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18년 만의 해후
친척 모임인데 식당 안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그 때문인지 수한은 오히려 이것이 더 심적으로 안정이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 서울에서 집을 꾸리고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한국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수한이 본 드라마 중 자신의 상황과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내용의 드라마가 방송되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
물론 자신의 누나인 수정이 그 드라마에 출연을 하기 때문에 본 것은 아니었다.
아무튼 그런데 드라마를 보며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어렸을 때 잃어버렸던 아이를 찾은 것은 기뻐할 일이지만 다른 친척들까지 한 번도 본 적도 없으면서 그렇게 살갑게 구는 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정이야 아기일 때 기억이 있기에 누나가 자신을 만나 그렇게 서럽게 울던 것이 이해가 가지만 다른 친척들은 당시 수한이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
그렇기에 드라마 속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서로 부대끼며 슬픔과 기쁨을 함께하면서 형성이 되는 것인데 일방적인 감정의 전달이란 서로가 어색할 뿐이다.
그런데 지금 여긴 드라마에 비해 참으로 현실적이다.
그래서 수한이 받아들이기 한결 편안했다.
하지만 수한의 누나인 수정은 그렇지 못했다.
자신을 아껴 주는 할아버지와 큰아버지들 그리고 큰어머니들이 계신 자리인데 자신의 동생이 그들과 섞이지 못하고 마치 물과 기름처럼 겉돌고 있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그런 수정의 마음을 눈치챈 것인지 장서희가 살며시 주정의 손을 잡아 주며 나직하니 귓속말을 해 주었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 어색해서 그래.”
“큰엄마, 고마워요.”
자신을 위로해 주는 큰엄마의 말에 수정은 그렇게 안심을 하였다.
한편 수한은 친척들과 섞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 때문 불안해하는 수정의 모습에 한숨을 쉬었다.
‘에휴, 처음 보는데 어쩌라고…….’
어색한 자신은 생각지 못하고 너무 급히 생각하는 수정으로 인해 갈등을 하였다.
하지만 수한은 자신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전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수한인지라 이 성격으로 전생과 현생을 합치면 장장 90년을 이 성격으로 살았다.
즉, 확고하게 성립된 성격은 자신의 친할아버지보다 더 단단하게 구성되었다고 봐야 한다.
수한은 수정에게 친척모임에 참석을 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자신의 친척들에 대하여 검색을 했다.
자신의 할아버지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고, 첫째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그리고 사촌들, 둘째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그리고 사촌들의 정보에 관해 빠짐없이 조사를 하였다.
자신의 가문이 오래된 가문이기는 하지만 의외로 혈족이 별로 없었다.
할아버지 이전에도 친척이라 부를 만한 혈족이 별로 없었다.
그 이유는 수한의 집안 어른들이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많은 집안 어른들이 독립운동을 하며 돌아가셨고, 또 독립을 한 뒤에는 6.25 사변이라는 민족 최대의 비극적인 전쟁에 희생되었다.
당시 독립운동을 하였지만, 다른 독립운동을 한 분들과 다르게 상당한 재산이 집안에 남아 있어 공산당군에게 악덕지주로 몰려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참으로 억울한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공산당이 총을 들이밀고 협박을 하니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반동으로 몰았다.
일제강점기와 6.25를 겪으며 많은 집안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수한의 집안에 소수로 명맥을 이어 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정 씨 집안은 그들끼리 뭉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세상은 정 씨 집안에 관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의 고비를 넘기고도 또 다른 고난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군부독재가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하는 존재라고 정 씨 집안은 독재에 잘 적응을 하였다.
어려운 시련을 겪다 보니 내성이 생긴 것이다.
너무 모난 것은 견제를 받는다는 것을 깨달은 수한의 증조부는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이미 땅만 가지고는 여기저기 땅을 빼앗기 위해 달려드는 하이에나들을 막아 낼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가지고 있는 땅을 잘 활용할 방법을 찾다 건설 회사를 설립하였는데, 당시 정부시책과 맞아떨어져 큰 성공을 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적당히 고개를 숙이는 법도 배우면서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그리고 그렇게 돈의 힘을 다시 한 번 알게 된 증조부는 사업 영역을 확대하였다.
세월이 흘러 증조부는 할아버지에게 유산을 물려주고 할아버지는 증조부가 벌여 놓은 사업들을 더욱 키워 지금의 천하그룹을 만들었다.
이러한 정보는 수한도 가입한 지킴이에게서 나온 정보라 믿을 수 있었다.
사실 지킴이에서도 천하그룹을 알게 모르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증조부에게 건설업을 하게 유도한 것도 당시 증조부의 지인이었던 지킴이가 조언을 한 것이고 또 사업을 따내게 도움을 준 것도 지킴이에 속한 이들이었다.
수한은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서 지킴이와 자신이 보통 인연은 아니란 생각을 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정대한이 수한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호적을 다시 정리해야지.”
정대한은 수한의 이야기를 듣고 현재 수한과 자신의 집안과는 별개의 존재로 되어 있음을 상기하며 호적 정정을 할 것을 말했다.
하지만 수한은 정대한의 생각에 반대였다.
“할아버지, 제 생각에는 아직 그건 미뤄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미뤄 두다니? 어떻게 그런 일을 미뤄 둬!”
수한의 말에 정대한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말을 하였다.
그나마 혈족이 적은 정 씨 집안이다.
실종되었던 손자가 돌아왔는데, 호적을 정정하지 않고 어떻게 그냥 둘 수가 있겠는가?
“적에게 아직 제가 살아 있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수한은 일신그룹에 자신의 존재를 지금은 알리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그들도 자신을 알게 되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암도진창(暗渡陳倉)이라 했다.
그 말뜻은 아무도 모르게 진창을 건너라는 말로 남이 모르게 행동을 해야 성공을 한다는 뜻이다.
즉, 자신의 적인 일신그룹이 눈치채지 못하게 행동을 해야 그들에게 복수를 성공할 수 있다는 말뜻이었다.
현재 천하그룹은 전 방위적으로 일신그룹에 밀려 고초를 격고 있었다.
힘을 써 주던 아버지도 캄보디아 대사로 사실상 좌천되어 외국으로 나갔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아무리 천하그룹이라도 고사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자신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일을 진행해야 한다.
“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절 납치해 끌려간 곳에서 행해진 실험들을 말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린아이들을 납치해 세뇌를 시키던 것을 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수한의 자신이 납치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자 정대한은 물론이고 수한의 이야기를 들은 친척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당시 아이들이 납치되어 일신학원에 있었던 것은 그들도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신그룹에서 그렇게 납치된 아이들을 세뇌하고 있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뒤이어 한 말에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일신그룹은 한국에서 그곳만 운영하던 것이 아닙니다. 그와 비슷한 곳이 전국에 두 곳이 더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있던 곳이 가장 중요한 데이기는 하지만요.”
수한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심각한 이야기였다.
수정이나 사촌들은 잘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정대한이나 수한의 큰아버지들은 그게 얼마나 심각한 이야기인지 알았다.
수한은 자신의 말에 놀라고 있는 이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일신그룹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들려주었다.
“일신그룹의 정체는 바로 일본의 비밀조직에서 대한민국을 경재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내세운 괴뢰입니다.”
“뭐라고?”
“그게 정말이냐?”
“세상에!”
수한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람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술술 풀어내며 자신이 아직 전면에 나서면 안 되는 이유를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조직이 한국에 심은 괴뢰들은 비단 일신그룹만이 아닙니다. 부산의 영세그룹, 전라도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호성기업 등 찾아보면 꽤 많은 기업들이 자의 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들의 자본에 잠식되어 대한민국을 경재식민지화 하는 작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일은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너무도 놀라운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정대한이나 수한의 큰아버지들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도 안 돼!’
참으로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현재 일신그룹이나 방금 전 수한이 이야기한 기업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친일성향의 기업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반인들도 그런데 대한민국의 상류사회의 일원인 천하그룹의 오너 일가인 이들이 그런 정보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 말도 되지 않는다.
다만 너무도 엄청난 일이기에 쉽게 믿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동안 그들이 하는 행동들이 그저 일본과의 무역관계 때문에 그런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란 수한의 말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할아버지의 말에 수한은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현재로써는 일단 제 병역 문제부터 해결할 것입니다.”
“병역?”
“예,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방의 의무는 꼭 해결해야 합니다.”
수한이 느닷없이 국방의 의무를 말하자 옆자리에 있던 수정이 놀란 눈으로 말을 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어?”
요즘 한창 군대에 관한 비리와 사고가 끊임없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데 18년 만에 돌아온 동생이 다시 위험한 곳으로 떠난다는 말에 불안해 그런 말을 했다.
하지만 수한도 계획이 있기에 누나를 보며 그녀를 안심시켜 주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굳이 일반 병으로 입대를 하는 것은 국가적 낭비야!”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국방의 의무를 하겠다고 방금 전 자신의 입으로 말을 했으면서 또 자신이 일반 사병으로 입대를 하는 것은 국가적 낭비라는 알쏭달쏭한 말로 헛갈리게 하였다.
“내가 전에 말했지, 나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왔다고.”
“응.”
수한은 자신이 전에 방송국에 찾아가 수정을 만났을 때 했던 이야기를 말을 하고 그에 수정은 수긍을 하였다.
그런 수정의 모습에 할아버지인 정대한을 뺀 다른 친척들은 모두 놀라워했다.
정대한이야 이미 조사를 하였기에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직까지 수한이 어떤 생활을 하였고, 또 어떤 학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정 씨 집안의 큰 어른인 정대한이 불렀기에 이 자리에 불려 왔을 뿐이다.
“날 후원해 주시던 분들 중 방위산업체를 운영하시는 분이 계셔. 그래서 그분의 회사에서 전문연구원으로 근무하기로 했어!”
“전문연구원? 그게 뭔데?”
수한이 전문연구원으로 일을 한다고 하자 그게 무엇인지 물었다.
이에 수한은 수정에게 전문연구원이 무엇인지 설명을 해주었다.
“그럼 네 말은 군대에 가는 대신 그 연구원인가로 대신 일을 한다는 말이지?”
“그래,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다행이다. 난 또 네가 군대에 간다고 해서 요즘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폭행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잖아!”
수정은 정말로 그것이 걱정이었다.
요즘 뉴스를 보면 하루걸러 한 번식 군대 내 구타사고라든가, 자살사례가 등이 뉴스에 나왔다.
그러다 보니 수정이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른 대기업 자식들이나 자신이 속해 있는 연예계 스타들이 군대를 빼기 위해 하는 불법적인 행동들이 괜히 그런 것만은 아니란 생각에 수한도 그렇게 빠졌으면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막말로 자신의 집안인 천하그룹 정도 되면 그럴 힘은 충분히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사촌인 정수종이나 수현도 면제 판정을 받았었다.
그러니 수한도 그렇게 빠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말을 했던 것인데 수한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병역을 마치는 것은 아주 중요해! 내 계획에는 이 모든 것이 다 포함이 되어 있어. 내 계획은 5년, 10년 정도의 짧은 계획이 아니라 내가 평생을 걸고 이룩해야 할 장기적인 계획이야. 그리고 내가 이룩하지 못하면 내 자식에게까지 대물림 되어 내려갈 사명이기도 해.”
수정은 갑작스런 수한의 말에 눈만 깜박였다.
뭔가 거창한 것 같은데 누나로서 응원 보다는 왠지 걱정이 더 앞섰다.
‘허허, 그저 천재라고만 보고를 받았는데, 천재가 아니라 용이구나, 용!’
정대한은 비서실장의 수한에 대한 보고를 받고 그저 공부 잘하고 머리 똑똑한 천재라 생각했다.
나중에 회사로 불러들였을 때, 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자신의 판단이 너무 일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단순한 천재 정도가 아니라 옛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용이었다.
“알겠다. 네 이야기 잘 들었다. 그럼 3년 동안 그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대체 복무를 한 뒤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때도 밖에서 활동을 할 것이냐?”
정대한은 아직 수한의 계획을 듣지 못했기에 대체 복무가 끝나는 3년 뒤에도 다른 회사에서 일을 할 것인지 물었다.
“일단 상황을 봐야 하겠지만 그때가 되면 조금 더 큰 회사로 이직을 해야 할 것 같아요. 현재 우리나라는 주변에 너무도 강력한 군사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어 기를 펴지 못하고 있어요. 이게 다 힘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해요.”
수한은 현재 대한민국이 매년 겪는 일본의 도발이나 북한의 도발에 수동적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자신의 집안 어른들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에 자부심이 강한 정대한이나 그의 아들들도 수한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정대한도 그런 생각 때문에 방위산업체를 만들어 운영을 하는 것이다.
3공화국 당시 대통령의 자주국방이란 기치아래 정대한의 아버지도 적극적으로 정부에 협력해 국방에 관한 산업을 육성했다.
하지만 기술 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기술을 가져오기 위해 외국에서 많은 가문의 가신들이 희생이 되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감내한 덕분에 지금의 천하 디펜스와 천하 화학을 키울 수 있었다.
만약 그런 생각이 없고 그저 돈만 벌려고만 했다면 굳이 지금까지 두 회사를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예전에야 방위산업체가 돈이 되는 사업이었지만 현재에는 그저 애물단지에 불과했다.
물론 아직도 군사장비는 성능에 비해 고가의 장비다.
하지만 그게 고가라 하여도 소비가 많은 품목이 아니다 보니 지금에 들어서 방위산업체라는 것은 돈은 별로 못 벌면서 욕먹기 딱 좋은 사업이다.
더군다나 방위산업이라는 것이 비리도 많아 뜯어먹기 위해 달려드는 하이에나들도 많았다.
흔히 군납비리라는 것은 모두 이런 이유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구입처는 군대 하나뿐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잘 보여야 물건을 팔 수 있으니 그들의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아니라도 물건을 팔 사람은 또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그들이 요구하는 돈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또 물건값이 오르고 국정감사에서 성능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욕먹고 시중의 발전된 물건과 전쟁용 물자를 비교하며 중간과정과 사용처는 생각지도 않고 가격만 가지고 욕을 한다.
이러니 머리가 깨인 오너들은 진즉에 돈도 별로 되지 않고 욕만 먹는 방위산업에서 손을 떼고 있다.
다만 중요한 방위산업 가운데 대기업이 아니면 안 되는 것도 있었는데, 돈이 안 된다고 그만둘 수도 없는 그런 일이 있다.
천하 디펜스가 바로 그것이다.
천하 디펜스는 주로 미사일을 연구생산하는 기업으로 국내 유일의 유도미사일 생산업체이다.
하지만 다른 선진국의 유도미사일 생산업체보다 기술이 떨어져 해외에는 팔지를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천하 디펜스가 생산하는 유도미사일의 구입 수량은 얼마 되지 않고 있었다.
그저 미국에서 들여오는 미사일이 고가라 수시로 발사훈련을 할 수가 없다.
한 발에 수십억 원이나 하는 미사일을 함부로 소모할 수도 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래서 미국에서 들여온 미사일 보다 비교적 저렴한 천하 디펜스에서 생산한 미사일을 훈련 때 발사하며 전시 작전 훈련을 하였다.
이렇다 보니 사실상 천하 디펜스는 미사일 부대의 교보제 생산업체처럼 인식되고 있었다.
정대한은 수한이 미국에서 전공한 것이 화학은 물론이고 물리, 전자에까지 두루 학위를 취득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체 복무가 끝나는 3년 뒤 어떻게 할 것인지 물은 것이다.
갈수록 적자가 심해지는 천하 디펜스를 조금 더 안정적으로 키워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해마다 해외에서 들여오는 미사일의 절반만 천하 디펜스에서 커버를 한다고 해도 엄청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물어본 것이다.
◈ ◈ ◈
“룰룰룰!”
조미영은 간만에 콧노래를 부르며 요리를 하고 있었다.
일어나 침실을 나서던 정명수는 그런 부인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오늘 무슨 날이야?”
아침부터 기분이 들떠 있는 조미영의 모습이 신기한 때문이다.
더욱이 집에는 캄보디아인 사용인이 있어 아침은 그들이 준비는 하는데, 오늘은 조미영이 나서서 부엌을 장악하고 있어 놀랐다.
“오늘 수한이가 온다잖아요.”
“아! 맞아! 오늘이지.”
조미영은 남편의 물음에 자신이 아침부터 분주하게 요리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 미영의 설명에 정명수도 그제야 생각이 났는지 감탄사를 흘렸다.
“어쩜 아빠가 되어서 18년 만에 돌아오는 아들이 오는 날을 까먹을 수가 있어요.”
“미안해! 요즘 좀 신경 쓸 일이 있어서 말이야!”
“아니 우리 아들이 오는 일 말고 당신이 신경 쓸 일이 또 있어요?
“그게 말이지…….”
정명수는 조미영의 채근에 요즘 대사관에 일고 있는 신경 쓰이는 일에 관해 설명을 했다.
북한 인원에 대한 일을 하는 선교사 한 명이 요즘 북한을 탈출한 탈북민을 이곳 캄보디아에 데려왔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이야기였다.
정보를 입수하지 않았으면 모르겠지만 일단 그런 정보를 취득하였으니 캄보디아 주재 대사관인 그로서는 그 일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럼 당신은 어떻게 하려고요?”
“어쩌긴, 요청이 들어오면 도움을 줘야지.”
“괜찮을까요?”
조미영은 남편이 탈북자들을 돕겠다는 말을 하자 심적으로 뿌듯하면서도 좀 불안했다.
남편을 따라 여러 나라를 다니며 많은 것을 경험하였지만 북한 고위층들의 하는 행동들은 도저히 봐 줄 수가 없었다.
그들의 막무가내 행동들은 외교가에서 무척이나 말들이 많았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탈북자들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끌고 가는 것을 보면 참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나 못 먹어 깡마른 어린 아이들이나 임산부들을 끌고 가는 것을 보며 무슨 짐승을 도살장에 끌고 가듯 데려갔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도움을 줄 수 없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까웠는데, 남편이 탈북자를 돕겠다는 말을 하자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조심해요.”
“알았어. 그건 너무 신경 쓰지 마.”
정명수는 너무 그 일에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을 하고 세면장으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은 정명수는 출근을 하였다.
“조심히 다녀오고, 오후 5시에 도착을 한다고 하니 오늘은 조금 일찍 들어와요.”
“OK!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일찍 들어올게!”
쪽!
벌써 나이가 쉰이 넘은 두 사람이지만 아직도 신혼인지 현관에서 출근을 하는 남편을 배웅을 하고 또 배웅을 받으며 키스를 하였다.
◈ ◈ ◈
남편을 출근시킨 조미영은 어젯밤부터 흥분해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전혀 피곤한 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 조미영의 모습에 집안일을 도와주는 가정부가 그 이유를 물었다.
“사모님! 무슨 기쁜 일 있어요?”
“응, 오늘 아들이 온데!”
“아드님이요?”
“그래, 18년 전에 잃어버린 아들이 무사히 돌아와서 우릴 보기 위해 온데!”
조미영은 말을 하면서 너무도 보고 싶던 아들이 자신들을 보기 위해 이곳에 온다는 말을 하며 울었다.
말을 하고 나니 너무도 가슴이 북받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아들을 데리고 백화점에 갔다가 잃어버린 후 그 비통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엄마로서 아들을 그것도 생후 6개월뿐이 되지 않은 아들을 잃어버릴 수 있는가 말이다.
조미영은 그때 조금 힘들더라도 아들을 같이 화장실에 데리고 들어갔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지금까지 끊이지 않았다.
밤에 눈만 감으면 그때 일이 잊히지 않았다.
자신을 보며 웃던 아들이 어느 순간 형체를 알 수 없는 이에게 납치가 되어 울면서 자신을 찾는 모습에 울면서 잠을 깨곤 했다.
아들을 잃어버리고 18년 동안 하루하루가 조미영에게 고문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어느 하늘 아래서 비는 맞지 않는지, 눈이 오면 아들이 춥지는 않은지 그것이 걱정이었다.
날씨가 좋아도 그것은 그것대로 걱정이고 수한의 생일이나 어린이나 그리고 12월25일 크리스마스면 조미영은 문밖을 나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들의 생일과 수한이 유괴당한 날이면 유독 더욱 그랬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죽을 것만 같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유괴되었던 아들이 무사히 그것도 미국에 있는 유명 사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가정부는 울고 있는 조미영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손수건을 건네며 그녀를 위로했다.
“어머! 사모님, 축하드려요. 너무도 다행이에요.”
진심에서 우러나는 가정부의 축하에 조미영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펑펑 울었던 터라 퉁퉁 부은 그녀의 두 눈은 그것을 보고 있는 가정부에게 웃음을 유발했다.
“호호호, 사모님 어서 씻으셔야겠어요. 몇 시간 뒤에 그렇게 보고 싶던 아드님이 오신다는데, 개구리눈을 하시고 맞으실 것이에요?”
가정부의 말에 조미영은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
아닌 것이 아니라 자신도 두 눈이 퉁퉁 부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런 조미영의 뒤로 가정부는 미소를 지었다.
◈ ◈ ◈
캄보디아는 11월부터 내년 4월까지 건기에 들어간다.
대한민국은 11월이면 찬바람이 불고 일교차가 심해 긴팔 옷과 두꺼운 옷들을 입을 시기이지만, 캄보디아는 11월이라도 평균 기온 30도를 넘어가는 더운 날씨다.
수한은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도착해 주변의 풍경에 자신이 외국에 나온 것을 다시 한 번 인식할 수 있었다.
공항을 나온 수한은 잠시 주변 풍경을 살피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누나가 알려 준 주소를 택시 기사에게 알려 주었다.
그런데 택시 시가는 수한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건 딱 봐도 외국인으로 보이는 수한이 크메르어를 너무도 유창하게 말을 했기 때문이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네, 한국에서 왔습니다.”
“아 그래요. 그런데 우리말을 무척이나 잘하시네요.”
택시기사는 물어보며 칭찬을 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자신의 말을 칭찬하는 택시기사에게 감사의 말을 하였다.
7클래스 대마법사인 그에게 외국어를 익히는 것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굳이 통역마법인 트렌스레이션(Translation)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몇 시간만 사전을 보고 회화를 들으면 쉽게 익힐 수 있었다.
인천에서 캄보디아 프놈펜까지 5시간 정도 걸렸는데, 그 시간이면 캄보디아 언어인 크메르어를 배우는 데 충분했다.
택시기사의 질문에 간간히 답을 해 주며 창밖을 보는 수한의 눈에는 사실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조금 뒤 만나게 될 엄마의 얼굴이 프놈펜의 풍경과 겹쳐 보일 뿐이다.
창밖으로 시선을 주고 있는 수한의 모습에 조금 전까지 수한에게 말을 걸던 택시기사는 조용히 수한의 사색을 방해하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운전을 하였다.
얼마를 달렸을까.
창밖으로 저 멀리 한국 대사관이 보이고 조금 떨어진 곳에 대사관 관저가 보였다.
수한은 택시에서 내려 대사관 관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목적지가 가까울수록 수한의 심장은 무척이나 가쁘게 뛰기 시작했다.
수한이 아무리 7클래스의 대마법사이며 또 혜원에게 배운 무술 실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지금 급하게 뛰는 심장은 통제할 수가 없었다.
사실 7클래스 대마도사 정도면 불수의근(不隨意筋)이라 불리는 심장도 충분히 의지로 조절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통제할 수가 없었다.
그건 그만큼 수한이 흥분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사실 수한도 지금 자신의 심장이 이렇게 흥분하고 있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이런 감정을 생소하지만 그렇다고 싫지 않았다.
전생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색다른 감각들을 환생을 하며 느꼈다.
‘환생하길 참 잘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마법사로서 신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이케아에서 신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현재 자신을 환생하게 해 준 어떤 신에게 감사하는 중이다.
물론 대마법사라고 하지만 이케아의 신과 이곳의 신이 같은지는 수한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이곳에 신이 있는지도 알 수는 없었다.
수한이 본 이곳의 신학을 적어 놓은 책과 관련 서적에는 신이 현존하지 않고, 그저 믿음의 존재일 뿐이라 말하고 있지만, 아무튼 대마법사로서 느껴 보지 못한 삶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어떤 존재에게 감사했다.
천천히 관사 입구로 접근한 수한은 입구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하였다.
“후하!”
수한은 떨리는 마음에 선뜻 초인종을 누를 수가 없었다.
한편 수한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던 조미영도 집 안에서 자꾸만 시계를 쳐다보았다.
째깍째깍!
시계의 시침이 돌아가는 소리가 무척이나 요란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조미영의 심정을 반영한 그녀만 느낄 수 있는 소리였다.
왔다 갔다.
조미영은 시침이 5시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급해졌다.
“도착할 시간이 되었는데!”
띵동!
초인종 소리가 울리자 조미영은 급하게 입구로 뛰어갔다.
“누구세요?”
“나야.”
“아!”
초인종 소리에 급하게 달려가 물었는데, 기대했던 아들이 아닌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때문에 실망한 투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문이 열리고 정명수가 들어오며 그런 조미영을 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별로 밝지 않은 것을 보고 짐작했다.
“수한인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이오?”
“네, 도착할 시간이 되었으니 곧 오겠죠.”
비록 기대했던 아들은 아니지만 남편의 물음에 대답을 하였다.
자신도 아들을 기다렸지만 남편 또한 아들을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녀인지라 조금 전 실망한 기색을 했던 것이 못내 미안했다.
“그런데 조금 전 나 정말 실망이야.”
“네?”
“아무리 아들이 그렇게 보고 싶다고 하지만 그래도 난 당신 남편인데 너무했어.”
정명수는 엄살을 피우며 조금 전 문 앞에서 조미영의 실망한 표정에 대하여 농담을 건넸다.
“죄송해요. 그래도 매일 봤던 당신 보다는 그래도 18년 만에 보는 아들이 더 기다려지지 않겠어요?”
남편이 지금 자신에게 농담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조미영은 얼굴을 붉히며 남편의 농담을 받아쳤다.
그런 조미영의 모습에 정명수는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수한이 유괴를 당하고 난 뒤 한 번도 농담이란 것을 하지 않던 조미영이 자신에게 방금 전 농담을 건넨 것이다.
“허허허!”
정명수는 너무도 기가 막힌 상황에 저절로 헛웃음이 터졌다.
그동안 무언가 아무리 기쁜 날이나 상황에도 뭔가 씁쓸한 미소만 짓던 아내가 아들이 유괴되기 전 본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아 무척이나 기뻤다.
그러는 한편 혹시나 오늘 온다는 수한이 혹시나 무슨 사고라도 나서 늦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아들도 아들이지만 지금 잔득 기대에 차 있는 아내가 실망할까 그것이 걱정이다.
사실 지금 정명수가 걱정을 하고 있는 것도 기우에 불가한 것이지만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고 괜한 걱정이 되었다.
띵동!
이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왔나 보군!”
“왔나 봐요.”
“어서 문 열어 봐!”
“알았어요.”
사실 정명수도 아내 미영 못지않게 아들이 기다려졌다.
사실 퇴근 시간도 아닌데 이렇게 일찍 집에 온 것도 혹시나 자신이 집에 도착하기 전 수한이 먼저 들어오면 어쩌나 하는 이유 때문이었다.
18년 만에 돌아오는 아들을 비록 고국의 집은 아니지만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서 맞이하고 싶은 생각에, 아직 일과가 남아 있었지만 일은 잠시 밀어 두고 먼저 퇴근을 하였다.
조미영이 남편의 부추김에 조심스럽게 현관으로 다가가 물었다.
“누구…… 세요?”
무척이나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조미영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였다.
“엄마!”
떨리는 목소리로 밖에 찾아온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던 조미영의 물음이 끝나기 무섭게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엄마, 저 수한이에요.”
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던 수한이 용기를 내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안에서 한국말이 나오자 수한은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덜컹!
수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열렸다.
그리고 안에서 중년의 미 부인이 나오며 수한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벌써 두 눈에 눈물이 고여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흐릿한 눈에 비치는 미 부인의 모습에서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엄마!”
“우리 아들! 어디 갔다 왔어!”
수한이 자신의 앞에 있는 미영을 안자, 미영도 그런 수한을 마주 안았다.
그리고 미영의 뒤에 있던 정명수 또한 밖으로 나와 포옹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을 포개 안았다.
“아버지!”
수한은 자신과 엄마를 함께 앉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예전 아기 때의 기억 속에 있는 아빠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다 보니 아빠라고 하는 것이 어색해 아버지라 불렀다.
정명수는 아들이 미영에게는 엄마라고 하면서 자신에게는 조금 멀게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불만이었으나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갓난아기 때 유괴를 당했던 아들이 무사히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냐 대충 봐도 자신보다도 키도 크고 당당한 모습이 참으로 건강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