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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77화 (177/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77화

“허-. 이것 참.”

장연욱 회장은 아침부터 소란스러운 TV를 바라보며 짧게 혀를 찼다.

뉴스에는 김시을 여당 대표가 정식 사퇴를 한다는 발표로 시끄러웠다.

국회에 법안을 상정하는 날이 이제 코앞인데, 그 핵심인 김시을 대표가 이렇게 물러나게 됐다. 굳이 세세하게 파고들지 않아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대충 눈치챈 장연욱 회장이었다.

“이거, 이진석 작품인가?”

옆에 묵묵히 서 있던 비서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회장님. 야당에 먼저 소스를 제공한 것이 이진석이고, J&H 라인 쪽 검사들이 토스를 받았다고 합니다.”

“쯧-. 평소에 조심 좀 하라고 했더니, 일을 이따위로 만들어? 여당 대표라는 놈이 말이야.”

“어떻게 할까요?”

“그 새끼 변호하겠다는 놈 있으면 천하 그룹이랑은 연 끊을 각오 하라고 해.”

“잘 알겠습니다.”

이것으로 김시을의 정치 인생은 끝이 난 거나 다름이 없었다.

“법안 추진은 어떻게 되고 있어?”

“대표가 갑자기 사퇴를 하는 바람에 지금 여당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차기 대표 선출을 위해 파가 세 개로 나뉜 상태고요.”

“한심한 놈들. 그 자식들은 의원 좌석을 아무리 많이 던져 줘도 할 수 있는 게 똥 퍼다 나르는 것밖에 없어요.”

집권 초기부터 개판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노답일 줄은 몰랐다.

물론, 개판일수록 부리기가 쉽다는 점에 있어서는 장연욱 회장도 이익을 많이 보았다.

“빨리 대표부터 정하라고 압력 넣어. 법안 처리는 해야 할 거 아니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 회장은 심기가 불편했다.

얼른 법안을 통과시켜서 J&H의 팔다리를 하나씩 떼어 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표가 선출되면 다시 안정을 되찾을 것이고, 그때야말로 J&H의 고난이 시작될 것이다.

* * *

“이건 뭐 까도 까도 쉴 새 없이 나오는군요.”

경호실장이 가져다준 서류들을 보며 권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7개의 컴퓨터 하드 디스크에서 나온 자료들은 그야말로 비리의 온상이었다.

기자들에게 이 자료들을 전부 다 뿌려 버린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지······.

특히 천하 그룹과 관련된 비리들도 여럿 있었는데, 그중 눈에 띄는 것은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노조 강제 와해.

두 번째는 천하 물산을 이용한 불법 상속이었다.

이건 예전에 천하 물산 부회장 장현욱과 천하 금융 장기철 사장이 내게 슬쩍 뿌린 정보였다.

그때 그들은 천하 그룹이 어마어마한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천하 물산을 통하여 불법 상속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었다. 물론, 이렇다 할 자료나 증거가 없어 공론화를 시키진 못했는데 이 컴퓨터에는 그 증거가 담겨 있었다.

“천하 그룹의 뒤를 봐준 대가로 수백억을 챙기고 건물 몇 개도 얻어갔네요. 국민연금이 왜 천하 물산의 편을 들어 계열사 강제 합병에 찬성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천하 물산이 어떤 방식으로 지분 상속을 했는지는 이것만 보고 알 순 없다. 하지만 그들이 청와대, 그러니까 유미화 대통령의 최측근인 구영실 여사에게 돈을 준 시간과 그와 관련된 자료들이 모두 한곳에 담겨 있었다.

이것만 보면 천하 그룹이 정부와 합을 맞춰 아주 싼 값에 지분 상속을 진행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바로 터트리실 겁니까?”

아니. 지금 이걸 다 터트린다 해도 국민들은 잘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양이 너무 방대했다. 거기다 정말 제대로 할 거라면 무조건 사실을 말하기보다는 과장을 섞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소문이라는 건 원래 헛소리같이 과장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100% 중 30%의 증거만 보여 주면 나머지 70%가 개소리라고 해도 사람들은 100%를 다 믿게 되죠.”

“그 말씀은······.”

“일단 차근차근 소문을 퍼뜨리는 겁니다. 문고리 3인방, 유명하잖아요? 그런데 국민들은 그게 누군지 모릅니다. 우리 재벌들끼리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죠. 이거부터 공론화시켜서 유미화 대통령이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 줘야 해요.”

“그리고요?”

“천천히 야당을 통해 우리가 가진 정보를 푸는 거죠. 그것도 약간의 과장을 섞어서 말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도 에이 설마 하고 넘기겠지만, 증거들을 하나씩 풀게 되면 그게 진짜라고 믿게 될 겁니다.”

그 말에 권 대표가 인상을 굳혔다.

“회장님. 만약 그렇게 되면 J&H는 이제 여당과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는 겁니다. 특히 청와대와 말입니다.”

“어쩔 수 없죠. 그쪽에서 먼저 건드린 일입니다. 지금 부딪히지 않으면 눈 뜬 채로 팔다리가 뜯겨 나가는 걸 봐야 해요. 청와대는 이미 천하 그룹을 선택했으니,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 줘야죠.”

내 의지가 확고하다는 걸 알게 된 권 대표도 더는 반대를 하지 않았다.

“저도 끝까지 따라가겠습니다.”

“예. 일단 야당 쪽이랑 약속부터 잡아 주세요. 그쪽과도 상의를 해 봐야 하지 않겠어요?”

“아마 그쪽에서는 쌍수 들고 환영할 겁니다. 당장 오늘이라도 약속을 잡아 놓겠습니다.”

권 대표는 자기가 말한 대로 금방 약속을 잡아 두었다.

근처에 있는 한식집에 도착하자 날 기다리고 있던 건 기재욱 의원과 그 외 다른 의원들이었다.

대표는······ 없었다.

난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내 반응을 눈치챘는지 기재욱 의원이 얼른 내게 허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일단 여기 앉으시지요.”

“흠-. 대표님은 이 일에 관심이 없으신 모양입니다.”

내가 자리에 앉지 않은 채 대표 얘기를 꺼내자 기재욱 의원이 진화에 나섰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자리에는 대표님이 올 필요가 없습니다.”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아 나는 일단 참고 자리에 앉아 보았다.

“타당한 이유를 말씀해 주셔야 할 겁니다. 약속을 잡을 때 들으셨겠지만, 정권이 바뀔 만한 무기가 제 손에 있으니까요.”

“물론입니다.”

기재욱 의원은 잠깐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저희 야당도 새로운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혁?”

“예. 여당에 많이 밀리긴 했지만, 야당 지지층이 생각보다 두껍습니다. 여당이 그동안 저지른 부정부패가 많지 않습니까?”

“그건 야당도 만만치 않을 텐데요?”

“그렇긴 합니다만, 저희는 반쯤 더러운 상태고 여당은 온몸이 오물에 덮여 있죠. 국민들 눈에는 야당이 깨끗해 보일 겁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의원이 입을 열었다.

“회장님. 저희 민중당은 기존에 있는 대표를 몰아내고 새로운 대표를 선출할 계획입니다.”

“······네?”

“예. 그리고 회장님께서 가지신 무기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정권을 바꿀 만한 힘이라면 야당 쪽에서도 누군가를 내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양반들이 지금 쿠데타를 준비하는 건가?

“개혁의 의미로 현 대표를 몰아내고 기재욱 의원을 새로운 대표로 내세울 작정입니다. 그와 동시에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자료들을 오픈한다면 국민들에게 참신한 인상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차기 대통령까지도 노려 볼 수 있을 테고요.”

기재욱 의원을 새로운 대표로 내세운다는 계획이라니.

“잠깐만요. 그 말씀은 진강호 의원을 제치고 기재욱 의원을 차기 정권의 주인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겁니까?”

진강호 의원.

지금은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 있긴 하지만, 그는 저번 선거 때 유미화 대통령과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아마 이번에 별일이 없다면 다음 대선에 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를 지지하는 층도 여전히 존재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들이 나누는 얘기를 들어보면 진강호 의원을 대선에 내놓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현재 우리 민중당 대표와 진강호 의원은 거의 주종 관계나 다름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대표를 몰아내고 기재욱 의원을 전면에 내세운다면 진강호 의원도 결정을 해야 할 겁니다.”

“탈당인지 잔류인지?”

“예.”

글쎄. 과연 가능할까.

야당 내부에 진강호 의원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그런데 이 말을 제게 하는 이유가 뭡니까?”

“회장님께서 도움을 주십시오.”

“제가요?”

“예. 여당 대표가 제 발로 물러난 것처럼, 야당 대표도 자기 발로 알아서 물러날 수 있게 힘을 주십시오.”

나는 일단 한 발 슬쩍 뺐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제가 무슨 정치하는 사람도 아니고. 저한테 그럴 힘이 있겠어요?”

“회장님께서 언론사를 주무르고 계시다는 거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천하 그룹이 저렇게 날뛰고 있는데도 회장님에 대한 여론은 그대로이니까요.”

그거야 내가 잘한 것도 있지만, 내가 미리 인수해 놓은 언론사들이 스피커를 막아 둔 영향도 있다.

“야당 대표에 대한 비리는 저희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전부 넘겨 드리겠습니다.”

“그걸 언론사에 뿌리는 건 내가 해라?”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저희 민중당은 J&H가 하는 모든 일을 지지할 겁니다. 또한 넘겨주시는 자료를 파악하고 내리는 지시에만 따르겠습니다.”

분명히 말했다.

‘지시’라고.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원래는 야당 대표를 만나 자료를 넘겨주고 상의를 하려 했는데, 지금 이들은 새로운 이무기를 용으로 만들고자 내게 왔다.

과연 이것이 옳은 선택일까, 아니면······.

“좋습니다.”

“······!”

“단, 약속은 잊지 마세요. 제 지시에 무조건 따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얼마나 끔찍하게 지독한 놈인지 뼈저리게 느낄 겁니다.”

“목숨을 걸고 약속드리겠습니다.”

정치인만큼 믿을 수 없는 놈이 없다만, 나도 한번 베팅을 해 보기로 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쳤다.

그러자 기재욱 의원이 얼른 자료 파일을 건넸다.

“몇 년 동안 모아 둔 자료입니다.”

나는 천천히 자료를 살피다 기재욱 의원을 슬쩍 바라보았다.

능구렁이 같은 놈.

대표 옆에서 오른팔 역할을 자처하면서 뒤로는 이런 걸 모으고 있었다니.

이 정도로 세세한 정보와 양이라면 처음부터 계획을 하고 대표에게 접근한 것이 분명했다.

“이 정도면 사실 내가 나설 필요도 없겠군요.”

“아닙니다. 회장님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야당 내부에 있는 의원들 중 절반 이상이 진강호 의원을 지지하고 있으니까요. 그들의 입을 막아 주셨으면 합니다.”

“점점 요구하는 게 많아지는군요.”

“죄송합니다.”

언론과 야당 내부에 있는 의원들을 와해시키는 것.

이들이 바라는 건 이 두 가지였다.

나는 자료를 가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습니다. 이왕 투자하기로 한 거 제대로 해 드리죠. 하지만 실망시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요.”

“회장님. 오늘 보여 주신다는 자료는······.”

“그건 의원님이 민중당 대표가 된 후에 제대로 얘기를 나눠 보죠.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내가 먼저 밖으로 나가자 의원들인 쫓아 나와 내가 차에 타고 사라질 때까지 굽힌 허리를 펴지 않았다.

차기 야당 대표라-.

이 일이 잘만 되면 기재욱 의원은 가장 유력한 야당 대통령 후보를 제치고 봉황 의자에 앉게 된다. 그리고 그 대통령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내가 된다면······!

순간 두 주먹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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