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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74화 (174/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74화

“허-. 미친놈이네.”

J&H 공식 출범회를 방송으로 보고 있던 장연욱 회장의 짤막한 평가였다.

미친놈.

그래. 저 정도면 정말 미친놈이라 불러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남자라면 저 정도 배짱은 있어야지. 안 그러냐?”

“예, 회장님.”

잔잔하게 대답을 한 장선욱이었지만, 속으로는 적잖게 놀란 상태였다.

설마 이걸 이런 식으로 정면 돌파할 줄이야.

J&H가 금융 독재를 하려 한다는 언론전을 펼친 건 천하 그룹이었다. 그리고 그에 호응하여 위기감을 느낀 각 금융 기업들이 합세했다.

이 정도 했으면 눈치를 보고 몸을 사릴 줄 알았는데, 야수의 심장을 가진 이진석은 그대로 정면 돌파해 버렸다. 그것도 해외 자본에 흔들리지 않는 국내 금융 시장을 만들겠다는 프레임을 씌워서 말이다.

다른 사람이 저런 말을 했다면 사기꾼이라고 욕했겠지만, 상대는 이진석이다.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와 마침내 금융 1위 기업을 세운 전설의 인물.

그런 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무게는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제까지 그가 내세운 계획 중 이뤄지지 않은 게 단 하나도 없지 않던가.

“보통 사람이라면 무시하고 넘어갔겠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경계할 수밖에 없겠어. 만약 이대로 저놈이 금융 기업들을 하나씩 먹어 치우면 모든 고객들이 저놈 손에 넘어갈 게다. 벌써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중이기도 하고.”

신화 금융이 넘어간 이후부터 고객들이 우르르 J&H에 몰리는 추세였다. 이대로 간다면 모든 고객들의 씨가 마르고 J&H가 전부 다 독점할 터.

천하 그룹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겠는가.

한술 더 떠서 놈은 다른 은행들과 차별화된 시스템을 가진 은행을 세워 고객들 흡수하기에 나섰다.

위험하다.

이대로 가면 정말로 금융 독재가 시작될 것 같았다.

분명 장연욱도 그것 느꼈기에 이진석을 견제하는 것이리라.

“이번 일, 이 애비가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잘할 수 있겠지?”

“예. 회장님이 걱정하시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이번 일만 잘 끝나면 천하 그룹은 온전히 네 것이 된다. 이미 물산 쪽으로 지분 이동을 시작하고 있으니까.”

장연욱 회장이 꾀하고 있는 건 잡음 없이 지분 이동을 마치는 것이었다.

세상이 너무 발달했다.

사람들은 듣는 귀가 열렸고, 보는 눈이 넓어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아는 것도 많아졌다. 예전에는 편법을 이용해 상속세를 쏙쏙 빼먹어도 별로 시끄럽지 않게 넘어갔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개돼지 같은 놈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니. 세상 참 좋아졌어. 그래도 이번 건은 정부에서 조용히 처리를 해 주겠다고 했으니, 넌 그냥 받기만 하면 된다.”

장선욱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그리고 요즘 세상은 이미지가 중요한 것 같더구나. 네 얼굴을 종종 사람들에게 보여 줘라. 최대한 좋게 꾸며서 포장을 하면 저 멍청한 놈들은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것 같으니까.”

내심 감탄했다.

장연욱은 나이가 들었음에도 언제나 깊은 통찰력으로 세상의 흐름을 꿰뚫어 본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이진석 그놈만큼 하라는 게 아니다. 딱 절반만 해라. 그 정도면 이 회사를 계속 성장시킬 수 있을 거야. 내가 이미 깔아 둔 게 많으니까.”

“예.”

장연욱이 깐 것은 바로 탄탄대로였다.

장선욱은 그저 그 위를 밟기만 하면 됐다.

“회장님. 여당 대표 전화입니다.”

“음. 참 빨리도 전화했구먼.”

투덜거리며 전화를 받았지만, 상대에게 말하는 목소리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아이고, 김 대표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회장님. 그렇지 않아도 소식이 들리지 않아 걱정 많이 했습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허허. 나야 뭐 괜찮죠. 나 죽으라고 고사 지내는 놈들이 많아서 그런지 아주 쌩쌩합니다.”

-하하. 회장님이 오래오래 사셔야 우리나라 경제가 바로 설 것 아닙니까?

“저야 열심히 나라에 봉사하는 정신으로 노력하는 거죠. 그런데 오늘 뉴스를 보니까, 이런 제 노력이 배신당하는 것만 같더군요.”

여당 대표, 김시을은 낮아진 장 회장의 목소리에 긴장했다.

현재 여당 최고의 후원자인 장연욱 회장이지 않던가.

은둔 생활을 이어 가던 그가 갑작스레 전화 한 통 넣어 달라는 요청이 왔을 때 심장이 철렁거릴 정도였다.

-어떤 것 때문에 그러십니까?

“요즘 그 말이 많더군요. 금융 독재다 뭐다.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 아······ J&H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요. J&H. 요즘 세상에 독재가 가당키나 하답니까? 나도 작정하고 독점을 하려고 했으면 진작 했을 겁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이 기본적인 룰도 지키지 않고 그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예······. 그렇긴 합니다만, 저희도 내부에서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워낙 J&H를 이용하는 고객들 숫자가 많아서 말이죠.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난감한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요?

김 대표가 한 발 슬쩍 빼려고 하자 장연욱 회장은 피식 웃으며 말을 낮췄다.

“이보시오, 김 대표.”

-아, 옙. 회장님.

“지금 줄 서는 건가?”

-예?

“똑바로 말해 줬으면 좋겠군. 나도 J&H가 여당, 야당 가리지 않고 돈 뿌린다는 거 잘 알아. 그래서 지금 이러는 건가? 조강지처를 버리고 다른 년 치마폭에 푹 빠지기라도 한 모양이구먼.”

김 대표는 섬뜩함을 느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기까지 했다.

-아, 아닙니다. 회장님. 제가 어찌 감히 회장님의 은혜를······.

“그래.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으니, 이빨 빠진 호랑이 취급을 받긴 하겠지. 그런데 이렇게 획 돌변하는 건 좀 기분이 상하는군.”

-회장님.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오해를 풀어 주십시오.

“그래? 난 왜 자꾸 그런 기분이 들지? 내가 이 문제를 거론한 지 좀 되지 않았나? 그런데도 그따위 반응을 보이는 건 눈치가 없는 건가, 아니면 이제 날 무시하는 건가?”

김 대표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단 말인가.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여당 대표라고 해도 상대는 천하 그룹의 회장이다. 그와 연결된 법조인들 이름만 나열해도 입이 아플 정도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다시는 오해 사는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

“음. 그 말은 믿어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회장님.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장연욱 회장이 다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님. 시간 내서 한번 제 집에 들르시죠. 그동안 공직 생활 하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든든하게 몸 보양이라도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넵! 회장님이 부르신다면 언제든 가겠습니다.

“예. 간부들도 다 데려오십시오. 오랜만에 좋은 대접 해 드릴 테니.”

-잘 알겠습니다, 회장님.

전화를 끊은 장연욱 회장은 인상을 썼다.

“쯧. 은혜도 모르는 것들.”

“보수당이 선거도 압승한 뒤부터 기세등등하지 않습니까?”

“그래. 이래서 가끔씩 이놈들을 한번 밟아 줘야 한다는 거다. 나중에 너도 잊지 말고 전화 돌려. 정치하는 것들은 금방 다른 마음을 먹기 쉬우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장연욱이 말하는 ‘나중’이라는 건 과연 언제 오게 될까.

장선욱은 그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했다.

* * *

“금융 독과점 방지를 위해 여당이 본격적으로 법안을 추진 중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습니다.”

야당 1선 의원인 기재욱은 급히 나를 찾아와 여당이 진행 중인 법안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었다. 그는 야당 대표의 오른팔로, 내게 메신저 역할을 해 주는 중이었다.

“금융 독과점 방지요? 그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여당은 지금 어떤 법안을 내놓아도 통과시킬 자신이 있는 겁니다. 일단 좌석이 많으니까요. 그리고 들리는 소문에는 천하 그룹이 압력을 넣어서 법안을 만들고 있다는······.”

역시 천하 그룹이 압력을 넣은 것인가.

나도 여당에 지원해 주는 돈이 많다. 그런데도 이놈들이 내 뒤통수를 치려는 건 역시 천하 그룹의 입김 때문이었다.

“저희 야당은 회장님 편입니다. 여당이 이렇게 법안을 마구 통과시키면서 폭주를 하면 저희들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거든요.”

우리나라 정치 역사를 보면 항상 야당은 여당이 하는 일을 반대했다. 그렇게 여당이 물러나고 야당이 권력을 잡게 되면 그들은 예전에 반대했던 여당의 일을 고스란히 이어 가는 추태를 보여 주곤 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여당이 통과시키려는 법안을 반대할 것이다.

왜냐하면 여당이 추진하는 법안이니까!

특히 이 법안은 사람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게 될 터.

여당이 아무 견제 없이 법안을 통과시키는 걸 보면 국민들은 야당에 아무 관심도 주지 않게 된다. 그래서 더 열렬히 반대를 해야만 이들이 살 수가 있다.

내게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금감원과 검찰에서도 J&H를 전수 조사할 예정이라는 말도 같이 떠돌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천하 그룹 참······ 대단한 곳입니다. 정말 문어발처럼 사방에 손이 닿아 있으니까요.”

여당이 어떤 식으로 법안을 낼지는 나도 모른다.

확실한 건 내가 세워 놓은 금융 제국을 저들이 산산조각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장연욱 회장이 직접 설계를 할 테니 분명 어설프지 않을 터.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낀다.

“회장님이 어떻게 할 계획이신지 알려 주시면 저희 야당도 그에 맞추겠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원님.”

“예.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기재욱 의원이 나가고 나서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천하 그룹도 신경을 써야 하고 형제들이 피 터지게 싸우고 있는 현광 그룹도 신경을 써야 한다.

“회장님.”

기재욱 의원이 나간 것을 확인한 권 대표가 조용히 회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기 의원에게 들었던 얘기를 고스란히 권 대표에게 해 주었다.

“천하 그룹이 정말 이를 간 모양이군요.”

“예. 곤란할 정도로요. 그런데 맡은 일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서류를 가져왔습니다.”

권 대표가 내게 건넨 건 두 개의 계약서였다.

하나는 정대용, 다른 하나는 정대환에게서 받아온 계약서다.

“지분 20%에 둘 다 각각 1조 원씩 대출을 해 갔습니다.”

무려 2조 원이라는 돈이 현광 그룹에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둘 중 누가 권력을 잡든 이 돈을 전부 갚아야 한다.

단 한 푼도 깎아 줄 생각이 없다.

“그런데 둘 중 하나가 왕좌를 차지하고 나서 대출금을 전부 갚아 버리면 그냥 남 좋은 일 시켜 준 꼴이 되어 버립니다.”

권 대표의 말대로 이 둘이 무조건 망하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만약 이 둘이 힘을 합친다면 현광 그룹을 내 손에 넣겠다는 야망은 저 멀리 물 건너가고 만다.

“음. 뭐 좋은 건덕지 없을까요? 이 둘에게 완벽하게 엿을 먹일 만한 그런······.”

“지금 당장은 저도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천하 그룹 때문에 사실 정신이 없기도 하고요. 과연 금융법이 어떻게 나올지도 솔직히 겁납니다.”

권 대표도 천하 그룹 때문에 집중을 하기가 힘든 모양이다. 그리고 이것 말고도 내가 공식 석상에서 말한 금융 기업 인수 문제도 걸려 있지 않은가.

이렇게 한창 바쁜 와중에 천하 그룹이 칼을 뽑고 우리에게 돌진 중이다.

그때 난 집 서랍에 있는 핸드폰이 떠올랐다.

미래 커뮤니티 센터라면 내게 좋은 힌트를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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