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코리아-1화 (1/118)

1. 로메로 왕국의 최후

이케아 대륙력 1591년 대륙은 큰 전화에 휩싸였다.

10년째 계속되는 가뭄으로 인해 계속되는 흉작으로 인해 대륙의 곡물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가뭄이 들기 전이라면 밀 1포에 2실버면 살 수 있었지만 가뭄이 계속되면서 밀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 1포 당 1골드에 거래가 될 정도다.

곡물 가격이 오르면서 모든 물가가 오르다 보니 이제는 1골드 가지고는 일주일을 버티지 못할 지경이다.

이런 어려울 때 돈을 더 벌기 위해 상인들이 사재기를 하자 여기저기에서 폭동이 일어나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게 되었다.

이런 혼란의 시기에 중부의 강대국인 샤만 왕국이 주변 왕국들을 정복하며 세력을 떨쳤다.

그들은 주변의 자신보다 약한 나라들을 하나둘 복속을 하더니 급기야 로메로 왕국과 국경을 접하게 되었다.

로메로 왕국은 문을 걸어 잠그고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나 있는 듯했다.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문만 걸어 잠그고 수비만 하면 어느 나라도 막아 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일한 생각 때문이었는지 그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을 때, 샤만 왕국은 주변 왕국을 흡수해 거대 제국이 되어 버렸다.

샤만 왕국은 제국이 된 뒤에도 결코 행보를 늦추지 않았다.

나라가 커지긴 하였지만, 아직도 가뭄은 계속되고 있어 식량이 부족하다.

많은 국민들과 정복지의 피지배층들은 먹을 것이 없어 아사하기에 이르렀다. 거리며 담벼락이며 여기저기 시체가 널려 있었다.

이러한 때, 로메로 왕국에는 식량이 창고마다 쌓여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샤만 제국에 정복당한 로메로 왕국 인근에 있던 나라의 귀족이 예전 로메로 왕국과 전쟁을 하게 된 이유에 관해 샤만 제국에 고한 것이다.

식량이 바로 옆에 있다는 정보를 들은 샤만 제국은 선전포고도 없이 로메로 왕국을 침략했다.

배고픔의 광기로 이뤄진 전쟁. 로메로 왕국의 정병들은 너무도 잘 먹어 샤만 제국의 병사들 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엄청난 체격을 가지고 있어 쉽게 격파할 수가 없었다.

아니, 전투가 계속될수록 샤만 제국의 병력만 축날 뿐이었다.

하지만 물량에 장사 없다고 계속해서 쏟아지는 샤만 제국의 군세 앞에 로메로 왕국의 정예 병사들도 하나둘 소모가 되었다.

샤만 제국은 천이 실패하면 만을 보내고, 만이 방어선을 뚫지 못하면 10만을 보냈다.

이러다 보니 로메로 왕국의 피해도 하나둘 발생해, 급기야 전선이 무너졌다.

정복전쟁을 하면서 군대는 많았지만 정복지에서 거둬들인 자원은 한정적이었던 것이다.

이들의 작전은 자신들의 군대가 실패해도 좋고 로메로 왕국을 정복하면 더 좋은 것이었다.

어차피 가장 먼저 소비한 군대는 정복지에서 차출한 병력이기에 아까울 것이 없었다.

이렇듯 10년간 계속된 가뭄은 인간의 존엄도 사라지고 오로지 생존만을 위한 전쟁을 강요했다.

풍요로운 로메로 왕국은 이렇게 시류를 잘못 판단해 결국 멸망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로메로 왕국이 멸망을 함으로써 대륙은 샤만 제국이라는 단일 제국으로 통일이 될 것이다.

◈ ◈ ◈

철컹! 철컹!

복도를 울리는 발걸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폐하!”

장년의 기사가 뛰어 들어오며 로메로 국왕을 불렀다.

“무슨 일인가? 빌헬름 백작.”

자신을 찾는 부름에 로메로 국왕은 기사단장에게 자신을 찾는지 물었다.

그런 국왕의 물음에 빌헬름 백작은 빠르게 예를 취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보고를 하였다.

“현재 샤만 제국군이 로만 시 앞까지 당도하였다 합니다.”

국왕은 제국군이 로만 시 앞까지 왔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로만 시는 왕도인 로마나의 전초인 도시였다.

왕도와 불과 10㎞뿐이 떨어져 있지 않아 군대가 움직인다고 해도 반나절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이 때문에 로메로 국왕은 표정이 심각해졌다.

“음, 안 되겠군. 어서 왕세자와 왕자들을 불러라!”

국왕은 시종에게 왕세자와 왕자들을 불러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제로미스 마법사도 불러라!”

그리고 연이어 로메로 왕국의 궁중마법사인 제로미스를 불렀다.

국왕의 명령이 떨어지자 시종들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백작.”

“예, 폐하.”

“자네가 보기에 어떤가. 가망이 있겠나?”

로메로 국왕은 착잡한 표정으로 기사단장인 빌헬름 백작에게 물었다.

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나라를 지켜 낼 수 있을지 물어보는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하는 로메로 국왕이나 질문을 받은 빌헬름 백작이나, 샤만 제국과의 전쟁은 이미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미 일부 귀족은 엄청난 샤만 제국의 인해전술에 기가 질려 항복을 했다.

물론 항복을 했다고 샤만 제국이 그들을 그냥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항복한 로메로 왕국의 귀족이라고 해도 그냥 자국의 귀족으로 또는 평민으로 받아들여 줬을 뿐.

예전 그들이 보유하고 있던 기사나 병력들은 이미 샤만 제국의 기사와 병사가 되어 전장에 나갔기 때문이다.

샤만 제국의 무서움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항복을 한 귀족이나 병사들을 그냥 두지 않고 바로 전장으로 내몰았다.

만약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바로 첩자로 몰아 현장에서 처형을 하였다.

이러다 보니 어제는 로메로 왕국의 군대였으나 다음날은 적군의 군대가 되니, 어제까지 함께 싸우던 동료를 죽여야 했다.

참으로 잔혹하지만 뛰어난 용병술이었다.

살기 위해선 어제까지 동료였던 자들을 죽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오로지 자신의 생존에만 모든 것을 쏟아야 했다.

그러니 전쟁이 얼마 지나지 않아 왕도 인근까지 샤만 제국이 밀고 들어올 수 있었다.

로메로 국왕은 이미 샤만 제국과의 전황을 뒤집을 수 없을 정도로 밀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 내 대에서 왕국이 끝이 나는 것인가…….”

로메로 국왕은 고개를 들고 한탄을 하듯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폐하! 흑흑흑.”

국왕의 말을 들었는지 빌헬름 백작은 울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국왕과 백작이 이렇게 기운 국운을 슬퍼하고 있을 때, 국왕의 명령으로 불려 온 왕자와 마법사가 도착을 했다.

“아바마마! 부르셨습니까?”

“폐하! 부르셨습니까?”

홀 안으로 들어오는 인물은 약속이나 한 듯 함께 들어와 국왕을 보며 인사를 하였다.

“어서 오라!”

국왕이 자신들을 맞이하자 숙였던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로 절 부르신 것입니까?”

이제 60대를 지나 내년이면 일흔이 되는 로메로 왕국의 궁중마법사인 제로미스가 질문을 하였다.

제로미스는 7클래스 마법사로 이케아 대륙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마법에 정통한 마법사였다.

사실 대륙에는 7클래스 마법사는 딱 세 명 존재한다.

인간이 개척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가 바로 6클래스라 알려져 있는 상태에서 7클래스가 나왔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물론 제로미스를 제외한 두 명의 7클래스 마법사는 이종족인 엘프 마법사로 둘 모두 엘프 중 엘프인 하이 엘프라 알려졌다.

그러니 인간인 제로미스가 7클래스에 올랐을 때 얼마나 많이 놀랐겠는가.

하지만 알고 보면 사실 제로미스도 순수한 인간은 아니었다.

사실 그는 하프 엘프였다.

인간인 아버지와 엘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제로미스는 어려서부터 많은 죽을 위험에 노출이 되었다.

귀족인 아버지와 노예인 엘프 엄마, 이 관계에서도 알 수 있듯 귀족인 아버지에게도 자식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억지로 노예가 되어 인간에게 강간을 당해 아이를 낳게 된 엘프는 그를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태어나면서 방치가 된 제로미스는 귀족의 자식이면서도 하인들만 못한 삶을 살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외모가 인간과 다를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보통의 하프 엘프는 그 특성상 엘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인간에 비해 상당히 큰 귀를 가지는 것이 특징인데 제로미스는 그렇지 않았다.

아마도 인간인 아버지의 피가 진하게 옮겨 온 듯했다.

하지만 엘프인 어머니에게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엘프의 피를 물려받아서 그런지 순수 엘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무척이나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뛰어난 두뇌와 자연의 축복인 마나와의 교감도 상당히 높았다.

한마디로 마법사의 자질을 타고났다고 보면 되었다.

이렇게 부모에게 외면을 받고 태어났지만 뛰어난 재능을 물려받기도 했다.

천덕꾸러기로 어린 시절을 보내던 제로미스가 10살 때, 귀족가를 찾았던 마법사의 눈에 띄지 못했다면 제로미스의 운명은 정반대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마법사의 길로 인도했다.

당시 그를 찾은 마법사는 일정한 보상을 하고 제로미스를 그의 아버지로부터 사들였다.

농예 아닌 노예 신분이었던 제로미스는 마법사에게 팔려 가 많은 실험을 당했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제로미스는 그 마법사에게 마법을 배웠지만 말이다.

마법 실험을 당하면서 부작용으로 고생도 하고, 때로는 마법이 성공을 하여 득도 보았으니 좋을 것도 그렇다고 나쁠 것도 없었다.

아무튼 마법사에게 팔려 가 마법을 익히고 그 마법사가 죽었을 때는 그 마법사의 유진을 모두 수습을 하였다.

그렇게 마법사에게 실험 재료로 팔려 가며 마법사의 길에 접어든 제로미스는 장장 50년을 홀로 마법 수련을 하였다.

그렇게 50년간 수련을 하여 6클래스가 된 제로미스도 극복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10년간 계속된 가뭄으로 인한 기근이었다.

마법사도 밥을 먹어야 한다. 아무리 6클래스의 마법사라도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제로미스가 자신의 몸을 의탁할 곳을 찾던 중 가장 먼저 생각한 곳은 자신이 태어난 귀족가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금방 사라졌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던 아버지나 어머니, 두 존재는 제로미스에게 트라우마였다.

마나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인간이자 엘프인 제로미스에게 트라우마는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태어난 곳과 가장 먼 정반대의 나라로 이동을 하였고, 그러다 정착한 나라가 바로 로메로 왕국이었다.

로메로 왕국은 자연의 축복을 받은 곳인지 10년째 계속되는 가뭄 속에서도 풍작을 이루며 성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 나라들이 그런 로메로 왕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때 고위 마법사가 찾아오자 로메로 왕국의 국왕은 제로미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때까지 로메로 왕국에는 제대로 된 궁중마법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는 6클래스의 마법사도 있고, 최하 5클래스의 마스터들이 궁중마법사로서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로메로 왕국은 이케아 대륙 한쪽 구석에 있는 농산물 빼고는 별 볼 일 없는 나라였기에 마법사들은 로메로 왕국을 선호하지 않았다.

마법사들은 로메로 왕국처럼 농산물이 풍부한 나라보다는 자원이 많은 국가를 선호했다.

그래야 자신들의 마법 실험을 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로메로 왕국에서는 마법 실험에 필요한 자원을 구하기 어렵다 생각한 마법사들은 로메로를 찾지 않았다.

제로미스는 다른 마법사들과 다르게 실험 보다는 정신적 수양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제로미스는 보다 안정적인 삶이 필요했고, 그런 목적에서 로메로 왕국은 그에게 안성맞춤이었다.

물론 로메로 국왕도 6클래스 마법사가 제 발로 찾아왔는데, 내칠 입장이 아니었다.

마치 호박이 넝쿨 채 굴러 왔는데 걷어찰 멍청이가 어디 있겠는가?

차분하게 옛일을 생각하던 제로미스는 자신을 부른 국왕이나 기사단장의 표정에서 현재 전선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로메로 왕국은 이대로 끝이 나는 것인가?’

제로미스는 그동안 로메로 국왕의 도움으로 꿈에 그리던 7클래스에 들어섰다.

그리고 8클래스로 들어설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

시간만 더 있었다면 8클래스도 꿈은 아닐 것인데 중요한 순간에 자신이 몸담고 있는 왕국이 기로에 서 있었다.

제로미스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그의 옆에 있던 왕자가 물었다.

“아바마마! 도대체 무슨 일이시기에 그렇게 침통한 얼굴이십니까?”

한순간 씁쓸한 표정이던 국왕이 뭔가를 결심했는지 굳은 표정으로 대답을 하였다.

“이미 이곳에 오면서 짐작은 하고 왔을 것이라고 본다. 적군이 왕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점까지 진격을 했다고 한다.”

로메로 국왕의 말이 계속될수록 이야기를 듣는 왕자들과 그들의 호위 기사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폐하, 이곳은 저희들이 막을 테니 폐하께서는 왕자님들과 함께 피난을 가시지요.”

왕자들과 기사들이 로메로 국왕에게 피난을 권고하였다.

하지만 로메로 국왕의 눈은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였다.

그저 자신의 아들들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제로미스 경.”

제로미스는 자신을 부르는 국왕의 말에 대답을 했다.

“예, 폐하.”

제로미스가 대답을 하자 로메로 국왕이 말을 하였다.

“왕궁 지하에 가면 텔레포트 마법진이 있을 것이오. 초대 국왕께서 이런 일을 대비해 마련해 둔 것으로, 마법이 발동하면 대륙의 반대쪽으로 이동을 할 것이오.”

제로미스는 왕궁에 텔로포트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다는 말에 그리 놀라지 않았다.

일반 귀족가에도 비밀 탈출로나 텔로포트 마법진이 설치된 곳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륙의 반대쪽으로 이동한다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텔레포트는 들어가는 마력의 양에 따라 거리를 늘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거리가 100㎞가 넘어갈수록 필요한 마력의 양은 2배씩 늘어난다.

즉 100㎞에 마력이 100이 들어간다면, 200㎞에는 200의 마력이, 300㎞는 400 그리고 400㎞는 800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제로미스로써는 지하에 있는 텔레포트 마법진이 대륙의 끝까지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건 절대로 인간이 만든 마법진이 아닐 것이다.’

제로미스가 상식에 절대로 인간이 영역을 초월한 마법이라 생각했다.

자신은 인간의 한계라는 6클래스를 정복하고 엘프의 영역인 7클래스, 그것도 마스터다.

조만간 마력만 충분하다면 하이 엘프와 드래곤만이 가능한 8클래스까지 도달할 수 있는 깨달음까지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자신도 텔레포트 마법으로 9,800㎞나 되는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는 마법진을 완성한다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

상상도 못할 먼 거리. 사실 이 정도면 드래곤이나 가능할 워프 마법진을 그리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리라.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 제로미스는 아직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 8클래스 마스터나 어쩌면 드래곤이 일부러 인간들이 이해하는 범위에서 마법진을 만들어 준 것이라 생각했다.

“마법진에는 딱 한 번 사용할 마력이 준비되어 있으니 아마 샤만 제국이라도 뒤쫓을 수는 없을 것이오.”

로메로 국왕은 마법진이 단 한 번만 작동하고 멈출 거라 말을 하였다.

그의 말을 듣고 제로미스는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로 인간 마법사가 만든 것이 아니란 것을 말이다.

아직 마법진을 확인하지 않았지만 만약 자신이 8클래스를 완성한다면 한 번이 아니라 재가동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며 문득 마법진을 어서 빨리 확인해 보고 싶은 욕망이 끓어올랐다.

이미 8클래스의 깨달음도 얻어 마력의 량만 충분하다면 8클래스에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라 더 이상의 깨달음을 얻어도 소용이 없었다.

천성이 마법사니, 자신보다 상급의 존재가 만들어 놓은 것으로 짐작되는 마법진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호기심을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더욱이 8클래스의 깨달음과 또 다르게 상위의 마법을 구경하다 보면 더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기에 제로미스의 생각은 이제는 로메로 왕국의 멸망 보다는 온통 마법진에 쏠렸다.

한편 로메로 국왕이 왕궁 지하에 탈출용 마법진이 있다는 말을 할 때 왕자들과 함께 들어온 호위기사들 중 일부의 눈빛이 달라졌다.

어느 곳에나 인간의 욕심은 있는 듯, 눈빛이 바뀐 기사들은 모종의 일을 꾸미고 있는 듯 로메로 국왕의 마법진 이야기 후로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뭔가를 모의하였다.

◈ ◈ ◈

어두운 공간 로메로 국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왕궁 지하로 내려왔다.

지하 공동의 벽에 횃불이 타오르며 주변을 밝히고 있지만 공간 전체를 밝히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지하는 넓었다.

어두운 지하를 밝히기 위해 제로미스는 라이트 마법을 시전 하였다.

“라이…….”

하지만 제로미스가 마법을 시전 하려던 찰나 그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잠깐! 제로미스 마법사, 멈추시오.”

그를 부른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국왕인 로메로였다.

“무슨 일이시기에 절 부르신 것입니까?”

아무리 국왕이라지만 마법을 시전 하는 중 방해를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무례한 일이었다.

만약 제로미스가 7클래스 마스터이고 8클래스의 깨달음까지 얻은 마법사여서 마력의 운영이 다른 마법사들에 비해 월등하지 않았다면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마력의 날뜀을 진정시킨 제로미스는 갑자기 자신을 부른 국왕을 향해 물었다.

“폐하 무슨 일로 마법을 방해하신 것입니까?”

로메로 국왕은 얼른 자신의 실수를 사과하였다.

이케아 대륙에는 불문율이 있는데 그것은 마법사가 마법을 시전 할 때 방해를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마법이란 자연에 퍼져 있는 마나와 마법사의 몸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마력을 조율하여 부리는 기적.

그렇기 때문에 이는 무척이나 위험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마법사가 마법을 시전 하던 중 방해를 받게 된다면 마법사의 기량에 따라 죽을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마법사들은 주변에 방해를 받지 않는 곳, 아니면 가드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장소에서만 마법을 시전 하였다.

“제로미스 경, 내 잘 몰라 다급한 마음에 실례를 했네.”

“아닙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아닙니까?”

“그게 이곳에서는 마법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전해져서 마법을 쓰지 못하게 한 것이오.”

제로미스는 국왕의 말에 뭔가를 생각해 보았다.

왕국 최후의 비밀이 전승되면서 전해진 이야기라면 허투루 전한 말이 아닐 것이다.

그에 제로미스는 어렴풋하게 바닥에 새겨져 있는 마법진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마법진에서는 엄청난 마력의 힘이 느껴졌다.

‘꿀꺽! 저것만 있다면…….’

제로미스는 마법진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량에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마법진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량이라면 자신을 충분히 8클래스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으로 느껴졌다.

이미 8클래스의 깨달음을 가진 제로미스지만 한순간 욕심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욕심은 욕심.

이 자리에서 만약 저기 마법진에서 느껴지는 마력을 자신이 빨아들인다면 자신은 8클래스에 올라서기도 전에 뒤에 있는 기사들에 의해 죽을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알기에 금방 욕심을 벌릴 수 있었다.

‘어디 보자…….’

욕심을 버리니 그의 눈에 마법진의 구성 법칙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저렇게도 조합이 가능하구나!’

제로미스가 확인한 마법진은 현재 사용하지 않는 룬어도 간간히 보였다. 특히 룬어를 조합을 하여 새로운 룬어를 만드는 방법이 놀라웠다.

조금 더 연구를 해 봐야 알겠지만, 저렇게 룬어를 조합했을 때 어떤 효과가 있을지 아직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제로미스가 확인하기로 이 마법진은 확실히 인간의 방식이 아닌 엘프의 방식이었다.

그것도 9클래스에 다다른 위자드 급의 마법사가 아니면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마법이었다.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군요.”

그의 말에 왕자들과 기사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인간의 마법이 아닌 이종족의 마법으로 만들었다는 말이고, 또 고위 마법진이란 것으로 봐선 안전성이 인간이 만든 것 보다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 마법으로 탈출을 할 왕자들과 기사들의 눈이 반짝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자시들의 안전이 확보되었다는 소리를 들은 그들은 고개를 돌려 로메로 국왕을 쳐다보았다.

“나도 이 마법진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초대 국왕께서 하이엘프를 구해 준 것을 보답하는 의미에서 하이엘프의 족장이 만들어 준 것이라 전해진다. 그때는 엘프와 관계가 좋았다고 하던데…….”

로메로 국왕은 뭔가 아쉽다는 듯 애잔한 눈빛을 하며 말을 하였다.

왕실에 전해지는 사서에 의하면 엘프와 로메로 왕국은 무척이나 관계가 좋아 서로 교류를 하였다고 한다.

그대 왕국이 위기에 처할 때면 엘프 족은 지원군을 보내 줬다고 한다.

오늘처럼 위기에 처란 로메로로서는 당시의 엘프 지원군이 아쉬운 상태다.

그들은 뛰어난 헌터이자 뛰어난 스카웃터였다.

뿐만 아니라 위대한 마법사요, 정령사였다.

그들 100명이면 제국군 1만 명도 무섭지 않았다고 전해지는데, 현재는 엘프는 고사하고 이종족을 본 인간이 드물 정도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욕심 때문에 이종족을 습격해 노예로 부리면서 이종족과 인간의 관계는 치유하지 못할 정도로 간격이 벌어졌다.

로메로 국왕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왕자들에게 말을 하였다.

“곧 야만적인 샤만 제국군과 배신자들이 왕궁을 덮칠 것이다. 왕자들은 가족들을 거느리고 다시 이곳으로 모여라.”

로메로 국왕은 왕자들에게 가족을 건사해 이곳으로 모이라는 명령을 하였다.

이미 대륙은 샤만 제국의 수중에 들어갔다.

대륙 어디를 가던 모두 샤만 제국의 땅이란 소리.

그런 곳에 왕자들과 기사들만 떨어진다면 어떻게 생활을 할 것이면 인내할 수 있겠는가?

그 때문에 국왕은 이곳에 가족들을 대리고 집결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그건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로메로 국왕은 이미 로메로 왕국의 국운은 끝났으니 어디 산간벽지에 숨어 안전한 삶을 영위하라는 뜻이리라.

◈ ◈ ◈

마법진이 있는 왕궁 지하가 아무리 넓다 하지만 세 명의 왕자와 그의 식솔들 그리고 그들의 호위 기사들과 그들의 식솔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이니 마법진 안쪽을 뺀 주변이 꽉 찼다.

웅성웅성.

영문도 모르고 따라온 사람들은 저마다 지금 무엇 때문에 자신들이 왕궁지하에 있는지 알지 못해 혹시나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옆 사람에게 물어볼 뿐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지금 상황을 정확히 알고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조용히 하라!”

지하 광장이 웅성거림에 정신이 없자 그동안 조용히 왕자들을 기다리던 로메로 국왕이 나직하니 말을 하였다.

하지만 비록 낮은 목소리였지만, 지하라는 밀폐된 공간이다 보니 소리가 울려 모든 사람들의 귀에 들렸다.

“예, 폐하!”

“모두 들어라!”

로메로 국왕은 자신을 보는 왕실 가족들이나 호위 기사들의 가족들을 보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현재 우리와 전쟁을 하고 있는 샤만 제국의 병사들과 적들에게 돌아선 배신자들의 군대가 왕도에서 10㎞ 밖까지 밀려왔다고 한다. 이에 난 초대 국왕께서 건설한 텔레포트 마법진을 가동하려고 한다.”

국왕의 말에 장내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로메로 국왕이 손을 들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조용. 이곳에 설치된 것은 제로미스 경의 확인한 결과 안전하다고 한다. 그러니 모두 차례대로 마법진의 가운데로 이동을 하라!”

“예, 폐하.”

“알겠습니다, 아바마마.”

국왕의 명령에 지하에 있던 사람들이 순서대로 마법진 안으로 들어섰다.

물경 100명에 달하는 인원이 마법진 안으로 들어서자 로메로 국왕은 고개를 돌려 아직까지 마법진을 살피고 있는 제로미스를 쳐다보았다.

제로미스는 처음 이곳에 도착을 하였을 때부터 마법진에 마음을 뺏겼다.

그래서 왕자와 기사들이 자신의 가족을 데리러 갈 때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마법진을 살폈다.

8클래스 마스터 내지는 9클래스의 위자드가 설치한 것으로 짐작되는 텔레포트 마법진에는 지금은 사라진 조합식이 혼용되어 있어 지식욕이 왕성한 제로미스의 굶주림을 충족시켜 주고 있었다.

“제로미스 경!”

주변의 소란에도 마법진을 살피던 제로미스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곳에는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로메로 국왕이 보였다.

“아! 죄송합니다. 그만…….”

“아니오. 내 마법사인 경의 심정 다 이해하오. 그러니 다 살폈다면 이만 마법진을 가동해 주시오.”

제로미스는 자신의 불찰에 대하여 국왕에게 사죄를 하였고, 그런 제로미스의 사죄에 로메로 국왕은 마법사의 새로운 마법에 대한 욕심을 충분히 알기에 이해해 주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폐하께서도 마법진 안으로 드시지요.”

제로미스는 자신의 실책에 대하여 너그럽게 용서를 해 주는 로메로 국왕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을 하고 국왕에게도 마법진 안으로 자리하기를 권했다.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의외의 것이었다.

“아니, 난 떠나지 않을 것이오.”

“아니, 폐하! 아니 됩니다.”

국왕의 결심에 빌헬름 백작이 큰소리로 만류하였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존귀하신 아바마마가 가시지 않는데 저희가 떠날 수가 있겠습니까?”

저메인 왕세자는 마법진에서 나와 로메로 국왕을 보며 간절히 갈구했다.

“할아버지 같이 가요.”

왕세자에 이어 왕실 가족 중 가장 어린 율리아 공주가 로메로 국왕을 부르고 있었다.

그런 공주의 어여쁜 모습에 로메로 국왕의 눈이 잠시 흔들리긴 했지만 국왕은 자신이 이곳에 남아 죽어야 적들이 이들을 추적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기에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을 부르는 손녀를 살짝 안아 주고는 왕세자인 저메인 왕자를 보았다.

“내가 너희와 함께 떠나게 된다면 대륙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어진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 남아 왕국과 최후를 함께한다면 저들은 대륙을 통일했다는 명분 하나로 더 이상 너희를 쫓지 않을 것이다.”

저메인 왕세자는 아버지인 로메로 국왕이 이미 마음을 굳혔다는 것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저메인 왕세자의 국왕을 부르는 호칭이 더 이상 왕을 부르는 호칭이 아닌 그저 자신의 아버지를 입에 담았다.

이는 왕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현재 로메로 국왕이 어떤 마음으로 자신들을 떠나보내는 것인지 잘 알기에 그리 불렀다.

그리고 로메로 국왕 또한 자신의 아들이면서도 아들이라 부르지 못했던 왕자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 주었다.

“저메인, 필립, 에드워드…… 너희는 절대로 오대가 지나기 전까지 대륙으로 나오지 말아야 한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마지막 충고이니라!”

“잘 알겠습니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저희는 대륙으로 나오지 않겠습니다.”

로메로 국왕은 이제 가면 다시는 볼 수 없을 자식들에게 아버지로서 마지막 충고를 해 주었다.

아무리 샤만 제국이 자신의 죽음으로써 로메로 왕국의 멸망과 대륙 통일이란 명분을 얻어 이제는 대륙을 통합하는 길에 접어들 것이다.

물론 멸망한 왕국을 부활하려는 움직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대륙에는 멸망한 왕국을 재건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으나, 너무도 막강한 샤만 제국군과, 그들의 앞잡이가 된 귀족들로 인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10년이나 계속된 가뭄으로 평민들에게는 누가 지배자가 되건 상관이 없었다.

그저 배곯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가뭄이 계속되면서 세금을 내지 못해 도망쳐 산적이 된 평민들이 무척 많았다.

귀족들은 영지에 가뭄이 들거나 말거나 세금을 예년 그대로 거둬들인다.

그 때문에 부족한 세금을 내지 못하여 아내나 딸을 베일리프(Bailiff, 토지 관리인)에게 빼앗긴 이들이 살기 위해 가족과 함께 야반도주를 하여 산으로 들어갔다.

일부는 화전민이 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산적이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이들이 모이다 보니 먹고 살기 위해 자신들 보다 약하거나 소수의 인원을 습격하여 생계를 이어 갔다.

그리고 일부는 세력화 하여 상인을 습격하기도 했다.

이렇게 대륙에 도적들이 들끓고 있는 중에 로메로 왕국의 왕실 가족들이 잠적을 한다고 해서 추적을 할 이유는 없었다.

보이지도 않는 자들을 찾기 위해 인력을 낭비할 정도로 샤만 제국의 사정이 좋지 못하였다.

이러한 사정을 알기에 로메로 국왕은 이들에게 5대까지 숨어 지내라는 말을 하였다.

1세대를 30년으로 잡는다면 5대면 150년.

150년이 흐른 뒤에 샤만 제국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과거 로메로 왕국의 후예들을 굳이 잡아들일 이유가 없다.

이미 로메로 왕국은 샤만 제국에 녹아들었을 것이고, 150년이 흐른 뒤 왕인들은 로메로의 왕족을 모두 잊었을 것이기에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로메로 국왕은 자신의 아들에게 그런 명령 아닌 명령을 내렸다.

저메인 왕세자도 무엇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인 로메로 국왕이 그런 말을 했는지 깨닫고 약속을 했다.

자식들과 이야기를 끝낸 로메로 국왕은 다시 제로미스에게 마법진을 가동하라는 말을 하였다.

“제로미스 경 어서 서두르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폐하 안녕히 계십시오.”

“잘 가거라! 나의 아이들아!”

비장한 로메로 국왕의 말을 뒤로하고 제로미스는 마법진에 자신의 마력을 주입시켰다.

이미 마법진의 파악을 모두 끝냈다.

어느 부분이 마법의 시작점이고 또 어느 부분이 텔레포트 마법진에 마력을 구동하는 부분인지 파악이 끝났기에 마법진을 구동시키기 위해 마력을 주입한 것이다.

텔레포트 마법진에 마력을 주입하고 있던 제로미스는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 자신이 마법진을 살필 때 계산한 필요한 마력의 량보다 지금 들어가는 마력이 많은 것이다.

100여 명을 텔레포트 시키는 마법진이라 순서에 따라 들어가는 마력의 양이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계산이 틀린 것인지 지금 필요 마력의 양에 비해 일 할이 더 들어가고 있는 것을 느낀 제로미스는 얼른 마법진을 살피기 시작했다.

만약 자신의 계산이 잘못되었다면 자신과 마법진 안에 있는 사람들은 공간의 미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 어떻게 성공을 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는 마력으로 인해 마법진을 살피던 제로미스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마법진 내부에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마법진을 밟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때문에 마법진에 들어가는 마력에 과부하가 걸려 과도하게 마력이 소모되었던 것이다.

“거기 마법진을 밟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어서 발을 떼게!”

지적을 받은 기사는 얼른 자신의 발을 원래의 위치로 옮겼다.

하지만 그 기사가 제자리로 이동을 하자 이번에는 그 옆에 있던 기사 한 명이 이상한 행동을 하였다.

마치 마법이 시전 되는 것을 늦추려는 듯 다른 사람들 모르게 마법진을 밟아 마력을 소모시키고 있었다.

마법진의 마법은 주입된 마력이 임계점에 이르렀을 때 발동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그려진 마법진에 이물질이 끼게 된다면 그 부분에 과부하가 걸려 필요한 마력보다 더욱 많은 마력이 필요하게 된다.

즉, 과부하로 소모된 량만큼 더 많은 마력이 주입되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 때문에 제로미스는 자신이 계산하고 주입했던 마력에 마법이 발동을 하지 않고 더 들어가는 것에 의심을 하다 주변을 살핀 것인데, 한 명이 그렇게 한 것이라면 실수라 생각하겠지만 또 다른 기사가 그와 비슷한 행동을 하자,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드!”

제로미스는 아까 로메로 국왕이 이곳에서는 마법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주의를 주었지만 마법을 사용했다.

아까 전에 국왕이 주의를 준 것은 마법진에 있는 마정석이 품고 있는 마력이 소모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주의를 준 것으로 텔레포트 마법을 펼치기 위한 량의 마력만 품고 있는 마정석이기에 그 공간에서 마법을 사용하게 되면 분명 마정석에서 마력이 어느 정도 소모될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기에 제로미스는 주변에서 마력을 끌어들이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순수 마력을 이용해 홀드 마법을 시전 한 것이다.

홀드 마법에 걸린 기사는 당황했다.

갑자기 마법사가 자신을 마법으로 묶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마법에 묶인 기사는 당황하며 고함을 쳤다.

그런 기사의 모습에 모든 사람들이 마법을 시전 한 제로미스를 쳐다보았다.

“제로미스 경 무슨 일이기에 클락 경에게 마법을 건 것입니까?”

빌헬름 백작은 자신의 수하인 클락이 제로미스의 마법에 당하자 이유를 물었다.

지금 왕실 가족을 피난 보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할 시기에 이렇게 내분에 휩싸이니 당황해 물은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받은 제로미스는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의 마법에 묶인 클락을 쳐다보며 물었다.

“무엇 때문에 마법 시전을 방해하는 것이지?”

질문을 받은 클락은 당황하며 자신의 주변에 있는 동료들을 쳐다보았다.

그런 클락의 시선을 받은 기사들은 표정이 굳어졌다.

굳어진 표정의 기사들의 모습을 마법진 밖에서 이들의 이동을 지켜보던 로메로 국왕의 눈에 고스란히 노출이 되었다.

“클락 경은 어서 제로미스 경의 질문에 답을 하기 바라네.”

부탁하는 듯한 로메로 국왕의 말이었지만 듣는 클락은 그게 엄청난 압박이 되었다.

사실 이곳에 있는 기사들 몇은 이미 샤만 제국에 넘어간 상태였다.

자신의 집안이 이미 샤만 제국에 전향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고민을 했었다.

충성을 맹세한 대로 왕실 가족을 위해 의리를 지킬 것인지, 아니면 집안을 위해 맹세를 저버릴 것인지 몇 날을 고민했다.

하지만 이들도 인간인지라 맹세보단 삶을 택했다.

양심과 욕망의 싸움에서 이들은 욕망에 지고 말았다.

더욱이 이들에게 집안의 안위라는 면죄부가 있지 않은가?

물러설 곳이 없다면 백만 대군에도 대적할 듯 용기를 내지만, 피할 곳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바로 현실을 외면했다.

이미 전향하기로 결정한 기사들은 이미 자신들끼리 내통을 하여 전쟁이 끝났을 때 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전공을 세울 계획을 계책을 마련했다.

그것은 바로 로메로 왕국 왕실을 샤만 제국에 넘기는 것이었다.

적국 왕실 가족을 모두 붙잡는 것은 점령군으로서 가장 큰 전공.

그런데 이들의 계획에 차질이 일어났다.

원래 계획은 왕실 가족들이 호위와 함께 피난길 도중 왕도와 어느 정도 떨어졌을 때 모두 붙잡아 왕도로 진격하는 샤만 제국군에 이들을 넘긴다는 계획이었다.

만약 계획대로만 되었다면 최고의 전공에, 샤만 제국에 귀족으로서 편안한 삶이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왕실에 이런 날을 대비해 텔레포트 마법진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에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

결국 전향한 기사들은 왕도에 있는 가족을 데리러 갈 때 모여 계획을 수정하기에 이른다.

이미 샤만 제국군이 왕도 근처까지 왔다고 하니 그때까지 시간을 끌자는 것이었다.

시간을 끓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던 이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마법사를 찾아가 조언까지 구했다.

물론 자신들이 무엇 때문에 그런 질문을 했는지는 알리지 않고 원하는 것만 들은 것이다.

이렇게 사전 모의를 한 기사들은 제로미스가 국왕의 명령으로 마법진의 마법을 시전 하려고 하자 이를 방해하였다.

하지만 기사들은 제로미스의 경지를 생각지 못했다.

이들의 방해가 있었지만 제로미스는 마법을 교정하고 과도하게 소모되는 마력 손실의 원인을 찾아냈다.

제로미스는 일단 가장 의심되는 행동을 한 클락을 마법으로 묶고 마법을 방해하는 이유를 물었다.

이때 사전 모의를 했던 기사들은 자신들의 계획이 틀어졌다는 것을 깨닫자 차선책으로 준비했던 것을 진행했다.

“들켰다! 쳐라!”

왕자들 근처에 있던 기사 중 일부가 클락의 고함치자 옆구리에 차고 있던 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다른 호위 기사들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클락이 느닷없이 고함을 지르자 자신도 모르게 칼을 꺼냈다.

이미 마법진 위에 있던 기사들은 서로 편을 가르며 대치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배신을 한 기사들의 운명은 제로미스에 의해 결정이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 편에 선 마법사가 이 자리에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후회해야만 했다.

“그레이트 홀드!”

제로미스는 조금 전 클락을 묶은 홀드 마법을 다시 한 번 시전 했다.

하지만 조금 전과 조금은 다른 마법이었는데, 개인을 묶는 마법이 아니라 대단위 병력을 묶어 버리는 대단위 마법이었다.

이 때문에 마법진 안에 있던 사람들은 마법에 묶여 꼼짝을 하지 못했다.

“어찌 이런 일이…….”

호위 기사들의 반란과 제로미스의 마법을 지켜본 로메로 국왕은 망연한 표정을 하였다.

설마 최측근이라 생각했던 왕실 기사들에게서 배신자가 나올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했다.

일부 배신한 기사 중에는 왕실의 피가 섞인 기사도 있었기 때문이다.

왕실의 녹을 먹고 살던 기사들이 어찌 기사도를 버리고 배신을 한단 말인가?

“허허, 나라가 이리 썩은 줄 몰랐다니…….”

국왕의 한탄을 뒤로하고 빌헬름 백작은 눈에 핏발이 섰다.

감히 명예로운 왕실기사단에서 배신자가 나온 것이다.

더욱이 그중에는 자신의 차남이 끼어 있었다.

“네 이놈!”

빌헬름 백작은 꺼냈다가 아직 검집에 넣지 않은 자신의 검을 들고 마법진 안으로 뛰어들었다.

“아, 아버지!”

빌헬름 백작의 차남은 창백한 얼굴로 빌헬름 백작을 불렀다.

하지만 붉게 달아오른 빌헬름 백작은 자신을 부르는 차남의 목소리에 대답을 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왕국을 버리고, 충성을 맹세했던 왕실을 배신한 기사들은 달려오는 빌헬름 백작의 모습에 눈이 커졌다.

금방이라도 이들의 목이 백작의 검에 달아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때 반전이 벌어졌다.

배신한 기사들의 목을 칠 것처럼 달려들던 빌헬름 백작의 검이 제로미스를 향해 휘둘러진 것이다.

제로미스는 방심을 하고 있다 살기가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느끼자 본능적으로 실드 마법을 시전 했다.

‘실드!’

3클래스 아래의 마법은 뜻만으로도 펼칠 수 있는 경지이기에 가능한 마법.

빌헬름 백작이 기습을 하긴 했지만 뜻만으로 마법을 펼칠 수 있는 제로미스를 죽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너무도 급하게 시전 한 마법인지라 빌헬름 백작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었다.

챙!

“윽! 체인 라이트닝!”

뜻으로 펼친 실드 마법으로 백작의 공격을 막은 제로미스는 시전 속도가 가장 빠른 체인 라이트닝 마법을 백작에게 쏘아 보냈다.

마법 시동어가 끝나고 제로미스의 손에서 번갯불이 번쩍했다.

플레이트 메일을 걸치고 있던 빌헬름 백작은 제로미스의 체인 라이트닝에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하지만 제로미스라고 무사하지는 못했다.

비록 빌헬름 백작의 기습을 막고 그를 처리했다고 하나, 그의 공격을 막을 때 약간의 내상을 입었다.

그리고 급히 5클래스의 체인 라이트닝 마법을 사용하다 보니 내상이 더욱 크게 벌어진 것이다.

“설마 기사단장인 빌헬름 백작까지 배신자였다니……. 도대체 누굴 믿어야 한다는 말인가?”

로메로 국왕은 죽은 빌헬름 백작의 시신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한편 기사들의 반란이 있을 때도 마법진은 계속해서 마력이 흘러나왔다.

이미 임계점에 다다른 마법은 금방이라도 시전 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처음 마법을 시전 한 지도 얼추 지났다. 이미 임계점을 지났을 마법이 아직도 발동이 되지 않고 있었으며 곧 꺼질 듯 깜박였던 것이다.

“전하 마법이 이상합니다. 물러나십시오.”

한탄하고 있는 로메로 국왕을 불러 뒤로 무르게 한 제로미스는 마법진 위에 쓰러진 빌헬름 백작의 시체를 마법진 밖으로 끄집어냈다.

그리고 배신한 기사들까지 마법진 밖으로 몰아내고 그들에게도 빌헬름 백작에서 선사했던 마법인 체인 라이트닝을 시전 했다.

배신자들까지 데려갈 수는 없으며, 그렇다고 그들을 로메로 국왕과 함께 남겨 두었다가 국왕이 어떤 낭패를 볼지 모르기에 그리 처리한 것이다.

모든 마무리를 한 제로미스는 마지막으로 로메로 국왕에게 인사를 했다.

“전하 이만 가 보겠습니다.”

“저들을 부탁하오. 제로미스 경.”

국왕의 말을 뒤로하고 제로미스는 마법진의 마력을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마력이 쌓여 있었지만, 제로미스는 최선을 다해 마력을 움직였다.

하지만 이때 파탄이 벌어지고 말았다.

마법진 일부가 조금 전 빌헬름 백작의 공격으로 파손이 되었다.

그 때문에 잠잠하던 마력이 폭주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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