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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91화 (191/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91화

“확실해? 아버지가 유언장 남기신 거.”

“예. 확실합니다. 부회장님에게 모든 재산을 넘기겠다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변호사들도 멍청한 자들이 아니다.

어떤 별이 지고, 어떤 별이 새로 떠오를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누구에게 줄을 대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장연욱 회장의 극비리인 유언장 내용까지도 장선욱 부회장에게 가져다 바쳤다.

“아버지가 저리 가시면 결국 회사가 다 내 거가 된다는 거네?”

“예. 모든 지분은 부회장님에게 상속될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래. 지랄 맞은 상속세가 있지.”

부모가 죽고 남긴 재산을 물려받는 자식은 상속세를 내야 한다.

그 가치와 금액에 따라 비율이 달라지지만, 장선욱은 유산의 50%를 국가에 헌납해야 한다.

“이 얼마나 지랄 맞고 좆 같은 법이냐? 지들이 뭘 해 줬다고 우리 가문이 피땀 흘려 번 돈을 50%나 가져가냐고.”

하지만 이 나라의 법은 약자에게 한없이 냉정하고 강자에게는 한없이 부드럽다.

어떤 멍청한 재벌이 상속세를 있는 그대로 다 내겠는가.

만약 그래야 한다면 천문학적인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장연욱 회장도 미리 재산을 뒤로 빼돌려 남몰래 숨긴 것들이 많다. 어떤 법에도 걸리지 않는, 이름조차 없는 돈 말이다.

“아버지가 얼마만큼 뒤로 돈을 숨기셨는지는 누가 알고 있지?”

“회장님의 비서실장인 황승철이 알고 있을 겁니다. 대부분 황 실장 손을 통해 돈이 이동을 하니까요.”

회장의 비서실장은 가장 가까운 측근으로서 온갖 더러운 일을 해야 한다.

당장 장선욱 부회장에게 보고를 하고 있는 김정우 비서실장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음-. 그렇겠지. 아버지가 아직 나한테 돈을 어디다 숨겨 뒀는지 말씀을 안 하셨어. 루트만 알면 될 거 같은데······.”

“황 실장을 불러올까요?”

“그래. 그렇게 해. 지금까지 안 깨어나신 걸 보면, 얼른 준비를 해야 할 거 같다.”

“네, 부회장님.”

장선욱은 이미 제 아비가 더는 깨어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하루 종일 병원을 지키고 있던 황 실장이 들어왔다.

“찾으셨습니까?”

“예, 실장님. 거기 앉으세요.”

황 실장은 어렸을 때부터 봐 왔던 사람이고, 예전에는 삼촌이라고 부르기도 했기 때문에 장선욱은 그래도 말을 높여 주었다.

아무리 머슴이라도 머슴마다 급이 있지 않던가?

“황 실장님.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겠습니다.”

“네?”

“아버지요. 이대로 못 깨어나십니다.”

“부, 부회장님!”

“나이도 드셨고, 부상도 심각하지 않습니까? 설사 깨어나신다고 해도 제정신이 아닐 수도 있어요.”

“······.”

말이 없는 황 실장을 보고 장선욱은 상대도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임원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이 불안감은 곧 전역에 퍼지겠죠. 그럼 회사가 휘청거립니다. 우리 천하 그룹이 휘청거리면 이 나라가 휘청거린다는 거 황 실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예······.”

“무거운 얘기이기는 하나, 어쩌겠습니까. 아버지가 등에 짊어지고 계셨던 짐을 이제 제가 대신 지어 드려야 하는 것을.”

“어떤 걸 원하시는 겁니까?”

빙빙 말을 돌리기보다는 얼른 본론으로 들어가라는 뜻이었다.

장선욱도 오히려 얘기하기 편해졌다.

“아버지는 예전부터 상속세를 걱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국민연금 쪽이랑 지분 희석을 논의하셨던 거고요. 물론, 지금은 중간에 엎어지긴 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건 황 실장님도 잘 아시죠?”

“회장님의 비자금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아버지의 비자금. 그 액수가 엄청나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략적으로 얼마 정도 됩니까?”

“······수조 원은 훨씬 넘습니다.”

수조 원!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어졌다.

“그 돈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군요. 어차피 저한테 아버지가 물려주시려 했던 돈입니다. 병상에 누우신 마당에 얼른 저한테 옮겨야 하지 않을까요?”

“안 됩니다.”

“뭐, 뭐라고요?”

“제 마음대로 부회장님께 드릴 수 없는 돈입니다. 회장님의 재가가 떨어져야 옮겨 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 이제 와서 충신인 척을 하겠다 이거지?

“황 실장님. 이거 왜 이러세요. 이대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쩌려고요?”

“회장님께서는 이대로 돌아가시지 않습니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점점 목소리가 거칠어지는 장선욱이었다.

“수십 년 동안 회장님 곁을 지켜 온 몸입니다. 이대로 허망하게 돌아가실 분이 절대로 아닙니다. 저승사자가 찾아와도 호통 한 번에 쫓아내시고 눈을 뜨실 겁니다.”

“허-.”

과연 아버지가 오랫동안 믿고 일을 맡겨 온 비서실장다웠다.

그러나 그래 봐야 결국 사냥개에 불과하다.

백정만도 못한 놈이 이제 곧 황제가 될 사람의 명령을 거부해?

“황 실장님. 뭘 말하려는 건지는 잘 알겠는데, 정말 아버지가 눈을 떴다고 칩시다. 그런데 제정신일 확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것도 머리를 크게 다치셨잖아요.”

황 실장은 더는 들을 필요가 없다고 여겼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그렇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봐요, 황 실장!”

“회장님께서 이런 사태를 대비해 제게 남기신 말씀이 있습니다.”

“뭐라고 하셨는데요?”

“혼수상태라도 자신에게 아직 숨이 붙어 있으면 그 어떤 것도 옮기지 말라고 말입니다. 전 그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그대로 부회장실을 나서려는 황 실장을 장선욱이 붙잡았다.

“야. 황 실장.”

“······.”

“지금 상황 판단이 안 돼? 그쪽 바람대로 아버지가 깨어나셔도 얼마를 더 사시겠어? 주인을 잃은 사냥개는 어떻게 되는지 당신도 잘 알잖아. 그대로 가마솥에 들어가 쪄 뒤지는 거야. 정말 그런 꼴 당하고 싶어서 나한테 덤비는 건가?”

“토사구팽당해도 할 말은 없습니다. 그동안 회장님 곁에서 온갖 더러운 짓은 다 하고 다녔으니까요. 하지만 부회장님.”

황 실장은 눈을 무섭게 치켜뜨며 말했다.

“혼자 죽진 않을 겁니다.”

“뭐, 뭐야?”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황 실장이 떠나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며 장선욱은 상 위에 있던 걸 냅다 집어 던졌다.

“저 새끼가 미쳤나!”

그래 봐야 도구밖에 안 되는 놈이 감히······.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장선욱은 애써 억눌렀다. 그런 뒤 비서를 불러 소리쳤다.

“황 실장 저 새끼 뒤부터 다 털어! 묻은 거 있으면 다 가져와! 지금 당장!

* * *

무거운 마음으로 병원에 돌아온 황 실장은 내심 후회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마지막 말은 하는 게 아니었다.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욱하는 마음이 들어 해서는 안 될 말을 뱉고 말았다.

그는 조용히 중환자실로 들어가 말똥말똥한 눈으로 멀쩡하게 책을 읽고 있는 장연욱 회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다녀왔습니다, 회장님.”

“아. 그래. 쭉 읊어 봐.”

황 실장과 주치의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장연욱 회장의 건강 상태를 알지 못한다.

사실 그는 이미 일주일 전부터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그러나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고 생각해 의식 불명인 척을 하며 사태를 지켜본 것이었다.

“회장님께서 예상하신 바대로 장선욱 부회장이 비자금의 위치를 물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말씀드릴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죠.”

“허허. 그놈 성질 좀 났겠네.”

그 외의 것들도 보고하면서 황 실장은 마지막으로 장선욱 부회장에게 했던 말은 쏙 빼 버렸다. 장연욱 회장이 들으면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놈이 그렇게 말했어? 내가 깨어나도 어차피 얼마 못 살 거라고?”

“예.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보고드리는 겁니다.”

보고를 다 들은 장연욱 회장의 얼굴에 쓸쓸함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 그놈도 슬슬 이 자리가 탐나겠지. 지금쯤 달콤한 꿈에 젖어 있을 게다. 그토록 원하던 자리를 차지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내가 아주 멀쩡한 상태로 밖에 나가면 어떻게 될까?”

“장 부회장은 그저 회사를 위해 할 일을 할 뿐입니다.”

“하하. 황 실장아. 너 이제 줄 서는 거냐?”

“······아닙니다.”

“그래. 줄 서는 거였으면 내가 깨어나기도 전에 있는 거 다 선욱이한테 넘겨서 날 이빨 빠진 호랑이로 만들었겠지.”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어도 황 실장은 끝끝내 입을 열지 않고 버텼을 것이다.

그럴 사람이니까 장 회장이 그를 옆에 두는 것이었다.

“뭐, 나도 아들 원망은 안 한다. 그놈이라고 이 자리가 탐이 나지 않겠냐? 그리고 이대로 내가 죽어 버리면 회사에도 큰 영향을 끼치겠지.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지금 장선욱이 하는 행동을 보면 얼른 아버지가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까요?”

“이제 질렸다.”

“네?”

“선욱이 그놈 불러.”

“네, 회장님.”

이제 이 지긋지긋한 병실에서 나갈 때가 됐다.

* * *

“하아-.”

병원을 다녀온 장선욱 부회장은 진한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아버지는 무슨 생각이셨던 건지, 일주일 전에 정신을 차렸으면서 지금까지 죽은 척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장선욱의 속 보이는 짓을 전부 다 알게 돼,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먹었다.

“부회장님. 가벼운 안주와 술을 가져왔습니다.”

“그래. 내려놓고 나가.”

“네.”

비서실장은 착잡한 마음에 담배를 입에서 떼 놓지 않고 있던 장선욱 부회장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부회장님.”

“왜 또? 지금 생각 복잡한 거 안 보여?”

“그게······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후-. 그래. 말해 봐. 뭔데?”

김 실장은 혹시 누가 들을세라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어차피 회장님이 정신을 차렸다는 걸 아는 사람은 얼마 없지 않습니까?”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회장님이 의식을 못 차린 줄 알고 있습니다. 이건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제대로 설명을 해 봐.”

“어차피 회장님은 나이가 많이 드셨고, 판단력도 흐려지셨습니다. 그리고 말년에 의심만 더 많아지셨죠. 당장 부회장님이 회사를 위해 판단한 일을 비난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비서실장이 가려운 곳을 잘 긁어 주었다.

장선욱도 사실 억울했다.

회사의 미래를 위해 한 일이었는데, 장연욱은 패륜을 저지른 놈이라며 손가락질해 댔다.

그걸 두고 비서실장은 장연욱 회장의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말하는 것이다.

“만약 이대로 돌아가신다면 사람들은 결국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생각할 겁니다.”

“뭐?”

“그러므로 기회는······.”

“야 이 새끼야! 지금 뭔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야!”

장선욱 부회장은 비서실장이 뭘 말하려는지 눈치챘다.

하지만 김 실장은 진심이었다.

“부회장님께서는 아무것도 모르시는 겁니다.”

“뭐, 뭐야?”

“회장님께서 깨어나셨다는 걸 본 적도 없으시고 그런 보고를 받으신 적도 없습니다. 그냥 회장님께서는 장현욱 부회장이 밀쳐서 사고를 당해 그대로 목숨을 잃으신 겁니다.”

“야. 김 실장아. 너 지금······.”

“만약 일이 잘못되어도 모든 건 저 혼자 한 일이 될 겁니다. 심려치 마십시오.”

이미 김 실장은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모시는 주군을 천하 그룹의 주인으로 만들어 그의 옆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김 실장의 목표였다.

그 목표를 위해서라면 황제를 죽일 자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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