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95화
대선이 끝나고 나서 기재욱 대표는 청와대로 입성해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알렸다.
그리고 그는 청와대에 들어가자마자 인사 임명에 박차를 가했다.
그가 국민들에게 내세운 것이 뭐였던가.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적폐 세력들을 몰아내 새로운 대한민국, 깨끗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가 그동안 어떤 방식으로 흘러갔는지 알고 있다면 이게 모두 사탕발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부정부패와 적폐 세력 척결.
이것을 반대로 말하자면, 전부 다 잘라내고 내 사람으로 채워 새로운 권력 구조를 만들어 내겠다는 뜻이다.
기존에 있던 적폐를 몰아내고 새로운 적폐를 그 자리에 앉혀 놓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이제는 대통령이 된 기재욱은 내게 직접 전화를 걸어 본인의 마음을 알렸다.
청와대에 들어가고 나서 처음 전화 통화를 한 상대가 나라고 하니, 그가 내게 가진 마음가짐이 어떤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새로 임명될 검찰총장과 자리를 주선해 놓겠습니다.”
그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좋은 국정으로 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회장님께서도 많이 도와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아직 천하 그룹 일이 마무리 되지 않았다.
장선욱 회장은 자신의 치부를 덮기 위해 이번에 사건을 폭로한 의사를 과실치사로 몰아가는 중이었다.
잘못된 진료로 장연욱 전 회장을 죽게 해 놓고 그 모든 잘못을 아들인 자신에게 씌우는 거라며 감정적인 호소를 하는 것인데, 이거 때문에 지금 여론이 팽팽하다.
하지만 결국 칼을 쥐고 있는 것은 검찰이었다. 그리고 지금 검찰은 새로운 개혁을 준비 중에 있다.
예전에 내가 기재욱 대통령에게 건의했던 공수처 설치는 검찰의 힘을 무력화시키고 대통령 중심의 힘을 만들어 낼 수가 있게 된다.
말이 대통령 중심이지, 사실상 내 사람들을 채워 넣어 국가 기관을 마음대로 휘저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비서를 통해 청와대에서 보내 준 약속 장소로 나가 보았다.
그곳에는 예전부터 대기업 저격수로 잘 알려진 이재욱 검사가 있었다.
천하 그룹부터 여러 대기업을 저격하다 지방으로 좌천되었다고 들었는데, 검찰 개혁에 아주 잘 어울려 기재욱 대통령이 다시 끌어 올린 인물이다.
이재욱 검사를 필두로 내세운다면 국민들의 인기도 얻을 수 있고, 검찰 개혁이 한층 더 빨라질 것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재욱 검사입니다.”
긴장을 하고는 있지만, 애써 그것을 감추려는 듯 보였다.
“이재욱 검사님에 대한 얘기는 종종 들었습니다.”
“제 얘기를요?”
“예. 대기업 저격수로 잘 알려진 분이 아닙니까.”
“아니요. 말만 저격수지, 누구 하나 제대로 조사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정의감에 불타오른다고 해서 뭔가를 할 수 있는 만만한 곳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재욱 검사도 몇 번이나 현실의 벽에 부딪혀 절망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대기업들이 왜 대기업이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을 하고 있다는 건 어느 정도 방어선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쉽게 망할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리고··· J&H에 대해서도 그렇게 열심히 조사를 하셨다고요?”
이재욱 검사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예. 거대한 금융 그룹이 아닙니까. 그것도 단기간에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죠. 바로 회장님을 중심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의심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분명 뭔가 구린 것이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래서 건진 게 있으신가요?”
그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혀 없더군요. 아니.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왜 국가가 회장님에게 상을 주지 않는 건지 의문일 정도였습니다. 정직하게 세금도 다 내놓으시고 탈세를 한 흔적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으며, 각종 기부 재단도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회장님처럼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물질적으로 좋은 일을 하고 계신 분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것도 수백 수천억 단위가 아니라 조 단위로 말입니다.”
당연하지.
내가 이미지 메이킹에 얼마나 큰 공을 들이고 있는데, 하찮은 실수 같은 걸 할 리가 있겠는가. 거기다 최대한 투명하게 장부를 공개했기 때문에 트집 잡힐 일은 없다.
물론, 숨겨 둔 비자금이 어마어마하지만 이재욱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은 듯보였다.
“그냥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돈을 버는 목적이 바로 그거거든요.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지 말고, 모두에게 베풀어 함께 잘 살자.”
“대단한 분이시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배울 점이 참 많은 듯합니다.”
“과찬이십니다. 제가 말했죠? 대한민국에서 대기업을 한다는 건 어느 정도 방어선이 존재한다는 것을요. 그 말은 어쩔 수 없이 더러운 일에도 손을 담가야 한다는 겁니다. 저라고 안 그랬을 거 같습니까? 마냥 깨끗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건 불가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깨끗한 기업으로 알려진 문풍문고도 작정하고 수사 들어가면 잡힐 건덕지가 많습니다.”
모두가 다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으면 그나마 덜 묻은 사람이 깨끗하다고 칭찬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저 웃길 뿐이었다.
“이제 일 이야기로 들어가 보죠. 대통령님이 검사님을 왜 이곳에 보내셨는지 알 겁니다.”
“예. 대충 얘기로는 들었습니다. 곧 검찰 개혁을 시작하게 되고, 제가 검찰총장이 되어 지휘를 하게 될 거라고······.”
“네. 맞습니다. 아마 검찰 쪽에서 저항이 굉장히 심할 겁니다. 공수처 설치는 곧 그들이 그동안 특권처럼 가지고 있던 수사권을 빼앗는 일이 될 테니까요.”
“안 봐도 뻔합니다. 다 같이 단합해서 들고 일어나려 하겠죠.”
“예. 그걸 잘 컨트롤 해 주셔야 할 겁니다. 그게 총장님의 역할이라 할 수 있죠. 그동안 검찰이 재벌들에게 휘둘려 너무 편향된 수사를 하지 않았습니까?”
이재욱도 충분히 이해하는 것 같았다.
검찰이 썩을 대로 썩었다는 걸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그 역시 검찰의 일원이기 때문에 망설임이 들 수밖에 없으리라.
“어려운 싸움이 되겠군요.”
“네. 하지만 제가 뒤에서 지원을 해 드리겠습니다. 처음에는 꼬리르 바짝 내세우며 저항하겠으나, 곧 잦아들 겁니다.”
오늘 여기에 이재욱 검사를 만나는 건 이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 전에, 총장님이 해 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나는 서류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이건······.”
“천하 그룹 황승철 실장이라고 아십니까?”
“아, 예. 돌아가신 장연욱 전 회장님의 비서실장 아니었습니까?”
“네. 그 사람이 그동안 모아온 자료들입니다. 천하 그룹에 온갖 더러운 비리들이 거기에 다 담겨 있죠. 거기다 장선욱 회장이 자기 아버지를 살해한 증언들과 정황 증거들이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재욱 검사는 화들짝 놀라며 얼른 서류를 펼쳐 보았다.
대기업 저격수라는 이름이 붙여질 만큼 그는 강박적으로 대기업만 공략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중에서 끝판왕이라는 천하 그룹의 비리가 담긴 서류를 넘겨주자 완전 물 만난 고기가 된 것이다.
“황 실장이 정말 이걸 넘겨줬다는 겁니까? 천하 그룹에 대한 충성심이 어마어마하다고 알고 있는데요?”
누구라도 의심스러울 것이다.
갑자기 이런 방대한 양의 정보를 툭 던져 주면 말이다.
“아무리 충성심 높아도 가마솥에 들어가 삶아질 운명이라면 그 단단한 충성심도 허물어지지 않을까요?”
“아······. 그렇군요. 결국 그 양반도 팽 당하는 신세를 면치 못 하게 된 것이군요.”
“예. 으레 모든 비서실장들이 그렇듯 황 실장도 버려진 것이죠. 그런데 그냥 버려지는 것에 모자라 아예 세상과 하직하게 만들려고 하는 게 문제가 된 겁니다.”
“쯧-. 전관예우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한 곳에 오래 머무른 사람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해 줘야 하는 게 예의인 것을.”
“네. 적당히 은퇴 자금 안겨 주고 잘 떠나 보냈으면 될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 저한테까지 넘어온 겁니다.”
“살아 남으려고 쓴 수단이군요.”
“어쩌면 이렇게 될 걸 미리 예상했을지도 모르죠.”
이재욱 검사는 찬찬히 서류를 살펴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들여서 알아봐야겠습니다. 지금 당장은 어렵고, 제가 총장으로 임명된 뒤에 수사팀을 꾸려야 할 것 같군요.”
“믿을 만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천하 그룹의 돈 놀이에 넘어가지 않을······ 그런 뚝심 있는 검사들로요.”
“이미 생각해 둔 멤버들이 있습니다. 저 못지 않게 정의를 위해서라면 불구덩이에도 몸을 던질 친구들이죠.”
이재욱 검사가 뽑은 멤버들이라면 믿음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앞으로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 * *
“우리 정부는 새로운 개혁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나라를 썩게 만드는 부정부패를 없애 버리고 전혀 다른 나라로 거듭나기 위해선 내부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대통령은 tv에 나와 새로운 검찰총장이 임명되었다는 것을 알림과 동시에 검찰 개혁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했다.
“이제 검찰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바뀌어야 합니다. 그동안 미뤄 두었던 검찰 개혁을 실시하여 더는 국민 여러분을 실망시키는 공권력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예고편처럼 나오는 검찰 개혁.
TV를 보고 있던 장선욱 회장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저 양반이 뭘 하려는 거지?”
“지금 검찰 내부에서도 술렁인다고 합니다. 청와대가 작정하고 검찰 개혁을 할 예정인 모양인데, 대체 어떤 방향으로 개혁을 할 건지가 전혀 알려지지 않아서요.”
요즘 죽은 아버지 때문에 한동안 시끄러웠다가 겨우 잠잠해졌는데, 뜬금없이 검찰 개혁이라. 천하 그룹이 애지중지 키워 놓은 새싹들이 다 잘려나가는 건 아닌지 괜히 걱정이 됐다.
“저 이재욱이란 놈은 또 뭐야? 어디서 굴러온 놈이기에 다른 사람들 다 제치고 지방 출신 따위가 검찰총장이 됐어?”
“대기업 저격수로 이름이 난 사람이라고 합니다. 검찰 개혁과 어울리는 인물을 뽑아 힘을 실어 주겠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음······. 이상한데.”
그렇게 TV를 보고 있다 비서실장이 무슨 전화를 받고는 굳은 얼굴로 장선욱 회장에게 알렸다.
“회장님. 지금 검찰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무슨 연락?”
“이번에 새로 임명된 이재욱 검찰총장이 천하 그룹과 회장님을 조사하기 위해 새로운 팀을 구성해 놓았다고 합니다.”
“뭐, 뭐야?!”
“거기다 돌아가신 회장님에 대한 수사를 맡고 있는 팀도 싹 갈아 엎어 자기 사람들로 채워 놓았다고 합니다.”
명백한 저격이었다.
그동안 수사가 지지부진했던 건, 천하 그룹을 돕는 검찰 측 내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로 임명된 총장이 천하 그룹의 손발을 하나 둘 잘라 버리고 있었다.
“아니. 이 새끼들이 진짜 끝까지······.”
장선욱은 이 배후에 누가 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진석. 그놈이 모든 판을 다시 짜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장선욱과 천하 그룹의 목을 노리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