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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71화 (171/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71화

[J&H를 설립한 이진석 회장은 신화 금융 신입사원으로 시작해 현재는 대한민국 최고의 금융 그룹을 세웠다.

그의 성공 신화는 가히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일각에서는 여러 의문들이 제기된다.

정말 이진석은 혼자만의 힘으로 그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어떤 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까.

그에 대한 의문이 증폭된 계기는 각 기관들이 공매도를 했을 때였다.

J&H는 국민의 영웅을 가장하며 공매도를 한 금융 기관의 지분들을 전량 매입했고, 그로 인해 리버스 펀드에 투자한 수많은 고객들이 피해를 봤다. 그들의 억울한 호소는 지금 누구도 들어주지 않고 있는 상태.

필자는 묻는다.

만일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된다면 공매도는 자연스레 사라질 테고, 모두 J&H의 눈치를 보게 될 건 자명한 일이다. 또한 J&H가 지정한 종목은 반드시 상승세를 탈 것이다. 그들이 이미 대한민국 최고의 금융 그룹이니까.

그런 현상이 계속해서 발생되다 보면 그나마 남아 있는 금융 회사들이 전부 문을 닫게 될 것이고, 온 국민이 J&H의 말만 따라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고 만다.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J&H의 선택을 받지 못한 회사는 주가 상승을 기대할 수 없게 되고, 부실한 회사라도 J&H의 선택만 받으면 폭발적인 상승을 보여 주게 될 것이다.

과연 대한민국의 금융은 이대로 괜찮을까?]

“구구절절 맞는 말 같기도 하고.”

현재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경제 기사였다.

분명 천하 그룹에서 조회수를 펌핑해 사람들에게 노출이 많이 되도록 조치를 취해 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이 기사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나는 얼마 전 병실에서 정 회장과 나눴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질 않는다.

정영준 회장은 내가 천하 그룹을 꺾길 원했다. 그래서 일부러 그룹을 쪼개 분란을 조장하려 한 것이다.

“정 회장이 저대로 떠나 버리면 정말 두 형제가 피 터지게 싸울 건 뻔해.”

정 회장의 아들 둘이 회사를 차지하기 위해 열심히 싸울 것이다. 정 회장은 그걸 알면서도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

처음에는 자식에 대한 연민 때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는 죽어서라도 천하 그룹을 넘어뜨리고 싶은 것이다.

회사를 통째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놈에게 넘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과연 광기에 가까운 집착이 아니던가.

천하 그룹을 향한 증오가 이러한 광기를 낳게 된 것이라 본다.

하지만 정영준 회장이 냉혈한처럼 판단을 내린 것은 아니다.

그의 말대로 두 형제가 싸우지 않고 서로 협력한다면 예상치 못한 시너지가 폭발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럴 일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없을 것이다.

이미 정영준 회장의 첫째 아들이 내게 접근해 대출을 해 줄 수 없냐는 요청까지 넣었으니까.

“회장님. 다녀왔습니다.”

이윽고 권 대표가 내게 서류 뭉치를 가지고 들어왔다.

“알아보셨어요?”

“예. 만약 현광 건설이 대출을 신청할 경우 최대 한도와 알맞은 담보가 무엇인지 알아왔습니다.”

서류가 장황하게 있었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지분 말고는 딱히 받을 만한 게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건설 그룹을 하나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 외에 현광 그룹이 가진 여러 계열사들도 별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쓸모 있는 건 현광 건설 그룹의 지주 회사 지분이죠.”

“얼마만큼 된답니까?”

“현광 그룹의 지분 20%에 8천억 정도를 대출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만약 협상을 한다면 1조 원도 어렵지 않고요.”

8천억에 지분 20%라.

비싸면 비싼 값이지만, 그룹의 지배 지분을 갖는 일이지 않은가.

무조건 비싸다고 할 순 없는 노릇이다.

특히 현광 건설 그룹의 가치를 계산해 보면 10조 원이 훌쩍 넘는다는 걸 감안했을 때 이득이라 봐야 한다.

“그쪽에서 지분을 끝까지 내놓기 싫다고 하면 지분이 섞여 있는 계열사들을 가져오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가져오는 지분량이 많지 않아 사실상 필요가 없는 거죠.”

권 대표의 말이 맞다.

내가 우선적으로 가져와야 할 것은 현광 그룹의 지분이다. 문제는 정영준 회장의 마음이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감정적으로 내게 저런 말들을 남겼다. 그러나 지금 며칠 시간이 지났으니, 조금 생각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진실로 그가 이 싸움을 원하는 건지 확인을 해 봐야 했다. 괜히 기대하고 있다가 혼자 허튼짓을 하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때마침 정대용 부회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버지께서 오늘을 넘기기 힘들 수도 있다는 의사들의 소견이 있습니다.

당장 자리를 털고 일어날 줄 알았는데, 정영준 회장은 자신의 말대로 갈 때를 정해 놓은 듯 보였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나는 권 대표와 같이 채비를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미 가족들은 전부 복도에 모여 정 회장의 마지막 순간을 지키려 하고 있었다.

그들은 날 보고 점잖게 인사를 한 뒤 병실 문을 열어 주었다.

병실 안에서 날 맞아 주는 건 정대용 부회장이었다.

“이미 어젯밤에만 2번 더 발작을 일으키면서 정신을 잃으셨습니다. 아마 오늘은 넘기실 수 있을는지······.”

“잘 알겠습니다.”

나는 정 회장 앞에 앉아 그의 손을 붙잡았다.

정대용 부회장은 잠시 자리를 비켜 주었고, 나는 이제 다 늙어 버린 정 회장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직 정영준 회장의 마음을 다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 이렇게 떠나 버리면 난 찝찝한 마음으로 기로에 서야 할 것이다.

꿈틀-

그런데 날 붙잡은 손에 힘이 강하게 느껴졌다.

“회장님?”

“으음-.”

정 회장은 끼고 있던 산소마스크를 벗어 버렸다.

나는 얼른 그걸 다시 그의 얼굴에 끼우려 했으나, 그가 성질을 부리며 제지했다.

“됐네. 그거 한다고 죽은 목숨이 돌아오나?”

“당장 돌아가시진 않겠죠.”

“아니야. 그래도 하늘이 잠깐은 더 살라고 숨을 붙여 놓은 거 같아. 지금은 이게 더 숨 쉬기 편해.”

고집스러운 양반.

그래도 그의 마지막 뜻일 수도 있어 나는 호흡기를 내려놓았다.

“왜 그리 얼굴에 근심이 많아?”

“회장님이 저번에 주신 숙제 때문에 그렇습니다. 덕분에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으허허. 우리나라에서 제일 욕심 많은 놈이 뭘 고민을 하고 있어? 내가 던져 준 떡에 독이 들어 있을까 봐?”

“솔직히······ 그렇습니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긴 하지. 결국 이건 내 아들들을 포함해 너한테 주는 시험이야. 난 정말로 두 아들에게 회사를 쪼개 줄 생각이다. 공평하게 반반으로.”

“심술이 대단하시군요.”

“어쩔 건데? 내 회사 내가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불만 있냐?”

“가혹하십니다.”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다는 거 다 안다.”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첫째 아들이 날 찾아왔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대용이 그놈은 뭔가를 눈치챈 거지. 낌새가 있으니 불안한 게다.”

“근데 정말 두 개로 쪼개진다는 걸 알면 팔팔 뛰겠군요.”

“그래서 그놈이 멍청하다는 거야. 자기 동생이랑 협력을 할 줄 알아야지.”

“회장님도 평생 협력이라고는 해 보지 않으신 분이잖아요.”

“개기냐?”

“지금 아니면 언제 또 개겨 보겠습니까?”

“흐흐. 네 말대로 난 내 형이랑 협력 한번 해 보지 않았다. 그건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어차피 협력을 한다고 한들 형과 나는 수준 차이가 심하다는 걸.”

교만일까, 아니면 진짜일까.

중요한 건 그는 자기조차 해내지 못한 일을 형제들에게 강요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도 이런 마음으로 우리한테 회사를 쪼개 준 것일지도 몰라. 서로 협력하라고 말이다. 그런데 난 이 엿 같은 자존심을 버리지 못했지. 내 아들들은 안 그랬으면 좋겠다.”

“그 말을 아들들에게 직접 해 주지 그러십니까?”

“말한다고 퍽이나 잘 듣겠구나. 그놈들이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깨닫는 수밖에. 그러니까 넌 그만 착한 척하고 할 일이나 해.”

이것으로 정 회장의 마음은 확인했다.

그는 스스로 잘 포장해서 얘기하고 있지만, 난 그 본질을 꿰뚫을 수 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천하 그룹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싶다!

이것만이 그의 마음에 가득한 것이었다.

자식들은 해내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기에, 차라리 믿을 만한 놈에게 훗일을 맡긴다는 것인가. 참 지독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정영준 회장다운 것 같아 괜히 웃음이 나온다.

“이제 가 봐라. 바쁜 사람 오래 붙잡고 있기도 힘들다.”

“회장님. 오늘은 제가 이곳에 남아······.”

“그냥 나 뒤졌다는 소식 들으면 그때 와라. 와서 우는 건 바라지도 않아. 향이나 잘 놓아 주면 된다.”

“······.”

“얼른 가. 이제부터 바빠질 텐데. 너 말고 만날 사람 많아. 죽기 전에 한 번씩 다 만나봐야 할 거 아니냐?”

어쩔 수 없이 나는 병실에서 나왔다.

정 회장 말대로 지금부터 아주 바빠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는 길에 예상하지 못한 얼굴을 마주하고 말았다.

“혹시 이진석 회장 아니시오?”

현광 자동차 회장, 정주용.

이미 지분까지 다 팔아넘긴 상태라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는 건 금방일 것이다.

“아, 예.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반갑소. 원래 차라도 한잔해야 하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해합니다.”

“그럼 살펴 들어가시오.”

나는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정주용 회장, 그래도 동생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지켜 주려 했던 건가. 그리고 정영준 회장은 그런 형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 * *

정영준 회장은 정주용 회장을 보자마자 볼멘소리를 냈다.

“여기가 어디라고 와?”

“쯧. 그냥 돌아가도 되겠구나. 팔팔하네.”

말은 그렇게 해도 정주용은 정영준이 한없이 약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왠지 모르게 짠한 마음이 든다.

그는 냅다 자리에 앉아 주변을 살폈다.

“여긴 뭐 먹을 거 없나? 입이 다 심심하네.”

“중환자실이야, 이 양반아. 원래 면회도 안 돼.”

“네가 주둥이 놀리는 걸 봐서 중환자실 아닌 줄 알았다.”

정주용과 정영준은 한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먼저 말문을 꺼낸 건 놀랍게도 정영준이었다.

“······미안하다.”

“뭐, 뭣? 뭐라고?”

“미안하다고.”

“허-.”

세상 제일 건방진 동생이 먼저 사과를 할 줄이야.

“내가 그동안 제멋대로 살았다는 거 알아. 형을 무시하고 혐오했다는 것도 알고.”

“혐오······ 까지였냐?”

“아무렴. 그 회사가 당연히 내 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뻔뻔한 말이었지만, 동생이 자기 잘난 맛에 살고 있다는 건 정주용도 알고 있었다. 거기다 동생의 능력이 형보다 뛰어나다는 건 더더욱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주용도 동생을 싫어했던 것이다. 그런데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나니 왠지 모르게 그동안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왜 그렇게 미워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어 스스로가 참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에라이. 나쁜 놈. 죽기 전까지 날 못난 놈으로 만들어 놓는구나.”

정주용 회장의 눈시울은 금방 붉어졌고, 정영준도 울컥 올라오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 애써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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