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67화
강성은 과장은 요즘 발걸음이 가볍다.
J&H.
듣기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그 이름.
옥스퍼드 대학을 나와 본격적으로 금융업계에 뛰어든 강성은 과장은 미국에서 조금 일을 하다 한국으로 들어와 여러 금융사에 지원서를 냈었다.
당연히 스펙 좋고 외국물 잔뜩 먹은 강성은 과장을 많은 금융사에서 원했고, 신화 금융과 J&H도 그들 중 하나였다.
한국 금융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천하 금융과 신화 금융이 가장 매혹적인 일자리일 것이다. 하지만 강성은 과장은 신화 금융이 아니라 J&H를 택했다.
천하 금융에서도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지만, 그는 끝까지 고민하다 거절했다.
‘이런 병신 같은 새끼.’
‘들어갈 곳이 없어서 그런 데를 들어가냐?’
주변 사람들은 그의 선택을 손가락질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J&H는 거품이라는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KV 그룹을 집어삼켰을 때도 J&H가 무리하다가 자멸하게 될 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을 만큼 시선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강성은 과장은 믿고 있었다.
J&H의 수장, 이진석은 다르다고 말이다.
그는 분명 기적을 보여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마침내 기적이 일어났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신화 금융이 J&H 그룹에 흡수되는 기적.
변방에 있던 J&H가 마침내 대한민국 최고의 금융 그룹이 되었다.
더 이상 강성은 과장은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받을 일이 없었다. 오히려 탁월한 선택을 했다며 칭찬을 듣기 바빴다.
“우와-!”
“와아아-!”
회사 다니는 게 이렇게나 재밌을 줄 몰랐던 강성은 과장은 직원들의 환호 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오늘 미국 증시에서 대박 하나 터졌나?
국내 증시를 담당하는 팀은 아침부터 오후 6시까지 일을 한다. 그러나 해외 증시를 담당하는 팀은 밤 11시부터 아침 8시까지 일을 해야 한다.
미국 증시가 우리나라 시간으로 밤 11시 30분에 오픈을 하고 아침 6시에 폐장을 하기 때문. 가끔 일찍 출근을 하다 보면 어느 팀이 미국 증시에서 대박을 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면 가까운 팀에 간식을 돌리는 게 무언의 룰이었다.
“뭔데? 무슨 일이야?”
“아. 과장님 오셨어요?”
“왜들 이렇게 호들갑이야?”
“과장님. 아직 소식 못 들으셨구나. 방금 사내 게시판에 공지 하나 올라왔어요.”
“공지? 무슨 공지?”
“오늘 황금손께서 필드에 나오신대요.”
황금손?
잠깐. 황금손이라면 설마?
“회장님을 말하는 거야?”
“예! 진짜 나 회장님이 직접 필드로 나오는 거 처음 봐.”
“나도. 말로만 들었지, 진짜 뛰러 나오실 줄 누가 알았겠어?”
이진석 회장이 오늘 직접 필드로 나온단 말인가?
강성은 과장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는 딱 한 번 이진석 회장이 필드에 나와서 지휘하는 것을 얼핏 본 적이 있다.
마법 같은 그의 손놀림은 매수와 매도를 연속적으로 체결하면서 이익률을 치솟게 했고, 많은 사람들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매번 나올 때마다 신기록을 세우고 갔기 때문에, 이진석이 친히 지휘를 하러 내려오면 올림포스에서 신이 강림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까지 했다.
“우리 오늘 보너스 대박 터지는 거야?”
“그건 어떤 팀으로 가시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고객의 돈을 운용하는 펀드팀.
그리고 회사의 돈을 운용하는 금융팀.
당연히 이진석은 회삿돈을 운용하고자 금융팀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과연 금융 몇 팀으로 가느냐가 직원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이진석의 지휘를 받게 되는 금융팀은 그날 어마어마한 보너스 파티를 받게 될 테니까.
강성은 과장은 금융팀이 아니라 펀드팀에 속해 있어서 그의 재림을 직접 반겨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흠흠. 그래도 너무 기대는 하지 맙시다. 지금 금융 시장이 힘든 거 안 보여요?”
같은 회사여도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전설의 이진석이 다시 한번 필드로 나온다는 소식은 충분히 직원들을 흥분시킬 만했다. 그러나 강성은 과장은 괜한 기대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진석이 대단한 건 알고 있어도 지금 주식 시장은 말이 아니다.
거기다 들리는 소문에는 각 기관들이 오늘 어마어마한 공매도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초단기매매로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공매도는 기관들의 돈줄이기도 했다.
이것으로 개미들이 매번 밟혀 죽어도 정부는 그냥 두고만 본다.
이유는 단순했다.
공매도를 막아 버리면 모든 금융사가 반발하고 나설 테고, 이미 뒤에서 돈을 처먹을 대로 처먹은 국회의원들은 그들의 뜻을 저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라가 큰 위기에 놓이지 않는 이상, 공매도는 앞으로도 쭉 이어질 것이다.
“그건 그래요. 근데 우린 왜 공매도 안 하는 거예요?”
“우리가 만든 상품들은 공매도에 안 어울려. 거기다 회장님은 공매도로 돈 벌기보다는 차라리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버는 게 고객들에게 더 좋다고 했어. 지금까지 그 철학으로 여기까지 오신 분이잖아.”
공매도를 하지 않는 금융사.
참 특이한 곳이다.
공매도로 쏠쏠하게 돈을 벌어들이는 다른 금융사들과는 달리 J&H는 공매도 기법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도 매번 다른 금융사들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내놓는 것을 보면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공매도를 하지 않는 금융사라는 이름이 알려져서 그런지, 고객들에게도 아주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 내고 있다.
“회, 회장님이다!”
“오, 오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진석 회장이 여러 임원들과 함께 사무실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모두 바짝 긴장한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인사를 올렸다.
누가 딱히 시킨 일도 아니지만, 그냥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정중하게 허리를 숙인다. 같은 투자 일을 하는 사람들로서 이진석을 향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여길 오니까 공기가 새롭네요. 오늘은 펀드팀과 같이 필드에서 뛰어 보려고 합니다. 다들 제 지휘에 잘 따라와 주세요.”
“예, 회장님!!”
금융팀이 아니라 펀드팀을 지휘하겠다고?
“여기가 펀드 3팀이죠?”
“아, 옙! 강성은 과장이라고 합니다.”
“아아. 그래요. 강 과장님. 얘기는 종종 들었습니다. 펀드팀에서 3팀이 가장 이익률이 좋다더군요. 이게 다 강 과장님 덕분입니다.”
“헉-! 여, 영광입니다!”
“에이. 영광까지야. 오늘 잘해 주실 수 있죠?”
“물론입니다, 회장님.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오늘은 여러모로 전체 주가가 내려갈 것으로 예측되는데······.”
매번 올 때마다 신기록을 경신하는 이진석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로 펀드팀에 들어와 지휘봉을 잡았다. 하지만 타이밍이 안 좋았다. 하필이면 기관들이 동시에 공매도를 때리는 날에 그가 들어오다니.
“저도 알고 있어요. 오늘 공매도가 쏟아질 거라는 얘기가 있던데요?”
“예. 그저께부터 소문이 돌았습니다. 아마 개인 투자자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겁니다. 찌라시로 떠도는 게 아니라 알 만한 사람만 아는 고급 정보거든요.”
찌라시는 일반인들에게도 흘러가는 영양가 없는 정보이지만, 금융사들끼리 공유하는 정보는 일반인들이 알아내기 무척 힘들다.
금융사 누군가가 그 정보를 바깥으로 유출시켰다가 적발될 경우 수십억이 넘는 배상금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금융사가 소송을 한번 걸어 버리면 그것만큼 골치 아픈 게 또 없다.
그만큼 기밀 유지는 매우 중요하기에 회사에 들어오는 순간 모든 직원들은 핸드폰을 반납하고 회사에서 제공하는 핸드폰을 써야만 한다.
“후후. 강 과장님. J&H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 아 그, 그거야 신용이죠. 우리 회사는 신용이 최고이지 않습니까?”
“뭐, 그것도 맞는데. 사실 우리 회사의 강점은 바로 돈지랄입니다.”
“······예?”
도, 돈지랄?
강성은 과장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자. 오늘 일을 시작해 봅시다!”
* * *
“오늘 다들 무슨 날인지 알고 있지? 우리 고객 노므 새끼들이 멋모르고 열심히 호재에 돈을 던지면 우린 기다렸다가 뒤통수 세게 치는 거다.”
“예, 부장님!”
드디어 천하 금융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 왔다.
멍청한 개미들이 마구 뿌려 대는 호재에 속아 주식을 담는 걸 기다렸다가 공매도를 뿌려 돈을 쓸어 담는 것이다.
기관들이 작정하고 단합해 공매도를 쳐 버리면 개미들은 그냥 멍하니 주가가 폭락하는 걸 지켜만 봐야 한다.
공매도로 돈을 왕창 잃고 한강 물 온도를 체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데도 정부는 주식 시장 안정을 위한다는 핑계로 공매도를 여전히 허용하고 있었다.
오늘 직원들은 문태형 부장의 지휘를 받으며 작전을 개시했다.
“11시 땡 쳤다. 다들 진입해!”
“예!”
FBI가 범죄 조직 본부를 급습하는 것처럼 모두 긴장감이 넘쳐 흘렀다.
그들은 총 9,000억에 달하는 공매도 폭격을 가하며 시장을 흔들어 놓기 시작했다.
천하 금융이 움직이자 다른 기관들도 하나둘 행동에 나섰는데, 벌써 시장에 던진 주식만 4조 원에 이른다.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매도 물량을 던지자 그만큼 금액이 쌓여 버린 것이다. 당연히 주가가 폭락할 수밖에 없는 어마어마한 매도량이었다.
“오오. 내려간다.”
보통 주가가 파란 음봉을 띠고 추락하기 시작하면 금융사 직원들의 다크서클도 함께 내려간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들 눈에 환희가 가득 찼다.
이제 환상의 도미노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공매도로 인해 매도 물량이 막대하게 쏟아져 나오면서 주가들이 일제히 하락세를 보인다. 당연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길이 없는 개미들은 처음에 참고 기다린다. 다시 오를 거라는 희망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음봉이 –10% 내려가는 걸 보게 되는 순간 그들도 이성을 놓게 된다.
결국 개미들도 손절을 치기 위해 갖고 있던 주식들을 전부 던져 버리는 바람에 주식 시장이 엉망으로 변하는 것이다.
모두가 공포에 질려 매도밖에 누르지 않는 초유의 사태.
그것이 바로 공매도가 만들어내는 공포다.
“음?”
“뭐가 좀 이상한데요?”
지금쯤이면 개미들이 미쳐 날뛰면서 갖고 있는 물량을 던져 줘야 하는데, 웬일인지 그러지를 않는다. 아니. 바닥을 치고 있어야 할 차트가 평행선을 이루고 있다.
“뭐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왜 차트가 그대로야?”
“다들 물량 던진 거 확실해? 왜 하락을 안 하는 거냐고!”
지휘를 맡은 문태형 부장이 가장 당황하고 있었다.
이게 한두 번 해 보는 일도 아니고, 보통이면 지금 시장 전체가 하락세를 맞이해 개미들이 혼돈에 빠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차트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상승세도, 하락세도 아니다.
혹시 무슨 전산 오류라도 생긴 게 아닐까?
“이, 이게 대체 무슨······.”
주식 시장은 인간의 감정을 정확하게 대변하는 곳이다.
지금 시장에서 겁을 먹고 있는 개미는 없다. 오히려 시장의 판도를 마음대로 주물러야 할 기관들이 겁을 지레 먹어 버렸다.
“부장님!”
“그래. 알아왔어?”
“J&H입니다!”
“뭐?”
“J&H에서 저희가 내놓는 공매도 물량을 전부 사들이고 있답니다! 그래서 지금 이 난리가 난 거고요!”
“뭐, 뭐야?!”
J&H. 그놈의 J&H!
아주 하루가 멀다고 그 이름이 귀에 들려온다.
그런데 이놈들이 잔칫상에 숟가락을 얹는 것에 모자라 아예 잔칫상을 다 가져가려고 해?
“이런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