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새로운 인연
이안용의 마수에서 빠져나온 최성희는 조심스럽게 수한을 안고 주변을 살피며 자신의 차가 있는 지하주차장에 도착을 했다.
“휴!”
지금으로써는 이 학원에 있는 어느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을 좋다고 정부로 만든 원장도 그리고 자신을 볼 때면 친절한 미소를 던지던 부원장도 알고 보니 인면수심의 싸이코들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을 마치 쓰레기 버리듯 아무런 감정도 없이 지시를 내리고 또 시행을 하려고 하는 인간들이었다.
이 학원에 또 어떤 인간들이 있을지 성희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곳에서 멀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지금까지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왔다.
하지만 학원을 나서서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어 불안했다.
“아가야, 우린 지금 여기를 빠져나가야 한다. 그래야 너나 나나 살 수가 있어. 우리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게 기도를 하자. 무사히 빠져나가게 되면 내가 네 엄마, 아빠에게 데려다줄게.”
보조석에 누워 있는 수한을 보며 최성희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원장실에서 들었던 아기의 정체는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천하그룹 회장의 손자를 납치를 하였다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리 이곳 일신학원이 일신그룹이 후원을 하는 곳이지만 그에 버금가는 대기업 회장의 손자를 납치하다니 미친 인간들이었다.
부릉!
최성희는 그렇게 말을 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차를 출발하려고 하는데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탁탁탁탁!
지하 주차장을 울리는 소리에 최성희는 불안한 심정에 얼른 액셀을 밟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부우웅!
탁탁탁!
“멈춰! 정지!”
뒤쪽에서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고함소리가 들렸다.
최성희는 뒷거울을 보며 누가 소리를 지르는 것인지 확인을 했다.
그런데 뒷거울에 비친 것은 경비제복을 입은 경비원이었다.
덩치가 큰 경비원이 고함을 치며 자신의 차를 따라 뛰는 모습이 보이자 성희는 더욱 액셀을 세게 밟았다.
부웅!
성희와 수한이 탄 차는 지상으로 오르는 램프웨이를 빠르게 통과하며 지상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이미 연락을 받은 것인지 학원 입구는 경비원들로 막혀 있었다.
“정지!”
빠르게 달려오는 차를 향해 경비원 중 한 명이 손을 들어 정지하라는 신호를 하였다.
하지만 성희는 그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괜히 잡혔다가 죽을지도 모르는 아니, 죽을 것이 확실한데 무엇 때문에 저들의 말을 들어준다는 말인가?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긴 최성희는 이제는 그 눈에 독기가 맺혔다.
‘죽어!’
이미 독기가 바짝 오른 독사와 같은 표정이 된 최성희는 차의 기어를 바꾸며 더욱 가속을 하였다.
부우웅!
원장실에서 내려온 지시로 인해 학원에서 그 어떤 차량도 잠시 통제를 하기 위해 달려 나오는 차를 멈추라는 신호를 하였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지하에서 올라온 차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더욱 가속을 하는 것이 아닌가?
“어어! 피해!”
최성희에게 정지 신호를 보내던 경비원은 피하라는 소리를 지르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을 하였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입구를 막고 있던 경비원 2명도 각자 좌우로 몸을 날렸다.
이들이 달려오는 차를 피하기 위해 몸을 날리기 무섭게 최성희와 수한이 타고 있던 차는 스치듯 이들을 지나쳐 입구를 통과했다.
끼기기긱!
학원 출입구를 통과한 차는 입구를 통과하기 무섭게 바퀴 자국을 만들며 커브를 돌아 멀어져 갔다.
한편 달려오는 차를 피했던 경비들은 얼른 일어나 학원 입구로 뛰어갔는데, 최성희가 탄 차는 이미 이들의 시선을 벗어나 있었다.
“누구 차였어?”
“차량 넘버를 보면 최성희 강사의 차였는데, 무슨 일이지?”
“일단 위에 보고를 해!”
“알겠습니다.”
뒤늦게 최성희의 차를 피했던 경비들의 말에 경비조장은 얼른 상부에 보고를 하라는 말을 하였다.
“젠장! 무슨 일이 있는 거야!”
경비조장은 차를 피하기 위해 몸을 날리다 도로 분리턱에 부딪혀 아파 오는 허리를 주무르며 인상을 구겼다.
◈ ◈ ◈
“빨리빨리 움직여!”
이종찬은 붉게 달아 오른 얼굴로 주변을 보며 소리쳤다.
길상사파로부터 천하그룹 정대한 회장의 손자를 유괴한 범인을 넘겨받고 심문을 하던 중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두꺼비파 두목 최상호는 가혹한 고문에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토설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놀라운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일신학원 원장이 자신을 감시하기 위해 조직에 감시원을 파견했다는 말이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최상호가 잡혀 온 일이 일신에 알려졌다는 소리였다.
만약 자신의 예상이 맞는다면 그들은 증거를 없애기 위해 수한이를 죽일지도 몰랐다.
유괴된 수한은 자신과도 아주 연관이 없지 않았다.
자신이 천하그룹의 오너 일가인 정 씨 가문의 사위이니 유괴된 수한에게 자신은 개인적으로 고모부가 되었다.
더욱이 자신을 잘 따르던 정명수의 아들이라고 하니 무사히 구출을 해야 한다.
듣기로는 명수의 아들이 천재라고 하던데 얼마나 똑똑한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제 겨우 1살인 아기가 천재라는 말을 들을 정도면 얼마나 똑똑하지 짐작도 할 수 없는 그로써는 명수의 아들이 무척 보고 싶어졌다.
그러니 무사히 구출을 해야만 했다.
“이 자식들이 굼벵이 고기를 삶아 먹었나! 동작 봐라!”
마음은 급한데 수하들의 행동이 너무도 굼떴다.
현재 정황을 들은 이종찬은 천하가드의 일반 직원이 아닌 정 씨 가문을 보좌하는 무력 집단을 소집해 출동을 하려는 중이다.
괜히 요란하게 쳐들어갔다가는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그곳은 천하그룹보다 상위에 있는 일신그룹이 후원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자신들이 몰려가서 난리를 친다면 천하그룹도 무사할 수 없었다.
더욱이 그곳에서 유괴된 수한을 찾지 못한다면 모든 죄를 자신들이 뒤집어쓸 수도 있었다.
그러니 속전속결로 유괴된 수한을 구출하고, 범죄 증거를 찾아 피해를 최소한으로 할 수 있다.
천하가드 주차장에 커다란 관광버스 1대가 정차해 있고 무력대가 탑승을 하였다.
◈ ◈ ◈
일신학원 원장인 최제국은 지금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부원장인 이안용을 시켜 증거를 없애라고 했는데, 그가 일을 그르쳤기 때문이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그년이 유혹하는 바람에…….”
이안용은 최성희가 달아난 것을 자신의 잘못을 피해 변명을 하였다.
최성희가 차를 몰아 학원을 빠져나가고 경비실에서 보안과로 보고가 올라가고 보안과장은 다시 학원장인 최제국에게 보고를 하였다.
보안과장은 이곳 일신학원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기에 최성희의 탈출이 알려지게 되었다.
비밀을 들었기에 아깝지만 죽이라 했는데, 최성희의 차량이 학원을 빠져나갔다는 말은 어떤 문제가 발생해 최성희가 도망쳤다는 말이 되었다.
이 때문에 경비들은 이안용을 찾기 위해 학원 안을 뒤졌다.
그리고 그가 지하 소각장 근처에 있는 비품 창고에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 이안용 부원장이 지하 비품 창고에 잠을 자고 있다는 보고에 최제국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들의 불법을 알게 된 최성희를 처리하라고 했는데, 난데없이 옷 벗고 알몸으로 비품 창고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으니 얼마나 황당하겠는.
“설마 그놈도 그년이 데려간 것은 아니겠지?”
최제국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이안용에게 수한에 대한 것을 물었다.
하지만 혹시나 했던 마음은 역시나 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게 한꺼번에 처리하려고 같이 데려가던…….”
“뭐야! 그럼 그놈도 같이 탈출을 했다는 말이야!”
“예, 예. 그러니까…….”
“만약 그것들 확실하게 처리하지 못하면 넌 끝장인 줄 알아!”
최제국은 자신을 보며 변명만 늘어놓는 이안용의 모습에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며 그렇게 경고를 했다.
일이 최악으로 가게 되면 어쩌면 자신의 목숨도 온전하기 힘들었다.
“나가 봐!”
자신의 잘못으로 최성희와 수한을 잃어버린 이안용은 최제국의 말에 힘없이 원장실을 나갔다.
한편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은 최제국은 머리를 짜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정말이지 답이 나오지 않는 난해한 문제였다.
‘젠장! 병신 같은 새끼, 아부나 할 줄 알지 이런 간단한 일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이번 기회에 부원장을 똘똘한 놈으로 바꿔야겠어!’
최제국은 생각을 정리하다 이번 기회에 실수가 많은 이안용을 갈아 치울 마음을 먹었다.
그동안 입안의 혀 마냥 자신의 일을 잘 처리해 오기는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더니 여자에 눈이 멀어 큰 실수를 저질렀다.
부원장 이안용은 언젠가부터 자신이 하는 것을 공유하려는 행동을 보인다는 것을 최제국이 느끼기 시작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학원 내 여자 강사들 중 자신의 손을 탄 것 보다 이안용의 손을 탄 강사들이 더 많았다.
자신이야 마음에 드는 몇을 직위를 이용해 돈과 협박을 하여 관계를 맺었다.
그런데 이안용은 자신이 그렇게 관계를 하고 실증이 나 찾지 않는 여자를 건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되었다.
부원장인 이안용이 자신의 정부였다가 자신이 최성희를 가까이 하면서 멀리하던 여자를 은밀히 유혹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들이 학원 비품창고나 호텔에 함께 들어가는 것도 목격을 하였다.
그리고 그런 목격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말을 잘 들어 키워 주니 주인과 같이 놀려고 그러는 것인지 제 분수도 모르고 놀아나고 있었다.
언젠가 경고를 하려고 했는데, 기어코 사고를 치고 말았다.
이번 기회에 이안용을 치우기로 결심한 최제국은 이안용 대신 누굴 부원장으로 올릴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얼마 가지 못해 깨지고 말았다.
덜컹!
“원장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노크도 없이.”
노크도 없이 무례하게 들어온 이안용의 모습에 인상을 구기며 훈계를 하는 최제국에게 이안용은 중간에 말을 끊으며 말했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지금 괴한들이 쳐들어 왔습니다.”
최제국은 괴한이 쳐들어 왔다는 이안용의 말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눈을 깜빡였다.
예상치도 못했던 말을 듣다보니 잠시 공황상태가 된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괴한이 쳐들어오다니!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이럴 때가 아닙니다. 벌써 경비실과 출입구는 모두 괴한들에게 점거되었습니다.”
이안용은 괴한들에 의해 학원의 출입구가 모두 막혔다는 말을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최제국은 불현듯 아까 전에 들었던 보고가 생각났다.
“두꺼비파 두목 최상호가 길상사파에 잡혀 갔습니다.”
최상호를 감시하던 감시원으로부터 온 연락을 받은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적들이 쳐들어왔다는 말은 일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심각했다.
“제길!”
자신도 모르게 일이 풀리지 않아 쌍소리를 하고는 괴한이 침입했다는 보고를 하는 이안용을 싸늘하게 쳐다보았다.
이 모든 것이 이안용의 잘못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 ◈
최제국과 이안용이 원장실에서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천하가드 사장 이종찬과 무력대는 일신학원의 출입구를 봉쇄하고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신속하게 학원 안으로 뛰어들어 수한을 찾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한의 안전에 위해가 가기 때문에 최대한 빠른 시간에 수한을 찾아야만 했다.
“무성이는 1조를 데리고 위를 뒤진다. 순영이는 2조를 데리고 여기 원장과 부원장을 잡아라! 병만이는 3조를 데리고 아무도 이 건물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고, 마지막으로 철원이는 지하를 뒤진다. 아무래도 여기 지하에 학원의 비밀이 있을 것이다.”
이종찬은 자신이 데려온 무력대에게 지시를 내렸다.
각 조장들은 이종찬의 지시에 대답을 하고 각자 맡은 구역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네!”
1조에서 4조까지 각자 맡은 곳으로 빠르게 이동을 하자 이종찬도 자신의 비서와 함께 천천히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자신이 올라가면 1조가 되었든 2조가 되었든 자신이 보고 싶은 얼굴들을 대면하게 만들어 줄 것이기에 느긋하게 움직였다.
유괴된 수한을 빨리 찾아야 한다는 것과는 별개로 감히 천하그룹을 도발한 이들의 얼굴을 어서 빨리 보고 싶은 것이 현재 이종찬의 마음이 가장 컸다.
어떻게 생긴 위인이기에 대한민국에서 천하그룹을 건들려는 것인지 그자를 붙잡아 해부해서 간의 크기를 확인하고 싶었다.
아무리 일신그룹이 천하그룹보다 상위그룹이라고 하지만 일본에 뿌리가 있는 그들과 태생적으로 대한민국 밑바닥에서 시작한 천하그룹은 마음가짐에서부터 달랐다.
고대 무가에서 출발한 천하그룹이다 보니 천하그룹에 소속된 이들은 한번 손을 쓰기 시작하면 뿌리를 뽑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라들이었다.
그건 기업 활동을 하면서도 바뀌지 않았다.
사업을 하는 것이 마치 전쟁을 치르듯 치열하게 죽기 살기로 임하는 그들에게 동종업계에서는 천하그룹이 뛰어들면 한 발 물러나 양보를 할 정도였다.
같이 달려들어 충돌을 했다가는 이겨도 상처뿐인 승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천하그룹의 혈족을 건들인 위인들이 얼마나 대단한 자들인지 보고 싶은 것이다.
아무리 일신그룹이 뒤에 있다고 하지만 참으로 무모한 위인들이었다.
일신그룹은 철저히 계산적으로 움직이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들은 절대로 자신들이 유리한 싸움만 하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이종찬이 아무리 생각해도 일신그룹이 자신이 속한 천하그룹을 상대로 무조건 유리하다고만 생각지 않았다.
그건 일신그룹에서도 마찬가지로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재계서열 1위인 성삼그룹도 천하그룹과 척을 지려 하지 않는데, 감히 일신그룹이 그런 마음을 먹었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아마도 수한이 똑똑하다니 그 뒷배경을 조사도 않고 독단으로 일을 벌였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뭐, 그렇다고 해도 일은 벌어진 것이니 이번에 일신은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할 것이다.’
이종찬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조금 뒤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천재라 불리는 처조카를 볼 수 있을 것이고, 또 자신에게 오랜만에 재미를 준 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으니 그것도 기분이 좋았다.
이종찬은 학원 계단을 오르며 달아오르는 열기가 느껴졌다.
오르는 계단 밖에서 누군가 싸움을 하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아마도 일신학원을 지키는 경비대와 자신이 데려온 무력대 간의 무력충돌이 있는 것 같았다.
싸움하는 소리가 들리자 40대이지만 아직도 가문의 수련관에 들려 대련을 하는 그로써는 몸이 후끈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가문의 무력대와 대련을 한다고 해도 그건 실전과는 다른 말 그대로 대련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곳에서는 실전을 할 수 있었다.
실전과 대련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그 차이가 심했다.
그 때문에 일과 관계없이 실전이라는 것 때문에 흥분하기 시작하는 이종찬이다.
◈ ◈ ◈
헉! 헉!
최성희는 수한을 등에 업고 빠르게 걷고 있었다.
간간히 뒤를 돌아보며 누가 자신을 쫓지는 않는지 수시로 살피는 것이 무척이나 불안정해 보였다.
더욱이 자세히 보면 얼굴빛도 창백하고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또한 입술은 마르고 껍질이 일어난 것처럼 까져 있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벌써 며칠 째인지 몰랐다.
어떻게 알았는지 누군가 자신을 쫓고 있다는 것을 느낀 최성희는 처음 행색과 다르게 무척이나 지치고 심신이 피곤했다.
더욱이 어젯밤부터 간간히 찾아드는 마약의 금단 증세로 인해 미칠 것만 같았다.
성희도 자신에게 일어나는 현상이 무엇 때문인지 잘 알고 있었다.
최제국 원장에게 겁간을 당하고 그 뒤로 협박과 회유에 넘어가 그의 정부가 되면서 시작한 마약은 현재 최성희를 폐인은 아니지만 약기운이 떨어지면 모든 의욕을 가져갔다.
다만 심각한 중독이 아니기에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서 정신력으로 억지로 참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고통에 의지가 꺾여 약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그녀는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적을 노출시키면 안 되었다.
어젯밤 고통 때문에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빨리 쉬고 싶다는 마음에 생각 없이 카드로 모텔 결재를 하는 바람에 추적자가 따라붙었다.
자신을 쫓는 사람의 정체는 보나마나 최제국 원장이 보낸 사람일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모텔에서 다른 짐은 그냥 두고 아기만 데리고 도망을 쳤다.
참으로 운이 좋았다. 밀려드는 고통을 찾고 아기에게 먹일 분유를 사러 나갔다가 우연히 자신을 쫓는 추적자를 목격한 것이다.
일전 최제국 원장과 데이트 중 잠깐 본 얼굴을 보았다.
그자가 탄 차가 자신이 투숙한 모텔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쳤다.
도망치던 중 현금인출기에서 한도액까지 돈을 인출한 뒤 근처를 지나는 택시를 잡아 타고 자리를 떴다.
성희는 아예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향했다.
늦은 시각 지방에 일이 있어 가는 사람이라고는 너무도 이상한 복장을 한 성희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한 택시기사에게 술 취한 남편을 피해 친정에 간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해 상황을 모면했다.
조금 흐트러진 정상이 아닌 모습을 한 20대 여성과 아기가 늦은 시각 택시를 탄 것이 못내 이상했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성희가 일신학원에서 빠져나와 도피를 하는 중에 자신이 데리고 있는 아기를 찾는 전단을 보기도 했다.
천재아기 유괴사건으로 지금 떠들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기를 부모님이나 할아버지라는 천하그룹 회장에게 데려가면 좋을 것이지만 현재로써는 그럴 수 없었다.
분명 일신학원에서 보낸 추적자들 중 일부는 그 근처에 잠복해 자신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재 자신의 몰골이 몰골이다 보니 쉽게 천하그룹 회장을 만나기도 전에 쫓겨날 것이 분명했다.
더더군다나 뉴스에는 유괴된 아기의 부모에 관해서는 나오지만 할아버지의 정체에 관해서는 아직 나오지 않아 솔직히 자신이 데리고 있는 아기의 정체에 확신이 없기도 해서 쉽게 천하그룹을 찾아가는 것이 두려웠다.
괜히 자신의 행적을 노출했다가 자신을 죽이려는 최제국에게 붙잡혀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최성희는 예전 대학을 다닐 때 MT를 갔다가 본 사찰을 찾아가는 중이다.
MT라면 모여서 밤새 술 먹고 떠들고 하는 그런 무의미한 MT가 아니라 지역사회를 익히고 또 그 과정에서 멤버들 간의 우의를 다지는 의미 그대로의 농활을 다녔다.
그리고 지금 찾아가는 사찰은 그녀가 대학 4년 때 마지막으로 갔던 MT장소였다.
지역에 농활을 하러 갔다가 주민 소개로 하루 묵게 된 사찰은 취업준비와 자격증 취득으로 지친 대학생들에게 정신적으로 치료가 되는 장소였다.
최성희는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사찰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곳은 지역 주민들 말고는 찾지 않는 사람이 없는 외진 곳에 위치했기에 현재 자신의 처지에서 아주 적당한 피난처였다.
하지만 지친 그녀가 외진 사찰을 찾아가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일이다.
더욱이 그녀에게는 현재 짐이 하나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버리고 갈 수도 없는 살아 있는 짐 말이다.
한편 최성희의 등에 업혀 가고 있는 수한은 속으로 많은 생각을 하였다.
지금까지 단 일면식도 없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성희가 하는 희생을 생각하고 있었다.
전생 이케아 대륙에서의 70년 그리고 이곳에서의 6개월을 살면서 가족이 아닌 타인을 위해 이런 희생을 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여성은 무엇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는 것이지? 비록 이 여인도 나와 같이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아기를 데리고 이렇게까지 희생을 하는 이유가 뭘까?’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최성희가 자신을 데리고 이렇게 도피를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을 버리고 간다면 보다 쉽게 추적자들에게서 도망을 칠 수 있을 것인데, 자신의 짐을 버리면서도 자신과 또 자신이 먹을 분유는 꼭 챙겨서 도망을 치는 최성희가 무엇 때문에 이런 희생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사실 최성희가 지친 몸으로 여기까지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은 성희의 등에 업혀 가면서 간간히 그녀에게 힐링 마법을 사용해 주었기 때문이다.
힐링 마법에는 상처 치유뿐 아니라 지친 육체를 회복시켜 주는 기능도 있었다.
사실 수한의 이 마법이 없었다면 성희는 진즉 지쳐 쓰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곳에 힘을 쓸 일이 없는 수한이기에 성희의 들에 업혀 가면서 소모한 마력을 회복하고 도망을 치며 지친 성희를 회복시키고 또 소모한 마력을 회복하며 이런 일을 무한 반복하면서 지금까지 왔다.
지금도 보며 성희의 체력이 거의 방전되어 가고 있었다.
“힐링.”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마법 시동어를 중얼거렸다.
중얼거리기 무섭게 마력이 최성희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지친 그녀의 근육과 관절에 마력이 작용해 피로 물질들을 분해하고 지친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했다.
“아, 상쾌해.”
너무 지쳐 무작정 목표를 향해 걷던 성희는 몸 안에 퍼지는 상쾌한 기운에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그렇게 소리쳤다.
다른 때 수한이 마법을 그녀에게 걸어 줄 때는 성희가 지쳐 깊은 잠에 빠져들었을 때였지만 지금은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가 너무도 지쳐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깨어 있을 때 마법을 시전 하였다.
다행이라면 이런 마법의 작용을 성희는 그저 자신이 공기가 맑은 산속에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몸에 힘이 돌아오자 성희의 발걸음은 다시금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더 깊게 산길을 따라 들어간 성희는 눈앞에 보이는 작은 암자가 눈에 들어오자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을 한 것이다.
이곳은 외부와 왕래가 거의 없어 이곳에 숨어 있다고 하면 찾을 수 없다.
더욱이 이곳은 전국에 걸쳐 있는 전산망이 미치지 않는 곳이기에 정확한 길을 알지 못하면 찾기도 어려운 외진 곳이다.
“실례합니다.”
최성희는 조심스럽게 사찰 안에 대고 소리쳤다.
비록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시간이 시간이고 또 한적한 산속이다 보니 그녀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주변에 울렸다.
“누구요? 누가 왔소?”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대웅전에서 늙은 스님의 목소리가 울렸다.
“지쳐서 그런데 여기서 좀 유하고 가도 되겠습니까?”
최성희는 조심스럽게 대답을 했다.
“그럼 들어오시오.”
스님의 대답이 있자 성희는 조심스럽게 들고 있던 짐을 대웅전 입구에 내려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관세음보살…….”
성희가 안으로 들어서자 낮은 목소리의 들려왔다.
“관세음보살…….”
성희도 합장을 하며 스님의 말을 따라했다.
수한은 성희의 등 뒤에서 스님과 성희가 하는 것을 그저 두 눈을 말똥말똥 뜨며 지켜보았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무척이나 경건한 모습이었기에 감히 소리를 내어 분위기를 깨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하였다.
한편 산 너머 백운사의 분사인 이곳 현운사 주지인 혜원은 밤늦은 시간에 이곳을 찾은 성희와 그녀가 등에 업고 있는 수한을 보며 눈이 커졌다.
‘허허…… 이것이 부처님의 뜻이란 말인가?’
어젯밤 자신의 꿈자리가 그렇게나 뒤숭숭하더니 기어코 일이 벌어졌다.
꿈속에서 세상을 혼란에 빠뜨릴 아수라가 나타나더니 곧 그가 하늘에서 내리는 불광(佛光)을 쏘여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하였다.
혼돈과 파괴의 상징인 아수라에서 변한 이는 바로 온 세상에 불광을 퍼뜨리며 혼란을 수습하고 약자를 구원하는 부처의 말씀을 설파하고 있었다.
‘전륜성황(轉輪聖皇)!’
혜원은 수한의 얼굴에 시선이 멈춰 움직일 줄을 몰랐다.
어젯밤 꿈속에서 보았던 아수라였다가 다시 전륜성황의 모습으로 변한 이의 얼굴이 바로 아기의 얼굴과 일치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수한의 얼굴을 한참을 쳐다보던 그는 자신도 모르게 염불을 중얼거렸다.
그런 혜원의 알 수 없는 행동에 성희는 조용히 혜원을 지켜보았다.
“허허…… 이런 오랜만에 찾아온 시주를 보니 내 실수를 했군.”
혜원은 자신이 너무 전륜성황이 될지도 모르는 아기를 쳐다보았다는 것에 얼른 신색을 바로하고 실수했음을 구했다.
“일단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쉴 곳을 안내하겠네.”
혜원은 자신의 실수를 고하고 바로 대웅전에 모셔진 부처님께 안내를 했다.
그런 혜원의 말에 성희는 다시 한 번 합장을 하며 감사 인사를 하였다.
“감사합니다.”
성희는 혜원의 안내에 따라 부처님 앞에 나가 포대기를 풀러 수한을 옆에 내려놓고 부처님께 절을 하였다.
그 옆에서 혜원은 목탁을 두드렸다.
한편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수한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너무도 경건한 두 사람의 모습에 문득 이곳이 전생의 신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케아 대륙에는 많은 신들이 있었고 또 그 신들을 모시는 교단(敎團)이 있었다.
물론 사이비도 있고 또 탐욕에 물들어 타락한 교단도 많이 보았지만 수한의 전생인 제로미스는 신의 뜻을 행하는 신실한 신전도 목격했다.
그리고 그때 보았던 신실한 신전의 신도와 프리스트의 모습이 지금 눈앞에 보이는 대머리의 이상한 옷을 입은 장년인과 자신을 구해 준 여인에게서 보게 되었다.
수한은 그 모습에 감동을 했는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포대기에서 나와 높은 단에 앉아 있는 부처님을 보았다.
그리고 조금 전 최성희가 했던 것처럼 절을 하였다.
하지만 아직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은 아기의 몸이라 똑같이는 하지 못했지만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부처님을 향하는 수한의 절은 그 모습을 보는 혜원의 눈에는 다르게 비춰졌다.
‘아! 선재(善哉)로다, 선재!’
수한의 엉거주춤한 부처님에 대한 경건히 절을 하는 모습은 절대로 우습게 보이지 않았다.
혜원의 눈에 수한이 절을 하고 있는 모습은 부처님과 수한이 불광에 휩싸여 한 덩어리가 된 모습으로 보였다.
엎드린 수한의 몸 위로 단상의 부처님으로부터 내려온 불광이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불단에 켜 놓은 촛불의 반사광은 절대로 아니었다.
촛불의 반사광만으로 그런 장엄하고 경건한 빛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혜원 말고도 놀라는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수한을 이곳까지 업고 온 최성희였다.
자신은 부처님께 절을 하면서 조금 뒤면 지친 심신을 쉴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에 감사를 드리며 절을 하였다.
그런데 아기인 수한이 비록 엉거주춤하긴 했지만 절을 하는 모습을 보자 깜짝 놀랐다.
‘어머! 어떻게 아기가 절을…… 이러니 최원장이 아기를 유괴를 했지.’
최성희도 자신이 강사로 있던 일신학원의 비밀을 조금은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대한민국의 미래인재 육성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영재들을 교육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이 주목적이 아니라 학원을 후원하는 일신그룹이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위탁받은 아이들 말고도 몇몇 아이들은 억지로 데려와 세뇌를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일신학원의 원장인 최제국의 정부로 살면서 이런저런 정보를 듣다 보니 그런 비밀까지 알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최제국의 방심으로 알게 된 일이지만 최성희도 자신이 이런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진즉에 죽었을 것이란 사실을 얼마 전에야 깨닫게 되었다.
이미 마약에 찌들고 최제국의 협박과 회유에 넘어간 상태에서도 본능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도 티를 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척 행동을 했었다.
그것이 이제와 생각하면 참으로 옳은 선택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하지만 그런 조심도 너무 큰 비밀을 가까이서 듣게 되자 못 들은 척을 하지 못했다.
너무 놀라 기척을 내는 바람에 최제국이 자신이 비밀을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죽을 위기에 빠졌다.
다행히 탈출을 하기는 했지만 앞날이 막막했다.
무작정 살기 위해 도망을 쳐 이곳까지 와 심신에 여유를 찾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데려온 아기의 행동을 보게 되었다.
한 번도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자신의 행동을 보고 따라하는 모습에 놀랐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아기는 이제 겨우 돌도 되지 않은 아기란 것이 생각났다.
‘어떻게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가 혼자 자리에서 일어나 절을 할 수 있지?’
물론 빠른 아기들은 기기도 한다.
하지만 수한처럼 행동은 아직 일렀다.
영재학원의 강사로 많은 영재아기들과 아이들을 보았지만 수한 같은 케이스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 절을 하면서 보이는 경건한 표정은 정말로 눈앞에 보이는 아기가, 정말로 아기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괜히 천재가 아니구나!’
최성희는 수한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수한이 왜 천재라 불리는지 깨닫게 되었다.
한편 수한은 절을 하면서 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납치를 당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내가 나를 너무 알렸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기뻐하는 모습에 우쭐해 그만 방심을 했는데, 이 세계도 전생에 못지않게 위험한 세상이다.’
수한은 자신이 현생에 환생을 하면서 너무도 안정된 세상의 모습에 방심을 했다고 반성을 했다.
전생은 이 생과 비교를 하면 무척이나 야만의 세상이다.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핍박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그런 세상이었다.
그에 반해 이 세상에 환생을 해 놀란 것은 법이 무척이나 엄격하다는 것이다.
높은 사람이건 아니면 못 배운 하류의 인간이라 하더라도 똑같이 적용을 받는다.
그 때문에 자신의 뛰어난 모습에 기뻐하는 부모님을 보며 조금은 우쭐했다.
안전한 삶을 살게 되었으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 행복한 기분을 계속해서 느끼고 싶다는 생각에 자신의 능력을 조금씩 외부에 내보였다.
하지만 그건 자신 혼자의 착각이었다.
어느 세계든 위험은 도사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곳이던 예외는 있었는데, 자신이 안전한 평화로운 세상이라 느꼈던 곳은 모두 겉모습일 뿐이었다.
경전에 보았던 마계의 음습함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자신을 납치하고 피를 뽑던 이들은 마계의 악종들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전생에서도 알려지면 지탄을 받는 것을 넘어 공공의 적으로 간주될 법한 세뇌를 서슴없이 자행하는 이들을 본 수한은 자신의 실책을 반성하기에 이르렀다.
만약 지금 옆자리에 있는 여인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꼼짝없이 실험재료가 되었거나 아니면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여인과 탈출하기 전 부원장이라 불리던 남자의 말에서 알 수 있었다.
탈출을 하면서 끊임없이 여인이 자신을 보며 계속해서 중얼거리던 말도 모두 기억하고 있는 수한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탈출을 하게 되었는지 잘 알았다.
‘내가 혼자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을 때까지 절대로 나를 내보이지 않겠다.’
마치 선언이라도 하듯 수한은 마음 깊이 다짐을 하였다.
최소 5클래스의 마법을 완성하기 전에는 절대로 자신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보통의 아기처럼 행동을 할 것이라 마음먹었다.
그렇게 다짐을 하고 자리에 일어난 수한은 절을 하느라 몸에 힘을 주었던 것이 너무도 힘들어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쿵!
그런 수한의 모습에 최성희나 혜원은 너무도 귀여워 입가에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었다.
혜원은 절을 마친 수한이 힘에 부쳐 주저앉는 것을 보며 어떻게 하면 아수라와 전륜성황의 운명을 함께 가지고 태어난 수한을 세상에 도움이 되게 키울 것인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을 산 그의 눈에 아기를 안고 들어온 성희의 모습에서 그녀가 누군가에게 쫓겨 인적이 드문 이곳까지 들어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