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75화
“흠-.”
“크흠-.”
정대용과 정대환.
그래도 한때 서로 형, 아우 하며 즐거웠던 때가 있다.
하지만 오늘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가 되어 팽팽한 긴장감을 드러냈다.
“더 이상 현광 건설 그룹의 회장 자리를 공석으로 비울 순 없는 노릇입니다. 이에 따라 주주총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정대용 부회장의 측근인 홍 이사가 운을 떼면서 총회의 시작을 알렸다.
당연히 그의 측근들은 정대용 부회장의 정통성을 주장했다.
“회장 자리를 대신하라고 부회장 자리가 있는 겁니다. 회장 자리가 공석이면 당연히 부회장님이 그 뒤를 채우면 되는 것이고요. 이게 왜 논란거리인지도 모르겠군요.”
이에 질세라 정대환 쪽도 반격에 나섰다.
“돌아가신 회장님께서 일부러 지분을 절반씩 나누셨다는 건 무슨 뜻이겠습니까? 부회장님의 자질을 의심한다는 겁니다. 부회장님이 처음부터 잘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맞습니다. 부회장님이 탁월한 경영 능력을 보이셨다면 회장님이 곧바로 자리를 물려주셨겠지요. 그런데 그러지 않으셨다는 건 부회장님의 능력을 의심하셨다는 겁니다.”
결국 먼저 터진 건 정대용이었다.
“뭐, 뭐야?! 내 능력을 의심해? 이봐. 당신들. 저번에는 아주 허리가 부서져라 굽신거리던 놈들이 이제 와서 뭐? 하! 이 새끼들이 진짜 한번 해 보자는 거지?”
“부회장님. 진정하십시오.”
“진정? 진정할 게 뭐가 있어! 난 이곳 부회장이야! 부회장으로서 회장 자리를 갖는 건 당연한 의무라고! 그런데 네까짓 것들이 감히 딴지를 걸어?”
보다 못한 정대환이 나섰다.
“형님. 그만하고 앉읍시다. 사람들 보는 눈도 있는데, 이게 뭐 하는 겁니까?”
“야. 이런 개 짓거리 집어치워! 그리고 넌 입 닥치고 나 따라와.”
처음부터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는 주주총회였다.
정대용은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고, 정대환은 한숨을 푹 쉬다 속으로는 미소를 지었다.
이번 게임은 자신의 승리다.
저런 감정적인 모습을 보였으니, 주주들도 생각하는 바가 달라질 것이다.
“씨발. 진짜 끝까지 이럴 거냐?”
흡연장에 도착한 정대용은 담배를 입에 물고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정대환도 물러서지 않았다.
“뭐가.”
“뭐가? 지금 뭐가라고 했어?”
사람들 보는 눈도 없으니, 더는 존대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만 칭얼대지? 어차피 지분 싸움이잖아. 그런데 아직 결판도 나지 않은 상태에서 회장 자리를 가져가시겠다? 어림도 없지.”
정대용은 애먼 담배만 뻑뻑 피워 댔다.
“어휴. 이 새끼를 한 대 때릴 수도 없고.”
“그럼 나야 땡큐지. 폭행죄로 형 엮어 버리고 내가 회장 자리 먹으면 되잖아.”
순간 살의가 번뜩이는 정대용이었지만 꾹 참았다.
대의가 눈앞에 있는데, 감정에 휘둘려 그걸 다 날려 먹을 순 없다.
“똑바로 생각해라. 네가 지랄해 봤자 어차피 이 싸움은 내가 이기게 되어 있어. 그러니 그냥 좋게 가자. 형제끼리 싸워서 뭔 이익을 보겠냐? 큰아버지 못 봤어? 괜히 형제끼리 칼춤 추다가 다른 놈한테 다 빼앗겼잖아.”
“그걸 잘 아는 사람이 이진석한테 손을 벌렸수?”
“뭐, 뭐야?”
“총알 많아서 든든한 건 알겠는데, 나도 이제 돈 많아. 이진석이 나한테도 요긴하게 쓰라고 돈을 툭 던져 주더라고.”
정대용은 연기를 잘못 삼켜 켁켁 기침을 터트렸다.
“잠깐. 뭐라고? 이진석이 너한테?”
“몰랐나 보네. 이렇게 정보가 느려 터져서야 나랑 싸울 수 있겠수? 자존심 상하지만 어떡해. 나도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수밖에. 그래서 이진석한테 돈 좀 빌렸지.”
“어, 얼마를?”
“형이랑 비슷한 값이겠지?”
“이런 미친!”
정대용은 피우고 있던 담배를 패대기쳤다.
“이진석한테 손을 벌렸다고? 네가 왜!?”
“그럼? 가만히 앉아서 눈 뜬 채로 코 베이라는 거야?”
“너······ 설마 지분을 담보로 걸은 거냐?”
“형님도 그러셨수? 우리 형제가 닮은 구석은 있네. 똑같이 소중한 지분을 남한테 던져 준 걸 보면.”
“야! 너 지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거 같은데, 네 말대로라면 이진석이 우리 목줄을 잡고 있는 거야!”
이진석이 무려 40%의 현광 건설 그룹 지분을 담보로 잡고 있다. 그것도 2조 원이라는 금액으로 말이다. 실제 가치는 2조 원을 훨씬 넘는 지분들이지 않은가. 만약 저 돈을 해결하지 못하면 모든 경영권이 이진석에게 넘어가는 건 자명한 일.
“이거 아무래도 우리가 제대로 걸린 거 같은데······.”
“제대로 걸린 건 형이겠지. 난 괜찮아. 그깟 1조 원. 갚으면 돼. 건설이 특히 돈 만들어 오는 데에는 뛰어나잖아?”
“1조 원? 2조 원이겠지. 둘 중 하나가 지면 그 빚을 그룹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는 건데? 너 2조 원 감당할 수 있겠어?”
정대환도 살짝 안색을 굳혔다.
그러다 이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꾸했다.
“쫄리면 뒈지시든가.”
“그래. 내가 너같이 답답한 새끼랑 무슨 말을 더 하겠냐.”
결국 정대용은 담배를 하나 더 문 뒤 한참을 피워 댔다.
정대환도 그 옆에서 같이 담배를 물었다.
“끊었다더니.”
“형이 옆에서 피우니까 나도 피우게 되잖아. 짜증 나게.”
“흥. 그런 놈이 담배를 들고 다녀? 글렀네.”
정대용은 거의 담배를 다 피우고 나서 말했다.
“둘 중 하나가 뒤질 때까지 한번 해 보자. 난 안 봐줘. 이 일로 회사가 존나 말도 안 되게 기울어도 난 상관 안 해. 너만 이기면 되니까.”
“아주 투지가 활활 타오르네. 나도 가만있지만은 않을 거요. 신나게 싸워 보자고.”
정대환이 먼저 담뱃불을 끄고 밖을 나갔다.
자신 있게 말을 하긴 했지만, 사실 정대환도 느끼는 바가 컸다.
사람들은 지금 두 사람의 싸움을 형제의 난이라고 표한다. 그런데 형제의 난에서 승리하는 쪽이 무조건 회사를 차지한다는 조건은 없다.
그들에게 변수로 작용된 이진석.
대기업 헌터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이진석이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는 상상도 못 할 일.
이대로 형제의 난이 치열하게 막을 내리게 되면 둘 중 하나는 떠나고, 남은 하나는 큰 부상을 입은 채로 회장 자리에 오를 것이다. 그리고 이진석이 약해진 틈을 타 뒤를 찌를지도 모른다.
왠지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정대환이었다.
* * *
“여당이 금융 독재 방지법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최근 J&H 그룹이 금융계 압도적인 1위에 오르면서 금융 시장 혼란이 올 것을 대비하기 위함인데요. 여당은 금융 기업의 독재는 곧 고객들의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에 따라 법안을 만들려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드디어 본격적인 금융 독재 방지법이 윤곽을 드러냈다.
언론에서는 하루 종일 그것 때문에 시끄럽다. 또한 J&H 금융 주가는 계속해서 하락세를 보였다. 벌써 오늘만 15%가 하락했다.
주가가 하락하는 건 사실 상관없었다. 그거야 언제든 다시 오를 수 있으니까. 문제는 여당이 내놓은 법안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나오면 우리 그룹이 가진 일부 계열사들을 반강제로 없애 버려야 합니다. 이게 대체 말이나 되는 겁니까? 기업 규모 제한이라니요. 그 어떤 나라도 이런 법은 없습니다.”
권 대표는 열불을 내고 있었다.
나도 이번만큼은 화를 참기가 힘들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 선을 좀 세게 넘긴 했네요.”
“이대로 절대 통과되어서는 안 됩니다.”
“압니다. 아주 잘 알죠. 그런데 저대로 여당이 힘을 밀어붙이면 야당이 막을 방법이 없을 거예요. 결국 남은 건 여론이라는 건데······.”
여론을 최대한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그러나 상대는 천하 그룹이지 않은가.
조금 깨어 있는 사람들은 이게 말도 안 되는 법안이라는 걸 알기에 반대했지만, 대다수 뉴스나 SNS에 떠도는 말만 믿는 사람들은 이 법안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게 문제였다.
“지금 SNS와 인터넷에 괴담이 돌고 있답니다. J&H가 금융 기업들을 하나씩 장악하고 나면 수수료를 올려서 돈을 갈취할 거라고요. 거기다 은행 금리까지 마음대로 끌었다가 내리는 게 가능해서 마음대로 돈을 빼갈 거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습니다.”
뭐, 완전히 틀린 괴담은 아니었다.
내가 정말 금융 기업들을 다 먹어 치우고 나면 고객들은 내가 하라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당장 큰손들도 나 말고는 돈을 맡길 곳이 없어 내 지시에만 쭉 따라야 돈을 벌 수 있게 된다.
특히 수수료를 무지막지하게 올려 돈을 뜯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경쟁사들이 있으니 그런 짓을 못 하지만, 나중에 경쟁사들이 다 없어지면 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하지만 난 그럴 생각이 없다.
내가 원하는 건 세계 자본을 뛰어넘는 대한민국 시장이다.
“언론전은 계속 펼쳐 주세요. 이걸 밀리면 안 됩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계속 뉴스를 바라보며 주변 반응이 어떤지 계속해서 살폈다. 그렇게 어느덧 시간이 가고 시장은 폐장했다.
앉아 있어 봤자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아 나는 일찍 퇴근했다. 오늘따라 와이프가 그리웠다.
“오늘도 고생했어, 여보.”
“응. 당신도 고생했어. 그런데 어떻게 당신은 날이 가면 갈수록 예뻐져?”
“호호. 뭐야, 갑자기. 뭐, 이게 얼마짜리 관리를 받은 얼굴인데, 안 예쁘면 이상한 거지.”
말은 저렇게 해도 오희진은 원판이 워낙 넘사벽이라 관리를 받든 받지 않든 항상 예쁠 것 같았다.
“오랜만에 같이 한잔할까?”
“좋지. 안 그래도 힘든 일 있는 거 같더라. 한 잔 마시면서 스트레스 좀 풀어.”
마침 머리가 무거웠는데, 오희진 덕분에 힐링을 받는 기분이다.
우리 두 사람은 가볍게 와인을 한 잔씩 한 뒤 밤을 보냈다. 물론, 나는 왠지 잠이 오질 않아 침대에서 일어나 내 개인 서재로 갔다. 그리고 서랍에서 핸드폰을 꺼내 미래 커뮤니티 센터 어플로 들어갔다.
“뭐라도 건져야 할 거 같은데.”
나는 쭉 핸드폰을 내리면서 커뮤니티 센터를 살펴보았다.
별로 이렇다 할 정보는 없었다.
다들 J&H 얘기로 시끄러웠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뒤에 여당이 정식으로 법안을 내놓게 된다. 즉, 국회에서 망치질 두 번에 통과가 되면 J&H는 규제에 따라 규모를 강제 축소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시작이 되어 앞으로도 정부는 계속해서 J&H를 공격할 게 뻔했다.
물론 여론의 반응이 뜨거우면 법안 처리가 밀릴 수도 있지만, 그냥 다 무시하고 여당이 억지로 법안을 밀고 갈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법한 큰 한 방이 필요하다.
그리고 항상 이럴 때면 미래 커뮤니티 센터는 기다렸다는 듯이 날 도와주곤 한다.
이번에도 뭔가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지 않을까?
[새로운 이벤트 알림!]
핸드폰을 잡은 내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진짜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하는 건가?
-새로운 정보가 회원님에게 찾아왔습니다!
[서울 종로구 AKA 상가 2층 사무실은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고자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낡은 컴퓨터 몇 개를 버리기로 했는데요. 여기에 왠지 중요한 정보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어떤 정보들이 그 안에 들어 있을까요? 버리는 사람이 조금만 주의를 했다면 하드를 다 부쉈을 텐데 말입니다.]
난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경호실장에게 전화부터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