 수 있나요.”
사실 지금 조봉구가 수한에게 존대를 하는 것은 수한을 놀리기 위한 조봉구의 조크였다.
그런 조봉구의 의도를 아직 눈치채지 못한 수한은 조봉구의 존대에 당황했다.
하지만 괜히 수한이 천재가 아니었다.
계속되는 조봉구의 존칭에 수한도 금방 그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조봉구 사장의 장난에 장단을 맞췄다.
“그럼 조 사장이 행사장으로 안내를 해 보게.”
자신의 놀림에 당황하던 수한이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자신의 말에 맞대응을 하자 이젠 조봉구가 당황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조봉구의 모습에 수한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저씨, 그러니 더 이상 놀리지 말고 어서 행사장으로 가요. 얼른 행사를 마치고 새로운 각오로 일을 시작해야죠.”
수한의 말에 정신을 차린 조봉구는 미소를 지으며 앞장서 행사장이 준비된 강당으로 수한을 인도했다.
한편 이미 강당에 모여 있던 조은제약의 간부들은 긴장을 하고 새로 올 감사이자 대주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송 과장, 이번에 취임하는 고문이 사실은 회사의 실질적인 주인이라면서?”
송승완 과장의 옆자리에 있던 김기남 과장은 자신이 들은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그런 김기남 과장의 질문에 송승완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이미 조은제약은 수한이 지불한 회사 인수비용으로 은행에서 돌아오는 만기 어음을 막았고, 또 그동안 회사가 은행이나 제2, 3금융권에 빌렸던 대출금도 모두 갚았다.
그리고 기존의 조은제약이란 상호를 버리고 라이프제약이란 상호로 회사명을 변경하였다.
그 과정에서 송승완 과장은 조봉구 사장을 수행하면서 회사를 인수한 주인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당시 조봉구 사장을 따라 나선 송승완 과장은 설마 자신이 다니는 회사를 인수하는 사람이 20살의 젊은이라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래서 당시 송승완은 수한이 잘 알려지지 않은 재벌가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조봉구 사장에게 들어 알게 되었다.
회사를 인수한 수한이 뛰어난 천재이며, 자신이 설계한 무기 설계도를 국내 방위산업체에 비싼 값에 판매를 한 그 판매금을 가지고 회사를 샀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참으로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사장이 그렇게 말을 하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송승완 과장이나 수한과 계약을 한 조봉구도 수한이 천하그룹 회장인 정대한 회장의 손자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물론 그에게서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순수 자신의 능력으로 번 돈으로 조은제약을 인수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회사 오너의 정체를 알고 있는 송승완 과장의 주위로 많은 간부들이 어떻게든 오너의 정체를 알기 위해 귀를 기울였지만, 그의 입에서는 어떤 정보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 자리에 있는 간부들 중 유일하게 수한의 정체를 알고 있는 조봉봉 전무의 표정은 굳어져 펴지지 않았다.
사실 그는 회사가 일본 기업에 팔리기를 기원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국의 조그만 중견회사가 아닌 전 세계에 이름 높은 제약회사의 간부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동제약 주식회사는 의약품만 생산하는 업체가 아니었다.
의약품에서부터 의료기기까지 생산하는 대규모 의약기업으로 미국이나 유럽의 다국적 제약회사에 뒤지지 않는 엄청 큰 회사였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들보다 더 거대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아무튼 그런 대기업의 직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차 버린 형에게 조금은 불만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자신이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쌀은 이미 익어 밥이 되었다.
그리고 가슴 한편으로는 어쩌면 잘되었다는 생각도 있었다.
솔직히 대기업 간부가 되는 기회가 사라져 아쉽기는 하지만, 그의 피 속에 독립운동을 하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기에 어떤 면에서는 일본 기업에 넘어가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그런 한편으론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 대기업이 방해를 한다면 이제 겨우 회생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 회사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강당의 한쪽 문이 열리며 자신의 형과 젊은 청년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형의 옆자리에 서서 걷고 있는 청년은 언젠가 자신의 아버지와 지리산 암자를 찾았을 때 본 기억이 있는 청년이었다.
비록 청년이 어렸을 때 본 모습이지만 한눈에 청년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그 모습은 아무나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점점 다가오는 미남을 쳐다보며 다른 간부들도 수한의 모습에 감탄을 했다.
“허허, 회사 오너가 아니라 영화배우라고 해도 믿겠네!”
“그러게 말이야. 우리 회사 광고 모델은 다른 사람 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장님이 하시면 매출이 배는 더 오르겠어.”
“맞아. 한번 건의해 봐야겠군.”
간부들은 조봉구와 함께 단상으로 걸어오고 있는 수한의 모습에 감탄을 하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아직까지 간부들은 수한이 회사를 인수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회사를 조봉구가 계속해서 운영하게 한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오늘 이 자리도 수한이 고문으로 취임하는 자리가 아닌, 사장으로서 사장 취임 자리로 알고 있는 것이다.
원래는 먼저 취임 전 회사 간부들과 간단한 대면을 하고 취임을 해야 하겠지만 수한의 사정으로 그런 과정을 생략했다.
대체 복무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시간을 따로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반 직장은 주 5일 근무가 실행이 되고 있지만, 수한이 근무하는 연구소는 주 6일 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일요일밖에 시간이 나지 않는다.
그런 관계로 오늘도 월차를 내고 시간을 빼 취임식을 갖는 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수한이 회사의 운영을 조봉구에게 일임한 것이고, 자신은 감사로서 조봉구가 회사를 제대로 운영을 하는지 확인만 하면 되는 시스템으로 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은 시간을 벌고, 또 회사 직원들은 경영진이 바뀌는 혼란이 없이 업무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어 좋았다.
더욱이 수한은 다른 관심분야 때문에 대학에서 경영에 관한 것은 공부하지 않았다.
굳이 자신이 아니더라도 세상에는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굳이 관심도 없는 분야에 시간을 허비하기에는 수한의 욕심이 너무도 많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한 가지만으로도 평생을 공부해야 하겠지만 수한은 뜻한 바가 있기에 많은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했다.
자신이 전생에 수련했던 마법과 연관이 있는 생물학이나 의학이나, 자신이 속한 나라를 강국으로 만들기 위한 물리학이나 전자공학 등 배워야 할 것이 많았기에 경영은 배우지 않았다.
“지금부터 조은제약에서 라이프제약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을 기념하는 기념식과 새롭게 고문이란 직책을 맡으신 정수한 고문님의 취임식을 하겠습니다.”
오늘 행사의 사회를 맡게 된 송승완 과장의 말로 행사가 진행이 되었다.
회사명이 라이프제약으로 바뀌면서 혹시나 직원들이 불안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행사를 진행하면서 수한의 고문 취임식을 함께하기로 했다.
그래야 번거롭게 또 시간을 빼야 하는 것을 막은 것이다.
식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고 이날 라이프제약으로 새롭게 태어난 조은제약의 직원들은 하루 업무를 쉬고 행사를 위해 준비된 음식을 즐겼다.
수한은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많은 것이 한국과 미국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인터넷으로 알게 된 한국 사회는 수한이 보기에도 불합리한 점이 많았다.
일개미마냥 죽어라 일을 해도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겨우 먹고 살 정도의 월급이었다.
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살고 나라가 산다는 말도 되지 않는 구호를 외치지를 않나, 아파야 청춘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을 하며 젊은 인재들의 희생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겼다.
하지만 미국에서 공부를 하며 알게 된 미국 사회는 그렇지 않았다.
기업을 살리기 위해 직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먼저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우선 나섰다.
그런 속에서 직원들은 자신이 속한 회사에 소속감을 느끼고 자부심을 느껴 더욱 회사를 위해 일을 하였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회사뿐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그 혜택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회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직원들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면서 그런 희생을 하는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어떤 보상도 이뤄지지 않고, 달콤한 열매는 소수만이 누리고 있었다.
일부는 그런 열매를 해외로 빼돌려 호화생활을 하거나 불법 비자금을 만들어 더욱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수한은 이런 부도덕한 기업 오너들을 경멸했다.
사회 각 구성원은 그만의 역할을 해야 한다 생각하는 수한은 기업은 기업대로 그 나라에 차지하는 역량에 따른 역할을 해야 한다.
구성원의 희생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번 만큼 베풀어야 한다.
그래야 그 사회 구성원들은 더욱더 자신의 소속에 소속감을 느끼고 더욱 열심히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수한은 오늘 비록 고문이란 자리에 취임을 하지만 실질적인 회사의 주인으로서 미국에서 보고 느낀 것을 작게나마 실천을 하려는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수한은 취임식이 끝나고 시작된 파티장을 돌아다니며 회사 간부들과 안면을 익혔다.
비록 자주 회사를 찾지는 못하겠지만 간부들의 얼굴은 알아 둬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