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87화
“의원님. 뭐라 말씀을 좀 해 주십시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의원님. 저희도 모르는 여자가 정말 있으셨던 겁니까?”
참모진들이 아무리 소리를 쳐 봐도 진강호 의원은 그저 눈만 감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참모진의 목소리에 답해 줄 여유가 없었다.
이미 그의 속은 복잡해질 대로 복잡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안 거지?’
극도로 조심하며 오랫동안 만남을 이어 왔다. 최근에는 혹시 몰라 아예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이렇게 덜미를 잡히다니.
언론에 퍼진 정보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굳이 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건 분명 이진석이 빼낸 정보가 틀림없을 터.
대체 그놈은 어떻게 이 정보를 알게 된 것일까.
절대 추적할 수 없게 돈이란 돈은 다 써 가며 흔적을 지워 왔는데 말이다.
“의원님······.”
참모진도 결국 포기한 채 각자 망연자실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진강호 의원이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는 건 저 의혹들이 모두 사실이란 뜻이니까.
이들이 회의실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까.
“진강호!!”
누군가가 거친 목소리로 문을 벌컥 열며 들어왔다.
참모진들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보고 놀라 까무러쳤다.
“자, 장연욱 회장님?”
참모진들의 인사가 지금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장연욱의 기세를 보니, 주먹이라도 날릴 것처럼 보였으니까.
“너 이 새끼! 대통령을 하려는 놈이 여자 문제가 있어?! 거기다 혼외자 자식까지? 대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거짓이야? 당장 말해!”
“······일단 앉으십시오.”
“허-! 표정 보니 딱 알겠네. 다 사실인 거냐?”
“······.”
이미 어두운 얼굴빛이 말해 주고 있다.
“게임 끝났구먼.”
저런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후려 갈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장연욱 회장도 허탈한 얼굴로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렇게 여자가 좋았나?”
“······.”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말이야. 역시 사람은 그릇대로 살아야 돼. 되지도 않은 꿈을 품으니까 이 모양이 나는 거 아닌가? 그깟 여자 하나 안 만난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있었으면 나한테 오늘 죽었을 거야. 아무튼, 그쪽이랑 나는 볼 장 다 봤네.”
회의실 밖을 나서면서 장연욱 회장은 화가 덜 풀렸는지 괜히 화풀이를 해 댔다.
“내 계획을 망친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해 줄 걸세. 내가 생돈 쓰는 걸 엄청 싫어해. 그리고 내가 생돈 쓰게 만드는 놈은 더 싫어하고.”
“······송구합니다.”
“송구할 짓을 안 했어야지.”
장 회장은 문을 쾅 닫고 밖으로 나왔다.
뉴스를 보자마자 피가 거꾸로 솟아 여기까지 쳐들어오는 추태를 보였다.
그만큼 감정적으로 조절하기가 힘든 일이었다.
그는 비서실장을 무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 천하 그룹 정보망이 이 정도밖에 안 돼? 이진석도 알아낸 정보를 우리가 미리 알아내지 못했다? 대체 이걸 어떻게 봐야 하는 거지?”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 하지만 진강호 의원의 뒤를 털었을 때 여자에 관한 내용은 정말 하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진석은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뉴스는 나만 봤나? 한두 번 만난 게 아니라잖아. 저 새끼가 딴 여자랑 결혼했을 때부터 내연 관계를 이어 갔다잖아!! 그걸 모른다는 게 말이 돼?!”
“죄송합니다.”
“쯧-.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바로 일을 하는 놈이 없구먼.”
장연욱 회장은 신경질을 내며 차에 올랐다.
화를 열심히 내긴 했다만, 장연욱 회장도 알고 있었다.
천하 그룹 정보망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말이다. 그런데도 진강호 의원이 다른 여자와 놀아나고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방금 전에 본 진강호 의원의 표정만 봐도 얼마나 철저하게 숨겼는지 알 수 있었다. 설마 그게 걸릴 줄은 몰랐다는 얼굴빛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진석은 기어코 그걸 찾아내 결정적인 한 방을 날렸다.
“후-. 이건 뒤집기 힘들겠지.”
인정하기 싫었지만, 이번 건 이진석의 승리였다.
* * *
-진강호 의원님의 청렴함을 믿었기에 저는 이것이 날조된 뉴스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조사를 해 보니, 모든 것이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이 침통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옆에서 보필하고 존경해 왔던 분이 어떻게 그런······.
성명문을 발표하던 기재욱 대표는 손까지 부르르 떨며 말을 잠시 끊었다 이었다.
-그러므로 저희 민중당은 오늘부로 진강호 의원을 퇴출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게 할 것이며,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께 사죄드립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그 모습이 카메라를 타고 모든 뉴스 채널에 도배되었다.
처음에는 진강호 의원이 절대 그럴 일 없다며 실드를 쳤었던 기재욱 대표였지만, 이틀 뒤에 완전히 돌변해 진강호 의원을 퇴출시킨 것이었다.
이 사건은 전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항상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연기상은 우리 국회의원들이 받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렇게 뻔뻔하게 연기를 잘하는 걸 보면 말이에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와 권 대표는 팝콘을 먹으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켜보았다.
얼마 안 있어 진강호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민 여러분께 깊은 심려를 끼쳐 드려 송구합니다. 오늘부로 저는 모든 자리에서 내려오겠습니다. 평생 청렴함을 강조하며 살아왔지만, 뒤로는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반성하며 살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것을 끝으로 진강호 의원은 회견장에서 내려왔다.
-의원님! 혼외자 자식이라는 게 정말입니까?!
-대답해 주십시오!
기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들을 쏟아냈지만, 그에 대한 답변은 하나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그것으로 진강호 의원의 정치 인생은 끝이 났다.
이제 누구도 그를 지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방금 여론 지지율 나왔습니다.”
“어떻습니까?”
“기재욱 대표한테 압도적으로 몰렸습니다. 지지율이 무려 60%가 넘어요. 기존에 진강호 의원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죄다 몰린 거죠.”
기재욱 대표가 경쟁자였던 진강호 의원을 보호해 주려 했던 것이 아무래도 큰 관심을 끈 모양이다. 더군다나 직접 잘못을 발표하고 당의 결정을 내리는 모습이 카리스마 넘쳐 보였을 것이다.
“회장님. 이런 말씀 드리기 조금 그렇긴 하지만, 미리 샴페인 터트려도 될까요?”
“안 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나와 권 대표는 조금 이른 샴페인, 아니. 양주를 땄다.
* * *
“축하하네. 자네가 이겼어.”
“감사합니다.”
나는 장연욱 회장이 따라 주는 술잔을 받아들였다.
진강호 의원이 사퇴한 지 이틀 만에 나를 한식당으로 초대한 것이었다.
이곳 식당은 오직 장연욱 회장만을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그가 초대한 손님만 이 식당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뛴다고 생각했는데, 이거 오히려 내가 개새끼가 되어 버렸구먼.”
“궁지에 몰리는 쥐도 고양이를 무는 법이니까요.”
“하하. 여기까지 와서 겸손을 떠는 건가?”
“사실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J&H가 많이 성장하긴 했으나, 아직 천하 그룹을 따라가려면 멀었습니다.”
그러나 그 격차는 좁혀질 것이다.
곧 대통령으로 당선될 사람은 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5년은 든든하겠어. 지금껏 칼만 들이대던 청와대가 J&H에 날개를 달아 주려고 할 테니까.”
“예. 덕분에 요즘 두 발 뻗고 잠자고 있습니다.”
“좋겠네. 누구는 발도 못 뻗고 자는 중인데.”
나는 장연욱 회장의 잔에 술을 따라 주며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라도 두 발 뻗고 주무실 수 있게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그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잔을 들었다.
“그래? 자네가?”
“예. 회장님이 걱정하시는 바가 뭔지 전 잘 알고 있습니다. 물산 쪽을 통한 지분 이동. 이게 가장 마음에 걸리지 않으십니까? 아시다시피 그쪽 자료들을 제가 전부 가지고 있거든요.”
“협박하는 겐가?”
“뭐, 반쯤은요. 제가 그 자료를 풀면 차기 정권이 그걸 어떻게 정치적으로 써먹을지는 불을 보듯 뻔한 거 아니겠습니까. 더는 재벌에 끌려다니는 정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우리나라 대표 그룹인 천하 그룹을 집중 마크할 겁니다.”
“쯧-. 그래서?”
“뭐, 아무리 그래도 회장님을 감옥에 보낼 순 없으니 후계자인 장선욱 부회장이 대신 감옥에 들락날락하겠죠.”
“허-. 지금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 하나?”
장연욱 회장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그에게 여유가 없어 보였다.
“천하 그룹이 대한민국 최고의 그룹이기는 하나, 정권이 작정하고 나서서 부수려 든다면 못 할 것도 없을 겁니다. 이미 그럴 만한 명분이 꽤 많거든요. 노조 파괴를 위해 여러 사람들을 납치해 폭행하고 살해한 정황 증거까지 제가 가지고 있으니까요.”
“고작 그런 걸로 천하 그룹을 날려? 어림도 없어.”
“예. 하지만 그게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면요? 차기 정권은 꿀릴 게 없습니다. 국민이 압도적으로 지지를 해 주고 있거든요. 그 추진력으로 천하 그룹을 파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겁니다.”
“······.”
장 회장도 현실을 자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 꿈틀거렸다.
“천하 그룹은 오래전부터 이런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어. 검찰과 법원이 전부 내 손에 놀아나고 있다고. 그런데 감히 천하 그룹을 무너뜨려? 그게 가능할 거 같나?”
“그렇게 믿고 계시는 검찰과 법원도 제 손으로 구겨 버릴 겁니다.”
“뭐야?”
“공수처라고 알고 계십니까? 재벌들 손에 놀아나는 검찰과 법원을 짓밟는 새로운 권력 체계. 저는 검찰의 힘과 법원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낼 겁니다. 오직 대통령과 제 말에 충성할 수 있는 그런 권력 기관 말입니다.”
“지금 그게 무슨······.”
“예전부터 거론되었던 겁니다. 하지만 삼권 분립을 무시하고 대통령 중심으로 나라가 돌아갈 가능성이 커서 폐기되었던 법이죠. 그러나 제가 그걸 다시 살리려는 겁니다. 모든 국가 기관이 제 입김에 의해 돌아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장연욱 회장의 동공이 지진 난 듯 흔들렸다.
“이제 저는 매일같이 검찰과 법원을 언론으로 때릴 겁니다. 부정부패가 가득하고 적폐 세력이 점령하고 있는 권력 기관. 그것들을 솎아내지 않는 한, 우리가 바라는 청렴하고 깨끗한 대한민국은 있을 수 없을 거라며 국민들에게 호소할 겁니다.”
“그리고?”
“공수처를 설치해 검사들이, 그리고 판사들이 모두 제게 감시를 받으며 그들 마음대로 망치를 때릴 수 없게 만들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회장님의 손발이 전부 다 떨어져 나가겠죠. 더는 예전처럼 국가 기관을 마음대로 주무르실 수도 없을 겁니다. 그게 공수처의 역할입니다.”
“결과적으로 내가 가진 힘을 자네가 다 빼앗아 가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맞습니다. 제가 전부 가져갈 겁니다. 이 나라 국민들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나라를 만들 겁니다. 모든 권력이 한 사람 손에 들어가는······ 그런 무시무시하고 아름다운 나라 말입니다.”
맛있는 음식들이 잔뜩 깔렸지만, 이제 장연욱 회장에게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할 차례였다.
“이 정도면 충분한 협박이 되었을 겁니다. 회장님의 답을 기다리겠습니다. 저와 끝까지 싸울지, 아니면 같이 손을 잡고 상생을 할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