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59화
천하 그룹의 회장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재산을 보유한 장연욱.
대한민국은 천하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이 나라에 천하 그룹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나라가 망할지언정, 천하 그룹만큼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천하 전자는 세계 곳곳에 뻗어 나간 상태이며, 그들의 영향력은 우리나라 기업이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지경이다.
“장연욱 그 양반은 이제 한물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오래전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고. 그런데 자네도 알지 않나? 아직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다는 거.”
“저번에 전경련에서 본 적이 있긴 합니다.”
“그래. 언론이란 언론은 전부 통제하고 나서 뻔뻔하게 전경련에 나와 얼굴을 스윽 비추고 가는 거지. 왜 그런 줄 아나? 우리 군기 잡으려고 그러는 거야. 함부로 날뛰지 말라고 무언의 경고를 주는 거지.”
“그건 몰랐네요.”
“지금부터라도 잘 알아 놓게. 장연욱 회장은 국내 기업들을 전부 하찮게 보는 놈이야. 그래서 무조건 자기 발아래 놓으려고 하지. 천하 그룹이 관여하고 있는 분야라면 어떻게든 1위 자리를 거머쥐어야 두 발 뻗고 잘 수 있달까?”
신 회장은 허튼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다.
그는 진심으로 내게 경고를 하는 중이었다.
천하 그룹, 장연욱 회장을 조심하라고 말이다.
“이제 자네가 금융 부문 1위를 차지했으니, 조금만 기다려 보게. 장 회장이 어떤 방식으로 자네를 공격하는지.”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너무 무섭지 않습니까.”
“흐흐. 그럴 각오도 없이 감히 내 회사를 건드렸나?”
장연욱 회장의 견제라.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완전히 내 관심 밖의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신 회장의 괜한 걱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하 그룹이 자동차 산업에도 투자를 한 걸 알고 있나?”
“예. 프랑스 기업을 사들여 시장을 공략 중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좋아. 내가 그럼 아주 귀한 정보 하나를 내주겠네.”
“정보요?”
“그래. 자네가 현광 건설 정영준 회장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닌가? 아마 이 정보는 꼭 필요할 거야.”
대체 무슨 정보를 주려고 저러는 걸까?
“천하 그룹이 현광 자동차를 노리고 있다는 정보가 있어.”
“······예?”
“말 그대로야. 현광 자동차를 뒤흔들어서 아예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거지. 그 틈에 천하 그룹이 치고 올라가 현광을 1위 자리에서 끌어 내리는 거고.”
“그게 가능합니까? 현광 자동차와 천하 그룹이 인수한 프랑스 기업의 격차가 상당하다고 들었는데요?”
“맞아. 하지만 내가 말했지? 장연욱 그 인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우리를 발아래 두려 한다는 걸. 정영준 회장이 현광 자동차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장 회장도 알고 있어. 그래서 정씨 집안사람들끼리 서로 피 터지게 싸우도록 틈을 만들어 주는 걸세.”
현광 자동차가 경영권을 두고 싸우게 된다면 회사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 뻔하고 정영준 회장이 승리를 하게 된다면 회사 안정화에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틈을 노려 천하 그룹이 치고 올라오겠다는 거 같은데, 아무리 천하 그룹이 국내 1위 그룹이라고 해도 자동차 산업은 이미 한번 실패한 적이 있지 않던가?
“전 천하 그룹이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보는데요?”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런데 장연욱 회장이 처음 전자에 진출을 한다고 했을 때 다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했어. 하지만 지금 어떻게 됐나? 천하 전자가 결국 대한민국 경제를 다 먹지 않았나?”
신 회장의 말대로 천하 그룹은 전자와 반도체를 핵심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뤄 냈다.
하지만 나는 믿고 있다.
금융업이야말로 천하 전자마저도 넘을 수 있는 열쇠라고 말이다.
난 이 세상 인간들의 광기를 믿는다. 그리고 그 광기가 시장에 내놓는 돈을 믿는다.
그 돈을 전부 내가 빨아들일 수 있다면 천하 전자를 뛰어넘는 건 시간문제다.
“아무튼, 노파심에 말해 둔 것이니 잘 생각해 보게. 천하 그룹은 자네와 정영준 회장이 현광 자동차를 마구 흔들어 주기를 바라고 있어.”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이걸 또 어떻게 갚아야 할지······.”
“신화 금융에서 만족하면 돼. 더는 신화 그룹 계열사를 노리지 않는다면야 우린 앞으로 좋은 술친구가 될 걸세.”
신 회장 같은 사람이 술친구라면 내겐 더 없이 영광일 것이다.
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빈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 * *
[KV, 신화, J&H 금융 전격 합병 발표]
신화 금융이 내 손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그동안 미뤄 두었던 합병식을 거행했다.
대한민국의 주식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세 개의 금융 기업이 하나가 된다는 소식에 대한민국은 크게 들썩이고 있었다.
“저는 매번 흔들리는 대한민국 시장을 보면서 꿈을 꾸었습니다. 더 이상 외국 자본에 흔들리지 않는 대한민국, 외부의 소요에 출렁이는 대한민국을 제가 바꾸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그 꿈의 첫걸음을 이뤄 내게 되었습니다.”
거대한 금융 그룹의 탄생을 축하하며 나는 한가득 모여든 기자들에게 말을 이었다.
“앞으로 J&H는 국내 시장을 안정시키고 지속적인 해외 투자로 자본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 생각입니다. 또한 국내 투자자분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성심성의를 다하겠습니다.”
그러자 기자들 중 몇몇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합병을 통해 대한민국 1위 금융 그룹을 이뤄 내셨는데, 그에 대한 소감이 궁금합니다.”
“그저 책임감이 많아졌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 무거운 책임감을 항상 느끼면서 경영에 임하겠습니다.”
“J&H 금융 그룹이 해외 유명 금융 기업들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예. J&H 금융 그룹이 전 세계 1위 금융 기업이 되는 것을 꼭 보여 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 회사에서 미리 깔아 둔 기자들의 질문이었다.
그런데 스케줄에 없던 질문들이 튀어나왔다.
“이번 합병으로 J&H 금융 그룹을 좋게 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대로 J&H가 대한민국 금융 시장을 독식하게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들에게 갈 거라고 전문가들은 우려를 드러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 옆에 있던 권 대표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시키지도 않은 질문을 기자가 던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금융업에 독식이라는 건 없습니다. 금융 시장은 결국 대한민국 국민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려하시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벌써부터 수수료 인상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고, J&H는 결국 해외 법인이지 않냐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J&H가 독식을 하게 되면서 투자자들은 어쩔 수 없이 선택 사항이 좁아지니 당연히 피해가 있지 않을까요?”
매우 공격적이다.
권 대표는 서둘러 회견을 끝내려 했으나, 내가 그를 제지했다.
저 기자들을 누가 보냈는지 예상이 갔기 때문이다.
“J&H의 시작이 해외 법인이라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법인으로 전부 이전시켜 예전처럼 해외에 속해 있는 기업이 아닙니다. 또한 국내 투자자들은 차원이 다른 서비스를 누리게 될 겁니다. 다른 기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혜택도 누리게 될 테고요.”
“그 말씀은 꼭 J&H의 입맛대로 고객들을 유치하겠다는 것으로 들리는군요.”
여기서 기자들과 신경전을 펼치면 안 된다.
나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여러분이 지켜봐 주시면 됩니다. 전 언제나 여러분의 충고에 귀를 기울일 겁니다.”
그렇게 회견을 마무리하고 나서 권 대표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회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기자들이 갑자기 저렇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미리 질문들도 다 선별을 해 놨는데······.”
“아닙니다. 저 사람들도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우리보다 훨씬 더 위에 있는 기업이 압박을 넣어서 그런 거니까요.”
“훨씬 더 위에 있는 기업이요?”
“어제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신 회장이 제가 천하 그룹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해 줬다고.”
“설마 천하 그룹이 저 기자들을?”
“그렇지 않고서야 저 사람들이 공격적으로 나올 이유가 없죠. 우리가 내주는 광고가 몇인데.”
권 대표는 짧게 혀를 찼다.
“회장님 말씀이 맞다면 천하 그룹이 어떤 방향으로 우릴 공격할지 벌써 그림이 그려집니다.”
“예. 아주 뻔하죠. 우리나라는 독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지 않습니까? 그에 대한 법안도 많고요. 우리 기업이 금융 분야를 독점하고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서 압박을 주려 할 겁니다.”
“다른 상대였다면 그러려니 넘겼을 거 같은데, 상대가 천하 그룹이라면 긴장을 바짝 해야겠군요.”
“예. 천하 그룹이 우리나라 권력 기관을 자기 수족처럼 부리지 않습니까. 지금부터 조심해야 할 겁니다.”
그렇게 우리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오오-!”
합병식 연회장에서 큰 소란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뭔가 대단한 걸 봤다는 것처럼 감탄사를 터트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소란이 난 곳으로 가 보았더니, 그곳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대한민국 역사상 두 번 다시 없을 합병을 이뤄 낸 걸 축하하오. 천하 그룹 장연욱 회장이라 하오.”
절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장연욱 회장이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회장에 나타났다.
평소 어떤 일이라도 당황한 표정을 바깥에 보여 주지 않았던 내가 오늘만큼은 놀란 얼굴빛을 띨 수밖에 없었다.
“이곳까지 와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회장님.”
“흠. 카메라보단 역시 실물이 잘생겼군. 저번 전경련에서 봤을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어.”
전경련 때 날 보고 있었다고?
“그때 봤을 때도 참 심상찮다고 느꼈었는데, 이렇게 거물이 되셨구려.”
“과찬이십니다.”
장연욱 회장은 연회장을 둘러보았다.
자리로 안내해 주려고 해도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근데 내가 너무 끝물에 들어왔나? 회장 분위기가 별로인데.”
“합병식은 다 마쳤습니다.”
“그래요? 그럼 잘됐네. 시간이 된다면 이 늙은이와도 좀 어울려 주겠소?”
나는 대답을 하기 전 주변부터 빠르게 살폈다.
이미 기자들은 특종을 잡았다는 듯 눈을 반짝였고, 회장에 참여한 사람들도 우리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난 얼른 권 대표를 불러 말했다.
“기자들이 밖으로 나가서 허튼소리 퍼뜨리지 못하게 막아 주세요. 사진 찍은 것도 전부 검수하시고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 회장은 극도로 언론에 노출되는 걸 꺼리는 양반이다.
그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 주자 장연욱 회장은 미소를 보였다.
“젊은 친구가 눈치도 참 빨라.”
“회장님께서 불편하시면 안 되니까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밑바닥에 있던 천하 그룹을 대한민국 초일류 기업으로 만든 장연욱. 하지만 칩거하는 생활을 즐겨서 사람들은 그를 은둔의 용이라고 불렀다.
조용히 음지에 틀어박혀 있던 용이 무슨 일로 이곳까지 찾아왔는지 이제부터 알아볼까?