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70화
[금융 독점. 누굴 위한 독점인가?]
[시작된 J&H의 독점. 과연 괜찮은가?]
[공매도를 통해서 보는 J&H의 과욕.]
예상했던 대로 천하 그룹은 본격적인 J&H 때리기에 들어갔다.
금융업을 독점하는 J&H로 인해 모든 피해가 대한민국 투자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억지 주장을 펼쳤다.
한 곳에서만 그렇게 떠들면 그냥 무시하고 말 텐데, 사방에서 그런 소리를 해대면 아무리 말이 안 되는 소리여도 점점 그것에 세뇌되어 납득을 하고 만다.
“J&H의 독점을 결코 좌시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나서서 J&H에 대한 규제 법안을 내놓아야 해요.”
“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이 없지 않습니까? 자칫 잘못하면 J&H에 있는 고객들이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어요.”
“당장 앞을 보기보다는 멀리 봐야 합니다. 약간의 피해를 감수해서라도 J&H의 독주를 막아야 합니다.”
각 경제 채널부터 시작해 지상파까지 침투한 천하 그룹 소속 패널들은 하루가 멀다고 J&H를 비판했다.
우습게도 최근 있었던 공매도 사태까지 포장해서 J&H의 독재를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주장했다.
“생각 이상으로 비판이 거셉니다.”
“국민들의 반응은요?”
“아직까지는 지켜보자는 반응인데, 이게 계속 이대로 흘러가면 분명 여론이 좋지 않을 겁니다.”
“언론전에서 밀리면 안 됩니다. 제가 이럴 줄 알고 예전부터 투자를 해 온 곳이 있잖아요.”
권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렇지 않아도 클린 히트 엔터테인먼트에 연락을 넣었습니다. 그쪽에서 운용할 수 있는 모든 BJ들을 움직이라고 말입니다. 거기다 저희가 꾸준하게 투자금을 넣어 줘서 클린 히트도 나름 성과를 내는 중입니다.”
“예. 어차피 사람들은 뉴스만 보진 않습니다. 오히려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더 맹신해요. 거기다 유명 스트리머들이 단합해서 J&H를 옹호해 준다면 여론전에서 밀릴 일은 없을 겁니다.”
천하 그룹의 공격이 매섭긴 하다만, 적어도 언론 플레이에서는 자신 있었다.
지금까지 뿌려 온 씨앗들을 드디어 수확할 때가 온 것이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뉴스 기사 한 줄보다 연예인, 혹은 인기 많은 스트리머들의 한마디가 더 강하지 않던가.
“회장님. 그만 들어가시죠. 벌써 이틀째 여기 계십니다.”
정영준 회장의 큰아들 정대용 부회장은 내가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불편한 모양이다.
“아닙니다. 이왕 이틀 자리 지킨 거, 끝까지 있어 볼 참입니다.”
“저희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정대용 부회장과 함께 잠깐 밖으로 나와 한식집으로 향했다.
정대용 부회장의 비서실장이 두툼한 돈 봉투를 건네주니, 두 사람이 조용히 대화를 나눌 수 있게 가게 주인은 알아서 방을 마련해 주었다.
아마 우리가 가게를 나갈 때까지 손님을 받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일이 이렇게 돼서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나는 정대용 부회장의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그 역시 착잡한지 단번에 들이켰다.
“회장님이 나이가 드실 대로 드셔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던 차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천하 그룹에······ 어휴.”
정대용 부회장은 제 아비를 닮아 성격이 매우 거칠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이는 못 속이는지 이제는 한풀 꺾인 듯했다.
지금은 서로 술잔을 나누며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냥 식사나 하자고 정대용 부회장이 날 부른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음. 사실 이런 자리가 회장님에게는 매우 불편하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아직 부회장밖에 되지 않은 사람과 비즈니스적인 얘기를 하고 싶진 않으시겠죠. 그 성깔 있다는 천하 그룹의 장선욱 부회장도 회장님 앞에서 까였다던데 말입니다.”
나보다 한참 나이도 많은 양반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기는.
그런데 내가 국내 최대 금융 그룹을 이뤄 내서 그런지, 확실히 예전보다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게 더욱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특히 재벌집 아들이라고 떵떵거리던 놈들도 내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말투를 바꾸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래서 자리가 중요하다고 하는 건가?
대한민국 1위 금융 기업이 주는 위상은 확실히 다른 듯하다.
“아닙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럼, 거두절미하고 말하겠습니다. J&H도 은행을 연다고 들었습니다.”
“예. 지금까지 없었던 게 이상하긴 했죠. 다음 달에 정식으로 오픈할 겁니다.”
“그럼 은행을 통해 대출을 받을 수도 있겠군요?”
갑자기 대출?
“대출이라······. 현광 건설이 진행하려는 대형 프로젝트라도 있습니까?”
그러자 정대용 부회장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일부러 모른 척을 하시는 겁니까?”
“······.”
이 양반 설마?
“회장님이 이대로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계시는군요.”
“부끄럽지만, 사실입니다. 그리고 회사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모든 시나리오를 대비해야죠. 이대로 아버지가 못 일어나신다면 현광 건설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로 변할 거예요.”
아들이란 놈이 아버지의 죽음을 입에 담는다.
그러나 지금 상황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기도 했다.
정영준 회장은 그냥 평범한 가족의 가장이 아니지 않던가.
“문제는 저희 회장님이 후계 구도를 제대로 정리해 놓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이건 조금 의외였다.
“회장님 성격으로는 진작 지분 이동을 했을 줄 알았는데요?”
“아쉽게도 아닙니다. 아버지는 죽기 전까지 저와 제 동생을 저울질하려 했던 거겠죠. 어쩌면 둘에게 쪼개서 주려 했던 것일 수도 있고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영준 회장이?
절대 그럴 리 없다.
정영준 회장은 그룹이 쪼개지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개고생을 해 가며 현광 자동차를 손에 넣으려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정대용 부회장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아무리 뚝심이 있는 양반이라도 나이가 들면 자식들에게 절로 눈이 돌아가는 법입니다. 뭔가 아쉬운 게 있으면 큰아들을 부르고 맛있는 게 있으면 막내에게 준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버지도 딱 그런 마음이셨던 거죠. 큰아들에게 다 몰아주자니, 막내에게 미안했던 거예요.”
자식이 딱 둘밖에 없는 정영준 회장.
그의 성격이라면 분명 한 사람에게 몰아주겠지만, 지금 말하는 걸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회장님의 유언장이 있지 않습니까?”
“예. 저도 아직 한 번도 못 봤습니다. 아버지 개인 변호사를 통해 작성은 하신 거 같은데, 문제는 그 내용이 뭔지 모른다는 겁니다. 이거야말로 판도라의 상자죠. 만약 아버지가 저와 제 동생에게 회사 지분을 골고루 나눠 주겠다는 내용이 공표되는 순간, 그날로 현광 그룹은 또다시 두 개로 나뉘게 되는 겁니다.”
참 저쪽도 복잡한 집안사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동생분께서는 양보를 안 하시겠죠?”
“그놈은 지금 아버지가 쓰러지신 걸 보고 좋아서 팔짝 뛰고 있을 겁니다. 만약 회장님이 이대로 쓰러지지 않고 후계 구도를 완성시켰다면 자기한테 떨어지는 게 아무것도 없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대출을 하고 싶다는 건가.
정말 이대로 정영준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 형제의 난은 불을 보듯 뻔했다.
“아직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정확히 얼마를 원하시는지 들어는 보겠습니다.”
“일단 7천억 정도입니다.”
“그리 많지도, 적지도 않군요.”
“허허. 역시 대한민국 1위 기업답습니다. 7천억이 많지 않다니.”
“대한민국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가치가 7천억밖에 되지 않았던 회사들이 지금 수조 원의 가치를 내고 있습니다. 예전 같지가 않긴 하죠.”
“그 말씀은 7천억을 대출로 내줄 수 있다는······.”
“담보만 좋다면요. 어려울 건 없습니다. 현광 건설이라면 담보가 확실하겠죠?”
그냥 날로 대출을 해 줄 순 없는 노릇이다.
그에 합당한 담보를 내놓지 않으면 대통령이 와도 승인을 해 줄 수가 없다.
“어떤 담보를 원하십니까?”
“글쎄요. 제시는 부회장님이 하셔야죠. 저희는 내놓으시는 매물을 보고 평가를 할 뿐입니다.”
“음-. 그렇군요. 일단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나눈 얘기는 저희 둘만 아는 것으로 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죠.”
그렇게 식사를 마무리하려 할 때였다.
정대용 부회장의 비서실장이 급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부회장님. 회장님이 깨어나셨다고 합니다.”
“뭐, 뭐야?”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나는 정대용 부회장과 함께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 * *
“아이고. 아버지!”
나는 정영준 회장의 가족들이 먼저 그를 만날 수 있게 복도에서 기다려 주었다.
가족인 그들이 먼저 정 회장을 만나고 난 뒤에 손님인 내가 들어가는 것이 예의이지 않겠는가.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나를 찾는 것 같았다.
정대용 부회장은 어두운 안색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의 표정을 보니, 정영준 회장이 의식을 찾았어도 완전히 몸을 회복한 건 아닌 모양이다.
“아버지께서 회장님이 왔다는 얘기를 듣고 애타게 찾으십니다.”
“예.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늙어 버린 정영준 회장이 누워 있었다.
“왔는가······.”
목소리마저도 힘이 쭉 빠진 상태였다.
뭔가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
“예, 회장님.”
나는 세게 잡으면 바스러질 것만 같은 그의 손을 약하게나마 잡았다.
“이런 꼴을 보여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얼른 쾌차하셔야죠.”
“후후. 나도 그러고 싶지만, 그렇지 못할 것 같아. 그리고 쾌차한다고 해서 과연 삶의 의미가 있을까? 이미 난 천하 그룹에 완전히 패배했어. 욕심에 눈이 멀어 함정인지도 모르는 구덩이에 몸을 던졌으니 말이야.”
정영준 회장은 정말로 다 포기한 듯 보였다.
하지만 붙잡은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얼른 털고 일어나셔서 다시 해 보시죠. 이대로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여기서 더 하면 추할 뿐이야. 이게 내 한계인 셈이지. 하지만······.”
그는 양손으로 내 손을 붙잡으면서 힘을 주었다.
“꿈이라는 건 자고로 이어지는 법이지. 그 세대가 해내지 못하면 다음 세대에게 맡기고 떠나면 돼. 나는 후대를 위해 기반을 마련했다고 믿겠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 자식들은 분명 내가 죽자마자 치고받고 싸우기 바쁘겠지.”
“그럼 한쪽에 몰아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나도 여기까지 와서야 아버지 마음이 조금은 헤아려지더군. 막상 눈 감고 떠나려니 한 놈에게만 몰아주는 게 마음에 걸려. 그리고 누구에게 줘야 할지도 여전히 고민이고.”
이 사람도 많이 늙었다.
그리고 몸이 약해지니 뚝심도 함께 사라졌다.
“둘 중 하나에게 다 몰아준다고 해서 그놈들이 과연 현광 자동차를 찾아오려 할까?”
“그건 아마······ 힘들겠죠.”
“그래. 하지만 자네라면 다르겠지?”
“예?”
“내가 나 마음 편하자고 저 둘에게 회사를 싹둑 잘라서 나눠 주는 줄 아나? 그렇지 않아. 이건 저놈들을 시험하는 거야. 둘이 합친다면 현광 건설은 그 어느 때보다 강대해질 거야. 하지만 서로 싸우기 바쁘다면 결국 다른 이의 손에 무너지고 말겠지.”
“회장님. 지금 그게 무슨······.”
“우리나라 기업들 중 유일하게 천하 그룹에 맞설 수 있는 건 J&H밖에 없어. 난 반드시 자네가 나를 대신해 천하 그룹의 아성을 꺾어 주길 바라네.”
나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설마 정영준은 나를 후계자로 삼고 싶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