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코리아-17화 (17/118)

8. 캄보디아에서 생긴 일

대사관 관저 거실, 이른 저녁을 먹고 모여 앉은 세 사람.

한동안 이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얼굴을 쳐다보던 정명수와 조미영 그리고 수한 그러던 어느 순간 미영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 얼마나 고생 많았니…… 엄마가 미안해! 그날…….”

미영이 다시 유괴 당한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자 수한은 얼른 미영의 눈물을 닦아 주며 위로를 하였다.

“엄마, 그 일로 너무 슬퍼하지 마. 난 엄마가 생각하는 것 보다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어.”

수한은 미영이 너무도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것을 알고 위로했다.

수정을 만나 이미 지난 이야기를 모두 들었기에 그동안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지금 보다 더 빨리 가족을 찾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자신의 잘못도 있기에 얼른 미영이 울면서 자신에게 사과를 하는 것을 막았다.

“사실 지금에 온 것은 제 잘못도 있어요.”

“네 잘못? 그게 무슨 소리야?”

그냥 두었다가는 아내가 또 아까처럼 대성통곡을 할 것 같아 정명수가 나서서 수한의 말을 받았다.

그도 수한이 한 이야기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게, 나 엄마하고 아빠가 누구고, 또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다 알고 있었어요.”

수한은 저녁을 먹으면서 정명수의 부탁대로 아버지에서 아빠라 부르기 시작했다.

아기일 때도 아빠라는 말을 몇 번 듣지 못했다는 정명수의 말에 수긍을 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아빠라는 말은 조금 어색해 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아빠라고 불러 줄 때마다 감동하는 정명수의 모습에 그 정도는 참을 만했다.

“다 알고 있었으면서 왜 연락 안 한 거야?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미영은 아들이 이미 알고 있으면서 연락 한 번 안 했다는 말에 너무 섭섭해 작은 투정을 하였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수한은 자신이 연락을 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미 할아버지 댁에 친척모임을 가졌을 때 한 번 이야기했던 것을 다시 한 번 부모님께 들려주었다.

수한의 이야기를 들은 명수나 미영의 눈에 일신그룹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다.

그리고 수한이 지킴이란 비밀단체에 가입을 하였고, 그들과 무척이나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수한은 지킴이에 대하여 그저 자신이 아기일 때부터 도움을 받았고, 그 보담으로 가입을 했다 대충 이야기를 하였지만, 정명수나 조미영이 사회생활을 한 시간이 얼마고 또 정명수의 직업이 외교관이지 않은가.

“할아버지께도 말씀드렸지만 전 당분간 따로 떨어져 지금의 신분을 유지한 채 생활할게요.”

“꼭 그렇게 해야 하겠니?”

“네, 꼭 필요한 일이에요. 저들을 방심하게 하기 위해선 어쩔 도리가 없어요. 저들은 이미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파고들어 웬만큼 해서는 뿌리 뽑을 수 없어요.”

수한의 이야기에 정명수도 뭔가를 알고 있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한 인맥 한다고 생각을 하였는데, 캄보디아 대사로 좌천이 되지 않았는가.

원래라면 좀 더 중요한 나라의 대사로 발령이 되었을 것인데 자신은 외국에 파견을 나가면서 계속해서 동남아시아 쪽으로만 배치되고 있었다.

이 말은 누군가 자신을 중요한 위치로 이동하는 것을 막고 있다는 소리다.

원래 외국 대사로 파견을 나갈 때면 강, 약을 조절해 중요한 나라에 파견을 갔으면 다음 부임지는 조금 중요도가 떨어지는 곳 이렇게 순환을 하며 파견을 나간다.

하다못해 자신은 유럽에 한 번도 대사로 나가 보지 못했다.

외무부 업무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정상적인 상황이라 생각지 않을 부임지 배치였다.

그렇기에 정명수는 수한이 지금 하려는 이야기의 의도를 깨달았다.

자신이 이렇게 한직으로만 돌고 있는 것이 누구의 장난인지 깨달은 것이다.

“알았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내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을게. 그럼 네가 어떻게 커 왔는지 이야기해 봐.”

미영은 아기일 때부터 한 고집하던 수한의 성격을 기억하기에 더 이상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성장 과정을 듣고 싶어 했다.

그런 미영의 질문에 정명수도 궁금하다는 듯 두 눈을 반짝였다.

“그래, 어서 그 이야기나 해 봐라!”

이렇게 시작된 수한의 성장기는 밤늦게 거실 불이 꺼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 ◈ ◈

“다녀오세요.”

“여보 다녀오세요.”

아침 출근을 하는 정명수를 배웅하는 수한과 조미영이었다.

오랜만에 정상적인 정 씨 일가의 아침 출근 모습이라 그런지 조미영의 표정에는 이전에 보였던 작은 그늘도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탁!

정명수가 출근을 하고 배웅을 한 뒤 집 안으로 들어온 조미영은 수한을 보며 말을 하였다.

“아들 오늘은 뭐할래?”

18년 만에 돌아온 아들이라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챙겨 주고 싶지만 이미 아들은 성인이 되었다.

자신이 잃어버리기 전 아기가 아닌 것이다.

미영은 자신이 해 주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누르고 그저 돌아온 아들이 편안하게 가족을 대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수한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미영에게 말했다.

“엄마, 우리 낮에 쇼핑도 하고 둘이서 데이트나 할까?”

수한의 느닷없는 말에 미영은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이지 언제나 꿈꾸던 것을 아들이 먼저 말을 해 주자 너무도 기뻤다.

사실 미영은 밖에 나가면 엄마들이 아들과 함께 걸어가는 것만 봐도 부러웠다.

또 아들이 엄마와 함께 쇼핑을 하는 것도 함께 쇼핑을 하며 옷을 고르는 것도 부러웠다.

그래서 패션디자인에 더욱 열을 올렸는지도 몰랐다.

아들이 돌아오면 아들에게 해 주지 못했던 옷을 많이 해 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방금 아들이 먼저 자신에게 쇼핑을 하고 또 데이트를 하자고 하니 너무도 기뻤다.

“그럴까?”

“응, 나 한국에 돌아가면 대체 복무 때문에 시간이 없으니 오늘 원 없이 엄마라 쇼핑도 하고 또 맛있는 것도 먹어요.”

“그러자!”

수한의 말에 미영도 찬성을 하며 오늘 하루 재미있게 보내자고 다짐을 했다.

수한은 엄마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쇼핑을 하자는 말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설마 엄마가 자신의 말을 듣고 이렇게 기뻐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미국에서 생활을 하면서 가끔 최성희와 시내에 장을 보러 갔던 것이 생각나 말을 꺼내 본 것인데 이렇게 기뻐할 줄은 몰랐다.

“엄마, 그럼 조금 있다 함께 나가기로 하고 지금은 잠시 전화 좀 하고 올께!”

“응, 그런데 누구에게 전화를 하려고?”

미영은 수한이 전화를 한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곳에 와서 누구와 통화를 하려는 것인지 궁금한 것이다.

그런 미영의 질문에 수한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하였다.

“응, 수정이 누나에게 전화하려고.”

“아! 수정이도 여기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러게, 누나도 함께 있었으면 참 좋았을 것인데, 뭐, 다음에 우리 가족 모두 함께하지 뭐.”

“그래, 언젠가 우리 가족 모두 함께 여행이라도 가 보자.”

미영은 수한이 수정의 이름을 거론하자 그때서야 수정도 함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을 찾겠다고 유명인이 되기 위해 연예계로 뛰어든 딸, 그런 딸에게 미영은 한없이 미안했다.

수한을 그렇게 잃어버리고 정신을 못 차린 자신 때문에 유년기를 엄마의 보살핌도 제대로 못 받고 자란 딸이다.

그래도 다행히 올바르게 자라 준 딸이 한없이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미영이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자 수한은 조용히 그 생각을 방해하지 않고 2층으로 올라갔다.

대사관 관사는 2층 구조로 되어 있어 수한은 2층 방을 이용했다.

◈ ◈ ◈

수한과 미영 모자는 집을 나서서 프놈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프놈펜 시내는 물론이고 캄보디아 하면 생각나는 영화 킬링필드가 생각나는데, 프놈펜 가까운 곳에 청 아익 학살센터가 있다.

킬링필드란 한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1975~79년, 캄보디아의 폴포트가 이끄는 크메르루즈 정부가 벌인 잔악한 학살을 말한다.

폴토트 정권은 당시 캄보디아 전체 인구의 1/3을 죽이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

더욱이 그들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안경을 썼거나 부유하거나 지식이 있는 학자들 그리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말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더욱 웃긴 일은 그런 폴포트는 이중적인 정체를 숨기고 서방언론을 속이며 자신의 자식들을 미국에 유학을 보냈다는 것이다.

나중에서야 폴포트의 자식들이 공부하는 데 도움을 줬던 서방 언론인들은 자신들이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무튼 그가 죽기 전까지 캄보디아는 현생의 지옥과 같은 현장이었다.

아무튼 이런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관광지도 구경을 하고 또 캄보디아의 제례시장에서 점심도 먹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이번에는 어디를 갈까?”

따르르릉!

막 청 아익 학살센터를 나와 다음 행선지를 고르려던 때 미영의 전화기가 울렸다.

“아들 잠시만!”

미영은 수한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잠시 전화를 받던 미영은 표정이 굳어졌다.

수한은 그런 엄마의 모습에 뭔가 나쁜 소식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잠시 전화 내용을 들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곧 그런 생각을 접었다.

그건 엄마의 프라이버시에 관한 문제이니 엄마가 이야기해 주기 전까지는 굳이 나서서 들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떨어져 통화를 한 미영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수한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들!”

“응?”

“미안한데 엄마가 일이 생겨서 지금 가 봐야 할 것 같아!”

미영은 정말이지 아들과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방금 전 전화의 내용을 해결하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아니, 심각한 것은 아닌데, 엄마가 가서 해결해야 할 일이라서.”

“그럼 일 보세요. 전 좀 더 구경하다 들어갈게요.”

“그럴래? 참! 오늘은 아빠도 늦게 들어오신다고 했는데 어쩌지? 엄마도 좀 늦을 것 같은데?”

미영은 아들을 떼어 놓고 일을 보러 간다는 것이 여간 미안한 게 아니었다.

18년 만에 돌아왔는데, 일 때문이 방해를 받은 것 때문에 정말로 미안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 미영의 모습에 수한은 자신은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였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또 미안해하지도 마세요. 어서 급한 일부터 해결하세요.”

수한의 말에 조금은 위로가 되었는지 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니 조금은 안심이 되네! 그럼 엄마는 먼저 가 볼게! 저녁에 보자!”

“네, 어서 가 보세요.”

미영은 뒤돌아 걸어가며 조금 전 전화를 건 상대에게 전화를 하는지 뭔가 빠르게 이야기를 하였다.

수한은 잠시 전화 통화하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다 그냥 주변을 걷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주변 풍경 때문에 그런지 참으로 한적한 모습이었다.

언뜻 보면 한국의 시골 풍경과 비슷해 보이지만 열대기후라 그런지 같지는 않았다.

밭과 숲이 보이고 낮은 건물들도 듬성듬성 보였다.

밭에는 사탕수수인지 옥수수인지 심어져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사탕수수였다.

얼마 쯤 걸어가니 간이 음료수 판매점이 보였다.

문득 갈증이 나고 또 어떤 음료를 파는 것인지 호기심도 생긴 수한은 빠른 걸음으로 그곳으로 걸어갔다.

“어서 오세요?”

“그건 뭔가요?”

잘 봐 줘야 1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아가씨가 무언가를 열심히 돌리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압착기 같이 보이기는 했는데 그 가운데 뒤로 보이는 수숫대 같은 것을 집어넣고 열심히 레버를 돌리고 있었다.

레버를 돌리면 둥그런 압착기가 돌아가며 수숫대를 밀어내고 압착이 된다.

그러면 홈을 타고 수숫대에서 수액이 흘러내리는 것을 받아 얼음과 함께 섞어 시원하게 먹는 음료였다.

“사탕수수 엑기스입니다. 맛있어요.”

간이 판매점 주변에 조금 지저분해 보이는 아이들도 보였는데, 수한이 판매점 곁으로 다가오자 눈을 초롱초롱하게 반짝이며 수한을 쳐다보았다.

혹시나 자신들도 사탕수수 엑기스 음료를 얻어먹었으면 하는 시선으로 수한을 쳐다보는 것이다.

아이들을 본 수한은 문득 자신의 어렸을 적 생각이 났다.

가끔씩 들리는 지킴이 회원의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현운사에 들려, 주고 갔었던 간식들을 기대하던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다.

수한은 그때 자신의 모습을 이곳 아이들에게서 보게 되자 아이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기회를 엿보고 있던 아이들은 수한의 손짓에 빠르게 모여들었다.

“여기 아이들의 숫자만큼 음료수를 주세요.”

“아이들도 사 주실 건가요?”

“내 그러니 아이들 숫자만큼 주세요.”

“그럼 저도 한잔 마셔도 되나요?”

음료수를 만들어 파는 소녀는 자신도 먹어도 되냐는 질문을 했다.

수한은 그런 소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눈빛 안에 먹고 싶다는 욕망을 보았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자신이 팔고 있는 음료를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것 같았다.

“후후, 그렇게 해!”

자신의 얼굴을 보며 간절한 눈빛을 하고 있는 소녀를 보니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수한의 허락이 떨어지자 소녀는 기쁜 표정이 되어 수숫대를 압착기에 집어넣으며 열심히 레버를 돌렸다.

홈을 타고 내려오는 연녹색의 엑기스가 비닐봉지에 어느 정도 차오르자 소녀는 능숙한 솜씨로 봉지에 얼음을 채우고 거기에 빨대를 꽃아 수한에게 주었다.

수한은 소녀가 준 음료를 한 모금 들이켰다.

사탕수수의 엑기스와 물 그리고 얼음으로 만든 음료라 그런지 달고 참 맛있었다.

30도가 넘는 날씨에 이 사탕수수 음료수 한잔이면 신선이 따로 없을 것 같았다.

수한을 선두로 모여든 아이들도 한 봉지씩 사탕수수 음료를 들고 먹기 시작했다.

모든 아이들이 음료를 받자 그제야 소녀도 한 봉지 들고 마시기 시작했다.

10여 명의 아이들에게 인심을 쓰긴 했지만 한 봉지에 우리나라 돈으로 100원 정도뿐이 하지 않는 싼 음료라 얼마 나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의 밝은 미소와 음료 한잔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료를 다 마시고 다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 ◈ ◈

주지훈 목사는 초조해졌다.

이미 약소시간이 30분이나 지났기 때문이다.

주지훈 목사가 이곳 캄보디아에 온 목적은 탈북자들을 안전하게 자유의 세계로 보내기 위해서다.

벌써 이 생활을 한 지 30년이 되어 가고 있다.

청년시절 중국에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탈북자들의 실상을 보게 되었다.

모태신앙인 그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 들어가기 전 친구들과 함께 중국 여행을 하게 되었다.

중국 상해를 비롯해 북경과 동북삼성 그리고 백두산에 오른다는 장대한 계획을 가지고 떠난 여행이지만 동북삼성에 도착해서 그곳에서 만난 탈북자의 삶을 본 주지훈은 그들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며 이 일에 뛰어들었다.

중국인들에게 짐승처럼 부려지는 그들의 모습에 울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당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괜히 나섰다가 오히려 탈북자들이 작은 도움도 받지 못하고 중국 공안이나 북한에서 파견된 추색꾼들에게 잡혀 갈 수도 있기 때문에 참았다.

그렇게 30여 년을 탈북자들을 안전하게 자유의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도움을 주었다.

오늘도 탈북자 12명을 인도 받아 한국 대사관이나 아니면 다른 나라의 대사관으로 데려가야 하는데 약속된 이들이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무척이나 불안했다.

사실 캄보디아가 대한민국과 수교를 하고 있지만 북한과도 수교를 하고 있는 나라다.

아니 우리나라보다 북한과 조금 더 친밀한 관계라고 하는 것이 맞았다.

전에 탈북자들이 캄보디아로 들어오다 국경수비대에 걸린 일이 있었다.

당시 캄보디아 관계자들은 탈북자들이 원한다면 북한 대사관이 아닌 한국 대사관이나 그들이 원하는 나라로 보내 주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하지만 캄보디아 관계자는 약속을 철저히 속였다.

방심하고 있을 때 북한 대사관 직원이 나타나 그들을 모두 데리고 북한으로 떠난 것이다.

북한에 송환된 그들은 강요에 못 이겨 자신들이 납치가 되었다고 TV에 나와 증언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납치가 되었지만 조국의 도움으로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며 선전을 했다.

하지만 그 뒤로 그들은 강제수용소에 끌려가 소식이 끊겼다.

북한의 수용소는 한국의 수용소 즉 감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곳이다.

식량배급이 안 될뿐더러 매일 계속되는 고문과 자아비판 그 때문에 북한의 강제수용소에서의 생존율은 최악이었다.

항간에는 죽은 시체도 숨겨 두고 인육을 먹는다고 알려질 정도다.

주지훈은 혹시나 그들이 국경을 넘어오다 국경수비대에 들킨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이번 탈북자들의 이동하는 루트는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라 아직 북한 대사관이나 캄보디아 정부에는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비록 캄보디아로 넘어오기 전 라오스를 거치기는 불안한 루트를 지나기는 하지만 분명 라오스 쪽 브로커에게서 무사히 국경에 진입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30분이 지나도록 아직 도착을 하지 않으니 혹시나 국경을 넘어 들어왔지만 길을 잃은 것은 아닌지 오만 생각이 들었다.

“목사님, 제가 남아 있을 테니 목사님은 이만 이곳을 떠나시지요.”

사실 이곳에서 주지훈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별거 없었다.

그저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도움을 주었던 것처럼 얼굴을 확인하고 불안해하는 그들을 위무하는 것 정도가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머지는 돈이 해결해 줄 것이다.

어차피 브로커에게 돈을 주어야 그들이 탈북자들을 자신들에게 넘길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오는 이들이 1차 인원이다.

아직 라오스에 2차 9명이 더 남았다.

자신은 오늘 오는 12명 분의 돈을 지불해야 하기에 이곳에 온 것이다.

아직 9명 분의 돈을 준비하지 못했다.

사실 탈북자들을 무사히 탈출시키기 위해선 다른 것이 아니라 돈이 최고였다.

중국의 브로커들도 돈만 주면 공안에 탈북자를 넘기지 않는다.

중국의 브로커나 공안들도 돈 때문에 북한의 추색꾼들에게 탈북자를 넘기고 하는 것이다.

북한이 탈북자에게 현상금을 걸고 있는데, 공안들은 이 돈을 벌기 위해 탈북자들을 잡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니 주지훈처럼 탈북자를 돕기 위해 나온 이들의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바로 탈북자들을 데리고 있는 브로커들에게 지불할 돈을 마련하는 일이다.

“알겠습니다. 2차 9명 분의 돈이 마련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지금 주지훈과 대화를 하는 사람도 사실 브로커다.

다만 중국인 브로커나 라오스에 있는 브로커들 보단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이 다를 뿐이다.

사실 중국인 브로커나 라오스에서 지금 탈북자들을 데려오는 브로커는 믿을 수 없는 이들이다.

언제 어느 때 배신할지 모르는 그런 인간들이다.

어떤 브로커는 돈만 받고 입 닦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탈북자나 그들을 돕는 주지훈과 같은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못한다.

지금 자신들이 하는 일이 북한이나 북한과 수교를 맺고 있는 나라들이 보기에 불법이기 때문이다.

만약 주지훈 목사가 탈북자의 탈북을 돕다 당국에 걸리게 된다면 다시는 캄보디아에 들어오지 못하게 강제출국 당할 것이다.

사실 주지훈 목사가 라오스에 가지 못하는 것도 실은 라오스에서 탈북자를 돕다 강제출국 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주지훈 목사는 다시는 라오스에 입국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마음 졸이며 라오스에서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주지훈 목사는 브로커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 막 차를 타고 나가려던 때, 숲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등에는 작은 행낭 하나만 덩그러니 매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거지 차림이었다.

얼마나 숲을 오랫동안 탔는지 입고 있는 옷들이 여기저기 나뭇가지에 쓸리고 찢겨 있었다.

또 몇 날을 씻지 못했는지 얼굴에는 진흙 등 오물이 묻어 있어 무척이나 지저분해 보였다.

“어서 오시오. 다들 무사한 것입니까?”

주지훈은 기다리던 탈북자란 것을 깨닫고 얼른 그들의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아, 젠장!”

주지훈의 물음에 가장 선두에 섰던 라오스인 브로커는 욕을 하며 잠시 뒤를 돌아보다 안가로 들어갔다.

아마도 오면서 뭔가 일이 있었던 듯했다.

하지만 주지훈은 라오스인 브로커 보다는 탈북자들에게 관심이 있기에 얼른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상태를 살폈다.

그런데 도착한 탈북자들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분명 12명이 오기로 했는데, 현재 도착한 사람은 9명뿐이었다.

“저기 12명이 오시기로 한 것 아닙니까? 출발하기 전 12명이라 했는데?”

주지훈의 질문에 탈북자들은 하나같이 씁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사라진 3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무도 이야기를 해 주지 않자 주지훈은 어떻게든 알아야 했기에 안가로 들어간 브로커를 찾아 들어갔다.

“이보시오. 분명 출발할 땐 12명이 출발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9명만 도착을 한 것이오?”

주지훈은 방금 전 도착한 라오스인 브로커를 잡고 물었다.

한편 방금 도착한 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던 이곳 브로커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목사님…… 잠시 저랑 이야기를 하시지요.”

조금 전까지 함께 있었던 브로커가 주지훈을 불렀다.

“무슨 일입니까?”

자신을 부르는 브로커의 말에 주지훈은 고개를 돌려 그에게 물었다.

그런 주지훈의 말에 그는 눈짓으로 자신이 하려던 이야기를 대신했다.

주지훈도 그가 하는 행동을 보아 아마도 지금 없는 3명의 탈북자와 연관된 이야기일 것으로 보여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다시 밖으로 나오자 탈북자들이 모여 있는 반대편에 그가 앉아 있었다.

“왜 부르신 것입니까?”

주지훈은 브로커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러자 브로커는 심각한 표정으로 주지훈에게 말했다.

“방금 도착한 사람에게 대충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중간에 탈북자 중 3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뭐요? 죽었다고요?”

“예, 그들이 자신의 통제를 따르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하다가 국경에 깔린 지뢰를 밟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국경에 있는 라오스 군과 캄보디아 군을 피해 오느라 늦었다고 합니다.”

캄보디아 브로커의 이야기를 들은 주지훈의 표정이 좋지 못하게 구겨졌다.

뭔가 말이 되지 않는 변명같이 들린 때문이다.

어떻게 탈북자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지역에서 자신들을 인솔하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멋대로 행동을 한다는 말인가.

더욱이 그들은 출발하기 전 분명 주의를 단단히 받았을 것인데, 뭔가 다른 사연이 있을 것으로 보였으나 여기서 자신이 그것을 문제로 삶을 수는 없었다.

괜히 그렇게 브로커들과 척을 져서는 지금 도움이 필요한 탈북자를 더 이상 도울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탈북자들을 돕다 보면 이런 비슷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곤 했다.

“알겠습니다. 당분간 저들을 잘 돌봐 주시기 바랍니다. 남은 인원이 모두 도착하면 그때 데려가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십시오. 참! 저 사람이 그러는데, 다음 차례에 있는 이들의 인수비용은 10% 올린다고 합니다.”

“뭐요?”

주지훈은 브로커의 말에 깜짝 놀랐다.

현재 탈북자들 1인당 브로커에게 지급되는 돈은 1000달러.

이는 캄보디아나 라오스인 브로커들에게 엄청난 금액인 것이다.

캄보디아 공무원 월급이 평균 60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1년 연봉보다 많은 돈.

그런데 탈북자 1인당 받는 돈이니 얼마나 큰 금액이겠는가. 그런데 거기에 10%를 더 올리겠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인원이 9명이니 기존 9천 달러에 900달러를 더 준비해야만 했다.

브로커의 이야기를 들은 주지훈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갈수록 탈북자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있는데, 비용은 늘어나고 있으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 일을 그만둘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알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주지훈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안가를 떠났다.

평소라면 불안에 떨고 있는 탈북자들을 위로라도 해 주고 떠났을 터이나 지금은 비용 마련을 위해 정신이 없었다.

◈ ◈ ◈

“이런 시간을 너무 지체했네.”

수한은 잠시 주변을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

너무도 맑은 공기에 취해 숲에서 오랜 만에 마나흡입을 하였다.

역시나 오염이 적은 곳이라 그런지 자연 상태에 퍼져 있는 마나의 농도가 한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오랜 만에 만끽하는 마나로 인해 집중을 해 그동안 몸에 쌓인 더러운 것들을 털어 내려 평소보다 마나호흡을 깊이 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 인식도 하지 못하고 늦게까지 하게 되었다.

이미 해는 산을 넘어 사라지고, 달도 벌써 저 하늘 위에 골려 서편으로 기울고 있었다.

“벌써 10시가 넘었네! 엄마가 걱정하겠다.”

수한은 미영이 걱정할 것이라 생각하고 얼른 전화라도 드리기 위해 휴대폰을 꺼냈다.

역시나 휴대폰에는 부재중 전화는 50통, 문자 역시 10개나 와 있었다.

“여보세요, 엄마.”

수한이 전화를 하자마자 수화기 너머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울먹이는 엄마의 목소리에 수한은 자신이 늦은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주변을 구경하다 숲에서 명상을 하게 되었고 너무 깊이 명상을 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제야 미영은 안심을 하고 수한에게 얼른 들어오라는 말을 하였다.

이미 늦는다는 아빠도 벌써 들어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한은 바로 들어가겠다는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국도 아닌데 내가 너무 방심을 한 듯하네.”

수한은 속으로 반성을 했다.

아무리 자신이 7클래스의 대마법사로 주변에 위협이 될 만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너무도 방심을 했다고 생각했다.

18년 만에 돌아온 아들이 들어올 시간이 넘었는데 돌아오지 않자 부모님이 걱정을 한 것이다.

더군다나 수교를 맺었다고 하지만 이곳은 캄보디아.

언제 어느 때 위험이 나타날지 모르는 외국인 것이다.

물론 대마법사인 수한의 능력을 모르니 그러는 것이지만 아무튼 부모님을 걱정 끼쳐 드린 것이 정말로 죄송했다.

그런데 막상 전화를 끊고 차를 부르려 하지만 지나가는 차 한 대가 없었다.

지금 수한이 있는 곳은 프놈펜 북쪽의 한적한 숲이라 지나다니는 낮에도 차가 별로 통행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니 오염이 덜되고, 명상을 할 때도 방해를 받지 않아 깊이 빠져든 것이지 않은가.

수한은 하는 수 없이 차가 다닐 만한 곳으로 가야만 했다.

천천히 숲을 나와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 ◈ ◈

탈북자들을 숨겨 줄 안가를 나온 주지훈은 표정이 풀릴 기미가 없었다.

운전을 하고 돌아오는 내내 나머지 9명을 불러올 돈을 모금하는 것이 걱정이다.

더욱이 가격이 인상되었으니 눈앞이 깜깜했다.

‘하…… 어떻게 해야 그 큰 금액을 마련할 수 있을까?’

사실 라오스에 너무 오래 두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수시로 수색을 하는 라오스 정부는 발견된 탈북자들을 북한 대사관에 넘긴다.

두 나라 간의 협약이 있어 탈북자를 발견하면 바로 북한에 알려 준다.

자신이 도와 라오스까지 왔는데 그들까지 모두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주지훈은 어떻게든 남은 이들도 모두 구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오늘 죽었다고 들은 3명이 생각났다.

분명 뭔가 숨기는 것이 있었다.

절대로 그들이 죽었을 리가 없었다.

그들을 한 명 데려오면 1천 달러를 받을 수 있는데 그렇게 허술하게 관리를 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한참 생각을 하던 주지훈은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익!

도로가에 누군가 걸어가다 자신을 보며 손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위험천만하게 도로 안쪽으로 들어와 차를 멈추게 하기까지 했다.

만약 일찍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냥 치고 지나칠 뻔하였다.

“아니, 위험하게 그게 무슨 짓이오!”

자동차 라이트에 언뜻 보기에 젊은 청년 같았는데, 늦은 시각 도로에서 위험하게 차를 세우는 것에 화가 난 주지훈이 큰소리로 훈계를 했다.

한편 전화를 끊고 도로를 따라 걷던 수한은 아무리 걸어도 지나가는 차가 한 대 보이지 않아 무척이나 초조했다.

그렇다고 마법을 이런 것에 사용하자니 그것도 꺼려졌다.

괜히 자신이 마법을 사용하다 누군가의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큰 낭패를 볼 수도 있으니까.

아무튼 그래서 일단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제쳐 두고 길을 따라 마냥 걸었다.

그러다 저 뒤쪽에서 자동차의 불빛을 보았다.

어떻게든 차를 세워야 한다는 일념에 조금 위험하지만 도로 안쪽에 서서 손짓을 하였다.

역시나 수한의 선택이 올랐는지 차는 수한의 앞에서 정지했다.

“죄송합니다. 너무 늦은 시각이라 차도 한 대 보이지 않아 그랬습니다.”

수한은 일단 자신을 나무라는 지훈에게 사과를 했다.

“어디까지 가시오?”

“예, 한국 대사관까지 갑니다.”

수한은 지훈의 질문에 목적지를 얘기했다.

그런 수한의 말에 지훈은 놀라며 물었다.

“한국인입니까?”

“네, 아버지께서 대사관에서 근무를 하셔서 잠시 들렸습니다.”

수한은 자신에 대해 설명했다.

“반갑습니다. 나도 한국인이오. 목사일로 이곳에 왔지요.”

차를 타고 가면서 통성명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 그러시군요. 그런데 이 늦은 시간에 목사님께서는 어딜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수한은 그저 인사치례로 물었는데, 지훈은 수한이 조금 전 한 말이 기억이 났다.

‘아! 이 청년 아버지가 대사관 직원이라면 어쩌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구나!’

아무리 자국민 보호에 소홀한 대한민국 외교부라 하지만 설마 직원 가족을 도와준 자신의 부탁을 거절할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금 주지훈은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간절했다.

“내 초면에 이런 말하기 미안하지만 도움을 좀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자신보다 절반 이상이나 어려 보이는 자신에게 존대를 하며 말을 하는 지훈의 모습에 수한은 눈을 반짝였다.

상대를 존중하는 사람은 함부로 부탁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목사로서 선교활동을 하기 위해 이곳 캄보디아까지 온 나이 많은 사람이 처음 본 자신을 보며 부탁을 하자 흥미를 느꼈다.

“무슨 부탁입니까? 제가 들어드릴 수 있다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수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지훈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실은 제가 탈북자들을 몇 도와주고 있는데, 이 탈북이라는 것이…….”

지훈은 탈북자들을 돕는 일과 그들을 돕기 위해 어떤 활동을 했는지 하나에서 열까지 들려주었다.

그리고 현재 자신이 이곳에 데려온 사람이 9명이 있고 또 라오스에서 데려올 사람이 9명이나 더 있다는 말을 하였다.

그러면서 수한에게 대사관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선 1인당 1,100달러가 필요합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1인당 1000달러였는데, 이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3명이나 도착을 하지 못하고, 또 가격도 10%나 올랐습니다.”

지훈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수한은 눈빛이 차가워졌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수한이 생각하기에도 중간에 어떤 사고가 터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 속해서 그 라오스인 브로커의 행동이나 캄보디아인 브로커의 행동으로 봐, 그들의 말과 다르게 아마도 국경 수비대와 무언가 일이 있었을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한참을 생각하던 수한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일단 생각난 것을 한 번 물어보기로 했다.

“목사님.”

“네? 무슨 할 말이라도…….”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것인데, 못 온 사람들이 혹시 여성분들 아닙니까?”

수한은 지회를 밟아 죽었다는 사람들이 혹시 여자가 아니었는지 물었다.

그런 수한의 질문을 들은 뒤에야 지훈도 자꾸만 자신의 머릿속을 맴돌던 의문에 답이 보였다.

말을 듣지는 않았지만 지훈의 모습에서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국경수비대 즉, 군인들이 오랜 기간 오지에 있다 보니 성욕을 해소할 곳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국경을 넘던 밀입국자들을 발견했으니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 집단에 여성들도 있었을 것이고 문제가 발생했다.

정상적이라면 그들을 모두 돌려보내거나 감옥으로 보내야 했겠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해소하는 한편 브로커에게서 안전하게 국경을 넘게 해주는 대신 돈을 요구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니 앞뒤가 딱 맞았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수한뿐 아니라 주지훈도 생각해 냈다.

무엇 때문에 밀입국을 해 주는 돈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와 도착하지 않은 여성들의 신변에 관한 의문이 해결되었다.

“아버지께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수한은 고민을 하고 있는 주지훈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아직 수한의 아버지가 캄보디아 주재 한국 대사라는 것을 알리지는 않았지만 대사관 직원이라 했기에 수한의 말에 지훈은 손을 잡으며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젊은이 고마워! 복 받을 거야!”

한국인들에게는 무척이나 흔히 하는 말이지만 좋은 일하면 복 받는다는 말이 참으로 듣기 좋았다.

그러면서 수한은 자신이 환생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참으로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지금 주지훈 목사가 하고 있는 일은 지킴이 회원 중에도 이런 일을 하는 단체가 있으니 그들과 연결을 시켜주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을 안전하게 데려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차를 타고 가면서 수한의 머릿속은 또 다른 계획을 세우느라 복잡하게 돌아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