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지금 만나러 갑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름다운 스튜어디스는 도움을 청하는 승객의 손짓에 얼른 다가와 어떤 도움을 원하는지 물었다.
그런데 스튜어디스들이 모두 이렇게 친절한 것은 아닌데, 유독 오늘은 마치 항공사 홍보 CF에 나오는 모델마냥 무척이나 친절하게 손님을 접대하고 있었다.
물론 많은 스튜어디스들이 친절한 것은 맞지만 이렇게까지 친절한 것은 퍼스트클래스나 비즈니스클래스처럼 고가의 탑승 티켓을 구입한 승객에 한한 서비스였다.
지금 도움을 청한 승객이 탄 곳은 일반적인 이코노미클래스이기에 사실 이 정도 서비스를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름다운 스튜어디스들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서비스를 해 줄 수 있을지 경쟁을 하듯 나서서 친절을 베풀고 있었다.
그런 스튜어디스들의 모습을 보는 스튜어드들의 시선은 별로 좋지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튜어디스들이 주로 관심을 보이는 승객의 외모가 짝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잘생겼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야리야리한 흔히 말하는 꽃미남 같이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무척이나 샤프한 지성미 넘치게 보이기도 하며, 또 다르게 보면 살짝 올라간 눈매나 오뚝하니 솟은 콧날, 굳게 다물린 다부진 입술이 마치 고독한 늑대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무한 매력의 덩어리였다.
더욱이 언뜻 봐도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많이 쳐 줘야 2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일 정도로 풋풋해 보이기도 하여 일부 이상성애자에게 구애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잘생긴 남자였기에 질투가 나기도 했다.
아무튼 스튜어드의 질투와 스튜어디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남자는 별거 아니란 듯 질문을 한 스튜어디스에게 물 한 잔을 부탁했다.
“물 한 잔만 부탁드려요.”
“네, 알겠습니다.”
스튜어디스가 물 한 잔을 따라 주고 자리를 벗어나자 사내는 컵에 있는 물을 마셨다.
그런데 이때 그 사내의 옆자리에 안대를 하고 누워 있던 여성이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올리며 고개를 돌리며 말을 하였다.
“아들! 지금 얼마나 왔어?”
사내를 아들이라 부른 여성은 언뜻 보이게 이만큼 장성한 아들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젊은 여성이었다.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그 여성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를 아들이라 부르며 질문을 했다.
“응, 10분 후면 인천공항에 도착한데.”
“뭐야…… 벌써 도착한 거야?”
대화를 하는 두 모자는 참으로 보기 좋았다.
언뜻 봐서는 모자지간으로 보이지 않고 그저 조금 나이 차이 나는 남매처럼 보였는데 대화를 들어 보면 모자란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대화 속에 애정이 넘쳤다.
“그럼 공항에 도착하면 어디부터 가고 싶어?”
사내의 엄마는 어디부터 가고 싶은지 물었다.
“음…….”
엄마의 물음에 그 사내는 선뜻 말을 하지 못했다.
질문을 하는 엄마의 표정이 썩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두 사람의 관계는 친모자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은 모자관계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항에 도착하면 이후 어떻게 될지 몰랐다.
여성은 그동안 자신의 품에서 큰 양아들을 혹시나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그런 불안감은 그녀의 두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사내는 엄마가 무엇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도 자신의 신상에 대한 비밀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어린 시절부터 다 알고 있었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자신의 친부모님이 어떤 심정일지 너무도 잘 알고 있으나 자신을 아기일 때부터 길러 준 자신의 옆자리 양어머니의 사랑을 너무도 잘 알고 있어, 지금 그녀가 어떤 마음인지 잘 이해가 되었다.
사내는 불안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엄마를 살짝 안아 주며 그녀의 귀에 귓속말을 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누가 뭐라고 해도 엄마는 내 엄마야.”
사내의 속마음을 듣게 되어서 그런지 여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아들 고마워!”
여인도 자신을 안아 주는 양아들을 마주 안았다.
두 사람이 그렇게 마주 안고 있을 때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본 코리안 에어 000기는 잠시 뒤 인천공항에 도착을 합니다. 안전을 위해 이동을 하지 마시고 안전벨트를 매 주시기 바랍니다. 레이디스 앤…….
◈ ◈ ◈
웅성웅성!
사내와 엄마가 출국장을 나오려는데 많은 사람들이 공항에 모여 무척이나 붐비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공항에는 많은 젊은 청소년들이 누군가의 사진이 들어 있는 피켓을 들고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런 청소년들 주변에는 목에 카메라를 걸고 있는 기자들도 상당수 보였다.
‘무슨 일이지?’
사내는 이상한 공항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예인이라도 오나?’
간간히 뉴스를 통해 본 공항의 모습 중 한 장면이 생각이 난 사내는 그렇게 생각을 했다.
유명 연예인이 공항에 나타났을 때 환영하기 위한 팬과 그들을 취재하려는 기자들이 딱 저 모습들이었다.
“누구 연예인이라도 오나 보다.”
“응, 그런데 아무래도 아이돌인가 보네.”
아이돌이라는 말에 여성이 물었다.
“아들은 공항에 오는 연예인이 아이돌인지 어떻게 알아?”
“그거야 저들이 들고 있는 피켓만 봐도 알 수 있지.”
사내는 별거 아니란 듯 손을 들어 팬들이 모여 있는 곳을 가리켰다.
캐리어를 밀며 걷던 여성은 사내가 가리킨 곳에 시선을 주다 고개를 끄덕였다.
팬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젊은 여성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유치한 응원 문구와 함께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피켓은 그들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피켓을 꾸몄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공항에 모인 팬의 숫자를 보며 감탄을 했다.
“공항에 오는 연예인이 무척이나 인기가 많은가 보네?”
“그러게요. 공항을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이렇게 팬들이 운집할 정도면 대단히 인기가 많은가 봐.”
그들이 보고 있는 사진 속 연예인은 그들의 짐작대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 아이돌 그룹이었다.
대세라고 할 정도로 아이돌 하면 그들의 이름이 가장 먼저 거론될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입국 수속을 하려고 걷고 있던 사내의 눈이 커졌다.
팬들이 들고 있는 피켓 속 사진을 가까이서 보게 되면서 사진 속 연예인 중 한 명의 사진과 이름이 그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수정 러브…… 설마 수정이 누나인가?’
자신도 알고 있는 사람의 이름이 피켓에 적혀 있자 놀란 것이다.
더욱이 사진 속 인물의 모습이 자신의 기억 속 얼굴과 많이 비슷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갔다.
“아들 무슨 일이야?”
함께 걷던 여성은 어느 순간 자신의 옆에 있던 아들이 뒤쳐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무슨 일인지 물었다.
“아, 아니야. 그냥 내가 알고 있는 사람과 이름 하고 외모가 비슷해서 잠시 쳐다본 거야.”
“그래?”
여성은 아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아들이 본 곳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기 때부터 자신의 손으로 키웠는데, 아들 주변에 연예인이 된 여자아이들은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여성은 이미 앞에 있던 사람이 수속을 마치고 자신의 차례가 되자 얼른 고개를 돌려 앞으로 걸어갔다.
“아들, 우리 차례다.”
“응.”
두 사람은 입국 수속을 하기 위해 앞으로 걸어갔다.
막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가려는 때 일단의 사람들이 공항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공항 안으로 들어서자 밖으로 나가려던 두 사람은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번쩍, 번쩍.
공항에 들어서던 사람들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사진을 찍었고, 그 뒤로 아름다운 젊은 여성들이 공항 안으로 들어섰다.
사내는 자신의 앞을 스쳐지나가는 여성들 중 한 명에게 시선이 꽂혔다.
‘그녀다.’
사내는 조금 전 자신의 시선을 끌었던 사진 속 주인공이 눈앞을 지나가자 한눈에 알아봤다.
비록 사진 속 모습과는 조금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고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 수 있는 얼굴이라 생각했다.
“어머, 우리 아들 이제 다 컸네! 여자에게 관심을 다 보이고.”
그의 옆자리에 있던 여성은 자신의 양아들이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조금 전서부터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자 놀리듯 말을 하였다.
“그, 그런 것 아냐! 어서 가자! 스님 할아버지 기다리겠다.”
사내는 자신을 놀리는 엄마의 말을 막고 공항을 빠져나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시선을 끈 여성의 뒷모습을 한 번 더 돌아보았다.
한편 해외 스케줄 때문에 출국을 하려고 공항에 들어서던 수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선가 자신을 주시하는 듯한 시선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그 시선이 결코 스토커나 팬들의 시선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느껴지는 곳을 쳐다보았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자신을 주시하던 시선은 느껴지지 않았다.
한참 걸어가고 있던 그녀가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함께 걷던 여성이 물었다.
“수정아 무슨 일이야?”
“아, 아냐. 누가 날 쳐다보는 것 같아서…….”
“널 쳐다보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냐?”
“아니, 그런 거 아니거든!”
수정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여성의 물음에 대답을 해 주고 다시 걸었다.
‘누구지?’
수정은 무척이나 그리운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을 쳐다보던 시선을 주인이 누군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 ◈ ◈
지리산 자락 깊은 곳에 위치한 현운사에 오랜만에 북적이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에는 신자들도 거의 찾지 않는 고즈넉한 사찰인데 오늘은 웬일인지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곧 도착할 시간이 되었으니 모두 준비들 하고 있어!”
“알았으니 거 그만 떠들고 그거나 잘 잡고 있으라고.”
웅성, 웅성.
뭐가 그리 즐거운지 모여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다.
그런데 이곳 현운사 마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복장을 보면 모두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이는 불교에 종사하는 듯 가사를 입은 승려도 있고, 또 어떤 이는 가톨릭 성직자의 사제복을 입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경찰 공무원의 제복을 입은 사람도 있었으며 일반 사무원처럼 양복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같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아무런 대립도 없이 그저 흥겨웠다.
“도착한다!”
한 사람이 입구부터 뛰어오며 소리쳤다.
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를 잡고 섰다.
이들이 질서를 지키며 줄을 서고 있자 현운사 입구에 두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현운사로 들어오던 사내가 큰 소리로 소리쳤다.
마치 어린아이가 학교를 갔다 온 뒤 집에 들어서며 부모님께 자신이 돌아왔음을 알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사내의 모습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한편 현운사 대웅전에 자리하고 있던 현운사 주지 혜원은 밖에서 큰 소리가 들리자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그의 눈에 비춘 것은 헌칠하게 장성한 청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래전 인연을 맺고 손자로 맞이한 아기가, 장성해 이제는 성인이 된 모습이 그의 눈을 가득 매웠다.
“어서 오너라!”
비록 친 혈육은 아니지만 자신을 보는 청년의 시선에 따뜻한 정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도 청년을 같은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할아버지,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청년은 사람들이 터 준 길을 달려가듯 빠르게 걸어가 혜원의 앞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맨 바닥에 큰 절을 하였다.
그런 청년의 모습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소란스럽던 현운사는 바늘 하나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혜원은 자신에게 큰절을 하는 청년의 어깨를 잡고 일으켜 세우며 한마디했다.
“허허, 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을 하지 않았더냐! 비록 너의 간청에 허락하기는 했지만 절대로 내게 무릎을 꿇어선 안 된다고 말이다. 이 세상에서 네게 그런 예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네 부모님뿐이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할아버지도 제 절을 받으셔야죠. 할아버지시잖아요.”
혜원의 말에 청년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 그의 말을 받았다.
“아버지, 아버지가 이해하세요. 수한이 고집을 누가 꺾을 수 있겠어요.”
청년과 함께 들어오던 여성은 혜원을 보며 아버지라 말을 하였다.
그리고 청년을 수한이라 했는데, 그렇다 청년의 정체는 바로 18년 전 실종된 그 수한이었다.
일신학원 원장 최제국의 의뢰로 영등포 두꺼비파의 부두목인 김영수에 의해 유괴가 되었던 아기.
김영수에 의해 유괴되어 최제국에게 넘겨져 각종 실험을 당하고, 천하그룹으로 인해 위기를 느낀 최제국이 증거를 없애기 위해 죽을 뻔했던, 그 후 같은 처지에 처한 최성희가 탈출을 하면서 데려온 그 아기가 장성한 모습이다.
당시 자신의 안전을 위해 이곳 오지인 현운사까지 들어온 최성희는 시간이 지나 자신을 쫓는 일신학원의 끄나풀에게서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숨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것이라 생각을 했지만 그들은 너무도 집요하게 자신을 찾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장시간 이곳 현운사에 머물다 보니 최성희와 혜원의 관계나 수한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와 의붓딸, 의붓어미와 아들의 관계로 정립이 되었다.
그리고 최성희는 나중에 이곳 혜운사가 보기와 다르게 많은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대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는 한반도 수호세력의 현 수장이라는 것을 말이다.
외세의 침입으로 국운이 기울었을 때, 일어났던 의병 운동의 주도세력이 바로 이들이었다.
지금은 그 후예들이 각계, 각층에 스며들어 감시를 하고 있다.
최성희도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이들의 일에 동참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은 자신이 아들로 삼은 수한을 돕는 일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혜원이 수한을 보며 아수라니 전륜성황이니 하는 말을 하였지만 성희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의붓아버지로 삼은 혜원이 하려는 일이 수한에게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 말에 따르기로 하였다.
수한도 비록 아기의 몸이기는 하지만 정신만은 대마도사의 정신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 또한 혜원이 말한 아수라나 전륜성황의 뜻은 알지 못하지만 당시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는 빨리 힘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고례로 우리 민족에게 백두산과 한라산과 함께 명산으로 이름 높은 지리산. 한반도에 있는 명당 중 한 곳이고 또 현대에 들었어도 자연훼손이 적어 아직도 산골 깊은 곳에는 전국으로 깔려 있는 무선 인터넷조차 터지지 않는 곳이 있을 정도로 청정지역이다.
그런 곳에서 마나를 모은다면 도시에서보다 더 많은 마나를 모을 수 있을 것이고, 보다 적은 노력으로 많은 마력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수한은 이런 생각에 이곳 현운사에서의 생활에 불만이 없었다.
물론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느껴 본 그 따스한 가족애를 다시 만끽하기 힘들다 하여도, 일단 자신을 지키고 또 나아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선 힘을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참기로 결심했다.
나중에 자신의 가족에 대한 비밀도 알게 되었지만 그건 아직 수한이 원하는 힘을 모두 얻기 전이었기 때문에 가족에게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인연을 맺고 세월이 흐르다 보니 이들의 관계는 또 다른 가족이 되어 있었다.
수한에게 혜원이나 최성희는 자신의 친부모인 정명수나 조미영, 그리고 누나인 정수정 못지않은 아주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수한은 혜원에 의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그가 수장으로 있는 지킴이란 단체였다.
지킴이란 단체는 대대로 일인전승으로 그 직위를 이어받았다.
처음에는 그런 방식으로 지킴이를 양성하지 않았는데, 조선후기에 커다란 고초를 겪고부터 방식이 그렇게 바뀌었다.
지킴이 내부에 지킴이를 운영하는 방식을 두고 다툼이 벌어졌다.
조선후기 들어오기 시작한 외국 문물로 고유의 생활양식이 변하기 시작하면서 지킴이 내부에도 인식의 변화를 겪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이전에는 나라님에 대한 충(忠)이 중시되었다면 외국 문물이 들어오면 평등사상도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면서 임금에 대한 충성보다 우선이 되는 것이 민족에 대한 박애정신을 주장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당시 충과 박애, 두 가지 이념으로 갈라선 지킴이들은 서로 자신의 생각이 맞다며 갈등을 하였다.
그렇다고 나라를 지키는 일에 등한시할 정도로 갈등의 골이 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디나 반골은 있듯 지킴이 내에서도 욕심에 눈이 어두워 동지를 팔아먹는 이가 있었다.
나라에서 보면 아무리 좋은 뜻으로 모인 집단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불법적인 불온단체다.
그 때문에 비밀회동은 밀고자로 인해 집회에 참여했던 이들이 감옥에 투옥이 되었고 갖은 고문에 유명을 달리했다.
다행히 당시 집회에 참여하지 못한 이들로 인해 지킴이는 명맥을 유지할 수는 있었지만, 그 뒤로 이들의 집회는 더욱 은밀해졌고, 또 회원의 가입도 철저히 점 조직화 되었다.
아무튼 현재는 각계에 퍼진 지킴이들은 각 분자에서 자리를 잡았다.
세상이 변하면서 이들의 조직이 정부에 인가된 단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법단체로 탄압을 받을 일도 없어졌다.
하지만 그래도 지킴이는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사회를 감시하고 은인자중하고 있었다.
◈ ◈ ◈
늦은 시각 객방 안 혜원과 수한이 마주 앉았다.
“생각보다 공부를 일찍 마쳤구나.”
혜원은 수한의 나이를 생각하며 그가 무척이나 이른 시각에 공부를 끝냈음을 말했다.
수한은 15살이 되던 해 지킴이의 도움으로 미국에 유학을 떠났다.
사실 지킴이의 도움이 있었기에 최성희와 아기인 수한이 일신그룹과 천하그룹의 수색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더욱이 당시 대통령의 특별명령으로 전국적으로 공권력이 동원되어 전국을 뒤졌지만, 그 어느 곳에도 최성희와 수한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 모든 것이 각계각층에 자리하고 있던 지킴이 회원들의 도움으로 그리된 것이다.
지킴이 수장인 혜원 스님의 부탁으로 수한과 성희의 흔적을 지우고 암중에서 지원을 하였다.
가장 기초적인 끼니와 옷에서부터 수한을 가르칠 교과서 등 많은 것을 지원해 주었다.
회원들의 도움으로 수한은 무럭무럭 자랐고, 또 수한 또한 마력을 키우는 와중에도 이 세상의 정보에 대하여 끊임없는 지식욕으로 혜원이 가르쳐 주는 것들을 깨달아 갔다.
사실 혜원도 최성희에게 수한이 천재란 소리는 들었지만 설마 아기가 천재이면 얼마나 똑똑하겠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문일지십(聞一知十)은 그저 일반적인 천재를 가리키는 단어일 뿐.
수한은 문일지십을 지나, 또 다른 진리를 깨닫고 혜원에게 가르쳐 줄 정도였다.
혜원도 어디 가서 아는 것이 적다는 소리는 듣지 않는다, 자부했지만 수한에게는 지식이 모자랐다.
겨우 수한의 나이 5살 때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수한에게 빼앗겼다.
수한은 배우는 정도가 아니라 지식을 뺏어 가는 수준인 것이었다.
그 때문에 부랴부랴 회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수한을 가르칠 교과서와 교보재를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가르침도 한계에 이른 것이 수한의 나이 14살 때였다.
국내에서는 도저히 수한을 더 이상 가르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외국 유학이었다.
비용이야 회원들이 충분히 지원해 줄 수 있었다.
어린 수한을 혼자 외국에 유학 보내는 건 정서적으로 좋지 않다는 의견에 수한의 의붓어미가 된 최성희도 함께 가게 되었다.
비록 나이가 있기는 하지만 최성희도 한때 영재라 불리며 대학원까지 다녔던 재원이었다.
집안 사정으로 중도에 학업을 중단하고 일신학원에 강사로 취직을 하긴 했지만 그녀도 박사를 준비하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수한이 빠르게 기초를 끝낼 수 있었다.
아무튼 지킴이에서는 최성희도 수한의 뒷바라지를 위해 유학을 보내며 못 다한 공부를 할 수 있게 지원을 해 주었다.
수한은 사실 유학을 가서 일반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받을 때, 튀지 않기 위해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우연히 듣게 된 자신의 집안 문제로 인해 조기에 졸업을 해야 할 상황이 벌어졌다.
자신의 집안인 천하그룹이 일신그룹에 자꾸만 밀린다는 것을 알게 된 수한은 한시라도 빨리 학업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의붓할아버지가 된 혜원이 수한이 유학을 떠날 때 약속한 것 때문이다.
수한이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면 친족을 만나는 것을 허락하겠다고 해서였다.
물론 혜원의 허락 없이 만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온갖 정성을 쏟는 혜원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숨기고 있던 천재성을 외부에 조금씩 드러냈다.
그로 인해 수한은 월반에 월반을 하여 조기에 졸업을 하고 학위도 받았다.
이 일로 수한이 수학하던 대학에서는 수한을 붙잡기 위해 갖은 혜택을 제안했지만 수한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친족이 어려움에 처했다는데 도우러 가야 할 처지에 약간의 편의를 주겠다는 학교에 남아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
더욱이 친 가족을 보지 못한 것이 벌써 18년이나 되었다.
생후 6개월에 유괴가 되었다가 지금까지 못 만났다.
그런데 겨우 그 정도 편의로 수한의 마음을 돌리기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이젠 제 뜻을 펼쳐 보려고요.”
“그래, 하긴 너무 오랫동안 가족들을 못 봤으니 보고 싶기도 하겠지.”
수한은 혜원의 말에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돌렸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는 혜원의 말에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것도 있고요.”
“너무 부끄러워하지 말거라! 그게 다 인간으로 태어나면 가지게 되는 본성인 것을…….”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혜원의 말에 수한은 입을 다물었다.
“이제 너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겠지만 네 어미를 잊어선 안 된다.”
“예, 엄마가 저를 얼마나 애지중지 하셨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혜원은 자신의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그렇게 고개만 끄덕이며 산 너머로 기우는 달을 쳐다보았다.
그런 혜원을 바라보는 수한의 눈에 작은 슬픔이 깃들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현재 혜원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수한은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전생의 마법 실력을 가지게 된 그다.
환생 전 마지막으로 했던 텔레포트 마법진을 가동하면서 깨우친 깨달음 때문에 이젠 마력만 모이면 이종족의 한계라 알려진 8클래스에 오를 수도 있었다.
다만 이곳은 이케아 대륙과 다르게 마나가 희박하고 탁해 오랜 시간 모으고 또 정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언제 그 경지에 들어설지 모르지만, 깨달음만은 충분했기에 시간문제일 뿐이다.
더욱이 수한 자신의 환생 전 전공이 바로 생명에 관한 마법이 아니던가?
그 때문인지 현재 혜원의 건강상태에 관해서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 수 있었다.
더욱이 천하그룹 문제 말고도 수한이 이렇게 조기에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것에는 혜원의 건강도 한몫했다.
얼마 남지 않은 혜원의 수명 때문에 감춰 두었던 천재성을 내보이기까지 하며 학업을 마친 것이다.
“내일 올라가기 전에 네 어미도 함께 데려가거라.”
“알겠습니다. 그러려고 했어요.”
혜원의 말에 수한도 이제는 자신의 의붓어미인 성희와 헤어지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장장 18년을 자신의 뒷바라지를 해 준 여인.
비록 위기의 순간에 자신이 잠깐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그건 모두 자신도 최성희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그 위기를 넘길 수 없었기 때문에 상부상조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최성희는 아기인 자신을 친자식 마냥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그런 최성희의 사랑을 외면한다는 것은 자신을 짐승으로 격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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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운사에서 일을 모두 보고 서울로 올라왔다.
이제부터 그가 생활해야 할 터전은 현운사가 있는 전라도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이었다.
옛말에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 했다.
혜원은 장차 수한이 전륜성황으로서 대한민국을 크게 이끌기 위해선 그만한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지킴이에 연락해 물심양면으로 수한을 뒷바라지하였다.
비록 자신의 건강 때문에 망설이는 수한을 억지로 떠밀다시피 하여 서울로 올려 보냈다.
수한이 미국에서 모든 학업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기에 수한에게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국방의 의무였는데, 예전이라면 고아는 군 입대가 힘들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출생률이 줄어들면서 군대에 들어가야 할 인적 자원이 부족해졌다.
이 때문에 법령이 바뀌어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성인 남성이라면 누구도 국방의 의무를 져야 했다.
그렇지만 역시나 어디에나 편법은 있었는데, 국회의원 자식이나 대기업 자식들은 아직도 편법을 동원해 이런 국방의 의무를 회피했다.
아무튼 지킴이들의 도움으로 신분을 숨기고, 고아이며 최성희에게 입양이 된 것으로 서류를 조작해 신분을 만들었던 수한이다.
만약 수한이 정상적이라면 대학을 핑계로 입대를 늦췄겠지만 수한은 이미 미국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그 때문에 국방의 의무를 해야 했지만, 대체 병역 제도를 이용해 군대를 가는 대신 전문연구원으로 병역을 대신하기로 계약을 하였다.
전문연구원으로 대체 복무를 하기 위해선 석사 이상의 학력이 있어야 하는데, 수한은 이미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대체 복무를 신청하는 데 아무런 하자가 없었다.
그리고 수한이 대체 복무를 할 기업은 바로 지킴이 회원 중 한 명이 운영하는 회사로, 방위 산업체로 지정된 회사였다.
비록 수한이 다녀야 할 회사는 서울이 아닌 성남에 있는 회사였지만 수한이 집을 구한 곳도 서울과 성남 사이에 있는 위례신도시에 위치해 있었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더욱이 인근에 남한산성이 있다 보니 공기도 서울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맑아 수한을 더욱 기분 좋게 하였다.
다만 의붓할아버지인 혜원의 건강이 좋지 못해 의붓어머니인 최성희는 혜원의 수발을 들기 위해 같이 올라오지 않고 수한만 먼저 올라왔다.
타닥, 탁탁!
수한은 작업실로 꾸민 작은 방에서 컴퓨터를 조작하고 있었다.
그가 하고 있는 것은 업무에 대한 작업이 아닌 그제 본 아이돌 가수 중 한 명의 정보를 검색하기 위해서다.
한참을 키보드 위해서 춤을 추던 손가락이 멈추자 모니터에 찾고 있던 정보가 떠올랐다.
“음, 그룹명이 파이브돌이라…… 좀 유치한 이름이군.”
공항에서 봤던 아이돌 그룹명을 확인한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유치하단 말이 절로 나왔다.
하긴 파이브돌이란 이름은 너무도 유치했다.
구성 멤버가 5명이라 파이브돌이라니…… 참으로 쉽게 그룹명을 정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속이 천하 엔터테인먼트.”
소속사가 천하 엔터테인먼트라는 것을 읽던 수한은 눈이 반짝였다.
천하 엔터는 수한의 친가인 천하그룹의 계열사.
그런데 자신의 누나로 짐작되는 여성이 소속된 아이돌 그룹이 그 회사 소속이라는 것에 약간의 흥분이 일었다.
뭔가 느낌이 오는 것이 정말로 오래전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타다닥!
소속사를 검색하던 수한은 다시 키보드를 조작해 이번에는 수정에 대한 개인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정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고 난 뒤 그녀가 자신의 누나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니터에 수정의 가족관계가 나와 있는데, 그곳에 자신의 이름이 떡 하니 적혀 있으며 특이사항으로 실종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던 것이다.
벌써 18년이나 지난 일인데 아직까지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실종신고만 되어 있는 것에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아버지, 어머니!”
수한에게 부모인 정명수와 조미영은 자신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단순한 생물학적 부모가 아니다.
전생에도 느껴 보지 못한 가족이란 느낌을 느끼게 해 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존재였다.
처음 유괴가 되고 가족과 떨어졌을 때, 수한이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다른 것도 아닌, 다시는 가족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상실감이었다.
그리고 그 뒤이어 느껴진 감정은 자신을 이런 비참한 기분을 느끼게 만든 이들에 대한 분노였다.
또 아기인 몸 때문에 복수를 하지 못한다는 자괴감 또한 컸다.
그래서 아기의 몸으로 자신을 납치한 이들에게 복수를 다짐하지 않았던가?
아릿한 그리움이 수한의 몸을 강타했고 그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이 감정은 아무리 의붓어머니인 최성희가 수한을 지극정성으로 돌보았다고 하지만 채워 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최성희가 어머니로서 수한에게 보여 준 것은 생모인 미영이 수한이 유괴되기 전까지 돌보던 것 못지않지만 그것과는 별개다.
아무튼 공항에서 봤던 여성이 자신의 누나란 것을 확인한 수한은 조만간 그녀를 만나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모니터 하단에 나온 정보를 읽던 수한은 낭패감에 중얼거렸다.
“이런, 누나를 만나려면 3일은 기다려야 하겠네!”
그도 그럴 것이 수정이 포함된 그룹이 해외 스케줄로 3일 뒤에나 한국에 돌아오기 때문이다.
더욱이 귀국하자마자 스케줄 때문에 쉬지도 못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참, 피곤하게 사는구나…….”
수한이 생각하기에 해외 스케줄에 또 귀국하자마자 잡혀있는 국내 스케줄에 시달리는 수정이 무척이나 피곤하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수정이 왜 연예인이 되었고, 또 무리한 스케줄도 마다하지 않고 부지런하게 활동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면 이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수정은 수한이 유괴되고 또 최성희에 의해 실종이 되었다는 뉴스를 접한 후에 자신이 커서 유명해지면 수한이 자신의 소식을 듣고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유명해지기 위해 가수가 되기 위해 노력을 했다.
불과 6살의 나이에 그런 마음을 가지고 아빠인 정명수에게 가수가 되겠다는 말을 하였을 때, 정명수는 그런 수정을 안고 대성통곡을 했었다.
아무튼 수한도 수한이지만, 그의 남겨진 가족들도 수한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또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