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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89화 (189/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89화

“자동차 산업은 포기할 수 없어.”

“다 내놓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현광 그룹을 흔들 수 있을 만큼의 지분만 주시면 됩니다.”

“그 말은 지배 지분을 내놓으라는 건데······ 어느 정도나?”

“절반만 주십시오. 좋은 가격에 사겠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잘 갖고 계십시오. 쏠쏠하게 이익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깟 지배 지분으로 무슨 이익을 보겠다고. 어차피 다 자네 잔칫상 아닌가?”

“그래도 아예 못 먹는 것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자동차는 정말 넘길 생각이 없으십니까?”

“그럴 생각 없네.”

갖고 싶었다.

현광 자동차.

죽은 정 회장의 유언이기도 했고.

예전만큼의 영광은 아니겠으나, 나는 현광 그룹이 다시 하나로 모이는 걸 보고 싶었다. 물론, 남의 손으로 말고 내 손으로 말이다.

“잘 알겠습니다.”

지금은 이대로 물러가지만, 이 나라를 장악하는 순간 현광 자동차를 반드시 가져올 것이다.

“자네가 원하는 대로 지배 지분을 넘겨주지. 대신, 나도 조건이 있네.”

“말씀해 보십시오.”

“진행하다 멈춘 지배 이동을 다시 할 수 있게 정부를 설득해 주게.”

“글쎄요. 그건 좀 어렵지 않을까요? 이미 언론에 다 나온 내용들입니다. 제가 아무리 목소리를 좀 낼 수 있게 됐다고 해서 청와대가 그걸 허락하겠습니까? 국민의 돈이 걸려 있는 중차대한 일인데. 만약 그걸 허락하게 되면 유미화 대통령처럼 공격을 받게 될지 모릅니다.”

당연히 저걸 허락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천하 그룹은 경영권을 단단하게 방어할 수 있게 되니까. 즉, 내가 천하 그룹을 공략할 기회조차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다음 기회는 장연욱 회장의 뒤를 이을 장선욱이 제 자식들에게 지분을 넘겨주려 할 때일 텐데, 그때까지 내가 언제 기다리고 앉아 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 얘기는 당장 들어줄 수 없는 내용입니다. 제가 약속드리는 건 이거 하나뿐입니다. 장선욱 부회장이 감옥에 가는 걸 막아 주는 것. 지금까지 나온 의혹들을 전부 사라지게 만드는 것.”

“겨우 그런 걸로 내가 힘들게 얻은 지분을 내놓으라?”

“싫으시면 어쩔 수 없죠. 저도 그 의혹들을 공론화하느라 힘을 좀 많이 썼습니다.”

장연욱 회장은 나를 노려보다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좋을 대로 하시게. 칼자루 쥔 사람한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도 장연욱 회장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 있었다.

“이대로 지분을 넘겨주시면 저도 좋은 정보 하나를 넘겨드리죠.”

“정보?”

“제가 이 방대한 자료들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요? 구영실 여사 회사의 컴퓨터 하드를 입수한 것도 있지만, 천하 그룹을 함께 엮어 낼 수 있는 증거들이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아니. 어떤 이들이 그 증거들을 제게 넘겨주더군요.”

게슴츠레한 장연욱 회장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들이 누구지? 그것만 말해 주면 현광 그룹의 지배 지분을 20% 더 주도록 하지.”

순식간에 충혈된 눈동자를 보니, 아마 장연욱 회장도 내부에서 반역자를 찾고자 쥐잡듯 뒤진 모양이다. 요구하지도 않은 지분 20%를 더 주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배신자를 잡아서 족칠 수만 있다면 억만금도 아깝지 않겠다는 거겠지.

“이거, 양심에 조금 찔리긴 하는군요. 절 잘 도와준 사람들인데.”

“그깟 양심이 무슨 소용인가? 자네가 양심 있는 사람이었다면 한라 그룹을 그렇게 빼앗아 가진 않았겠지.”

틀린 말은 아니다.

돈 앞에서 양심은 중요하지 않다.

당장 내 목숨과 회사의 명운이 걸려 있는 외줄 타기에 양심을 지켜 무엇에 쓰겠는가.

양심을 지키는 척해 줘야 이득이 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과감히 던져 버려야 한다.

“먼저 손을 내민 건 천하 물산 부회장, 장현욱입니다.”

“······?!”

“그리고 실질적으로 정보를 건넨 건 천하 금융의 장기철 사장이고요.”

장연욱 회장은 두 손을 부르르 떨었다.

자기 아들이 설마 아비의 등 뒤로 비수를 꽂을 줄은 몰랐을 테니까. 거기다 이제껏 숨죽이며 엎드리고 있었던 장기철이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거라 상상조차 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 둘이 핵심이었습니다. 그 밑으로 또 누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조금 알아보니, 회사 자금을 빼돌려 자기들을 위해 더러운 일을 해 줄 수 있는 조선족 조직을 만들어 낸 거 같더군요. 그쪽으로 한번 파 보시면 금방 정보가 술술 나올 겁니다.”

“······알겠네. 약속대로 지분은 내일이라도 당장 주도록 하지. 그런데 한 가지만 더.”

“네.”

“왜 그 정보를 나한테 넘기는 거지? 신용 빼면 시체라고 주장하던 게 바로 자네 아닌가?”

“전 신용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단지, 배신자를 가까이하지 않고 믿지도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언젠가 제 뒤통수를 칠 테니까요. 이건 신용의 문제가 아니라 제 신념의 문제입니다. 전 그들을 한 번도 믿은 적이 없고, 저와 함께 배를 탄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난 조직을 배신한 사람을 받아 줄 생각이 없다. 그리고 그들이 장연욱 회장을 몰아낸 뒤 천하 그룹을 삼킨다면 나로서도 좋을 건 없다.

장현욱과 장기철은 이용 가치가 끝난 놈들이다.

그들이 내게 접근했을 때부터 나는 놈들을 이용할 목적으로 쓴 것뿐이지, 무슨 의리가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놈들은 이제 그만 무대에서 퇴장할 때가 됐다. 더는 내게 쓸모가 있지 않고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니까.

* * *

이진석이 나가고 나서 장연욱 회장은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진석, 역시 무서운 놈이다.

천하 그룹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추적을 해 왔는데, 제대로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걸 알고 이진석은 눈앞에서 미끼를 흔들었다.

장연욱은 그게 미끼라는 걸 알면서도 덥석 물어서 주지 않아도 될 지분을 더 빼앗기고 말았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을 드디어 붙잡게 되었으니까.

“회장님. 데리고 왔습니다.”

장연욱 회장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는 피떡이 된 채 무릎 꿇려 있는 장기철이 있었다.

“회, 회장님······.”

“장 사장. 그동안 잘 지냈나?”

“······.”

장기철 사장은 자기가 왜 이런 꼴로 끌려왔는지 이미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자기가 회사를 배신해 정보를 바깥에 유출시켰다는 걸 장연욱 회장이 알아차린 것일 터.

어떤 놈이 밀고를 했는지는 모르겠다만, 그동안 숨겨왔던 발톱이 전부 뽑히게 생겼다.

“그냥 좋게 좋게 끌고 오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해서 말이야.”

“회장님······ 어, 어떤 얘기를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다 오해입니다.”

“아. 그래. 오해란 말이지.”

장연욱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골프채 하나를 들었다.

“요즘 내가 몸이 불편해서 골프를 못 쳐. 이거 보게. 다 녹슬어 가고 있잖아. 가끔 이런 식으로 한 번씩 써 줘야 돼.”

그러고는 냅다 골프채로 장기철 사장을 후려갈겼다.

“커헉-!”

하지만 쓰러지는 걸 뒤에 있는 경호원들이 허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바닥에 철퍼덕 쓰러진 장기철을 다시 일으켜 무릎 꿇렸다.

장 회장은 얼굴에 튄 피를 닦아 내며 말했다.

“기철아. 너랑 네 버러지 같은 아비를 그래도 내가 같은 핏줄이라 생각해서 쫓아내지 않고 밥벌이라도 할 수 있게 놔뒀다. 그리고 네 능력이 아까워 감히 주제에 맞지도 않는 사장 자리까지 던져 줬어. 그런데 그 은혜를 전부 잊어버리고 짐승만도 못한 짓을 해?”

뻐억-!

“크헉!”

“고개 들어, 이 새끼야. 넌 고개 숙일 자격도 없는 놈이야. 우리 회사에 지천으로 깔린 머슴만도 못한 새끼라고.”

“회, 회장님. 제, 제발······.”

“입 닥쳐!”

그렇게 몇 번을 더 가격하고 나니 장기철 사장은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죽었어?”

“아직 숨은 붙어 있습니다.”

“그럼 살려내. 이대로 죽이긴 아까워. 내가 아예 난도질을 해서 죽여 버릴 거야.”

“네, 회장님.”

경호원들이 쓰러진 장기철 사장을 데리고 밖에 나가려 할 때였다.

다음 손님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버지. 부르셨습니······ 헉!”

갑작스러운 장연욱 회장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장현욱은 시체처럼 끌려나가는 장기철 사장을 보고 기겁했다.

“아, 아버지! 아니. 회장님! 대체 이게 무슨······.”

“입 닥치고 너도 들어와.”

피가 진득하게 묻어 있는 골프채를 들고 있던 장연욱의 모습은 맹수 그 자체였다.

장현욱은 손발이 오들오들 떨려왔다.

“대, 대체 장 사장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사람을 저렇게까지······.”

“입 다물어라. 지금 너도 저렇게 만들어야 하나 고민 중이니깐.”

“······.”

장현욱 부회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장기철 사장을 저런 식으로 만들고 자신을 여기에 불렀다는 건 필시······.

“아까 이진석 회장이 다녀갔다.”

“네?”

“그리고 네가 장기철이랑 짜고 정보를 넘겼다더구나. 그게 사실이냐?”

이진석, 이 개새끼!

넘길 게 따로 있지. 그런 걸 넘겨?!

“회, 회장님. 그게 말입니다.”

“얼굴 보니까 맞네.”

“아, 아닙니다. 제가 무슨 정보를 넘겼다고 그러세요. 고작해야 천하 물산 부회장밖에 안 됩니다. 하는 일도 거의 없는 그냥 허수아비 아닙니까?”

“그래서? 허수아비 되는 게 불만이라 그따위 정보를 이진석한테 넘긴 거냐? 너 같은 놈이 천하 그룹 회장 자리가 가당키나 하다고 생각한 거야?”

“저한테는 기회조차 주지 않으셨잖아요! 형보다 제가 더 잘났습니다. 공평하게 기회만 주셨더라면 충분히 저를 입증해 보일 수 있었을 겁니다!”

장연욱 회장은 어이가 없었다.

그가 무작정 장남이라고 모든 걸 넘겨주려 했겠는가?

충분히 검증을 끝냈기 때문에 장선욱에게 회사를 넘기려 한 것이었다.

“병신 같은 새끼. 넌 그러니까 안 되는 거다. 내가 너와 선욱이 사이를 저울질하지 않았을까? 수백 번도 더 했다, 이놈아. 그리고 넌 선욱이 발끝만큼도 못 미치기 때문에 이 자리를 못 주는 거야.”

“······네?”

“공정한 기회? 이미 차고 넘치도록 줬다. 천하 물산 부회장 자리에 앉아 네가 한 게 뭐가 있냐? 네 마음대로 해석하고 망연자실하며 뒤에서 구린 짓이나 하고 앉았으니까 이 자리를 못 얻은 거야. 가장 낮은 자리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성과를 보였다면 난 선욱이가 아니라 너한테 회사를 넘겼을 거다.”

그러나 장현욱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 거짓말에 제가 속을 줄 아십니까? 아버지는 저한테 한 번도 기회를 준 적이 없으세요. 항상 형한테만 모든 기대를 거셨지.”

“이런 한심한 놈!”

결국 화를 이기지 못하고 장연욱 회장이 골프채를 휘둘러 장현욱의 다리를 가격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나와 회사를 배신해? 네가 그러고도 내 아들이냐, 이 멍청한 놈아!”

다시 한번 골프채를 번쩍 들어 내리치자 장현욱은 손을 들어 막아 냈다.

“이거 안 놔? 오늘 내 무슨 일이 있어도 네 썩은 대가리를 부숴야겠다!”

“제발 그만 하세요! 오죽하면 제가 그랬겠습니까! 오죽하면!!”

“이놈이 끝까지!”

장현욱은 제 아비와 힘 싸움을 했다. 이미 나이가 들 대로 든 장연욱이 제 아들의 힘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결국 장현욱이 골프채를 빼앗으면서 동시에 장연욱을 뒤로 밀쳤다.

“제발 그만 좀 하시라고요!”

“억-!”

그런데 뒤로 장연욱 회장이 넘어지면서 사고가 발생했다.

모서리에 하필이면 머리를 부딪힌 것이다.

당황한 장현욱 부회장은 골프채를 던져 놓고 장연욱 회장에게 달려갔다.

“아, 아버지!”

장연욱 회장의 머리 뒤로 피가 흐르면서 그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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