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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73화 (173/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73화

“병원에서는 정식으로 인사를 못 드렸군요. 정대환 이사라고 합니다.”

그냥 가볍게 인사만 하고 지나갔던 정대환 이사가 내게 정중히 명함을 건넸다.

제 형과는 다르게 덩치가 작았으나, 준수한 얼굴을 보니 젊었을 적 인기가 많았을 것 같다.

“예.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사님.”

나는 진지하게 대화에 들어가기 전 분명히 말해 두었다.

“방금 전까지 제가 누굴 만나고 왔는지 아십니까?”

“저희 형님을 만나고 오셨던 겁니까?”

“예. 그리고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도 대충 예상하실 수 있겠군요.”

“그······ 혹시 자금적인 도움을 주기로 하셨는지요?”

“맞습니다. 자금적인 부분을 도와주기로 했죠.”

이미 예상하고 있었는지 정대환은 크게 놀란 모습을 보여 주진 않았다. 그는 은근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혹 얼마까지 해 주기로 하셨는지······.”

“7천억에서 1조 원입니다.”

예상했던 금액보다 훨씬 컸는지 그제서야 정대환은 놀란 입을 손으로 가렸다.

“그 대가로 뭘 받기로 하셨습니까?”

“그걸 제가 대답해 드릴 의무는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아. 그렇군요. 제가 실례를······.”

뭔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이대로 만남을 끝낼 게 아니라면 내가 던져 줘야 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이사님은 돈 안 필요하십니까?”

“예?”

“전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매우 중립적이죠. 물론, 정대용 부회장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요. 마음에 드는 조건을 내주신다면 이사님도 언제든 제 고객이 될 수 있습니다.”

정대환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전 아버님과 회장님이 별도로 나눈 이야기가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뭐, 장남을 도와주라든가······.”

“돌아가신 회장님이 정말 장남을 밀어줄 생각이었다면 지분 분배를 반반으로 나누셨겠습니까?”

“지분이 절반으로 나뉘었다는 걸 알고 계셨군요. 회장님이 말씀해 주신 겁니까? 아니면 형님이?”

“누구에게 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회장님의 유지는 정확합니다.”

“회장님의 유지가 정확해요?”

정대환은 호기심 가득 찬 눈동자로 날 바라보았다.

난 그에게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예. 그분은 한 사람이 독식하는 것보다 차라리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더 굳건한 현광 그룹을 만들어 가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지분을 반으로 나누신 겁니다. 서로 싸워서 쟁취하지 말고 제발 협력을 하라고 말입니다. 당신이 그러지 못했으니, 자식들만큼은 꼭 힘을 합쳐 주길 바랐던 겁니다. 그래야 천하 그룹이라는 아성을 넘어설 수 있을 테니까요.”

과연 오대환의 반응은 어떨까?

난 그의 눈동자만 봐도 대답을 알 수 있었다.

뭔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냐는 저 눈동자.

그래. 이미 저 형제는 글러 먹었다.

“둘이서 힘을 합쳐요?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형님이 저랑 순순히 힘을 합칠 것 같습니까? 오히려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빼앗을 생각만 하고 있겠죠. 한 핏줄이기는 하지만, 단 한 번도 가깝게 지낸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형제랑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는 게 정씨 집안의 특기인가.

아니. 그렇다고 내가 뭐라 할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난 이들의 싸움을 부추기러 온 것이니까.

이들이 피 터지게 싸우고 싶어 하니, 그들 손에 도끼와 칼을 쥐여 주는 것이 내 역할이다.

“이사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과연 회장님의 핏줄이시군요. 전투 의지가 활활 타오르시는 걸 보니 제가 다 흠칫거릴 정도네요. 응원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고 있습니다.”

“하하.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럼, 저도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죠. 형님과 같이 저 역시 자금이 필요합니다.”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예. 아시겠지만, 아버지께서 들고 계신 지분이 현광 그룹 전체의 50%였습니다. 그중에서 25%를 우리 형제들에게 넘겨 주신 거고요.”

현광 건설 그룹의 지분 구조는 다른 회사들과 다르게 정영준 회장이 50%나 쥐고 있었다.

타 대기업 오너들은 보통 20~30%에 해당하는 지분만 쥐고 있는데, 정영준 회장은 경영권을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50%의 지분을 확보해 낸 것이었다.

“경영권 싸움은 기관들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계열사 지분 인수입니다. 돌아가신 회장님이 일부러 이걸 노리신 건지, 그룹 지분이 섞여 있는 계열사를 갑자기 분리해 놓으셨어요. 그걸 누가 가져가느냐에 따라서 지분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그 말대로 정 회장은 마치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세상을 떠나기 전 계열사 몇 개를 분리시켜 버렸다. 그리고 공동 지대에 툭 던져 놓아 누가 먼저 가져가는지 레이스를 펼치게 만들었다.

“떼어진 계열사가 아직 아무 곳에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만, 누가 이름으로 가져오느냐가 중요하겠죠.”

정영준 회장은 어떻게든 두 형제가 돈을 쓰도록 함정을 파 놓았다.

만약 두 사람이 서로 협력을 했다면 그룹 차원에서 떨어져 나간 계열사들을 안전하게 데려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티끌만큼도 양보해 줄 생각이 없기 때문에 돈지랄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형님께서는 아마 1조 원 가까지 융통을 받으실 겁니다. 돈으로는 밀리지 않는다는 거겠죠. 정 이사님은 어떻게 할 작정이십니까?”

“저도 돈을 융통받고 싶습니다.”

“그에 대한 조건은요?”

정대환 이사는 서류 하나를 주섬주섬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번에 정부에서 추진 중인 프로젝트입니다. 현광 건설이 메인으로 잡혀 있는데, 만약 돈을 융통해 주신다면 이 프로젝트에 J&H 건설 이름을 넣겠습니다. 정확히 50%로 나눠 수익을 드리고요. 그 말은 50%의 지분을 드린다는 겁니다.”

나는 서류를 대충 획 보고 옆에 내려놓았다.

정부에서 매년 진행하는 그저 그런 건설 프로젝트였다.

“이걸로 얼마를 받으실 생각입니까?”

“8천억입니다.”

“진심이십니까? 고작 이걸로요?”

정대환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J&H 건설은 다른 건설사들에 비해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용산 프로젝트에 메카 프로젝트까지. 지금 맡은 일만으로도 일손이 부족할 지경이에요. 그런데 이런 잡일밖에 안 되는 걸 담보로 삼으시려는 겁니까?”

“그럼······.”

“형님과 똑같은 제안을 드리죠. 가지고 계신 25%의 지분 중 20%를 담보로 받고 싶습니다.”

“2, 20%?!”

정대환은 정대용보다 더 호들갑을 떨었다.

“아니. 20%나 떼간단 말입니까?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하는 말씀이신지요?”

“형님에게 드렸던 대답을 똑같이 드려야겠군요. 전 20%의 지분을 갖고 싶다고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그냥 담보에 불과하죠. 제가 빌려드린 돈을 잘 갚으신다면 터럭만큼도 건드리지 않고 돌려드릴 겁니다.”

“그렇긴 하지만······.”

“내키지 않으시면 다른 곳을 알아보세요. 아마 다른 은행들이라면 다른 조건을 들어줄지도 모르니까요.”

내가 일어나는 척을 하자 오대환이 얼른 날 붙잡았다.

“아이고, 회장님. 제가 언제 싫다고 했습니까? 그저 생각을 좀 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뿐입니다.”

오대환이 이렇게 필사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집안 싸움에 누가 저 많은 돈을 대출해 주고 싶겠는가.

만약 그랬다가는 돈을 빌려준 은행이 타박을 맞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대출 제안을 깠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그 어떤 곳도 이들에게 저 많은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걸 알기에 오대환이 내게 쩔쩔매며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생각할 시간을 오래 드릴 순 없습니다. 지금 결정을 해 주십시오.”

“음······. 선택권이 없군요. 회장님 말씀대로 20%를 담보로 걸겠습니다.”

난 빙긋 웃으며 그에게 손을 건넸다.

“좋은 판단이십니다.”

이로써 두 형제의 목줄을 내가 쥐게 되었다.

* * *

J&H 은행.

그동안 없었던 새로운 은행이 탄생했다.

여러 금융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은행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드디어 J&H의 이름을 건 은행이 탄생하게 되었다.

“J&H가 추구하는 건 디지털 은행입니다. 이제 시대가 바뀌고 있습니다. 휴대폰의 발전으로 은행에 가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죠. 그리고 그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될 겁니다. 그래서 J&H는 디지털 은행의 최선두가 되고자 합니다.”

우리 J&H가 내 건 은행의 기본은 바로 간편함이었다.

휴대폰 어플을 통해 빠른 계좌 송금을 하고 메시지를 나누다가도 상대에게 돈을 보내야 할 상황이 생기면 곧장 보낼 수 있는 편리함.

워낙 회사가 크기 때문에 인터넷으로만 쓸 수 있는 은행을 만들 순 없지만, 나는 최대한 지점을 많이 내기보다는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모바일 전용 은행을 크게 열려고 했다.

“우리 은행의 편리함은 다양합니다. J&H와 연결된 곳이라면 편리하게 계좌 송금을 할 수 있고, 해킹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내 최고의 보안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매우 탄탄한 자본이 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불황이 찾아와도 J&H가 흔들리진 않을 겁니다.”

J&H가 내세울 수 있는 건 편리함도 편리함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탄탄한 자금력일 것이다. 타 은행에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자본 면에서는 밀리는 곳이 없다.

“또한 J&H에서 발급하는 신용카드와 체크카드는 그 어떤 곳보다 훌륭한 혜택들이 있습니다. 특히 J&H 계열사를 이용하실 때 카드 혜택은 평소보다 2배에 달할 것이며 앞으로도 더 많은 혜택으로 고객님들을 즐겁게 해 드릴 예정입니다.”

신용카드와 체크카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혜택이다.

다른 회사들은 쥐꼬리만 한 포인트를 주는 게 전부이지만, J&H 카드는 다양한 할인 혜택과 많은 포인트 적립 시스템이 들어가 있다. 물론, 우리 회사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크겠지만, 멀리 보면 이렇게 혜택을 퍼 주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회장님. 잠시 질문 드려도 괜찮을까요?”

브리핑이 끝나자 기자들은 손을 들어 질문을 쏟아내려 했다. 하지만 오늘 질문은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이 뭘 물으려는지 난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뭘 궁금해하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최근 언론에서는 우리 J&H가 금융업을 독점하려 든다는 얘기가 떠돌고 있죠. 최근 있었던 공매도 사태를 마치 제 잘못인 양 뒤집어씌우기까지 하더군요. 그러나 J&H의 회사 방침은 명확합니다. 언제나 우리나라 국민들을 위해 투자를 하는 곳이며, 세계 곳곳에 있는 외국 금융권이 우리나라 시장을 함부로 흔들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준비했던 폭탄을 터트렸다.

“그것을 목표로 전 현재 우리나라에서 영업 중인 2개의 금융 회사를 차례로 인수해 J&H의 영향을 더욱 늘리고자 합니다.”

그 순간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언론이 금융 독재라며 날 비난하고 있지만, 나는 오히려 정면에다 펀치를 날린 꼴이 되었다. 저들이 그렇게 내 독재를 원한다면 난 그 뜻대로 독재를 해 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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