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84화
-평생 나라에 봉사한다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쏟아지는 거짓 의혹과 거짓 증거들에 의해 제 정치 인생이 무너질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유미화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난 아무 잘못이 없다. 이 개돼지들아.
“반응은 어떻습니까?”
“뭐, 예상했던 대로 유미화 대통령을 욕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일부 극성 우익들이 편을 들어주고 있긴 한데, 뭐 결과야 뻔하죠.”
여론 조사를 통한 유미화 대통령의 지지율은 3%도 되지 않았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시위대의 숫자는 200만 명을 돌파할 기세였다.
직접 몸으로는 참여하지 못하지만, SNS로나마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 숫자까지 합하면 수천만 명은 족히 될 것이다.
특히 이번 일은 외국에도 크게 보도되고 있어 유미화 대통령의 다음 행보가 무엇인지 큰 관심사였다.
“기재욱 대표와 진 의원의 지지율은 어떻습니까?”
“확실히 시위대에서 기재욱 대표가 얼굴을 자주 드러낸 게 효과가 컸던 모양입니다. 기재욱 대표의 지지율이 많이 올라오긴 했는데, 여전히 진강호 의원이 다소 앞서고 있습니다.”
권 대표가 건네준 서류를 확인해 보니, 기재욱 대표는 지지하는 세력은 40%. 진강호 의원은 43%였다. 이대로 대선이 시작되면 두 사람이 서로 큰 지지율을 자랑하며 싸움을 벌일 것 같았다.
“이렇게 대선이 시작되면 진 의원이 이길 확률이 커지겠어요.”
“네. 진 의원을 지지하는 층이 아주 두껍습니다. 그 지지층을 박살 내지 않는 한, 기재욱 대표가 대통령이 되기는 꽤 험난한 여정이 될 겁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진강호 의원이 알아서 포기를 하게 만드는 건데, 그 양반은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대선 포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최대한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죠. 애써 만들어 놓은 우리의 패가 이대로 무너진다면 우리 회사도 위험해집니다.”
진강호 의원은 이미 천하 그룹과 손을 잡았다.
그 뜻은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두 회사의 운명도 달라진다는 뜻이었다.
만약 이대로 진강호가 승리를 하게 된다면 J&H가 어떤 핍박에 시달릴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렇기에 나는 모든 라인을 돌려 그의 약점을 찾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오래전부터 대선을 꿈꿔 왔던 사람이다. 당연히 묻은 먼지를 싹 털어 없애 버렸을 터.
대선을 포기시킬 정도의 약점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현재 내가 쓸 수 있는 인간의 힘으로는 말이다.
밤 12시.
[새로운 정보가 도착했습니다.]
위기 때마다 내 앞길을 열어 주는 미래 커뮤니티 센터.
이번에도 내 앞에 있는 걸림돌을 해결해 주려는 것일까.
[진강호 의원은 보기와는 다르게 로맨티스트입니다. 아직도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뭐? 이게 끝이야?”
거짓말처럼 정보는 이게 끝이었다.
허탈함에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옆에서 자고 있던 오희진이 내게 몸을 돌렸다.
“응? 자기. 무슨 얘기 했어?”
“아. 미안.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다 나는 문득 오희진에게 물었다.
“자기야. 첫사랑을 아직 잊지 못하고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는 건 무슨 뜻일까?”
그러자 졸린 눈을 하고 있던 오희진이 무섭게 심지를 치켜떴다.
“뭐? 자기 첫사랑 생각하고 있었어?”
“아니. 나는 네가 첫사랑이지······. 진짜야. 내 얘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
“음-. 만약 결혼하고 나서도 첫사랑을 잊지 못한 거라면 그 결혼은 거짓말이겠지?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했다거나. 근데 그런 남자 새끼들은 꼭 결혼하고 나서 딴짓하더라. 구질구질하게 말이야.”
거기서 힌트를 얻었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남자.
혹시 미래 커뮤니티 센터는 내게 진 의원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려 준 것이 아닐까.
* * *
“회장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수소문을 해 보니, 진강호 의원은 원래 오래 사귀던 여자가 있었는데, 정치적 성공을 위해 결혼은 다른 여자와 했다고 합니다.”
“진강호 의원 자식이 몇 명이죠?”
“두 명입니다. 아들 하나, 딸 하나. 혹시 혼외자를 생각하시는 겁니까?”
“진강호 의원이 엄청난 로맨티스트라는 얘기를 제가 우연히 들어서 말입니다. 혹시 전에 사귀던 여자 인적 사항을 알 수 있을까요? 그쪽을 집중적으로 파면 뭐가 나올 거 같은데.”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곧 있음 출발하십니까?”
“네. 그쪽에서 꼭 한번 보자는데, 외면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날 초청한 사람은 바로 이 나라의 대통령, 유미화였다.
그녀의 부름에 모두가 답하지 않고 있지만, 청와대를 궁지에 직접 몰은 나로서는 유미화의 초청이 반가웠다.
직접 만나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경호실장과 권 대표에게 조사를 맡겨 두고 청와대로 향했다.
청와대로 향하기 전 나는 기사에게 말해 광화문에 잠시 들렀다 가도록 했다.
“유미화 대통령은 하야하라!!”
“하야하라!!”
광화문은 벌써부터 교통이 마비된 상태였다.
이른 오후에도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목이 터져라 대통령은 물러나라고 소리쳤고, 유명 연예인들도 합세해 그 목소리에 힘을 더해 주고 있었다.
“내가 저번에 돌리라고 한 건 돌렸습니까?”
“아, 네. J&H의 이름을 걸고 도시락, 빵, 김밥, 음료수 등등을 전부 다 돌렸습니다.”
이를 이용해서 나도 J&H의 이름을 팔아먹었다.
저기 설치된 전광판부터 행사에 동원된 차량과 시위대들에게 제공된 핫팩 등등.
J&H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 덕에 사람들은 J&H야말로 국민을 위할 줄 아는 모범 기업이라며 칭송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갑시다.”
“예, 회장님.”
이윽고 나는 청와대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갔다.
“오셨습니까. 기다리고 계십니다.”
대통령 집무실까지 들어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가 들어서자 유미화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맞이해 주었다.
“어머. 어서 오세요, 회장님. 이렇게 단둘이 보는 건 처음이죠?”
“그렇군요. 대통령님.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이진석입니다.”
“호호. 역시 실물이 훨씬 잘생기셨네요. 여기 앉으세요. 차는 어떤 걸로 하실래요? 말씀만 하시면 다 가져다드릴 겁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커피 한잔 마시자고 온 것도 아니라서요.”
나는 거만한 자세로 자리에 앉아 대통령에게 물었다.
“대통령님. 아시다시피 제가 많이 바쁜 사람입니다. 가능하면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 주셨으면 합니다.”
유미화 대통령은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지만, 소리를 꽥 지르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음. 그래요. 그전에 회장님이 만나볼 사람이 있어요. 잠시만요.”
그녀가 어디론가 전화를 하자 사람 한 명이 더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우린 초면이죠? 구영실이라고 해요.”
다름 아닌 청와대 게이트의 핵심인 구영실 여사였다.
나는 그녀가 주는 명함을 받으며 미소를 지었다.
“말로만 듣던 분을 이제야 만나 뵙게 되는군요.”
사실상 이 나라의 실세라 할 수 있는 여자다.
뭐, 지금은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지만.
구영실 여사는 자리에 앉기 무섭게 입을 열었다.
“이 회장님. 솔직히 너무한 거 아닌가요?”
“네?”
“왜 잘 있는 청와대를 들쑤시는 거죠? 우리도 다 알아요. 이 모든 일을 당신이 주도했다는 거.”
성질이 급한 여자다.
앉자마자 땍땍거리기는.
“뭐,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뿐입니다.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기인데, 대통령님께서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반인에게 국정을 맡기신 건지 모르겠군요.”
“뭐라고요?”
“제가 틀린 말이라도 했습니까? 대통령이란 자리는 일반인에게 휘둘리라고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대체 누가 휘둘렸다고 그래요!”
유미화 대통령도 참다 참다 소리를 질렀다.
“그냥 조언만 얻은 것뿐이에요. 그런데 사이비 교주니, 무당이니 하는 괴소문을 왜 퍼뜨린 거죠?”
“제가요? 전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저는 그저 익명의 제보를 받아 언론에 알려 준 겁니다. 제가 언제 그런 소문을 퍼뜨렸다고 그러십니까? 정 억울하시다면 법대로 하세요. 소송이든 뭐든 다 받아들여 줄 테니.”
“······.”
내가 오히려 뻔뻔한 자세로 나가니 저들도 할 말이 없어진 모양이다.
“그러게 상대를 잘 골라 가면서 싸우셨어야죠. 천하 그룹과 결탁해 절 마킹했을 때부터 이미 우리 사이는 틀어진 겁니다. 전 싸우고 싶은 생각이 요만큼도 없었어요. 아무런 경쟁 없이 다 같이 올라가는 사이가 되고 싶었는데, 먼저 이 꼴을 만든 건 대통령님이십니다.”
잠시 말이 없던 두 사람.
먼저 운을 뗀 것은 구영실 여사였다.
“지금이라도 화해를······ 하면 어때요?”
“화해요? 그런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요? 뭐, 화해를 하고 싶다면 하도록 하죠. 저도 이제 청와대를 공격하는 일에는 손을 다 떼겠습니다. 그런데 이미 제 손을 벗어난 지 오래된 일이라는 것쯤은 알고들 계시죠?”
“그건······.”
“대신 이거 하나는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약속? 어떤 약속이요?”
“대통령님.”
나는 구영실 여사가 아니라 대통령을 향해 정면으로 말했다.
“스스로 물러나세요. 깔끔하게 대통령 자리를 내려놓고 떠나신다면 안정적인 노후를 보내실 수 있게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뭐, 뭐라고요?”
“하야하시라는 겁니다. 구차하게 그 자리에 앉아 계셔 봤자 힘으로 끌어 내릴 겁니다. 이번 탄핵소추안은 법원에서 통과시킬 거라고요. 즉, 아무리 질질 끌어 봐야 2~3개월입니다. 그 후에는 아무리 잘못했다고 빌어도 소용없습니다. 감옥에서 평생 썩고 싶으십니까?”
아무리 의혹이 다 거짓이라고 발뺌해 봐도 벌써 내 손에 들고 있는 증거들만 수십 가지가 넘는다. 이걸 정식으로 검찰에 제출하면 유미화 대통령은 꼼짝없이 감옥에 들어가야 한다.
평생 공주 같은 생활만 하다가 차갑고 딱딱한 감옥 바닥에 눕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는 유미화 대통령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역시, 그녀는 두 손을 벌벌 떨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가, 감히 지금 나한테 그딴 소리를!”
“전 빈말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다면 하는 사람이죠. 제가 들고 있는 자료들을 풀게 된다면 검찰에서 두 분에게 몇 년을 구형할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네요.”
주도권을 잡고 있는 건 나였다. 그렇기에 쉬지 않고 몰아쳐야 한다.
“그리고 유미화 대통령님. 저와 만나려고 하셨으면 이 사람을 부르지 마셨어야죠. 전 대통령님을 만나러 온 거지, 대통령님을 허수아비로 만든 간신배를 만나러 온 게 아닙니다.”
내가 할 얘기는 여기서 끝났다.
“신중하게 고민해 보십시오. 만약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시겠다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최소 20년은 감옥에서 썩도록 만들어 드리죠. 제게는 지금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싫으시다면 당장 내려오세요. 힘 빼지 마시고요.”
나는 충격을 먹고 멍하니 앉아 있는 유미화와 구영실을 놔두고 그대로 청와대를 나섰다. 과연 저 둘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나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대한민국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