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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83화 (183/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83화

망치로 한 대 맞은 듯이 멍하니 넋 놓고 앉아 있던 진강호 의원은 이내 운을 뗐다.

“제 정치 인생을 통틀어······. 아니. 제 평생 이런 모욕은 처음입니다.”

“모욕이라-.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미안합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누구 처지를 봐 줄 상황이 못 됩니다. 저도 많이 급하거든요.”

진강호 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 날을 평생 잊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의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될 겁니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요.”

“기대해 보겠습니다, 의원님. 대선에서 누가 웃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소리라도 한바탕 지르고 나갈 줄 알았더니, 의외로 진강호 의원은 차분하게 회장실 밖을 나섰다. 이윽고 권 대표가 안으로 들어왔다.

“생각보다 빨리 돌아갔네요?”

“제가 딱 잘라서 말했거든요. 차기 대선은 포기하라고.”

“하하. 저 양반이 그 말을 들을 리 없을 텐데요.”

“네. 기재욱 대표를 선택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깨닫게 해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갔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제가 진 의원을 좀 자극했거든요. 그래서 단단히 뿔이 난 듯보입니다.”

“으음. 진 의원 정도의 거물이라면 입김이 좀 있을 텐데요.”

“어쩌겠습니까. 한번은 부딪혀야 할 사람인 것을.”

난 진강호 의원인 곧장 어디로 향할지 벌써 예상이 갔다.

현재 보수 정당과 함께 같이 여론의 물매를 맞고 있는 천하 그룹 아니겠는가?

* * *

“허허. 그놈이 그렇게 말했다고요?”

“예. 젊은 사람이 그렇게 안 봤는데, 아주 쌍심지를 치켜들고 협박을 하더군요.”

장연욱 회장은 자신의 저택으로 헐레벌떡 뛰어온 진강호 의원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J&H로 먼저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자 천하 그룹으로 달려온 놈이지만, 이용 가치는 아주 높았기에 장 회장은 그를 안으로 받아들였다.

“회장님. 요즘 J&H와 천하 그룹이 서로 으르렁대며 싸운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청와대까지 휘말린 게 아닙니까?”

참 웃기는 일이 아닌가.

두 기업의 싸움인데, 어쩌다 보니 청와대가 박살이 나고 있었다.

“뭐 싸움이라고 할 게 있겠습니까?”

“저도 듣는 귀가 있고 보는 눈이 있습니다. 이미 국회 내부에서도 천하 그룹에 대한 말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특히 국민연금공단과 함께 몇몇 회사를 강제 합병시켜 지분을 희석시켰다는 것 역시······.”

“참나. 언제부터 우리 회사에 다들 관심이 많으셨다고. 사실상 진보 정당은 대기업을 싫어하지 않습니까? 언제나 대기업 죽이기에 앞장 섰던 분이 바로 진 의원이시고.”

진강호 의원은 얼른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아닙니다, 회장님. 표 몰이를 위해서 달콤한 말 몇 마디 해 주는 것뿐입니다. 어떻게 정치하는 자가 회장님 같은 분과 척을 지려 하겠습니까?”

“흠. 요즘 하는 행동들을 보면 전혀 안 그런 거 같던데. 내 착각인가? 내가 얼마나 당신들 진보 정당이 답답했으면 매번 보수 정당에만 돈을 보내 줄까? 그러게 진작에 좀 잘하지 그랬어.”

“이제부터는 다를 겁니다, 회장님. 저희가 반재벌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그건 그냥 표몰이에 불과하다는 걸 알아 주십시오.”

정치하는 놈들치고 믿을 놈 없다.

그렇기에 장 회장 역시 진 의원의 말을 믿지 않았다.

저놈이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분명 천하 그룹의 발목을 붙잡으려 들 것이다. 즉, 저 자의 목에 목줄을 제대로 채워 놓지 않으면 하수인으로 부릴 수가 없다.

“진 의원님 마음이야 이 늙은이가 잘 알지. 왔다 갔다 하느라 고생이 참 많았을 거 같은데, 가는 길에 몸보신 좀 하라고 내가 비서한테 챙겨 두라고 했어.”

몸보신이 어떤 의미인지 진 의원도 금방 간파했다.

“회장님. 괜찮습니다. 굳이 그러실 필요는······.”

진 의원은 천하 그룹이 건네는 돈이 부담스러웠다. 그에게 필요한 건 천하 그룹의 지원 사격이지, 돈을 던져 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장연욱 회장의 의지는 강했다.

“받아 가시게. 어렵게 챙겨 주는 건데, 그 성의를 무시하면 쓰나? 주는 걸 잘 받아 먹어야 더 큰 것도 먹을 수 있는 법이야.”

“······예.”

단단히 코가 꿰었다고 생각했지만, 천하 그룹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이니 진 의원은 거절할 수 없었다.

두고두고 이번 일이 자신의 뒷덜미를 붙잡겠지만, 지금은 살아야 한다.

뭐든지 적을 다 물리치고 나서 생각해 볼 문제다.

이것으로 장 회장이 원하는 목줄이 조금씩 진 의원의 목에 채워 지고 있었다.

장연욱 회장은 진 의원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조언을 해 주었다.

“진 의원. 슬슬 보금자리를 떠날 때가 되지 않았나?”

“예?”

“어차피 거기 남아 있어 봤자 기재욱, 그놈 넘어설 수 있겠어? 내가 알기로 기재욱이랑 J&H 쪽에 붙은 의원들이 절반 이상이라고 하던데. 그동안 정치판 구르면서 사람 관리도 안 하고 대체 뭐했나?”

“부끄럽습니다, 회장님. 하지만 아직 절 지지하는 층도 두껍습니다.”

“그럼 굳이 거기 남아 있어 뭐하게? 새로 시작해야지.”

탈당을 하라는 건가.

사실 진 의원도 탈당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긴 했다. 하지만 든든한 백업이 없이 무턱대고 탈당을 했다가는 이도 저도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수그린 것이었다.

“J&H 이진석은 진심으로 기재욱을 대통령으로 만들려 하고 있어. 이번 촛불 시위도 봐. 이게 다 누구 머리에서 나왔을 거 같나?”

“이 모든 게 이진석 회장 머리에서 나왔다는 겁니까?”

“그래. 당대표 오른팔에 불과한 놈을 꼬드겨서 쿠데타를 일으키게 했고 마침내 대표 자리를 빼앗었어. 그 다음은 진 의원이 앉아 있던 자리까지 노려 빼앗고 있지. 거기다 청와대를 들쑤셔서 대통령 탄핵까지 진행하고 있으니, 소름 돋을 정도로 치밀하지 않나?”

진 의원도 그 점이 무서웠다.

아직 나이도 어린 젊은 회장이 정권까지 바꾸는 거물이 되어 있을 줄이야.

정면으로 싸운다면 지략 싸움에서 밀릴 게 뻔했다.

“이진석은 그런 놈이야. 진 의원은 그런 놈과 싸우려 하는 거고. 그러니까 자리부터 옮겨야 돼. 벌써 이진석한테 물이 든 놈들이 득실거리는 곳에 남아 있어 봤자 누구 좋으라고?”

“······회장님 말씀이 옳습니다.”

“그래. 얼른 탈당해 버려. 그리고 아예 새로 만들어. 표가 많이 갈리긴 하겠다만, 그런 건 뚝심으로 밀고 가야지. 설마 표 갈라치기 됐다고 봉황 의자에 못 앉는 건 아니겠지?”

“회장님께서 뒤에 든든하게 우군으로 서 주신다면 뭐가 불가능하겠습니까?”

“좋아. 내 이름 열심히 팔아서 의원들부터 끌어 모아. 그런 다음에 다시 상의해 보지.”

“잘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만 돌아가시게. 밤이 늦어서 쉬어야겠구먼.”

“네.”

진 의원은 복잡한 마음으로 장 회장의 저택을 나갔다.

장 회장과 같이 진 의원의 말을 조용히 경청만 하고 있었던 장선욱 부회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린 청와대를 도와 주려던 것 아니었습니까?”

“맞지. 근데 지금 나라 꼴 돌아가는 것을 보니, 보험 하나 정도는 들어줘야겠다.”

“이대로 청와대가 정말 국민에게 항복할 거라 보시는 겁니까?”

“계엄령, 그거 함부로 못 내린다. 내가 다 알아 봤어. 청와대도 계엄령 카드를 만지작거리겠지만, 그랬다가는 미군이 끼어 들어. 우린 전작권도 없는 나라야. 계엄령 한번 잘못 선포했다가 청와대에 한국 깃발이 아니라 미국 깃발 꽂혀 있는 거 보고 싶은 게냐?”

“하지만······.”

“뭐, 그릇이 되는 놈이라면 계엄령이든 뭐든 다 하겠지. 저기 시위하고 있는 놈들도 탱크로 싹 밀어 버리고. 그런데 유미화 대통령이 과연 그렇게 할까? 거기다 청와대가 그런 짓 했다가는 군부가 들고 일어날 수도 있다. 거의 외통수라고 봐야 돼.”

장연욱 회장은 벌써부터 청와대의 몰락을 바라보고 있었다.

탄핵소추안이 정식으로 통과된 것도 아니고, 청와대가 무슨 결정을 내린 것도 아니지만 이미 그의 눈에는 결과가 보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도 말 하나 골라서 달려야지. 진 의원 정도면 쉽게 낙마하지 않을게다.”

장선욱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J&H에게로 기울어 버린 판국이다.

이걸 과연 뒤집을 순 있을까?

* * *

“본 국회는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었음을 알립니다.”

국회의장이 망치를 두들기며 유미화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음을 알렸다.

이것으로 이제 칼은 법원에 넘어갔다.

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유미화 대통령의 거처가 결정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멍하니 TV를 보고 있던 유미화 대통령.

그녀의 곁에는 보좌관들 밖에 없었다.

“여당 대표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왜 청와대로 모이라니까 아무도 안 와!”

“모두 연락은 해 보았으나······ 다들 답이 없습니다.”

“이런 쓸모없는 새끼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유미화 대통령은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던져 보았다. 하지만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자기가 소중하게 모은 물품들만 부셔질 뿐이었다.

“하-. 이것들을 싹 다 밀어 버릴 수도 없고.”

계엄령을 선포해 군대를 활용한 시위 진압을 고민했던 적도 있다.

문제는 군부가 청와대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국방부장관을 시켜 계엄령 선포에 따른 군사적 움직임을 발휘할 수 있지만, 군부 내부에도 진보 정당에 관여되어 있는 인물이 많기 때문에, 만약 계엄령을 선포했다면 대한민국은 초유의 내전 사태를 겪었어야 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미군이 눈을 부릅켜고 청와대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군사적 행동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대통령님. 차라리 지금이라도 진보 정당과 협상을 해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협상? 그런 것들이랑 내가?”

“지금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진보 쪽입니다. 여론도 전부 그쪽 편이고요. 만약 이대로 법원이 탄핵 가결을 시켜 버리면 그 이후가 더 문제입니다. 진보 정당은 곧바로 특검을 열어 대통령님을 조사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탄핵까지 가려면 시간이 걸리니, 차라리 지금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하십시오. 그리고 지금까지 나온 의혹들은 전부 없던 일로 만드는 겁니다. 그것이 최선의······.”

“이게 미쳤나!”

유미화 대통령은 악을 쓰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지금 나더러 물러나라고? 하야를 해? 이게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너 그 새끼들이 보낸 거지? 나더러 알아서 물러나라고 꼬드기라고 시킨 거잖아!”

“대, 대통령님. 그게 아니라 저는 정말로 대통령님을 위해서······.”

“입 닥쳐! 그리고 넌 오늘부로 해고야.그러니까 당장 꺼져. 꼴도 보기 싫으니까!”

그렇게 보좌관 하나가 이름표를 잃게 됐다.

유미화 대통령은 화가 풀리지 않은 목소리로 씩씩 대다 말했다.

“성명문 만들어 와.”

“네?”

“어떻게든 상황을 반전시켜야 할 거 아니야. 내가 내일 대국민담화를 할 테니까, 성명문 하나 만들어 와. 잘 만들어야 한다. 너희들 목이 걸린 일이야.”

그녀의 말에 보좌관들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그들도 알고 있었다.

고작 성명문 하나로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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