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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96화 (196/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96화

“형님. 아니······. 총장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랍니까.”

“괜찮아. 우리끼리 있을 땐 예전처럼 편하게 대해. 괜히 어색하다.”

“하하. 저희도 사실 이런 으리으리한 총장실이 어색하기만 합니다. 거기다 형님이 거기에 앉아 계시니 더더욱이요.”

이재욱 검사는 자신과 같이 정의감을 앞에 내세우다 좌천되었던 후배들과 평소 친하게 지냈다. 종종 술자리를 가지며 이 나라가 썩어 문드러졌다는 사실을 한탄해 왔지만, 오늘 그들이 모인 장소는 허름한 가게가 아닌, 무려 검찰총장실이었다.

이재욱을 포함한 총 7명의 검사가 다시 한번 이곳에 똘똘 뭉치게 된 것이다.

“너희도 배경이 궁금하겠지. 그런데 나도 아직 떨떠름해. 이런 과분한 자리에 내가 앉아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이고. 형님이 아니면 누가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답니까?”

“맞습니다. 그동안 너무 썩어 있었어요. 검사 같지도 않은 것들이 총장이랍시고 떵떵거리며 앉아 있으니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거죠.”

아부를 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들이었다.

애초에 이 동생들은 아부라는 걸 모르기 때문에 그토록 핍박을 받아온 것이 아니겠는가.

“너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거밖에 없다. 항상 너희들이 처음 가졌던 그 마음을 변치 않도록. 절대 남에게 흔들리지 않는 뚝심을 끝까지 이어 가주길 바란다. 그래서 다시 너희들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려놓은 거야. 절대 인맥으로 인사를 결정한 게 아니라는 거지.”

“형님이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쯤은 저희도 다 알고 있습니다.”

“고맙다. 그리고 서울 오자마자 미안한데, 일부터 시켜야겠다.”

“하하. 검사가 놀아서 뭐 합니까. 사냥감이 어디 있는지만 말씀해 주세요. 달려들어서 물어뜯는 건 저희가 하겠습니다.”

이재욱 총장은 동생들을 주욱 둘러보다 말했다.

“천하 그룹.”

“네?”

“너희들이 신나게 물어뜯어야 할 사냥감이 바로 천하 그룹이라는 거다.”

천하 그룹이란 말에 모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천하 그룹이란 이름이 무섭기는 해? 다들 얼굴이 굳은 걸 보면.”

“아-. 그렇다기보다는 조금 의외라서요.”

“예. 거기다 쉽지 않은 상대이지 않습니까. 여기 검찰청에서 천하 그룹한테 떡값 안 받은 사람이 없을 텐데요?”

검찰 절반 이상이 천하 그룹의 편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갔다. 왜냐하면 이재욱 자신이 이곳의 총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썩은 시스템부터 싹 바꿔 버릴 작정이다.

“쫄지 마라. 이미 청와대에서 재가가 떨어진 일이야.”

“그 말씀은 표적 수사라는 겁니까?”

“표적 수사라기보다는 그동안 미뤄 왔던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거지. 나도, 그리고 너희들도 대기업 잘못 건드렸다가 역관광 당했잖냐. 하지만 이제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다.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상.”

너희들이 어떤 무리한 수사를 하더라도 내가 다 커버를 쳐 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총장이 그런 소리를 하면 이보다 더 든든한 일이 없을 것이다.

“곧 수사팀 꾸려서 제대로 파헤쳐 볼 생각이다. 그리고 각자 이 서류 가지고 가서 검토부터 해 와.”

이재욱이 나눠 준 서류는 이진석이 직접 그에게 넘긴 것들의 사본이었다.

“이건······.”

“황승철 비서실장이라고 알지? 그 양반이 차곡차곡 모아 놓은 자료들이다. 자기가 팽 당할까 봐 우리한테 자료를 넘긴 거지.”

그 말에 검사들은 눈이 돌아가 서류에 머리를 파묻혔다. 그리고 저마다 미소를 보였다.

“총장님. 이거면 문제없겠네요.”

“예. 천하 그룹을 정말 사정없이 때릴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거 정말 사실이랍니까? 장선욱 부회장이 진짜 자기 아버지를······.”

의사를 비롯한 여러 의료진의 증언.

그리고 CCTV와 정황 증거들.

이것들을 모두 종합해 보았을 때 장연욱 회장은 틀림없이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갑자기 죽어 버린 것이다. 그것도 모르핀 과다 투여로 말이다.

“돈이라면 뭐든 하는 놈들이야. 재벌들한테 부모 자식이 어디 있겠냐. 돈 앞에서는 그저 다 파리 목숨으로 보이는 거지. 그게 자기 아버지라고 해도 말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검찰청에서 하도 이런저런 사람들을 다 겪어본 검사들이라 그런지 수긍이 빨랐다.

천하 그룹의 황제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장선욱이 놓칠 리 없었다.

“장연욱 회장이 장선욱을 신임하지 않자 바로 일을 저지른 거지. 하여튼, 이 지독한 놈들을 이 기회에 꼭 붙잡아야겠다. 그동안 우리가 핍박만 받고 살았지만, 이제는 든든한 지원을 받게 되었으니까.”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습니다. 천하 그룹을 이 손으로 절단 내는 날이 오다니.”

“그러게요. 이거 벌써부터 흥분 돼서 오늘 잠도 못 자겠는데요?”

새로운 장난감을 얻은 듯이 기뻐하는 동생들을 보고 있자니 이재욱 총장도 절로 미소가 띠어졌다.

“이제 공은 너희들한테 있다. 끝까지 밀어줄 테니까, 어디 갈 데까지 가 봐.”

“넵, 형님!”

그들은 정말 오랜만에 서로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이 칼을 잡는 순간, 저 웃음소리는 공포로 바뀌게 될 것이다.

* * *

“김 차장. 내가 요즘 이상한 소리를 들어서 말이야.”

갑작스레 장선욱 회장의 저택으로 초청을 받은 김용 차장 검사는 푹신한 소파가 가시방석처럼 느껴졌다.

“검찰이 지금 나랑 회사를 노리고 팀을 꾸렸다던데, 설마 아니겠지? 내가 잘못 들은 거 맞지?”

“그게······.”

“똑바로 말해. 괜히 말 빙빙 돌리지 말고. 나 그런 거 싫어해. 우리 아버지도 그런 건 딱 질색이셨잖아.”

김 차장은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이미 검찰에서 새로운 수사팀이 신설되었습니다.”

“그게 내 등 뒤를 노리고 있는 거고?”

“그, 그건······.”

“똑바로 얘기하라니깐!”

“마, 맞습니다.”

장선욱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다들 미친 건가? 아니면 돈 받을 때만 좋고 이제는 나 몰라라 하는 거야? 그것도 아니면 아버지가 죽었으니, 그 아들인 나는 더 볼 필요가 없다?”

“회장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팀이 버젓이 만들어질 수가 있지?”

“이번에 새로 취임한 신임 총장이 예전부터 대기업 저격수로 불렸습니다. 좌천되어있는 동안 쌓인 원한을 지금에 와서 다 풀어 보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창 깝치고 다니다 좌천된 미친개 한 마리가 다시 돌아와서 난리를 치는 거다?”

“그, 그런 셈이죠.”

장선욱도 이미 보고를 받아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가 원하는 건 이런 서면 보고가 아니다.

“그래서?”

“네?”

“이대로 멍청하게 보고만 있을 건가? 당신들도 뭘 해야 할 거 아니야. 내가 만약 검찰청에 들어가서 조사받는 순간, 너희들도 다 같이 끝장난다는 걸 모르진 않겠지?”

“회, 회장님!”

“잘 생각해. 지금 정권이 바뀌어서 어수선하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 봐야 2년도 못 가서 레임덕 맞고 떨어질 정권이야. 그놈들은 길어야 5년이지만, 천하 그룹은 500년까지도 이어진다는 거 알아둬.”

장선욱은 따끔하게 경고를 해 주면서 동시에 회유도 했다.

“어차피 우리에게 정권은 공공의 적이야. 지금 대통령이 검찰 개혁을 하겠다고 지랄을 하고 있잖아. 검찰 개혁이 뭔지는 알지? 당신들을 다 쫓아내고 자기 말만 잘 따르는 충견들을 그 안에 앉혀 놓겠다는 거잖아.”

“저희도 얘기는 들었습니다. 공수처를 설치해 검찰의 힘을 무력화시키겠다고······.”

“그래! 바로 그거야. 지금 정권은 완전히 권력에 미쳐 있어. 촛불 시위로 국민들이 한창 뽕맛에 취해 있잖아. 이때를 노려 모든 권력을 자기한테 끌어모으겠다는 거지. 이걸 두고만 볼 건가? 다 깡통 차 봐야 정신 차릴 거야?”

“아닙니다. 사실 저희도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팡질팡하고 있었습니다.”

장선욱 회장은 짧게 혀를 찼다.

이런 놈들이 저 머리로 어떻게 검찰청에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당신들도 단합을 해야지. 각개 격파당해서 다 병신 되기 전에 하나로 뭉쳐. 그리고 정당하게 대항을 하라고! 그러라고 내가 뒤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거잖아. 총장의 명령이든 뭐든 다 무시해. 너희들이 힘을 합쳐서 보여 주라고. 검찰청이 만만치 않다는 걸.”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한창 차장 검사를 장선욱 회장이 훈계하고 있을 때였다.

비서실장이 헐레벌떡 달려와 그에게 충격적인 소식 하나를 알렸다.

“회장님. 검찰에서 소환장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뭐?”

“이번에 새로 제보된 비리들과 장연욱 회장님에 대한 일로 조사를 하겠다고······.”

“소환장이면 안 가도 되는 거 아니야?”

“그렇긴 합니다만, 만약 불응할 시에는 구속 영장을 발부해 직접 회사로 쳐들어오겠답니다.”

이런 건방진 놈들.

자기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땐 감히 전화조차 걸지 못했던 것들이!

“후-. 그래. 알겠어. 일단 나가 봐.”

“예.”

장선욱 회장은 애꿎은 김 차장을 노려보았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김 차장. 잘 들었지? 저 새끼들이 날 소환한다네? 불응하면 바로 구속 영장 때리고.”

“······.”

“나라가 아주 개판이야. 나같이 청렴하고 애국하는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그런데 그 대가가 이건가?”

“제가 어떻게든 막아 보겠습니다.”

“그래. 꼭 그러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랬다가는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거든. 그러니까 당신도 여기서 시간 그만 축내고 얼른 나가서 일 봐.”

“예, 회장님.”

김 차장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저택을 나섰다.

그러면서 침 한번 크게 뱉은 뒤 중얼거렸다.

“씨발. 이런 짓도 못 해 먹겠네.”

오늘 진지하게 사표를 고민해 봐야 할 것만 같았다.

* * *

이재욱 총장은 행동력이 매우 빨랐다.

오직 천하 그룹과 장선욱 회장만을 조사하는 팀을 신설하여 자신이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들로만 추려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했다.

그 시작을 알리는 축포가 바로 장선욱 회장에게 소환장을 보내는 일이었다.

“검찰청에서도 불손한 움직임이 계속해서 포착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고들 있는데요?”

“신임 총장에게 반기를 들고자 서로 힘을 규합하고 있다더군요. 김용 차장 검사가 필두에 있다는데, 이 양반도 전형적인 천하 그룹 사람으로, 제대로 한판 붙어 보려는 심산인 듯합니다.”

그래 봐야 차장 검사다.

지금 총장은 청와대에 무한한 신뢰를 얻고 있으며 국민들에게도 강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런 그에게 대항하고자 검사들이 한 곳에 뭉친다면 오히려 역풍을 맞게 된다.

“지금 이 총장은 잡음 없이 일을 진행하고 싶을 겁니다. 우리 쪽에서 먼저 김용 차장을 한번 파 보죠.”

“예. 그렇지 않아도 뒤를 캐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결탁한 다른 검사들도 하나씩 조사중에 있고요.”

권 대표도 이재욱 못지않게 행동력이 빨랐다.

나는 여유로운 분위기를 만끽하며 술잔을 들었다.

다들 곧 다가오는 전투를 위해 칼을 갈고 있을 때, 나는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 기대하며 몇 걸음 뒤에서 구경하는 중이다.

역시, 세상 제일 재밌는 것이 싸움 구경이라고 했던가.

난 장선욱과 이재욱이 서로 싸워 누가 먼저 쓰러질지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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