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65화
오늘은 정말 뜻깊은 하루였다.
여러 기업인들을 만나며 그들과 술잔을 나누면서 의견을 공유했다.
파티에 참석한 건 기업인들뿐만이 아니라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도 많이 섞여 있어 오희진은 그들과 안면을 트느라 정신이 없었다.
“회장님. 신혼여행 때만큼은 절대 일을 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다음 날 나는 권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어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 주었다.
“저도 그러려고 했는데, 일복이 넘쳐나나 봅니다. 코봇에 대해 한번 자세히 알아봐 주세요. 어제 얘기를 듣고 보니, 투자할 가치가 충분하더군요. 지금 세상을 야금야금 먹고 있는 구글에 대항할 회사가 될지도 모릅니다.”
“로봇이라······. 확실히 시간이 흘러가면 우리가 상상만 했던 로봇들이 상용화가 되겠죠.”
“예. 저는 그 선두에 설 회사가 코봇이라고 봅니다. 이미 엘론 머스크도 코봇의 가치를 인정해 주었고요. 하지만 뭐든 조심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재무 상황이 어떻고, 또 현재 비전은 어떤지도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회장님.”
마음 같아서는 미래 커뮤니티 센터를 통해 회사 정보를 알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로봇 상용화는 정말 오랜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정보를 알아내는 데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매일 밤 오희진이 나를 침대 위에서 괴롭히는 터라 그녀와 동거를 하게 된 이후부터는 미래 커뮤니티 센터에 자주 들어가지를 못했다.
“벌써 돌아가는 거야? 너무 아쉬운데.”
“덕분에 끝내주는 신혼여행이었어. 나중에 한번 한국으로 놀러 와. 내가 풀코스로 모셔 줄게.”
“흐흐. 기대해 보지. 조만간 좋은 소식으로 다시 봤으면 좋겠네.”
한국으로 떠나기 전 나는 엘론 머스크와 브라이언을 한 번 더 만나게 됐다.
이들은 우리의 앞길을 축복해 주며 전세기를 타고 떠나는 걸 지켜봐 주었다.
“좋은 친구들이네.”
오희진도 그들의 친절함에 적잖이 감동한 모양이다.
그리고 브라이언이 센스 있게 오희진을 위한 선물들을 가져온 터라 더더욱 점수를 높게 받았다.
“앞으로 세상에서 가장 주목받을 사람들이야. 지금부터 친하게 지내도 나쁠 건 없지.”
저 두 사람이 이끄는 회사들이 과연 얼마나 성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는 저 둘이 이끌어 갈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 * *
“말씀하신 회사를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어떻던가요?”
“잠재력은 충분히 큰 회사입니다. 물론, 아직은 두드러지는 성과가 없어 평가가 그리 좋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재무적으로 위험한 수준은 아니더군요.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늘어놓긴 했어도 선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돈을 펑펑 쓰진 않는다?”
“예. 다양한 연구를 시도하고 있고, 적당한 금액 선에서 진행 중에 있습니다. 폭발적인 연구 성과는 없어도 일을 마구잡이로 늘려 놓아 재정적 위기에 처해 있지는 않다는 겁니다.”
권오준 대표도 코봇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놓았다. 그러나 거금의 돈을 투자할 만한 회사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했다.
“잠재력이 있는 회사이기는 하나, 과연 이 잠재력을 언제쯤 터트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또한 현재 진행 중인 연구들이 중간에 스톱되거나, 아니면 이렇다 할 성과를 계속 내지 못한다면 결국 헛돈만 쓰는 꼴이 되는 거겠죠. 지금 코봇의 연구 진행 수준은 아직 너무 낮습니다.”
“안전하게 가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된다는 뜻이군요.”
“예. 차라리 프로젝트 개수를 줄여 한 곳에만 집중을 한다면 모를까, 위험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여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건 아무래도 시간을 많이 빼앗기기 마련이죠.”
결국 코봇이 과감히 리스크를 감수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는 한 성장 가능성이 낮다는 소리였다.
“우리가 만약 크게 베팅을 한다면 그에 대한 부분을 보강할 수 있을까요?”
“투자를 해 주는 조건으로 프로젝트들을 대폭 줄이거나, 진행 속도를 빠르게 만들 순 있을 겁니다. 물론, 그쪽 경영진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서 확실한 답은 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쪽에다 문의를 해 보면 답이 나오겠죠. 실무진을 구성해서 코봇에 한번 요청을 넣어 보세요.”
“잘 알겠습니다, 회장님.”
코봇에 대한 투자는 시간을 조금 두고 생각해 봐도 충분할 것 같았다.
그쪽과 협상을 통해 최적의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주저 없이 큰돈을 던져 줄 것이다.
“그런데 회장님. 그 소식 들으셨습니까?”
“어떤 거요?”
“현광 자동차 말입니다. 글쎄 그쪽에서 은밀하게 지분 구조를 개편하고 있었답니다.”
“예? 지분 구조를 개편해요?”
“예. 지주 회사를 바꿔서 뿔뿔이 흩어져 있는 지분들을 모조리 희석해 버리겠다는 의도 같습니다.”
이미 완성된 지주 회사를 바꾼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삐끗 잘못 발을 들였다가는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간신히 순환 출자에서 벗어난 대기업들이 감히 시도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광 자동차가 그 금단의 영역을 깨 버렸다.
“건방진 생각이네요. 잘못 질주했다가는 브레이크 못 밟고 크게 충돌할 수도 있을 텐데.”
“아주 미친 발상이죠. 그런데도 끝까지 강행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최근 회장님이 신화 금융을 삼키지 않으셨습니까? 거기 있던 현광 자동차 지분이 정영준 회장 손에 넘어갈 거라는 걸 알고 멀리 도망치려는 것 같습니다.”
현광 자동차가 그 정도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단 말인가.
만약 내가 현광 자동차의 주인이었다면 도망가기보다는 차라리 정면으로 맞서 싸웠을 것 같다. 아닌가. 정영준 회장의 지독함이라면 나도 지레 겁을 먹고 도망쳤으려나.
“진행한 지 얼마나 됐답니까?”
“최소 2달은 된 듯합니다. 그동안 철저하게 기밀을 유지한 것 같고요. 하지만 아무리 은밀하게 한다고 해서 밖에 소문이 안 날 리가 없죠.”
나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정영준 회장은 이 모든 걸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현광 자동차가 은밀하게 지분 개편을 한 이유는 외부 공격에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주주들이 그냥 이걸 넘길 리 없다는 걸 알기에 어떻게든 조용히 처리하려 했던 거 같은데, 만약 정영준 회장이 처음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권 대표님. 지금 당장 현광 자동차 지분들 이동시킬 준비 해 주세요.”
“현광 자동차 지분을요?”
“조금 이상하지 않으세요? 지금껏 조용히 진행 중이던 지분 개편이 갑자기 외부에 노출된 것은 물론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어요. 저는 누가 의도적으로 퍼뜨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일부러 정보를 유출시켜 주주들로 하여금 분노를 조장하려는 거군요.”
“예. 두고 보세요. 곧 자극적인 기사들이 쏟아질 겁니다. 현광 자동차가 주주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내용으로요.”
내 말을 듣고 있던 권 대표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 내게 물었다.
“혹시 회장님은 이게 정영준 회장으로부터 시작된 일이라고 보십니까?”
“제 생각이 맞다면요. 그렇지 않아도 그 영감이 저번에 만났을 때 신호를 준다고 했습니다. 그게 정확히 뭔지 가르쳐 주진 않았지만, 보면 알 거라고 하더군요. 아마 이게 그 신호일 듯합니다.”
현광 자동차의 뒤통수를 또 다른 통수로 받아치는 정영준 회장이었다.
“회장님 말씀이 맞다면 현광 자동차는 궁지에 몰린 겁니다.”
“그렇겠죠. 아마 지금쯤 발에 불이 떨어졌을 거예요.”
지분 개편이라는 초강수를 둔 현광 자동차.
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결국 정영준 회장 좋은 일만 시켜 준 꼴이 되었다.
* * *
“누구야? 어떤 새끼가 퍼다 나른 거냐고!”
현광 자동차 그룹 회장 정주용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붉은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임원들은 움찔거리며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회장님. 믿어 주십시오. 절대 저희들이 유출시킨 정보가 아닙니다.”
“여기 자네들 말고 지분 개편하는 거 아는 사람들이 또 있나? 없잖아.”
“아닙니다, 회장님. 지분 개편에 참여한 법무팀 놈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놈들이?”
“이틀 전에 갑자기 법무팀 핵심 간부 5명이 사표 쓰고 나갔다고 합니다. 집안 핑계를 대면서요.”
그 말에 정주용 회장은 크게 당했다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그렇다는 건 그 새끼들이 처음부터 장난질을 했다는 거냐?”
“지분 개편에 대한 보고서가 올라온 것도 법무팀이지 않습니까? 그쪽에서 처음 제안을 한 게 지금까지 이어진 거고요.”
임원들의 말이 맞다.
뜬금없이 법무팀에서 지분 개편에 대한 보고서가 올라와 정주용 회장의 눈길을 끌게 했다. 뭔가 수상하긴 했지만, 보고서대로 진행을 한다면 현광 자동차는 철옹성같이 튼튼해질 수가 있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 모든 게 함정이었다면?
그것도 누군가가 고도로 설계한 함정 말이다.
“설마 그 새끼는 아니겠지······.”
정주용 회장은 이 계획이 정영준 머리에서 나온 것 같다는 불안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회장님. 지금은 책임을 전가하기보다는 하루빨리 대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현광 자동차가 조용히 지분 희석을 했다는 사실이 다 알려지지 않았습니까?”
“예. 이게 일이 크게 번지면 고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회장님! 이걸 좀 보십시오.”
비서가 급하게 안으로 들어와 현재 언론에 떠 있는 기사들을 보여 주었다.
[현광 자동차, 은밀하게 지분 개편하다 덜미 잡혀.]
[명백히 주주들을 기만하는 행위. 금감원에 고발?]
[현광 자동차 이대로 조사당하나?]
[현광 자동차의 사기극. 만천하에 드러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기사들이 쏟아졌고, 그것을 본 네티즌들은 분노했다.
또한 평범했던 현광 자동차의 주가가 미친 듯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정주용 회장은 손을 부르르 떨며 소리쳤다.
“뭘 그렇게 넋 놓고 쳐다만 보고 있어! 당장 기사부터 막아! 단 한 줄이라도 후속 기사 내는 새끼들이 있으면 앞으로 현광과는 연 끊으라고 해!”
“알겠습니다, 회장님!”
비서실장은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갔고, 임원들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져 버렸다.
정 회장은 상을 탕탕 치며 임원들을 다그쳤다.
“당신들 벙어리야?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의견을 내놓아야 할 거 아니야?”
“회장님. 일단 반박 기사부터 내보내시죠.”
“우린 그런 적 없다고 오리발부터 내밀어라?”
“예. 일단 주주들은 안심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건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말입니다.”
“금감원 조사 들어오면 뻥카라는 거 다 들킬 텐데? 괘씸죄로 더 약점 잡힐 수 있다는 거 알고 하는 소리야?”
“그래도 주가가 폭락하는 건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 회장은 잠시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일단 기사부터 내보내. 그리고 금감원에 우리가 가진 라인 전부 다 동원해서 수사 들어오는 것도 막아. 이거 괜히 일 커지면 다 엎질러지는 거야.”
“알겠습니다, 회장님.”
급한 불부터 끄기 위해 정 회장이 임원들에게 각자 할 일을 지시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방금 나갔던 비서가 또다시 후다닥 안으로 들어왔다.
“회장님!”
“뭐야? 사람 심장 벌렁거리게.”
“현광 자동차 노조가 갑자기 대파업을 선언하며 모든 라인을 중단시켰다고 합니다.”
“뭐, 뭐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젠 노조까지 들고 일어났다.
정주용 회장은 휘몰아치는 공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