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코리아-2화 (2/118)

2. 환생

제로미스는 점점 흐트러지는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을 했다.

연고도 없는 자신을 인정하고 등용해 준 로메로 국왕의 부탁을 완수하기 위해 과부하가 걸린 마법진에 자신의 마력은 물론, 모자란 마력을 대신해 생명력까지 투입을 하였다.

그런대도 마법진은 진정이 되긴 커녕, 갈수록 탐욕스런 아귀 마냥 더욱더 무언가를 갈구하듯 날뛰었다.

이에 제로미스는 하는 수 없이 남은 생명력까지 모조리 마법진에 밀어 넣었다.

‘제길, 이것이 끝이구나!’

제로미스는 남은 생명력까지 마법진에 밀어 넣었다.

문득 제로미스의 뇌리로 과거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7클래스를 깨달으면서 제로미스의 기억은 인간이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태어날 당시의 기억이 마치 기억 재생 마법을 펼친 것처럼 뚜렷하게 기억이 났다.

온몸을 조여 오던 무언가?

그리고 비좁은 터널을 지나자 볼 수는 없었지만 뭔가 밝은 빛에 놀라 울음을 터뜨리던 자신, 그와 동시에 강하게 자신을 때리는 누군가를 느끼며 자신은 세상에 태어났다.

따듯한 곳에서, 갑자기 차갑게 식은 어느 곳에 방치된 자신, 주변을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 제로미스는 나주에 그들이 자신의 어머니를 수발하는 하녀들이란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제로미스는 태어나면서 한 번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던 적이 없었다.

그것이 갓 태어난 갓난아이라 해도 말이다.

귀족인 아버지와 이종족 노예인 엘프 엄마, 참으로 불행한 조합이 아닐 수 없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탄생을 주인공이 된 제로미스. 이 제로미스란 이름도 사실 제로미스가 팔려 갔을 때 마법사에게 받은 이름이었다.

그전에는 이름도 없이 그저 하인들 틈에서 짐승처럼 생활을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일생을 뒤돌아보던 제로미스는 인생에서 기쁜 일도 안타까운 것도 있었고, 또 후회되는 것도 있었다.

기뻤던 일은 자신이 마법사에게 팔려 갔던 일이다.

그 당시만 해도 제로미스는 너무 어려 그것이 자신에게 인간처럼 살아 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

마법사의 제자 겸 조수, 그리고 실험 재료로 팔리긴 했지만 하인들 틈에서 자랄 때처럼 배 곯지 않고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다만 변태적인 마법사는 수시로 엉뚱한 마법을 제로미스에게 실험을 했다.

사실 제로미스를 사 간 마법사는 신전에서 생산하는 포션을 만들어 내겠다며 온갖 재료를 혼합해 만든 액체를 제로미스에게 먹였다.

만약 제로미스가 눈치가 빨라 약을 먹을 때마다 해독제를 챙기지 않았다면 진즉에 죽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먹은 약만 해도 몇 백 갤런은 될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마셨던 극약 아닌 극약을 엄청나게 먹은 것 때문에 제로미스는 마법사의 다른 제자들 보다 빠르게 마법에 입문할 수 있었다.

어찌 되었든 마법사가 당시 만들었던 재료에는 마력을 올려 주는 재료들이 첨가되었기 때문이다.

힐 마법이 인체에 작용하는 것과 신전에서 만들어 내는 포션이 인체를 치유하는 것을 같은 맥락에서 본 마법사는 자신이 만들 포션도 마력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만드는 포션의 재료로 몬스터 중에서 자가 치유를 하는 종류를 선별했다.

자신이 잡을 수 있거나 인간들이 사냥이 가능한 종류를 분류하여 의뢰를 하거나 자신이 직접 구해 만들고 있는 포션의 재료로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몸에 좋다는 약초나 치유하는 데 효능이 있다고 알려진 종류는 독이 있건 없건 상관하지 않고 혼합을 하였다.

이렇게 재생력과 마력이 높은 재료들도 수시로 실험이란 명분으로 복용을 하다 보니 제로미스의 마력은 날로 늘어났다.

그랬기에 젊은 나이에 3클래스가 되어 말뿐인 제자가 아닌, 정식 제자가 될 수도 있었다.

정식 제자가 된 뒤로 제로미스에게 내려진 임무는 재료 수급이었다.

재료 수급을 위한 마법도 배우고, 그때부터 제로미스의 인생이 바뀌었다.

마나와 친숙한 엘프의 피를 절반이나 타고난 제로미스의 마법 실력은 갈수록 탄력을 받아 급속도로 경지를 높여 갔다.

마법에 입문하게 된 지 10년도 되지 않아 실험 재료에서 3클래스에 올라 정식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스승과 같은 5클래스에 오른 것은 그의 나이 서른다섯 살 때였다.

빨라도 너무도 빠른 성장이었다.

이때부터 제로미스에게 시련이 다가왔다.

가능성이 있어 실험 재료 겸 제자로 받아들인 제자가 마법에 입문한 지 30년도 되지 않아 자신과 같은 경지에 오른 것이다.

자신은 그 시간 동안 겨우 4클래스에서 5클래스로 오른 후 진보가 없는 상태인데, 제자는 벌써 자신과 동급으로 올랐으니 질투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대륙의 많은 마법사들이 5클래스의 벽을 깨지 못해 마도사라 불리는 6클래스에 오르지 못하고 안식을 맞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제로미스의 스승인 마법사도 특별하진 못해도 마법사로서 그리 떨어지는 마법사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마법사도 인간이기에 질투라는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니 이런 인간의 희노애락의 틀에서 벗어났다면 6클래스의 벽을 깨지 못하고 5클래스에 머물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제자의 5클래스 입문에 축하는 해 주지 못할망정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스승으로서의 자세.

그렇지만 제로미스의 스승은 그런 참된 인간이 되지 못했다.

자신과 동급에 오른 제로미스를 수시로 방해를 했으며 급기야 그를 내쫓았다.

사실 그때 이미 제로미스의 경지는 그의 스승보다 앞서 있었다.

다만 마력이 부족해 스승보다 다양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할 뿐이었다.

그렇게 스승에게서 쫓겨난 제로미스는 산속으로 들어갔다.

이미 그의 스승이 가지고 있는 마법은 모두 숙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것을 능숙하게 수련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산속에 홀로 마법 수련을 정진하는 제로미스는 적막한 생활 때문인지 마법 실험과 명상을 하였다.

그리고 무료한 시간에 명상을 하면서 생각지도 못하게 깨달음을 얻어 6클래스에 오르게 되었다.

그때가 제로미스의 나이 45살이었다.

35살에 5클래스에 오르고 불과 10년 만에 마도사인 6클래스가 된 것이다.

그 뒤로 5년을 더 산속에서 홀로 클래스의 길을 개척했다.

장장 15년을 산속에 혼자 생활하던 제로미스는 더 이상 경지에 진전이 없자 세상으로 나왔다.

처음 그가 찾은 장소는 자신이 태어난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자신이 떠나 있을 동안 많이 변해 있었다.

자신의 생부는 이미 죽고 없었다.

뿐만 아니라 생부가 죽고 그의 지휘를 물려받은 새로운 영주는 제로미스의 생모인 엘프를 다른 귀족에게 팔아 버렸다.

아무리 이종족 노예라고 하지만 아버지가 사용하던 성노예를 품는다면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물론 이것을 숨기고 아름다운 엘프 노예를 품는 귀족도 있긴 하였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제로미스의 배다른 형제는 어머니를 팔아 버렸던 것이다.

제로미스의 생모는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그렇게 팔려 간 귀족가는 그의 생모를 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지전을 벌이다 멸망했다.

그때 제로미스의 생모에 대한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들리는 소문에는 탈출했다고도 하고, 또 다른 정보에는 영지전에 승리한 귀족이 노예로 데려갔다고도 하였으나, 확실한 신변은 알려지지 않았다.

생모의 생사에 관한 소식이 끊기자 제로미스는 그 땅에 있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물론 생모의 생사가 확인되었다고 해도 그의 선택이 바뀌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는 자신이 태어난 왕국이 아니라 가장 멀리 떨어진 로메로 왕국을 택했다.

물론 처음부터 로메로 왕국에 의탁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1800㎞나 떨어진 로메로 왕국까지 정착하기까지 제로미스는 많은 곳을 떠돌았다.

그가 6클래스에 오른 마도사라고 해도 마도사가 어디 흔한 존재인가?

더욱이 그의 외모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엘프의 피 때문에 30대 초반으로 뿐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그가 자신의 경지가 6클래스의 마도사라고 말을 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뿐만 아니라 마도사가 홀로 대륙을 떠돌아다닌다는 것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욱이 하프이긴 하나, 외모는 인간이기에 더욱 그의 말은 신빙성을 가지지 못했다.

사람들은 제로미스가 6클래스라고 말을 하였을 때 그를 거짓말쟁이라 매도하며 그와 함께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그때서야 제로미스도 자신의 경지를 2단계 낮춰 4클래스 소개를 하였고 상단도 그때서야 제로미스를 고용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상식에서 벗어난 제로미스의 외모와 경지의 괴리를 이해하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

하지만 4클래스라 말하니 그제야 천재 마법사니 하며 그를 적극 영입하려고 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제로미스는 대륙 여기저기 여행을 하다 로메로 왕국에 이르렀다.

사실 로메로 왕국이 아니더라도 제로미스를 원하는 왕국은 많았다.

그렇지만 조건이 맞는 왕국은 이미 자리를 잡은 마법사나 마도사가 있었고, 그나마 적은 나라들도 많은 마법사들이 이전투구를 하고 있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로메로 왕국은 아니었다.

빼어난 자연환경과 욕심이 없는 왕국민들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 제로미스는 로메로 왕국에 의탁하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그의 몸에 돌고 있는 절반의 엘프에게서 물려받은 피 때문인지도 몰랐다.

자연을 사랑하는 엘프의 피는 제로미스의 몸 안에서도 작용을 했는지 다른 왕국과 다르게 차분한 로메로 왕국의 풍경과 평민들의 모습에 제로미스를 안주하게 하였다.

더욱이 제로미스의 경지를 알게 된 로메로 국왕은 적극적으로 그를 지원해 주었다.

연고도 없던 그를 높이 평가하며 등용한 로메로 국왕의 배려 덕분에 제로미스의 경지는 빠르게 높아져 갔다.

그리고 비록 하프이긴 하지만 인간으로서 최초로 7클래스를 당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기 때문에 제로미스는 로메로 국왕을 자신의 친부모 보다 더 신뢰하였다.

자신의 친부모는 그저 자신을 세상에 낳은 것뿐, 로메로 국왕은 자신을 인정함과 동시에 등용해 주었다.

그렇기에 지금 자신의 생명이 다해 불안정하게 폭주하는 텔레포트 마법진을 통재하려고, 부단히 노력을 하는 것이다.

자신이 죽더라도 은혜를 받은 로메로 국왕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이렇게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 제로미스는 한순간 머릿속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얗게 폭발하는 느낌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자신이 7클래스에 이르렀을 때보다 더 큰 희열.

그와 동시에 폭주하던 마법진이 안정을 찾아갔다.

‘아, 이제야 마법진이 진정이 되었구나!’

폭주하던 마법진이 한순간 순한 아기처럼 제로미스의 뜻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눈앞에서 마법진에 집중되던 마력들이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

‘이제 되었다.’

그 폭발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잘 알고 있는 제로미스는 자신이 폭주하던 마법진을 컨트롤 하여 정상적으로 가동시켰다는 것에 안도했다.

자신은 약속을 지켰다. 마법사에게 약속이란 무척이나 중요한 것.

세상의 절대법칙인 마나의 법칙을 연구하는 이로서 절대 거짓을 행해서는 안 된다.

만약 경지에 들어선 마법사나 마도사들이 거짓을 행했을 때, 마나는 그들을 떠났다.

마법사들은 법칙을 비트는 것이지 법칙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거짓으로 법칙을 희롱하면 안 되는 것이다.

마나의 축복을 받은 마법사들이 마나의 법칙을 속인다는 것은 축복을 거절하는 것이고, 이는 마법사에게 파탄을 가져다준다.

즉 마법사가 아닌 평범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아니 세상의 근간인 마나가 자신을 속인 마법사를 배척하기 시작하기에 거짓을 행한 마법사는 평범한 일반인도 되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어 갈 것이다.

더욱이 제로미스처럼 상위 클래스로 올라가는 깨달음을 얻은 대마도사는 더욱 마나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제로미스는 로메로 국왕과 약속을 했고, 자신의 생명력까지 써 가면서 약속을 이행한 것.

비록 생명력이 다해 더 이상 삶을 영위할 수는 없지만 그의 영혼만은 자신이 마도사로서 마나의 법칙을 따랐다는 일념에, 죽어 가는 순간에도 제로미스는 평온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제로미스는 조금 전 밝은 빛이 폭발하고 어느 순간 자신의 몸을 감싸는 온기를 느꼈다.

얼마 만에 느껴 보는 포근함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느낌이 결코 낯설지가 않았다.

다만 이 느낌이 무언지 생각나지는 않을 뿐…….

결코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좋구나!’

어느 순간 제로미스는 그 포근함에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런 포근함도 잠시…… 마치 납치라도 당하는 듯 그의 몸이 꼼작, 달싹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얼마나 많은 자들이 그의 몸을 쥐어짜는 것인지 그 압박이 장난이 아니었다.

‘뭐, 뭐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편안하고 포근했던 세상이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다.

더욱이 지금 그가 있는 곳은 빛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 속이라 마치 마계의 악마들도 피한다는 심연의 그곳이 아닌지 의심이 될 지경이다.

‘뭔가 잘못되었다.’

제로미스는 지금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분명 마지막 순간 마법은 정상적으로 작동을 했다.

그것은 대마도사의 경지에든 제로미스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대마도사 쯤 되면 마력의 성질만 보고도 마법이 실현되었는지 실패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폭주하던 마력을 진정시키기 위해 생명력까지 동원하느라 눈으로 확인하진 않았지만 분명 텔레포트 마법은 성공했다.

그런데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 죽지 않았나? 내가 살아 있는 것인가?’

제로미스는 뭔가 잘못 되었다는 느낌이 들고 곧 자신이 현재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폭주하는 마법진을 진정시키기 위해 자신이 쌓은 마력을 총동원 하였고, 또 그것도 부족해 남은 생명력까지 모두 마법에 쏟아부었다.

비록 그의 나이가 예순 살이라 하지만 하프엘프인 그의 정체를 생각하면 60살이란 나이는 그에게 청춘인 것이다.

더욱이 그는 마도사의 경지를 지나 대마도사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

그의 수명은 하프의 경지를 지나 온전한 엘프의 수명인 600살 이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이는 바디체인지로 인한 것으로, 신체가 가진 가장 우수한 형질로 신체를 재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에 경지에 이른 검사들은 바디체인지로 가장 신체활동이 왕성한 20대로 돌아가는 것이고, 마도사들은 정신이 완숙에 들어서는 40대로 바디체인지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프인 제로미스는 신체가 인간의 특성과 엘프의 특성 중 우성인 엘프의 신체로 재구성 되었다.

외모는 인간이지만 내부는 엘프와 같아진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또 깨달음을 얻어 대마도사가 되니 사실상 제로미스의 생명력은 엘프의 경지를 넘어 엘프들의 지도자인 하이엘프의 경지에 들어섰다.

이는 그가 깨달음이 8클래스에 이르렀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이런데 제로미스가 마법이 실패했는지 아니면 성공했는지 그것을 모를까?

분명 마법진의 마법은 성공을 하였다.

비록 제로미스의 모든 생명력을 소모하고서 성공하긴 했지만 말이다.

제로미스는 마법이 성공할 때 자신의 신체에 이미 생명력이 소멸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러했기에 마법이 성공할 때 모든 미련을 버릴 수 있었다. 또한 그로 인해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는 사실에 순순하게 기뻐할 수 있었으리라.

그런데 지금 자신이 죽지 않고 어딘가에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점점 자신을 옥죄는 느낌에 참을 수 없는 짜증과 함께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아직 죽지 않았다니?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

◈ ◈ ◈

제로미스는 자신의 몸이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다.

‘어디로 가는 것이지?’

온몸을 옥죄면서도 자신이 어디론가 옮겨진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7클래스 대마도사이며 8클래스의 깨달음까지 보유한 그에게 작금의 현실이 가리키는 것이 무언지 알 수는 없지만 언젠가 한번 겪은 일인 듯 어색하진 않았다.

다만 그것을 언제 겪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렇게 이동을 하던 제로미스의 몸이 멈췄다.

그와 동시에 머리에서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뭐야!’

조금 전에는 몸이 불편하고 옥죄는 느낌은 있었지만 따뜻했다.

그런데 지금은 몸은 따뜻하지만 머리는 차가운 기운에 노출이 되었다.

‘설마!’

제로미스는 그제야 자신의 상태를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경험한 적이 있다고 느낀 것은 바로 자신의 탄생하던 과정.

왕궁 지하에서 텔레포트 마법진의 폭주를 막기 위해 모든 마력과 생명력까지 쏟아붓고 죽음의 순간에 본 기억이 있는 자신의 태어날 때의 순간이 바로 지금과 비슷했다.

‘설마 되풀이 되는 것인가?’

제로미스는 지금 상황을 자신이 죽기 전 경험했던 현상을 다시 되풀이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한참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를 압박하던 것들이 사라지고 온몸이 차가운 대기에 노출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의 엉덩이 부분에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악!’

◈ ◈ ◈

“힘주세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는 산모를 보며 주문을 하였다.

의사의 주문에 산모는 장시간 계속되는 진통에 녹초가 되었지만 그래도 나아야 한다는 일념에 이를 악물고 하체에 힘을 쏟았다.

“으윽!”

산모가 힘을 쏟자 의사는 조금 더 분발을 하라는 듯 주문을 하였다.

“머리가 보입니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아기가 나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세요, 힘!”

의사의 독려가 있어서 그럴까? 아니면 아기의 머리가 보인다는 의사의 말에 힘을 얻었는가?

산모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더욱 큰소리를 내며 힘을 주었다.

“하악!”

“좋습니다. 머리가 나왔어요! 분발하세요. 곧 아기를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의사의 주문에 맞춰 산모가 아기를 낳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분만실 밖 산모의 가족들로 보이는 남성과 아이들이 초조하게 분만실을 보며 서성이고 있었다.

“아빠! 아기는 언제 나와?”

한 여자아이가 자신의 아빠를 보며 물었다.

“곧 나올 거야.”

남자는 딸에게 설명을 했지만 그 말을 들은 딸의 반응은 달랐다.

“조금 전에도 곧 나온다 했잖아!”

그런 딸의 말에 남자도 할 말이 없었다.

벌써 6시간째 계속되는 부인의 산고에 남자도 초조하긴 마찬가지였다.

“아기가 게으름뱅인인가 보다.”

생각지도 못한 딸의 말에 남자는 눈을 깜박거렸다.

“왜 그렇게 생각해?”

남자는 자신의 딸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통은 그런 말을 하기 보단 엄마를 찾거나 아니면 장시간 병원에 있는 것을 지루해하며 떼를 썼을 것인데, 자신의 어린 딸은 그러기보단 늦게 나오는 동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참신한 생각에 남자는 딸에게 질문을 했다.

그런데 역시나 딸의 대답은 신선했다.

“응, 아마도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늦잠을 자느라 늦게 나오는 거야. 엄마가 그랬어. 늦게까지 잠을 자는 사람은 게으름뱅이라고. 그러니 아기는 게으름뱅이야!”

딸의 말을 들으니 어이가 없기는 하지만, 아이의 순수한 생각에 남자는 그런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을 하였다.

“그럼 우리 수정이가 동생이 나오면, 게으름뱅이가 되지 않게 잘 돌봐 줘야 해?”

“응, 알았어! 내가 게으름뱅이가 되지 않게 잘 돌봐 줄게!”

남자가 어린 딸과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분만실 안에서 우렁찬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응애응애!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자 남자는 딸을 품에서 떼고 말했다.

“아기가 태어났나 보다. 이제 우리 수정이 동생이 생겼네?”

“응, 어서 동생 보고 싶어!”

수정은 엄마가 들어간 방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자 눈이 커졌다.

뭔가 온몸을 타고 흐르는 뭔지 모를 전율을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 어려 그 느낌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결코 나쁘지 않았다.

◈ ◈ ◈

찰싹찰싹!

응애응애!

엉덩이에 느껴지는 고통에 제로미스는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에서 나온 것은 아기의 울음소리일 뿐이었다.

“부인 건강한 사내아이입니다.”

의사는 아기를 번쩍 들고는 엉덩이를 때리다, 아기가 울자 하얀 포대기에 감싸서 아기의 얼굴을 산모에게 보여 주었다.

한편 아기를 낳느라 장시간 산고를 치른 산모는 의사가 자신의 아기 얼굴을 보여 주자 환하게 웃었다.

“아기는 어떤가요?”

의사가 아기의 얼굴을 보여 주자 미영은 아기의 얼굴을 보며 혹시나 어디 잘못된 곳은 없는지 물었다.

그런 미영의 물음에 의사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을 하였다.

“하하, 내 지금까지 많은 아기를 보았지만 이렇게 인형같이 예쁜 사내아인 처음입니다. 이거 커서 여자들 깨나 울릴 것 같은데요.”

의사는 아기가 건강하다는 말을 돌려 그렇게 설명을 하였다.

사실 말이 바른말이지 지금 분만실에 있는 간호사들도 의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들도 산부인과에 근무를 하면서 많은 아기를 보아 왔다.

그런데 지금 갓 태어난 갓난아기가 이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보통 아기들은 갓 태어나면 양수에 의해 피부가 쭈글쭈글한 상태로 태어나 무척이나 못생겨 보인다.

하지만 지금 자신들의 보고 있는 아기는 마치 공장에서 찍어 낸 인형처럼 피부가 팽팽할 뿐 아니라 백옥처럼 살결이 뽀얀 것이 마치 백자나 진주를 보는 것 같았다.

“세상에 아기 피부 좀 봐! 도자기를 보는 것 같아!”

“그러게 말이야! 내가 간호사 생활 5년을 하지만 이렇게 예쁜 아기는 처음 봐!”

“이거 이러다 아기 도둑질 하는 사람 생기는 것 아니야?”

아기를 보며 감탄을 하던 간호사들은 뒤에 가서는 정말로 예쁜 아기 때문에 농담을 하였다.

하지만 그 말이 결코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간호사들이었다.

“어허! 아기가 듣고 있는데 못하는 소리가 없네!”

간호사들의 농담이 도가 지나쳤다는 것을 느낀 의사가 간호사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한편 이런 의사와 간호사들의 칭찬에 미영은 저절로 미소가 어렸다.

조금 농담이 심하긴 했지만 그것도 다 자신이 낳은 아기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려니 하며 웃어넘겼다.

확실히 자신이 보기에도 아기는 이제 갓 낳은 아기 같지 않게 피부도 팽팽하고 예뻤다.

‘사랑스런 내 아기, 건강하게 자라다오.’

미영은 자신의 옆에 놓인 아기를 보며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 ◈ ◈

엉덩이에서 전해지는 아픔에 울던 제로미스 그런데 아픔에 정신을 놓고 있던 제로미스가 지금 상황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길, 왜 아기의 엉덩이를 때리는 거야!’

“세상에 아기 피부 좀 봐! 도자기를 보는 것 같아!”

“그러게 말이야! 내가 간호사 생활 5년을 하지만 이렇게 예쁜 아기는 처음 봐!”

“이거 이러다 아기 도둑질 하는 사람 생기는 것 아니야?”

자신의 엉덩이를 때린 것에 관해 생각을 하던 제로미스 그런데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던 언어였기 때문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설마 이게 내가 태어나던 과거의 기억이 아니란 말인가?’

제로미스는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자신이 예전에 겪었던 일이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했기에 주변에 느껴지는 여자들의 목소리나 자신이 감싸고 있는 천이나 침대의 부드러운 느낌을 귀족가의 아기로 태어났을 때 느꼈던 그 감촉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곧 그것이 아니란 것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

비록 아기라 눈을 뜨지 못해 확신 할 수는 없지만 분명 지금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과거의 경험이 아니다.

‘설마 내가 다시 아기가 되었다는 말인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내가 배운 마법학파는 영혼전이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데?’

제로미스는 계속해서 생각을 하였다.

자신이 배운 마법을 근거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하여 정의를 내리려고 하였지만 쉽게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특히나 이케아 대륙의 마법에는 많은 종류의 마법들이 있다.

자연계 현상을 마나의 법칙으로 사용하는 엘리멘탈계 마법부터 물체에 마법속성을 담는 인첸트 등 많은 마법이 있다.

그중 지금과 같은 상황에 맞는 마법의 종류는 영혼을 다루는 네크로멘시나 마계의 마족에게 제물을 받치고 힘을 얻는 흑마법류에 한해서 이런 일이 가능하다.

하지만 자신이 익힌 마법에는 네크로멘시나 마족과 계약을 하여 마력을 얻는 흑마법이 없었다.

아니, 깊이 들어간다면 네크로멘시도 약간은 포함이 되어 있겠지만 그건 소울계열이 아니라 재료를 엑스트렉션(Extraction)하는 방법만 발취한 것이다.

즉 네크로멘시하고도 직접적으로는 연관이 없다는 소리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자신이 아기의 몸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이케아 대륙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살아 있을 동안 쌓은 카르마에 따라 신들이 사는 신계로 올라가든, 아니면 악마들이 살고 있다는 어비스로 간다고 믿었다.

물론 100% 그렇게 두 곳으로 가는 건 아니고, 자신의 선택으로 마계로 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 경우는 흑마법사들이 마계의 존재와 계약을 맺은 뒤 죽었을 때에 한해 그렇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자신처럼 아기가 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더욱이 지금 주변에서 들리는 말은 제로미스 자신이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언어였다.

이 때문에 지금 8클래스에 달하는 깨달음을 얻었던 대마도사를 지나, 위대한 위자드의 경지에 올라서려 했던 그를 혼란에 빠뜨렸다.

법칙을 연구하여 그것을 실행하는 존재인 마법사, 그런 마법사들 중에서도 상당한 깨달음을 가지고 있는 제로미스지만 현재 자신에게 벌어진 현상에 대해선 아무것도 해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한참 원인을 찾아 고민을 하고 있던 제로미스는 갑자기 밀려드는 피로감을 느끼고는 그만 하던 생각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으…… 안 되는데, 원인을 알아야 해결을 하고 안식을 찾을 수 있는데, 안 돼!’

속으로 그렇게 외쳐 보지만 몰려드는 수면욕을 이기지는 못했다.

하긴 6시간이나 계속된 산통으로 산모도 고생을 했겠지만 갓난아기인 제로미스 역시 고생을 하였다.

더욱이 급격히 변한 외기와 태어나자마자 엉덩이에 전해진 충격은 그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었다.

그 때문에 아무리 위자드급의 정신력을 가진 그라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제로미스는 자신의 다시 아기로 태어나게 된 원인을 찾으려고 고민을 하다 잠이 들었다.

하지만 고민을 하다 잠이 든 제로미스를 보는 다른 사람들은 그가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그저 사랑스럽다는 듯이 쳐다볼 뿐이다.

사실 제로미스만큼 예쁘게 태어난 아기도 없었다.

제로미스가 잠이 든 후에도 몇몇 간호사들은 예쁜 아기를 카메라에 담아 자신의 SNS에 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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