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80화
비선실세에 의해 지배받는 청와대.
흡사 후한을 멸망하게 만든 십상시를 보는 것만 같다.
갖은 의혹과 증거들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여전히 청와대는 침묵하고 있다. 아니. 그들은 대응할 가치도 없다는 듯 뻔뻔한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천하 그룹이 이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천하 그룹은 국민연금공단의 강한 지지에 따라 무리한 합병을 이뤄 내려 한다. 분명 주주들에게 큰 피해가 갈 수 있는데도 그들은 눈과 귀를 전부 막은 상태다.
이들의 꽉 막힌 소통은 대체 어떤 자신감에서 오는 것일까?
“글 한번 잘 썼네요.”
나는 보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았다.
김문혁 비서실장이 터트린 폭탄.
그것을 시작으로 언론에서 일제히 청와대를 공격 중이다. 그리고 그에 더해 나는 천하 그룹까지 하나로 엮어 압박하고 있었다.
“소문이란 소문은 다 만들어 내는 중입니다. 처음에는 반응이 미적지근했는데, 언론에서 계속 관련 문서들을 보도하니까 사람들이 점점 믿는 눈치입니다.”
정보의 홍수 인터넷.
그곳에 과연 진실이 담긴 정보는 몇이나 될까.
더 이상 사람들이 TV만 보는 바보가 아니기에, 언론 조작은 점점 영악하게 바뀌고 있었다.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을 올리고 추천 수를 조작해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계속 노출을 시키고 있습니다. 거기에 담긴 내용들 중 뭐 20% 빼고는 다 과장된 거짓일 겁니다.”
나는 언론사를 이용하기보다는 젊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와 카페들을 활용했다. 추천수를 조작하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현재 잘나가는 커뮤니티 사이트들은 전부 J&H가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이렇게 세상이 바뀔 것을 알고 투자를 한 덕분이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청와대가 비리의 온상지라는 걸 굳게 믿고 있었다.
“유미화 대통령은 정신 지배를 받고 있고, 구영실은 사이비 교주로 국가 주요 요직에 자신의 신도들을 앉히고 있다는 글을 사방에 뿌렸더니 반응이 좋더군요.”
권 대표는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자기가 들어도 정말 말이 안 되는 얘기였으나,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언론에 풀고 그럴싸하게 자료를 조작해서 커뮤니티에 올리니, 사람들은 그것이 정말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참 회장님은 대단하십니다. 솔직히 커뮤니티 사이트들을 다 사들인다고 하셨을 때만 하더라도 이게 괜찮은 투자인 건지 의문이었습니다.”
“그땐 왜 안 말리셨어요?”
“어차피 큰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회장님이 언제 투자에서 틀린 적이 있었습니까? 그래서 입 꾹 다물고 있었죠. 그런데 지금에 와서 보니 역시 이번에도 회장님이 옳으셨습니다.”
연신 권 대표가 감탄을 터트리고 있을 때였다.
“회장님.”
경호실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맡긴 일을 보고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는 여러 문서들을 내 앞에 건넸다.
그곳에는 사진들이 첨부되어 있었는데, 일전에 우리가 폐차장에서 잡은 조직 관계도였다. 또한 그 조직들이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지도 세세하게 나와 있었다.
“다 알아본 겁니까?”
“예. 2년 전부터 대단한 스폰서를 잡아 세력을 키운 놈들이었습니다.”
“대단한 스폰서요?”
“네. 그쪽 바닥에서도 소문이 쫙 났더군요. 처음에는 정체를 알아내기가 힘들었는데, 꼬리를 물고 계속 추적해 보니 의외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나는 문서 끝에 적혀 있는 이름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천하 그룹?”
“예. 천하 그룹 산하인 천하 물산에서 자금이 나온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자세히 조사를 해 보니, 천하 물산 부회장 장현욱 이름이 나오더군요. 아마 그 조직은 장현욱 개인이 회사 자금을 조금씩 빼돌려 스폰을 해 준 것 같았습니다.”
장현욱이라.
저번 청와대 경제인 모임 때 그는 간절한 얼굴로 내게 말했었다.
자신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말이다.
“장현욱이라면 후계 구도에서 완전히 밀려난 사람 아닙니까?”
“예. 장남인 장선욱이 다 물려받고, 장현욱은 찬밥 신세죠. 장연욱 회장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장선욱이 자기 동생을 어떻게 조질지 모른다는 얘기가 많잖아요. 워낙 그 집안은 나눠 갖는 걸 싫어하니까요.”
장연욱은 선대로부터 회장 자리를 물려받긴 했으나, 천하 그룹의 모든 걸 물려받은 것은 아니었다.
이리 뜯기고 저리 뜯겨 여러 계열사들이 분리되었다.
그 아픔 때문인지, 장연욱은 그 어떤 계열사도 장현욱에게 남겨 주지 않았다. 오로지 장선욱에게 모든 걸 넘겨주고자 지분 구조를 바꿔 버린 것이었다.
“그 양반도 독하네요. 아들한테 계열사 하나도 주지 않다니.”
“그래도 지갑에 든 돈은 좀 주겠죠. 천하 그룹의 핏줄 아닙니까? 비루하게 살게 할 순 없으니, 아마 평생 써도 마르지 않는 재산을 남겨 주긴 할 겁니다.”
물론 그런 재산이 장현욱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회장님?”
“정확히 어떤 걸요?”
“말씀만 하시면 이 조직들을 하나씩 잘라 내겠습니다. 아예 이 땅에서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저번 폐차장 때 경호실장과 처리조의 실력은 잘 봐서 알고 있다.
증거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그 일대를 정리한 사람들이다.
이 땅에서 사라지게 만들겠다는 건 진심일 터.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우리가 산통을 제대로 깬 거 같은데요? 장현욱 부회장은 지금쯤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지도 모르죠.”
아닌가?
오히려 좋아할 수도 있다.
자기가 할 일을 남이 대신해 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한 번은 만나 봐야 할 것 같았다.
* * *
“흠······.”
장현욱 부회장은 텅 빈 공장에 앉아 자신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남성을 내려다보았다.
그 남성은 머리에 피가 철철 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을 싹싹 빌고 있었다.
“부회장님. 믿어 주십시오. 저는 정말 어떻게 된 일인지 모릅니다. 폐차장에 갔을 때 그 애들이 다 사라질 줄 정말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뒤통수를 맞았다? 조직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내가 준 돈으로 약이나 빨고 다녔나?”
“아, 아닙니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남성의 머리를 발로 짓밟았다.
“내가 이래서 짱깨 새끼들을 못 믿어. 이 버러지 같은 놈들.”
“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기회 주면 할 수는 있고? 지금이 몇 번째인 줄은 알고 말하는 거지?”
마음 같아서는 이놈의 머리를 터트리고 싶었으나, 장현욱 부회장은 꾹 참았다.
애써 돈을 빼돌려 키운 조직이다. 여기서 무로 돌릴 순 없다.
“어떻게든 알아내. 지금 언론에 자료가 유출되고 있는 걸 보면 분명 누군가가 그 하드들을 가지고 있는 거야. 어떤 새끼한테 흘러갔는지 반드시 알아내 와. 안 그러면 다음번에는 네 대가리를 내가 직접 잘라 버릴 거다.”
“예! 무,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남성이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자 다른 조직원들도 그 뒤를 따랐다.
장현욱 부회장이 한숨을 푹 쉬며 다시 자리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는데, 갑자기 밖에서 소란 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야?”
“으아악!”
방금 전 나간 조직원들의 비명 소리였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장현욱 부회장이 경호원들에게 말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빨리 나가서 알아봐.”
“넵!”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경호원들이 나가기도 전에 왠 무리가 우르르 들어와 그들을 포위했기 때문이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자리를 박차고 도망칠 수도 없었던 장현욱이었다.
누구지?
설마 형님인가? 아니면 아버지?
그런 생각도 잠시.
“오랜만에 뵙습니다, 장현욱 부회장님.”
놀랍게도 자신을 찾아온 건 J&H의 회장, 이진석이었다.
* * *
눈알을 열심히 굴리는 모습이 귀엽군.
장현욱은 갑작스러운 내 방문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내 의도가 무엇인지, 또 자신이 여기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는지, 아마 머리가 복잡할 것이다.
“어떻게 알고 온 겁니까?”
“저 조선족 놈들 뒤를 따라온 겁니다. 저놈들을 따라가다 보면 회장님이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 그걸 어떻게······.”
“의외로 눈치가 느리시군요.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장현욱 부회장은 잠시 멍하니 날 바라보다 운을 뗐다.
“설마 회장님이셨습니까? 중간에 자료를 가로챈 것이?”
“네. 좀 거친 방법을 썼죠. 그래도 걱정은 마세요. 증거를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처리했으니까. 아마 잡음은 없을 겁니다.”
“······.”
장현욱은 허탈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동안 답답했습니다. 누가 중간에 자료를 빼앗아 간 건지 몰라서요. 그런데 그게 회장님이었다니······.”
“저도 부회장님이 그 자료들을 노리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공을 들여 추적을 하기도 했고요. 계속 파헤치다 보니 부회장님 이름이 나오더군요.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절 만나려고요?”
“네. 우리 둘은 공공의 적이 있지 않습니까? 중간에 제가 부회장님의 자료를 빼앗은 꼴이 되긴 했지만, 결국 목적이 같으니 활용하려는 방법도 똑같지 않을까요?”
그제야 장현욱 부회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내가 적의를 가지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회장님은 제 편에 서 주실 겁니까?”
“글쎄요.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합니다. 저는 현 정부와 천하 그룹의 아성을 깨뜨리고자 합니다. 부회장님도 그렇습니까?”
“예. 아버지는 저를 버렸고, 청와대는 이미 천하 그룹의 개가 되었습니다. 제가 그 둘에 더 이상 뭘 바라겠습니까?”
“천하 그룹이 많이 다칠 수도 있습니다. 부회장님이 쿠데타에 성공해 회장 자리에 오른다고 해도 예전의 천하 그룹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람 구실도 못 하고 쫓겨나는 것보단, 차라리 상처 입은 왕좌라도 앉아야겠습니다.”
장현욱의 의지는 확실했다.
그는 변방으로 쫓겨나는 걸 죽는 것보다 싫어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우린 이제 동맹 관계군요. 동맹인 만큼 서로 알고 있는 걸 한번 까 볼까요? 그 하드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는 알고 계십니까?”
“대충은 알고 있지만, 자세히는 모릅니다.”
“음. 그럼 자료 공유를 해 드리죠. 부회장님이 원하는 게 전부 그곳에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저도 지금껏 모아온 것들을 회장님에게 드리겠습니다.”
장현욱은 자신의 조직을 이용해 차곡차곡 증거들을 모아 놓았을 것이다.
예전에는 아무짝 힘도 쓸 수 없는 증거들이라 활용을 못 했는데, 지금은 충분히 활용 가치가 높을 것이다.
“그 힘이 충분해야 할 겁니다. 괜히 시시한 것들을 꺼냈다가는 우리의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어요.”
“천하 그룹이 그동안 정권과 결탁해 저지른 비리들의 증거를 모아 놓은 겁니다. 절대 약할 리 없습니다. 단지 때가 안 돼서 세상에 내놓지 못했을 뿐이죠. 하지만 지금은 회장님이 판을 깔아 주신 덕분에 언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겁니다.”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장현욱이 그것들을 내놓아 천하 그룹을 정면으로 압박하기 시작한다면 아마 재밌는 그림이 많이 그려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