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66화

정주용 회장과 더불어 간부들 모두 잠시 사고가 정지되었다.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정주용 회장이었다.

“이, 일단 노조 연합장부터 만나. 그 새끼는 갑자기 왜 파업을 하고 지랄이야? 저번에 뽀지 먹였다고 하지 않았어?”

“약빨이 다 된 걸 수도 있습니다. 얼른 만나서 해결 보겠습니다.”

“그래. 지금 노조까지 난리 치면 골치 아프다. 얼른 나가서 알아봐!”

“예, 회장님!”

그제서야 임원들 모두 우르르 바깥으로 나갔다.

저놈들이 다 나간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정주용 회장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씨발. 이거 안 봐도 비디오인 거 같은데.”

타이밍이 절묘하다.

언론사가 무차별 폭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기다렸다는 듯이 노조가 움직였다.

그는 잠깐 고민하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 *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아. 만약 그랬다가는 실수한 놈만 잡아서 내가 족쳐 버린다. 무슨 뜻인지 다들 알지?”

혼란만 가득했던 정주용 회장의 회장실과는 달리 정영준 회장의 서재에는 무거운 전운이 감돌았다. 임원들 모두 결의를 다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결코 실수하지 않겠습니다.”

“믿고 맡겨만 주십시오.”

정영준 회장이 과거의 현광 그룹을 재건할 거라고 했을 때 임원들은 그냥 웃어넘겼다. 그들의 머리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영준 회장은 기어코 해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지금 거대 금융 그룹을 세운 이진석이 있었다.

“이미 다 깔아 놓은 판이어도 만만하게 봐서는 안 돼.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거린다. 그리고 궁지에 몰린 놈일수록 마지막에 미친 짓을 하기 마련이지. 그러니까 그럴 여유조차 주면 안 된다는 거야.”

계속해서 이어지는 정영준 회장의 잔소리가 슬슬 지겨워질 무렵이었다.

“회장님.”

비서실장이 조심스레 들어와 회장에게 조용히 무어라 속삭였다. 그러자 정영준 회장은 힐끗 미소를 지었다.

“잠깐 기다리라고 해. 그리고 자네들은 그만 나가 봐. 일 똑바로 하고.”

“예, 회장님.”

대체 무슨 일이기에 저럴까 궁금했지만, 얼른 이곳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들이 모두 나가고 나서 정 회장은 비서가 건네는 휴대폰을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형이 전화를 했는데도 한참이나 걸려서 받는 거냐?

“아버지 제사 때도 면상 안 보고 살았는데, 새삼스레 전화는 무슨.”

-나도 너한테 전화하고 싶어서 한 거 아니다. 네가 하게 만들었잖아.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용건만 말하지? 전화 길게 할 사이 아니잖아.”

정주용 회장은 욕이 터져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그래. 이 새끼는 원래 이런 놈이다. 원래 자기 잘난 맛에 살던 놈이지 않던가.

형이라고 해서 봐주는 게 없다.

싸가지 없는 자식.

-오늘 뉴스 잘 봤다. 아주 대문짝만하게 현광 그룹을 조롱거리로 만들었더구나.

“그러게 조롱거리가 될 만한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요즘 언론이 예전이랑 참 많이 달라. 옛날에는 우리가 회초리 한번 들면 들고 있던 펜을 전부 다 꺾어 버렸는데, 지금은 총으로 갈겨 대도 꿋꿋하게 펜을 휘갈기더라고.”

-언론이 재벌의 눈치를 안 본다? 지나가던 개가 비웃겠네. 네가 똥구녕까지 돈으로 꽉꽉 채워 주니까 저놈들이 좋아서 열심히 휘갈기는 거겠지.

“좋을 대로 생각하시라고.”

심드렁한 정영준 회장의 반응에 더 화가 나는 정주용 회장이었다.

-너, 진짜 끝까지 해 보자는 거냐?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후회? 내가 후회하는 건 딱 하나야. 아버지가 우리 둘한테 그룹을 쪼개 준다고 했을 때 무릎 꿇고 말렸어야 했어. 그걸 못 한 게 천추의 한이지. 그때 아버지의 실수를 되돌려 놓을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어.”

-야! 그게 어떻게 실수야? 그때 정권에서 얼마나 우리를 두들겨 팼는지 알아? 천하 그룹 그놈들이 뒤에서 모든 걸 조종하고 말이야. 아버지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아버지 몰라?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무조건 하고 마는 분이었어. 그룹을 쪼개지 않고 싶었다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그저 말년에 마음이 약해지신 거야. 형같이 능력 없는 사람한테 회사를 넘긴 걸 보면.”

-뭐야? 너 지금 말 다 했어?!

“그러니까 서로 힘 빼지 말고 조용히 회사 넘겨. 안 그러면 눈에서 피눈물 날 때까지 내가 괴롭혀 줄 거니까. 잘 알아들었으리라 믿고 그만 끊지.”

정영준 회장은 뭐라 거친 욕설이 들려오는 것을 무시하고 전화를 끊었다.

“후우-.”

속이 다 시원하다.

그동안 쌓인 체증이 한꺼번에 밀려 나가는 기분이다.

그는 핸드폰에 대고 중얼거렸다.

“흐흐. 미치고 팔짝 뛰겠지? 내가 건설 회사 맡고 나서부터 항상 그 마음이었다.”

평생의 한이었다.

젊었을 적 정영준 회장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무심하게도 능력 없는 형에게 자동차 그룹을 넘겨주었다.

능력 문제가 아니다.

그저 장남이란 이유로, 제 자식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고 싶다는 아비의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룹이 쪼개진 것이었다.

“아버지. 제가 현광을 되돌려 놓을 겁니다.”

정영준 회장은 저 벽에 걸려 있는 초대 회장의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감히 누구도 올려다볼 수 없었던 현광 그룹.

그 그룹이 곧 부활하게 된다.

* * *

정영준 회장, 과연 사냥감을 끈질기게 몰아치는 늑대와도 같았다.

현광 자동차는 하루 종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이미 천하 그룹과 정영준 회장으로부터 조종당하고 있던 노조는 경영진을 압박했다.

“저 정도면 넘어갈 수밖에 없겠네요. 정영준 회장님, 참 무섭습니다.”

권 대표도 3일 동안 쉬지 않고 휘몰아치는 공격에 혀를 내둘렀다.

당장 3자가 봐도 고개를 절레 흔들 정도인데, 직접 공격을 당하고 있는 정주용 회장은 어떻겠는가.

금감원과 검찰이 움직이고 있으니, 이제 그가 검찰 포토존에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남은 건 정주용 회장의 패배 선언인데, 이건 그가 직접 결정을 해야 한다.

보기 좋게 왕좌에서 직접 내려올지, 아니면 대주주들의 손에 강제로 끌려 내려올지 말이다.

“회장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저대로 현광 자동차가 끝날까요?”

“그렇겠죠. 이미 우리도 다 알아보지 않았습니까? 아마 정영준 회장이 쇼부를 보겠죠. 감옥 가서 인생 조지느니 차라리 지분 다 넘기라고 말입니다.”

“어휴. 그쪽 집안 사람들 자존심이 장난 아니라고 하던데, 그냥 감옥 가겠다고 하는 거 아닙니까?”

“감옥에 가도 바뀌지 않는 게 하나 있죠. 현광 자동차는 결국 현광 건설 그룹에 먹힌다는 겁니다. 이미 대주주들이 정영준 회장의 손을 들어주고 있잖아요. 정주용 회장이 큰 실수를 한 겁니다. 멀리 도망치려고 괜히 지분 구조를 건드렸다가 저리됐으니까요.”

좀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이 세상의 법칙이기도 했다.

약육강식.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짓밟히며 결국 잡아먹힌다.

대기업이라고 해서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망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먹힐 수도 있다는 걸 항상 기억해야 한다.

“아참. 그리고 아직 지분은 안 옮겼습니다. 현광 건설 쪽에서 지분 이동은 그룹 합병이 완료되면 그때 받겠다고 합니다.”

“그래요? 그때 되면 제가 마음이 바뀌어서 안 줄 수도 있는데?”

“흐흐. 전 회장님이 하자는 대로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현광에 대한 얘기는 여기까지다.

“자. 남의 집 잔치 얘기는 그만하고 우리 일 얘기로 돌아가죠. 코봇, 그쪽에서 반응이 왔습니까?”

“예. 우리가 연락해 주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내걸은 조건을 좀 탐탁지 않게 여기더군요.”

나는 코봇에 막대한 투자금을 내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대신, 그들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몇 개를 잘라 버리겠다고 했다.

현재 중요한 프로젝트들에만 집중 투자를 해서 성과를 내겠다는 전략인데, 코봇에서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다.

“돈 필요하지 않은가 보네요.”

“우리가 투자를 안 해 주면 그쪽 사람들도 프로젝트가 길게 늘어진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고민을 하는 거겠죠.”

테슬라에서도 이미 투자금이 들어갔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테슬라도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이 있기 때문에 많은 투자금을 내놓을 순 없었다.

“제가 저번에 엘론 머스크한테 직접 들은 얘기입니다. 자기가 하는 사업들 모두 한 가지 목표를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어떤 목표요?”

“화성을 테라포밍해서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으로 만들고 싶답니다. 테슬라라는 회사를 시작한 것도, 전기차를 만든 것도 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하던데요?”

“하하하! 그게 정말이라면 진짜 미친 사람이네요.”

“예. 근데 전 자꾸만 그 미친 사람이 꿈을 이룰 것 같단 말이죠. 그리고 그 비상한 머리로 수십 년간 계획해서 픽한 회사가 바로 이 코봇입니다. 전 엘론 머스크의 눈을 믿습니다.”

“그럼······.”

“만약 프로젝트를 몇 개 잘라 내는 것이 정말 힘들다고 하면 어쩔 수 없죠. 투자금을 올려서 그 프로젝트들까지 전부 다 안아 주는 수밖에.”

권 대표는 눈을 크게 뜨며 얼른 손사래를 쳤다.

“회장님. 그렇게 했다가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가야 합니다. 수조 원이 넘는 돈이 한꺼번에 깨질 수도 있고요. 신화 금융을 품으면서 아직 회사 내부 자금 운용이 안정화되지 않았습니다.”

권 대표로서는 당연히 회사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최근까지 내가 미친 듯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투자금을 뿌리고 다니지 않았던가.

인공 태양을 개발하는 데에도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는 중이다.

그것도 당장 투자 이익이 나지 않는 곳인데도 말이다.

코봇은 어떤가?

여기도 기본 10년 이상은 보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돈은 제가 벌어 놓겠습니다. 제가 오랜만에 필드로 나가서 뛰어야겠네요.”

그 말에 권 대표의 눈빛에 생기가 가득 찼다.

“정말이십니까? 진짜 필드로 나가신다고요?”

“예. 그동안 좀 쉬었더니 좀이 쑤시네요. 오랜만에 돈 한번 쓸어 담아 봅시다.”

필드에 나선다는 건 장이 오픈했을 때 내가 직접 금융 투자 지원팀으로 내려가 현장을 지휘한다는 뜻이었다.

금융 회사에는 현장 지휘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우리 같은 큰 금융 회사의 돈이 움직일 때는 현장을 지휘하는 감독관이 얼마나 세심하게 투자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그날 투자 성과가 달라진다.

나는 가끔씩 직접 감독관 역할을 자처해 현장을 지휘했는데, 그때마다 최고의 수익률을 찍어내 아직까지도 직원들 사이에서 회자가 되고 있다.

회사가 이렇게나 커지면서 지금은 현장 지휘를 하고 있지 않으나, 지금처럼 돈이 메마르기 시작할 땐 나라도 나서서 벌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일부터는 제가 직접 현장 지휘합니다. 담당 직원들한테 전부 전해 주세요.”

“다들 아마 어깨춤을 추고 난리가 날 겁니다. 회장님이 지휘하실 때마다 최고 기록을 찍지 않았습니까? 그 기록이 아직도 안 깨지고 있어요.”

직원들이 어깨춤을 추는 이유는 단순히 최고 기록 때문이 아니다.

그 기록으로 인해 자신들이 받게 될 보너스가 커지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우리 전 직원들에게 어마어마한 보너스 파티를 일으켜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