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86화 (186/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86화

“하-. 갑자기 이렇게 내려온다고?”

장연욱 회장은 유미화 대통령이 모든 걸 내려놓고 청와대를 나오는 모습을 TV로 멍하니 바라보았다. 설마설마했는데, 유미화 대통령은 탄핵 심판이 떨어지기 전에 봉황 의자에서 내려왔다.

“이진석 그놈이 어지간히 작업을 쳐 놓은 모양이구먼.”

“예. 유미화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이진석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미화 대통령이 하야 발표를 하기 이틀 전부터 모든 언론에 기사를 준비시켰다고 합니다.”

철저한 놈 같으니라고.

대통령을 내려오게 만들어 격해진 촛불 시위를 마무리함과 동시에 기재욱을 전면에 내세워 영웅으로 만든다라······.

“진 의원, 어때? 상대할 맛이 나는 놈이지?”

장연욱은 웃고 있었지만, 앞에 앉아 있던 진강호 의원은 웃지 못할 일이었다.

이번에 대통령이 하야를 하면서 제대로 뽐뿌를 받은 기재욱 대표의 지지율이 어느새 진강호 의원을 추월했기 때문이다.

그 격차는 현재 3%.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격차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진 의원은 뭐 들고 있는 카드 없나?”

“······.”

“이대로 기 대표한테 다 뺏길 참이야? 대통령 되려고 그 개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달려온 거잖아.”

“회장님께서 도움을 주신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그래. 역시, 내 도움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거겠지?”

장 회장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상대가 자신에게 의지하도록 만들어 버린다.

“좋아. 내 한 건 해 주지. 내일이 촛불 시위 마지막 날이라며? 그때 당신도 나가.”

“네?”

“정면으로 나가서 마이크 잡으라고. 내가 따로 준비해 줄 테니까. 입은 알아서 털고. 알겠지?”

진강호 의원은 장연욱 회장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금방 알아들었다.

정면 돌파를 하라는 뜻이 아닌가.

그동안 촛불 시위는 기재욱 대표의 무대였다. 그러나 그것을 진강호 의원이 비집고 들어가 판을 흔들어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기재욱에게만 쏠렸던 시선이 이제 새로운 얼굴인 진강호에게 몰릴 것이다.

그동안 왜 이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알고 있는 방법인데도 자존심 때문에 나가지 못한 것일 터.

하지만 대통령이 하야한 지금, 새로운 대통령 선출을 위한 대선이 시작된다.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벗어 던지고 나갈 수밖에 없다.

“왜? 자존심 때문에 그러지는 못하겠나?”

“아닙니다.”

진강호 의원은 몸을 쭉 펴면서 말했다.

“해 보겠습니다.”

“하하. 그래. 남자가 강단이 있어야지. 내가 판은 잘 깔아 두겠네.”

“예, 회장님.”

그는 정중히 허리를 숙여 먼저 회장실을 나섰다.

내일부터는 기재욱 이름이 아니라 진강호 이름 석 자가 대한민국 곳곳에 새겨질 수 있도록 다짐을 새기면서 말이다.

* * *

“하하. 기 대표. 그동안 고생 많았어.”

“아······ 네. 의원님.”

“국민들을 하나로 모아서 정권을 바꾸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이럴 때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대단해. 할 땐 하려고 모여들잖아.”

“예. 그런데 여기까지는 어쩐 일로······.”

“어쩐 일이긴. 자네들 격려도 해 주면서 여기 모여 계신 분들한테도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 드리러 왔지.”

기재욱은 갑작스럽게 시위장에 나타난 진강호 의원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자존심 때문에 밖으로 나오지 않던 양반이 대통령 하야를 축하하며 모인 시위 마지막 날에 깜짝 등장을 할 줄이야.

거기다 따로 지원을 많이 받은 모양인지, 진강호 의원만을 위한 별도의 세트장이 설치되었다.

“긴 이야기는 다음에 더 해 보자고. 이제 곧 대선이잖아.”

“그렇죠.”

“나는 이번 대선 포기할 생각이 없어.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겠지? 그렇다는 건 둘 중 하나는 탈당을 해서 새로운 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뭐 어떻게든 타협점을 찾든가 해 봐야지.”

“······.”

“아무튼, 난 그만 가겠네. 저기 기다리고 계신 분들이 참 많아서 말이야.”

진강호 의원은 마련된 무대 위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평소에도 언변에는 자신이 있던 사람이라 금방 시위대에 모인 시민들을 휘어잡으며 연설을 하고 있었다.

“이 나라는 이제 달라질 것입니다.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질 것이고, 공평한 결과가 이뤄질 겁니다. 더는 억울한 나라가 되지 않도록,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저 진강호가 고쳐 나가겠습니다!”

“와아아-!”

“진강호! 진강호! 진강호!”

모여드는 시민들을 보고 기재욱 대표의 머리에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 * *

“진 의원이 한 방 먹였네요.”

“예. 제대로 먹였습니다. 가까스로 3%를 추월한 지지율이 다시 5%나 차이가 나 버렸어요. 그동안 잊고 있던 진 의원이 손수 시위장에 나와 격려의 말을 전하니, 시민들의 마음이 바뀐 것이죠. 거기다 기재욱 대표님이 정식으로 출사표를 던진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여전히 진강호 의원을 차기 대선 후보로 보고 있는 겁니다. 그에 반해 기 대표님은 들러리 취급을 하고 있고요.”

권 대표의 말에 회장실로 모인 기 대표와 그의 참모진들이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촛불 시위에 너무 정신이 팔려 있었어요. 진강호 의원과 그 세력들부터 잘라 내고 이제 민중당과 그들은 남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어야 했는데······.”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기재욱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려다 꾹 참았다.

한심한 놈.

대통령이 되려는 놈이 고작 이런 일에 풀이 죽어?

그래도 어쩌겠는가.

아이처럼 잘 달래야 하는 것이 내 일인 것을.

“아니요. 그냥 놔둔 게 오히려 잘한 겁니다. 만약 진 의원을 잘라 내고 여러 의원들을 내쳐 버렸다면 사람들은 민중당도 결국 똑같은 놈들이라며 불신을 가졌을 겁니다. 최대한 내분 없이 한마음으로 뭉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맞았어요. 우린 플레이를 제대로 한 겁니다. 단지, 저쪽에서 꼼수를 좀 쓴 것뿐이죠.”

“그렇습니까?”

“네. 상황을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죠. 제가 이런 상황 하나 예측하지 못하고 이 게임에 임한 것 같습니까? 전 반드시 당신을 대통령으로 만들 겁니다. 진강호 의원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장애물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윽고 기재욱 대표가 눈빛을 반짝였다.

“회장님. 저희가 모르는 다른 카드를 가지고 계시는 거군요.”

난 힐끗 미소를 보이며 권 대표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권 대표는 헛기침을 뱉으면서 서류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번에 저희가 입수한 정보입니다. 믿을 만한 곳에서 얻은 것이니, 확실할 겁니다.”

기재욱 대표는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서류를 확인해 보았다.

“이건······.”

“진강호 의원이 굉장한 로맨티스트였더군요. 아니. 그냥 나쁜 놈이라고 해야 할까요. 본인의 성공을 위해 뜨겁게 사랑하던 연인을 버리고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더니, 뒤로는 그 사랑을 못 잊어 밀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허어-. 그토록 가정적이라는 양반이 설마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겁니까?”

“네. 심각하죠? 여성들한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진강호 의원에게 이런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게 알려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정도면 대선에 나올 수도 없습니다. 거기다 이 여자한테 아들이 하나 있던데, 설마 이 아이가 진강호의 아이라면······.”

“게임 끝이죠.”

모든 먼지를 털어낸 진강호였지만, 끝끝내 오랜 첫사랑을 잊지 못했다.

아마 자기 딴에는 잘 숨겼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실제로도 그러했고.

진강호 의원만 팠을 때는 이 여자에 대한 단서가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의 정체를 미리 알아채고, 진강호 의원이 아닌 불륜녀에 대해 파고들기 시작하자 수많은 단서들이 우리 손에 들어왔다.

거기다 이 여자도 남편이 있고 아들이 하나 있는데, 난 이 아들이 진강호 의원의 아이일 것만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기자들 쫙 뿌려 놨고, 가지고 있는 증거들로 기사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이 사건이 터지면 대표님은 진강호 의원을 보호해 주는 척하다가 당에서 쫓아내세요.”

불륜으로 인해 당에서 강제로 축출당한다면 진강호 의원은 절대 다른 당을 만들어 낼 수가 없게 된다.

불명예스럽게 정치판을 떠난 사람이 언감생심 대통령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기재욱 대표도 그것을 알기에 눈에 활력이 돌고 있었다.

그는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눈엣가시 같은 진강호 의원을 몰아내고 자신이 봉황 의자에 앉게 된다고 말이다.

* * *

“기재욱 대표가 수백억 대에 달하는 정치 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중입니다.”

“청렴함의 상징이라고 스스로 주장했던 기재욱 의원이 큰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여당에서는 기재욱 의원이 수백억 대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제기했고, 이에 따라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기재욱 대표가 거짓 병원 진단서로 군을 면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충격을······.”

의외로 진강호 의원보다 기재욱 대표에 대한 의혹들이 먼저 언론을 통해 폭로되었다.

수백억 대 뇌물 수수부터 시작해 군 면제 의혹이 가중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인데, 이에 대해 기 대표 측은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군 면제를 받은 이유에 대해서도 재차 병원 자료를 가지고 와 설명했고, 수백억대 뇌물 수수에 관한 것 역시 날조에 불과하다며 의혹을 일축했다. 그 외에도 여러 괴담 같은 의혹들이 번져 나갔지만, 기 대표는 흔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저런 의혹들이 누굴 통해 나갔는지 이미 알고 있었고, 자신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큰 한 방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강호 의원의 불륜녀? 충격!]

[진강호 의원에게 불륜녀와 낳은 아이가 있다?]

[진강호 의원 불륜 사실 밝혀져. 심층 취재.]

이틀 동안 연속으로 기재욱 대표를 때리던 언론들이 일제히 진강호 의원에 대한 불륜 사실을 보도했다.

“저, 저게 뭐야?”

진강호 의원 측의 참모들은 속보로 전해지는 뉴스들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진강호 의원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제보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보된 사진에는 진강호 의원이 마스크를 끼고 다른 여자와 몰래 만나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고, 호텔에 같이 들어가는 장면과 더불어 호텔 측에서 제공한 영수증도 나와 더욱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마스크로 변장을 하긴 했지만, 누가 봐도 진강호 의원의 실루엣이었다.

더군다나 마스크를 벗고 껴안는 장면도 함께 찍혀 있어 더는 발뺌할 수도 없는 일.

참모들은 화들짝 놀라 진강호 의원에게 달려갔다.

“의원님!!”

그들은 이 모든 게 거짓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진강호 의원을 옆에서 보필하면서 그에게 내연녀가 있다는 건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이기 때문이다. 즉,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정보를 날조한 것이리라.

하지만 TV 앞에선 눈을 꼭 감은 채 의자에 기대고 있는 진강호 의원을 보고 참모들은 모두 힘이 빠져나갔다.

저 표정만 봐도 모든 의혹들이 사실이라는 걸 알아챈 것이었다.

진강호 의원 역시 말할 힘도 없는지 그저 눈을 감은 자세로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