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가족모임
이얏! 이얏!
팡! 팡!
넓은 정원이 있는 어느 조용한 저택에 우렁찬 기합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서울에서 이렇게 넓은 정원이 있을까?
그런데 정말로 있었다.
정원한 가운데에 나이 지긋한 노인이 흰색 도복을 입고 맨손으로 어떤 무술을 수련하고 있었는데, 흔히 알고 있는 무술과는 그 형이 달라 어떤 무술을 수련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나이 지긋한 노인이 하는 것 치고는 무척이나 강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노인의 무술 시범을 관람이라도 하듯 주변에 비슷한 복장을 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노인은 얼굴에 구슬땀이 흐르고 있지만 그 눈빛만은 한 점 흐트러지지 않고 어딘가를 집중하였다.
이얍!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우렁찬 기합과 함께 모든 동작이 멈췄다.
그런데 이때 참으로 희한한 현상이 연출이 되었다.
노인의 동작이 멈추고 정면으로 정권 지르기가 끝났는데, 이때 마치 비행기가 음속을 돌파할 때 나는 소닉붐처럼 팡! 하고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누렇게 마른 잔디의 잔해가 흙먼지와 함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노인이 주먹을 지른 방향으로 2m정도 뻗어 나갔다.
참으로 보기 힘든 희한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감탄을 하는 표정과 뭔가 흠모하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구경을 하던 사람들과 다르게 검은 양복을 입고 있던 50대쯤으로 보이는 장년의 사내가 쟁반에 물 컵과 수건을 들고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조금 전 무술 시범을 하였던 노인은 자신에게 다가온 사내가 들고 온 물건 중 수건을 들고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을 하였다.
“이젠 나이가 들어 그런지 힘들군!”
“아니, 이 정도 가지고 무슨 엄살을 피우십니까?”
사내는 노인의 말에 엄살을 피운다며 말을 받았다.
하지만 노인은 사내의 말에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고 물었다.
“그래, 어떻게 됐어?”
“조사를 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알 수가 없습니다.”
“알 수가 없다?”
“예, 뒷조사를 하였는데, 그의 말대로 양모가 한 명 있기는 한데, 그게 참으로 이상합니다.”
“뭐가 이상하다는 것이야?”
“예, 그것이…….”
사내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였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노인이 지금처럼 아무런 억양이 없을 때 그가 얼마나 집중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노인을 수행하면서 이런 때 자칫 실수를 해 그동안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일신학원에서 몸을 숨겼을 당시 함께 그곳을 빠져나갔던 여자의 이름이 최성희이고, 이번에 조사대상의 의붓어머니가 동명인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그 뒤로 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너무도 서류가 완벽해 더 이상 나오는 것이 없습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럼 애 아버지는?”
대한민국 입양법에는 양자를 들이기 위해서는 아빠, 엄마 모두 있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양자를 부양할 능력이 있어야 하며, 또 양자의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 밑으로도 많은 조항들이 있는데, 이 중 대상의 양부모 중에 양모는 있는데, 양부가 없었다.
이는 정상적으로 꾸려진 가족관계가 아니란 소리였다.
그런데 서류에는 정상적으로 허가가 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이것으로 미루어 봐서 이들의 뒤를 봐 주는 집단이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더욱이 공공서류를 조작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집단이 말이다.
이 때문에 사내는 조사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지금 노인에게 그 의문을 그대로 알려 주는 것이다.
“그럼 이놈도 가짜일 수 있다는 말인가?”
“예,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됩니다. 당시 도망쳤던 여자의 가족관계를 봐도 이 정도로 서류를 꾸밀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더욱이 최성희의 가족들을 감시하던 것은 저희들뿐만이 아니라 일신 놈들도 그렇고, 정부에서도 찾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 죽일 놈들도 그 여자의 가족을 감시하고 있었지.”
노인은 뭔가를 생각했는지 말을 하면서도 그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다.
“그런데 특이사항이 있습니다.”
“특이사항?”
노인은 사내가 특이사항이 있다는 말에 관심을 보였다.
“예, 자신이 회장님의 손자라 주장하는 청년은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뭐야!”
노인은 자신의 실종되었던 손자라고 나타난 청년의 뒷조사를 시켰다.
그런데 조사를 한 내용을 보고 받는 중에 부정적인 내용만 나오지 실망을 했다.
하지만 뒤이어 나온 특이사항이라는 내용에 잠시 관심을 보였는데, 그 내용이 참으로 뜻밖이었다.
자신의 손자라면 이제 겨우 19세.
곧 새해가 밝으며 1살 더 먹어 20살이 되지만, 그래도 벌써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것은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다.
“음…….”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청년은 대단한 천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예전 자신의 아들이 손자를 찾아 달라며 왔을 때 자신의 손자가 보기 드믄 천재란 것을 알았다.
당시 TV에도 소개가 될 정도로 엄청 똑똑한 놈이란 기억이 났다.
“DNA검사 결과는 나왔나?”
노인은 더 이상 다른 보고를 듣기보다 DNA검사가 궁금해졌다.
어떤 집단이 막고 있는지 천하그룹의 힘으로도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니 이젠 유전자 검사에 희망을 걸어 볼 생각이다.
사실 그동안 노인, 정대한은 자신의 손자를 찾는 것을 사실상 포기를 한 상태였다.
생후 6개월 된 아기가 성인 여성과 함께 있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장장 18년 동안 들키지 않고 숨어 생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더욱이 그들을 찾는 인원은 지금까지 실종된 사람을 찾기 위해 동원된 인원 중 최대 규모였다.
민관군은 물론, 천하그룹과 일신그룹까지 힘을 쏟았다.
하지만 하늘로 솟았는지 아니면 땅으로 꺼졌는지 그 어느 곳에도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서울 외각 모텔에서의 흔적을 마지막으로 손자를 데려간 것으로 보이는 여성의 흔적이 끊겼다.
자신을 붙잡기 위해 동원된 일신그룹 해결사들을 피해 달아난 것으로 끝이었다.
더 이상 그녀의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기를 데리고 있으니 어딘가에 흔적을 남길 것이란 예상과 다르게 그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정대한은 그녀와 손자가 경찰이나 자신들이 아닌 일신그룹의 손에 걸려들어 죽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18년 만에 손자라고 나타나니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이것도 일신그룹의 음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조사를 지시한 것이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천하그룹의 능력이 이것뿐이 되지 않았는지 후회가 들었다.
손자가 실종되기 전까지만 해도 정대한은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천하그룹이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도 대한민국 재계서열 1위인 성삼그룹도 자신들을 무시하지 않을 정도였기에 정대한은 그게 정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알게 되었다.
자신이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이다.
일신그룹과 단기간의 출혈경쟁을 하면서 느낀 것은 다른 그룹들이 천하그룹과 대결을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그저 경쟁을 해 봐야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많아 이겨도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사실과 함께, 정계에서 자신들을 그냥 두고 보고만 있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대통령의 제지로 싸움을 멈추긴 했지만 일신그룹이나 자신이나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리라.
이미 싸움은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나 버렸던 것이다.
기업이라는 것이 처음 소규모였을 때야 인간의 통제가 가능하지만, 규모가 점점 커지고 대기업이 되며, 또 그룹이 되다 보면 회사라는 것은 이미 생명력을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대한이 이것을 깨닫고 통제를 하려고 했을 때는 조금 늦은 뒤였다.
이 때문에 안과 밖으로 통제를 하느라 정대한은 아니, 천하그룹은 많은 타격을 입었다.
그래서 더 성장할 수 있던 시기에 일신그룹과의 싸움 때문에 시기를 놓쳐 버렸다.
그에 비해 일신그룹은 천하그룹보다 타격이 적었다.
주로 일본과 한국기업 간의 중계를 하고 그 커미션을 받는 일을 하던 일신그룹은 피해를 최소로 할 수 있었다.
물론 당시 정명수의 방해로 피해를 입긴 했지만 천하그룹이 입은 피해에 비하면 별거 아니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재계 전반에 포진한 친일인사들의 도움으로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성세가 막강해져 10대 그룹 반열에 들어서고 말았다.
이것은 규모면에서도 천하그룹은 이제 일신그룹의 절반 정도밖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일신그룹을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살기가 일기 시작하는 정대한이었다.
“조금 더 조사를 해 보고 유전자 검사하는 곳에는 좀 더 재촉해 봐!”
“알겠습니다.”
정대한은 정신을 추스르고 다시 지시했다.
◈ ◈ ◈
“수한아! 어서 준비해!”
수정은 아침 일찍 수한의 집에 들이닥쳐 수한을 깨운 다음 이렇게 닦달하고 있었다.
수정이 수한의 집에 와 이렇게 수한을 닦달하는 이유는 바로 오늘이 천하그룹 회장이자 이들 남매의 친할아버지인 정대한을 만나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직 수한은 친부모를 만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수한의 아버지 정명수가 캄보디아 대사로 나가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정명수의 능력이라면 캄보디아 대사가 아니라 좀 더 중요한 나라의 대사로 파견 갈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는데, 이게 다 일신그룹이 정부에 압력을 넣어 그렇게 된 것이다.
정재계 전 방위적으로 일신그룹의 영향력이 18년 전과는 딴판으로 막강해 어쩔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18년 전 정명수가 외무부 사무관으로 있을 때, 일신학원의 최제국이 자신의 아들을 유괴하라 사주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천하그룹과 함께 일신그룹을 압박한 데 대한 보복 조치였다.
아무튼 수한은 학업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자신의 친가족을 만나려는 꿈에 부풀었지만, 아버지가 캄보디아에 대사로 파견을 나가 있는 것 때문에 엄마 조미영 여사도 함께 캄보디아에 있었다.
그 때문에 수한은 누나인 수정을 만나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참으로 얄궂은 운명이 아닐 수 없었다.
수한에게 그나마 다행히 자신이 백화점에서 유괴가 되면서 그 충격으로 쓰러졌던 엄마가 기력을 찾고 원래 꿈이었던 패션 디자이너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수정과 자신의 할아버지인 정대한이 부른다는 말에 준비를 하려 했지만,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수정으로 인해 수한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누나! 그냥 거실에 앉아 있어! 나 혼자도 다 할 수 있으니…….”
수한은 참다못해 수정에게 그렇게 말을 하였다.
하지만 수정은 그런 동생을 보며 한 소리 했다.
“18년 동안 못해 준 것을 해 주는 거야! 그러니 넌 잠자고 누나가 하는 대로만 하면 돼!”
수정은 그렇게 말을 하고 막무가내로 수한의 팔을 끌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에 물을 틀고 뿌렸다.
“누나!”
하지만 아무리 누나라고 하지만 남녀가 유별한데 욕실에 그것도 하초를 가리는 속옷 한 장만 걸치고 있는 상태에서 이렇게 막무가내로 화장실에 끌고 와서 물을 뿌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나, 제발 내가 할 수 있으니 나가 있으라고.”
억지로 자신에게 물을 뿌리고 있는 수정을 밀어내고 화장실 문을 닫았다.
수정은 그렇게 수한에 의해 떠밀려 화장실에서 쫓겨나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온 수정은 문득 자신이 너무 야단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수한이가 아직 잠에서 덜 깨어나 속옷만 입고 있었구나!’
조금 전 수한의 상태가 이제야 생각이 나며 수한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필사적이었는지 생각났다.
“그, 그래, 그럼 입구에 갈아입을 옷 가져다 둘 테니 얼른 씻고 나와!”
수정은 그렇게 동성 동생에게 하듯 말을 하고 옷 방으로 들어가 수한이 갈아입을 옷을 챙겨 화장실 문 앞에 가져다 두었다.
한편 아침 일찍부터 집으로 쳐들어온 누나로 인해 정신이 하나도 없던 수한은 찬물을 뒤집어썼더니 정신이 번쩍 났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 어휴…… 팬들은 누나가 저러는 것을 알까?’
문든 수한은 문득 누나의 팬들에 대해 걱정하게 되었다.
누가 뭐래도 현재 수정은 잘나가는 최고의 여성 아이돌 그룹의 리더.
그녀를 알고 있는 팬들에게 여왕으로 통하는 그런 존재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할아버지는 그녀가 소속된 천하 엔터테인먼트까지 거느린 대기업의 회장이니까.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외무부 고위직 공무원으로 캄보디아 대사로 파견 나가 계신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엄마 또한 유명 디자이너였고, 본인 또한 지성과 미모를 함께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재원이었다.
명문 고구려 대학 4학년에, 고구려대의 메이퀸을 4년 내내 줄곧 놓치지 않았다.
물론 수정이 고구려대의 메이퀸이 된 것은 그녀의 배경이 아닌 전적으로 그녀의 미모를 보고 뽑은 성적을 바탕으로 메이퀸이 된 것이다.
172㎝의 모델 뺨치는 늘씬한 키에 8등신을 넘어 9등신에 이르는 신체비율, 거기에 비쩍 마른 모델 몸매가 아닌 글래머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연예인을 한다고 해서 대학을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것이 아니라 순수 본인의 실력으로 시험을 치고 들어갔다.
한참 연예인들의 특례입학이 문제가 있던 때, 연예인이 흔히 지원하는 방송통신학과나 연극영화과가 아닌 경영학과에 차석으로 입학을 하였다.
그 때문에 한때 그녀의 시험 성적으로 논란이 잠시 일기도 했지만, 그녀의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의 성적표와 생활기록부가 언론에 공개가 되면서 논란은 일소되었다.
이렇게 미모면 미모, 배경이면 배경, 그리고 지성이면 지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그녀로 인해 엄친아 말고 엄친딸의 표본으로 한때 파이브돌의 리더 크리스탈이 아닌 엄친딸로 불리기도 했었다.
그런 수정이 막무가내에 덤벙대고 있으나 아마 그녀의 팬들이 이런 모습을 보았다면 자신의 눈을 의심했으리라.
수한은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 자신도 모르게 피식 하고 헛웃음을 하였다.
피식.
‘누나가 의외로 귀엽네.’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누나인 수정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한이 지금까지 여자를 많이 만나 본 것은 아니지만 미국에서 공부를 할 때 그곳에서 많은 여자를 만나 보았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어려서부터 의붓할아버지인 혜원으로부터 많은 교육을 받아 온 수한은 자신의 전생인 대마도사로서의 힘을 다시 습득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한편, 혜원이 가르쳐 주는 우리나라 전통의 무술도 수련하였다.
혜원에게서 무술을 배우면서 수한은 이 세계의 무술에 대하여 깜짝 놀라게 되었다.
자신이 느끼기에 지구는 마나가 무척이나 부족한 세상이었다.
그런데 혜원이 알려 주는 무술은 그런 희박한 마나를 끌어들여 마법처럼 몸 안에 쌓게 해 주는 효능이 있었다.
사실 수한은 마나를 끌어들여 마력을 쌓는 데 무척이나 애를 먹고 있었다.
너무도 희박한 마나로 인해 마나가 자신의 의도대로 몸으로 이끌어 오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한순간 방심을 하면 느껴지던 마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수한이 4살이 되던 때부터 시작된 혜원의 가르침에 힘입어 빠르게 마나를 몸으로 끌어들여 마력으로 변환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혜원과 혜원이 속한 단체에서 보내 온 각종 보약으로 인해 전생 못지않은 마력을 몸에 가지게 되었는데, 이런 혜원의 가르침과 지원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수한이라고 해도 마법을 지금의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아직도 요원했을 것이다.
혜원이 가르쳐 준 전통무술은 최상급 마나명상법 보다 뛰어난 것이라 전생에 익힌 명상법과 함께 상승효과를 발휘했다.
몸으로 마나를 끌어들이는 것은 전통무술에 있는 동공이 더 좋았고, 또 몸에 들어온 마나를 마력으로 변환하는 효율은 전생의 마나명상법이 더 좋았기에 두 가지가 합쳐지면서 보다 뛰어난 효율을 발휘하였다.
그래서 희박한 마나 분포에도 불구하고 수한의 경지가 이른 나이에 전생의 경지에 들어설 수 있었다.
아무튼 어려서부터 전통무술까지 수련하다 보니 수한의 몸은 일반적인 천재들과 확연히 달랐다.
흔히 알고 있는 천재들이 부실한 학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면 수한은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문무겸비의 인물과 비슷했다.
사실 수한은 나이는 어리지만 미국에서 동급생들에게 많은 호감을 주었다.
비록 동양인이란 흠을 가지고 있지만, 동양인 치고는 하얀 피부에 큰 키, 오뚝한 콧날 그리고 무엇보다 오밀조밀하게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운동신경 등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겸손한 수한의 인품으로 인해 많은 동급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누나나 동생이나 참으로 잘난 남매가 아닐 수 없었다.
◈ ◈ ◈
정수현은 현재 무척이나 기분이 좋지 못했다.
계속되는 경영 악화로 스트레스가 쌓여 친구들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오랜만에 클럽을 찾았다.
간만에 맘에 드는 아가씨도 있어 막 작업을 하려던 찰나 집안에서 호출이 온 것이다.
“일 때문에 지금 못 가!”
평일에는 아버지의 감시 때문에 놀지 못하지만, 일과가 끝나는 금요일 저녁 이후의 시간은 간섭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스트레스라도 풀기 위해 나왔는데 사촌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수현의 집안인 천하그룹은 다른 대기업들의 집안과 다르게 일과 외 시간에 한해서 그렇게 간섭이 심한 편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현도 과중한 업무에도 이렇게 시간이 나자 친구를 만나 클럽에도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수현은 이것도 사실 불만이었다.
친구들은 자신처럼 회사 업무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후계 수업이라고 하지만 해도 너무했다.
친구들은 회사에 들어가도 이사로 시작을 해, 업무 파악을 위한 인원까지 집안에서 모두 붙여 줘 쉽게 회사에 적응을 하였다.
그런데 자신은 천하그룹 회장의 손자이면서도 회사 밑바닥부터 올라가야만 했다.
물론 몇 년 만 더 고생을 하면 친구들처럼 이사 자리에 오르겠지만 이건 아니란 생각이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친구들을 만날 때면 하는 친구들의 이야기 때문에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을 지경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친구들이 아니면 자신의 하소연을 들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어울리고 있었다.
더욱이 어차피 자신이 나중에 경영 일선에 올라가면 또 어울려야 하니 미리미리 인맥을 관리하는 차원에서라도 친해져야 했다.
“알았어! 제길, 그놈이 뭐라고 내가 거기까지 가야 하는 거야!”
수현은 할아버지의 엄명이란 말에 하는 수 없이 클럽을 나가야만 했다.
“무슨 일인데 그러냐?”
“뭐야? 너 벌써 가게?”
수현이 전화를 끊고 벗어 두었던 양복 상의를 집어 들자 친구들이 물었다.
“그래, 간다.”
“왜? 너 오늘은 한가하다고 했잖아?”
“그랬지. 그런데 우리 꼰대가 호출이란다.”
“뭐? 너희 할아버지가 호출했다고?”
“그래, 애기 때 실종됐던 사촌이 돌아왔다나, 어쨌다나? 아무튼 안 오면 불이익 있을지 모른다고 수종이 형이 그런다.”
수한이 조금 전 자신에게 전화를 한 사람이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전화를 했는지 친구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의 친구들이 하나 같이 눈이 동그래져 물었다.
“너희 집에 실종된 사촌이 있었어?”
“응, 너희 수정이 알지?”
“알지.”
수현이 수정의 이름을 거론하자 그의 친구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이 중 몇은 수정을 눈여겨보고 있는 이도 있었기 때문이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이 자리에 있는 이들도 수현처럼 재벌 3세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들도 결혼에 관해서 철학이 뚜렷한데, 자신들의 배우자도 격에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재벌들의 결혼은 조건과 조건의 만남이다.
그런데 재벌가 딸들이라고 모두 미인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현의 사촌인 정수정은 달랐다.
막말로 이 자리에 있는 재벌 3세들 말고 나이가 더 많은 재벌 2세들 중에서도 수정을 어떻게 해 보려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수정이 처음 연예계 데뷔를 했을 당시 수정의 집안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 멋모르고 껄떡이던 재벌 2세가 있었다.
보기 드믄 미인인 파릇파릇한 아이돌이 나타났으니 당연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건 당연했다.
수정이 속한 아이돌 그룹을 스타로 만들어 줄 테니 자신과 조건만남을 가지자는 제의였다.
물론 그 재벌 2세는 부인까지 버젓이 있는 유부남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외국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천하 엔터테인먼트에 스폰서를 하겠다고 찾아갔던 그는 더 이상 국내에서 볼 수가 없었다.
그게 벌써 4년 전 일이다.
나중에 수정의 할아버지가 천하그룹 정대한 회장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일이 상류층에 알려지면서 조용히 넘어갔다.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지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재벌 2, 3세들에게는 더욱 수정의 주가가 올라가는 계기가 되었다.
미녀에 명문 고구려대에 재학 중에, 집안은 재계순위 중상위의 대기업.
당연히 대한민국 최고의 신부감으로 뽑히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수현이 수정의 이야기를 꺼내자 그의 친구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설마 실종되었다 돌아왔다는 사촌이 파이브돌의 리더 크리스탈의 동생이란 말이지?”
“그래, 그런데 크리스탈에게 동생이 있었다니…… 난 왜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지?”
대한민국 상류층은 그들만의 모임이 있어 수시로 모임을 가지고 정보를 교환한다.
이른바 사교모임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를 모으기도 하고 또 거짓 정보를 흘려 경쟁자를 견제를 하기도 한다.
수현의 친구들도 이런 모임에 자주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소문을 들어 본 기억이 없었다.
“하긴 나도 그 사실을 알게 된 게 10년 전이다. 집안에서 비밀로 하는 이야기라 아마 모르는 사람도 많을 거다.”
“그래? 그런데 언제 실종이 되었기에 우리들 중 들어 본 사람이 한 명도 없던 거냐?”
“18년 전이라고 하더라!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유괴되었다가 실종되었데!”
“그게 사실이냐? 대박이다.”
“아무튼 오늘 할아버지 댁에 온다니 가 봐야겠다. 할아버지 엄명으로 친척들 모두 모인단다.”
“그래, 그럼 얼른 가 봐라! 괜히 너희 할아버지 눈 밖에 났다가 무슨 경을 칠라고…….”
수현의 친구들은 수현의 마음을 알겠다는 듯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
하지만 수현은 자신을 보내려는 친구들의 눈에서 아쉬움보다 새로운 이야기꺼리가 생겼다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새끼들…… 말로만 친구지!’
수현은 밖으로 나가면서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나온 것이긴 하지만 이들 중 자신이 진정으로 친구라 부를 만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클럽 룸 안에 남아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 모두 필요에 의해 어울리는 것뿐이지 진정 어려울 때 도움을 줄 인간은 아무도 없음을 서로 잘 알고 있었다.
수현은 그런 생각이 들자 가슴 한편이 너무도 공허해졌다.
그러면서 공허한 마음 한편으로 자신이 할아버지 집으로 불려 가는 이 억지스런 상황에 짜증이 났고, 그 원인을 준 사촌동생에게도 짜증이 났다.
◈ ◈ ◈
“어서 오너라!”
수한은 누나인 수정과 함께 할아버지 댁으로 들어섰다.
진즉 찾아왔어야 하지만 친척들을 한꺼번에 보자는 생각에 친척들의 스케줄에 맞추다 보니 조금 시간이 걸렸다.
더욱이 수한은 친척이라고 하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솔직히 그렇게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수한의 전생에도 그렇지만 환생을 하고도 자신이 유괴를 당하기 전까지 친척을 본 적이 없다.
나중에 인터넷을 통해 한국의 가족에 대하여 읽어 보면서 자신의 상황과 많이 다름을 알고 처음에는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을 했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라고 해서 모두 정확한 정보는 아니다.
허구로 작성한 것도 있고 또 일부러 거짓 정보를 올려놓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수한에게 가족의 범위에 있는 이들은 사실 자신의 친부모인 정명수, 조미영 부부와 누나인 수정 그리고 의붓할아버지인 혜원과 의붓어머니인 최성희뿐이다.
그리고 조금 더 폭을 넓힌다면 자신이 힘을 얻기 전까지 자신과 의붓어머니인 최성희를 보호해 준 지킴이 회원들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수정을 따라 할아버지 댁이라고 찾아온 것은 누나인 수정이 그렇게 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친가인 천하그룹을 돕는 것과 이들을 만나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 생각하는 수한이기에 처음 수정이 할아버지 정대한을 만나러 가자고 했을 때 참 많이 망설였다.
솔직히 천하그룹을 돕는 이유에는 자신의 혈족이란 이유에서가 아니라 이들이 힘들어진 원인이 자신의 원수인 일신그룹에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로 피해를 입은 혈족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 외에 더 이상 다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수정을 만나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은 마음을 열기로 했다.
비록 아직은 가족이란 느낌 보다는 누나가 원해서 만난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만난 뒤 어떻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아무튼 수한은 수정의 뒤를 따르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근처에 아차산이 있어 그런지 서울 안이지만 공기만은 깨끗해 그런지 그 안에 포함된 마나의 향기도 다른 지역에 비해 오염이 덜되어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할아버지! 수정이 왔어요.”
수정은 자신을 맞는 정대한 회장에게 뛰어가 안기며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벌써 나이가 24살이나 되는 말만 한 처녀지만 할아버지 앞에선 천진한 소녀처럼 행동을 했다.
이 때문에 다른 손자들에게는 엄격한 정대한이지만 수정에게만은 언제나 자상한 할아버지였다.
물론 정 씨 집안에 모두 남자만 있고 딸은 수정이 유일했기에 더욱 그러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 녀석아! 무겁다.”
“할아버지! 어떻게 숙녀에게 그런 심한 말을 할 수가 있어요.”
수정은 정대한의 무겁다는 말에 정색을 하며 샐쭉 해서는 짐짓 토라진 듯 말을 하였다.
하지만 정대한은 그런 손녀를 보며 너털웃음을 하며 뒤에 있는 수한을 보았다.
“허허허, 그런데 네 뒤에 있는 아이가 수한이냐?”
정대한은 말을 하면서도 수한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도 수한의 얼굴에서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의 얼굴이 보였다.
이미 수한의 유전자 검사 결과도 받아 보았기에 수한이 자신의 친손자가 맞는다는 것을 알고 초대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생전처음 보는 관계라 핏줄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당기는 느낌은 없었다.
그리고 그건 수한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정대한 보다는 수한이 더욱 데면데면한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아기일 때부터 이미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나다 보니 수한의 성격은 전생의 제로미스였던 때의 성격 그대로다.
다만 현생의 생부 생모인 정명수와 조미영이 지극정성으로 돌보던 6개월과 또 수한의 의붓어머니가 되어 수한을 부양했던 최성희의 희생으로 전생의 성격이 조금은 인간적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거의 대동소이한 정도의 차이를 보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친할아버지를 보면서도 담담하게 마치 거리에서 지나가는 노인을 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표정이었다.
그런 수한의 표정을 읽었는지 정대한의 표정이 좋지 못하게 바뀌었다.
한순간 분위기가 바뀜을 느낀 수정도 고개를 돌려 수한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수한이 취하고 있는 모습을 본 수정은 수한을 보며 훈계를 했다.
“정수한! 할아버지를 봤음 인사를 드려야지!”
수정의 말에 수한은 조심스럽게 인사를 올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정수한입니다.”
“그래, 어서 오너라! 고생이 많았다.”
정대한은 수한의 인사에 떨떠름한 표정을 하였지만 곧 표정을 풀고 고생했다는 말을 하였다.
아기일 때 유괴가 되어 타인의 손에 크다 보니 가족에 대한 정이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넘기기로 했다.
잠시 현관에서 작은 일이 있기 했지만 곧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당에는 벌써 다른 친척들이 도착해 있었다.
“큰아빠! 큰엄마! 저 왔어요!”
수정은 식당 안에 자신의 큰아빠와 큰엄마가 보이자 인사를 했다.
정대한의 첫째 아들 내외와 둘째 아들 내외도 진작 도착해 모여 있었다.
“어서 오너라!”
“수정이 왔어! 이번 노래 좋더라!”
수정은 첫째 큰엄마가 자신의 노래를 칭찬하자 눈이 동그래지며 물었다.
“어머, 큰엄마도 저희 노래 들어요?”
“그럼! 나도 아이돌 노래 좋아한다.”
큰엄마가 말을 하자 그녀의 말을 들은 그녀의 아들이 한숨을 쉬며 말을 했다.
“엄마! 제발 체통을 지키세요. 제가 엄마 때문에 얼마나 창피한지 아세요?”
“이놈의 자식이! 내가 어떤 노래를 듣든 그건 내 마음이야!”
서희는 자신의 큰아들이 자신의 노래 취향에 대하여 한 소리 하자 그렇게 대답을 했다.
참으로 개방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여인이었다.
모자의 대화를 수정의 뒤에 따르던 수한이 듣고 그렇게 생각을 했다.
보통 상류층의 어른들은 아이돌의 노래는 저급하다고 생각을 많이들 하고 있었다.
아니, 연예인들이 부르는 노래 자체를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장서희는 그렇지 않았다.
음악이란 것은 고상함을 느끼기 위해 듣는 것이 아니라 그저 듣고 기분이 좋으면 되는 것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슬플 때 위로가 되고 기쁠 때 더 행복을 주는 그런 것이면 된다는 생각에 음악 장르를 거르지 않고 두루 좋아했다.
그러다보니 수정도 그런 그녀를 무척 따르고 의지했다.
사실 수한이 유괴된 뒤 실종이 되면서 미영은 한때 정신을 놓았다.
몇 년이 지나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그 기간 동안 딸인 수정은 엄마의 돌봄을 받지 못했다.
그때 수정을 안아 준 사람이 바로 정대한의 큰며느리인 장서희였다.
음악을 자주 듣는 그녀의 영향으로 수정도 그녀를 따라 자주 음악을 들었다.
수정이 가수가 된 데에는 그런 장서희의 영향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작은 소란이 있기는 했지만 정대한이 수정과 수한을 데리고 들어서자 곧 소란은 잠잠해졌다.
“수현이는 아직이냐?”
문득 자리에 앉던 정대한은 가족 모임에 둘째 아들의 장남인 수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렇게 물었다.
아버지의 물음에 수현의 아버지인 차남 정명환이 대답을 했다.
“좀 늦나 봅니다.”
정명환은 현재 자신이 맡고 있는 사업이 계속해서 적자를 보고 있어 아버지를 보는 것이 여간 눈치가 보이는 게 아니었다.
“할아버지, 수현이에게 전화가 왔는데, 길이 막혀 좀 늦는다고 연락 왔어요.”
수종은 얼른 끼어들어 변명을 해 주었다.
하지만 정대한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고 있었다.
며칠 전에 이미 통보를 했는데, 시간 맞춰 도착하지 않은 것에 화가 난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약속시간 하나 지키지 못하는 것이 나중에 어떻게 기업을 운영할 것인지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 아이가 셋째의 잃어버린 아들이다. 최 비서를 통해 다 알아봤으니 모두 그렇게 알고 있도록 해라!”
간단한 말이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무척이나 큰 의미였다.
가문의 큰 어른인 정대한이 자신의 손자로 인정을 했다는 것은 상속권을 인정받았다는 말인 것이다.
물론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정대한의 말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늦었습니다.”
정대한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아직 자리에 없던 정수현이 뒤늦게 도착을 해 인사를 하였다.
“앉아라!”
수현의 인사를 하였지만 다른 말도 없이 일단락되었다.
자신이 가족모임에 늦기는 했지만 조금은 차가운 할아버지의 말에 수현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러다 식탁에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얼굴이 보였다.
‘저놈이 그놈이구나! 저 새끼 때문에…… 젠장!’
문득 자신이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 모두 수한의 잘못인 듯 수현은 잠시 자신의 자리로 가며 수한을 노려보았다.
그런 수현의 시선을 느낀 수한은 고개를 돌려 잠시 자신을 노려보는 수현을 보고 시선을 돌렸다.
솔직히 현재 수한에게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의미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누나인 수정뿐이다.
그리고 수정이 친근하게 대하는 큰어머니인 장서희에게 조금 관심이 있을 뿐, 다른 친척들에게는 털끝만큼의 의미가 없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분명 누나를 만나고 할아버지가 자신을 보자고 했다는 말을 했을 때는 이렇게 담담하지 않았다.
뭔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생경한 것에 기대감마저 있었지만 문 앞에서 할아버지인 정대한을 만나고부터는 이렇듯 아무런 감정도 느낌도 없었다.
다만 수정이 친근하게 대하는 장서희만이 뭔가 느낌이 있었다.
아직까지 수한이 느낀 그것이 뭔지 몰라 머릿속에서만 생각을 정리하지만 조만간 그 느낌이 무엇인지 밝히리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